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보면 알곡과 가라지는 구분되는데, 알곡은 가라지가 될 수 없고 가라지는 알곡이 될 수 없는가? 될 수 없다면 이 비유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1. 우선 성경에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살펴보는게 좋다.

  1) 확실한 것1: 제한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2) 확실한 것2: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시며, 병자들을 위해서 왔음을 분명히 하셨다.(선택받지 못했고, 거룩하지 못하다고 판단되었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3) 확실한 것3: 외부적인 어떤 결정(운명적론적 결정)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본인이 예수를 믿지 못해 구원받지 못하는 책임을 외부로 돌릴 수 없다.) 

4) 따라서 구원과 관련하여 처음부터 알곡과 가라지로 구분되는 결정론은 성경적이지 않다.


2. 그러나 현실 세계를 보면 악곡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1) 그러나 결과적으로보면 모든 사람이 알곡이 되는 것(만인구원)은 아니고 일부는 가라지처럼 마지막 추수때에 심판에 이르게 되는 사람이 존재한다.

  2) 이것은 현재 교회 안에 있다고 알곡이고, 교회 밖에 있다고 가라지라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교회 밖에 있던 사람도 구원에 이를 수 있고(십자가에 달린 죄인처럼) 언제든지 교회 안에 있던 사람도 마지막 순간에 알곡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다 천국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3) 하나님 외에 누구도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무리하게 구분하려고 하다가 알곡도 함께 뽑아 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4) 따라서 추수 때가 되기 전까지 알곡으로 보이는 사람도 얼마든지 가라지로 드러날 수 있고, 가라지로 보이는 사람도 알곡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다)

  -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단 바울도 극적인 회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도가 되었다. 


3.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하나님 나라'는 추수 때까지 그 모두를 품고 간다는 특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의 구분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추수꾼을 통해서 명확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메시지: 하나님 나라의 품 안에 있다고 안주하지 말고, 자신의 신앙이 참된 신앙(알곡)인가를 확인해야 하고, 아직 참된 신앙이 없다면 추수때가 되기 전에 빨리 급히 참된 신앙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질문2. 세상의 가치관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교회)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가라지인가요? 

  0. 그 정보만으로는 그 친구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알 수 없다. 

  1. 다만 확실한 것은 계속 그렇게 세상에 의존해서만 살아간다면 나중에 가라지로 판명될 것이다. 

  2. 그러나 언제든지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온다면 알곡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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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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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30절.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절.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절.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절.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절.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다른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고자 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길 때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지에 공중의 새들이 그 나무 그늘에 깃들일 만큼 그 작은 씨가 성장하듯이 하나님 나라는 그런 특징을 가진다. 

2.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많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가능하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해가 부족할 경우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해 주셨다. 


[질문하기]

1.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시고자 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매우 작은 씨처럼 이 땅에 심겨지듯이 왔다. 

  2) 그러나 겨자씨가 자라면 꽤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듯 하나님의 나라도 이 땅에 매우 작은 모습으로 왔지만 훗날 큰 나무가 되고 그 그늘에서 안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3) 하나님의 나라는 크고 강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작고 약한 모습이라고 해서 없어지고 무력해지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고 강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2.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비유라는 의미인가? 

  1)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 중 이 땅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를 많이 사용하시기는 하셨지만 모든 말씀이 다 비유로만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시지만 그것은 소통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하기 위함이지 모호하고 난해하게 하려고 하신 것은 아니다.(아무리 잘 하시려고 해도 상대가 들을 귀가 없어 듣지 못하는 경우를 안타까워 하셨을 뿐) 

  2) 위의 구절은 비유를 많이 말씀하셨다 정도로 이해하든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비유로 말씀하실 수 밖에 없었다(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이 땅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정도로 이해해야지 정확한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 정도로 이해해야지, 이 땅에 있는 모든 씨보다 절대적으로 작다고 이해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더 작은 씨도 있을테니)


[묵상하기]

1. 하나님 나라는 매우 작고 무력하게 이 땅에 심겨진다. 예수님도 이 땅에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탄생과정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숨어다니셔야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왔으나 너무 초라하고 불안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외면하고 세상의 나라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땅 속에서 죽은듯 지내다, 작은 싹을 틔우고, 점차 이삭이 되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특징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씨만 봐서는 곧 세상의 나라가 더 신뢰할만 하게 보인다. 그래서 훗날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2. 예수님께서 비유를 많이 하셨지만, 비유의 목적은 숨기고 감추려는 것에 있지 않다. 알수 없는 개념, 낯선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설명하는것이 비유이기 때문이고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나라와는 다른 영역이기에 비유가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유의 목적은 분명하다. 드러내시는 것이고 밝히시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것도 마지막 때에 가장 명확한 방법(성육신과 십자가)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이다. 

성경에 너희는 알수없는 다른 의미가 있고, 그것을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성경에 기본이 안된 사람들이다. 믿지 마라. 쫓지 말고 배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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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21절.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절.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4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성경내용 정리]

1. 첫 비유를 말씀하신 이후 이어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밝히고 드러나게 하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경을 가져와서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숨겨 둔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 둔 것은 타나기 마련이다.(새번역)

-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하신다. 드러내시고 밝히시려는 의도임을 분명히 하신다. 그리고 숨겨 둔 것과 감추어 둔것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임을 강조한다.

