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사기 8장] 성경의 이야기를 너무 신학적으로만 보면 그 풍성함이 다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일상 속에서도 모두 공감할만한 주제로 접근하는 내용도 있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듯 합니다. 은헤와 자비를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심판. 배은망덕한 자들에 대한 심판_신학적으로 풀수도 있지만, 일상적인 상식으로도 충분히 공감되는 메시지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에브라임 지파에서 기드온에게 따지다

  1) 에브라임은 왜 미디안과 싸우러갈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다투었다.

  2) 기드온은 에브라임의 위대함과 공로를 치하하는 것으로 그들의 노여움을 풀어주었다. 


2. 기드온이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기까지의 과정에서 생긴일.

  1) 기드온이 삼백명의 병사들과 요단을 건너 힘들게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면서 숙곳 사람들에게 떡덩이라를 달라고 하였으나, 숙곳 사람들은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이스라엘 군대를 무시했다.(은혜를 베풀지 않았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오면서 숙곳을 찢을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다. 

  2) 기드온은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떡을 구했으나 이들도 숙곳과 같은 이유로 기드온의 군대를 무시했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와서 브누엘의 망대를 무너뜨리겠다고 말하고 떠났다.(이들도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


3.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숙곳과 브누엘을 심판하다. 

  1) 세바와 살문나는 살아남은 15000명의 병사와 함께 갈곱에 있었는데, 그들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과 300용사들은 기습으로 그들을 치고 결국은 도망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다. 

  2) 기드온은 돌아오는 길에 숙곳과 브누엘에서 전에 말한대로 그들에게 행함으로 심판했다.

  3) 사로잡았던 세바와 살문나에 대해서도 그들이 전에 은혜를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대로 그들에게 심판함으로 세바와 살문나를 직접 죽인다. 그리고 그들의 목에 걸려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져갔다. 


4. 전쟁에 승리하나 기드온의 잘한 것과 잘못한 것

  1)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라고 거절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라고 했다. 

  2) 오히려 기드온은 그들에게 탈취한 귀고리를 달라고 했고, 사람들은 기꺼이 금 귀고리를 모아 주었다. 기드온은 그것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오히려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다. 

  3) 다시는 미디안이 이스라엘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했고, 기드온이 사는 40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게 되었다. 


5. 기드온의 죽음(은혜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자손들)

  1)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서 그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명이었다. 

  2)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다. 

  3) 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원수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않았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이미 시작된 미디안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이다. 먼저는 에브라임에 대해서 말한다. 에브라임은 결정적 순간에 도와준 것에 대한 교만함이 있는 듯하다. 왜 일찌감치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냐는 것이다. 기드온은 겸손함과 그들을 높이는 말로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숙곳과 브누엘에서 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몰인정한 태도에 대한 기록이다. 지치고 배고팠던 이스라엘에게 떡덩이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숙곳과 브누엘은 기드온과 삼백용사에게 몰인정하게 대했다. 거절한 것이다. 기드온은 그들의 몰인정함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하고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치러간다. 안주하고 있던 그들을 기습하여 결국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는다. 그런 이후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바와 살문나를 죽였다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죽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바와 살문나는 이전에 몰인정하게 행했던 것에 대한 심판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미디안을 완전히 이긴 기드온은 영웅이되고 이스라엘은 기드온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다스릴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임을 분명히 했다. 기드온이 잘한 부분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릇된 행동을 한다. 사람들에게 금귀고리를 요청하고 그들을 받아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고향인 오브라에 두었다. 물론 그 금에는 초승달 장식의 이뱡인들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람들은 그 에봇을 음란하게 섬기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기드온은 많은 아내가 있었고, 그로 인해 70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에 아비멜렉이란 아들도 있었다.(9장에 등장한다) 기드온이 죽고 나자 사람들은 기드온도 잊고 여호와 하나님도 잊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은 돌아서서 바알을 따라갔다. 이스라엘은 은혜를 잊어버린 백성이 되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자비롭지 못한 자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다룬다. 


오늘 본문에는 기드온이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죽였다는 것으로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숙곳이란 곳과 브누엘이 등장한다. 이들은 지치고 피곤한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하고 완악하게 대했다. 결국 세바와 살문나 왕을 죽인 후 기드온에 의해서 그들의 자비롭지 못함이 심판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바와 살문나도 바로 죽이지 않았다. 나중에 죽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전에 자비를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로 죽게 된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자비롭지 못한 태도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과 대조적인 이야기도 있다. 에브라임이 억지스러운 태도로 기드온을 향해서 분을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이들의 억지를 달래주고 이들을 높여준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다. 또 마지막 부분을 보면 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태도에서 보여지는 것이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자신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또한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잊고 그 집에 후대하지 않았다. 


은혜와 자비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그것이 잊고 다른 신을 쫓으며, 기드온의 집안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은헤가 없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숙곳과 브누엘과 같은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우리는 은혜를 잊고 산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리를 도운 누군가의 은혜를 잊고 산다. 이것이 모두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배은망덕이라 했던가? 심판의 근거가 배은망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고 은혜를 아는 은혜를 배푸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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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7장] 기드온이 모은 힘(병력)을 빼시는 하나님을 본다. 이유는 그 스스로 전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할까봐다. 그런걸 보면, 우리에게 맡겨진 어떤 사역을 감당하도록 힘을 주셔야 할 하나님께서 오히려 우리의 힘을 빼실 때 우리 안에 자라 오를지 모르는 교만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충만한 도우심을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눈치채야 할 것이다.(그 순간에는 왜 이 눈치가 그리 없는지...)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기드온의 이스라엘의 병사들을 줄이시는 하나님.

  1) 기드온을 따르는 이스라엘과 미디안 병사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많아서 미디안을 넘겨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을 거슬러 자랑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셨기 때문이다. 

  3) 백성 중에서 두려워하는 자를 돌려보내라고 하니, 22000명이 돌아가고 1만 명만 남았다. 

  4) 여호와께서는 이 숫자도 너무 많다고 하셨고, 그들을 물가로 인도하여 그들을 시험하시고자 했다. 

  5) 그 중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마신 자의 수는 300명이고 그 외의 숫자는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6) 여호와께서 손으로 물을 움켜 먹은 자 300명만 남기고 남은 백성은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셔서 다 돌아가고 300명만 남게 되었다. 


