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이 악한 왕이 었지만, 얼마나 악했는지 오늘 본문에서 보여준다. 지난 장에서 아람 왕에 대해서 한 잘못은 자칫 교만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마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것은 치졸하며 악한 행위다. 아합을 통해, 이세벨을 통해 무고하게 흘린 피가 이스라에의 진노를 쌓고 있는 것이다.

[정리1. 내용 정리]

1. 나봇의 포도원 사건
  1) 이스르엘에 아합의 왕궁 가까이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다.
  2) 아합은 그 포도원을 갖고자 해 다른 포도원이나 돈으로 구입하려 했으나 나봇은 자기 조상 대부터 내려오던 포도원을 팔기 원치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금하신다고 생각했다.
  3) 아합이 그 일로 왕궁으로 돌아와 눕고 식사도 아니하자, 이세벨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4)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왕이 뭐 이런 일로 자리에 눕는가? 책망하고는 이세벨이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나봇에게  하나님과 왕을 모독한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라 함.
  5) 나봇은 거짓 증인자들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이세벨은 그 일을 아합에게 고한다.
  6) 그런 일이 마치고 아합은 그 포도원 밭으로 간다.

2. 나봇의 포도원에서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다.
  1) 하나님의 명령으로 엘리야가 아합을 나봇의 포도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다.
  2) 엘리야의 심판 예언
   (1) 엘리야가 아합에게 책망함.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2)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도 핥게 되리라.
   (3)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 버리고, 네게 속한 자를 모두 멸할 것이다.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안처럼 멸절하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함.
   (4) 이세벨도 마찬가지다.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에서 이세벨을 먹게 될 것이다.
   (5) 아합과 같이 악한 자가 없었던 것은 그가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좇아내신 아모리 사람과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고 가증히 행함.

3. 아합의 겸비함과 하나님의 누그러짐
  1) 엘리야의 이모든 말을 듣고는, 아합이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베에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풀이 죽어 다녔다.
  2) 하나님은 아합의 이 모습을 보시고는 아합의 겸비함이라고 보시고, 재앙을 아합의 때가 아닌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신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아합의 개인적인 사건들 중에 가장 치졸한 사건이 언급된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나봇의 포도밭을 얻기 위한 아합이 나봇의 반대로 얻을 수 없게 되자, 이세벨이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이게 함으로서 나봇의 포도밭을 아합이 차지하게 끔 한 사건이다.


한 나라의 왕이 작은 포도원 하나를 갖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며 자리에 누운 것과, 권력과 힘으로 그것을 부정하게 빼앗아 왕에게 돌린 이세벨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이세벨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장로와 귀족들.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나봇. 이 사건을 하나님을 통해 듣고 알게 된 엘리야.


권력을 중심으로 한 모략과 거짓, 그리고 살인까지. 아합이 작은 포도원을 갖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엄청난 죄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고 이것을 별 문제 없이 누리고 있는 아합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이와 같은 죄악을 범한 아합과 이세벨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알리신다.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아합이 겸비함을 보고 하나님의 진노가 잠시 누그러진다. 그리고 그 재앙이 아합의 때가 아닌 그 아들의 때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아합 치졸해도 너무 치졸하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왕이다. 그런 그가 이스르엘 왕궁 근처에 있는 포도원이 가지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땅의 주인인 나봇이 팔기를 거절했다. 나봇에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 자신의 선조로부터 내려온 땅이었고,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아합의 치졸함은 여기서 부터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포도원을 갖지 못하자 그는 마음에 병이 나 버렸다. 침실로 들어가서는 등지고 누워버렸다. 밥도 먹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포도원을 가지지 못한 것과 왕의 제안이 거절되었다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해 가지고... 이것이 아합의 수준이다. 왕의 면모를 찾아 볼 수 없다. 왕의 대범함도 풍요로움도 찾아 볼 수 없다. 초딩 아합을 보는 것 같다.

