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 4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했다. 


  * 여호야김 4년은 주전 605년으로 갈그미스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이김으로 세계 역사의 흐름이 바벨론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해이다. 


2.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르마리 책을 가져다가 요시야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해서 한 말을 기록하라고 지시하신다. 그렇게 해서 유다의 가문들이 그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3.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러 예레미야가 부르는대로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도록 했다. 


4. 예레미야는 자신이 붙잡혀 있으므로, 바룩에게 명하여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라고 명한다. 그들이 기도하면 악한 길에서 떠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향한 분노가 크시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지시를 따라 성전에서 낭독한다.(여호야김 5년에)


5. 하나님의 성전에서 바룩이 낭독한 것을 들은 사반의 손자 미가야가 그 내용을 왕궁에 있는 서기관과 고관들 중 일부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바룩을 불러오게 하고 그 글을 읽어 낭독하게 하여 듣는다. 놀란 서기관과 고관들이 그 글이 어떻게 쓰여진 것인지를 묻자, 바룩은 예레미야가 불러준 것을 쓴 것이라고 한다. 고관들은 바룩에게 가서 예레미야야와 함께 숨고 있는 곳을 알리지 말것을 말한다. 


  * 서기관들과 고관들은 바룩이 읽은 이 글이 여호야김 왕의 마음에 걸림이 될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 글을 읽도록 유도했고(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지 않은가!) 더불어 이 내용을 제공하고 작성한 예레미야와 바룩으로 하여금은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한다. 


  * 그래.. 우리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이들처럼 권력작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도피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만큼의 태도는 잃지 말자. 


6. 이 두루마리를 왕 앞에서 낭독하자, 여호야김은 여후디가 서너 쪽을 읽으면 그것을 칼로 잘라내어 화로에 태웠다. 신하들이 그렇게 하지 말도록 말렸지만, 왕은 듣지 아니했다. 그리고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다. 


  * 여호야김은 아니다 다를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없었다. 불경건하게도 그 말씀을 잘라 불에 태워버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호야김 왕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고집스럽고 완악한 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7. 왕이 두루마리를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다른 두르마리를 가지고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라고 지시하신다. 더불어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한 말, 바벨론 왕이 이 땅을 정복하고 황폐하게 할 것에 대해서 듣기를 거부했는데, 오히려 그에게 말한다.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라.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예레미야는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이전에 불사른 책에 쓴 내용을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다. 


  * 여호야김 왕이 바룩의 두루마리를 태워버린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고집스럽게 다시 쓰도록 하시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변경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라 보인다. 하나님은 말씀은 우리가 무시한다고, 불태워 버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서를 썼다는 증거로 사용되는 구절이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예레미야서를 기록했음을 알게 된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기록이란 장기적인 보존을 위한 것이며,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위한 방식이다. 그것이 이것이 명확하며,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더불어 여호야김 왕이 그 두루마리를 불태워 버리자, 다시 쓰도록 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의지와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여호야김 왕이 얼마나 완악한 왕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의 주신 말씀임을 알고도 그것을 태움으로 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 글을 작성한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도록 함으로 적극적인 그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여호야김은 돌이킬 수 없는 왕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며, 질책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왕이며 그 통로 자체를 막아 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3. 바룩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두루마리를 받아 여호야김 왕에게 읽도록 주선을 했던 관리들의 모습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예레미야나 바룩과 같은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사는 아니다. 그들은 권력 아래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바룩의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야기는 반드시 왕에게 들려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그 두루마리를 읽을 수 있도록 주선했고, 왕이 그 내용을 싫어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예레미야'와 '바룩'을 지켜주기를 원했다. 


우리 대부분은 예레미야도, 바룩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숨겨주면서도, 그들의 메시지는 왕에게 전달되도록 했던 중간 관리의 역할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와 같은 중간 관리자가 있는 것 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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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의 죄가 더욱 크냐로 심판의 우선권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먼저 고칠 것인가로 징계의 우선권을 두신다. 



[성경한장:예레미야 25장.]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1)


  *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째는 주전 605년을 말한다.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그 때가 609년이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났으니 605년이다. 주전 605년에는 세계사 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애굽과 바벨론과의 전쟁인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의 판도는 변화되기 시작했다.애굽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바벨론의 영향력이 근동지역에서 극대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유다는 그로 인한 위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2. 내가 요시야 왕 13년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해서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았다.

3.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다. 

  -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 땅에서 살 것이다. 우상을 버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하였으나 듣지 않음.


  * 유다가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요시야 13년부터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유다가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한 길에서 우상 숭배에서 돌아오도록 요청했으나 네가 듣지 않았다. 


4. 그래서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을 쳐서 진멸하여 놀림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게 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5.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다. 70년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이다.


