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유다왕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 아몬의 아버지는 므낫세다. 그는 55년간 유다를 통치하면서 유다를 죄악으로 이끌었던 왕이다. 그로 인해 유다는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시대를 지나고 그와 유사했던 아몬 왕을 지나 이제 요시야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2.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다.


  * 스바냐가 알려져있는 출신의 가문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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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께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다.


  1)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라.(동물과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2)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멸절하리라.

   (1) 바알과 그마림이란 이름과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리라. 

   (2) 하늘의 뭇 별들에게 경배하는 자들,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 멸절하리라.

   (3) 여호와를 배반하고 찾지도 않는 자들, 구하지도 않는 자들을 멸절하리라. 


  :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한 자들을 구별하셨다.


  * 이들의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죄악을 고발하심.


 3) 내가 방백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다.

 4)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벌하리라. 


  * 이들의 사회적인 죄악을 고발하심.


 5) 그 날에 예루살렘에 통곡이 가득하다.(재물이 노략되며, 집이 황폐할 것, 열매를 얻지 못함)

 6) 여호와께서 복도 내리지 않과 화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자들을 등불로 찾아 벌할 것이다. 


  *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될 것이며, 특히 거짓 선지자 노릇을 했던 사람들(그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찾아 그들을 벌하신다.


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고도 빠르도다. 


  1) 그 날은 분노의 날, 환난과 고통의 날,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다. 

  2) 하나님이 고난을 내려 맹인같이 행하게 함(갈팡질팡하는 모습)

  3) 그 이유는 그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4) 금과 은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18절)


  * 그들은 금과 은은 추구했다. 므낫세 시대에 이방신들을 들여오고 이방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은 부유함과 부강함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권력자들은 금과 은을 누리게 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자리와 평안을 지켜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빼앗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금도 은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묵상 한 모금]


1. 요시야가 왕 위에 오를 때는 아직도 조부인 므낫세로부터 이어져온 세상의 가치관으로 가득했던 때였다. 므낫세나 아몬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의 문제를 느끼는 요시야가 왕위에 올랐다. 그제서야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도 눈치가 빤 하시다. 들을 귀 있는자에게 말씀하신다. 므낫세와 아몬에게는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들을만한 귀를 가진, 마음을 가진 요시야가 왕이 될 때 선지자를 통해 예루살렘의 문제와 이대로 갈 때 어떤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어떤 측면에서 요시야는 억울할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을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이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문제를 지적할 때, 그것은 마치 왕인 요시야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시야는 이 메시지를 들었고, 남겼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기 전에(회피할 수 있는 명분이 분명했지만) 자신이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봤던 것이다. 그래서 요시야의 개혁도 가능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2. 그 당시의 시대적 가치관은 '금와 은이 나를 구해줄 것'이리라고 기대했던 가치관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황금만능주의로 가득한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거품과 같아서 잠시 있는것처럼 보였지만, 더욱 허망한 환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지난 시절 온 나라가 부자가 되겠다고, 공의도 정의도 버리고 금과 은으로 구원해 줄 대통령을 뽑았다. 돌아온 것은 그가 국민들의 돈으로 얼마나 허망하게 낭비하고, 소외된 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는가 뿐이다. 누구를 탓하랴. 우리의 어리석음과 무지 그리고 욕망의 환영이었음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제 배워야 한다. 교훈삼아야 한다. 금과 은은 허망하며, 아무도 책임질 수 없고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의 소득이 처음보다 2,3배로 뛰었다고 한들 우리는 더 행복했을까? 아니다. 더 피폐한 심령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죄인들의 멸망은 스스로 자초하는 결과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그들의 처지에 대해서 긍휼을 베풀지 않기에(사실 이또한 그들의 완악함 때문이다.) 돌이켜지지 않을 뿐. 자업자득이요.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며 행한대로 갚음을 당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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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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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17장] 기업을 분배받을 때 요셉 지파 사람들은 요구가 많았다. 딸들도 자신의 기업을 요구했고, 요셉 지파는 자기들에게 분배된 땅이 너무 좁다고 불평했다. 더 넓은 땅을 요구한 것이다. 이런 요셉 지파의 요구는 부당한 것인가? 욕심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요구 앞에 여호수아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므낫세 지파가 얻은 기업

  1)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다.(요단 동편의 영토)

  2)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은 그 가족대로 요단 서편에서 제비를 뽑아 기업을 얻게 됨

  3) 그 중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었다. 그들은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에게 나가서 전에 모세가 명령하여 우리 형제 중에서 기업을 주라고 한 것처럼 기업을 달라고 해서 그 딸들도 다른 형제들처럼 기업을 주었다.

  4) 요단 동쪽 길르앗과 바산 외에도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다. 


2. 므낫세의 영토(지도를 참고하라)

  1) 구체적인 지명에 대해서는 지도를 참고하라.

  2)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었다.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 

  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했다.




3. 요셉의 자손(에브라임과 므낫세)이 땅을 더 요구하다.

  1) 요셉 자손은 자신이 다른 지파보다 큰 민족을 이루었는데, 한 분깃의 기업만을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함.