2.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기준으로(판단하는 것) 너희가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이상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자는) 그대로 (관용을) 받을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자는) 그 사람이 받을 기본 관용조차도 받지 못하고 빼앗기게 될 것이다. 

- 24절의 내용을 통해서 유추해보면 25절은 ‘관용, 용서, 자비, 은혜’를 넣어서 이해하는게 적절할듯 하다. 


[질문하기]

1. 비유 중간 중간에 비유의 내용이 아닌 비유의 목적과 관련된 내용이 삽입된 이유는 무엇일까? 

  - 막 4:1-9에 비유가 있고, 막 4:10-13절에 ‘비유의 목적’에 대해서 언급한다. 막 4:14-20에 비유 내용에 대한 해설을 해주시고 막 4:21-25에 ‘비유의 목적’에 대해서 다시 다룬다. 이는 예수님께서 비유에 대해서 자주 다루시고 비유가 드러내려는 것인지, 오히려 감추려고 하시는 것인지 오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비유의 목적’을 정확하게 드러내시기 위함인듯 하다. 비유는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시기 위함이라는. 

2. 25절에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은 맥락 속에서 보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까? 

  - 24절에서 ‘헤아림’(판단, 정죄)에 대해서 경고하시는 말씀을 주셨으니 그 와 대조되는 개념(용서, 이해, 은혜, 관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타인에 대해서 관용과 은혜가 없이 다른 사람을 헤아리기만 한 사람은 역으로 자기 자신도 관용과 은혜가 없는 헤아림, 자신에게는 더 엄격한 헤아림을 받게 될 것에 대한 경고를 하신 것이라 보인다. 

3. 왜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해서 비유로 알려주시면서 갑자기 주제를 ‘헤아림’(<-> 관용)으로 전환했을까? 

  - 천국의 가치관은 정확한 판단이나 헤아림이 아니라 은혜와 관용이라는 메시지는 마 18:21-35, 마 20:1-16에서도 나타난다.(천국 비유) 따라서 관용은 천국의 비유와 관련해서 무관하지 않고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묵상하기]

1. 감추고 숨기는 것은 천국의 방식은 아니다. 현재 이해하는 사람들의 한계 때문에 감추어 지고 숨겨진 것처럼 보이는 영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때가 되고 기회만 있으면 그것을 드러내고 밝히시려고 애쓰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보이는 말씀으로 오셨고,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그것을 분면히 한다. 예수님은 비유를 포함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해서 힘쓰셨다. 

감추고 숨기는 사람들, 그 비밀을 자신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말 아래에 두고, 평상 아래에 두려고만 하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2.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관 중에 하나는 ‘관용’이다. 엄격한 헤아림을 통한 판단과 정죄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엄격함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다. 엄격한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그 자녀들과 백성들에게는 ‘관용’과 ‘자비’의 방식으로 대하시는 분임을 하나님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백성들이 스스로도 할 수 없는 엄격성을 들어 한 백성, 한 가족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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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0절.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절.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절.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절.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절.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절.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절.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심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홀로 계실 때 함께 한 무리와 열두 제자들이 '씨 뿌리는 자' 비유의 의미를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비유에 대해 묻는다. 

  1)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너희(함께 한 무리와 열두 제자)에게는 허락이 되었으나 외인들에게는 비유로 하셔서(직설법을 사용하지 않으심으로)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해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2) 또한 이 비유를 알지 못하면 모든 비유를 어떻게 알겠는가? 반문하심으로 이 비유가 모든 하나님 비밀의 기초가 되는 내용임을 암시하는듯 하다. 

2. 예수님은 비유에서 상징하는 각 대상에 대해 설명하신다.

  1)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따라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예수님의 말씀)이다. 

  2)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으로 말씀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대상을 가리킨다.(이들은 외인들과 유사하다. 이들은 보기는 보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죄사함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다. 막 4:12)

  3)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 곧 넘어지는 자'를 말한다. 

  4)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다. 

  5)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나 백 백의 결실을 하는 자다. 

 => 하나님의 비밀이 담긴 말씀(예수님)은 그 말씀이 뿌려지는 대상의 상태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없을수도, 어정쩡할수도, 큰 열매를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질문하기]

1. 하나님의 말씀(예수님)이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제한을 받는다는 것인가?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인격적인 반응을 하신다는 것인가? 

  이 비유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의 한계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리라 본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무리 하시고자 해도 사람들이 거절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리라 본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뿌려진 씨'처럼 여러 상태의 사람들에게 다 뿌려지고 전달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서 열매와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 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태도와 반응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인격성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2. 네 가지 땅의 상태는 어떤 대상들을 말하는 것인가? 

  1) 길 가에 해당되는 땅: 씨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사탄이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고 만다. 길 가에도 말씀이 떨어지지만 이들은 그 말씀을 받지 않으므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한다. 이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외인이다. 

