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넌 도대체 누구냐?

글: 김수억 대표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학’이란 것도 결국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과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하실 것인가)를 아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그 본질을 강조할 때,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빌어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上)라는 말씀으로 표현하곤 한다.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이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이해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성경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듯 하지만 하나님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 요나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받는 선지자다. 요나가 ‘모세오경’과 같은 당시 가장 핵심적인 ‘신학서적(?)’은 일찌감치 마스터했을 터, 신학적인 기본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게다가 요나서를 보면 요나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와 더불어 그 지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까지도 분명하게 파악해 내는 능력이 있는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욘 1:2)라는 말씀 하나만 듣고도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았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그렇다. 요나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아는 자였다. 그러나 요나서는 흥미롭게도 하나님으로부터는 가장 엇나가는 인물이 요나임을 알려 준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은 심각한 죄인이라 할찌라도 ‘그 생명을 살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물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죄에 대한 심판을 기본 법칙으로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만 있다면 그 기본 법칙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인간을 대하기 원하신다.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하와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하와” 곧 “모든 산 자의 어머니”(창 3:20)라는 이름을 부여하심으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신다. 또한 유다의 죄로 인해 결국 유다라는 나무를 베어 버리기로 작정하셨으면서도, 그루터기는 남겨 놓으심으로 ‘생명의 지속성’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고전 15:45)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되고 있다. 

반면 요나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법칙에 갇힌 선지자였다. 심지어 요나는 하나님조차도 그 법칙 안에 가두고자 했다. 그 법칙을 넘어 ‘은혜를 베풀고, 자비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칙’으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요나의 합리성이었다. 그 합리성의 결과는 ‘내 자신이 죽어서라도 니느웨를 죽여야 한다’는 ‘죽이는 합리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너무 잘 안다고 확신했던(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할 정도의 확신) 요나는 결국 하나님의 대척점(對蹠點)에 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절망하게 만드는 인물이 되고 만다(욘 4:10-11).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확신했던 사람이었고, 그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은 정죄를 받았다. 심지어는 예수님조차도. 바리새인, 그들은 또 다른 요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대에도 요나는 존재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는 발 빠르지만, 그들을 살리기 위해 ‘작은 은혜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오늘의 요나인 것이다. 자신은 그와 같은 논리가 “합당하다”(욘 4:9, 개역한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은혜 아래 구속받은 백성들에게는 ‘바리새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 가고 신앙하는 우리 자신을 향해 묻는다. “넌, 요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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