  2) 여호수아는 네가 큰 민족이 되어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살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정복하라고 도전함.

  3) 요셉 자손들은 이 산지는 자신들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에 사는 자들은 다 철병거가 있어서 정복하기가 어렵다고 불평했다.

  4) 여호수아는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것이 되리니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함.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여 쓰기]


요셉의 둘째 에브라임의 기업 분배에 이어 므낫세의 기업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므낫세의 장손 마길은 요단 동편 땅, 길르앗과 바산에서 미리 자신의 기업을 얻는다. 그리고 나머지 10 분깃을 얻게 되는데, 그렇게 분깃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신들도 기업을 다라고 요구했고, 모세가 그 요구를 수락했었기 때문이다. 암튼, 므낫세의 자손들은 요단 동편에 이어 요단 서편에서도 땅을 분배받게 되었다. 그 영토는 주변에 여러지파와 접경을 이루는데, 위로는 잇사갈, 스블론, 아셀과 접경을 이루고 아래로는 에브라임과 접경을 이룬다. 동편으로는 요단까지며 서편으로는 지중해까지 이르는 영토를 가지게 된다. 


사실 이들이(에브라임과 므낫세) 이렇게 큰 영토를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이 다른 지파에 비패서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크기에 비해 분배해 준 땅은 너무 적다고 느꼈기에 자신들에게는 한 분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요청한 것에 기인하다.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땅을 스스로 정복하여 취하라고 했다.(물론 그 땅은 산지가 많고,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들이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리3. 정리하는 중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메시지와 묵상들]


1. 요셉의 지파(므낫세와 에브라임)는 자신의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요구가 있었다.


   1) 슬로브앗의 딸들은 아들이 없는 자기 집안이지만 딸에게도 기업을 달라는 요구를 했고, 모세는 이를 수락했다. 그리고 이런 요구에 따라서 므낫세 지파는 요단 서편에서 10개의 분깃을 얻었다고 말한다. 


   2) 요셉의 자손들은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의 규모에 비해서 땅의 분배가 너무 작다고 말했다. 더 큰 땅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불만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부정적인 의미의 욕심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당한 테두리 안에서의 요구가 있다. 이것을 정죄할 수는 없고, 애매한 영역에서 자신의 것으로 달라는 요구도 가능할 것이다. 슬로브앗의 딸들이 요구는 부당한 것에 대한 요구였으며, 그 요구는 정당함을 인정받아 모세를 통해서 허락되었다. 요셉 지파의 두 아들 지파의 요구도 정당하다. 여호수아가 허락을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자신의 필요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요구는 어느 정도 관철되어 허락되었다. 물론 그들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부담을 얻기는 했지만, 가능성은 열려진 것이다. 무조건 참지만 말고 요구하는 삶도 필요하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 자신의 욕구를 정당하고 바르게 표출하는 것도 성숙함의 모습이다. 


2. 부족한 부분은 정복하고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가 요셉 지파의 적극적인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지파와의 형성평 문제도 있으니. 슬로브핫의 딸들이 요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모세가 수락한 것이기에 그대로 허락하였다. 반면 요셉 자손들이 자신들에게 땅을 더 달라는 요구(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큰 지파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들은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수락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정복하기 힘든 땅, 다른 지파들이 가지기에도 어려운 산지와 계곡이 있는 땅을 그들에게 스스로 정복하여 가지라고 도전한 것이다. 


  이제 공은 여호수아에게서 요셉의 자손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몫이 되고 말았다. 얻을 땅이라는 것이 산지라면 큰 유익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얻을 땅이 철병거를 가진 족속이라면 섣불리 덤벼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지파는 전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요셉 지파가 그 땅을 정복하든지 아니면 좁은 대로 살든지 결정하고 행동할 일만 남은 것이다. 


 여호수아는 정당한 요구, 다른 지파와 다른 룰을 적용해야 하는 대상들에 대해서 무조건 관용하지도, 무조건 무시하지도 않았다. 형평을 고려하면서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추가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을 더해서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균형감도 적절하게 사용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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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16장]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땅분배를 기록하면서 1순위는 유다, 2순위은 요셉의 자녀 지파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이들이 훗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라는 사실을 안다면 땅 분배의 순서가 무작위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먼저 유다의 분배를 다루었다는 것은 저자의 마음이 유다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구요. 사건의 등장인물이나 순서가 나름 다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지파(서쪽) 자손의 기업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아서 기업을 확정하게 되었다. 

  2)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의 경계에 대해서 언급함(지도참고)

  3) 요셉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다. 


2. 그 중에 에브라임 자손이 받은 기업의 경계

  1)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다음과 같다.(지도를 참고하라)

  2)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성읍과 마을도 있다.