  * 그래서(완악하게 듣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 유다를 쳐서 진멸하고 놀림거리와 웃음거리를 만들어 버리시겠다고 하신다. 유다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로 살게 될 것이다. 


6. 여호와의 말이다. 70년이 마치면,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리라.


  * 그러나 70년의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고 나면, 너희들은 돌아올 것이고 너희를 압제한 바벨론 제국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바벨론도 죄악이 크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이전에는 유다를 치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도 반드시 받게 됨을 잊지 않는다. 


7. 그래서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그들의 행위와 손이 행한대로 그들에게 갚으리라. 


  1) 내 손에서 진노의 술잔을 받아 가지고 너를 보내는 바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2) 먼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18절)

  3) 애굽의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과 .... 블레셋,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 아스돗...

  4) 에돔과 모압과 암몬

  5) 두로, 시돈

  6)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시므리, 엘람, 메대 모든 왕, 북쪽 원근의 모든 왕, 세삭 왕

  7) 내가 너희 가운데 보내는 칼 앞에서 마시며, 취하여 토하고 엎드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라 하셨다.  

  8) 잔을 받기를 거절하거든...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8.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



[묵상 한모금]


본문의 이야기는 국제정세가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기울고 있는 시점에 결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고 정복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힘의 결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는 것임을 본문은 지적한다. 


유다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악한 길을 가고, 우상을 숭배함) 이들을 벌하기 위해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벨론이 옳고 느부갓네살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시기의 문제다. 지금 하나님은 유다를 징계하시기를 원했고, 그 곁에 바벨론이라는 회초리(몽둥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이 자랑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유다보다 더 옳아서가 아니라, 지금 유다가 매를 통해서 변화되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개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물론 유다를 개선하시고 나서는 바벨론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더욱 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자간의 죄의 경중만으로 심판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다의 죄보다 바벨론의 죄가 더욱 컸지만, 하나님은 지금 바벨론이 아닌 유다를 심판하셨다. 이는 바벨론을 심판하지 않는다거나, 바벨론이 의롭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바벨론의 심판보다는 유다의 회복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이로 인해 오해하지 말아야 하며(하박국은 오해했다.), 바벨론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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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4장] 대선을 앞두고 심판론이 오고 갑니다. 한쪽에서는 이명박 정권 심판론, 다른 한쪽에서는 노무현 정권 심판론. 누가 이 심판의 대상이 되고 누가 이 심판으로부터 잠시 벗어날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혹 이번에 그 심판이 빗겨갔다고 해서 지은 죄(잘못)에 대한 대가까지 빗겨가리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극히 나쁜 무화과 광주리는 먹지 못할 것이라 결국 버림을 받게 되니까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역사적으로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2.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준 환상: 

  1)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

  2) 한 광주리의 무화과는 극히 좋은 무화과이고, 다른 한 광주리는 극히 나쁜 무화과.

  3) 하나님의 말씀(메시지)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갈대아인의 땅에 옮겨지는 유다 포로를 하나님은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다. 그들을 잘 돌보고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주어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라. 그래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 그러나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 땅에 남은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릴 것이다. 그들은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져서 환난을 당할 것이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하리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을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내 것으로 재구성하기]


본문은 역사적으로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여호야긴)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환상이다. 예레미야는 성전에서 두 무화과 광주리를 본다. 하나는 극히 좋은 무화과 광주리고, 다른 하나는 극히 나빠 먹을 수 없는 무화과 광주리다. 


여고냐(여호야긴) 왕과 함께 잡혀간 여럿의 포로들로 인해 나라는 슬픔과 비통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바벨론 왕에 의해 세워진 시드기야 왕이 유다를 통치하고 있던 상황이다. 지금 잡혀간 그들이 비참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말씀을 주신다. 지금 잡혀간 왕과 신하와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잘 돌보고 세워 극히 좋은 무화과처럼 만들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 그리고 그 땅의 백성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처럼 버려지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정리3. 정리하면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생각들, 묵상들]


1. 하나님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신다. 


여고냐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사람들은 슬퍼했을 것이고 이와 같은 큰 불행이 닥친 것에 대해 비참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남겨진 시드기야와 신하들, 백성들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여고냐가 극히 나쁜 무화과라고 생각하고, 시드기야가 극히 좋은 무화과가 아니겠는가 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리신다. 


