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3편]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에게 복이 있도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며,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지금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면, 성경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기]


1. 기자의 고민: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습니다. 

   대적자의 말: 너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2. 기자의 고백과 확신

  1)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2)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3)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4)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5)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3. 기자의 격정

  1)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2)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3)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정리2.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 보기]


시편 기자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가 많음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집요한 말은, 너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로서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으며, 너는 회복될 수 없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편 기자가 직면한 문제는 영적인 문제로까지 확대하여 생각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


그런 상황에서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와 영광이요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와 같은 확신에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성산에서 응답해 주신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았고, 확고하게 붙잡고 계심을 알게 된다. 그러자 지금보다 더 많은 대적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물리적인 힘이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더 큰 확신과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시편 기자는 구원을 소망하지만,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시간적 모순을 통해서 구원의 확실성을 더욱 강조한다. (구원하소서.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따라서 시편 기자가 소망하는 기도는 불확실한 소망이 아니라, 너무나 확실하지만 다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확신이다.  



[정리3. 본문에서 주고 있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우리의 근본적인 대적은 구원에 있어서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죄를 짓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어떤 어려움과 고독에 직면하게 될 때 그곳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근원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결핍이요 생명의 결핍이다. 곧 구원에 대한 결핍인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대적은 우리가 구원받지 못할 것을 말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결핍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돈을 주지만, 그 돈으로는 충분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을 주지만 그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끊임없이 <더> 추구하게 된다. 더 없다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결국은 돈이든, 사람이든 그것의 종이 되도록 하고 만다. 

사람은 구원에 배고픈 상태다. 세상과 마귀는 다른 이름이지만, 구원이 없다고 말함으로 우리로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조정할 목적으로 그 미끼를 던진다. 우리는 늘 구원에 있어서 불안하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실존이다. 


2. 의지할 여호와 하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은 천지차이다.


그와 같은 인생에게 믿고 구원을 의탁할 대상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너무 큰 삶의 차이를 가져온다. 시편 기자는 그 의지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고 그를 의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며, 나의 머리를 들수 있도록 하시는(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은 어떤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든가? 아니면 스스로 그 두려움과 싸우든가 아니면 그 두려움을 제거해 주는 담보로 자신의 영혼을 마귀에게 파는 것인데, 그것은 더 큰 두려움으로 가는 미끼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할 바위시다. 믿고 의지할 만하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인생이란, 결국 두려움의 종으로 사는 인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땅에서 온갖 충만을 가진다고 한들 그것이 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것들이라면, 거기에 무슨 풍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두려움의 껍데기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행복은 없는 것이다. 


3.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 미래적이지만, 현재적이다. 그래서 오늘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확신이 클 때, 가장 확실한 어떤 대상을 걸고 맹세를 하곤 한다. 너무 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자는 너무 큰 확신이 있을 때, 그 확신이 내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제적인 것일 때 마치 이미 이루어진것처럼 과거형으로 말해 버린다.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 질 것이라는 확신이 클 경우에 말이다. 


구원은 받은 것이나, 이루어 질 것이라는 로마서 5장의 말씀도 그와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시제의 문법을 벗어나는 삶을 산다. 없는데 있는 것처럼 살때가 있고,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살때도 있는 것이다. 지금 구원이 없는 것 같은데, 구원이 있는 자처럼 여유를 가지고 산다. 지금 이 땅의 모든 풍요를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두 없어지는 것임을 알아 없는자처럼 검소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해 지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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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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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2편]세상 왕들의 연합이 결코 여호와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들처럼 힘을 모아 하늘에 이르려 했으나, 결코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이들의 반역을 우습게 여기신다. 하나님의 아들을 대리자로 시온에 세워 그들 통해서 이들을 부숴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만약 그들 중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있다면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이여, 아무리 힘이 커져도(지식과 기술이 발전해도) 하나님까지 넘보려고 하는 시도는 어리석다. 아담의 선악과나 바벨탑 사건은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셨겠는가? 겸손하게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복이 있도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3절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고자 헛된 일을 꾸민다.

   :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4-6절.

하늘에 계신 자가 이를 보고 웃으며 비웃으셨다. 

그리고 분을 발하며 진노하시어 그들을 놀라게 하셨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7-9절.   시온에 세워진 왕의 고백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너희들에게 전하겠다. 


여호와께서는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셨다. 


10-12절. 시온에 세워진 왕의 권면(열왕을 향한)

 1.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 지어다.

 2.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3.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4. 그러나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정리2. 본문의 내용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은 받은 자(그가 세운 아들, 시온에 세운 왕)의 권위에 대적하고자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들의 그 행위를 가소롭게 보시고, 분을 발하시고 진노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시온에 하나님이 낳으신 아들을 세우시고, 그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며, 그가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을 질그릇을 깨듯이 부수어 버릴 것을 말씀하신다. 


