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7_룻2:14-16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2:14-16]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오늘 본문에서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푸는 두 번째 장면이 나온다. 식사 때가 되어 식사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모습이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을 특별히 초청한다. 1) 떡을 먹으며 2)초에 찍으라 권한다. 3) 볶은 곡식을 주어 배불리 먹고 남을 정도였다. 

식사가 마치자 룻은 자리를 일어서려고 했다. 그 때 보아스는 소년들에게 명하여 룻에게 특별한 혜택을 준다. 

1) 곡식 단 사이에서 줍도록 하라 2) 그를 위해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룻으로 줍게 하라 

보아스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룻에게 매우 큰 은혜를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장요약]

1.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는 장면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1) 보아스의 곁으로 초대했다.

  2) 떡을 먹으라고 주었다. 

  3) 초에 찍어서 먹도록 했다. 

  ->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고 남았다. 

2. 룻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날 때 또 다시 룻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

 1) 룻이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라.

 2) 룻을 위해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리도록 하고 그래서 룻이 줍도록 하라. 

 3. 보아스는 룻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축복을 했고(2:12) 룻은 그 보호하심을 보아스에게 받기를 원했고(2:13) 보아스는 실제로 자신이 베풀수 있는 은혜와 혜택을 룻에게 지금 베풀었다.(2:14-16)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룻이 볼 때 보아스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여겨졌을 것이다. 보아스는 상징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리하는 존재로 룻기에 등장하는듯 하다. 

  1) 룻과 같은 약자들의 편에 서는자

  2)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오는자를 거절하지 않고 품어주시는 분

  -> 보아스는 말로만 하는 축복이 아니라 그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지금 그 복을 베풀고 있는 존재로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그와 같은 분임을 보여준다. 


3. 보아스의 배려가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1) 초대, 떡을 먹으라 -> 초에 찍어서

  2) 곡신 단 사이에서 주으라,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 줍게 하라.

  -> 은혜를 배푸시면서도 받는 자로 하여금 받을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신다. (추수한 곡식을 그냥 줄 수도 있을 텐데.. 줍도록 곡식을 버리게 하여 줍는 자의 권리를 통해 얻도록 하신다. 주울 수 있는 능력이 핵심이 아니라, 주울 것이 있도록 하시는 것이 핵심이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혜택을 생각해 보자

   -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먹을 것을 주되 먹는 것만 줄수 있지만 보아스는 먹을 것을 주는 것에 끝나지 않고, 자신의 곁으로 불러서 먹도록 했고 초에 찍어 먹으라고도 했다. 

  => 선을 행하는 것과 호의를 베푸는 것은 좀 다르다. 선을 행하되 최소한으로 할 수 있다. 먹을 것을 주는 것으로. 그러나 호의를 베푸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진심어린 마음이 함께 하는 것이다. 동정은 먹을 것을 던져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을 식탁으로 초대했고 더 맛있게 먹도록 '초'를 건네주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환대다. 

2. 보아스의 은혜를 보면, 하나님의 전적 은혜와 인간의 행위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보아스는 곡식단에서 의도적으로 빼어 룻이 줍도록 했다. 

  - 룻은 곡식 단에서 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둑질이다. 룻은 떨어진 것 만을 주웠다. 보아스는 곡식 단에서 일부를 떨어뜨려 룻으로 하여금 줍도록 했다. 은혜는 무엇인가? 보아스가 곡식 단에서 일부를 룻 앞에 떨어뜨린 것이다. 인간의 행위는 무엇인가? 과도하게 떨어진 곡식 단의 일부를 줍는 것이다. 룻이 곡식을 줍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보아스가 곡식단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은혜와 행위는 이와 같은 유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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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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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6_룻2:8-13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2:8-13]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오늘 본문에서는 보아스와 룻의 본격적인 대화가 오고 간다. 보아스가 룻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는 내용이며 이로 인해 룻은 감격하며 보아스가 베푼 은혜를 받길 원하는 내용이다. 

