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lbe.com/2187454216


일베 저장소이긴 하지만, 괜찮은 자료가 있는듯 하여 링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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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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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입


 1.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주장: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와 다른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주장.


 2. 그 때까지 지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확신했던 교황청의 주장과 다름으로 인해 이단으로 규정됨(가택연금)


 3. 갈릴레오는 처음 개발된 망원경으로 관찰했고, 교황청은 매일의 경험과 성경에 기초한 교회 전통으로 주장했다.


 4. 왜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것일까? 


 5. 두권의 책: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하나님의 세계(자연)와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어 보자.


  1) 이 갈등은 하나님의 두 가지 계시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해석>에서 비롯됨

  2) 과학과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단절된 진공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3) 올바른 방법을 사용한 과학 해석과 성경 해석은 신뢰할 수 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난 두 권의 책

  1)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특별 계시라고 부르고, 자연을 일반 계시라고 부른다. 

  2) 벨직 신앙고백:우리는 두가지 도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안다. 

1)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 2) 거룩한 말씀

  3)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반드시 그 거룩한 책을 읽어야 하며, 우주라는 책을 관찰해야 한다. 성경은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지만, 우주라는 책은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읽을 수 있다.(시편 강해)


  4)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난 두 권의 책

   (1) 하나님은 두 권의 책, 성경과 자연을 통해서 상호 갈등없이 자신을 계시하신다. 

   (2) 그러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계시 자체가 아니라, 그 계시를 해석하는 인식에 따라서 잠재적 갈등이 발생한다.

      # 83쪽 그림 참고.



 2. 문화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


  1) 세계관과 과학이 서로 미치는 영향

    (1) 주어진 자료만으로는 최적의 모델을 가려낼 수 없을 때,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은 똑같은 자료를 보고 서로 다른 모델을 최적의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2) 자신의 세계관으로 특정 과학 모델을 지지하는 부정적인 영향도 받긴 하는데, 과학자들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자기 교정> 장치를 통해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원칙들]

1. 실제로 과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과학계가 진정한 합의점을 도달했다면, 그 내용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다양한 종교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의 전문적인 판단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2.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과학을 통해 진리를 발견했다면, 그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3. 단순히 우리가 믿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그 과학적 결과를 성급하게 부정해서는 안된다. 


   (3) 신앙적 정보와 과학적 정보가 서로 다를 때, 성급하게 과학적 정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정보를 모두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모두 하나님의 계시라면 서로 연결되는 어떤 것이 있을테니까...)


   (4) 과학적 결론이 확실한 증거로 입증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더 나은 접근법은 전제로 제시된 세계관적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전제1. 기독교는 지구가 우주상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선의 전략은 과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서 세계관적 주장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2) 정치와 과학이 서로 미치는 영향향

과학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끼여들면 매우 복잡해 지게 된다. 개발이냐 환경보호냐? 식의 갈등.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릴 수 밖에 없는 갈등이 형성된다. (4대강 사업과 같은...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는 현상까지 나타남)



 3. 문화가 성경 해석에 미치는 영향


      성경해석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단절된 진공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회 특히 신학과 교회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 신학과 교회 전통이 성경 해석에 미치는 영향

    (1) 신학과 교회 전통은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며, 반대로 성경 해석도 신학과 교회 전통에 영향을 미친다. 

    (2)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교회 전통의 지식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새롭게 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유익이 얻을 수도 있고, 과거 전통 중에 존재했던 곤란한 상황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3) 그러나 때로는 교회 전통이 성경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예) 종교 개혁 당시의 성경 해석, 노예 폐지 등... 그러나 여기에 정치적, 경제적 문제까지 개입되면 굉장히 복잡히 진다. 

   (4) 이 경우 교회의 여러 교파가 있다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서로의 편견과 맹점을 찾아내는 것처럼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교회들이 서로를 책임져 주는 것이다. 