  2) 좋은 밭: 말씀을 받아 신속히 열매맺는 사람들이다. 심령의 가난함을 가진자며 그 말씀을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던 자들이다. 환난이나 박해를 잘 견딘 사람이며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휘둘리지 않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열매가 생긴다. 

  3) 돌 밭: 말씀을 듣고 표면적인 기쁨을 얻었으나, 내면 깊숙히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함으로 작은 환난과 박해가 있으면 쉽게 돌아서고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4) 기시떨기 밭: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으로 인해 결정적인 순간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만다.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을 막는다' 그래서 열매는 없다. 

3. 왜 씨 뿌리는 자 비유가 모든 비유를 이해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비유일까?(13절)

 앞으로 이어지는 비유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일단 예수님의 말씀(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듣는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전혀 영향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고, 미미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적절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음(열매를 30,60,100배 결실하므로)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기초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묵상하기]

이 비유는 대상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절하는 자들에게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받는 너희들의 마음 밭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너희들이 그런 태도로 말씀을 거절한다면 그들의 완악함이 하나님 나라에서의 '외인'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처음 기쁨을 받고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말씀으로 인해 환난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들은 그 가운데 흔들림이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흔들린다. 그들은 열매가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말씀을 밀어낸다. 이들 또한 열매가 없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들이고 환난과 박해, 염려와 유혹과 욕심을 견디고 이긴 사람들은 '좋은 밭'으로서 반드시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참되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환난과 박해, 염려와 유혹과 욕심의 시험을 잘 통과하고 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그리고 세속적인 욕심이 성도로서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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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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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절.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절.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절. 뿌릴새 (1)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절. (2)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절.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절. (3)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절. (4)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절.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였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셔서 가르치고 큰 무리는 해변에 둘러앉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2.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는데 그 중에 한 가지 이야기다. 

3.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밭의 상태에 따라서 4가지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흙이 깊지 못하니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는 타서 뿌리가 없어 말랐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니 결실하지 못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자라 무성하하여 결실하게 되는데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는 만큼 큰 결실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4. 이 의미를 깨닫을 수 있는 자는 깨달아 알기를 바라셨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는 '씨'가 중요한 것인가? '땅의 상태'가 중요한 것인가? 

  비유에서 씨는 차등이 없다. 달라지는 것은 씨가 떨어지는 땅의 상태다. 길 가와 돌밭과 가시떨기 밭과 좋은 밭이라는 땅의 상태에 따라서 씨가 맺게 되는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결과에 차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1)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진리이고 생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가지는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있어서의 한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문을 두드리시되 억지로 문을 따고 들어가지는 않으시는 방식이다. 원함이 있으시지만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는 방식의 한계로 봐야 할 것이다. 

  2)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전혀 반응이 없고 대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처음에는 기쁨으로 받지만 그 안에서 온전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여전히 큰 무리가 예수님을 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묵상하기]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 성도에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밭의 상태란 돌밭과 가시떨기 밭일 뿐이다. 길 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이므로 성도일 수 없고, 좋은 밭에서 아무 문제없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성도의 상태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돌밭이 고난을 의미하고, 가시떨기 밭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의미한다고 할 때, 면균실에서 잠깐을 사는 성도가 아닌이상 고난과 염려와 유혹이 없는 성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봐야 할 사람은 현재 돌밭같은 상태의 사람과 가시떨기 밭과 같은 상태의 사람들이고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언제나 이와 같은 상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유를 통한 메시지는 '좋은 밭이 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좋은 밭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는가? 다만 고난과 염려와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성도이기에 마음 아픈것 아닌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할 것인지, 어떻게 세상에 대한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이겨감으로 열매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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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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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4.7.20)


본문: 눅 18:9-17

제목: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_자기 의


 *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자는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의'가 없음으로 인해 애통해하고 하나님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자라는 것이 핵심 메시지.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 신앙 생활을 시작하지만, 자주 그 신앙의 토대 위에 '자기 의'를 쌓으려고 하는 경향을 가진다. 바리새인처럼. 그래서는 안된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의'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의'로 완성됨을 알고 하나님 앞에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할 일을 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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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4.6.29)


제목: 재난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2

본문: 눅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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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4.6.15)

본문: 눅 13:1-9

제목: 재난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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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4.6.8)

제목: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다.

본문: 눅 12:13-34


 * 중간에 사적인 예화(재정과 관련된)들이 들어있어서 죄송합니다. 

 * 병과학교는 '김포'가 아니라 '김해'입니다.(오류가 있어 정정.ㅠㅠ)



 핵심: 사람의 생명과 영혼과 같이 본질적인 것은 소유의 넉넉함(물질적 넉넉함)으로 대치될 수 없다. 목숨을 위해 음식이 필요하지만, 음식이 넉넉하다고 생명이 될 수는 없고, 의복이 넉넉하다고 그것이 몸이 될 수는 없다. 물질의 넉넉함으로 생명과 영혼의 풍요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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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4.4.6)


제목: 한 부자의 비유_탐심

본문: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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