  3)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함으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람이 가운데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쓰기]


유다 지파에 이어서 요셉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기업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그들의 기업을 따로 받았다. 각 각 한 지파로서의 기업을 받은 것이다.(사실 요셉은 다른 형제에 비해 두 배의 기업을 받은 셈이다.) 두 지파 사이에는 약간 섞이거나 므낫세에서 에브라임에게 준 성읍도 있을 만큼 조정이 가능한 관계였다. 에브람이 지파의 영토 중 게셀에 사는 가나안 족속은 그 때 쫓아내지 못함으로 오늘까지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알려준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땅 분배에 대해서 유다 지파 다음에 요셉 지파(므낫세와 에브라임)에 대한 순서로 언급된다.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유다 지판에 대한 언급을 마치고 나서 바로 요셉 자손의 지파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분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두 지파가 훗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대표하는 지파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것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설정하기 위한 셋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 본다. 즉, 여호수아를 기록한 기자가 이미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구축될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중심으로 구축될 유다에 대한 역사적인 상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여호수아서를 기록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여호수아서의 저자가 그런 의식 속에서 본문을 기록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더불어 유다를 먼저 언급함으로 저자는 북이스라엘 보다는 유다 쪽의 정통성을 더 지지한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암튼, 유다가 남쪽을 대표하고 에브라임이 북쪽을 대표하는 것은 명확한 것이고, 이미 땅을 배치하고 분배하는 과정 속에서 유다와 에브라임(요셉의 자손 지파)가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모종의 복선임을 보여준다 하겠다. 


2.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았다.(서로 필요에 따라 조금씩 요청, 양보함)


요셉의 자손이라고 해도 각 각 한 지파로서 영토를 주었다. 그럼에도 두 지파는 다른 지파와는 다른 관계를 가진다. 그것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성읍들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두 지파는 땅에 대해서 제비를 뽑아 나누긴 했어서 계속되는 요구와 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7장에 좀 더 구체적인 사례가 나온다)



3.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속에서도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민족이 있었다.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와 같이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게셀 족속이 있었다. 못한 것인지 안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들을 다 없애기 보다는 노역하는 종으로 두어 좀 더 편한 생활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호수아가 정복을 주도할 때는 전체적인 멸절로 가지만, 각 지파가 자신의 땅을 정복하는 식의 지방 자치가 일어나면서는  그 중요한 원칙은 약화되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유익한 판단을 하면서 원칙을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유다는 예루살렘의 여부수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고, 에브라임은 게셀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다. 그들을 노역시키는 종으로 삼았다. 


4. 영토의 측면에서는 므낫세가 훨씬 많은 기업을 받았는데, 훗날 북이스라엘은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었을까?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힘의 균형 변화)


기업에 대한 언급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도를 보면 좀 의아해 진다. 므낫세의 영토가 에브라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크기 때문이다. 므낫세는 요단 동편에서도 기업을 받았는데, 요단 서편에서도 매우 큰 땅을 부여 받았다. 상대적으로 에브라임은 작다. 그 당시 므낫세에 인구와 재산이 다른 지파에 비해서 풍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훗날 므낫세는 그 위치가 축소되고 에브람이  북이스라엘의 10개 지파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지금은 질문으로 남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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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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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1장] 여호수아를 통해서 리더십을 생각해 봅니다. 대선을 앞두고 어떤 리더여야 하는가 생각하고 묵상하기 위해서 예레미야서는 잠시 멈추고 오늘부터 여호수아를 살펴보려 합니다. 오늘 핵심 중 하나는, 지도자는 기득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리더십을 행할 것이 아니라, 기득권자로 하여금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파악하기]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내용들. 
  1)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너는 내 백성과 더불어 이 요단을 건너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2) 내가 모세에게 말한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
   (1)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모든 땅, 해지는 대해까지.
   (2)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모세와 함께 하던 것같이 너와 함께 하리라.
   (3)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리니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라.
  3)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에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며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리라.
   (1)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2)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2.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향해서 준비하도록 지시한 것들
  1) 관리들에게 명해 백성들에게 양식을 준비하라고 하고, 사흘 안에 요단강을 건널 것을 말함.
  2) 여호수아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에게 따로 지시했다. 
   (1) 이미 이들은 요단 동편에서 안식을 얻었다.(땅을 약속 받고 확보 받았다.)
   (2) 너희 처자와 가축은 이 땅에 두지만,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 형제들 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3) 너희가 안식을 한 것같이 너희 형제들이 그 땅을 차지하여 안식할수 있을 때까지 그리해야 하고, 그 후에야 너희 소유지로 돌아와 그것을 차지할 것이라.
  3) 그들은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할 것을 약속하고, 보내는 곳으로 갈 곳을 확답했다.
   (1) 우리가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할 것이다.
   (2)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하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
   (3)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4)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냈던 모세가 죽고, 이제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의 권위를 여호수아가 이어받았음을 인정해 주시는 말씀이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약속한 것으로 여호수아에게 그대로 승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 약속의 땅은 꽤 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더불어 여호수아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몇 차례 더 하심으로 여호수아의 마음에 두 가지 큰 확신을 심어주시려고 하는 것 같다. 하나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 보여진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여호수아는 용기를 가지고 위대한 시작을 한다. 백성들에게 양식을 준비하게 하여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게 한 것이다. 사흘이라는 시간 이후 할 것을 알리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하게 한 것이다. 해야 할 것을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여호수아는 이미 요단 동편에서 자신의 기업을 확보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에게 따로 지시했다. 너희들은 다른 지파보다 앞서 나가 전쟁하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들이 너희처럼 안식할 수 있을 때, 너희들도 너희들의 기업으로 돌아와 그 땅을 차지 할 것이다.