하나님은 오히려 바베론의 포로로 잡혀간 여고냐와 그 백성들을 극히 좋은 무화과라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돌보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심어서 뽑히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꿈꾸시던 일을 이들을 통해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반면, 현재의 비참과 모멸을 피해 오히려 영광의 자리에 오른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극히 나쁜 무화과라고 평가하시면서 버려질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신다.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시다가도 영원히 벌하실 것처럼 돌이키신다. 그리고 파멸 시키실 것처럼 그들을 적국의 포로로 잡아가게 하신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돌아오게 하고 회복시켜 세운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변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격체인 우리를 만들어가시는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2. 현재의 성공과 현재의 살아남이 진정으로 극히 좋은 무화과이기 때문일까?


모든 재난과 심판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극히 나쁜 무화과라 곧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비난과 판단과 죄에 대한 대가를 지금 당장 받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더라도(약간의 성공과 성취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이 옳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시드기야와 그 정부도 살아남았다고 안도했으나 사실 그들은 완전히 버림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큰 재난을 피해서 약간의 성공을 이루고 큰 환난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용이 그릇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고 조롱과 수치가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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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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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2장] 하나님은 고니야(여호야긴)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다윗의 왕위를 이어갈자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다윗과 맺은 영원한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되는 것 같다. 500년 이상 그 언약은 폐기된 채로 유다의 역사는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왕,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신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유다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1)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2)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3)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이 말을 들으면 그 영광이 유지되지만, 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집은 반드시 황폐되리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6) 여러 민족은 지나가면서 여호와가 이 큰 성읍을 이같이 행함은 어찌됨인가? 놀랄 것이다.
  7)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을 버리고, 여호와의 언약을 떠나 다른 신에게 가서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하셨다 하라.

 

2. 여호와께서 유다 왕 살룸(여호아하스)에 대해서 말하다.
  1) 너희들은 죽은 자를 위해서 애통하지 말고, 사로 잡혀간 자를 위해 애통하라.
  2)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살룸이 결국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 말하다.
  1) 화있을 진저:
   (1)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
   (2)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짓고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3)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2) 네 아버지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았는가? 그 때 형통하지 않았는가?
   (1)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다.
   (2)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3) 그런데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말씀하신다.
   (1)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4.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너는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5.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긴(고니야)에 대해서 말하다. 
  1) 유다 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가 나의 인장 반지라도 내가 빼어서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으리라.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3)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본문은 유다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더불어 유다 왕 중에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여호야긴(고니야)의 죄과 그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유다의 사회적인 죄악은 그들이 마땅히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 즉 사회적인 약자를 오히려 학대한 것이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이다. 이와 같은 잘못에 대한 시정요구를 듣지 않은 것이 이들의 죄다. 결국 하나님은 이로 인해 이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요시야 왕 이후로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그 뒤를 이은 여호야긴(고니야) 왕의 악행과 그 행위에 따른 결과가 어떠할지를 말씀한다. 살룸 왕은 죽은 자보다 더 비참한 살로잡혀간 자의 운명을 살게 될 것이다. 잡혀간 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을 것을 말씀하신다.

 

여호야김은 화려한 건축을 위해 그 백성들에게 그 품삯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킴으로서 악을 행했다. 여호야김은 탐욕과 허영 그리고 무죄한 피를 많이 흘렸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왕을 예루살렘 문 밖에 끌려가서 나귀처럼 매장당하는 비참한 운명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고나야(여호야긴) 왕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인장 반지 같은 자라 할찌라도 빼서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왕은 여호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다윗의 왕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유다는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신하와 그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졌다. 특히 왕들은 허영에 가득차 정의와 공의를 잊고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한다. 이것이 결국 왕과 그 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되고 만다.

 

예루살렘은 평안할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고질적인 병처럼 이들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가련한 운명이 될 것이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교훈과 묵상들]

 

1. 요시야 이후로 왕들은 허영으로 가득하고 공의와 정의를 잊었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왕은 자기 자신들의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였다. 품삯도 주지 않은 채 아름 다운 집을 짓는데 혈안이되었으며 그로 인해 백성의 고통은 말이 아니게되었다. 왕과 권력자들은 정의과 공의를 실현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정의를 왜곡하여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게 했다.

 

요시야 왕 이후로 국가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여전히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급급했다. 앞을 보지 못했다. 그와 같은 유다의 운명은 여호야긴(고니야)을 마지막으로 그 후손 중에 다윗의 혈통이 왕이 되는 것은 끊어지고 만다. 다윗의 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과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권력과 힘이 올바른 룰 안에서 통제됨이 없이 사용되어질 때 권력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를 중심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다. 부정한 방식으로 재물을 축적하든지, 그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위해 낭비하게 된다.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무고한 자들이며, 힘없는 자들이다. 백성의 원성이 높아가게 마련이다. 유다는 하나님과의 신앙 문제에 있어서도 깊은 골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사회적인 상황에 있어서도 긴장과 갈등으로 인한 위험이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장 반지와 같은 유다 왕을 빼어 버리기로 결정하신다. 그리고 원수의 손네 넘겨주시기로 결정하신다. 공의와 정의를 잊은 권력이 마지막은 원수에게 넘겨짐이 되고 만다.

