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1 새벽기도회

본문: 히 11:23-31

제목: 믿음으로 두려움과 유혹을 이기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3. 본문읽기: 히 11:23-31

4. 본문의 내용

 

계속해서 믿음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의 부모와 모세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를 도운 기생 라합의 믿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앞부분은 모세의 부모로부터 시작해서 모세 그리고 출애굽 백성들의 믿음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석 달 동안이나 모세를 숨겨 키웠습니다. 어떤 믿음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모세의 부모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왕의 명령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어떤 결단을 만들어 냈을까요?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 누릴 수 있는 영광을 포기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는데 이는 모세가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23-26절) 모세는 믿음이 있어서 1)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2) 유월절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해 장자의 죽음을 면하게 했으며 3)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반면 애굽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그 홍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27-29절)

 

뒷부분은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과 이를 도움 기생 라합의 믿음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여리고를 돌았고 그 성이 무너졌습니다. 기생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정탐꾼을 영접하여 여리고 백성들은 멸망당했지만 그는 살아남았습니다.(30-31절)

 

정리하면,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기도 했고(23절/모세의 부모님, 27절/모세) 믿음으로 죄의 낙을 누리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당하기도 했으며(24절, 모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두려움을 참기도 했으며(27절) 믿음으로 유월절 예식을 정해서 장자의 죽음을 막기도 했고(28절/모세)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홍해를 가르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구원을 받기도 함)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한 자들은 홍해에 빠져 죽거나 여리고 백성들과 함께 멸망당하게 되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의 궁에서 왕자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와 같은 낙을 누리는 것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왕자의 자리에서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풍요에 붙잡혀 살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회피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 믿음이 오늘의 환난과 불편함을 견디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옛 본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더 좋은 본향을 소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곳에 성을 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믿음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상을 주신다는 것과 더 좋은 본향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현재의 고난과 불편함을 견디고 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불행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중을 생각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상 주실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재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 보다는 옛 자리로 돌아가 이미 주어진 것들을 붙잡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더 지혜로운지는 여러분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가졌던 그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 되소서. 

 

  2) 29절.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건너는 과정에서 두려움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로 그들이 다 건널 때까지 홍해의 길은 닫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길을 애굽 사람도 건너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저 길이 열려있으니까 자기들에게도 열려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애굽 사람들이 시험하다가 빠져죽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자는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열어주는 구원이 아닙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이와 같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나안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그렇다고 맹목적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믿을만한 분이신지를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약속해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우리 가운데 단번에 영원히 한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믿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면 옛 날로 돌아가지 마시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의 유혹을 넘어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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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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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0 새벽기도회

본문: 히 11:13-22

제목: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 날까지
  3. 본문읽기: 히 11:13-22

4. 본문의 내용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임을 믿어야 할지니라(11:6)라는 말씀처럼 오늘 본문은 그 믿음을 가지고 죽기까지 그 약속을 굳게 붙잡았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니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믿음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음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에 불과했으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멀리서 응시하며 환영하면서 나그네의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야할 본향을 늘 바라보았지만 그 본향은 이 땅에 있는 육체적인 본향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 본향을 바랐다면 그들은 언제든지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더 나은 본향이었고 그것은 곧 하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이와 같은 믿음을 기뻐하셨고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3-16절)

 