 4. 인간의 해석은 신뢰할 만한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의 세계인 자연은 서로 모순될 수 없다. 다만 그 해석에 있어서 갈등이 있는 것인데 어느 것을 우선으로 놓아야 한다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해석>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과학에 적합한 방법과 체계적인 성경 해석법도 익혀야 한다. 두 해석에 대한 쟁점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과학적 해석의 신뢰성

   (1) 과학자들이 하나의 물리적 체계를 두고 두 가지 다른 모델을 가지고 논쟁을 벌일때가 있고, 과학 연구를 하다 보면 결정적인 실험 결과와 관찰 결과가 나오지 않아 두 모델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을 자주 만나다. 

   (2) 그러나 과학계는 이 같은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 동료검토(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 과학자들이 새로운 결과를 심사하고 평가하는 것)

      같은 분야의 과학자가 연구한 것이 다른 결과치를 내면 과학계에 보고를 하게 되어 재확인을 하게 되는 과정

- 과학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면서 서로의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이다. 

- 하나의 모델이 사용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이전 실험들의 결과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전의 모델이 잘못되었다면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만약 오래도록 문제가 없다면, 그 모델은 상당히 믿을만한 모델이 된다. 



   2) 성경 해석의 신뢰성

    (1)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 비추어 한 구절 한 구절을 해석해야 한다.(문자주의적 해석은 잘못된 해석방법이다.)


    (2) 원 저자와 최초의 독자들이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 번역본 선택, 문학적 기법, 문학 장르의 이해, 문화 역사적 배경을 고려(역사적 해석)

    

    (3) 성경 해석의 예) 아모스 4:4 / 눅 1:1-3


    (4) 성경의 명료성: 종교개혁자들. 좋은 성경 번역본을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의 중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7항)




 5.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난 두 권의 책: 갈릴에오 시대


   1) 과학: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움직인다. 

    (1) 중세 이전까지는 주후 200년경 그리스의 과학자 프톨레마이오스(90-168)가 지동설에 대한 모델을 정교하게 발전시킴.

    (2) 이후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만 가지고도 각 행성이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다. 

    (3)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나타나서 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 태양중심 모델(혁명적 생각)

    (4) 갈릴레오 시대에는 이렇게 두 개의 모델이 있었으나 어느 것이 더 나은 모델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5) 1609년 초기 형태의 망원경을 알게 된 갈릴레오가 그 망원경을 좀 보완하여 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함.

    (6) 못 보던 행성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게 되자, 지구 중심 모델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 태양 중심설이 옳다고 확신하게 된다. 



  2) 성경 해석: 지구는 견고하게 서 있다. (수 10:12-14, 시 19:4-6)

   (1) 이전까지 성경의 표현에 따라서 지구가 견고해 서있다는 것을 지구 중심설의 확인해 준다고 봤다. 

   (2)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이 구절을 지구 중심설의 근거로 보지 않는다. 

   (3) 그렇다고 성경을 무조건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봐서는 안된다. 시편의 장르가 시라고 해서, 언제나 상징적 표현방식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술적인 방식을 취할 때도 많다. 그런식으로 보면 기적과 부활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부정해 버릴 수 있다. 

   (4)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지구가 태양을 돌면서 견고하게 서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현대 과학와 일치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해석이다. 

   (5)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 구절이 최초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찬양하기 위한 표현이지, 그것을 통해서 행성 궤도에 대한 지식을 전해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6) 이와 같은 입장에서 성경을 이해하면 과학과 그렇게 큰 갈등이 생길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매우 복잡하다. 왜 그럴까?



6. 갈릴레오 시대의 세계관과 정치, 교회 전통(뼈아픈 과오의 역사/복잡한 상황)


  1) 세계관과 철학이 이 갈등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1) 처음 갈릴레오가 태양중심설을 주장하기 시작할 때는 교회 안에서도 그의 지지하는 여론이 많았다. 

   (2) 그러나 그가 성경 해석에 관한 다른 해석을 내놓기 시작하면서부터 교회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3) 갈릴레오는 지구중심설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교황을 비꼬는 형태로 책을 쓰면서, 더욱 복잡해 졌다. 

