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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0절.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절.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절.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절.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절.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절.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절.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심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홀로 계실 때 함께 한 무리와 열두 제자들이 '씨 뿌리는 자' 비유의 의미를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비유에 대해 묻는다. 

  1)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너희(함께 한 무리와 열두 제자)에게는 허락이 되었으나 외인들에게는 비유로 하셔서(직설법을 사용하지 않으심으로)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해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2) 또한 이 비유를 알지 못하면 모든 비유를 어떻게 알겠는가? 반문하심으로 이 비유가 모든 하나님 비밀의 기초가 되는 내용임을 암시하는듯 하다. 

2. 예수님은 비유에서 상징하는 각 대상에 대해 설명하신다.

  1)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따라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예수님의 말씀)이다. 

  2)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으로 말씀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대상을 가리킨다.(이들은 외인들과 유사하다. 이들은 보기는 보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죄사함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다. 막 4:12)

  3)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 곧 넘어지는 자'를 말한다. 

  4)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다. 

  5)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나 백 백의 결실을 하는 자다. 

 => 하나님의 비밀이 담긴 말씀(예수님)은 그 말씀이 뿌려지는 대상의 상태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없을수도, 어정쩡할수도, 큰 열매를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질문하기]

1. 하나님의 말씀(예수님)이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제한을 받는다는 것인가?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인격적인 반응을 하신다는 것인가? 

  이 비유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의 한계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리라 본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무리 하시고자 해도 사람들이 거절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리라 본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뿌려진 씨'처럼 여러 상태의 사람들에게 다 뿌려지고 전달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서 열매와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 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태도와 반응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인격성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2. 네 가지 땅의 상태는 어떤 대상들을 말하는 것인가? 

  1) 길 가에 해당되는 땅: 씨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사탄이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고 만다. 길 가에도 말씀이 떨어지지만 이들은 그 말씀을 받지 않으므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한다. 이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외인이다. 

  2) 좋은 밭: 말씀을 받아 신속히 열매맺는 사람들이다. 심령의 가난함을 가진자며 그 말씀을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던 자들이다. 환난이나 박해를 잘 견딘 사람이며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휘둘리지 않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열매가 생긴다. 

  3) 돌 밭: 말씀을 듣고 표면적인 기쁨을 얻었으나, 내면 깊숙히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함으로 작은 환난과 박해가 있으면 쉽게 돌아서고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4) 기시떨기 밭: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으로 인해 결정적인 순간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만다.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을 막는다' 그래서 열매는 없다. 

3. 왜 씨 뿌리는 자 비유가 모든 비유를 이해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비유일까?(13절)

 앞으로 이어지는 비유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일단 예수님의 말씀(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듣는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전혀 영향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고, 미미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적절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음(열매를 30,60,100배 결실하므로)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기초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묵상하기]

이 비유는 대상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절하는 자들에게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받는 너희들의 마음 밭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너희들이 그런 태도로 말씀을 거절한다면 그들의 완악함이 하나님 나라에서의 '외인'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처음 기쁨을 받고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말씀으로 인해 환난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들은 그 가운데 흔들림이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흔들린다. 그들은 열매가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말씀을 밀어낸다. 이들 또한 열매가 없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들이고 환난과 박해, 염려와 유혹과 욕심을 견디고 이긴 사람들은 '좋은 밭'으로서 반드시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참되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환난과 박해, 염려와 유혹과 욕심의 시험을 잘 통과하고 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그리고 세속적인 욕심이 성도로서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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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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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절.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절.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절.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고침받기를 원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가 주시하고 있었다. 

2. 예수님은 오히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신듯 하다. 그 손 마른 사람을 한 가운데 일어서라고 하고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질문하시고 그들 스스로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를 답하도록 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무엇이 옳은 일인가?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무엇이 옳은 것이냐?” 무리는 잠잠했지만 그것은 모르거나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아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 

3. 문제의 핵심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에 있는 것이었다. 안식일 규정도 문제가 없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안식일의 본질은 잊고 껍데기를 율법주의적으로 붙잡고 강요하고 있는 이들의 ‘완악함’이 문제인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탄식하시고 노하셨다. 