인격과 덕망을 갖추지 못한 채 왕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그 백성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아합은 아버지의 덕으로 왕이 되었지만,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 그에게 왕의 품위와 인격을 찾아 볼 수 없다. 왕의 자질이 없는데 왕이 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나오고 이제 삼자구도로 정리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인가? 제발 대통령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세우지는 말아야 겠다. 정말 덕망있는 사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우리가 그 인격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세워야 하겠다. 경제 대통령이란 말.. 사실 처음부터 그것은 잘 못된 것이었다. 좀 덜 먹고 좀 덜 쓰고 좀 빠듯하게 살아도 우리가 대한민국 백성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우리 대통령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는 돈은 많이 못 벌어와도,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고... 어느 누구를 향해서도 떳떳하게 외치고 싶은 것처럼, 나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권력을 등에 업고 나봇의 포도원이나 탐내는 건, 그건 왕이 아니라 조폭이나 할짓이다.

2. 이세벨, 악해도 너무 악하다.

궁상을 떨고 있는 아합을 보고 기가막혀 했던 사람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왕이 뭐 이런 일로 궁상을 떨고 있냐고 남편인 아합을 뭐라 했다. 그리고 이세벨은 간단하게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귀족과 장로들을 매수한다.(위협할 수도 있고) 그들은 거짓 증인을 세우고, 느닷없이 나봇을 고소해서는 법정에 세운다. 각본대로 거짓 증언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봇의 변명도 채 들어보기도 전에 형을 집행해 버린다. 나봇은 경황없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원은 아합이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권력형 비리가 아닌가? 권력형 폭력이고 권력형 살인이 아닌가? 권력을 통해 없는 죄도 만들고, 재판도 조작하고, 결국은 사람도 죽이고 그리고 나서 자신들이 가지고자 했던 것들을 가지는 권력형 죄악.

많은 선지서에 지적하고 권력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죄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권력과 힘을 가지고 약자를 억압하며 그들의 작은 것마져 약탈해가는 자들의 죄에 대한 지적. 결국 그것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유가 아니었던가?

여전히 권력은 그 힘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흐르려고 한다. 따라서 그것을 대항하는 자들에게는 모략과 술수로 무력화한다. 또한 약한 자의 것은 작은 것마져 빼앗아 가려고 한다. 이것이 절대 권력이 가지는 무서움이다. 이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왜곡의 고리를 만든다. 따라서 권력은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견제하는 기관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한다. 그래서 삼권분립이 나온 것 같은데... 우리 나라에게 그 역할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시민사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무한 권력은 무한의 악을 만들고 결국은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3. 하나님, 아합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시다니... 정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듣고 아합은 풀이 죽었다. 잠깐이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것 같다. 그리고 마음이 겸허해 진 것 같다. 잠깐이겠지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해 주신다. 그것을 겸비한 것이라고 인정해 주신다...

하나님이란 분... 참 놀랍다. 그 악한 아합에게서 잠시 보였던 <겸비>를 놓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 진노를 당대가 아니라 아들의 때로 옮기시겠다고...

하나님은 심각한 죄인을 보시면서도 그의 죄만 보시는 것이 아니다. 죄인이 간혹가다 할 수 있는 작은 <선의>를 눈여겨 보신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것에 가산점을 주시고 <긍휼>의 근거로 삼은신다. 만약, 이런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다면, 긍휼을 얻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죄인이라고 우리는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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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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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 로저올슨 저, 죠이선교회,p 17.

