20220713 새벽기도회

본문: 히 9:1-10

제목: 새집 줄게 헌집 다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3. 본문읽기: 히 9:1-10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첫 언약 속에 있었던 제도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첫 언약 안에 있었던 그 제도의 한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그 제도는 다음에 올 온전한 것을 위해 임시로 주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비된 첫 장막이 있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 그리고 진설병이 있었고 이를 성소라 했습니다. 그 안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고 말하는데 그 안에는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언약의 돌 판이 있습니다.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같이 예비되어 있었고 제사장들은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둘째 장막(지성소)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때 대제사장은 반드시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린 후에야 들어갔습니다. 

 

성령이 이로써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첫 장막과 그 예법은 참된 구원의 길이 아니고 하나의 비유이고 그림자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옛 언약의 방식대로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를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의 방식은 먹고 마시는 것(음식 예식)과 여러 가지 씻는 것(성결 예식)과 같은 육체적 예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라 완전한 것이 오기 전까지(개혁의 때까지) 임시적으로 맡겨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8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구약의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오히려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는 말씀인데,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입니다. 좀 전까지 장막에 무엇이 있고 그 안에서 제사장이 일을 하고, 지성소에는 무엇이 있고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만 들어가는데 그것도 자신과 백성의 허물을 위해 드리는 피가 없이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다 했는데 갑자기 왜 첫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히려 첫 장막을 통해서 성소로 들어가는 구약의 그 예법이 오히려 참된 장막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가리는 것이 되지 않았는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율법에 대한 확신이 너무 크고 강해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의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유대인들처럼 과거 약속으로 주어졌던 방식에 사로잡혀 그 한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첫 장막의 방법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길, 완전한 길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보이시기 위해 옛 언약의 성소를 폐하시고 참된 성소를 보여주신 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새 것을 보기 위해서는 옛 것이 사라지고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경험이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참된 길을 만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안전해 보이는 것들을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오히려 새로운 안전과 평화를 만나고 경험하게 해주시기도 합니다. 옛 것이 허물어지질 때 새 것을 기대하시고 소망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10절.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절대적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성막과 지성소 그리고 제사 제도는 이제 과거의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니 거기에 더 이상 매여 있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가 이루어졌으니 더 이상 과거의 것으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행위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과거의 것일뿐 아니라 임시적인 것이고 제한적인 것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혁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맡겨둔 것일 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개혁되었으니 더 이상 거기에 매여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예수님이 오신 후로 확연하게 달라졌습니다. 겉으로야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왔고 그 나라의 통치 원리가 이 땅에서도 적용되어지기도 하고 요구되어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통치 원리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마치 잠시 연습용 악기를 통해서 그 악기에 대한 감을 익히고 절차와 방법을 알려주었던 것인데 그 악기로만 연주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제 실전용 악기, 전문가용 악기를 주어 진짜 연주를 하라고 하는데 정작 옛날 연습용 악기를 고집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시로 맡겨둔 것은 이제 뒤로하고 새롭고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면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연주할 것이고 마침내 관중들의 박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그 은혜 가운데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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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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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2 새벽기도회

본문: 히 8:1-13

제목: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92장 위에 계신 나의 친구
  3. 본문읽기: 히 8:1-13

4. 본문의 내용

 

히브리서 본문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도 내용을 일일이 다 언급하기 보다는 큰 맥락에서 중요한 내용을 중심으로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구약의 제사장(스스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과 다른 계통의 제사장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원한 제사장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며 더 확실한 언약의 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제사장임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믿고 있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자랑하듯 말하고 있습니다.(1절)

 

더불어 그 예수는 성소와 참 성막에서 섬기는 분임을 말합니다.(2절) 그러나 그 성막은 사람의 세운 성막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이 땅의 성막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이며 그 성막에서는 율법에 따라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이미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의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는 이 땅의 제사장보다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습니다. 그것은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것입니다.(6절) 왜 더 좋은 약속 더 좋은 언약이 필요했겠습니까? 그것은 첫 언약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언약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셨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열조와 출애굽하던 날에 맺은 언약(첫 언약)은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지 아니함으로 하나님도 그들을 돌보지 않게 된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이스라엘 집과 맺은 언약은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이와 같은 새로운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새 언약을 주셨다는 것은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5절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구약 시대에 있어서 성막과 성전 그리고 제사장의 역할을 절대적이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고 죄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사장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 백 년의 시간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규정한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성막과 제사장도 불완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운 성막이라는 것이 완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막의 모형은 하늘에 있는 것이니 이 땅에 있는 성막이라는 것은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임하실 수 있는 성전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신의 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자신을 위한 제사를 매번 드려야 할 뿐 아니라 자신도 죽음으로 인해 제사장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하는(영원한 제사장일 수 없는) 한계를 가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는 다릅니다. 그 예수는 완전한 제사장일 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참된 성소와 성막에의 대제사장으로 우리 각 사람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기억하시고 헛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마시고 담대히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2) 6절.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예수님은 구약에 있는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통해 히브리서 기자는 첫 언약과 새 언약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옛 언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언약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는 결과를 맞게 된 것입니다. 실효성에는 언약의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새 언약을 맺습니다. 이 언약은 이전에 맺은 언약과 다른 방식으로 효과를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그 백성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 법을 기록하게 함으로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결과이고 그 언약의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옛 언약을 근거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을 근거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성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하지 않도록 하시는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혼자 좋은 일을 하시고 알아서 하라고 떠나신 분이 아니라 그 좋은 일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도록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과 함께 복된 하루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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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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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1 새벽기도회

본문: 히 7:20-28

제목: 예수를 의지하는 자의 혜택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3. 본문읽기: 히 7:20-28

4. 본문의 내용

 

예수님은 레위 지파의 계통을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더 온전한 제사장임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로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맹세를 통해서 된 제사장이 아니라 혈통을 따라 된 제사장인 반면 예수는 하나님의 맹세로 말미암아 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할 수 없는 분이시니 그 맹세는 돌이키거나 뉘우침이 없는 영원한 보증이 된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의 보증으로 된 영원한 제사장이란 뜻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것입니다.(20-22절)

 

둘째로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그 수효가 많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한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홀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인간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직분을 나눠서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한 사람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지금도 죽지 않고 항상 살아계셔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3-25절)

 

예수와 같은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다릅니다. 그들 자신도 죄인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그 이후에 백성의 죄를 위해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는 단번에 자기를 드려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나 율법 이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다고 말함으로서 레위 계통의 제사가 가진 한계와 율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레위 계통의 구약 제사장들은 자신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백성들을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온전히 항상 믿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반차를 따라서 그 날의 제사를 인도하는 사람이 달라지며, 또 이들이 나이를 들거나 죽을 경우에는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제사장이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으시기에 자기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움은 항상 유효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를 의지하셔서 하나님께 나아가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항상 간구해 주고 계신다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그 확신을 주고, 주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이 또한 그 확신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27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구약의 제사장은 제사드리러 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한 해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고 그 모든 죄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제사에 차이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매번 매년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물과 제사가 필요했지만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를 위한 제사였음을 믿는 것이고 그 제사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효력을 가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다시 죄를 위해 제사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죄를 짓기도 하고 그로 인한 책망을 듣기는 할지언정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새 언약의 백성과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 구속을 받아들인 자들이 믿는 믿음의 내용이고 확신입니다. 그 은혜 가운데 한주를 보내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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