4. 예수님은 한쪽 손 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하시고 그가 내밀매 손이 회복되게 하셨다. 

5. 이런 현장을 직접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헤롯당과 함께 예수를 죽이는 것에 대한 논의를 한다. 이런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완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왜 굳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심으로 스스로를 생명의 위협에 빠지도록 자처하셨는가? 

  - 예수님은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으시고 손 마른 사람은 긴급한 환자는 아니기 때문에 다음날 오라고 해서 고치셔도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괜한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고, 실속도 있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안식일에 그 병자를 공개적으로 고치심을 통해 ‘안식일이 무엇을 위한 날’인지, ‘하나님이 왜 안식일 규정을 주셨는지’ 명확하게 알리기 원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안식일,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것 만큼 좋은 효과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바리새인들은 그 손 마른 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더욱 효과적)

2. 과연 안식일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날인가? 

  - 안식일은 구별된 날로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날이다.(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처럼)

  - 그러나 안식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 날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나 선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날이다.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것처럼.

3. 예수님께서 탄식하시며 분노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완악함이다. 가르쳐주어도 듣지 않고, 깨닫게 해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완악함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옳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귀를 닫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서 주님은 탄식하시고 분노하신다. 

[묵상하기]

1. 안식일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확장, 자신의 번영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여주는 날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회적 선을 행함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 땅에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일꾼으로서의 충성을 보여주는 날이어야 하는 것이다.    

2. 사람들이 죄 때문에 망하는게 아니다.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죄를 숨기고 부정하고 죄를 드러낸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완악함이 결국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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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하도 했고, 예레미야라는 굵직한 본문도 다루었으니... 이제는 소선지서 중 미가를 시작해 볼까한다. 미가를 택한 것은 개인적인 이유로 미가서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ㅎ 함께 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

 


[성경 한 장]


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모레넷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 시대적으로 아하스 시대에 유다는 앗수르의 제단과 종교 형식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 아하스가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에 대한 위기를 극복하려고 앗수르의 원정을 요청했고 그로 인해 아람은 멸망했다. 그러나 앗수르를 향한 사대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아하스 왕으로 인해 유다는 매우 큰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게 된다. 


2.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다.


  * 유다뿐 아니라 사마리아(북이스라엘)에 대한 묵시의 말씀이다. 


3. 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셔서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다. 


  1) 그 때 산들이 녹고 골짜기는 갈라지게 되는 엄청난 재앙이 임할 것이다. 


  * 하나님의 위엄(심판하시기 위한)을 보여주며, 그 분의 등장과 그로 인해 이 땅에서 벌어지게 될 엄청난 재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4. 그런데 이와 같은 재앙은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고,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1) 야곱의 허물은 사마리아이다. 

  2) 유다의 산당은 예루살렘이다. 


  * 사마리아(이스라엘)가 행한 죄악은 야곱(이스라엘)에게서 나온 결과물이며, 예루살렘은 유다의 산당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음을 말한다. 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결과들이 나왔고, 거룩한 곳은 하찮은 곳이 되어 버렸다. 


5.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에 행하실 심판의 모습

 

  1) 땅을 황페하게 하고

  2)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게 한다. 

  3) 음행으로 벌어들인것(우상 숭배로 얻은 것으로 여겨지는 부와 재산)은 다 소멸될 것이다. 


  * 우상숭배와 죄악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지만, 여전히 유다와 사마리아는 그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의 유익과 부를 얻었다고 생각하던 때인듯 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소멸시키심으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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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미가 선지자는 애통하고 애곡한다.


  1) 왜냐하면 이 상처는 고칠 수 없는(회복할 때를 놓친 혹은 너무 큰 상처라 고칠 수 없는) 상황이고

  2) 그 상처가 유다와 예루살렘에도 미쳤기 때문이다.(핵심적인 심장부까지 치명적 영향을 주었다.)

  3)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4) ..... 여러가지 구체적인 지명과 인명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들이다.(10-16절)



[묵장 한모금]


1. 전체적인 내용의 배경은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를 배경으로 한다. 죄악의 상황을 보면 유다 왕 아하스 시대가 중심이지 않을까 싶다.