2. 기드온으로 하여금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1) 그 날 밤에 기드온으로 하여금 진영으로 내려가라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다고 말씀하심

  2) 만일 네가 내려가기 두렵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 그러면 네가 그들의 하는 말을 듣고 강하여 지리라.

  3) 기드온은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갔는데, 그들의 진영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 떼와 같고 낙타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4) 그러나 병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기드온의 이스라엘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들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된다. 


3. 기드온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1) 용기를 얻은 기드온은 그 밤에 3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미디안의 진영으로 향한다. 

  2)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기드온 무리의 행하는대로 행하도록 지신한다. 기드온과 백 명은 이경 초에 파수꾼이 교대하는 시간 때에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나팔을 불며,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라>라고 외치자 세 부대가 모두 함께 그렇게 외쳤다. 

  3) 당황한 적들은 자신의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고 혼란스럽게 된다. 도망치던 그들을 이스라엘의 납달리,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이 추격한다. 

  4)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지원을 요청하자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였다.그들의 머리를 기드온에게 가져왔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이제 기드온이 모집한 이스라엘 군대와 미디안,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들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스라엘 병사들의 너무 많음을 지적하셨다. 절대적인 숫자가 많다기 보다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할 만큼, 많다고 보셨다. 그래서 일부를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그렇게 22000명이 갔고, 만 명만 남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숫자도 많다고 하셨다.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먹는 모습을 통해서 한 번 더 선별하셨다. 손으로 움켜 물을 마신 자, 300명만 남기고는 모두 돌려보내게 하신다. 


300명.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말할 수 있는 숫자가 되질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충분한 숫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 날 밤에 진격하라고 했지만, 혹 두렵다면 부하 부라를 데리고 먼저 그 진영으로 가보라고 말씀하신다. 가보고 나면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말이다. 미디안과 아말렉의 병사들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 병사들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 안에 있는 두려움을 보았고, 그것으로 인해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기드온은 3백 명을 백 명씩 셋으로 구분하고 밤 이경 시간에 기습적으로 나팔을 불고, 항아리 속에 감추었던 횃불을 드러내게 했다. 아마 그들을 당황스럽게 하기 위함이었을 텐데, 실재로 그들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서로 자기편끼리 죽이게 된다. 이들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기드온은 특별히 에브라임의 도움을 요청하고, 에브라임은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정리3. 정리하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메시지와 묵상들]


1. 하나님은 병력을 줄이신다. 

3만 2천명이던 병력이 많다고 줄이라고 하신다.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 이겼다는 생각을 조금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만 명이 남았는데 이도 많다고 하셨다. 결국 2차 선정을 통해 300명으로 줄이신다. 

300명은 되고 200명이나 100명은 안되는가? 그러나 더 줄이실 필요는 없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부족하고 불가능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이길 원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우리 자신의 힘을 빼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시는 이유는 분명할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의도적으로 우리 힘을 빼신다.

우리가 늙어 힘이 빠진다는 것은 은혜다.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갈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그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구원에 대한 소망과 더불어 그 소망 가운데 의지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구원은 그래서 우리의 힘을 빼시는 과정 속에서 오나보다.

약함을 자랑하라는 바울의 역설이 이해되는 아침이다.

2.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얻을 확신의 기회를 주신다.

300명을 만드시고 그 날밤에 전쟁을 하라고 요구하신다. 무리한 요구라고 느끼셨는지, 아니면 기드온이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아셨던 것인지... 하나님은 요구하지도 아니한 증거를 추가로 제공하신다. 기드온에게 미디안의 진영으로 가보라는 것이다. 

기드온은 진영에서 들었던 꿈 이야기를 통해서 최종적인 확신을 가진다. 그리고는 순발력있게 전쟁을 치른다. 

하나님은 스스로 증거를 제공하시고 확신시켜 주신다. 하나님에 대한 많은 상처가 있는 사람(기드온)에게는 많은 위로와 확신의 기회를 주신다. 요구하지 않는 증거까지도 직접 챙겨주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불안과 불신에 대해서는 관용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많은 상처를 가진 자들에게 대해서는 그 상처를 치유하여 믿음으로 나올만한 많은 기회들을 주신다. 

3. 전쟁 승리의 마지막에 에브라임이 등장한다.

이전에 전쟁을 위한 모집때는 보이지 않던 여로버암 지파가 등장한다. 드보라때도 기드온 때도 유명지파, 즉 유다나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자파에 대해서는 별로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역할을 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한다.(삿 5장)

여기서 에브라임의 등장도 뒷장에서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이는 에브라임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을 강화시켜 주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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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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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6장] 기드온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이전의 사사와 유사점이 있다면, <작은 자>를 불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드온을 부르시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신뢰(믿음)를 다시 얻는 시간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깨어진 신뢰(13절)가 큰만큼 그것을 회복시키시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을 알고 계신듯 합니다.(이스라엘 그들의 범죄함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미디안의 공격으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에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다.

  1) 범죄: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여호와께 악을 행했다.  

  2) 진노: 여호와께서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1) 미디안을 피해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었으나, 파종할 때가 되면 미디안이 올라와서 토지 소산을 멸하며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않고 양과 소와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3) 요청: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으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1)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한 아모리 사람의 신을 두려워하였다고 지적.

  4) 구원: 여호와의 사자가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에게 나타나 사사로 세우심

   (1) 미디안 사람 몰래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려고 하던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부르심. 

   (2) 기드온은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를 버리사 우리를 미디안에게 넘겨주셨다.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 이적이 어디에 있느냐? 반문함. 

   (3)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네가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요청하시고, 그래서 너를 보낸다고 말씀하신다. 

   (4) 기드온은 자신은 작은 자라고 말한다.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한 집의 작은 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호와는 기드온이 미디안을 한 사람을 치듯이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5) 기드온은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제물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 앞에 드리매, 여호와께서 그 제물을 바위에 놓으라 하고 지팡이 끝을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예물을 살랐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사라졌다. 

   (6) 그제야 기드온은 자신이 여호와를 봤다는 것을 인식하고 두려움에 가득했으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드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 살롬이라 했다.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둘째 수소를 잡아 바알과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고 하자, 기드온이 종 10명과 함께 밤에 그 일을 했다. 