두 지파 반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을 확답했고,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한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향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해 줌으로서 여호수아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 중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교훈 그리고 묵상]

 

1.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말씀으로 여호수아를 세우셨다.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온 백성의 지도자가 그 일을 완수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의 리더십은 곧 이어 여호수아에게 이양되었다. 여호수아의 처음 한 장은 리더십의 자연스러운 이양에 대한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나서서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을 지도자며 하나님도 그 편에 설 것을 말씀하신다. 모세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승계될 것이며 그를 통해 큰 일을 하게 될 것을 다시 명확하게 해 주신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향해서는 몇 차례 반복해서 강하고 담대할 것을 말씀하신다. 여호수아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시는 하나님의 격려를 보게 된다.

 

[리더십1] 리더를 세울 때, 그 사람을 세우는 지도자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사람이 없어서, 마지 못했서가 아니라 이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질 기대를 확신하면서 사람들 가운데 세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원칙(사역의 원칙)을 확인시켜 주고 그 원칙대로만 진행된다면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해주어, 격려와 더불어 긴장을 유발 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2.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이라는 화답으로 여호수아를 세웠다.

 

여호수아에게 구체적인 첫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였다. 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혜택을 얻었으니, 이번 전쟁에서 맨 앞에서 본을 보이며 전쟁할 것에 대한 요구를 받았다. 이들은 핑계를 대거나 대답을 희지부지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명하게 했고, 명확하게 순종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더불어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시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리더십2.] 따르는 사람들이 리더십을 고양시킬 수 있다. 르부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그리했다. 이들은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고양시켰다. 부담스러운 지시에(그러나 책임을 져야 할 지시에) 적극적으로 순종함으로서 그리고 여호수아를 지지함으로서 여호수아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따르는 사람이 리더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더불어 사회적인 안정감을 가진 사람들의 희생과 충성은 백성 전체희 사기를 올려주는 놀라운 장치가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리라 생각된다.

 

3. 그 사이에 여호수아는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했다.

 

여호수아 자신도 리더로서의 자시의 역할에 신속하고 과감하게 임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은 후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일을 추진한다. 백성들에게 전쟁을 준비하도록 시킨 것이다. 사흘 후에 요단을 건널 것이라는 지시다. 오랜 시간을 걸려 준비할 것은 없다. 사흘이라는 시간을 주고 백성들로 준비하게 한 것이다.

 

더불어 여호수아는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가장 기초적으로 두 지파 반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두지파 반의 지도자들에게 따라 이들의 역할을 지시했다. 먼저 기업을 확보한 너희들이 다른 동족의 기업을 확보하기 위해서 맨 앞에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다소 부담스러운 명령이었다. 그의 리더십에 첫 관문이 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해야 할 분명한 사역을 알고 그 일을 미루지 않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을 성취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키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희생과 용기있는 결단이었다. 여호수아는 그 문제를 직면했고, 그들로부터 확답을 얻어 낸 것이다.

 

[리더십3] 리더는 자신의 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성취될 수 있기 위해서 가장 키가 되는 관문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작은 키 하나로 전체 배를 움직일 줄 알아야 진정한 선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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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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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5장] 하나님도 지쳤다.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수 없다. 하나님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지치제 만든 우리들의 고집과 악의, 참 대단합니다.(묵상만 읽으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할 수있으면 요약하면서]


1. 여호와 앞에 모세와 사무엘이 있더라도, 이 백성은 용서받을 수 없다. 

  1)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 쫓아 보내라.

  2) 유다 백성들이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란 말입니까?

  3) 죽을 자는 주음으로, 칼을 받을 자는 칼로,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가라.

  4)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네 가지로 벌하신다.(죽이는 칼, 찢는 개, 삼켜 멸하는 공주의 새, 땅의 짐승)

  5) 유다 왕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여러 민족에게 흩음.


2.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길 자가 없다.

  1)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2) 네가 날 버리고 가지 내가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리라.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

  3) 너희 자식이 끊어지고, 과부는 모래보다 많아졌고,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려울 것.

  4) 그 남은 자들은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3. 예레미야의 고통(사역자로서의 고통)과 하나님의 약속

  1) 내가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저주하는 구나.

  2)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강하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원수로 간구하게 할 것이라 약속함.

  3) 그러나 유다는 북방의 공격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4)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자신을 기억하고 돌봐주시도록 그래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간구한다. 

