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선교한국 2016대회 브로셔를 한 페이지씩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ㅎ



일단 이번 선교한국 대회의 공식 명칭은 <선교한국 2016 대회>입니다. 영문명으로는 MISSION Korea 2016 이고요. 올해가 15회 청년학생 선교대회니 2년 마다 열리는 것을 생각하면 선교한국 대회의 역사가 28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30년 아닙니다. ㅋ 이거 헷갈리시는 분은 수학공부를? ㅋ)

대회 일정은 2016년 8월1일(월)-8월6일(토) 5박 6일간 진행됩니다. 길죠? ㅋ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길수 밖에 없습니다.

장소는 <세종대학교> 입니다. 서울입니다. 선교한국 대회가 지방을 돌다가 16년 만에 다시 <서울>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한국 대회를 참석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선교한국 조직위원회에서도 이번 대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많은 단체와 교회에 소개되고 많이 참석해서 선교적 부흥을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숙소>입니다. 선교한국 대회의 악명(?)높은 것 중에 하나가 숙소지요. 숙소가 열악하고 무더운 날씨에 이동거리가 많아 참석자들을 많이 힘들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놀랍게도 <최상의 숙소>를 제공할 수 있을듯 합니다. 세종대와 인근 대학의 기숙사를 연계해서 숙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동거리나 숙박 환경은 매우 좋아졌습니다. 선교한국도 더 이상 참석자들이 열악한 환경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서 선교한국 대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숙박을 보장하는대신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선교한국 조직위원들도 고민끝에 참가자들의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좀 더 쾌적한 숙박을 제공하자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기숙사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숙박과 관련하여 추가비용이 발생함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서울에 거주공간을 스스로 마련하실 수 있는 분들은 통근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이번 선교한국 2016대회의 주관단체는 죠이선교회 입니다. 선교한국 88대회(응팔대회?)가 죠이선교회 30주년 선교대회에서 발단이 되어 시작된 대회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 ㅋ 지난 2002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가 세번째 죠이선교회가 주관하게 된 대회입니다. 워낙 큰 대회이고 무게감있는 대회라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만 큰 책임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섬기기로 했습니다. 섬기는 저희도 기쁨으로 섬기지만, 참석하시는 참가자 분들에게도 죠이선교회가 섬김으로 인해서 <기쁨>이 배가 되는 대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선교한국 대회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는 <연합>입니다. 학생선교단체, 해외파송단체, 지역교회 등 43개 단체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연합을 대회를 운영해 왔고, 지금까지 그 연합의 정신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주인의식은 가지되 주인노릇은 하지 말자는 정신이 지금까지 선교한국 대회를 지속되도록 했고, 지난 28년간 한국교회에 선교적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 역사적인 대회가 올해 15회를 맞게 되어 준비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고 참여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이제 1차 예비 등록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월 2일(수) 등록을 시작합니다. 
www.missio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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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한국 2016대회 조직위원장 김수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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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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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골짜기에서 만나는 샘

글: 김수억 대표


2016년 새해에 들어갈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5년 마지막 달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 날을 말씀드리기 전에 지나간 날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2015년은 제가 죠이선교회 대표가 되고 처음 맞는 해였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일 수밖에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죠이 간사로서는 누구못지 않게 익숙하지만, 죠이 대표로서는 초짜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현직에 있는 간사로서는 누구도 이 길을 가본 경험이 없기에 대표 역할을 수행하는 여정 속에서 겪어야 할 무게는 고스란히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공동체를 따듯하게해 보겠다고, 그간의 공동체적 숙제를 속 시원하게 풀어 보겠다던 의욕은 초짜의 섣부른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시간이었습니다. 대표로서 더 지혜롭고 더 치밀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많은 부분 의욕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를 만들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고통 속에서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기가 죽어 있을 즈음에 시편 84편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6절)라는 말씀을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저는 많은 샘이른 비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제주에 살고 있는 동기 목사에게 뜸금없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죠이선교회 본부 주소를 알려달라고. 귤을 샀는데 제가 생각나서 죠이로 몇 박스를 보내 주겠다고 말입니다. 죠이와는 연관도 없고 제 처지와 낙심을 알 수도 없는 그 동기 목사의 문자에서 격려의 샘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오후에는 연차가 어린 간사 한 명이 제 방을 찾았습니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메모가 적힌 작은 엽서히트텍이었습니다. 생일날에 드렸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하다며, 그래도 꼭 전해드리고 싶었다며 15일이나 지난 제 생일을 챙겨 주었습니다. “따듯한 겨울 보내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고요. 정말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오후 4시쯤 제 이메일로 온 한 후원자의 답신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2015년 11월말에 보낸 제 기도 편지 마지막 부분에 대표로서 추가적인 사역을 위해 3천만 원을 모금해야 한다고 기도 부탁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 편지를 보신 후원자(죠이어 목사님)께서 마음이 뜨거워졌다며 성도 두 분(전교인)과 함께 논의하여 50만 원의 후원금을 보내겠다는 이메일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많은 샘이고 이른 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날 제가 얻은 것은 도 아니고, 히트텍도 아니고 50만 원도 아니었습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이었고, 내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죠이선교회 대표로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담력이었습니다.