   (8) 다음날 아침에 이 일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드온을 죽이려 하자, 기드온이 아비 요아스가 너희가 바알을 위해서 다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반문한다. 그가 신이라면 그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고 불렸다. 

   (9)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 이에 기드온은 나팔을 불었고, 아비에셀이 그 뒤를 따랐다. 기드온은 자기 지파인 므낫세에 두루 사람을 보냈고, 아셀과 스불론, 납달리에도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모여들었다. 

   (10) 기드온이 하나님께 다시한번 구원의 표징을 구했다. 한번은 양털 한 뭉치에만 물이 있도록, 다른 한 번은 양털 뭉치에는 물이 없고 주변 땅에만 이슬이 있도록. 그 밤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셨다. 

 

  5) 승리: 7,8장.

  6) 평화: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드보라 이후 이스라엘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죄를 범한다. 이번에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민족은 미디안이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산으로 이들을 몰아냈고, 소산물과 가축들을 빼앗아갔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밤에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려고 하던 기드온을 부르신다. 처음 기드온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버리신 것이 아니냐?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네가 가서 이스라엘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라고 말씀하시며 사명을 주신다. 자신의 작은 자임을 고백하는 기드온에게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내가 너와 함께 함으로 너를 이기게 하겠다고 확신을 주신다. 그러면서 제물을 드리려는 기드온 앞에서 하나님은 하나의 기적을 보이시고, 그것으로 인해 기드온은 자기와 이야기를 나눈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드온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안심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더 무서운 일을 시키셨다. 둘째 수소를 가지고, 바알과 아세라 나무 신상으로 번제를 드리라는 것이다. 기드온은 그 리을 종 10명과 함께 시행했지만, 사람들이 두려워 밤에 행해야만 했다. 다음날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사람들은 기드온을 죽이려고 한다. 그러자 기드온의 아비 요아스가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사람들을 꾸짖어 우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 제기를 하고 바알 스스로가 다투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라고 하여 진정시킨다. 이 일로 인해 기드온은 바알과 다투는 사람이란,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미디안과 아멜렉과 동방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와 이스르엘에 진을 쳤다. 기드온은 나팔을 불고, 므낫세와 아셀, 스불론, 납달리에 사람들을 보냈고, 무리들은 기드온에게 모였다. 


기드온은 다시 한 번 양털로 하나님의 증표를 얻기 원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확신을 주셨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는 과정을 자세히 다룸(다른 사사들에 비해서 매우 자세하게)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작은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미디안을 두려워 한 나머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그는 여호와의 명령에 사람들을 무서워한 나머지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몰래 했다. 또한 그는 그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 자를 향해서 하나님은 <큰 자>라고 부르셨다. 작은 자에게 큰 자가 되라는 꿈을 가지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작아진(신앙, 사회생활, 자기 자신...) 기드온을 향해서 이제는 작아질 이유가 없다고, 내가 너와 함께 하니 이제는 작아질 이유가 없고 큰 자임을 확인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에훗(왼손잡이)을 부르시듯, 드보라(여자)를 부르셨고, 이제 작은 자 기드온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작은 자>들을 세우시고 있다. 결국 세상에서 작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신의 나라를 구원하시는 그분의 패턴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적용이 작은 자라도 주 안에서 용기를 갖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작은 자를 들어 큰 일을 이루신다로 가야 한다. 



2. 기드온에게 여러차례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나옴


  1)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 끝으로 고기와 무교병을 대니 바위에서 불이 나왔고, 이로 인해 여호와 인줄 알게 됨

  2)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부수고 그 나무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지 않음

  3) 미디안과 전쟁을 치르기 전 양털 테스트를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두번 다 응하시고 확신을 주심.


이 모든 장면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해 주면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기드온이 전쟁을 해야 할 때에 므낫세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여러 지파의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지도력이 있었으나 역으로 기드온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상당히 불안정했다는 것도 볼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을 점점 더 신뢰해가게 된다. 오랜시절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다른 민족에게 이스라엘을 팔았다고 생각하며 모든 신뢰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은 여러차례 기드온에게 나타나시고 보여주시고 확인시켜 주신다.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드온이 정말 자신 안에서 믿음으로 확신하도록 돕는 것 같은 모습을 본다. 


하나님에 대한 상처가 큰 사람, 실망이 큰 사람, 분노가 컸던 사람도 하나님은 돌아오게 하신다. 잔잔한 바람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다시 확인시켜 주시고 때로는 보여주시어 그의 마음에 신뢰를 쌓아가신다. 점진적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 하루도 기대가 되고 포근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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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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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5장] 드보라와 바락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에 대한 노래지만, 그 노래 가운데 누가 참 공로자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도와 주리라 기대했던 여러 지파들은 강건너 불구경하고 오직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만이 목숨을 걸고 도왔다는 것과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도운 자는 믿었던 성읍이 아니라, 생각지 못한 한 여인 야엘이었다는 것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수가 아니라 목숨을 건 소수>, 기대했던 사람이 아닌 <작고 연약한 한 여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1.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2. 여호와께서 진행하실 때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이 물을 내렸다.(4절)

3.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 까지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다.(7절)

4. 이스라엘의 4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 사람이 없었다.(8절)

5. 그 때에 드보라가 깨어났다.(12절)

6. 에브라임에서 나온 자들은 아멜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고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고 마길에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블론에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다.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다.(르우벤 지파는 양의 우리 가운데서 앉아서 목자의 피리를 불었다는 것인가?)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러 있었고,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였다.(14-17절)

7.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까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18절)

8. 하늘은 이 전쟁을 도와 적들을 표류시키었는데, 메로스 주민들은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였다.(21,23절)

9. 오직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은 그가 시스라가 물을 구할 때, 엉긴 우유를 주고 그를 죽이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10.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그 땅이 40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드보라와 바락의 찬양이다. 이 찬양 속에는 절망의 시절 드보라가 일어나 자기 백성들을 구원한 이야기와 그 과정 속에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만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다른 지파(에브라임, 베냐민, 르우벤, 길르앗_요단동편지파, 단, 아셀 지파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무관심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손수 나셔서 땅을 진동하게 하시고 물을 내리시어 대적들을 표류하게 하셨지만, 메로스 주민들은 여호와를 돕지 아니했다. 오히려 헤벨의 아내 야엘이 한 여인으로서 시스라를 죽이는 공로를 행했다. 


