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명확하게 분석하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맞춰 내용들을 살펴봅니다. 내용들이 가설을 입증해 준다면 그것은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하고 상식적인 가설을 세워서 요한일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전제하면서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크게 부딪히거나 충돌이 없다면, 그 가설은 좀 더 근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 좀 더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는 모든 구절과 단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길을 잃기 때문이죠. 큰 맥락과 흐름을 봐야 합니다. 근사한 표현이 있는 구절이라고 해도 그것이 전체적 논리의 맥락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의 강조이거나 부연설명이라면 그 구절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리1. 내용 정리... 굵직한 맥락 중심으로]

1. 논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다.
        또한 나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논리: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2절)
   권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3절)
       이것을 행하는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세상을 이긴 자들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12절)

2. 요한이 이 글을 쓰는 목적
  1)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2) 너희들은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데, 누구든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너의 필요를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구하라는 것이다.)
  3)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3. 마지막 정리(확신하고 너 자신을 지속적으로 지키라)
  1)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 거대한 이단의 폭풍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견딘 것은 하나님의 지키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19절)
  2)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그 안에 있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3)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정리2. 본문의 재구성]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사랑하라)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이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이다.(사랑이 불가능하고 어렵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요한일서를 마무리하면서 주는 몇 가지 당부가 있다.


1. 이단에 휩쓸리지 않고 잘 견딘 너희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이 확인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난 자들을 모든 악에서 지켜주셨다. 너희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실히 알아라.


2. 범죄한 자 중에 사망에 이르지 않을 정도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구하라. 도가 심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변방에서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하며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리라.


3.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이단을 경계하라)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서신서는 교리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목회를 위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교리적인 부분과 내용이 있지만, 그것은 교리를 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상황에 맞게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목회적 가르침은 교리와는 차이가 있다. 교리를 우리가 가지는 진리를 명확하게 하고, 다른 이론을 파하기 위한 가르침이지만, 목회적 가르침이란 성도를 신앙안에서 굳건하게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함이 더 크다. 이것을 혼돈하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에서 길을 잃고 만다.

    로마서가 복음의 교리에 초점 맞춰저 있다면(물론 로마서도 목회적인 목적을 가지고 썼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교리적인 부분이 강한 내용에서도 중가중간 목회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목회적 가르침에 집중한다), 요한일서는 목회적인 가르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본다.

   이것을 잘 구분해서 읽는 것도 성경을 잘 읽어 낼 수 있는 중요한 팁이다.

 

2. 요일 5:14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라는 내용의 의미.

   이 구절은 기도할 때 믿음을 가지고, 구한 것을 얻은 줄로 확신하라고 강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본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기도의 내용은 개인적인 간구라기 보다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한 자'에 대한 기도를 말한다. 이들에 대해서 구하면 하나님께서 구한 바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일이나 어떤 물건과 성취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사람을 얻고자 하는 기도라는 것이다. 잃어버릴 뻔한 사람에 대한 기도, 포기해 버릴 수있는 사람에 대한 기도, 다시 기회가 있는 사람에 대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로 <중보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잃어버릴 위치에 있는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줄로 믿고 또한 기도한 것은 얻은 주로 믿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마 18:15-20 에도 죄를 범한 형제에 대한 교정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그 절차를 다루고 나서, 기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너희 중에 두 세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또한 같은 맥락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기도, 특히, 죄인과 연약한 자에 대한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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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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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올린 글에서 중세시대 성경을 모국어인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에 대해서 글을 옮긴 것이 있었다. 이번에는 윌리엄 틴데일이라는 사람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위클리프와 틴데일을 역사적으로 이렇게 평가한다.

"위클리프는 성경의 일부를 번역했다는 사실보다는 남들에게 영향을 미친 점이 더 높이 평가되는데 비해, 틴데일은 대부분의 성경을 자기 손으로 직접 번역했던 인물이다. KJV는 여러 면에서 틴데일의 번역판을 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틴데일이 태어날 때(1494년)만 해도 일찍이 1408년에 만든 헌법(위클리프의 번역판에 대한 대책으로 비공인된 영어 성경을 일체 읽어서는 안된다는 금지령)이 여전히 실효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서 틴데일은 새로운 성경 번역에 착수하기 위해 런던에 있는 주교에게 승인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여전히 가톨릭 신앙을 변호하고 있었던 만큼 그만 퇴짜를 맞고 말았다. 그래서 틴데일은 1524년에 독일에 이주해 다시는 잉글랜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독일에서 그는 비텐베르크에 살고 있는 루터를 만났고 신양성경 번역을 완수하게 되었다.

 

1526년 초, 많은 신약성경이 '상품을 넣은 상자, 술통, 옷 짐짝, 밀가루와 옥수수 부대 등에 숨겨진 채' 잉글랜드로 밀반입되었다. 헨리는 틴데일의 번역에 반대했고, 교회 공직자들은 성경을 구입해서 공개적으로 불태우기도 했다. 이런 반대가 오히려 판매를 도와주었고 틴데일이 죽을 때까지 잉글랜드에서 5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한번은 유럽을 방문하던 어느 주교가 한 상인과 접촉해 틴데일 신약성경을 모두 사겠다고 나섰다. 속셈은 그것을 모두 잉글랜드로 가져가서 런던에서 불태울 생각이었다. 한 친구가 틴데일에게 그렇게 하면 빚을 모두 갚고 최근에 수정한 부분을 포함시켜 더 많은 부수를 인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거래가 성사 되었다. 주교는 그 책들을 모두 확보했고, 패킹햄(상인)은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고, 틴데일은 돈을 벌었다' 이제 틴데일은 구약성경에 관심을 돌려서 1530년에는 모세오경의 영어번역판을 선보였고, 1531년에는 요나서를 출판했다.