이와 같은 믿음을 지킨 구체적인 인물로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이 있을 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약속으로 받은 외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약속으로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행위)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7-19절) 이와 같은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다는 것’을 통해서 확인되게 됩니다.(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삭은 믿음으로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고, 야곱도 믿음으로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들에게 축복하였고’ 요셉도 믿음으로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다’(20-22절) 이와 같이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믿음으로 축복했던 모든 것들이 이후에 다 성취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성취를 바라고 이들이 축복한 것이고 이들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니)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에게는 자신의 본향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자신의 친척과 아비의 집이 있는 곳이고 자신이 자라온 곳이기에 익숙하고 편한 곳입니다. 때로 닥쳐올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곳이 바로 본향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약속에 의지해서 낯선 땅 가나안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은 그저 외국인이요 나그네에 불과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떠나온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여 그리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안과 염려 속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머물러 살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더 나은 본향’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다시 옛날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모테 신앙이라면 교회가 아니라 세상은 좀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세상으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옛날이 더 좋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왜 예수를 믿어 이런 고난과 수모를 겪어야 하는가 불평을 할 때도 있습니다.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은 고난을 당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옛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다시 옛 자리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해 주고 있는 것처럼 ‘너 나은 본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자랑스러워하시면 짓고 계신 하나님의 성, 하나님 도시의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닙니다.(10:39) 본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2) 20절.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해서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이삭은 임종을 앞두고 아들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야곱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좀 더 축복하는 일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축복이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 모세회의 한 집사님께서 영상으로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는데 ‘축복’을 해 주시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회니 축도는 안하더라도 축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더욱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서로를 축복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정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서 축복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그런 믿음으로 축복을 했고 그것이 성취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축복을 듬뿍 담아 기도하시라. 특히 이번 주 성경학교와 수련회가 있는데 우리의 다음 세대를 향한 축복이 넘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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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9 새벽기도회

본문: 히 11:1-12

제목: 죽은 자와 같은 자라도 믿음으로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3. 본문읽기: 히 11:1-12

4. 본문의 내용

 

오늘부터 믿음장으로 유명한 히브리서 11장을 다루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인 아벨과 에녹 노아와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믿음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은 믿음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바라는 것이라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성취될 것이란 측면에서 ‘실상’입니다. 또한 현재 보이지는 않지만(그 성취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음,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믿음은 그 드러난 것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세계의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그 근거는 믿음에 의해서다. 이미 이루어진 모든 세계는 우리가 눈으로 보아 알지만 그 근원은 보이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 믿음은 막연한 신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믿음은 현재 보이지 않는 것,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근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  

 

4절에서 ‘아벨’을 다루면서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그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고 말한다. 아벨이 비록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5절에서 에녹에 대해 다룬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인물인데 그는 옮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옮겨진 것이다.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는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6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두 가지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기본이 되는 믿음입니다. 

 

7절에 노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노아는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경고하심을 받아서 방주를 준비해서 자기 집을 구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대한 정죄이면서 동시에 믿음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의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 일입니다. 8-10절에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고 믿음으로 나아가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장막에 거주했는데 이삭도 야곱도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았다. 이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것을 바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임을 믿었기에 아이를 낳지 못해 죽은 자와 같은 사라를 통해 허다한 별과 또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낳게 하셨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1-2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현대시대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해주어야 믿고 신뢰해 주는 시대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증명된 것만을 믿으며 살기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렵고 증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진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확인한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진화라는 것이 수천 수 만 년을 거쳐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근거로 그럴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때 그 현장으로 돌아가 확인할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기초한 신앙과 하나님이 우리가 가운데 주신 말씀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신앙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신실한 분으로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관계의 신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에 근거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믿을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실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하나의 증거가 되어 믿음으로 바라고 소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실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수 없는 바람과 소망입니다. 성경의 많은 위인들은 이 믿음을 근거로 약속을 받고 그것을 성취했던 것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를 향해서도 그 믿음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12절.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 다음 해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삭이 야곱을 낳았고 그 야곱이 12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번성한 이후에 보면 앞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과학적으로나 인간의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태가 끊긴 여인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무수히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고 그 백성들의 선조가 된 사라가 90세가 되어서도 아이를 낳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나게 된 것은 어떤 원리를 통해서 된 것인가!

 

오히려 우리는 이 내용을 근거로 ‘하나님을 믿을 만 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로 삼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시길래 모든 가능성이 최악의 상태에 있을 때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시는 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이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에 실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늘의 허다한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은 열매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모든 것이 실상으로 들어나게 되시길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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