주의 원수들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망할 것이고, 주를 사랑하여 주를 돕는 자들은 전쟁 후에 그 전리품을 가지듯(29-30절) 힘있게 서게 될 것이다.


그 땅에 40년 동안 평온하였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헌신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지파와 그렇지 않은 지파를 대조하였다.


이스라엘이 어려움 중에 있었을 때, 이스라엘에 지도자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병사 4만명이 있었지만 이들은 전투할 의지가 없었다.(4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그 때 드보라가 일어났다. 누군가가 드보라를 깨웠다. 그래서 드보라는 사람들을 일으키려 했지만, 스불론과 납달리 만이 목숨을 걸고 드보라를 도울 뿐, 나머지 지파들은 별 의지가 없이 남의 일 보듯이 했다. 

에브라임도 기대할 것이 없었고, 르우벤은 양의 무리가운데 안아서 목자의 피리를 즐기고 있었으며, 단은 배에 머물러 있고,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고 드보라를 돕지 않았다. 요단 동편 길르앗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베냐민 지파 중 일부만 도울 뿐이었다.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속에는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들이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담겨져 있다. 왜 이들은 돕지 않았을까? 혹시 드보라가 여자라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남자 뿐 아니라 여자도 들어 쓰신다.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하나님은 남자 대통령을 세우기도 하시고, 여자 대통령을 세우기도 하신다. 한국도 처음으로 여자 대통령이 나왔다. 여자라서 어떻다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한다. 그냥 대통령이고, 그도 다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여자라는 기준이 아닌, 대통령이라는 기준만을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들 마음에 남아 있는 <여자라서>라는 의식이 이번 여성 대통령이 임기를 다하는 5년 동안 뿌리 뽑히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래 본다. 



2. 하나님이 전쟁을 도왔음에도 돕지 않은 사람들과 도와주 사람


성경은 하나님이 손수 이 전쟁을 주관하고 돕듯이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극적이다. 메로스라는 성읍은 적극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다.(23절) 그래서 하나님은 메로스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오히려 한 남자의 아내인 야엘이 결정적으로 하나님을 도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그녀의 지혜과 과단성 있는 결단이 시스라를 죽이고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온다. 그리고 40년간의 평온을 이루어 낸다. 


하나님을 돕는 사람은 기대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강한 자들 다수의 무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에 협조하지 않았다. 모르척 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서운하게 한 지파요 성읍이 되었다. 오히려 아무런 능력도 없어 보였던 한 여인의 재치과 과단성이 하나님을 도와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강하고 부한 자는 오히려 하나님을 돕는 일에 소홀하다. 그러나 존재감이 없던 한 여인이 하나님을 돕는다.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자들, 소자들의 것인가 보다.



3. 마지막 그 영광과 축복은 누가 얻게 될 것인가?


믿자!!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신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를 위해 헌신한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실 것이다. (31절)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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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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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4장]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등장하는 사사는 어떤 사람인가? 에훗이 왼손잡이(오른손을 못쓰는 사람)였던 것과 더불이 이제 여성으로서의 사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결정적 승리를 가지고 온 헤벨의 아내 야엘이 이야기가 나온다. 장애가 있고, 성적으로 약자에 속한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사사 에훗이 죽은 후에 사사 드보라가 일어났다. 

  1) 범죄: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 

  2) 진노: 여호와께서 가나안 왕 야긴의 손에 이스라엘을 파셨다. 그의 군대장관은 시스라였다.

         야빈 왕은 철 병거 900대가 있어서 20년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다. 

  3) 요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4) 구원: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재판을 행함.

       드보라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인도하여 너에게 넘겨주리라.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야지만 올라가겠다고 했고, 드보라는 올라 간다고 했으나 이 전쟁의 영광을 바락이 얻지 못하고, 다른 여인이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5) 승리: 바락은 납달리와 스불론에서 만 명의 병사를 데리고 다볼 산으로 갔고, 시스라는 모든 병사와 병거를 가지고 기손 강으로 모였다. 드보라의 격려로 전쟁은 시작되었고, 바락 앞에서 시스라는 패배하여 도망치다가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피하게 됨. 그러나 야엘이 그를 안심시키고는 결국 시스라를 죽임. 이와 같이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앞에서 굴복하게 하심


  6) 평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가나안 왕 야긴의 손에 이스라엘을 파셨다. 그들은 철병거를 900대나 가지고 있는 강력한 족속이라 이스라엘은 그 밑에서 20년 동안 고통 속에서 심한 학대를 받고 지냈다. 


그 때 랍비돗의 여선지자 드보라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와 재판을 받았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사가 되어 바락을 따로 불러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만 명을 모집하여 가나안 왕 야긴과 전쟁할 것을 명령한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말씀한다. 그러나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있기를 원했다. 드보라는 함께 있을 것이겠다고 말하면서도, 이 전쟁의 승리의 영광을 바락이 차지하지는 못하고 여인이 그 영광을 가로챌 것이라고 말한다. 


바락은 드보라의 명령을 따라 다볼 산으로 갔고, 가나안 왕 야긴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병사들을 기손 강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쟁은 벌어졌다. 바락은 시스라의 군대를 제압하고 시스라는 도피하는 도중 믿었던 야엘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렇게해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 승리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여선지자가 사사로 등장하다. 


4번 째 사사로 등장한 드보라는 여자다. 그는 이미 여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었고 사사로서도 활동했다. 바락을 세워 전쟁을 치르도록 했다. 또한 바락이 드보라를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그 당시 드보라가 이스라엘 사이에서 가지고 있었던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진 사사로서 여성이 등장한 것이다. 이전에 왼손잡이 에훗이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못쓰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여성으로서 사사가 등장한다. 그는 성적인 측면에서 당시의 기준으로 본다면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가 되었다. 