먼저 보아스는 룻에게 추수하는 동안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자신의 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일하는 남자들로부터 보호해주었고, 소년들이 길어온 물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룻이 보아스의 이런 혜택이 얼마나 큰 은혜인줄 알고 감격했다.(10절) 보아스는 룻에 대한 소문을 이미 듣고 나오미를 따라 온 룻을 좋게 보았고, 그녀를 축복할 만큼 룻의 결단이 선한 일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보아스는 여호와의 날개에 보호받도록 축복했고, 룻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12,13절)    


[문장요약]

1. 보아스가 룻을 만나고 나서 룻에게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혜택을 주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1)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나의 밭에서 주으라

  2) 소년들은 룻을 건드리지 말며, 목이 마르면 소년들이 떠온 물을 마시라.

2. 룻은 보아스의 이런 대우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은혜에 감격한다. 

 1) 나는 이방여인이어늘 어찌 내게 은혜를 베풀고 돌아보시나이까?(10절)

 3. 보아스는 룻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는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보아스는 그것을 대단한 결정이라고 보았다.(11절)

  1) 보아스는 귀한 결정을 한 룻의 행동에 보답해 주시길 원했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룻에게 온전한 상 주시길 바랐다. (12절)

4. 보아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지만, 룻은 보아스에게 은혜입기를 원했다.(13절)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보아스는 룻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1) 나오미를 따라 유대백성으로 온 것을 귀하게 여겼다.

  2) 나오미를 섬겼고 성실했다.

  3)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 보아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혜택을 적극적으로 베푸는 사람이었다. 


3. 룻은 자신이 보아스로 받은 것이 큰 혜택(은혜)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염치없어했고 감사했고 감격했다. 

  1)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2)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한다.

  3) 자신에게 위로과 되었고, 기쁨이 되었다는 것을 말로 고백했다. 

  

4. 보아스는 선행을 베풀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바타처럼,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기 위해서 온 룻을 품어주는 역할을 했다. 한 사람의 선행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유대로 들어온 이방여인을 품으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룻에게 주는 보아스의 혜택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 성경은 룻이 은혜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그 근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 하나는 룻의 태도와 결정에 대한 보상으로서다.(나오미에게 행한 일, 이스라엘 백성으로 온 것, 성실함...)

  - 또 하나는 보아스의 은혜로운 성품이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보아스 같지는 않았다.(사사시대..율법이 중요한 가치관이 되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더욱 더 그렇다.)

  => 이야기는 교리적이지 않다. 모든 이야기의 내용을 교리라는 틀에 맞추어서 보려고 하면 흥미가 약화된다. 이야기를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말하는 것을 따라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것을 건져 올려야 한다.(교리가 아니라 교훈으로서)

2. 보아스의 은혜를 받는 룻의 태도는 어떤가? 그 태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것도 중요하다. 

  - 룻은 보아스의 혜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은혜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은혜가 더 있기를 거절하지 않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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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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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5_룻2:1-7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2:1-7]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온 룻은 식량을 얻기 위해 이삭을 줍기 위해 들로 나간다. 룻이 우연히 들어가서 이삭을 줍게 된 밭이 보아스라는 사람의 밭이었다. 때마침 보아스는 그 밭을 방문하게 되고 여기서 보아스와 룻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보아스는 유력한 자로 묘사되고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다.(2:1) 보아스는 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고, 그 일꾼들도 보아스에게 복을 빌어주는 모습 속에서 보아스의 인품과 신앙을 보게 된다. 그 보아스는 룻이라는 낯선 여인을 주목하게 된다.  


[문장요약]

1. 2장을 시작하면서 보아스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고 유력한 자라는 언급을 함으로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 보아스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엘리멜렉의 친족이라는 관계성이 나오미 혹은 룻의 인연으로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2.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인듯 우연아닌 만남이다. 

 1) 룻은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임의로 밭에 들어가 이삭을 주웠는데 공교롭게도 그 밭이 보아스(엘리멜렉과 친족인)의 밭이었다.(3절)

  2)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나타나서 일꾼들을 살피며 축복하게 됨으로서 룻과 보아스의 만남이 시작된다.(4절)

  3) 우연히(3절), 마침(4절)이란 단어가 의도치 못한을 표현하지만, 그 의도하지 못함은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이고 하나님의 섭리속에서는 너무나 명확하게 계획된 만남이었음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3. 보아스는 여러 일꾼과 사람 중 낯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1) 보아스가 사람에게 대한 관심이 있는 인간적이고 따듯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있다. (5절)

  2) 종들을 축복하고 종들이 보아스를 축복하는 장면에서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다.(4절)


3. 룻 또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이 보아스의 종들에게도 인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7절)

  - 룻의 성실한 모습이 보아스에게 룻에 대한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나오미와 룻에게는 낯설고 불안정한 땅이었지만, 그 땅에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가 살고 있는 땅이었고(2:1)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땅(1:22)이었다. 즉 나오미와 룻은 기대하거나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예비해 놓으신 땅이었다. 