  5) 예레미야는 자신을 기뻐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위해 홀로 앉아있다.(고독한 자신의 사역을 말함) 이는 주의 분노를 내게 채우신 것이다. 나의 고통은 점점 중하여 낫지 않고,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습니다.(낙심)

  6)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돌아오면 내 앞에 세울 것이고, 헛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다시 여호와의 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다. 예레미야를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여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신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다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펼치기]


여호와께서 유다를 판단하고 심판하시는데 어떤 중보자도 이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았으나) 그만큼 유다의 죄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 가지로 백성을 벌하신다는 것은 결국 완전한 심판을 말하고 작은 것 하나 남김없이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몰인정하셨던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한없이 좋은 분이시고 인자와 자비로 자기 백성을 대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유다는 교만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했다.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고 말씀하신다. 오래 참으신 만큼 하나님의 진노 또한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식을 끊고, 수많은 과부가 일어나게 하며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렵게 할 것이다. 남은 자들은 대적의 칼에 모두 죽게 할 것이다. 


이런 완악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실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즐거워할 수 없었고, 늘 고통과 소외와 영적 부담에 눌려 고통가운데 지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영적 고난의 자리에서 피하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여호와께서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예레미야에게 쌓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암튼, 신음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놋 성벽이 되게 하여 대적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남기신다.


[정리3. 묵상 및 적용_인상깊었던 문구,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메시지 등]


1. 하나님의 진노, 중재자가 없은 유다 백성.


누가 좀 하나님을 말려보세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아니요,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중재자가 없는 유다의 상태를 말한다. 모세와 사무엘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의 중재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이 막무가내라는 말도 아니다. 그만큼 유다의 죄가 넘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중재자를 잃어버린 관계. 풍랑 속에 표류하는 땟목같은 운명이 아니겠는가? 죄를 짓더라도 중재자가 언제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죄를 지어야 한다. 엄마가 내 편이 되든지, 아니면 아빠라도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을 때 그것도 아니라 형제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중재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최소한의 정의와 사랑)는 실현하면서 살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 날 중재해 줄 사람이 없거나, 효력이 없어 그대로 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2. 이제 하나님도 지쳤다. 


성경에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충격적인 표현은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는 것이라 본다. 하나님도 더 이상 자기 백성인 유다를 위해서 뜻을 돌이키시는데 지쳤다고 말씀하신다.(6절) 하나님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께서 관계속에서 이 백성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황, 용서와 끊임없는 자비가 더이상 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이 백성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유다 백성은 참 대단하다. 이 백성 앞에 하나님도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 지친것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야곱과의 씨름에서도 지쳤다.(창 32:25) 야곱의 포기하지 않는 자기 고집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천사는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침으로 그 싸움에서 벗어나 그를 버리고 가려고 했다.(26절) 


하나님을 지치게 하는 사람들,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으로하여금 한계(?)에 이르도록 했으니 이는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하나님을 지치게 만드는 인간....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3. 사역자가 짊어져야 할 고통


사역자가 짊어지는 진짜 고통은 가난과 핍박과 같은 외부적 고통이 아니다. 내면적 영적 고통이다. 하나님의 고통이 자기 자신에게 전해지고 채워지는 고통이다. 그것이 사역자가 본질상 느껴야 할 고통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표면적 고통 속에서, 이는 하나님의 고통을 자신에게 채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17절) 그래서 고통이 큰 것이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벗어 버릴 수 없는 것은 그 고통이 하나님의 고통이기 때문인 것이다. 


예레미야가 짊어진 고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짊어지신 고통... 예수님은 그 고통을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벗어버리기를 원치 않았다. 짊어 지셨다. 그리고 죽음까지 간직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죄에 대한 것을 정하셨다. 예레미야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본다는 말이 진실로 그렇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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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4장]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으로 한계를 느끼게 끔 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계를 느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참담한 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선하심을 무시했는가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무시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봅시다]


1.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

  1) 여호야김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바벨론을 섬기게 되었다.(친 애굽적 왕) 

  2) 3년간 바벨론을 섬기다가 애굽에게로 돌아서고 바벨론을 배반한 셈이 되었다.

  3) 바벨론에 의한 큰 침공을 당하게 됨(하나님의 심판으로 본다)

   (1) 갈대아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의 부대를 통해 유다가 고통당하게 됨

   (2) 이런 일이 임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것으로, 유다를 하나님 앞에서 물리치려 함.

   (3)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다.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이를 사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셨다. 

  4)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됨.

  5) 이 때를 기점으로 애굽 왕이 다시는 유다로 오지 못했다. 바벨론의 강성함 때문에.


2. 유다 왕 여호야긴에 대해서

  1) 여호야긴의 나이 18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림.

  2) 그의 어머니는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3) 여호야긴도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4) 바벨론의 침공

   (1) 바벨론 왕 여덟 째 해에 바벨론이 올라와서 유다의왕과 신하들이 끌려옴

   (2)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다. 

   (3)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버림.

   (4) 비천한 자만 그 땅에 남게 됨.

   (5)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권세자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다. 용사 7000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1000명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다. 

  5)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의 숙부(요시야의 아들)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시드기야라 함.


3. 유다 왕 시드기야에 대해서

  1)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간 다스림. 

  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름.