정말 위기의 순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류로서 강자로 인정받는 자들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인 약자가 구원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사사기의 특징 중에 하나로 보인다. 구원은 강한 자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통해서 온 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2.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죽인 자는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다.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 그로 전쟁을 치르게 하고 승리하게 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바락에게 그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여인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바락의 대적자 시스라는 바락의 손에 의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무력한 여인 야엘의 손에 의해서 죽게 된다. 야엘의 남편 헤벨은 가나안 왕 야빈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 당연히 야빈의 군대장관인 시스라와도 우호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믿었는데, 그래서 죽고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시스라의 죽음을 여인의 손에 내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이토한 마찬가지다. 결정적 승리를 가져온 것은 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사기 4장은 여선지자 여사사인 드보라와 시스라를 죽인 여인 야엘이 주인공이다. 여자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사사기 4장은 여성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여주는 장이다. 약자가 민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한다.


3.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하솔 왕 야빈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었다. 


이와 같은 사전의 관계가 시스라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에게는 승리를 안겨준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헤벨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에 하나다. 이와 같은 사건이 모세와 연결점을 찾게 된다. 


하나님은 어떤 과거가 모여 현재를 이루게 될지 알지 못한다. 전에는 불리했던 과거가 오늘날 유리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다만, 그 분이 그의 백성들에게 선하시다는 것만을 확신할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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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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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3장] 우리 가운데 죄가 살고 있는 것인지, 죄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지... 어느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죄를 허용하는 즉시, 죄는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할 테니까요.(5,6절) 옷니엘, 에훗, 삼갈을 사사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는 사람의 조건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 생각해 봅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그 땅에 남겨둔 가나안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며 치르게 되는 전쟁

  1) 여호와께서 전쟁을 모르는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알려주고, 그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방민족을 남겨두셧다.

  2) 남겨둔 이방민족: 블레셋의 다섯 군주, 모든 가나안 족속, 시돈 족속, 히위 족속,

  3) 이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모세를 통해 조상들에게 이른 명령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했다. 

  4)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가운데 거주하면서 그들의 딸을 아내로 맞고, 자기 딸들을 그들에게 주고 그들의 신을 섬겼다. 


2.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사사 옷니엘을 세우심

  1) 범죄: 여호와의 목전에서 여호와를 잊고 바알과 아세라들을 섬겼다. 

  2) 진노: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다. 8년간 그 밑에서 그를 섬겼다. 

  3) 요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4) 구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한 구원자를 세워 그를 구원하게 하시니, 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5) 승리: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해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구산 리사다임을 이김.

  6) 평화: 평온한 40년을 보내고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다. 


3. 모압 왕 에글론에서 구원하기 위해 사사 에훗을 세우심.

  1) 범죄: 여호와의 목전에서 여호와께 악을 행했다.  

  2) 진노: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함. 18년간 섬김

  3) 요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4) 구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한 구원자를 세웠는데,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5) 승리: 에훗이 모압에게 공물을 바치고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해서 모압 왕을 죽이고, 에브라임 산지에서 이스라엘을 불러 모아 모압을 공격하여 승리를 가져옴. 완벽한 승리.

  6) 평화: 80년 동안 모압 이후로 평온한 시절을 보냈다.


4. 에후 이후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함.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내 글로 쓰기]


여호수아를 통한 정복 이후에도 가나안의 이방민족들을 완전히 좇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들을 남겨두셨다고 표현한다. 이들이 남겨둔 목적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로 하여금 전쟁을 통해서 시험하고 이들이 정말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지키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하려 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사사기에서 보면 이스라엘 사이에 가나안 족속들이 사는 것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가나안 족속들이 사는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5절) 그만큼 가나안 족속의 영향력이 컸고,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작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들과 통혼하면서 그들의 신을 섬기면서 그들처럼 되어갔기 때문이다.(6절)


3장에서는 세 명의 사사를 언급한다. 첫 번째는 여호수아서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 옷니엘(수정: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이다. 옷니엘은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두 번째는 에훗이다. 에훗은 베냐민 사람으로 왼손잡이(오른손을 못쓰는)다. 그는 지혜를 발휘하여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고, 에브라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원하여 모압의 용사들을 만 명이나 요단에서 죽이는 공로를 세웠다. 세 번째 사사는 아낫의 아들 삼갈인데, 그는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공로를 가지고 있었다. 


옷니엘을 제외한 에훗이나 삼갈과 같은 사람은 뭔가 하자가 있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이스라엘이 가나안 이방인들과 하는 전쟁을 물리적 전쟁이면서 영적 전쟁이다. 


초반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이 남겨 있는 것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남겨 둔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 거하면서 그들의 자녀들과 이스라엘 자녀들이 서로 통혼하고 그들의 신을 따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들과의 관계가 늘 전쟁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후에 보면 가나안의 여러 족종과 전쟁을 통해서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실재의 전쟁) 그와 같은 전쟁이전에는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영적 전쟁이 있었음을 의미하고 그 영적 전쟁에서는 매번 실패하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실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세상적인 가치관들과 전쟁을 치른다. 최근 한국교회는 반기독교집단과 이단집단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계속 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영적 전쟁을 우리는 모를 수 있다. 세속화되어져 가고 있는 한국 교회의 실상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통혼하면서 세상과 섞여 버리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은 바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외부적인 전쟁도 있다 그러나 내부적 영적 전쟁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전쟁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2. 사사로 세워진 에훗과 삼갈의 특징


에훗은 베냐민 지파요 왼손잡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베냐민은 야곱의 12아들 중 막내에 해당된다. 가장 작은 지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훗은 왼손잡이다. 오른 손에 장애가 있어서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한다고 한다. 굳이 왼손잡이라고 쓴 것을 보면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맞을 것이다. 암튼, 에훗의 외부적 조건을 봤을 때, 남들보다 앞서는 조건은 없는 셈이다. 삼갈도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지만,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을 죽인 것을 보면 소모는 목동 출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이스라엘을 고통 속에서 구원해 낸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사사로 세우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만 들어 쓰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의미로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자라도 사용하신다라는 측면으로 보는 것도 썩 좋은 해석은 아닌듯 하다. 오히려 하나님은 누구든 들어 쓰신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조건과 상관없이 아무나 필요한 사람들을 들어 쓰신다. 하나님 스스로가 강력하시기 때문에 누구를 들어 쓰셔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측면으로 봐야 한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측면 말이다. 그러는 중에 에훗이 있고, 삼갈도 있는 것이다. 만약, 약한자만 들어 쓴다고 보면 <옷니엘>은 설자리가 없다. 그는 여호수아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3. 우리 가운데 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죄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가?(5절)


여호수아서를 볼 때는 이스라엘 가운데 다 멸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들의 존재가 무력해 보였다.) 그러나 사사기를 보면 그들의 존재는 상당히 커진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고(5절) 그들의 침략과 그들의 유혹에 무너지고 있는 연약한 이스라엘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6절)


처음에 죄는 우리 가운데 약한 존재로 자리를 잡는다. 다리 한 쪽만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죄는 다른 쪽 다리도, 엉덩이도 몸통도 머리도 다 그 안으로 집어 넣고, 결국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있게 되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이 되고 만다. 죄란 그렇다. 죄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철저하게 죄를 막아내지 않고 허용하는 순간, 우리는 죄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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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2장] 애굽에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를 넘어 마침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하나님. 이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집에서 혼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15절) 다른데서 혼나면 어떻게 해서든 구해 내고, 집에 데리고 오면 자신이 혼내는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부모밖에는 없습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서 나타나셨다.