   (4) 17세기의 그 혹독했던 논쟁으로 21세기인 지금까지 교회는 반과학적이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5) 갈릴레오가 가택연금을 사망할 즈음, 유럽은 그의 발견에 관심이 높아졌고, 아이작 뉴턴은 1687년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면서, 태양계에게 가장 무거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이 완벽하게 설명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838년 별의 시차를 발견함으로써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바티칸은 1992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갈릴레오에 대한 유죄 판결이 과오였음을 인정했다.(비공식적으로는 더 일찍 인정했다. 그 이후 최첨단 연구를 지속적으로 후원함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하는 활동으로서의 과학에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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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에 대한 영상1_ 무신론자(불가지론자)/과학적 방법/진화론의 헛점/지적설계 등등..





I. 도입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어김없이 가을이 온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우주만물의 움직임을 질서있게 정하셔서 운행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무더운 여름도 혹독한 겨울도 우리는 소망가운데 견디어 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을 하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밝혀 보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를 주의 깊에 연구하여 어떤 내용들을 얻지만, 그것은 창조세계에 대한 전체 과학 지식의 일부일 뿐이다. 


 과학은 이런 지식의 총체가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쌓아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과학 지식을 얻는 과정으로

  1. 실험

  2. 관찰

  3. 역사적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도 역사 과학을 광범위하게 다루고자 한다. 



II. 도입


 1. 실험 과학

   1)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과학

   2) 실험실에서 가능한 실험들을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남(실험, 측정, 다시 실험, 변수 통제 등)

   3) 찬 흙과 따듯한 흙에서 발아 실험 -> 더 차가운 흙, 더 뜨거운 흙


 2. 관찰 과학

   1) 실험실에서 실험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을 확인해야 할 때

   2) 기상학, 생태학, 의학, 천문학, 지리학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

   3) 접근성이 떨어지는 일(식물의 성장을 1년간 관찰할 수는 없다. 행성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우주여행할 수는 없다. 한랭전선을 만들수도 없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찰이 가능하다. 예, 산불 후 산림 회복 과정을 위한 연구(양생화, 4,5년후 나무...)


 3. 역사 과학

   1) 생태학, 기후학, 천문학, 우주학, 진화생물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에 주로 사용되는 방법

   2) 실험과 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증거를 가지고 간접적인 접근을 하는 방식.

   3)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것만을 연구함(마치 형사가 사건 발생 후 흔적만으로 당시 정황을 구성하듯)

   4) 산림연구, 131년 전 산불이 있었다는 흔적 발견 / 그 산림의 대부분의 오래된 나무들은 125년 이후의 것 구성)

        여러가지 측면에서 서로 지지해 주는 증거


예) 역사 과학의 예: 게성운 초신성 잔해

(1) 1054년 중국과 아랍의 천문학적 자료에는 <빛나는 객성>하나가 하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별은 조금씩 어두워져 2년 후에 완전히 사라졌다. 


(2) 1900년대 초, 현대식 천체 망원경으로 게운성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10년 간격으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비교하면서 성운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성운이 폭발한 한 별의 잔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폭발시기를 역으로 추적해 보니 900년 전에 폭발한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4. 과학의 세 가지 방법이 모두 필요하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연구 방법은 서로의 연구를 보강하거나 잘못된 점들을 고쳐주면서 자연 세계와 그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간다. 


 5. 인간의 죄와 역사 과학: 인간의 타락이후 자연의 법칙은 타락 전과 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


  1) 성경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창 3:14-19)

(1) 인간이 더 큰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며

(2)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땅을 힘들게 일구게 될 것이다. 


  2) 이런 저주의 결과로 자연은 얼마나 변하게 되었을까? 변했다면, 무엇이 변하고 얼마나 변했을까? 

[그리스도인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인듯 하다.]

(1) 자연법칙에 있어서까지의 변화가 생겼다.

(2) 자연법칙에 있어서까지의 변화는 아니다. (타락이후에도 하나님이 천지의 법칙을 지속함/렘 33:16-26, 시 19:1)

 - 둘 다 창 3:14-19을 해석하며, 양쪽 모두 나름대로의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3) 과학은 이 두 가지 해석 중에서 하나를 지지한다. 