이 모든 상황을 아는 시온의 왕이 혹은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시편 기자가 세상의 왕들과 재판관들을 향해서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경배하여 그의 대리자인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고 항복할 것을 권면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급히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정리3. 본문이 자연스럽게 주고 있는 교훈과 묵상]


1.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에게 그들의 반역은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2. 하나님은 시온에 하나님의 대리자인 왕을 세워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는 강력한 힘으로 열방을 부술 것이다. 


3.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돌아서면 복을 얻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길에서 급히 망하게 될 것이다. 


4. 유대인들은 이런 신학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시온의 왕(유다의 혈통에서 난 왕)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열방의 왕들과 관원들을 힘으로 심판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메시야는 힘있는 능력자로 오시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안다.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이다. 그가 세상의 왕(마귀와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행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서(무력함으로) 이루셨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사랑이 칼 보다 더 강함을, 죽음이 죽임보다 더 힘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5. 그러나 이들에게도 여전히 관용은 살아있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이 계획(대적자에게 급하게 진노하시리라)을 알고 돌이키는 사람, 그 아들에게 입맞추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을 것임을 권면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 구원이 있다. 어서 나오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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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1편] 의인들의 태도와 운명, 악인들의 태도와 운명이 어떠한지를 심플하게 보여주는 시편이다. 우리가 성도라고 하면서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서 악인들(죄인들, 오만한 자들)의 인생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종종 그들의 자리에 서보기도 한다. 오래 머물러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다가 망한 인생이 적지 않은 것이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자. 굽은 자, 굽게 하는 자는 영원할 수 없다. 어느날 바람에 나는 겨처럼 흩어져 하나님의 곡간에 들어갈 수 없음을 잊지 말자. 악인의 잘 됨을 부러워하지 말자.  


[정리1. 시의 내용을 다시 받아 써보기]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정리2.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장치들]


1. 복있는 자(의인)와 악인들(죄인들,오만한 자)의 태도와 운명이 분명하게 다름을 강조한다. 

2. 악인들은 결코 복있는 자(의인)의 모임에 들 수 없다. 

3. 의인들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들의 길은 인정받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4. 복 있는 사람(의인들)은 악인들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 주야로 묵상하면서 따른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도록 하시니 모든 일이 형통하다. 

5.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처럼 마지막 날에 흩어질 것이고, 결국 의인의 모임에 들 수 없다. 

    그들은 바람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망하게 된다.


[정리3. 시편 기자가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와 묵상들]


1. 성도는 악인들의 자리를 따르거나 부러워해서는 안된다. 


2. 악인들의 자리(죄인들과 오만한 자)에 있는 자는 반드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3. 성도는 늘 의인의 자리에 있으려고 힘써야 하는데, 그래야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모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4. 성도가 의인의 자리에 있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부족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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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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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룻기 4장]룻기는 한 미약한 여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안에서 책임지려고 하는 한 유력한 남자 보아스에 대한 이야기다. 한 가정의 이야기, 한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성취해 가는 초석이 된다.큰 일을 도모고하고 큰 것을 꿈꾸는 자는 룻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작고 미력한 자들은 룻기를 통해 위대한 소망과 꿈을 가져야 한다. 룻기는 위대한 책이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기 위해 성취해 가는 과정. 

  1) 보아스는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서 기업무를 자를 기다렸다가 찾아서 그에게 제안한다. 

  2) 보아스는 장로 10인을 함께 청해서 그들을 증인으로 삼았다. 

  3) 모압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고 하는데, 그것을 당신이나 내가 사서 기업을 물어주어야 당신이 사지 않는다면 내가 사서 물어주려고 한다. 당신에게 우선권이 있으니 결정해라.

  4) 그 사람은 자신이 무르겠다고 말했다. 

  5) 그러자 보아스는 그것을 무른다는 것은, 죽은 자의 아내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6)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자신에게 손해가 되어서 무르지 못하겠다고 태도를 바꾼다. 

  7) 그 사람은 보아스에게 나오미에게서 그 땅을 사서 기업을 무를 것을 허락하고, 자신의 신을 벗어 그 약속을 장로들 앞에서 확증해 주었다. 

  8) 보아스는 말론으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자신의 아내로 맞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장로들이 증인임을 확증시킨다. 

  9) 장로들의 축복의 말: 네 집 안에 들어가는 룻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여 지기를 원한다. 또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기를 원한다고 축복함.


2.  보아스가 룻을 통해서 얻게 된 열매들

  1)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았고, 하나님은 아이를 갖게 하셨는데 아들을 낳았다. 

  2) 여인들은 나오미에게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 무를 자를 주셨고, 그 아이를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함. 