  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사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너희들과 맺은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않았다고 말함. 

  2) 그러너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한, 이 땅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 제단들을 헐어버리라 한 말을 어기고 어찌하여 이 땅 주민들과 언약을 맺고 제단을 헐지 않았는가!!

  3)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겠고, 너희 옆구리의 가시가 될 것이다. 그들의 신들이 너희의 올무가 될 것이다. (여호수아서 23:13의 예언처럼 됨)

  4)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자의 말에 소리 높여 울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다.


2. 여호수아가 죽다.

  1) 여호수아가 사는 날동안과 그 당시 생존한 장로들(이들은 하나님의 큰 일을 본 자들인데)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여호와를 섬겼다. 

  2)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고, 그 세대의 사람들도 다 그 조상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 


3.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리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겼다. 

   (1)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 주위의 백성들의 신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다. 

   (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노략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셨다. 그들이 대적을 당하지 못했다. 

   (3)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이 괴로움이 심하였다. 


4. 여호와께서 임시 방편으로 사사들을 세워 구원하신다.  

  1)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워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 

  2) 그러나 그들이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했다. 

  3)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그들과 같이 행하지 않았다. 

  4) 여호와게서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사사가 사는 날동안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였으다. 왜내하면 그들이 대적에게서 압박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켰기 때문이다. 

  5)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였다. 

  6)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죽을 때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들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행하지 않나 그들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여호와의 사자는 길갈에서 보김으로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맹세한 땅으로 인도하여 언약을 어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 편에서 언약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다. 다른 신을 섬기고 제단을 헐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히려 이스라엘 가운데 남아있는 이방인들을 쫓아내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가시 역할을 할 것이리고 말씀하신다. 여호수아 23장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제 110세에 여호수아가 죽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던 장로들도 나이들어 죽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세대가 들어선다. 이들은 한마디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행하신 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였다. 이들은 금새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그 땅의 다른 신들을 섬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그들을 노략자들의 손에 넘기신다. 구원해 주지 않으시고 대적을 이기지 못하게 하신다. 이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신다. 언약을 맺고 맹세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엄격한 결과를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고통과 신음을 모르척 할 수만은 없었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임시적이지만 뜻을 돌이켜 사사들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다. 사사가 사는 날 동안은 그들과 함께 하셨고, 대적들의 손에서 건져주셨다. 그러나 그 때 뿐이었다. 백성들은 그 사사가 죽고 나면, 언제 하나님이 계셨느냐는 식으로 조상들보다 더욱 큰 타락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여호수아 때에 남겨둔 이방 민족들을 계속 해서 그 땅에 남겨두도록 한다. 가시의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들이 정말로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메시지와 묵상들 길어 오르기]


1.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뿌리깊은 죄의 모습을 보여준다. 

  1) 여호수아와 그 당시의 장로들이 죽으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

  2) 사사들의 구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사들이 죽고 나면 전보다 더 악해지는 모습

  3) 하나님의 언약과 사사들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는 불순종과 우상 숭배함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시는 방법을 보여준다.

  1) 외부적인 요소를 제거함으로 이들의 참모습을 보여주심(여호수아가 죽고, 그 당시의 장로들이 죽고)

  2)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는 사사를 통해서 구원을 베푸심(임시적인 구원)

  3) 그들가운데 자기 자신의 실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은 상태로 두심.(가시로서)


3. 하나님은 성도의 삶 속에 의도적으로라도 <가시>와 같은 존재를 두신다. 


이유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가 듣지 않는 가를 시험하기 위함이다.(22절)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성도의 삶 속에 가시를 두신다. 따라서 가시가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가시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가시를 통해서 만이 우리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참 모습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서 여호수아를 거두어 가시고, 그 당시의 장로들을 거두어 가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 모습이 나타나고 말았다.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가나안 백성들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유혹 때문이라고 봐서도 안된다. 그들을 남겨둔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남겨놓은 가나안 백성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참 모습을 확인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시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의 참 모습이 비참함이라면,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라! 은혜를 구하라! 자비를 구하라!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시리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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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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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시 1장]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과 사사기 1장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의 성취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현상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마치 열왕기와 역대기가 같은 역사를 다르게 기록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한 듯 합니다. 언약의 성취로서의 종말을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하고 언약의 성취와는 괴리된 현실에 대한 안목도 필요합니다. 이 두가지 안목이 모두 필요하니까 성경은 역사적 사건을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와 시므온의 정복 활동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 대해서

  2) 여호와께서 유다를 먼저 부르셨다. 그래서 유다는 시므온과 연대하여 전쟁을 치르게 됨.

   (1) 유다가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

   (2) 베섹에서 아도니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이기니 아도니 베섹의 엄지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자름

   (3) 아도니 베섹은 자신이 전에 70명의 왕들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아도니 베섹이 그렇게 죽었다. 

  3)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고, 성을 불살랐다.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다.

  4) 갈렙은 기럇세벨을 점령한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했는데,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했다. 갈렙은 그의 딸을 그에게 주었다. 그의 딸 악사는 출가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땅과 함께 샘물로 구했는데, 갈렙으로부터 윗샘과 아랫샘도 얻었다. 

  5) 모세의 장인은 겐사람인데,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거주했다.

  6)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진멸하였는데 그 성읍의 이름이 호르마라 하였다. 

  7) 유다가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다. 

  8)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의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어서 쫓아내지 못했다. 

  9) 헤브론은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여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벧엘을 치다. 

