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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20절.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절.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절.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절.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절.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절.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절.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절.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본문내용 정리]

1.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셨고 사람들은 그 집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호의적인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의 친족들은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해서 예수를 붙들러 왔고,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은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그리한다'고 했다. 

2. 예수님은 예수의 사역에 대한 결과를 보고도 그와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비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말씀하셨다. 나라가 분쟁하면 나라가 설수 없고, 집이 분쟁하면 그 집이 설수 없고, 사탄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거슬러 분쟁하면 설수 없고 망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나를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니...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집을 강탈하기 위해 상대의 강한 자를 결박하는 행위로 봐야 마땅한 나의 행동을 어찌 한 패라고 말하느냐?

3. 예수님은 이들의 태도가 매우 악함을 지적하고 경고하신다. 모든 죄와 모독하는 일은 사함을 얻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 지금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의 논리와 비난이 그와 같은 행위이다.(엄중한 경고)


[질문하기]

1.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뉘게 되는가? 

  무리는 예수님이 있는 곳을 찾아 인근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식사할 틈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째는 예수의 친족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어릴적부터 봐 왔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자기 태도와 인식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고,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은 갈릴리 변두리에서 자라고 사역하는 예수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의 능력은 부정할 수 없으니 오히려 예수가 가진 능력을 '하늘'로 부터 온 것이 아닌, '귀신'에게서 온 것으로 폄하하려고 했다. 

2. 본문의 상황으로 볼 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나?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매우 심각한 죄로 언급된다. 사하심을 받을 수 없는 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어떤 죄일까? 적어도 오늘 본문의 상황 속에서 해석을 하자면, 그 죄는 1) 악의적인 의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매임에서 자유하게 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 논리(귀신의 왕을 힘입어 그 일을 한다)로 예수를 폄하하려 했고 그것은 악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들의 죄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시작하시려는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를 죽이려 했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때까지 유대인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확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면서도 부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서기관들은 억지 논리를 내세워 악의적인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묵상하기]

1.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성공적이었다.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있었고, 권세와 능력이 드러났으며 귀신들도 예수의 말씀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제자들도 생겼고, 많은 무리가 여러 곳에서 예수님께로 모여들었다. 몇 차례의 논란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태클을 가볍게 이기셨다. 그 소문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충분히 임팩트 있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12명의 제자를 선택하고 조직을 갖추자 본격적으로 악의를 드러낸 사람들이 나타난다. 가까이에서는 예수의 친족이었으며(이들의 문제는 무지와 편견) 멀리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이었다.(이들의 문제는 악의와 완악함) 

시작은 화력하고 임팩트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가는 과정이 녹록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사탄 조차도 자기 스스로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사탄도 분쟁하면 그의 나라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집'을 세우고 '나라'를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그 구성원이 서로를 향해서 '악의적으로 폄하하는 행위'는 삼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탄 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그 구성원은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구성원 간의 분쟁은 그 집을 허물고 그 나라를 허무는 일이 되고만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모두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똑같은 가치관과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수도 없다. 서로 다름이 분쟁을 통한 멸망이 아니라, 다양성을 통한 세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합리적인 절차를 따라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통해 공동체는 분쟁이 아닌 세움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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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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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절.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절.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리라 하시니


6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절.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절.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절.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절.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절.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절. 그가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본문내용 정리하기]

1.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고, 사람들에게 금새 소문이 났고 그 집에는 발디딜틈도 없을만큼 사람이 많았다. 주님은 그 모인 사람들에게 '도'를 전하셨다.(1,2절)

2. 그러는 중에 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풍병자의 친구 4명이 중풍병든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침을 받게 하려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 없게되자 지붕을 뜯고 중풍병든 친구를 상에 달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친구들)을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해 주셨다는 것이다.(3-5절)

3.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어떤 서기관은 마음에 의혹을 품었다. 예수님의 행동은 신성모독에 해당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사하는 권세가 있단 말인가? 주님은 그 서기관의 마음을 아셨고 당신이 '땅에서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6-10절)

4. 주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고 그가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갔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11-12절)


[질문하기]

1. 중풍병든 자를 고쳐주신 사건은 질병을 고쳐주신 다른 기록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1)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중풍병자를 친구들이 데리고 나왔다는데 차별성이 있다. 오늘 본문은 그 내용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4명이 데리고 왔다는 것, 사람이 많아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지붕을 뜯고 환자를 위에서 내려오도록 했다는 것 등 친구들의 마음, 태도, 열심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한 주님께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함받았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의 믿음(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말씀하심으로 스스로가 주님 앞에 나올 수 없을 때, 그 친구들이 주님께 데리고 가서 고침받게 하겠다는 그 마음도 귀히 여기심을 알게 된다. 

  2) 중풍병자를 고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논란이 발생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언급한 것에 대한 논쟁이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사하는 권세를 가졌는가? 한 서기관의 의문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하심으로서 사람들에게 당신이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자 했고, 그것은 예수님이 실제로 하나님과 같은 권세가 있음(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자 하셨던 것이다.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권세(가르침, 병고침, 귀신쫓음)와는 차원이 다른 권세(죄를 사하는 권세)를 보여주신 사건이라 하겠다. 

2. 친구들의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중풍병자를 들고온 친구들의 믿음으로 중풍병자가 고침받은 것처럼)

  교리적인 논리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은 본인의 진실한 믿음과 고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주변 사람(친구, 가족 등)의 도움으로 스스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의 사람이 예수를 만나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열어놓고 있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가 적극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자신의 친구를 위해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 위한 노력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 또한 그들의 믿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신념 때문일수도 있고 과거 교회와 교인에 대한 상처때문일수도 있고 무관심 때문일수도 있다. 이 때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들의 협조가 필요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반드시 주님 앞으로 데리고 가야한다는 열심과 헌신이 필요하다. 초대교회에서도 이 말씀은 그와 같은 메시지로 성도들의 마음에 도전을 주었을 것이다. 


[묵상하기] 

복음의 시작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을 알리셨다. 그 분의 가르침과 그 분의 행하심으로 이 땅의 권세와 질서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것에 반응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등장한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나아올 수 없는 사회적인 제약을 넘어 믿음으로 주님께 나왔고, 중풍병자는 스스로 나올수 없는 한계를 친구들의 도움으로 주님께 나왔다. 본인에게 사회적인, 신체적인 어떤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예수님의 도움과 환대,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직접 진행하시고 성취하시지만, 그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것이 포함되고 있다. 본인의 간절함, 친구들의 도움과 간절함 등이 그것임을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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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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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들도 성경을 정확하게 필사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규율을 개발했다고 하네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이와 같은 엄격성 때문에 그래도 성경이 잘 전수될 수 있었으니 이 분들의 공로도 인정해야 할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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