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독후감


오셀로는 계급이 높은 군인이다. 그의 부관을 뽑을 때, 이야고라는 군인을 뽑지 않고 카시오라는 군인을 뽑아 이야고는 카시오와 오셀로 두 사람에게 악 감정이 있었다. 


어느날 브라반시오의 딸이 오셀로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이야고는 복수하려고 그 사실을 브라반시오에게 말해 오셀로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다. 브라반시오는 화가 난 채로 오셀로를 찾았으나 자기 딸 데스데오나도 오셀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결국은 결혼시킨다. 이야고는 그 때부터 치밀한 계획을 짠다. 이야고는 로데리고를 이용해 카시오와 싸움을 벌이게 하여 카시오에 대한 오셀로의 신임을 점차 떨어 뜨리게 만든다. 그 후 카시오와 데스데오나를 친하게 만든 뒤 자기 부인인 에밀리아에게 오셀로가 데스데오나에게 사랑의 증표로 준 손수건을 훔쳐오게 한다. 데스데오나를 충실히 섬기는 에밀리아였으나, 그 손수건이 어디에 쓰일 줄 알지못한 에밀리아는 데스데오나가 실수로 떨어뜨린 손수건을 남편에게 가져다 준다. 이야고는 손수건을 카시오의 집에다 떨어뜨려 논 뒤 오셀로에게 데스데오나가 사시오와 바람을 핀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오셀로도 믿지 않았으나 데스데오나가 손수건을 잃어버리자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야고는 수작을 부려 카시오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꾸며 데스데오나와 바람을 피운다고 오셀로 듣게 만든다. 오셀로는 이야고의 꾐에 빠지고 빠져 결국 데스데오나를 죽이는데 에밀리아의 증언으로 자신이 꾐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슬픔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 만다. 이야고는 아내 에밀리아의 증언으로 잡히고 비극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오셀로가 데스데오나를 향한 그 사랑의 크기는 엄청났다. 바다의 보물 전부를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그녀라고 했을 정도인데, 이야고의 간사한 계략에 빠져 질투와 고뇌 속에 데스데오나를 죽이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오셀로의 사랑이 비극으로 간 주요원인은 이야고의 계략보다 그의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이 문제라고 한다. 그의 기분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어서 그걸 동시에 수용할 줄 몰라 이런 비극이 생기게 되었다는 평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야고는 너무 간사하고 비열한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 넣은 악당이다. 참 슬픈 이야기이면서 사람의 간사함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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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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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의 차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와 시기를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질투 이웃이 지닌 것을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고

시기 자기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다. 


질투는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왜, 저 친구에게는 있는데 내게는 없지? 라고 물으며 무게 중심을 자신에게 둔다.

질투는 때로 상대방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경쟁심을 유발하여 열심을 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반면, 시기는 초점이 상대방에게 있다. 

동료에게 있는 어떤 좋은 것을 보면 단지 그 사실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이다. 

시기는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그저 친구가 잘되거나 좋은 것을 지니고 있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마음이다. 


이 두 단어는 일상에서 비슷하게 사용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둘은 의미가 무척 다르다. 


따라서 시기를 받게 되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자신은 상대에게 어떤 해악을 가한 적이 없는데 단지 상대방의 시기 때문에 함정에 빠지거나, 일방적인 험담과 소문, 중상과 같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화살을 맞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한 시기는 온통 신경과 시선을 상대방 혹은 경쟁자에게 두어 자기의 직무에 몰입하거나 전문성을 계발하는 것에 써야할 건설적인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낭비함으로 자신을 성장하게 하지 못하게 하고 만다. 


 -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 신원하 / p.68-71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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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가 길을 가다 왕을 만났다. 둘 중 한 명은 욕심이 많았고, 다른 친구는 시기심이 많았다. 왕은 두 사람에게 "만약 너희 중에 한 명이 요청하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주겠다. 단, 옆 사람에게는 요청한 것의 두 배를 주겠다."고 말했다. 


왕의 말을 들은 시기심 많은 친구는 먼저 나서서 요구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구가 두 배로 받는 것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욕심 많은 친구도 마찬가지였는데, 자신이 친구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고 도무지 요청하려 들지 않았다. 


기다리던 왕이 부탁이 없으면 그냥 가겠다고 말하자, 시기심 많은 친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임금님, 저의 왼쪽 눈을 빼 주십시오!"


  -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 신원하 / IVP / p. 71,72


시기심이란 자신이 친구보다 더 가질 수 없다고 판단이 되면, 상대에게 더 많은 피해를 주기 위해 자신의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게끔 하기도 한다. 내 눈을 한쪽을 빼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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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을 보면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불신자나 타종교인들이 봐도)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면서 자신의 삶으로 그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에도 부담을 갖지 않을 만큼 보편적인 지혜와 통찰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혀)에 대한 야고보의 가르침과 지혜와 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편적인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물론 이전까지의 기독교적인 독특한 가르침의 배경 속에서 연속적인 지침을 주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공감이 될만한 내용이기에 거부감이 없으리라 본다.

야고보서 2장에서 보여주었던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한 논리도, 기독교의 구원론적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부딪힘이 있는 것 같지만, 일반 상직적인 논리로 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는 것에서도 야고보서가 일반인들에 매우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와 공감이 되는 본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적 이신칭의의 교리와의 긴장감 때문에, 강단에서 잘 다루어지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불신자들 혹은 타교인들을 염두한 설교라면 매우 적절한 본문이 아닌가 싶다.)

그 내용을 보면  

[말의 중요성과 위험성]

오늘 본문은 말을 소재로 하는 권면이다. 특히 선생 된 자로서 말은 매우 중요한데, 말을 그 크기에 비해서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도록 해주는 혀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물의 모든 것이 통제가 되어 길들일 수 있지만, 혀 만큼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혀를 통해 말을 해야 하는 일로서 선생의 일을 사모해야 할 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맡겨지기 때문에> 해야 하며 더불어 맡겨져서 그 일을 하더라도 혀를 잘 제어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혀는 온 몸을 더럽힐 수 있으며,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자랑이나 명예와 같은 생각 속에서 남 앞에서 선생이 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큰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말 잘한다는 이유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이유로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목회자는 어떤 면에서 철저하게 <청빙>에 의해서, 하나님의 부르심 혹은 교회의 부르심을 통해서,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서 설교하는 자리에 서도록 해야 한다. 설교는 매우 소극적인 측면(내가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할 말이 채워지고, 그것이 들려지기를 요청되는 지점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측면에서)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혜, 땅의 지혜 하늘의 지혜]

더불어 시기와 질투를 기초로 하여 자기 자랑이나 타인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그런 지혜는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고, 땅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로서 온 지혜는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 긍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들이다.

시기와 질투를 기초론 한 자기 자랑과 거짓말은 세속적이고 악마적인 것임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내 안에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자는 다른 사람 앞에 서지 말아야 하며, 어떤 말을 하는 것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지혜롭다. 말을 삼가해야 한다.

내 안에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가득할 때, 이 때는 우리 안에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과 긍휼과 같은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상태로서 그런 때에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 지혜롭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건, 어떤 상황 속에서 이 마음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 묵묵부답이 정답이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가득해 지면 조심히 입을 열어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과묵한것이 실수를 덜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이 너무 많으면 제 살을 깎아먹게 된다. 아니 말할 수 없 수 없을 때 조금만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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