다윗도 처음부터 골리앗을 상대할 수 있는 담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의 양을 치면서 자신의 힘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설명밖에 할 수 없는 작은 경험을 누적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은 다윗에게 많은 샘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이른 비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의 누적이 골리앗 앞에 설 수 있는 담력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새해에는 많은 샘이른 비가 있음을 믿고 눈물 골짜기의 여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힘있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 죠이선교회의 2016년 여정에 많은 샘이른 비가 되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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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넌 도대체 누구냐?

글: 김수억 대표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학’이란 것도 결국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과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하실 것인가)를 아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그 본질을 강조할 때,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빌어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上)라는 말씀으로 표현하곤 한다.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이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이해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성경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듯 하지만 하나님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 요나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받는 선지자다. 요나가 ‘모세오경’과 같은 당시 가장 핵심적인 ‘신학서적(?)’은 일찌감치 마스터했을 터, 신학적인 기본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게다가 요나서를 보면 요나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와 더불어 그 지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까지도 분명하게 파악해 내는 능력이 있는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욘 1:2)라는 말씀 하나만 듣고도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았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그렇다. 요나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아는 자였다. 그러나 요나서는 흥미롭게도 하나님으로부터는 가장 엇나가는 인물이 요나임을 알려 준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은 심각한 죄인이라 할찌라도 ‘그 생명을 살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물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죄에 대한 심판을 기본 법칙으로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만 있다면 그 기본 법칙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인간을 대하기 원하신다.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하와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하와” 곧 “모든 산 자의 어머니”(창 3:20)라는 이름을 부여하심으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신다. 또한 유다의 죄로 인해 결국 유다라는 나무를 베어 버리기로 작정하셨으면서도, 그루터기는 남겨 놓으심으로 ‘생명의 지속성’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고전 15:45)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되고 있다. 

반면 요나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법칙에 갇힌 선지자였다. 심지어 요나는 하나님조차도 그 법칙 안에 가두고자 했다. 그 법칙을 넘어 ‘은혜를 베풀고, 자비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칙’으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요나의 합리성이었다. 그 합리성의 결과는 ‘내 자신이 죽어서라도 니느웨를 죽여야 한다’는 ‘죽이는 합리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너무 잘 안다고 확신했던(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할 정도의 확신) 요나는 결국 하나님의 대척점(對蹠點)에 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절망하게 만드는 인물이 되고 만다(욘 4:10-11).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확신했던 사람이었고, 그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은 정죄를 받았다. 심지어는 예수님조차도. 바리새인, 그들은 또 다른 요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대에도 요나는 존재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는 발 빠르지만, 그들을 살리기 위해 ‘작은 은혜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오늘의 요나인 것이다. 자신은 그와 같은 논리가 “합당하다”(욘 4:9, 개역한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은혜 아래 구속받은 백성들에게는 ‘바리새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 가고 신앙하는 우리 자신을 향해 묻는다. “넌, 요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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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복음적 삶’이다.

글: 김수억 대표


신약 성경에는 빌레몬서가 있다. 사실 있다지만 ‘없는 듯’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 서신 중 가장 적은 분량인 한 장이라 우연히라도 보기 힘든 책이기 때문이다. 종종 설교 본문이 빌레몬서일 경우 색인의 도움으로 찾을라치면, 영락없이 ‘빌레몬서’가 아닌 ‘빌립보서’가 나오고 만다. 빌레몬서의 약자가 ‘빌’이 아니라 ‘몬’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지만, 그도 이내 잊는다. 빌레몬서는 성경에서 ‘오래된 단역 배우’처럼 그 존재감이 약하다.