  3) 나오미가 그 아이의 양육자가 되었고,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여 '오벳'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4)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였다. 


3. 베레스의 계보에 대해서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담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룻의 요청을 받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보아스는 성문으로 가서 기업무를 자 1순위를 찾았다. 보아스는 그곳에서 그 사람을 찾았고, 그 이후 장로 10인을 초청하여 그들의 이야기에 증인으로 세우려 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땅을 사서 그의 기업을 물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리고,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안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이 무르겠다고 함으로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듯 했다. 그러자 보아스는 다시 그것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그것은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우는 것임을 확인해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일이 자신에 손해가 되는 일인줄을 깨닫고 보아스에게 기업무를 권리를 넘겨주었다. 


보아스는 그 권리를 받았고, 장로들은 그 일의 증인이 되었다. 장로들은 룻을 이스라엘을 세운 라헬과 레아와 같이 되기를 축복했고, 보아스에게는 에브랏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기를 축복해 주었다. 이에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아 들이고 그 가정에 하나님은 자녀를 주셨다. 이로 인해 그 마을의 여인들은 나오미에게 축하해 주었는데, 기업을 이어갈 수 있음을 축하하고, 나오미의 인생을 회복하게 해주신 것을 축하했다. 또한 이웃 여인들은 그 아이의 양육자가 된 나오미를 기념하여 '오벳'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오벳은 다윗 왕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다. 

베레스의 계보는 보아스를 거쳐 오벳으로 그리고 다윗으로 이어지는 혈통이 된 것이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보아스가 자신이 기업을 무를 것에 대한 열의를 다하고 있다.


보아스 자신의 열정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우선 일을 신속하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본인이 기업을 무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나오미의 가문과 룻을 책임지려는 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 속에서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려고 하는 열정과 의지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하면 더 하지 덜하지 않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책임지시려고 힘을 다하시는 노력이 십자가에서 명확해 진 것이 아닌가 싶다.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사건이라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룸 5:8)


누군가 나를 향해 이와 같은 열정으로 행하시고 돌보시는 분이 있다면, 그는 참 행복할 것이다. 지금 당장 어려움에 직면했더라도 쉽게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2. 결국 룻은 아들을 낳아 기업을 이었고, 나오미는 회복되는 축복을 얻었다. 


나오미와 함께 모든 희망이 사라졌던 룻도 보아스의 은혜 속에서 가정을 얻고, 자녀도 얻게 되었다. 이는 또한 나오미의 회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여 자신의 생애를 건 사람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셨다. 큰 위로와 격려를 주셨다. 그리고 실제적인 결실도 얻게 하셨다. 


나오미와 룻의 형편은 당시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의 모습과 유사하다. 법이 없고, 생명이 없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한 가정의 이야기, 한 작은 동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를 밝히는 이야기를 드러내신다. 결국 한 가정의 회복이 이스라엘 전체를 회복의 길로 인도하는 초석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룻기의 핵심 메시지다. 전체가 어두울 때,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작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한 사람, 한 가정을 바꾸심으로 민족과 나라 전체를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역사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변화란 그런 것이다. 큰 흐름 속에서의 변화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이 미래를 바꾸고, 작은 일이 큰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3. 한 가정의 소소한 일이 한 국가의 왕을 세우고 민족을 세우는 일의 기초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가 전 우주를 포함하는 거대한 일이기는 하나, 그 변화의 시작은 작은 한 가정, 한 여인의 충성과 그 충성을 호의로 받는 한 남자의 결정을 통해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룻기를 통해서 보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룻기는 한 여인과 한 남자의 이야기 이지만,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의 이야기다. 더불어 사사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겠는가에 대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큰 일을 꿈꾸고 큰 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 주변의 작은 일에 민감하고 충성하는 일을 통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이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역은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지금의 죠이, 지금의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한계를 느끼고 있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내가 해야할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는 것 그리고 진리와 옳은 길을 향해 매진하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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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룻기 3장] 나오미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보아스에게 희망을 걸었고, 룻은 충실히 순종하였고, 그 또한 은혜를 구했다. 보아스는 이들에게 언약 안에서 신실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화답했고, 이들의 인생을 책임지려 했다. 이런 모습은 우리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가 하나님께 희망을 걸고 조심스럽게 나아가면,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우리를 끌어 안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나오미의 계획

  1) 나오미는 룻이 안식할 수 있는 복을 얻게 되기를 원했다. 

  2)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되며, 그가 오늘 밤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너는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가서 숨어 있다가, 보아스가 누울 때 그곳을 알았다가 그 발 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우라고 지시함. 그러면 그 이후는 그가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2. 룻의 시행과 보아스의 반응

  1)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행했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누웠다. 

  2) 룻은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웠다. 