  4) 시드기야가 나중에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내 표현으로 바꾸어 정리합니다.]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워진 여호아하스는 석달만에 애굽 왕 느고에 의해서 잡혀가고, 애굽은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김은 친애굽적인 왕이었으나, 바벨론이 침공으로 어쩔 수 없이 바벨론을 섬기게 된다. 3년을 그렇게 섬기다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으로 돌아서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게 된다. 결국 유다는 큰 피해를 입고 만다. 


이와 같은 사건을 성경기자는 하나님이 유다에게 내린 재앙이며 예언하신 바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평가했다. 특히, 므낫세의 죄가 너무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를 사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국제 정세적으로는 이때부터 애굽의 영향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여호야김이 죽자 유다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긴은 석달 밖에는 다스리지 못한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유다의 왕인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지 그리고 신하들, 용사와 장인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다. 그리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운다. 그리고 이름을 시드기야라고 바꾼다. 이로 인해 엘리트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유다 땅에는 비천한 자만이 남겨졌다.


시드기야는 11년간을 통치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하지 못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신함으로 바벨론의 미움을 받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도 한계를 느끼셨다.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4절)


우리 하나님도 한계(?)가 있으시다는 말이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인내가 무궁하시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용서에도 한계가 있음이 분명히 언급되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인내와 사랑의 크기는 우리의 모든 죄를 넘어서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없이 끝없이 그리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방종으로 치닿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참으심을 무시하듯 행할 때, 하나님은 그 용납의 한계를 정하시고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신다. 유다의 상황이 그랬다. 그리고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과 내일 살펴보게 될 왕하 25장의 내용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시지만 방종을 방관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용납하시지만 무시를 받거나 조롱을 받는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지만, 쉬운 분은 아니신 것이다. 그분의 자비를 개선의 기회로 잡지 못하고 방종으로 행하고, 그 분의 선하심을 은혜와 감사로 알지 못하고 쉽게 여길 때 하나님은 모든 자비와 용납과 선하심을 거두시고 그들의 오만 방자함에 진노의 잔을 쏟으신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으로 한계를 느끼게 끔 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계를 느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참담한 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선하심을 무시하셨는가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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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3장] 판을 새로 짜려면 요시야 왕처럼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너무 늦지 않게 전면적인 새판을 짜야 하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 왕 요시야가 행한 개혁1: 우상과 산당을 제거함

  1) 요시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왔다. 

  2) 왕이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그들을 모아 언약책을 읽어주었다. 

  3) 왕은 여호와 앞에서 다시 여호와와의 언약을 지킬 것을 요청하자 모두 따르기로 함.

  4) 대제사장 힐기야와 부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성전과 유다,이스라엘의 우상과 산당을 없앰.

   (1)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을 성전에서 꺼내 불사름

   (2)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운 우상과 산당 숭배자들을 모두 폐하였다. 

   (3)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성전 가운데 있던 남창의 집을 헐었다. 

   (4)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들을 불러 모으고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더럽히고 험.

   (5) 왕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몰록에게 자녀를 드리지 못하도록 함.

   (6) 유다 여러 왕들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림. 태양 수레를 불사름.

   (7)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요시야 왕이 다 헐고 빻아 가루를 만들어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림.

   (8)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산당(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 훼손시킴.

   (9)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산당을 불사르고 아세라 목상을 불사름.

   (10) 주변 무덤에서 해골을 꺼내 벧엘 산당을 훼손하려고 할 때, 옛날 여로보암의 벧엘 산당을 지적하기 위해 왔던 하나님의 사람(왕상 13장)의 묘는 그대로 두었다. 

   (11) 이스라엘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 여호와를 격노케 한 산당을 요시야가 제거함.


2. 유다 왕 요시야가 행한 개혁2: 유월절을 지킴

  1) 왕은 언약의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함.

  2) 요시야 왕 18번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킴. 

  3) 사사시대 이후로 이와 같이 유월절을 지킨 왕은 없었다고 기록함.


3. 유다왕 요시야의 개혁의 정리

  1) 유다 땅와 예루살렘에서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함.

  2) 이는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고 함이었다. 


4. 유다 왕 요시야의 개혁에도 유다의 멸망은 돌이킬 수 없었다. 

  1)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2)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었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리라. 내가 택한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다.


5. 요시야의 죽음

  1) 요시야 왕이 당시에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올라오는 것을 막고자 나서다가 므깃도에서 죽게 됨

  2) 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장사를 치르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다. 


6. 유다 왕 여호아하스에 대해서

  1) 23세의 나이로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석달간 통치함.

  2)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3) 바로 느고가 그를 왕 위에서 폐위시키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움.

  4)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가서 그는 거기서 죽게 된다. 

  5) 여호야 김은 애굽의 명대로 돈을 주기 위해 백성으로 은과 금을 정하여 징수하였다. 

  6)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되었고, 11년간 통치하였다. 

  7) 여호야김은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한 것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서술]


유다 왕 요시야의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요시야 왕은 본격적인 개혁을 시작하기 전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을 불러 모아 성전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서 찾은 율법책을 읽어주고,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맺을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모든 지도자들을 그렇게 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나서 요시야는 대제사장 힐기야와 부제사장들을 불러 모아서는 유다 지역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도록 시킨다.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아세라 신상도 끄집어 내여 불태웠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전역에 있던 제사장들을 통해서 산당들을 제거하도록 시킨다. 심지어 이스라엘 지역인 벧엘 산당까지 가서 벧엘 산당을 제거하고 훼손시킨다. 요시야는 유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있던 산당(여호와를 격노케 한)을 완전히 제거한다. 