빌레몬서는 내용면에서도 그렇다. 보통 신약 성경의 다른 책들은 예수님의 생애나 교회의 확장,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가지는 복음의 의미를 해석하는 등 교회를 위한 중요한 주제들을 주로 다룬다. 그러나 빌레몬서는 다르다. 지극히 개인적인 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문제를 다룰 뿐이다. ‘바울이 빌레몬을 향해서 오네시모라는 종을 용납하고 받아들여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빌레몬서의 내용이다. 매우 개별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내용인지라 빌레몬서가 ‘정경’으로 인정된 것이 어색할 정도다.


그러나 빌레몬서를 찬찬히 읽다 보면, 빌레몬서의 ‘내공’을 발견할 수 있다.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의 잘못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라는 바울의 권면 속에는 ‘대속’, ‘회복’, ‘환대’라는 굵직한 복음적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불의를 행해 빚진 것이 있다면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바울 자신이 대신 갚겠다는 것(18절, 대속)에 있어서나 오네시모를 마지못해 받아 주는 척 하지 말고 잘 받아 달라고 요청한 점(17절, 환대) 그리고 오네시모는 종에 불과한 존재였지만, 이제 주님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로 영접해 달라(16절, 회복)는 면에 있어서 그렇다. ‘대속’, ‘회복’, ‘환대’라는 복음의 진리가 바울의 개인적 태도를 다룬 빌레몬서에 완연하게 묻어나고 있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오히려 빌레몬서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울의 복음적 삶이 온 우주의 복음적 진리와 맞닿아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라는 지극히 개별적 현상이 온 우주의 원리인 만유인력의 법칙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복음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이르게 되고 확대되었는가? 개별적 삶을 통해서 전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수의 복음적 삶은 바울에게 복음을 심어 주었고, 바울의 복음적 태도는 빌레몬에게 복음을 각인시켰던 것이다. 훗날 오네시모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빌레몬의 복음적 삶은 오네시모에게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렇게 복음은 성도 개인의 복음적 삶을 모태 삼아 확장되었고, 교회는 종이라는 신분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 갔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제도 혹은 교리의 문제인가? 아니면 도덕과 윤리의 문제인가? 이런 것들은 세상에 합리성과 명분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감동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거대 담론이 배제된 개인화된 신앙이 문제인가? 앞에서 살펴본 관점으로 빌레몬서를 본다면 그것도 아니다. 바울의 개인적인 태도 속에 ‘우주적 복음’이 녹아 있고 그것이 전 우주에 영향을 미치듯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복음적 삶에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치 룻과 보아스의 개인적 사랑과 신의 속에서 ‘다윗’이 나오고 ‘이스라엘 왕국’이 형성되며,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듯이 말이다. 문제는 개별적 성도들의 ‘복음적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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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에서 ‘표적’으로

글: 김수억 대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 기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이 나온다. 예수님이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신 사건이다. 그러나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만을 강조하려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오병이어 기적을 언급하기 전과 그 기적이 마친 이후의 묘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요한이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오히려 여기에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오병이어 기적 이전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다고 언급하고 있다(요 6:2).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좇은 이유는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miraculous signs)’을 봤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 표적이란 아마도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를 고친 것과 같은 치유의 기적일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많은 무리는 여전히 예수님을 찾는다(요 6:24).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표적(miraculous signs)’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26절) 그를 임금 삼으려는 마음에서였다(15절). 아쉽게도 예수님은 표적(miraculous signs, 요 6:2, 26)을 보이셨으나, 무리는 ‘기적(miracle)’을 보는 데 머물렀던 것이다. 육으로 난 자인 자연인이 가지는 한계가 바로 이것이다. 영적인 것(표적)을 보고도 육적인 해석(기적)밖에는 해낼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무리 지어 예수님을 좇았지만, 예수님은 이내 난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로 이들을 돌려보내셨다.(요 6:66).