3. 룻과 보아스는 우연히 만났다. 각 자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행하는 중에 그 둘은 만났다.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섭리라고 말한다.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섭리가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이와 같은 섭리는 과거 성경의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4. 룻이 보아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보아스의 성품과 인격으로 말미암은 은혜다. 룻이 아무리 성실해도 보아스가 그를 무시했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아스의 은혜로운 성품과 더불어 룻의 성실을 성경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핵심이면서도 성경은 언제나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성도의 모습에 주목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오늘 본문을 볼 때,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와 룻이 보지 못한 것(볼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인가? 

  -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리는 없다. 그러나 그 친족이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줄 책임이 있다거나 그럴 의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그 이유는 사사시대로서 율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현재적으로는 보리 추수 때라는 준비를 해 놓으셨고, 이미 과거부터는 율법이라는 제도로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으나 이들은 율법을 귀중히 여기지도 또 율법을 존중하는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그것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현재 준비해 놓으신 것과 이미 준비해 놓으셨던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2. 룻기는 결과적으로 룻과 보아스의 만남으로 인한 역사를 보여주는데,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인가 필연적인 섭리인가? 

  - 개인의 선택만 생각한다면 우연이다. 

  - 그러나 전체 그림을 보는 입장(독자)에서는 우연일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요 필연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개인의 선택이란 측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개인적 선택을 넘어서는 우주적 섭리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역사적 의식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이 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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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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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4_룻1:19-22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1:19-22]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결국 나오미는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이 때 고향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마을이 떠들썩하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집중된 관심이 피곤했는지 자신의 인생은 기쁜(나오미) 인생이 아니라 쓴(마라) 인생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하고 괴롭게 했다는 고백을 한다. 그런 고백과 함께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에 돌아온다. 그러나 때마침 그 때는 보리 추수 시작할 때였다. 



[문장요약]

1. 결국 나오미와 룻은 하나님의 땅에 돌아왔다. (베들레헴 = 떡집,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양식을 주셨다(6절)는 것을 상징하는듯 하기도 하다. 베들레헴에 보리 추수 때에 돌아왔다(22절)는 것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왔다는 뉴앙스도 보인다.)


2. 베들레헴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나오미를 보러 나왔다. 

 1)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모압으로 갔다고 했지만, 이 흉년이 극심한 흉년은 아니었음을 알수있다. 여전히 베들레헴에는 그 때부터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엘리멜렉이 작은 고난에도 쉽게 하나님의 땅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룻기 초기의 엘리멜렉이나 나오미의 신앙 수준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3.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나오미는 하나님에 대해서 억울해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큰 재앙을 만나고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으로 인해 자신이 과도한 고통을 받고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고 인식하는듯 하다. 

  3) 풍족하게 나갔다가 비어 돌아왔다. 여호와가 나를 징벌하고 괴롭혔다. 내인생은 나오미가 아니라 마라다. 


3.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온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였다. 이것은 하나의 복선으로 지금은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나오미가 돌아왔지만,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실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고향 사람들의 환대에 대한 나오미의 부정적인 반응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나오미의 감정과 신앙적인 억울함을 볼 수 있다.(나오미의 이런 반응은 오늘날 이 땅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흔하게 보여지는 예이며,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도 종종 발견하게 되는 태도이다.)


3. 나오미는 지금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을 쏟아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지금 나오미를 맞기 위해서 양식(보리 추수 때)을 준비하고 있다. 

  1) 하나님은 나오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오미는 하나님의 환대는 보지 못하고 아직까지 자신의 상황(억울함)에 매여있었다.

  2) 우리 삶에 이미 배치되어 있지만 우리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4. 우리의 불평은 언제나 성급하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나오미는 최근 10년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해석했으며 그 해석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는가? 

