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65번째 책인 유다서를 정리하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구약으로 돌아와 성경의 11번째 책인 열왕기상으로 왔습니다. 작년에 정리했던 열왕기 역사를 다시한번 살펴볼 생각도 있고 해서 열왕기상로 왔습니다.

열왕기는 이야기와 역사와 정치를 다루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오는 신학적 메시지를 주는 책입니다. 기대해 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스토리 중심으로 정리해 봅니다.]

1. 다윗의 나이가 많아 늙었다.(1-4절)
  1) 몸을 따듯하게 할 몸 종으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주었으나, 다윗이 동침하지는 않았다.

2.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5-10절)
  1)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로 학깃의 아들이다. 용모가 준수하고 아비에게 칭찬만 받음.
  2) 아도니야는 당시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였고 그들은 아도니야를 따름.
  3) 반면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따르지 않음.
  4) 아도니야를 따르는 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임

3. 선지자 나단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자 함(11-27절)
  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가 지금의 상황을 알려줌(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함)
  2)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하나님의 약속대로) 방책을 알려줌
  3) 밧세바가 다윗의 침실에 들어가 빨리 왕이 될 자를 선정해 달라고 요청함. 아비아달이 왕이 되려고 하고, 그렇게 되면 솔로몬이 죄인이 될 것을 지적한다.
  4) 나단이 다시 들어가 재차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을 강조하여 요청함.

4.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다(28-39절)
  1) 밧세바를 불러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솔로몬을 오늘 왕으로 세울 것을 약속하여 준다.
  2)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불러서 솔로몬을 기혼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치자로 삼으라고 명령한다.
  3) 그대로 시행하여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나팔을 불어 온 국민에게 알린다.

5. 오히려 위기에 처한 아도니야(40-53절)
  1) 아도니야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서)
  2) 아도니야와 함께 했던 모든 손님들이 다 놀라 도망갔다.
  3) 아도니야는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제단 뿔을 잡고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원하자 솔로몬은 선하다면 살겠지만, 악하다면 죽으리라는 말만 주고 아도니야를 집으로 돌려보냄.

[정리2. 본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재정리, 요약해 봅니다.]

열왕기상 1장은 다윗의 시대가 끝나고 그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당시에 유력한 왕자 아도니야가 왕이 되지 않고, 솔로몬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본문에서 아도니야는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솔로몬은 매우 수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나단과 밧세바가 솔로몬을 왕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다 이루어진 것을 솔로몬을 받는 형식으로 비춰짐)


하나님은 힘있고 강한자, 당시의 대세인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지 않고,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다. 이는 이스라엘의 왕조가 단순한 힘과 정치의 역학 속에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1. 아도니야는 솔로몬 왕에게 매우 위협적 존재가 될 것이다.
2.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장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아도니야의 편이었다.
3. 반면,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솔로몬의 편에 선 자들이었다.
4. 솔로몬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위태로웠으나, 왕이 된 이후에는 왕으로서 <아도니야>를 견제하였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왕은 되고자 하는 자가 되는 것인가, 세워주는 자로 말미암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이 다윗의 다음을 이을 왕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읽게 된다. 따라서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결정(뜻)을 거스르는 자가 되는 것이고, 나단과 밧세바의 경우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의 승리로 일단락 된다.

   그러나 역사를 좀 더 생동감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을 읽으면서 드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왕이란, 되고자 하는 자가 되는 것인가?(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세워주는 자들로 말미암아 세워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도니야는 왕이 되고자 했다. 그는 왕이 될만한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왕의 인정을 받았으며, 준수했으며 사람들을 규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아마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솔로몬을 왕으로 정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아도니야가 솔로몬보다는 훨신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봤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도니야는 거의 왕이 될 뻔 했다. 이에 반해 솔로몬은 왕이 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성경에서 볼 때) 그는 왕으로 세워진 왕이다. 나단에 의해서 밧세바의 요청과 나단의 직언의 도움을 받아 왕으로 세워진 인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이 왕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왕이 된 후에 아도니야를 다루는 모습(51-53절)은 왕의 권위와 풍모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왕이 되고자 하는 자(능력과 의지를 가진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본인은 소극적이지만 세워져야 할 사람을 세워야 할 것인가? 물론 세워져야 할 사람이 누군인지 어떻게 알겠는가?(솔로몬이라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한다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면, 권력과 힘과 의지를 가진 누군가가 아니라, 시대 정신 혹은 사람들의 지지를 일으키는 그 누군가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수동적일지라도 그를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하나님의 명확한 뜻으로 세워진 솔로몬 조차 많은 과오와 실패를 가진 왕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무흠한 자를 우리 가운데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시대 정신의 반영이면서, 사람들로부터 세워져가는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 아닌가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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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경의 65번째 책인 유다서에 도달했네요. 암튼, 더디가도 꾸준히 하면 가긴 가는것 같습니다. 바로 이어서 계시록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까지는 해 봅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의 정리]