  1) 요셉의 가문도 벧엘(본 이름은 루스)을 치러 올라갔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2) 정탐꾼들은 벧엘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성읍의 입구를 알려달라고 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벧엘을 치고  그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놓아 보냈다. 이들이 헷사람의 땅에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고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있다. 


3.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

  1) 므낫세가 쫓아내지 못하자,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게셀이 그들중에 거주함.

  3)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해서 그들에게 노역을 지켰다. 

  4) 아셀이 그 땅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5) 납달리도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다. 그 중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은 노역함.

  6) 아모리 족속은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었다. 골짜기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후에 요셉 가문의 힘이 강성해 지자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 노역을 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라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시점으로 보면 여호수아서 다음의 이야기인데, 처음 얼마는 여호수아서와 중첩되는 내용이 있지 않은가 싶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정복을 마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사기에서는 아직도 전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 중에는 아직 완전히 점령되지 못한 지파와 지역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적 관점에서 예언적으로 본 것이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가나안 정복과 관련되어 크게 두 지파가 부각된다. 유다와 요셉지파다. 유다는 시므온과 연합하고, 베냐민과 같이 언급된다. 주로 유다의 성공적인 정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아도니 베섹을 심판한 장면과 옷니엘을 통해 기럇세벨을 정복한 내용, 모세의 장인 겐사람들의 후손들이 유다와 함께 하게 된 것(모세와의 연결점을 의도한 듯) 등 유다의 정복을 성공적으로 그린듯 하다. 물론 유다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로 인해 정복하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유다와 대조되는 지파는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다. 이들은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지파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므낫세와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납달리도 그 땅 주민들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단 지파의 경우는 오히려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서 산지로 몰려나갔다. 그들 가운데 거주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각지파가 강해진 후에야 노역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른 지파에 비해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파는 요셉지파인데 이들이 단 지파를 쫓아낸 아모리 족속을 제압하여 노역을 시킨 것으로 언급된다. 


1. 사사기의 시작에서 유다와 요셉 자파에 대한 기록이 강조되고 있다. 

2. 완전한 정복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정복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오랜시간 가나안 족속과 함께 상존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사사기의 관점 포인트

  1)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읽으라.

  2) 가나안 땅에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역학관계를 살피면서 읽으라.

  3) 다른 지파에 비해서 상당히 위축된 <단지파>의 운명에 대해서 살피면서 읽으라. 


사사기 1장은 사사기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디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초점을 잃지 않으려면 위의 세 가지 항목(추가적으로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을 기본적으로 주의하면서 읽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완전한 정복이면서 충분하지 못한 정복이었다.


사사기 1장에서의 이스라엘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에서 본 이스라엘 정복이야기하고 분위기가 다르다. 사사기는 아직도 정복해야 할 곳이 많고 쉽게 정복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룬 여호수아서는 모든 정복이 잘 마무리 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혼동이 온다. 


이는 여호수아서의 정복이야기 관점은 예언적인 성취에 초점을 둔 것이고, 사사기의 정복이야기는 실재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기간의 역사 기록에 있어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두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언약의 성취시점인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지금 현실에서 보는 역사적 한계에 대해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서는 완성을 지향하고 승리를 지향함으로 연약한 성도로 하여금 소망을 바라보게 한다. 반면 사사기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설명함으로서 영적인 긴장을 유발시킨다. 성도는 이 두가지 내용을 공히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다리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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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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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24장] 모든 일을 최종적인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인생의 마무리, 가나안 정복의 마무리를 24장을 통해서 합니다. 핵심은 우리의 신앙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을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에 따른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지요. 마무리까지 깔끔한 여호수아. 리더십의 모형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

  1)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조상은 강 저쪽에서 거주하면서 다른 신을 섬겼으나

  2)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가나안으로 부르고 그에게 이삭을 줬다.

  3)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는데, 에서는 세일 산을 소유했고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4) 거기서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냈고, 애굽에 재앙을 내려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다. 홍해에서 너희는 살렸고, 너희를 좇던 애굽의 병사들은 내가 멸하였는데 너희들이 이 모든 것을 너희 눈으로 봤다. 

  5)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매 싸울 때,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고 나는 그들을 멸절시켰다. 

  6) 모압 왕 발락이 너희와 싸울 때,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려고 할 때, 오히려 발람이 너희들을 축복하였다.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었다. 

  7) 내가 왕 벌을 보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는데, 이것이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한 것이 아니다. 

  8) [결론] 너희는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땅과 건설하지 않은 성읍을 얻었다. 그 가운데 거주하면서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이것은 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2. 이제 우리가 여호와를 위해서 결단해야 할 일

  1)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2) 만약 여호와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3) 백성들의 고백: 우리는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하리라. 여호와는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올라오게 하셨고, 우리 목전에서 큰 이적을 행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이니이다. 


3. 백성들의 결단에 대한 여호수아의 경고와 언약 체결

  1)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 예언함. 왜냐하면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저희들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2) 만약,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셨다가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3) 백성들은 강력하게 부인하며,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고백한다. (21절)

  4) 여호수아는 그렇다면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라고 권면한다. 

  5) 백성들은 여호와만을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겠다고 다시 고백한다. (24절)

  6)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함.

  7)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증거로 삼음.

  8) 언약을 체결하고 각기 기업으로 돌아갔다. 


4. 여호수아서의 마무리

  1)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었다. 

  2) 여호수아를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인 딤낫 세라에 장사했다. 

  3)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그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 

  4)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 

  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 여호수아가 장로와 수령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세겜으로 부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수령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세겜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결단을 통한 언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이끈다.


여호수아는 먼저 이들에게 우리 조상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말한다. 아브라함의 조상은 강 저편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우상을 섬기던 그 자리에서 불러내어 가나안으로 불러오셨다. 그리고 씨에 대한 약속을 주시고는 이삭을 주셨고,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셨다. 에서는 세일 산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야곱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애굽을 나오게 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적을 봤고, 대적자들을 어떻게 하시는가도 경험했다. 그 때 뿐만이 아니라 요단 저편에서도 아모리와 전쟁에서도 모압의 위협(발람의 저주)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켜 오셨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열매를 거두어 먹고 있다고 먼저 역사적인 정리를 한다. 