전도가 힘들어지는 현 시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뭔가 ‘화끈한 기적’을 보여 주시면 사람들이 여기에 굴복해서 교회로 찾아올 것이고 당연히 믿음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래서 믿은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내 곧 무능한 하나님, 변덕쟁이 하나님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고 ‘더 확실한 기적’을 제공하는 우상을 찾아 자신의 하나님을 삼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만으로는 무지한 인생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한다. 기적이 지향하는 바 곧 표적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비로소 빛을 보게 되고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죠이선교회 사역은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서 어떤 사역이 되어야 할까? ‘기적’을 자랑하는 단체가 아니라 ‘표적’으로서 “생명의 떡 되신 예수”를 드러내는 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죠이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요구한다. 아니 내 안에서부터 큰 함성으로 외치는 소리가있다. 죠이선교회가 한국 교회 안에서 ‘기적’이 되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 되어야 한다. 기적은 육을 지향하고 표적은 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에 불과한 것이다. 죠이 스피릿에서 예수님을 첫째로 둔다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우선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죠이선교회의 모든 사역이 예수를 지향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죠이를 통해서 배출하는 죠이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참된 죠이어란 예수를 우선에 두는 죠이어이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를 지향하는 죠이어를 말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만이 육의 생명을 거듭나게 하사 영의 나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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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신앙 속으

글: 김수억 대표


요한복음 2장 13절 이후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이 나온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본인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과격한 행동’으로 성전을 혼란케한 사건으로 예수님의 생애 중 특이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요한이 요한복음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은 초입에 성전정화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격한 행동을 통해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도(메시지)를 엿볼수 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찾아오신 예수님’이라는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요한복음은 ‘빛이신 예수님이 어두움을 찾아오셨다’(1:5)는 선언으로 메시지의 포문을 열고 있다. 그 시각으로본다면 성전 정화사건은 ‘거룩하신 예수님이 세속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찾아오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 예수님이 성전의 세속성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예수님은 절기를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 돈 바꾸는 사람들을 봐왔다. 예수님 시대의 성전 장면이 이전과 달리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상할 것이 없을만큼 세속적으로 변해’버리고, ‘장사꾼들의 소굴’처럼 타락한 성전을 향해 일성을 발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중대한 결단을 하기전 현충사를 찾아가는 정치인들처럼 예수님은 본격적 사역을 시작하면서 성전을 찾아갔고, 더럽혀진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행동을 통해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 비판을 받아 경각심을 얻고 오히려 새롭게 될 수 있다면 그 비판마져도 은혜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비난과 질타는 있지만 내부적 반성과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 한국 교회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부끄럽기도 한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두 패로 나뉘어지는 것 같다. 세상의 질타와 비판에 대한 소리를 ‘사단의 계략’이라 치부하고 아예 귀를 닫고 자신의 신앙만을 곤고히 하려는 무리와 세상의 질타와 비판을 마치 ‘하나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 제도적 신앙으로부터 이탈하는 무리로 말이다. 한 무리는 교회를 ‘무조건 지켜내야 할 대상’으로 보고, 한 무리는 교회를 ‘사랑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찾아오셨다. 그 빛은 이미지와 영으로서가 아니라 ‘실체’와 ‘몸’으로서 불순물로 가득한 이 땅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속’으로 가득하고, ‘장사꾼’으로 넘치는 성전 속으로 찾아 들어오셨다. 세속에 물든 무리들은 세속화된 성전에서 안정감을 누리며 하나님과 거래하는 삶을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갔다. 그러나 세속화된 성전과 타락한 제도적 종교를 거부했던 무리들은 세속화된 성전에서는 희망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다. 그러나 빛이신 우리 예수님은 ‘더럽혀져 장사꾼의 소굴이 된 성전’ 속으로 찾아오셨다. 왜일까? 


어떤 신앙인은 말한다. “당신은 아직도 교회에 머물러 있는가?” 이 말은 아직도 더럽혀진 교회에서 희망을 찾고, 신앙적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이다. 그 의도를 모르지 않기에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부끄러운 교회가 ‘나’이기에 나는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여전히 그 세속적이고 타락한 교회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이 성전임을 후에 알았다.(요 2:21) 예수님은 부끄러운 성전에 동화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셨다. ‘그 안으로’ 들어가 새롭게 하려고 하셨다. 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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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이선교회를 위해, 죠이선교회를 통해 그리고 싶은 그림


글: 김수억 간사


[간략한 소개]