  - 지금 나오미는 자신의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자신의 처지와 입장에서만 해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나오미의 신앙 수준에서 나오미의 불평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진짜 큰 그림을 나오미는 보지 못했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방 여인 룻이 베들레헴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나 하나님께서 나오미를 위해 예비하신 것들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과 알수없는 고통 속에서 단정적인 판단을 보류하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2. 나오미가 10년 전 모압으로 이주했을 때의 신앙과 남편과 아들을 잃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의 신앙은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일까? 

  -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오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노골적으로 불평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할 때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약했던 것 같다. 큰 고민없이 고난이 오자 이방 땅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오면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긴 하지만 적어도 여호와 하나님이 실존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돌아왔다.(심판하시는, 엄격하신 하나님이라는 인식이긴 하지만) 

 -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인식이 없는 신앙보다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이 더 신앙적이고 성숙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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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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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3_룻1:15-18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1:15-18]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나오미의 설득과 오브리의 현실 인식으로 오브리는 그의 백성과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나오미는 오브리가 고향으로 돌아간것처럼 룻도 돌아가라고 다시 한번 권고한다. 그러나 룻은 결단코 나오미를 떠나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16-17절의 긴 고백은 룻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의 결심에 나오미도 결국은 포기하고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다. 



[문장요약]

1. 나오미는 룻에게 다시 한번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권유하고 있다. 나오미의 진심이 보이는 장면이다.(어린 며느리를 생각하는 마음)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를 떠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오히려 나오미에게 속해서 나오미와 한 운명이 되겠다는 결심을 보여준다. 

 1)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말소서

  -> 나오미와 함께 할 것을 표명함

 2) 어머니가 가시는 곳,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 어머니의 백성, 어머니의 하나님,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 / 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줌

  3)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 벌을 받기 원한다.

  -> 마치 결혼 서약과 같은 서약을 하고 있다. 나오미와 함께 운명 공동체가 되겠다는 룻의 결의를 보게 된다. 


3. 이 이야기에서의 핵심은 나오미의 설득에도 룻이 나오미를 떠나지 않기로 결단했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룻이 나오미와 함께 운명 공동체가 되겠다는 선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오르바와 룻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오르바는 떠났고, 룻은 나오미와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다. 


3. 오브라와 룻은 둘다 이방인이었지만,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지 오르바와 룻의 선택을 통해서 달라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4.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원수에 속한 자, 곧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자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룻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오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운명 공동체가 되기로 결단하고 그 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로 결단하면 되는 것이다. 


5. 세상의 현실에 민감하고 현명했던 오르바는 결국 나오미를 떠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리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을 등지는 결단, 현실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결단 즉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던지는 결단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나오미를 떠난 오르바는 어떤 여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오르바는 어떤 측면에서 유사한가? 

  - 오르바를 욕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룻이 나오미와 함께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룻의 믿음(신앙)' 때문일까? 

  - 많은 사람들이 룻에게 여호와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는데.. 과연 그런가? 

  - 룻의 신앙에 따른 결과일까? 아니면 나오미를 생각하는 인간적인 측은지심의 결과일까?

 - 룻에게 구원받을 신앙이 있었다고 봐야 할까?(룻은 이방인이고, 나오미 집안의 신앙도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그 신앙은 어디서 왔을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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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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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2_룻1:6-14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1:6-14]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결국 자신의 고향인 유대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나오미는 돌아오면서 두 며느리에게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본인들의 고향에 남아 재혼하여 살아갈 것을 권유하지만 두 며느리 모두 그러기를 원치 않아한다. 나오미는 다시 한번 두 며느리를 설득하는데, 현실적으로 자신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인식시키고 결국 오르바는 설득이 되어 돌아갔으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쫓기로 한다.  



[문장요약]

1. 룻기의 저자는 지난 10년간에 일어났던 일을 5절(1:1-5)로 정리했다. 그러나 나오미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 며느리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자세히 길게 다루고 있다. 이는 이 대화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독자로 하여금 대화의 내용을 주목하여 보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2. 이와 같은 스토리 속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강조점들이 있다. 

 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고향으로 갈 것을 결심한다는 것(6절)

  -> 흉년으로 고통당하던 땅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회복되어 양식을 얻게 된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시대를 기대하게 된다. 

 2) 나오미를 쫓으려는 두 며느리의 마음이 진심으로 보인다는 것(어떤 가식적인 표현이 없이 진정어린 태도로 나오미를 대하고 있다는 것)(9-10절, 14절)

  -> 이방여인이지만 나오미에대해 진정성있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통해 이방여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3)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불편하게 보시고 치셨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13절)

  -> 개인사를 고려할 때 나오미의 하나님 인식은 부정적이다. 고통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나오미의 처지를 본다면 그와 같은 나오미의 입장에 공감할 것이다. 