그리고 나서 요시야는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한다. 요시야는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켰는데, 이와 같이 유월절을 지킨 것은 사사시대 이후 요시야와 같은 왕은 없었다고 한다. 


요시야의 개혁은 한 마디로 모든 이방 종교와 우상, 잡다한 점쟁이, 신접한 자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개혁이었으며, 이와 같은 개혁은 성전에서 찾은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고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완전한 개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와 결정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므낫세 때에 하나님을 격노케 한 죄가 너무 컸기에 하나님은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이스라엘처럼 물리치시겠다고 하신다. 택한 성 예루살렘도, 내 이름을 두리라고 말한 성전도 버리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후 요시야는 애굽의 바로 느고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가던 길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만다. 이로 인해 신하들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우나 여호아하스는 3개월 만에 애굽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잡혀가 죽고 만다. 애굽은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김은 11년간을 통치하는데 애굽의 정한 액수의 돈을 주어야 했다. 여호야김 또한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을 행한 왕이었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요시야의 개혁은 집중력있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요시야의 개혁의 특징은 이전의 왕들이 하지 못했던 것까지 했다는 것이다. 모든 우상과 잡다한 이교의식까지 제거했다. 그리고 이전의 왕들은 감히 하지 못한 전역에 있는 산당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 요시야 개혁의 집중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요시야의 개혁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포함한 광범위한 개혁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한 상태였지만, 요시야는 이스라엘 지역에 있던 벧엘(물론 유다와 인접해 있던 지역이지만) 산당까지 정리했다. 여로보암 이후로 어떤 왕도 정리하지 못했던 벧엘 산당을 남유다의 요시야 왕이 제거한 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악과 더러움의 제거는 일부만 해서는 안된다. 청소할 때 완전하게 청소를 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작은 죄와 더러움에서 곰팡이가 생기고, 세균이 자라 결국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전의 왕들은 개혁을 하긴 했더어 요시야와 같이 완전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우리 우리 자신을 바꾸고, 내 가정을 바꾸고 주변을 바꾸려면 전면적인 조정을 감행해야 한다. 약간의 보수, 약간의 수정으로는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때론 완벽한 탈바꿈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까지 엄격할 필요가 있고, 작은 것이라고 넘겨서는 안된다. 개혁은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도 개혁을 단행해야 할 때가 왔다. 년 말이고 이전의 모습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취약함이 집중력.. 완벽성... 작은 것에서까지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집중력과 완벽성. 이것이 이젠 필요하다. 


주여 나로 요시야와 같이 거듭나게 하소서.


2. 요시야의 완벽한 개혁도 므낫세의 완벽한 악을 넘지 못했다.


하나님은 요시야의 개혁이 거의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전에 므낫세의 죄악이 너무 크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격노하심이 너무 커서 요시야의 개혁이 대단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신다.(26,27절) 하나님은 유다를 이스라엘 처럼 물리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택한 성 예루살렘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리라 한 성전도 버리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개혁에도 때가 있는듯 하다. 개혁은 언제나 일어나야 하며 일어날 수 있는 것이겠으나, 그 개혁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그 때가 있는 것이라 보인다. 요시야는 개혁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 때의 한계를 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교회,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언제나 무지와 연약의 자리에서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때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리더는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때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다. 그 때에 따라서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전반기와 후반기가 달랐다. 그는 그 때를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때를 놓치지 않았는가? 아직도 때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조금이라도 희망이 남이 있는 지금 완벽한 개혁을 시작해야한다. 작은 모양으로 흩어져 있는 산당에까지 손을 대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때를 놓치면 요시야가 나와서 소용이 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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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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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장.므낫세 왕] 므낫세는 두 가지 메시지를 준다. 하나는 절대권력에 제동장치가 없을까 생기는 최악의 경우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출애굽 이후부터 지금까지 유다와 하나님과 관계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으로 유지된 것이었음을 밝혀준다. 므낫세는 그 인내의 한계점을 보여준 인물이다.  

 

[정리1. 내용을 객관적으로 정리]

 

1. 유다 왕 므낫세 왕의 악행에 대해서
  1) 20세에 왕이되어 55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함. 그의 어머니는 헵시바.
  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전에 좇아낸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함.
   (1)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움
   (2)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3)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겼다. 그것도 여호와의 성전에다...
   (4)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
   (5) 여호와의 이름을 두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아세라의 목상을 세워놓음
   (6)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고, 백성들은 므낫세의 꾐을 받아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므낫세에게 말씀하신 내용
   (1) 유다 왕 므낫세의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전에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악하다.
   (2)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씻어버릴 것이라.
   (3) 나의 백성들 중에 남은 자들(유다)을 버려 원수의 손에 넘겨 모든 원수의 노략거리가 되게 하겠다.
   (4)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4) 므낫세는 이와 같은 종교적인 악행 뿐 아니라,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
  5) 므낫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있고, 그가 죽고 아들 아몬이 왕이 됨.