저는 96년에 서울서지부(지금의 경인,서부,원주)에서 캠퍼스 간사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국민대와 상명대 인천대에서 사역했고, 그 이후 수원개척지부 대표로 사역하면서는 아주대와 경기대 등에서 개척사역을 했습니다. 당시 신학(합신) 공부도 겸했습니다. 그 이후 3년간 경인지부 대표를 하면서 인하대 사역을 했고, 서울서지부 대표로 옮기면서는 2년간 이화여대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는 제가 담당했던 마지막 캠퍼스가 되었고 2009년부터는 2년간 학원사역부 디렉터(지금의 간사훈련원, 해외사역부)로 섬기며 행정 사역을 했습니다. 그 이후 1년간의 휴직을 거쳐 2012년에는 제자훈련학교 소속 간사로 복직했고, 2013년부터는 사역연구소 소장의 일을 맡아 2014년까지 2년간 섬기게 되었습니다. 2008년 죠이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죠이회관을 리모델링할 때, 죠이출판부 간사들과 함께 6개월간 한 사무실에서 일한 것까지 고려한다면 저는 지난 19년 동안 ‘법인사무국을 제외’하고 모든 부서를 깊이 혹은 부분적으로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표가 되어 법인사무국과 긴밀하게 일하게 되었구요.

가족으로는 아내(죠이어인 정연)와 아들(고2, 현빈), 딸(중3, 세빈)과 함께 부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부천에 있는 중동교회(예장 합신, 담임목사 김태준)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죠이선교회를 위해, 죠이선교회를 통해 그리고 싶은 그림]


저는 2014년 8월 이후 이사회를 통해 죠이선교회의 차기 대표로 공식적으로 내정되고, 지난 5-6개월 동안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가 대표로서 죠이선교회를 위해서 또한 죠이선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 지면을 통해서 간략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세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죠이선교회 내부적으로 따듯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합니다. 어떤 분들은 대외적인 사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오히려 내부적인 결속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매우 위축되어 있습니다. 대학생 사역인 캠퍼스 선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는 사역자들 바로 캠퍼스 간사들입니다. 노력과 수고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역의 열매가 쉽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면에서뿐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비가 내릴 때, 비를 피해 잠시 쉴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공간에 남아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나가 일하기 위해서 잠시 비를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파가 몰아치는 추위를 장기간 견디기 위해서 잠시 몸을 녹이는 공간이 필요하듯이, 지금 죠이선교회 공동체는 사역자들이 비를 피해 때를 기다리도록 돕고, 추위를 피해 다시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돌고 돕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죠이선교회가 본부 차원에서 이들을 격려하고, 이들을 돌아보고 있다는 것은 느끼도록 해주고 해주고자 합니다. 모일 때마다 따듯함이 묻어나오는 모임과 예배가 되기 위해서 기도할 것이고, 이전보다는 더 현장 사역자들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소한 것이겠지만 작은 노력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명절에는 소액의 ‘떡값’이라도 드리려고 하고 간사들의 다양한 대소사도 챙겨보려고 합니다. 대표가 되어 정기적으로 현장의 간사들을 찾아가려는 것도 그런 의도에서 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이런 일을 시작으로 죠이간사 공동체의 ‘체온’을 높인다면 간사들은 건강해질 것이고 밝아질 것입니다. 간사들의 영적, 정서적 건강이 캠퍼스를 비롯한 현장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둘째는 죠이선교회가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도록 하려 합니다. 감사한 일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죠이선교회는 2016년 선교한국 대회이 주관 단체가 되었습니다. 죠이의 대표는 당연직으로 ‘대회 조직위원장’이 되고, 또한 ‘대회 준비위원장’도 죠이에서 맡게 됩니다. 선교한국 대회와 관련하여 죠이선교회가 대외적으로 드러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대표 첫해부터 큰 대회의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되어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서 죠이선교회의 체질이 다시 한번 선교적 공동체로 변화되길 기대합니다. 또한 선교한국 2016년 대회를 잘 치루어서 한국 교회와 선교계에 죠이선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해외선교단체와의 협조와 국내 지역교회의 후원을 이끌어내는데도 중요한 자원이 되리라 봅니다. 

죠이는 올 해로 창립 57주년이 됩니다. 따라서 오랜 시간을 전문분야에서 사역해 온 경험과 컨텐츠가 지역교회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죠이출판부에서 출간하는 책과 더불어 제자훈련학교에서 하는 제자훈련과정도 오랜 시간 여러 사람들을 통해 검증된 귀한 프로그램입니다. 수년 전부터 지역교회(일산 거룩한 빛 광성교회)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죠이제자훈련과정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매우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더불어 죠이에서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해오면서 쌓아온 성경프로그램을 죠이동문들과 교회에도 오픈한다면 ‘건강한 교회관을 가진 죠이성경공부 프로그램’은 지역교회 성도들에게도 큰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죠이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복음수양회’는 동일하게 지역교회 청년대학생들에게도 복음을 통해 새로워지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훈련원에서 간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정기적인 ‘다면진단평가’는 타단체와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도 잘 활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죠이선교회가 이미 가지고 있는 컨텐츠를 잘 다듬고 가공한다면 수년 내에 한국 교회 성도와 다른 단체를 도울 수 있는 귀한 내용을 갖추리라 봅니다. 