내용을 제가 이해한 용어로 옮긴다면 이정도 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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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복음주의가 잘 구분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국 근본주의의 대표 주자가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하고, 언론과 미디어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서 진짜 복음 주의자들로 하여금 <복음 주의자>라는 표현 쓰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복음 주의>라는 집에 이미 <근본주의자>들이 들어와서 자기 집처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복음 주의>라는 푯말을 붙인 집에 살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을 보면서 저들이 복음주의자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근본주의와 복음 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이 설 곳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유주의>라는 집에 머물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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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이 복음주의자들의 불편한 진실이다. 자기 집을 빼앗겼고, 근본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라는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된 복음 주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자유주의자란 이름을 빌려 쓸수는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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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에 대한 본격적인 잘못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7장부터 아합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아합의 본격적인 죄의 대목은 구체적으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20장부터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아마 대표적인 죄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아랍의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한다.
  1) 벤하닷이 32명의 왕과 함께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아합 왕의 은금과 아내와 자녀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자, 아합은 내 것은 다 벤하닷의 것이라고 했다.
  2) 벤하닷이 다시 사신을 보내 내일 당장 내가 왕과 신하들의 집을 수색해서 마음에 드는대로 가져가겠노라고 말함.
  3) 아합은 이 문제를 장로와 백성들에게 알리자, 모두 반대함으로 벤하닷의 사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함.
  4) 벤하닷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자, 이스라엘의 왕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응함. 이 말에 벤하닷이 전쟁을 준비함.

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1차 전쟁에서 승리함.
  1)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타나 이 아람의 큰 무리를 이기게 하시겠다고 함.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하겠다고 하심.
  2) 아합은 누구를 통해서 그리 하겠는가의 질문에 선지자는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겠다고 하시고는, 왕이 직접 싸움을 시작하라고 한다.
  3) 청년의 숫자는 230명이고, 그 외에 백성들의 수는 7000명 이었다.
  4) 이 청년들이 아람에게 나아가자, 아람은 이들을 우습게 알고 있다가 아람이 전쟁에서 패함. 아람은 이스라엘에게 쫓겼고 벤하닷은 말을 타고 간신히 도망침.

3. 이스라엘과 아람의 2차 전쟁
  1) 그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나아가 아람이 내년에 다시 전쟁을 일으킬텐니 전쟁을 준비하라고 함.
  2) 아람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의 신이지 평지의 신은 아니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전쟁할 것을 제안함. 왕은 그 제안대로 준비함.
  3) 해가 바뀌어 전쟁을 하려고 마주 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자손과 아람의 병력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4) 선지자는 이 평지 전쟁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심으로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한다.
  5) 또 다시 이스라엘이 아람을 격파하고 벤하닷은 다시 도망하여 신하들과 골방에 숨는다.

4. 아합 왕의 결정적인 잘못들
  1) 벤하닷이 아합 왕에게 생명을 구걸하자, 아합은 벤하닷을 자신의 형제처럼 대함
  2) 벤하닷은 자신의 부친이 빼앗은 모든 성읍을 돌려주고, 다메섹에 이스라엘 왕을 위한 거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고는 벤하닷을 살려주었다.
  3) 한 선지자가 다른 친구로 하여금 자신을 치라고 한 것을 거절하자 사자에 의해 죽게 됨.
  4) 다른 친구가 침으로 상하게 된 그 선지자가 왕에게 변장하고 나아가서 상황을 말함.
     전쟁 중에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한 사람을 맡기며 그를 잃으면 그 생명으로 대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은 한 달란트로 대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어찌 하다가 맡은 사람을 잃어 버렸다고 하자, 아합 왕은 네가 약속한 것이니 네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판결한다.
  5) 선지자는 변장한 것을 벗어 버리자, 왕은 그가 선지자 중 한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네게 맡긴 벤하닷을 네가 임으로 놓아주었으니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들은 그의 백성들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함.
  6)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른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아합 왕 시대에 아람 왕 벤하닷의 침공이 있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에 비해 아람은 강력한 국가였다. 벤하닷은 사람을 보내 이스라엘을 떠 보는데, 이스라엘이 순순히 나오니까 당장 가서 눈에 보이는대로 가져가겠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약국이라고 하지만, 무례할 정도의 방식에 이스라엘의 백성과 장로들은 반발하고 결국은 전쟁을 할 것을 결정한다.