 

2.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는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없을 것이다.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약이 깨지는 순간이다. 유다가 철저하게 믿었던 믿음, 다윗의 왕권은 결코 빼앗길 수 없을 것이다라는 그들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이지만, 결코 언약에 매여 하나님의 이루어가질 정의와 공의를 포기하시는 분은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유다와 그 백성들은 그들의 언약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 신앙에 대해서 전면적인 새로운 인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약에 대한 재해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3. 너는 어려서부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유다의 죄가 얼마나 오래되고 뿌리깊은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이전까지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사춘기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셨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평안했을 때(어렸을 적부터)부터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셨으나, 이들은 그 때부터 듣지 않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완악했음을 말한다.

 

갑작스러운 반항이나 임시적인 탈선이 아니었다. 이들의 반항과 탈선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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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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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4장]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으로 한계를 느끼게 끔 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계를 느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참담한 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선하심을 무시했는가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무시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봅시다]


1.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

  1) 여호야김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바벨론을 섬기게 되었다.(친 애굽적 왕) 

  2) 3년간 바벨론을 섬기다가 애굽에게로 돌아서고 바벨론을 배반한 셈이 되었다.

  3) 바벨론에 의한 큰 침공을 당하게 됨(하나님의 심판으로 본다)

   (1) 갈대아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의 부대를 통해 유다가 고통당하게 됨

   (2) 이런 일이 임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것으로, 유다를 하나님 앞에서 물리치려 함.

   (3)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다.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이를 사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셨다. 

  4)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됨.

  5) 이 때를 기점으로 애굽 왕이 다시는 유다로 오지 못했다. 바벨론의 강성함 때문에.


2. 유다 왕 여호야긴에 대해서

  1) 여호야긴의 나이 18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림.

  2) 그의 어머니는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3) 여호야긴도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4) 바벨론의 침공

   (1) 바벨론 왕 여덟 째 해에 바벨론이 올라와서 유다의왕과 신하들이 끌려옴

   (2)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다. 

   (3)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버림.

   (4) 비천한 자만 그 땅에 남게 됨.

   (5)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권세자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다. 용사 7000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1000명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다. 

  5)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의 숙부(요시야의 아들)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시드기야라 함.


3. 유다 왕 시드기야에 대해서

  1)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간 다스림. 

  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름.

  4) 시드기야가 나중에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내 표현으로 바꾸어 정리합니다.]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워진 여호아하스는 석달만에 애굽 왕 느고에 의해서 잡혀가고, 애굽은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김은 친애굽적인 왕이었으나, 바벨론이 침공으로 어쩔 수 없이 바벨론을 섬기게 된다. 3년을 그렇게 섬기다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으로 돌아서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게 된다. 결국 유다는 큰 피해를 입고 만다. 


이와 같은 사건을 성경기자는 하나님이 유다에게 내린 재앙이며 예언하신 바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평가했다. 특히, 므낫세의 죄가 너무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를 사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국제 정세적으로는 이때부터 애굽의 영향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여호야김이 죽자 유다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긴은 석달 밖에는 다스리지 못한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유다의 왕인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지 그리고 신하들, 용사와 장인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다. 그리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운다. 그리고 이름을 시드기야라고 바꾼다. 이로 인해 엘리트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유다 땅에는 비천한 자만이 남겨졌다.


시드기야는 11년간을 통치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하지 못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신함으로 바벨론의 미움을 받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도 한계를 느끼셨다.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4절)


우리 하나님도 한계(?)가 있으시다는 말이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인내가 무궁하시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용서에도 한계가 있음이 분명히 언급되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인내와 사랑의 크기는 우리의 모든 죄를 넘어서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없이 끝없이 그리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방종으로 치닿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참으심을 무시하듯 행할 때, 하나님은 그 용납의 한계를 정하시고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신다. 유다의 상황이 그랬다. 그리고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과 내일 살펴보게 될 왕하 25장의 내용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시지만 방종을 방관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용납하시지만 무시를 받거나 조롱을 받는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지만, 쉬운 분은 아니신 것이다. 그분의 자비를 개선의 기회로 잡지 못하고 방종으로 행하고, 그 분의 선하심을 은혜와 감사로 알지 못하고 쉽게 여길 때 하나님은 모든 자비와 용납과 선하심을 거두시고 그들의 오만 방자함에 진노의 잔을 쏟으신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으로 한계를 느끼게 끔 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계를 느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참담한 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선하심을 무시하셨는가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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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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