2. 내용은 하나님께서 하늘 처소에서 나오셔서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유다와 사마리아의 죄 때문인데, 구체적인 죄명은 우상 숭배다. 우상 숭배를 통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없이하실 것임을 밝히시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와 유다의 죄가 너무 크고, 심장부까지 손상시켰기 때문에 그렇다. 이 사실을 아는 미가 선지자는 애통하고 애곡한다.... 세상 곳곳에 그와 같은 징조(죄의 영향이 극심하다는 징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 심판하시기 위한 등장은 상처(죄)가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다. 그것은 단순한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는 여러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치료를 거절하여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하나님은 그의 죄와 죄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4. 하나님은 두 가지가 충족될 때, 심판하신다. 하나는 죄에 대해서다. 다른 하나는 죄에 대한 악한 태도, 즉 돌이키지 않는 것이 모두 충족될 때 심판하신다. 모든 인류는 아담 이후로 죄 가운데 태어나지만, 그 죄를 돌이키는 자가 있고 그 죄를 돌이키지 않는 자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에서 돌이킨 자는 구원으로 인도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마져 거절한 자에게는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게 된다. 그래서 심판에 이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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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애굽 땅에 사는 몯느 유다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1)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황무지가 되고 사람이 없다.

  2) 그것은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3)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너희엑 보내어서 가증한 일을 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그래서 행하던 그들의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4) 그래서 나의 분과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사른 것이다. 

  5) 그래서 오늘날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다. 


  6)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그와 같이 행하는가? 오늘까지 겸손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가?


  * 하나님은 사람들이 지은 한 두가지의 죄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서 돌이키라는 수 많은 경고를 거절한 그들에게 그 완악함을 물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죄명은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 사기'가 아니다. 바로 '완악함'이다. 죄인줄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마음이 우리의 죄명이다. 



2. 하나님의 진노를 이제는 애굽으로 간 너희들에게 임하게 할 것이다 

 

  1) 애굽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라. 

  2) 그들은 칼과 기근으로 망하리라. 그래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3)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할 것이다. 

  4) 너희 중에 애굽에서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다시 유다로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 하나님의 진노는 집요하다. 유다를 피하여 간 자들을 애굽에까지 좇아가신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집요함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여 승복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 진노의 화살은 우리를 추격한다.



3. 그러자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대답했다. 


  1) 우리가 유다 성읍과 에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족하여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했다.

  2)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을 폐한 후부터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당하였다.

  3) 여인들은 남편의 허락을 받아 그와 같이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드렸다.


  * 그럼에도 이들은 돌이킬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그들의 무지 때문이다. 유다에서 풍족할 때는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잘 드리던 때였고, 그것을 소홀히 한 후부터 결핍과 전쟁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영적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판단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있다. 따라서 큰 죄중에 하나는 '무지'인데 결국 이 무지도 자기 생각의 완고함에 기인한다. 다른 가능성과 상황에 대해서 말해 주어도 그것을 받아들이 않기 때문에. 무지도 완고함에서 기인한다. 


4.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그들의 범죄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해 재난이 일어날 것을 말함.


5.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다. 


  1) 하나님이 맹세하신다. 내가 깨어서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할 것이다. 

  2)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서 유다 땅으로 돌아올 것인데, 그들은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알 것이다. 

  3)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긴 것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다. 

  4) 여호와의 말이니라. 


  * 결국 유다를 떠나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애굽으로 갔던 유다인들은 그곳에서 또 다시 바벨론 왕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의지했던 애굽이 결국은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애굽을 의지했던 유대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사람들이 지은 한 두가지의 죄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서 돌이키라는 수 많은 경고를 거절한 그들에게 그 완악함을 물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죄명은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 '사기' '무지'가 아니다. 바로 '완악함'이다. 죄인줄 알고도, 그로 인해 하나님의 큰 진노가 있음을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마음이 우리의 죄명이다. 


2. 결국 유다를 떠나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애굽으로 갔던 유다인들은 그곳에서 또 다시 바벨론 왕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의지했던 애굽이 결국은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애굽을 의지했던 유대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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