(1) 천문학이나 지질학 같은 역사 과학이 자연 세계의 과거 행적에 관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밤 하늘에서 보는 별 빛이란 오래전 과거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빛이다. 이 빛은 아주 오래 전 기본적인 자연 법칙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연법칙은 한 시점에서 갑자기 변한적이 없다는 것이다. 

(3) 지질학자들도 비슷한 자료를 내놓는다. 가장 오래된 암석과 최근에 형성된 암석을 비교하여 봐도 자연법칙이 갑작스럽게 변한 흔적이 없다.

(4) 따라서 과학은 처음 우주가 생성된 이후로 자연법칙에 있어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III. 결론


 1. 과학은 자연 세계와 그 역사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얻으려 할 때, 큰 도움을 주는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도구다. 하지만 자연 세계와 상관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할 때는 별 쓸모가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2. 과학 지식은 우리가 역사와 성경, 개인적인 경험, 문화를 통해서 배운 중요한 진리를 보충할 뿐, 그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환원주의적 사고의 그릇됨) 과학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많은 선물 중 하나일 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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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입


1. 종교적 질문과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

   종교적 질문은 종교가 과학적인 질문은 과학이 답해 주면 될 문제.(간단한 해결방법 같지만...)


2. 그러나 종교와 과학을 항상 분리할 수는 없다. 

  예) 광대한 우주를 연구할 때, 미미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들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3. 또한 우리는 어느 한 분야에게 해당되는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다. 


4. 게다가 우리는 하나님이 삶의 모든 영역을 주관하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종교와 과학을 별개의 것으로 간단하게 분리시킬 수 만은 없다. 



II. 본론


 1.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내용과 이견이 존재하는 주제들

    창조, 진화, 설계를 두고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는데, 먼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1)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지키시며 다스리신다.


  2)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신다.(직접적인 드러내심을 믿음)


  3)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다. 


  4) 성경은 권위 있는 책이며, 구원의 길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 위의 문구가 축자 영감설을 지지하는 말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사실 관건이다. 

- 복음주의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정도의 명제다. 


  5)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며 인간에게 특별한 능력과 책임을 맡기셨다. 

      - 결혼, 가족, 예술, 언어, 상업.... 문화적 선물까지.

      - 이를 자연 과학에 적용해 보면, 하나님이 자연 세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때 필요한 능력과 책임도 인간에게 은혜로 주셨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2. 그리스도인들 간에 이견이 존재하는 주제들

만물을 누가 창조했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어떻게 창조했느냐에 대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해 왔다. 그 다양한 질문들의 핵심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핵심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최선인가?(성경 장체에 대한 해석문제)


     핵심2. 하나님의 세계(자연)를 연구할 때, 자연이 그 역사에 대해 말하는 바를 어떻게 결론짓는 것이 옳은가? (팩트에 대한 해석 문제)


  견해1. 젊은 지구 창조론자: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에 지나지 않음. 대홍수에 의해 지금의 모양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창세기에 대한 최선의 해석이라고 믿음.


  견해2. 오랜 지구 창조론자: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하루가 실제적으로는 과학역사에 존재하는 긴연대라고 해석함. 이들은 성경 본문을 통해 지구 나이를 유추하는 것은 성경이 의도하지 않은 가르침이라고 말함.


  견해3. 진화론적 창조론자들: 과학 데이터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면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주관하고 이용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부류는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성경과 과학 모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 역사를 이루실 때 자연적 과정뿐 아니라 기적도 함께 사용하셨음을 말한다고 주장함. 


  [소결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에 많은 교회와 기관에서 기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관점이 진심으로 하나님과 성경에 충실하기 위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며 기독교 신앙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본인들은) 설명한다.



 3. 이 논란을 풀기 위한 사전 과정: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게에 귀를 기울이라.


  1) 과학을 토대로 성경 읽기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을 토대로 과학을 연구할 것인가?


  2) 대답은? 모두 그렇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 결과도 혹은 부정적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3-1. 자연 해석에 대한 성경의 영향


1) 성경을 원래의 용도 밖으로 모든 영역에서 너무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활용해서는 안된다. 

2)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기적의 방법이라도)에 대해서 열린 태도로 과학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해야 한다. 