  3) 보아스는 밤중에 놀라 일어났고 그 발치에 있던 룻은 자신을 소개한 후에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을 덮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임을 상기시켰다. 

  4) 보아스는 룻의 행동의 진실성을 알았다.(이는 이미 룻의 현숙함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 보아스는 자신이 기업을 물어 줄 것을 약속했지만, 자기 보다 앞선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그가 기업을 물지 않겠다고 하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기업을 물어줄 것을 약속한 것이다. 

  6) 보아스는 룻의 안전을 위해서 아침까지 누워있으라고 했고, 새벽에 사람이 알아보기 어려울 때 일어나 그녀의 겉 옷에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성읍으로 보냈다. 


3. 나오미의 확신 

  1) 룻을 기다린 나오미는 룻이 오자 마자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2) 룻은 나오미에게 보아스가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다하고,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한 것까지 말하였다. 

  3) 나오미는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고 말하며, 그 사람은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나오미는 생각하고 있던 일을 시행할 때가 되었다고 보았다. 보리를 까불리는  때가 되었던 것이다. 나오미는 룻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려준다. 보아스는 우리의 기업을 물어줄 사람이라는 것과 오늘 보리를 까불리는 것으로 인해 좋은 조건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좋은 옷을 입고는 하루 종일 보아스에게 보이 않다가 숨어서 보아스가 잠드는 것을 알았다가 그 발치 이불을 덮고 누을 것을 지시한다. 그렇게 하면 그 이후는 보아스가 인도할 것이라고 본 것이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지시대로 그렇게 행했다. 보아스는 먹고 마시고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누웠다. 룻은 그것을 봐 두었다가 모두 잠들었을 때,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덮고 눕는다. 잠을 자다가 깬 보아스는 깜짝 놀라며 누구인자를 묻자, 룻은 자신의 룻이며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인 나를 덮어 줄 것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기업 무를 자이기 때문이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을 받는 보아스는 룻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았다. 룻이 그동안 현숙한 여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아스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기업을 무르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대신 자신보다 앞선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기업을 무를 생각이 없으면 자신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벽 녁까지 그곳에 머물도록 했다가 새벽에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보리 여섯 번을 되어 여인에게 주어 성읍으로 돌려보냈다. 

밤새 기다린 나오미는 룻이 오자마자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룻은 자초지종을 말하고 자신에게 보리 여섯 번을 담아 주었던 보아스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런 정황을 통해서 나오미는 보아스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린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나오미와 룻은 자신들의 언약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구했다.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보아스의 호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보아스가 자신들의 기업을 물어줄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나오미는 그것을 요구할 좋은 기회를 얻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보리를 까불리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오미는 자신과 룻에게 유일한 소망은 보아스가 기업을 물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도 약속되어 있는 것이었다. 나오미는 율법에 있는 요구를 보아스에게 하기로 결심한 것이고, 그것이 효과적으로 어필될 수 있는 상황이 언제 인가를 살폈던 것이다. 


성경은 언약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와 약속을 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얻어냈다. 이렇게 성경은 자신에게 주어진 언약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열려있음을 보여준다.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는 말씀도 동일한 의미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약속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언약의 약속대로 구원을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신 언약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를 향해 주신 하나님의 보편적인 약속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우리가 되자.


2. 보아스는 룻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했다. 


보아스는 룻의 적극적인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자신보다 앞선 기업 무를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책임지지 않으면 자신이 책임질 것을 약속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4장을 보면 보아스는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보다 자신이 기업을 물어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보아스의 마음에 적극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보아스는 하나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언약을 의지하며, 자신을 책임져 달라고 요청하는 백성을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받아주시고 책임지시려 한다. 심지어 그가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다. 자신을 의지하여 나오는 자를 거절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날개 아래 피하러 온 자에게 언제나 자비를 베풀며, 적극적으로 책임지려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지치고 가난한 인생, 이 땅에서 소망을 잃은 인생들이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너희에게 쉼과 구원을 주시리라. 


3. 나오미는 보아스 약속을 확신하고 믿었다.


나오미는 룻의 이야기를 듣고 보아스가 이 일을 이루기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그것은 보아스의 책임을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알게 되고, 보아스가 룻에게 담아준 보리 여섯 번을 통해서 확인된다. 보아스는 룻의 인생이 부족하지 않기를 바랬다. 채워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돌아가는 그 싯점에서도 보리를 채워준 것이다. 보아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신다. 그분의 열의를 보여주시고, 분명히 이루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떤 물증을 보여주시기도 한다. 룻에게는 보리 여섯 번으로, 우리에게는 또 다른 것으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증표를 잘 파악하고 있다면, 우리는 큰 담력 가운데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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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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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룻기 2장] 율법은 구속이고 제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율법은 은혜와 자비의 통로였다. 율법이 구속이요 제한이라고 여겼던 자들은 강한자요 부한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이들의 힘과 권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자 연약한 자들에게는 율법은 은혜의 통로였고, 그들이 살 수 있는 숨통이었다. 오늘날의 복지 정책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룻이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게 된 이야기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였다. 