그 뒤를 이어서 이들을 향해 결단을 촉구한다. 이제 우리가 믿을 신을 정해야 한다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길 것인데, 너희들은 어떤 신을 섬기리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촉구하자 이들도 여호와만을 섬길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백성들의 결심을 듣고 여호수아는 이들을 향해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너희들의 잘못과 죄를 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여호수아는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내리셨다가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백성들은 절대로 이방신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다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다. 그리고 백성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은 여호수아가 죽어 장사 지내게 되었다는 것, 그제서야 비로소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했다는 것,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어 장사지나게 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메시지와 생각들]


1. 다 경험하고 다 아는 내용이지만 결단이 필요하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지난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시 회고하고 정리해 준다. 그 이야기는 모여있던 지도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거나 함께 경험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결단할 것을 촉구하신다. 심정적으로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 이스라엘 무리 중에는 은근히 한 두개씩 가나안의 우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23절) 그러니까 심정적으로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명확하지만, 보험처럼 우상을 한 두개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모두 아는 내용이라고, 다 그럴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모두 한 두가지 말하지 않는 자기만의 우상을 붙잡고 있다.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를 한 두가지의 불필요한 것들을 쥐고 있다. 결단은 그것마져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내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결단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결단은 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선 안에서 행하든지 선 밖으로 나갔는지를 자기 자신에게 속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결자의 의지를 점검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여호와만을 섬길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심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성들이 전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쩌면 이들의 연약함 때문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완전하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다. 암튼,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계속 의심했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재차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는 이들과 언약을 체결한다. 언약의 체결이란 서로의 언약에 대한 내용에 대한 온전한 숙지와 함께 그것을 체결하려고 하는 그 사람의 의지가 명확해야 한다. 왜냐하면 약속이기 때문이고, 언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명확하게 한다. 


이제 여호수아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어떠했는가? 또한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서 어떻게 대하셨는가?에 대한 진행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호수아를 지나 사사기에 이르면 그것을 확인해 갈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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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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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23장] 성도란 안주란 없습니다. 천국에서조차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조차 멸절시키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성도가 어찌 안주할 수 있겠습니까? 안주를 조장할 수 있는 교리에 대해서 우리는 늘 경계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수아가 나이 들어 온 이스라엘에게 주고 있는 권면

  1) 여호와께서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었다. 

  2) 여호수아는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모아놓고 권면함


2. 여호수아의 권면(경고) 내용

  1) 너희가 다 봐서 알겠지만,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것이다. 

  2) 너희들이 모두 기업을 얻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신다는 약속대로 이루신 것이다. 

  3)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렇게 행하라

   (1)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떠나서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2) 너희 중에 남아 있는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3) 오늘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를 가까이 하라. 이는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고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 한 사람이 천명을 쫓을 것인데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기 때문이다. 

   (4) 너희 중에 남아 있는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 여호와께서 이민족으로 너희 목전에서 쫓아내지 아니할 것이다. 

   - 그들이 너희의 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옆구리의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될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3. 여호수아의 권면의 마무리

  1) 나는 모든 사람이 죽는 것처럼 지금 죽음을 향해 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 가운데 그대로 응하게 될 것이다. 

  2) 지금까지 너희에게 하신 선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진 것같이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할 것이다. 

  3) 만약 너희들이 너희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범하고 다른 신을 섬겨 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가나안 정복이 모두 마치고 분배도 마쳤다. 요단 동편에 기업을 이미 차지했던 두 지파 반도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평온한 시절이 왔다. 이제 여호수아도 모세처럼 나이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날이 가까웠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마지막 권면을 한다. 


먼저는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서 싸우신 것과 그 약속대로 대적으로 쫓아 주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승리는 저절로 지속되지는 않는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노력이 필요한데,  첫 번째는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떠나서는 안 되고 좌로나 우로 치우쳐도 안 된다. 편견 없이 그 말씀대로 온전히 행해야 한다. 둘째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남아 있는 민족들 가운데로 들어가 그들의 신을 부르고, 그 신들을 향해서 맹세하고 그것을 섬겨 절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 민족들과 가까이 하여 혼인하고 서로 왕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그들이 너희의 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채찍과 가시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당하게 되는 비참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사실이었던 것처럼, 너희를 향한 불길한 말씀도 임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신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여호수아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을 후손들을 위한 권면으로 마치고 있다.


나이가 많아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갈 때, 여호수아는 마지막 자신이 해야할 또는 할 수 있는 유익한 일을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위한 권면으로 보았다. 여호수아는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모았고, 우리가 얻은 성취와 승리가 어디에서 부터 온 것인지를 명확히 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저절로 유지되는 승리와 평화는 아니다. 지속되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지켜야 함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좌우로 치우친다든지, 다른 민족들과 섞여 혼인관계를 맺는 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란 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이 누리고 있는 평화의 근거는 하나님의 승리하게 하심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이 중요한 핵심을 잊지 않도록 권면(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치적을 은근히 자랑하면서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좋은 이야기로 덕담을 주면서 좋은 분으로 인상지워지게 하면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런 이미지와 평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듯 하다. 사건의 현재의 평화에 근간을 파악하고, 그 평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확대되기 위해서 지도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특히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경계해야 할 것을 간과할 때 어떤 결과가 오게 될지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 선물은 좋은 선물, 이쁜 선물을 준비하려고 하지 말자. 당장은 거칠지만 두고두고 유익할 선물을 준비하자. 그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덕목중에 하나다. 


2. 축복의 말씀도 신실하지만, 불길한 말씀도 신실하다는 것이다.(15절)


하나님 앞에는 언제나 축복과 저주가 함께 있다. 성도인 우리의 삶 앞에도 마찬가지다. 축복이 신실한 것처럼, 저주 또한 신실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알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저주가 임할 것이다. 


저주의 신실함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3.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땅에서조차 멸절할 수 있다.(15절) 


이스라엘은 어렵고 힘들께 가나안, 아름다운 땅을 소유로 얻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큰 희생을 치르고 배움의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약속으로 받은 아름다운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영원히 누리게 되는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받은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되는 비참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하신다. 따라서 성도에게 있어서 안주란 없다. 기계적인 보장도 없다. 


성도는 늘 긴장하며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다. 아름다운 땅에서 조차 멸절될 수 있다면 우리가 어찌 안주할 수 있겠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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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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