3) 성경은 과학만으로 알 수 없는 자연 세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1) 과학은 식물과 암석, 먼지를 구성하는 원수들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와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성경은 그럼에도 인간이 모든 창조세계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말한다. 

  (2) 과학자들은 봄, 여름, 가을,겨울의 계절 변화가 공전 궤도와 자전 각도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하지만, 성경은 신실하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인해 사계절이 생긴다고 알려준다.(이 두 사실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3-2. 성경 해석에 대한 과학의 영향


1) 특정 성경 구절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때도 과학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2)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고 법칙으로 운행하신다는 것을 성경이 말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하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과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3) 과학을 성경해석에 우위에 둘 필요는 없지만, 성경을 해석함에 과학이 도움을 줄 수 있음도 간과해서도 안된다. 



III. 결론


 1. 성경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지, 어떻게 만드신 것에 대한 고백은 없다.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2.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호기심을 따라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버렸다.(저자 자신을 포함하여 과학자들)


 3. 이 연구를 함에 있어서의 원칙


  3-1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계, 이 두 영역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3-2 서로를 비방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견해와 입장에 대해서)

  3-3 복음 앞에서 불필요한 걸림돌을 놓지 말아야 한다.(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

예) 아우구스티누스의 말(41쪽 참고)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증거하다보면, 오히려 기독교인들을 무지한 자로 인식하게 만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까지도 거부당하게 된다.

  3-4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이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3-5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일차적인 반응은 논쟁이 아니라, 찬양과 경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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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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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렸던 글에서 언급했던 '예전에 복클에서 썼던 글'입니다.
조금 다듬고 추가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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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진화 논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창조론의 영어 표현이 'Theory of Creation'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창조론'에 대응되는 영어 표현은 'Doctrine of Creation'입니다. (Doctrine : 교리) 즉, 창조론은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등 기독교의 여러 '교리이론'의 한 영역인 것입니다.

네이버 사전만 찾아봐도 바로잡을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오해 때문에 쓸 데 없이 논의가 꼬이고 감정이 상하고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이 오해로 인해 발생되는 대표적인 문제들을 짚어 보자면...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오해와 갈등은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고, 다시 말해서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면 아주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1. 많은 개신교인들이 이런 논리를 내세우곤 합니다.
"창조론도 이론(Theory)이고 진화론도 이론이다. (진화'법칙'이 아니고 진화'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우세하다고 할 수 없다." (응용 : "과학교과서에서 동등한 비중을 두고 가르쳐야 한다.")
(1) 이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창조론은 'Theory'(과학이론)가 아니고 'Doctrine'(교리이론)이거든요.
(2) 그리고 이건 과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과학적 권위가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부여되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 단적인 예로, 뉴튼이 제창한 만유인력의 '법칙'(혹은 중력법칙)은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창하고 이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면서 완전하지 못하다는 게 입증되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만유인력의법칙에 비해서는 훨씬 정확하고 정교하다는 것이죠.)
- 드 브로이가 제창한 '물질파 가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물리 과정에서도 잠깐 나옵니다.) 사실상 현대 양자역학의 전제조건이 되는 이론이고, 당연히 실험적으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 일반상대성'이론'에는 (양자역학과의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물질파 '가설'은 그런 거 없습니다.
- 이 사례들만 보면 오히려 '가설(물질파 가설)>이론(일반상대성이론)>법칙(만유인력의 법칙)' 순서로 진리에 가까운 것 같네요.(!!)
다시 말하지만, 과학에서 꼭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권위가 있고 진리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아닙니다.

2. 개신교 측의 이런 어리석은 주장들 때문에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이런 반대 논리를 내세웁니다.
"창조론을 어떻게 이론(Theory)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과학이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요건도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이라고 하면 안되고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
(1) 당연히 창조론을 Theory라고 할 수 없죠. 창조론은 Doctrine이니까요.
(2)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서 '설'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가설', 그리고 하나는 '설화'. 그런데 둘 다 이 논의에서 유의미한 접근이 못됩니다.
- '가설'의 경우 : 앞에서 말한 '법칙/이론/가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가설이라고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창조론은 '가설'이라고 부르기에도 적합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애초에 창조론은 Theory가 아니죠.)
- '설화'의 경우 : 차라리 이 쪽은 교리(Doctrine)로서의 창조론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창조론을 깎아 내려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감정적 만족 이외에 실제 논의에서의 실익은 없습니다. 애초에 창조론이 과학이론으로서 진화론과 대립하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어제 글에서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과 대립관계에 있는 창조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창조과학'이라는 것입니다.)