1.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자(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

2. 유다가 편지를 쓴 목적
  1)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 것이다.
  2) 이는 공동체 안에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2)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다.

3. 유다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편지를 썼다.
  1) 하나님은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
  2) 천사들 중에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들을 큰 심판의 날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둠
  3) 소돔과 고모라도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형벌 받음.
   :  그것이 거울이 되었다. 
 
  [경계해야 할 이 사람들에 대해서]
   (1) 그런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한다.
     : 천사장 미가엘도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아래 내용으로 수정합니다. 13.05.15)

     [김백합님의 수정요구로 수정됨]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비방을 하지 않은게 아니라

   누가 모세의 시체를 가져갈 것인지 마귀랑 변론할 때에 감히 마귀에게조차도 비방하는 말을 하지않았고 다만 "주님께서 네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다는 말 같은데요


   (2)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한다.
     : 따라서 이들은 이성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3)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로 행하며,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가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4) 이 사람들은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5) 아담의 7대손 에녹은 이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 주께서 경건한 자들과 함께 임하셔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불경건한 행동과 불경건한 말을 정죄하리라.
   (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4. 사도들의 권면을 잊지 말라
  1)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2) 이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3)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영생에 이르도록)
  4)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5)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6)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5. 인사: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주.

[정리2. 본문 내용의 재정리]

유다서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공동체 안에 악한 마음으로 가만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다.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은 자들은 자고로 공동체 가운데 분리되어 심판을 받았다.(출애굽 백성들 중에도 있었고, 천사들 중에도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 중에도 있었다.)
이들은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방탕한 삶)이고, 교회의 치리를 받지 아니함으로 권위를 업신 여기는 자들인듯 하다. 그리고 함부로 비방하여 가인의 길로 혹은 발람의 길로 가는 자니 결국은 멸망에 이를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암초요 삯꾼이요 열매없이 껍데기에 불과한 사람이라 뿌리까지 뽑힌 나무에 불과하다.
성도들은 마지막 때에 사도들이 일찌감치 일러준대로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고, 거룩한 믿음과 사랑,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림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힘쓰라.

주님은 너희를 능히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그 영광 앞에서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분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4절)

바울은 주로 율법주의자와 논쟁하면서 사역을 했고, 또 그들을 대항하며 편지들을 작성했다는 것을 그의 서신서들을 통해서 보게 된다. 반면 재미있게도 히브리서 이후로 나오는 야고보서부터는 율법적인(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베드로의 서신도 그렇고 요한의 서신은 교회를 힘들게 했던 이단에 대한 경계를 다루는데, 이 이단이라는 것은 <육체를 방종하게 했던> 이단으로 보여진다. 유다서도 마찬가지 이단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들을 이단으로 보고 이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 이후 서신들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바울은 율법주의자(행위 구원)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구원>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던 무리중 독버섯이 자랐다. 바로 <은혜를 빙자하여 방탕한 삶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성경은 이들에게 대해서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인이라고 규정한다.(요일 5장) 이들과는 상종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은 언제나 특정 정황 속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바울의 서신의 입장에서만 복음을 배워온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야고보나 베드로나 요한, 유다의 서신들도 열심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킨 이단들을 경계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잊지 않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바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바울의 신학 만이 신학의 전부인것처럼 가르치고 배웠던 것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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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애플-삼성 소송, 한_미 양국 정반대 결과 왜

http://zum.com/#!/news=001201208263510970&dir=top&t=0

 

중앙일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애플세' 비상

조선일보: 삼성-애플 배심원들, 자전거상-건설사 직원 등이 22시간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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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차이가 나네요. 기사 제목부터(2012년 8월27일자. 줌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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