  2) 룻은 나오미에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은혜를 얻으면 그를 따라 이삭을 줍겠다고 하자, 나오미는 이를 허락한다. 

  3) 룻은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는데, 우연히 들어간 그 밭은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다. 

  4) 보아스는 때마침 그곳을 방문하여 일하는 농부들에게 축복의 말을 인사로 했다. 

  5)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일하는 낯선 소녀를 보게 되고 그 종 중에 하나에게 그녀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6) 종은 룻이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 왔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를 베푸는 말을 해주다.

  1)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을 주으러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여기를 떠나지 말라고 말해준다.

  2)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목이 마르면 일꾼들이 떠온 물을 마시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3) 룻은 자신에게 큰 호의를 베풀어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표현했고,(나는 이방여인인데 어찌 은혜를 베풀어주시나이까?) 룻이 자신의 시모를 위해 자신의 고국을 떠나 왔다는 사실을 안 보아스는 하나님의 날게  아래에 보호 받으러 온 너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축복했다.   

  4)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에게 그런 은혜입기를 원한다고 고백했고, 보아스의 말에 큰 위로를 얻었다. 


3.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호의

  1) 식사할 때에 

   (1) 이리 와서 떡을 먹고,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어 먹으라. 좋은 자리에 앉아 볶은 곡식을 주매 배불리 먹었다. 

  2) 보아스는 자기 소년들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3) 그를 위해서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벌셔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했다. 


4. 보아스에게 얻은 호의를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다. 

  1) 룻이 그 날 하루 이삭을 주워 모은 양이 보리 한 에바쯤 되었다. 또한 자신의 먹고 남은 양식을 보여드렸다. 

  2) 나오미는 어디에서 이런 은혜를 얻었는지를 묻자, 룻은 보아스 라는 사람의 밭에서 일했다고 했다. 

  3) 나오미는 보아스라는 말에 그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고백하고, 그가 자신들과 가까운 친족으로 기업 무를 자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4) 나오미는 룻에게 추수가 마칠 때까지 다른 밭에 가지 말고 그 밭에서만 일하라고 했고, 룻은 결국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룻은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간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곳이 보아스 라는 유력한 사람의 밭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와 같은 사실은 모른채 룻은 아침부터 보아스가 자신의 밭을 둘러보러 오는 시간까지 열심히 일했다. 


마침 자신의 밭을 둘러보기 위해서 온 보아스는 낯 선 소녀를 보게 된다. 종에게 그녀가 누구인지를 묻자 나오미와 함께 자신의 고향을 떠나온 룻이라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아스도 소문을 통해서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터고 자신의 시모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젊은 여인의 모습이 귀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아스는 룻에게 위로의 말과 축복의 말을 한다. 하나님은 그 날개 아래 피하는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로. 더불어 자신의 남종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음식과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준다. 룻은 보아스의 이와 같은 호의에 감사하며, 큰 위로를 받는다. 자신은 이방 여인인데...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감사한 것이었다. 


보아스가 베푼 배려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도록 한다든지 일부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서 룻이 주울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룻은 한 에바나 되는 양의 이삭을 얻었고, 충분히 먹은 음식의 남은 것을 가지고 나오미에게로 갔다. 나오미는 룻이 들고 온 이삭의 양과 음식을 보고, 누구에게 호의를 입었다는 것을 금새 알게 된다. 룻은 그 사람이 보아스라는 것을 알려주고,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신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를 간파한다. 기업을 물어줄만큼 가까운 사람인 것이다.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계속 그 밭에서 일하도록 지시한다. 룻은 보리추수와 밀추수가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이삭을 주으며 지내게 된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하나님은 룻과 보아스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만나게 하셨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의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갔고, 보아스는 마침 자기의 밭에 찾아 왔다. 그리고 유독 룻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만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서 필연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가 가신다. 우리는 일상에서 눈을 떠서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필연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파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분명하게 느끼며 살수 있게 된다 


2. 보아스는 룻의 행실을 보고 칭찬하고 축복했으며 많은 혜택을 주었고, 룻은 그것으로 인해 위로를 얻고 감사했다. 


보아스는 룻의 행실에 대한 소식을 알 고 있었다. 자기 민족과 신을 버리고 나오미를 좇아 온 룻의 귀한 충성을 들었다. 보아스는 그것을 좋게 여겼다. 그런데 자신의 밭에서 일하고 있는 룻을 보게 된 것이고, 룻이 성실하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보아스는 룻의 행실을 칭찬하고 그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축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와 은혜를 배풀었다 

룻은 보아스를 통해서 큰 위로를 얻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그런 선한 행실에 대한 복을 빌어주며 현실적으로 따듯한 대우를 해주는 보아스로부터 큰 격려를 얻은 것이다. 