셋째는 죠이선교회를 거쳐가는 ‘사람들을 키우는 조직’이 되도록 하려고 합니다. 제가 사역연구소 소장을 하면서 만들었던 블로그의 타이틀이 ‘죠이간사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진다’입니다. 타이틀을 그렇게 짓고 나서, 너무 큰 꿈이라 허황되게 들리기 보다는 오히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더욱 컸습니다. 죠이선교회라는 단체가 크지 않지만, 죠이선교회를 거쳐가는 모든 사역자들은 죠이선교회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익히고, 죠이선교회라는 조직은 그 사역자를 잘 케어하여 성장하도록 돕는 단체가 되도록 하려 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협력 사역자로 오랜시간을 보내면서 죠이선교회가 지역교회와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죠이선교회는 지역교회라는 조직(?)과 일반 조직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매한 것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일반 지역교회 사역자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조직문화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이런 경험은 일반적인 지역교회 사역자들은 경험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죠이선교회 출신의 간사들은 사역 기간에 따라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일반 목회자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조직 문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사역자에게 인격적인 리더십을 개발하는데 매우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기에 체계적으로 잘 훈련되도록 돕는다면, 죠이선교회 출신의 사역자들이 장기적으로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책임져갈 수 있는 일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간사훈련원 내의 인사팀은 ‘다면진단평가’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한 가지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마친다면, 사람을 키우기 위한 재정적인 투입이 필요합니다. 간사들의 재교육을 위한 장학금 지원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다른 지면을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족한 자를 세워주신 하나님과 죠이선교회에 감사하며 이 일에 함께 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한가지만 더 말씀드린다면,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재정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장학기금의 이자를 통해 운영하던 장학금 액수는 국내외에서 신학을 공부하려는 간사들에 비해서 현재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서 고민하며 시작하려는 것이 캠퍼스별 동문회가 한 간사의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방식입니다. 죠이선교회는 장기 사역자로서 신학을 공부하는 간사들에게 1년에 3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이 말은 한 동문회가 1년에 300만원을 마련해 줄 수 있다면 그 동문회의 이름으로 장학생을 선발하여 지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월 25만원의 후원이면 가능합니다. 혼자라면 쉽지 않지만 캠퍼스 동문들이 함께 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월 5만원 후원자 5명 혹은 월 3만원 후원자 8명이면 동문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문회에서 장학생을 한명씩 맡아 준다면 죠이선교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키워낼 수 있고, 더 많은 간사들을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생각은 책상에 앉아서 나온 생각이 아닙니다. 장학금에 대한 필요가 있음을 알렸던 페이스 북의 글을 보고 한 동문이 본부로 장학금 명목으로 800만원으로 헌금해 주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만약 그 후원자의 동문회에서 100만원만 더 해준다면 한 간사의 3년 장학금이 되는 액수고, 그러면 그 간사는 그 동문회의 이름으로 지원된 장학금으로 신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니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안을 처음으로 했던 동문회가 바로 제가 졸업한 인하죠이 동문회였습니다. 인하죠이는 그 제안을 들은 동문 중 한 사람이 100만원을 헌금해 줌으로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동문회를 하기 위해 모았던 돈 60여만원을 합하여 초기 장학금 160만원을 마련학 되었습니다. 이 기금을 시작으로 올해부터 장학생을 1명 선발하고, 매 학기 150만원씩 모아서 장학금을 주자고 결정한 것입니다.

앞으로 동문회별 장학회를 하나씩, 하나씩 확장해 간다면 장기사역 간사들은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그것은 결국 죠이선교회의 사역을 확대해 가는데 장기적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죠이간사들이 한국 교회의 미래에 책임있는 일꾼으로 성장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고 협력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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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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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비(2016.1.24)


제목: 젖 뗀 아이같은 성도

본문: 시편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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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1.10)

제목: 가정을 돌봐주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 127:1-5


 *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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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 예배(20156.1.3)

제목: 성도를 감싸주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 1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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