3. 원래 이렇게 민감한 토론에서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하면 으레 논의가 겉돌고 유의미한 결론에 다다르기 어려운 것이 보통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간단한 사실관계만 바로잡아도(네이버 영어사전만 한 번 찾아봐도...ㅠㅠ)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너도나도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기독인이든 비기독인이든 이 사실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전혀 본질적이지 않은 이 문제로 박터지게 싸우느라 정작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4. 창조과학에 동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창조과학이 창조론의 동의어(혹은 전부)인 마냥 여겨지고 있는 현실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갈등들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4-1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어떤 방식으로'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바로 '창조론'이라고 하는 영역일 것입니다. 성경관과 세계관에 따라 창조론의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떤 방식이든 간에'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정해버리면 기독교 신앙이 성립될 여지가 없거나 심각하게 왜곡된 형태의 신앙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4-2. 바로 이것이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동일시하는 것의 가장 큰 위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이 개신교 창조론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약 창조과학과 진화론과의 대립구조에서 창조과학이 진화론에 비해 훨씬 열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창조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 혹은 성경에 대한 신뢰가 창조과학에 대한 신뢰로 잘못 연결되어 다양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실제로 굉장히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결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쉽게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섞어서 부르는 기독인들의 습관은 고쳐져야 하며(예를 들어서, 어제 글에서 차성훈님께서 제안하신 것인데, 창조론 대신 창조신학이라고 바꿔서 부르는 것도 좋은 시도인 것 같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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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과 함께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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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1. 돌이나 나무에 해당하는 이른바 자연법칙은 단순히 하나의 표현법(현상에 대한 설명)에 불과함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서 그 너머에 무엇인가 실재한다고 할 수 없다. 


2. 반면 인간 본성의 법칙 내지는 옳고 그름의 법칙은 인간 행위(보여지는 것)라는 현실의 사실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가 창안해 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재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법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 이제 논하려고 한다.


1. 인간이 우주에 대해서 가지는 두 가지 관점

  1) 유물론적 관점: 물질과 공간은 우연히 생긴 것으로서 늘 존재해 왔지만, 그 존재 이유는 알 수 없다. 

    우연의 산물로서 우주와 생물은 발생하게 되었다고 본다. 

    [결론] 우주의 배후에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없다.


  2) 종교적인 관점: 우주의 배후에는 그 어떤 것보다 정신(mind)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고 본다. 

     그 존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우주를 만들었다고 본다. 

     [결론] 우주의 배후에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있다.


2.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우주의 배후에 존재하는 자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까?

 

  1) 일반적으로 과학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하는데 과학은 그것을 파악하는데 한계를 가진다. 



   * 과학은 관찰을 통한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다. 과학이 관찰하는 사물들의 배후에 무언가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과학이 던질 질문이 아니다. 배후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은 과학이 할 수 있는 진술은 아니다. 과학이 훗날 전 우주에 있는 것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가 지금처럼 지속되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만으로는 그 배후의 존재에 대한 힌트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2) 과학 말고 하나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우주 중에 하나이면서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을 통해서다. 


  * 그러나 하나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인간이다. 우리에게 인간은 단순한 관찰대상자 일뿐 아니라, 우주의 내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가 앞에서 확인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내지 아니한, 도덕률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3. 따라서 우리 자신을 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 말고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앞에서 도덕률, 인간 본성 법칙, 옳고 그름의 법칙과 같이, 우리 안에 누군가가 심어놓은 법칙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것을 심어놓은 배후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론]  인간만의 경험을 놓고 모든 우주에 다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논리가 아닌가?