나오미의 배려는 룻의 충성으로 나타났다. 룻의 충성은 보아스의 마음에 좋은 이미지를 주었고, 보아스는 그 충성을 축복했다. 그리고 다시 룻은 그것으로 인해 위로를 얻게 된다. 선한 헌신이 하나님의 위로로 나타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의 선한 수고와 헌신은 하나님 안에서 인정과 상급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3. 나오미는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서 <기업 물어줌을 통해서 얻는 소망>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오미는 룻의 생각 밖 수확에 놀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은혜에 보아스라는 친족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거의 본능적으로 <기업무를 자>의 법에 대한 잊고 있던 율법이 생각나게 되었다. 즉, 이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 자신들에게는 은혜로운 법을 의지하여 나아가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을 가장 민첩하게 본 사람이 바로 나오미다. 나오미는 많이 세속화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법이 있고, 그 법은 그들에게 유효했던 것이다. 이제 나오미는 그 길을 열어가는 사람이 된다. 


율법이란 강하고 부한자들에게는 제한이 된다. 그러나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은혜와 복지가 된다. 율법을 제한으로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강한 때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약할 때에는 율법이 은혜의 통로가 된 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약한 자가 강한 자로 어떤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의 강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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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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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룻기 1장] 룻기의 두 주인공 중인 나오미와 룻은 배려와 충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1장에서 등장합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의 인생을 배려해 주고(은혜), 룻은 그런 나오미를 향해서 끝까지 충성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십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 말입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룻기 이야기의 배경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일

  2)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다.

  3) 엘리멜렉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다.

  4) 그곳에서 살면서 남편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이 남아 두 아들을 결혼시켰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룻이었다. 

  5) 그곳에서 10년 쯤에 두 아들마저 죽게 되어 나오미는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다. 


2. 나오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룻만이 함께 함

 

  1)나오미는 유대 땅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시어 양식을 주셨다함을 듣고 며느리와 유대로 돌아오려 함.

  2) 돌아오는 도중에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에게 너희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면한다. 새로 결혼해서 새 살림을 살라고 축복하며 보내주려 했다. 

  3) 나오미는 자신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으니 돌아갈 것을 제안했을 때, 오르바는 결국 마음 아파하면 떠났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붙좇았다. 

  4) 나오미는 오르바와 같이 룻도 돌아갈 것을 권면했지만, 룻의 결심이 굳어 더 이상 설득이 되지 않았다.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 결단했다. 죽는 일 외에 내가 어머니를 떠나면 벌을 받겠다고 말함. 

  5) 나오미도 룻의 결심이 굳은 줄 알고 더이상 재촉하지 않고 따라오도록 했다. 


3.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오다.


  1) 베들레헴에 돌아오자 사람들은 나오미를 알아보고 나오미의 이름을 불렀다. 

  2) 나오미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싫었다. 왜냐하면 나오미의 뜻은 기쁨인데,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불행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쳤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본 것이다. 

  3)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는 보리 추수 시작 할 때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 엘리멜렉 일가가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고, 그에게는 두 알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 흉년이 들어 어렵게 되자, 엘리멜렉 일가는 모압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모압으로 이주하고 나서 얼마가 지났는지 알수 없지만, 엘리멕렉이 죽게 된다. 나오미는 그 이후 두 아들을 장가 보내어 오르바와 룻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모압에서 약 10년쯤 지나게 되었을 때 두 아들마져 죽는다. 결국 나오미는 두 며느리 하고만 남게 되었다. 


나오미는 유대 땅에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 새 가정을 이루고 살 것을 제안한다. 나름대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결국 오르바는 돌아갔다. 그러나 룻은 돌아가지 않았다. 룻은 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할 것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나오미도 그 결심에 승복하게 되었고, 그들은 함께 베들레헴에 이르게 되었다. 