3. 두 며느리의 진정성있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오미를 쫓아온 사람과 떠난 사람으로 구분된다. 오르바는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쫓아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4. 이제 룻기의 중심 이야기 속에서 나오미와 룻이 중심인물로 남는다. 오르바는 자신의 결정에 따라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배제되게 되었다.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나오미는 하나님의 땅을 떠났다가 실패하고 다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오는 유대인의 모습으로서 신앙이 있지만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야곱처럼 자신의 지혜를 따라 살다가 결국 빈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신앙인의 모습)


3. 룻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의 스토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운명의 여인이다. 오늘날로 보면 교회 밖 사람이고, 신앙이 없는 자이거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오미와의 관계 속에서 결국 하나님의 땅 안으로 들어오게 된 사람이다.(비로 충분한 신앙이 아직은 없겠지만) 그러나 누구나 룻과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르바는 동일한 상황에서 나오미를 따르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다. 룻은 나오미와 연결되지 않고서는 유대 땅에 올 일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미를 통해 유대 땅까지 오게된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신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는 '신앙'으로 시작하지 않는 통로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4. 나오미가 겪은 불행한 일이 결국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불행한 일이 불행한 결과만 낳지는 안는다. 아직은 반감이 더 많지만 결국 나오미는 고난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더 나아가 룻까지 그 은혜 안으로 인도하게 된다. 현재의 고난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5.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오늘 본문은 오르바와 룻의 선택이 결국 그의 운명을 갈라놓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이 땅에서 겪는 고통과 불행은 부정적이기만 한것인가? 어떤 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가? 

  - 나오미에게는 어떤 기회가 되었는가? 


2. 나오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룻이라는 여인을 하나님의 역사 속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떤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인가? 

  - 나도 모르는 중에 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나도 알지 못하는 중에 생각지 못하는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결과는 알수 없지만, 매 순간 정직하고, 순수하려고 하는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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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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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 오리엔테이션


빌레몬서에 이어 오늘 부터는 룻기를 해보려고 한다. 룻기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짧기 때문이다. 하나의 스토리가 길지 않아서 샘플로 다루기가 좋다. 더불어 길지 않은 스토리 속에 문학적인 장치가 다양해서 읽는 재미가 있고 룻기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훈련도 된다. 또한 구속사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 해석, 구속사적인 해석까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성경이다. 


설화체는 강화체를 관찰하듯 한 문장 한 단어에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문학적인 장치들을 통한 '강조점'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교훈'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주 단순화 시켜서 말하면 잘 쓰여진 소설(스토리)을 읽듯이 본문의 스토리와 장치에 내 생각을 맡기는 것이 좋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생각들을 발전시키고 또한 문학적인 장치를 통한 치밀한 메시지를 발견해가는 것은 설화체 성경읽기의 재미 중 핵심이다. 


따라서 설화체를 묵상하기 위한 적절한 분량은 전체 이야기 중 작은 하나의 이야기로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훈련차원에서 하는 것이기에 한 번에 너무 많은 분량을 다루지 않고 쪼개서 하거나 한 본문을 이야기 중심, 문학적 장치 중심 등으로 나눠서 해보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와같은 성경해석 방법은 평신도들이 성경공부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그 방법을 이해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지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다. 성경해석의 점수로 본다면 60-70점 정도를 받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전문적인 신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경해석에 있어서 낙제하지 않는 선에서의 자신감을 얻게 하는 훈련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쉽고 편하고 짧게'를 목적으로 하는 방식임을 잊지 말자. 

1. 관찰(1차독자의 입장): 룻기가 쓰였을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혔을까 하는 관점으로 성경읽기(1차 독자)

  - 적어도 '다윗'왕으로 아는 사람으로 '다윗 왕' 이후의 사람으로서 다윗 왕의 메시야적 정통성을 확신하는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룻 4:22)

  - 사사시대의 나오미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다윗 왕의 혈통이 어떻게 준비되었는가를 확인해 줌으로서 다윗 왕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왕임을 확인시켜 준다. 