    우체국 아저씨가 집집마다 봉투를 두고 갈 때, 우리는 그것을 다 열어보지 않았지만 그 안에 어떤 내용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편지 봉투를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연 봉투에서는 언제든지 편지가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일반화해서 말할 수 있다.(다른 사람의 봉투는 열어볼 수 없으니까...)


   인간으로서 우리가 열 수 있는 유일한 봉투는 인간 자신뿐이다. 우리는 나라는 인간을 열어보았을 때, '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어떤 법칙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한 '내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정리] 루이스는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에게까지 나아간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지금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주를 지휘하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무언가는 내 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재촉하고 그릇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법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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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7일에 지구 근처를 접근했던 소행성에 대한 기사

지구에서 650만 km까지 접근했다가 우주로 가버린 기사. 


http://news.nate.com/view/20121108n18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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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벤자민 워필드"와 같은 신학자들은 새롭게 밝혀지는 과학적,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가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합니다. "모든 빛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열린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책 내용 인용)


1.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 1장 해석에 다시 귀를 기울여보면, 그리고 당시에는 진화나 지구의 나이에 관한 과학적 증거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성경 원문을 세심하고 진지하고 경건하게 읽는다고 해서 젊은지구창조론처럼 글자 하나하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사실 성경을 이처럼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주로 지난 100여 년간 다윈의 진화론에 반발해 일어난 결과다.(p.177)



2.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를 언급하면서, 17세기 교회가 마땅히 유념했어야 할 간곡한 훈계를 잊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대개는 알고 있다. 땅과 하늘과 그 밖의 이 세상 것들, 별의 움직임과 궤도, 심지어 그 크기와 상대적 위치, 예측 가능한 일식과 월식 그리고 일 년 열두 달과 계절의 주기, 동물과 관목과 돌 등에 대해. 그리고 이 지식을 이성과 경험에서 나온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성경의 의미를 전달한다며 이런 주제에 관해 허튼소리를 해대는 그리스도인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교도들에게는 수치스럽고도 위험한 짓이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전반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그리스도인을 비웃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막아야 한다. 


무지한 한 개인이 비웃음을 받는 거야 문제될 게 없지만, 종교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쓴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으려니 생각한다면, 그리고 성경을 쓴 사람들이 비난 대상이 되고 교육 받지 못한 사람으로 내몰려 우리가 애써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가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일반 사람들도 빤히 아는 사실을 두고 실수를 하거나 성경에 관해 바보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성경을 믿을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이니 영적 삶이니 천국이니 하는 것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이미 경험을 통해 이성적 시각으로 터득한 사실을 놓고 성경은 온통 바보 같은 소리만 지껄인다면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 p.160-161)



3.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보수적인 개신교 신학자였던 벤저민 워필드는 사회적, 과학적으로 아무리 큰 변화가 일어나도 종교인들은 그 믿음의 영원한 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진 그 역시 하느님이 창조한 자연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그것을 축하해야 한다고 보았다. 워필드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위대한 말을 남겼다. 


"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성의 진실, 철학의 진실, 과학의 진실, 역사의 진실, 비평의 진실에 반감을 가져서는 안된다. 빛의 자녀인 우리들은 모든 빛에 조심스레 열린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러니 오늘날의 연구 결과를 당당히 마주하는 용기를 기르자.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그것에 열광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빨리 모든 영역에서 진실을 식별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이 어느 곳으로 향하든 더 충실히 따라야 한다." (p.18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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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언어를 읽는 중] 성급하게 신을 등장시켜 자연세계를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

 

신의 언어, 프랜시스 S. 콜린스, 김영사, 97-98면.

 

아직 과학이 풀지 못하는 문제에 신의 신성한 행위를 끌어들이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 옛날 일식에서부터 중세 행성의 움직임과 오늘날 생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빈틈을 메우는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같은 접근법은 오히려 종교에 해가 되는 때가 많았다. 자연계에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틈을 신으로 메우는 행위는 나중에 과학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중대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자연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 때, 불필요한 신학적 주장으로 파멸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신을 끌어들여 현재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이 상황(자연계에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신으로 메우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_추가설명)을 이용해 자신의 신앙을 담보로 내기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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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해 배울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두권의 책.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다.

이 은유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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