베들레헴은 10여년 만에 돌아온 나오미로 인해서 소란스러웠다. 나오미의 이름을 불렀지만, 나오미는 자신의 인생이 가난하게 비어 돌아오게 된 것을 말하면서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오미는 하나님에게 대한 많은 불만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그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였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우리 인생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 될 수 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혹은 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흉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앙을 당하고 말았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죽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살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 죽는 길이 되기도하고, 지혜롭다고 한 행동이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지금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모습이 그와 같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은 그와 같은 한계를 가진 존재다. 바로 앞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조심해야 하고 물어야 하며 들어야 한다. 그래야 실패를 초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그 분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2. 나오미는 가장 비참한 시간에 인간적인 배려를 행한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래서 아무것도 없을 때 그 때 두 며느리의 인생을 생각했다. 두 며느리는 나오미의 마지막 남은 재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이 빈궁에 처한 인생이 되고, 남편을 잃은 여인이 되자 두 며느리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그들의 인생이라도 새롭게 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배려라는 것은 언제나 여유 가운데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부족할 때, 배려가 나올 수 있다. 가난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가난한 사람들(자기 뿐만 아니라)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정말 그들을 향한 연민과 배려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나오미는 자신이 남편을 잃어 보니, 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들의 아픔과 고생이 얼마나 클지를 보게 된 것이다. 


배려는 어느 순간에도 나올 수 있는 삶이다 풍요로운 순간에 배려가 나올 수 있다. 가난한 순간에도 배려가 나올 수 있다. 배려는 외부적인 조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배려를 힘써야 한다. 


3. 나오미의 인간적인 배려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룻은 나오미에게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한다.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배려를 행하자, 은혜를 베풀자 룻은 나오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오르바도 나오미를 떠나 보내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자신의 인생을 더욱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와 함께 운면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한 것이다. 


나오미는 은혜를 베풀고, 룻은 충성을 맹세한다. 사사 시대에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귀한 모습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두 여인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은혜와 충성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은혜란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의 호의에 의해서만 수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되지 못했다.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하나니의 은혜를 무시했다. 그러나 이방 여인 룻은 충성을 다했다. 우리도 룻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비참하게 돌아온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은 보리를 준비하고 있으셨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은 보리 사이에 숨어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었고,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하나님은 써프라이즈를 종종 하신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준비하시고 우리를 놀래키신다. 기대하시라 여러분의 인생 속에 있는 하나님의 써프라이즈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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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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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사사기 21장]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것은 한 개인의 삶에도 문제를 만들어 냈지만, 이스라엘 전체에도 큰 위기를 만들어내고 만다.(베냐민 지파가 전멸 당할 뻔 했다.) 사사기에 종종 언급되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왕이 되었던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이 왕이 되고, 아담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순간, 인류는 자신의 운명과 생명을 스스로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이스라엘 연합군의 맹세

  1)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않으리라.’


2. 이스라엘 연합군의 베냐민을 회복하고자 하는 꼼수

  1) 하나님을 향해서 어찌하여 이런 일(한 지파가 사라지는 일)이 생겼는지 한탄한다. 

  2) 백성이 거기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3) 이스라엘의 총회에 함께 하지 않은 자가 누군가를 확인하고 그들은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함.

  4) 이스라엘은 베냐민에게 행한 그들의 진노를 뉘우쳤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딸을 주지 아니하기로 맹세했기 때문이다. 

  5) 그래서 이스라엘 총회는 총회에 올라오지 아니한 야베스 길르앗(단 지파의 한 성읍) 주민에게 군사 12000명을 보내 그 주민을 심판하되,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모두 죽이고 아직 남자와 동침하지 않은 여자만을 데리고 왔는데, 그 숫자는 400명이었다. 

  6) 그 때에 이스라엘은 베냐민에게 평화를 선포하고 그들을 받아들인 후 그들에게 400명의 야베스 길르앗 여인들을 주었으나, 그래도 숫자가 부족하였다. 

  7) 그래도 베냐민 지파에게 줄 여자가 부족하자, 한 가지 꼼수를 내서는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는데 그곳에서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올 때, 베냐민 사람들이 숨어있다가 한 사람씩 붙들어 가지고 아내를 삼으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실로 사람들이 와서 따질 때, 이스라엘이 너희들이 자의로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다고 인정해 주면 된다고 보았다. 

  8) 베냐민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들의 아내를 얻고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게 되었다. 

  9) 그와 같이 베냐민 사건에 대한 일처리를 마무리 하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각기 자기의 지파,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10)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기]