2. 해석(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 왕을 통해 이어졌다면, 다윗 왕을 통한 메시야적 약속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었다.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교회인 우리에게 룻기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3. 적용(지금, 나에게): 해석된 룻기의 말씀이 지금 나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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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강화체_빌레몬07_몬1:23-25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문장요약]

1. 바울은 편지 마지막에 몇 몇 사람들을 대신해서 빌레몬에게 안부를 전한다. 


2.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옥에 갇혀있는 자로 빌레몬에게 안부를 전한다.(23절)


3. 바울의 동역자인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빌레몬에게 문안한다.  (24절)


4.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빌레몬과 함께 하는 교회 가운데 함께 하길 축복하며 마무리한다.(25절)

 1.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인사 부분으로 여러 사람들의 안부를 나누고 축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 몇 몇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나 일일이 그 이름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까지 살펴볼 필요는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만큼 그 대상의 역사적 배경을 알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유익하다.  그와 같은 배경은 주석이나 성경사전을 참고하면 되겠다.  


3. 바울은 진정성 있는 마음을 전하는 것과 더불어 당시 사회 통념적인 형식의 틀을 유지했다.(편지의 형식적인 측면을 그대로 유지함)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바울은 목표의식을 가지고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으나, 할 말만 하지 않고 편지의 서두와 편지의 마지막 형식을 모두 갖추었다. 내용이 중요한가? 형식이 중요한가? 

  - 내용과 형식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내용이 중요하다.  

  - 그러나 형식이 없는 내용은 상대방과 상식을 무시하기 쉽고, 진정성이 없는 형식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형식만 갖추 사람은 바리새인과 비유될 수 있고, 내용에만 치중된 사람은 선지자에 비교될 수 있겠다. 그러나 목회자란...)

  - 내용을 중심으로 하되, 형식의 기본틀은 갖춰서 접근하는 것이 목회자의 기본 덕목이라 하겠다. 

2. 바울은 옥중에서 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았다. 

  - 옥에 갇혔으나 함께 옥에 갇힌 에바브라가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으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 여전히 옥중에 있으나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있었다.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 바울이라도 홀로였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소수이지만 함께 주를 위해 헌신하고 동역할 자가 있다면 고난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힘든 순간 누군가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만들려면, 누군가 힘든 순간 내가 그와 함께 있어 그의 동역자가 되는 경험이 먼저있어야 한다. 동역자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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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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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강화체_빌레몬06_몬1:19-22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문장요약]

1. 바울이 이 편지를 친필로 썼음을 말하는 것은 지금 빌레몬에게 간구하는 내용에 대한 바울의 진정성과 간절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19절)

2. 바울은 오네시모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말한다. 더불어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말은 빌레몬에게 반어법처럼 들렸을 것이다. 바울도 빌레몬에게 어떤 빚을 요구하지 않듯, 빌레몬도 오네시모에게 어떤 빚에 대한 요구를 하지 말아줄 것을 기대하는 말로 들린다. (19절)

3. 바울은 빌레몬의 결단으로 기쁨을 얻고 평안을 얻기를 소망한다. 즉 빌레몬이 바울의 간구를 잘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해 주어 마음에 평안함을 얻기 원한다.  (20절)

4. 바울은  빌레몬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요청한 것보다 빌레몬이 기꺼이 수용해 줄 것이고 더 잘 대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21절)

5. 바울이 오네시모에 대한 요청을 마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곳을 방문하기를 바라면서 숙소를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한다. 

[내용정리]

1. 바울이 오네시모에 대한 요청을 마무리하면서 빌레몬이 안들어줄 수 없는 방식으로 재 확인하는 내용이다. 

 1. 바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다.다만 바울이 빌레몬에게 요청하는 내용 속에서 오네시모와 빌레몬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


2. 바울은 빌레몬에게 정중히, 간절히 오네시모를 용납해 줄 것에 대해서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편지를 마무리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재확인한다.   

  1)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2)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3)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 평안하게 하라.

  4)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 아노라.


4. 오네시모가 빌레몬에 잘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바울의 간절한 심정이 잘 담겨져있다. 바울이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한 얼마나 신중하게 생각하고 애쓰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참된 목자라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영적 관심을 가지며 한 사람의 회복에 대한 노력에 최선을 다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배우게 된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빌레몬은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강압인가? 강압이 아니라면 강압과 무엇이 다른가? 

