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_ 오래 사는 법, 오래 살게 하는 법

글: 김수억 대표

 

어릴 적부터 나는 작은 생물이라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 편이었지만 ‘생명의 가치’를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이다. 지금까지 양가 부모님들은 모두 건강하신 편이고 형제들도 건강상 무탈하니 나는 아직 가까운 가족의 임종을 지켜본 적은 없다. 그런데 10년 전쯤 아내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 때 나는 그 갑작스러운 통보 앞에서 비로소 ‘생명’의 크기와 무게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나의 언어가 그 반대 개념 앞에서 의미가 명확해지듯, 생명의 가치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년 전 아내가 암이 재발되어 항암치료를 받던 때다. 날이 좋아 기분전환 겸 아내에게 좋은 공기를 마시게 하려고 함께 충청남도 수덕사를 방문했다. 거기서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관광버스에서 내려 수덕사로 향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밝은 얼굴을 보았다. ‘저 연세가 되어도 건강하게 세상의 좋은 것을 보고 누리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불현듯 올라온 생각에 스스로 놀라며 ‘생명의 가치’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던 2010년 12월, 그 때 우리 나이는 40세였다. 큰 아이는 13살, 작은 아이는 11살. 그 동안 우리는 건강상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았기 때문에 아내의 갑작스러운 결과 앞에 당황했고, 암(癌)이란 낯선 병명 앞에 무력해졌다. 당시 아내는 제법 자란 아이들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나는 사역의 전환점을 갖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불청객과 같은 병은 우리의 의지와 계획을 무장해제 시켰던 것이다. 아내는 7시간의 큰 수술을 했고, 회복을 위해 열흘간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해야 할 최소한의 사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내와 함께 병실에서 생활했다. 아내와 둘이 한 병실에 있으면서 우리는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했고, 적지 않은 추억들을 소환했다. 그 사이 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완화되어 갔고, 우리는 이 또한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갔다.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우리 가족인가?’를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왜 너는 안 되는데?’ ‘왜 너희 가족은 아프면 안 되는데?’라는 당연한 반문 앞에 답할 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왜 하필 나에게?’를 묻지 않듯 우리는 서로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우리가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에 집중했다. 병실에서의 열흘은 아내와 함께 했던 신혼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순전히 ‘서로만을 위해 집중한 시간’을 십 삼년 만에 보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아내는 낮에 직장을 다녔고 나는 저녁에 사역을 하느라 단 둘이 함께 했던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둘이 함께 한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우리는 짧게 산 것이다.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지난 십 삼년의 시간보다 더 긴 열흘을 보냈는지 모른다. 

 

오래 산다는 것, 그것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상대적인 시간이고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나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서 오래 산 존재가 된다. 병실에서의 열흘이 십 삼년의 시간보다 더 길 수도 있듯이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군가를 오래 살게 할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할 때 그 사람과 함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그 방법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오래 살 수도 있고, 누군가를 오래 살게 할 수도 있다. 지금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지금, 오래 살게 하기에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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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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