 

2. 유다 왕 아몬에 대해서
  1) 왕이 될 때의 나이는 22세, 예루살렘에서 2년간 다스림. 그의 어머니는 므술레멧이요.
  2) 아몬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와 같은 악을 행했다.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했다.
  3)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했다.
  4)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였다.
  5) 국민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세움.
  6) 아몬의 남은 사적은 유대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됨.

 

[정리2. 내용을 개인화해서 정리]

 

유다가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로부터의 위협을 이겨 북이스라엘과 같이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스기야가 깨어있음으로 앗수르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의 모든 개혁을 원점으로 돌렸을 뿐 아니라, 더욱 악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웠고, 이방의 우상을 가져왔다. 아합의 때와 같이 바알을 섬겼고, 아세라 신을 섬겼으며 일원성신을 섬기기도 했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도 했고, 점치며 사술을 행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세우기도 했다. 므낫세는 왕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일삼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하나님은 이제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그 기준을 가지고 그대로 유다에게 행할 것이며 완전히 씻어버릴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원수들의 조롱거리와 노략거리가 되게 하시겠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므낫세를 계기로 그 동안 담고 있으셨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므낫세에 와서는 결국 폭발한 것이다.

 


그의 아들 아몬은 2년간 통치한다. 아버지 므낫세의 통치와 달라진 것은 없다. 므낫세와 같이 악을 행한 왕으로 기록된다. 결국 신하들에 의해 죽고 국민들은 그의 아들 요시야를 세운다.

 

 

[정리3. 내용을 통한 묵상과 적용, 주관화]

 

1. 장기간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 므낫세

 

므낫세는 왕이 되어 55년을 통치한 왕이다. 역대 이스라엘의 왕 중 가장 오랜 통치를 한 왕이다. 55년을 통치했다는 것은 그의 평가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는 매우 강력한 권력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반증으로 보여준다. 무력하면서 악을 행했다면 결국은 반대자들에 의해서 혹은 자신이 키운 신하들에 의해석 배신을 당할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55년 동안이나 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이 막강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강장 악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29년간 이루어 놓은 개혁을 한 순간에 다 수포로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의 정확하게 반대되는 정책들로 나라를 이끌었다. 아버지가 버린 모든 우상을 다시 다 가지고 들어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를 참으실 수 없을 만큼, 므낫세는 하나님의 심기를 매우 분편하게 했던 왕이다. 그동안 베푸신 인내와 자비를 모두 무색하게 만드는 악행을 행했고, 결국 하나님은 므낫세 때에 유다를 완전하게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가장 오랜 통치를 했던 므낫세의 통치가 이와 같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므낫세 한 사람의 문제만은 아닌듯 하다. 누군가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그 권력이 견제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발생하게 마련이고, 아니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므낫세 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조차도 그의 마지막 임기 때에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장기간 지속되는 절대권력 앞에서 균형을 잡고 초심을 잃지 않기란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권력을 가진자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이는 겉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닷는다. 그 때는 아무도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죽이지 않는한 말이다.

 

대통령의 임기제를 생각한다. 훌륭한 대통령이 들어선다면 임기를 더 연장해서 대통령 직무를 더 수행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재임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좋은 방법인듯 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대통령, 아무리 좋은 왕이라고 할찌라도 권력을 집중하여 견제할 수 없도록, 임기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빠른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어야 하듯이, 권력에는 언제나 멈춰 세울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에 대한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감리교회가 세습반대 법안을 통과시켰고, 한기총 회장을 역임한 목사는 자기 아들에게 급하게 교회를 세습시켰고... 대형교회로서는 처음으로 무리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한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전 자신이 무리하게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시킨 것을 후회하는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교회의 목사도 이와 같은 부분에서 더욱 깨어있지 않으면 끝이 좋지 않은 결말을 보게 될 것이라 본다.

 

2. 므낫세는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의 한계점을 보여준 왕

 

하나님은 므낫세의 악행에 치를 떠셨다. 그리고 그의 악행을 통해서 그 동안 묵혀 두고 있던 내면의 상처(?)를 유다에게 쏟아 내셨다.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15절)

 

사실 그 동안도 유다가 이쁘고 괜찮아서 관계가 유지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이 백성들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들이 악을 떠나지 않는 것에 대한 진노가 한 순간도 없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다윗의 시대에 조차도.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은 참고 인내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면서 견디어 오신 것이다.

 

그러다가 므낫세를 만나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므낫세는 유독 악한 왕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한 심판의 기폭제와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므낫세와 같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동안 우리가 하나님과 잘 지내온 것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괜찮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오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구원하신 순간부터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때문에 분노를 느끼신다. 우리에게 진노를 쏟을까 하는 충동을 늘 느끼신다. 그러나 그 분의 인내와 자비가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것을 간과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계의 평화의 근거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있고, 십자가의 진노에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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