  - 강압은 중간 과정이 없는 것이다. 지위과 이미 형성된 질서 속에서 기계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태도는 다르다. 이미 그의 기본적인 태도와 입장은 앞의 내용 속에 나오고 있다. 오늘 본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환대해주는 것이 주 안에서 성도의 마땅한 바이며, 오네시모를 회복시킬 수도 있고 평생 회복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는 결정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바울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 강압은 부당하지만, 간절함까지 거부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이고 간절한 호소에 상대는 거절할 수 있는 내용조차 다시 한 번 생각하여 신중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강압을 두려워한 나머지 간절함까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고 행정적인 절차에만 기울이는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2. 빌레몬은 바울의 요청을 기꺼이 수용했을 것이다.(그랬기에 빌레몬서가 정경안에 포함되어 있게 되었으리라) 나는 영적 리더의 간절한 요청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 왔는가? 

  - 빌레몬처럼 더 행하지 못하고, 최소한으로 행할 때가 많다.(욕 먹지 않을 정도로) 

  - 주변의 요구한 것에 대해서 다 최선을 다하기란 힘들다. 너무 많은 요구, 무리한 요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정당하지 못한 요청은 거부하고, 정당한 요청일찌라도 자신의 역량을 분별해서 '예스'와 '노'를 잘 해야 할 것이다. '노' 라고 말하면서도 그 사정을 잘 말하고 다음에는 도울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 다음 기회에 최선을 다하도록 한다. 

  => 바울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의 진정성이 잘 묻어나는 내용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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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강화체_빌레몬05_몬1:15-18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문장요약]

1.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나게 된 것(도망친 것)은 오히려 빌레몬 곁에 오래도록 두기 위함이다.(바울이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를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이해하는듯 하다)

2.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때 전처럼 종으로 대하지 말고, 종 이상의 관계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해 줄 것으로 요청한다.(이미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와 같은 관계로 대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3.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자 하는데, 그를 맞아들일때 빌레몬이 바울을 영접하듯 환대해 줄 것으로 요청하고 있다.  

4.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재산의 피해를 준 것이 있다면 본인이 대산 갚아 주겠다고도 말한다. 

[내용정리]

1.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환대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종-> 종 이상, 형제로. 바울을 영접하듯 환대해 주라. 바울이 대신 빚을 갚겠다.)

 1. 바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다.다만 바울이 빌레몬에게 요청하는 내용 속에서 오네시모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


2. 바울이 오네시모를 매우 존중히 여기고 있으면, 빌레몬으로 하여금 과거 잘못이 있는 사람이 변화되었을 때에 어떻게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적인 지침을 준다.  

  1) 바울이 종에 불과한 오네시모의 회복을 위해서 매우 신중하게 말하고 요청하는 모습을 배울 수 있다.

  2) 신분사회라는 구조 속에서도 종을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 줄 것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용납이 아니라 환대할 것에 대해서, 바울이 대신 빚을 갚아주려고 하는 모습 속에서 예수의 삶을 볼 수 있고, 바울이 예수와 닮은 지경에 이른 것을 관찰하게 된다. 


4. 바울의 태도와 권면 속에서 복음적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바울이 빌레몬을 대하는 태도, 오네시모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어떤 것들이 느껴지는가? 

  - 바울은 빌레몬보다 권위자며, 나이도 많은 선생이나 명령하지 않고 간구함으로 접근했다. (14절을 보면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빌레몬의 승낙이 없이 진행하는 것은 절차에 맞지 않는 것이고, 선한 일이라도 억지 아닌 자의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바울의 가치관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 바울이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려는 노력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 속에서 보게 된다.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표현을 쓰는지 확인하게 되고 바울의 진심이 무엇인지 빌레몬에게 전해지도록 힘쓰는 모습을 본다. 

  - 성숙한 성도, 성숙한 리더가 가지는 태도와 가치관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2. 바울의 구체적인 권면 속에서 복음의 핵심적인 개념들이 드러난다. 

  - 16절. 종에서 사랑받는 형제로의 변화

  - 17절.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환대, 자격이 되지 않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18절. 대속(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 바울은 복음을 받은 자로만 사는 자도 아니고, 복음을 개념으로만 안 사람도 아니다. 그는 복음을 받은 자로 그 복음을 삶 속에 실천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음이 오늘 본문 속에 잘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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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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