승산이 없는 전쟁일듯 했지만,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주면서 승리할 것을 약속해 준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왕이 직접 지휘하면서 나갈 것을 지시한다. 선지자의 방식대로 아람을 선제 공격하자 아람은 의뢰로 쉽게 무너지고 만다. 첫 전쟁에서의 승리를 얻게 된 것이다.

선지자는 흥분한 아합 왕에게 나타나서 내년에 다시 전쟁이 있을 것이고 그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제안을 한다. 다음 해 이스라엘에게 진 아람은 군사를 정비하고 전략을 다시 세운다. 평지에서 전쟁하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번 전쟁에서도 승리할 것을 대언한다. 역시 상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람을 격파하고, 아람의 왕 벤하닷은 신하들과 함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골방에 숨게 된다. 두 번째 완전한 승리가 눈 앞에 온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여기서 잘못을 행한다. 목숨을 구걸하는 벤하닷을 살려주고, 그의 타협안에 결재를 한다. 뺏긴 성읍을 돌려주고, 다메섹에 아합을 위한 도로를 만들겠다는 제안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아람 왕을 살려줌으로 결국은 훗날 아람이 가시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되고 만다.


이런 아합의 교만과 방만함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한 선지자는 자신을 전쟁 중에서 온 사람처럼 변장하고는 자신이 맡아야 할 사람을 제대로 맡지 못했다는 것으로 판단을 받으러 온 것처럼 아합 왕 앞에 섰다. 그의 이야기는 바로 아합 왕 자신의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자기 자신의 죄를 자신이 정죄하고 만다.


하나님은 벤하닷의 목숨을 아합에게서 찾고, 아람 사람의 목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찾겠다고 하신다. 이로 인해 아합은 근심하며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아합의 대표적인 죄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그가 교만해 진 것이다.

아합은 아람과의 어려운 싸움을 싸워야 했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하나님은 아합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견하셨고, 또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시해 주셨다. 그대로 따랐을 때,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다.

아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만 보고, 평야에서의 전쟁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도 하나님은 아람의 교만을 깨뜨리고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며 승리하게 하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고, 아합의 참 모습은 이 때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의 상황(벤하닷을 죽여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다. 마음이 높아진 것이며, 마치 자신이 아람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는데도 말이다... 아합은 벤하닷을 형제라고 하고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를 살려서 내보낸다. 

승리와 영광이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을까? 부모의 풍요로 말미암은 풍요가 마치 자신에게 능력이 있어서 온 풍요처럼 생각하는 자식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리석은 자는 절구에 머리를 넣고 빻아도 그 미련함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합이 딱 그 꼴이다.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한다. 내 실력인지 주변 누군가의 도움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인지. 하나님의 도움을 인식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람이 모인다. 그러나 자기 혼자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떠난다. 심지어 하나님도 떠나시는 법이다.

2. 자기가 자신을 정죄하는 사람, 아합.

아합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지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선지자가 동원된다. 그는 하나의 쇼를 한다. 마치 전쟁중에 부상당한 병사처럼 자신을 변장하고는 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을 받으려고 아합 앞에 나타난다.

전쟁 중에 누가 나에게 사람을 맡겼는데, 그 사람을 잃게 되면 내 목숨으로 갚든지 아니면 은 한 달란트로 갚든지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사람이 전쟁 중에 경황이 없어서 그만 그 사람을 잃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에 대한 판단을 묻는 것인데, 아합은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이 맡겨놓은 벤하닷을 풀어준 사건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한채, 맡긴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행위를 판단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아합의 판결대로 아합에게 판결하셨다. 벤하닷의 생명을 대신해 아합의 생명을, 아람 사람의 생명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생명을... 얼마나 가슴아픈 판결인가?

나는 종종 내 아들의 그릇된 행동을 판결하면서, 그 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판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깜짝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때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아들의 형량을 감해주곤 한다. 나도 그런데...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할 때, 혹 그것이 나를 향한 판단과 정죄가 되지 않는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형량을 너무 과다하게 잡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혹시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이 인내와 사랑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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