 

틴데일은 결국 훗날 배신자에 의해서 잡혀 화형에 처해지는 죽음을 당했지만, 그가 젊은 날 고백했던 말처럼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쟁기를 모든 소년이 성직자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할 것"이라는 고백처럼 살다가 갔다. 그는 마지각 옥중에서도 히브리어 성경과 히브리어 문법책과 히브리어 사전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마지막 화형을 받는 현장에서도 '주님, 잉글랜드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윌리엄 틴데일은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탁월한 번역가였다. 그의 번역에 나오는 많은 어구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성경번역의 역사, p154-157 정리)

1. 성경의 번역본들은 그 시대의 언어(일상언어)를 표준화하고 고급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도, 틴데일의 영어 성경도, 또한 성경의 한글 번역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2.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위험하다고 본 한 주교(당시의 가톨릭)의 번역된 성경을 제거하고자 한 행동이 오히려 더 많은 영어 번역본을 활자화할 수 있는 자금을 대주고, 영어로 된 구약 성경 번역을 위한 자금줄이 되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3. 윌리엄 틴데일은 성경번역을 통해 일반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일에 목숨을 걸었다... 목회자로서의 나의 사명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자명한 답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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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수련회를 다녀와서 다시 요한일서를 시작합니다. 장별요약이 좋은 것 중에 하는 어느 정도 일정한 패턴의 생활 속에서 중간에 새로운 상황이 되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시간에 작성했던 글을 다시 한 번 읽고 흐름을 잡은 후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정리1. 본문 내용 정리]

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1절)
  1) 왜?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서 나왔음이라. 따라서 영을 다 믿지 말라.
  2)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
   (1) 육체의 악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육체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율법과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함.
  3)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2.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들을 이긴(그들에게 미혹당하지 않은) 자들이다.(4절)
  1) 그들은 세상에 속해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2)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는다.
  3) 반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것으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안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7,21절)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안다.(조건이 아니라 원리)
  2)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함)
  3)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다.
   (1)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려고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셨다.
   (3)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 우리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는 사람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리라. 따라서 우리가 사랑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고, 사랑을 온전히 이루면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다. 따라서 성도는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한다.
   (5)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이다.
    :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리2. 본문 내용을 흐름에 맞춰서 다시 정리]

기독교가 영적인 종교이기는 하나, 모든 영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단의 영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을 구분해야 하고, 그 구분하는 기준 중에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이다.(당시 이단의 영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것이었다.)


한차례 이와 같은 이단이 요한의 공동체를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넘어졌고, 교회를 떠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그 영향을 받은 세력들이 남아있었고, 또 그 가운데 흔들리는 성도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요한은 그들의 편과 우리 편을 명확하게 갈라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말이 통할 수 없는 집단이다. 그들은 그들의 말만 듣기 때문이다.


이제 남아있는 성도들간의 중요한 지침은 사랑이다.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했던 그간의 과정을 거쳐,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났다. 그리고 그 과정중에 남아있는 자들 중에도 많은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전쟁후의 피폐한 상황과 같은 것이다. 이제 살아남은 이 공동체는 서로간의 사랑으로 다시 세워져야 한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받았고, 사랑을 실천해야만 한다. 사랑은 절대계명이면서 동시에 시대적 사명이었던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이단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후에 그 후속작업의 중요성.

요한은 영지주의 이단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교회를 휩쓸고 지나간 공동체를 향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듯 하다.(에베소 교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시록 2장에 언급된 에베소 교회는 이단을 정죄하고 판단하느라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는데, 요한복음 4장에서는 그 메시지와 매우 일치하는 상황을 접한다.) 이런 큰 어려움을 만난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두가지 메시지 일 것이다.

  첫째는, 남아있는 세력 혹은 정리되지 못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해 주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모호함이나 포용이 아니다. 분명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며,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요한일서 1-3장은 그런 측면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는, 이단논쟁으로 전쟁터처럼 상처입은 공동체를 사랑으로 다시 세워내는 것이다. 전쟁은 큰 상처를 만들고, 가족간에도 분열과 다툼을 만들어 낸다. 이 상처는 전쟁이 마친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 내면의 상처, 관계의 상처가 서로 싸우는 중에(진리의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할일서 4장부터는 <서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요한계시록 2장에 언급된 에베소 교회도 같은 상황에서 그런 지적과 책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이다.

2. <서로 사랑하라>는 당시 시대적으로 가장 시급한 메시지 였으나, 이 메시지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시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갈등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크게는 전쟁으로, 작게는 대립과 양극화(계급,빈부 등과 같은)로 늘 긴장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유경쟁의 시대인 지금 그것은 성장과 생존이라는 미명하에 조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이 피곤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부는 있으나, 영혼과 삶은 가난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치유하고, 이런 핍절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대상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처럼, 자기 희생을 통한 사랑을 감행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되며 그것이 사랑으로서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공동체와 사회는 치유가 되고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교회는 전해야 한다. 세상에 전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부터 교회는 그것을 실천함으로서 <서로 사랑함>이 교회의 핵심 강령이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예증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세상을 향해 <사랑의 메시지의 실효성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도 온전하지 않기에 완전한 기준의 사랑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위인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교회에서 보여지고 있고,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이것 저것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비상식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초상식적인 가치관이 일어나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비상식적인 가치관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만 보여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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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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