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8 새벽기도회

본문: 히 10:26-39

제목: 우리는 뒤로 물러갈 자가 아닙니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3. 본문읽기: 히 10:26-39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한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완전한 구원에 이른 자들인 우리는 이 믿음의 내용에 대해 의심하거나 흔들려 다시 옛날 구약의 율법이나 제사 제도로 돌아가려고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39절) 이와 같은 주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시 옛날의 방식(율법과 제사)으로 회귀하는 것은 큰 죄라는 측면에서 다룹니다.(26-31절)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고의적으로) 다시 옛날의 방식인 율법과 제사를 의지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큰 죄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는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29절) 그러니 그 죄에 대한 형벌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던 역사(28절)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 옛날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갚는 분이고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함으로 완전한 구원의 계시를 부정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자가 받게 될 형벌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다시 옛날로 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의도의 말씀이십니다. 

 

두 번째는 이전에 이와 같은 유혹과 시험에서 이겼던 경험에 비추어서 독려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과거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즉 완전한 제물과 제사장으로서 예수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혜를 받은 후에 유대교도들로부터 받았던 고난 속에서도 잘 견디고 이겨 왔던 것을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32절) 예수를 통한 구속을 믿고 의지했을 때 우리가 당했던 박해와 조롱, 또 그런 자들과 함께 하며 우리가 돌아서지 않고 서로 독려하며 심지어 소유를 빼앗기는 것조차 기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우리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34절) 그러니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36절) 예수님은 곧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옛날의 방식인 율법과 제사를 의지하여 멸망할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완전한 의와 거룩을 힘입어 구원에 이른 자들이며 그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39절)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29절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을 향해서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생각해야 하고 지금의 고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믿는 사람도 아니고 생각 없이 믿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생각없이 고민없이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처럼 여기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시 옛날의 방식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앞에서 계속 설명해주고 있는 내용들이 그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제사로는 우리가 온전한 의에 도달할 수도 없고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제물이 되셨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완전한 성소인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셨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가지는 제의적인 측면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옛날의 방식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것입니다(26절)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신 것이라는 겁니다.(29절) 그러니 그 형벌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설명하고 설득하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생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생각없이 믿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생각하며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왜 고난을 주셨는지 생각하고, 왜 축복을 주셨는지 생각하고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는지 생각하고 왜 나의 기도는 응답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시고 은혜의 자리로 날마다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예수의 속죄하심을 믿는 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오길 기다리고 기대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인내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실 약속의 성취를 믿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그 결실을 손에 잡고 있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믿는 바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뒤로 물러가거나 머뭇거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매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의 신앙이며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의 행할 바인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뒤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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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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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5 새벽기도회

본문: 히 9:23-28

제목: 공식적인 구원결과를 기다리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3. 본문읽기: 히 9:23-28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으로서 이 땅에 있는 제사 제도는 송아지와 염소와 같은 제물의 피를 통해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성막에서는 더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송아지와 염소는 제물로서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정결하게 하기 위해 새로운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성막에서 드려질 제물은 완전한 제물이어야 합니다.(23절)

 

그리스도는 바로 그 완전한 제물이 되시면서 동시에 그 제물을 드린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에 있는 성소로 들어가셔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늘 성소의 모형인 이 땅의 성소에 들어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참 성소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신 대제사장인 것입니다.(24절)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오래 전부터 해마다 다른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야 했으나 그리스도는 매번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의 제사로 모든 죄를 해결하신 것입니다.(25-26절)

 

사람들은 모두가 한 번 죽게 되고 그 이후에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한 번 죽으셨는데(단번에 드리신바 되었고) 그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기 위한 죽음이었고 이제 곧 다시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바라는 자들에게 구원을 확증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27-28절)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24절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의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으로 오실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막의 원형인 하늘 성막의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구절입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하나의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전혀 주저함이 없이 당당하게 나아가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주저함이나 머뭇거림이 없는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가지 면에서 주저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를 대변하시기 위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자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나서듯 예수님은 우리가 잘못한 문제를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고 모른척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못은 우리가 했지만 우리의 부모처럼 주님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심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재판장 이십니다. 그의 판단으로 정죄를 받기도 하고 용서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 없이 당당하셨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제물로 완전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흠이 없고 그 흠없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 대제사장 역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완전한 제물과 완전한 제사로 나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주저함없이 나아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늘 기억하십시오.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하나님을 보지 마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바로 보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2) 28절.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백성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제물을 잡아 드리고 나서야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다시 살아서 나오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래야 죄 용서에 대한 확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라는 말씀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신 대제사장이 다시 나오길 고대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고 고대하게 됩니다. 그 분이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믿고 확신했던 모든 것들이 완전한 구원의 형태로 확증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물로도 손상이 없으셨고, 대제사장으로서도 문제가 없이 완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시험을 치뤘고, 답안지를 다 맞춰 봤습니다. 넉넉하게 합격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저 최종 공식적인 확정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믿음으로 넉넉하게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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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4 새벽기도회

본문: 히 9:11-22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 역할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3. 본문읽기: 히 9:11-22

4. 본문의 내용

 

히 9:1-10까지의 내용이 개혁되기 이전까지의 예법과 관련된 내용이었다면 9:11-22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개혁된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막을 통해 섬기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하늘에 있는 성막으로 말미암아 섬기는 대제사장이십니다. 또한 염소나 송아지의 피를 통해 속죄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정리하면 그리스도는 제사를 주관하는 온전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제물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린 제사는 완전한 제사가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11-12절)

 

그도 그럴 것이 염소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여 지게 되는데 하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그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하겠는가!! 그 피는 충분히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에 충분한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13-14절)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볼 때,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16-22절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죽으셔야만 그 언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은 마치 유언과 같아서 유언한 사람이 죽을 때에라야 그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 언약도 피 없이(죽음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서만 죄사함을 받고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첫 언약도 그렇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더 좋은 언약도 마찬가지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11-12절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속과 관련하여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물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는 어린 양의 제물과 같은 역할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를 향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땅의 제물은 불완전하기에 흠이 없을 수 없고, 반복적인 제물이 필요했기에 사실 구약의 제사는 온전한 효력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 모든 제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납하심이 매번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물로서의 그리스도는 다릅니다. 흠이 없이 완전한 제물이었기에 ‘영원한 속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손을 짓지 않은 하늘에 있는 완전한 성소의 대제사장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완전한 성막의 대제사장이신 예수의 인도하심을 믿고 그 분이 행하신 절차를 따라 나아간다면 우리 또한 그 분과 함께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학적인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가운데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모르고 다시 구약의 제사 제도를 의지하고 또 다른 제물을 의지해야 한다는 율법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완전에서 불완전으로 퇴행하는 어리석은 짓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믿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분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면 되는 겁니다. 담대하고 당당하게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2) 22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 구약의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한 제사를 비교하여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인 ‘죽음’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도 마찬가지랍니다.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18절) 모세가 언약을 맺은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우슬초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는 의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피뿌림이 백성들과 장막,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려졌다는 것입니다. 피 뿌림을 통해 정결하게 되는 의식을 가지듯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속죄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언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먼저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얻은 생명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장기를 이식 받아서 생명을 얻거나 건강을 얻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의 삶에 좀 더 진지해 져야 합니다. 더 의미있고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고 간 사람의 생명이 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누리시고 나누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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