이스라엘 연합군이 베냐민 지파를 심판함으로 베냐민은 600명의 남자만 남고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어느 지파든 베냐민에게 자신의 딸을 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맹세도 하여 베냐민을 완전히 멸절시켜야 한다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급한 맹세에 대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곧 후회하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지파 중에 한 지파인 베냐민이 완전히 멸절을 당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이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들이 찾은 첫 방법은 그 때 이스라엘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자,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심판하여 거기서 여인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야베스 길르앗이 이스라엘의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순수한 처녀만을 남겨두고 모두 죽인다. 살아남은 여인의 숫자는 400명이었으나 이들만으로는 베냐민의 600명의 숫자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실로의 여인들이 절기를 따라 춤추러 나올 때, 그 여인들을 베냐민 사람들이 붙들어 가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만약 실로의 사람들이 이것을 문제로 삼아 말하면, 너희들이 자의로 준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해석해 주면 될 문제라고 보았다. 그렇게 해서 베냐민 사람들은 아내를 얻고 자신들의 기업으로 돌아가 성읍을 건축하고 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각자 자신의 지파,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그 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신의 지파 중 하나를 멸절시키려고까지 했다가 후회한다.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베냐민을 심판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을 진멸하려고 하다가, 그들이 거의 진멸당하고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는 현실에 직면하자 그제서야 자신들의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주신 기업과 한 지파를 스스로 없애는 우를 범할 뻔 한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하는 정의감에서 할 수 있는 잘못이다. 베냐민의 잘못에 대해 징계하겠다는 정의감에서 시작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 한 지파를 전멸시키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뻔 한 것이다. 도를 넘치는 심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의심에서 시작하였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를 맞게 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옳고 맞아도 도를 넘어서는 안된다. 이는 자신의 판단과 인간적인 공의를 절대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친 확신은 오히려 하나님을 반하는 일을 행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음을 역사는 오히려 보여주고 있음을 기억하고 확실하더라도 겸손할 수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이스라엘은 자신의 한 맹세로 인해 스스로 매이면서, 그 맹세를 풀기 위해 또 다른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고 꼼수를 발휘한다. 


뒤늦게 깨달은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한 맹세가 있기 때문에 쉽게 그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된다. 베냐민 남자들에게 여자를 주지 말것을 맹세하였는데, 생각해보니 베냐민이 모두 죽게 되면 그들의 기업을 이어갈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방여인과 결혼하도록 허락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총회에 참여하지 않은 야베스 길리앗(단 지파의 한 성읍)을 심판하면서 그들에게서 처녀만 살려내 이들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한 방법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자 이제는 실로에서 행해지는 축제일에 춤추러 나온 여자들을 데리고 가라고 허락하면, 그렇게 함으로서 자의적으로 딸을 주지 않은 셈이 되도록 했다. 모두 꼼수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이 왕이 되어 자신의 감정대로 심판하다가 보면, 문제가 발생하고 스스로 맹세한 것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야 할 상황이 되면, 자신의 맹세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꼼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꼼수에 불과하지 온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엉뚱하게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만 죽임을 맞게 되고, 실로의 여인들만 잡혀가게 되고 만다. 사람이 왕이 되었을 때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3. 그들에게는 참된 왕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푸는 방식에도 원칙이 없었다. 


그래서 사사기 다음에는 왕이 세워지는 이야기인 사무엘서가 이어지게 되는 것인가 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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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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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20장]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 자손과의 전쟁이야기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교만과 베냐민의 교만 모두를 지적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교만은 힘으로 다스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은 전략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교만(스스로 왕 됨)은 멸망을 가져올 뿐이라고 지적하신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기브아 사건으로 인해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

  1)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다.

  2) 온 백성들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이 이스라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40만 명이었다. 이와 같은 일을 베냐민 사람들도 들었다. 

  3) 레위 사람은 모인 사람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한다. 자신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있을 때, 기브아 사람들이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자신의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했다고 말하고, 그래서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이스라엘 온 땅으로 보냄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총회에게 의견과 방책을 달라고 요청했다. 

  4) 모든 백성은 일제히, 모든 지파 중에서 십분의 일을 파견해서 기브아 사람들에게 그들이 행한대로 징계해야 한달 것을 결정했다. 


2.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과의 격돌

  1)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에게 사람을 보내 그 불량자들을 넘기라고 요청한다. 

  2) 그러나 베냐민 자손들은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했다.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들과 싸우고자 했다. 

  3) 베냐민 자손의 병력은 칼을 빼는 자가 26,000명이고 그 중 택한 자가 700명인데 이 택한 자들은 왼손잡이로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었다.


3.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과의 전투에서 일어난 일

  1) 이스라엘 연합군도 40만 명의 전사들이 동원되었다. 전쟁을 하기 전 벧엘에 올라가 여호와께 묻자, 여호와께서 먼저 유다가 올라가라고 지시해 주셨다. 

  2) 이스라엘은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에 진을 쳐 베냐민과 싸웠는데, 이스라엘 연합군 22,000명이 땅에 엎드려지는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3) 이스라엘 연합군은 다시 용기를 내어 전열을 갖추고 여호와께 저물도록 울며 여쭈었다.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는 올라가서 치라고 말씀해 주셨다. 

  4) 그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올라가 전쟁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18000명이 엎드러지는 패배를 다시 당하게 된다. 

  5) 이스라엘 자손들이 벧엘에 올라가 다시 울며 그 날에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렸다. 그 때 그 곳에 언약궤와 제사장 비느하스가 있었다. 다시 묻는다.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내일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신다. 


4. 이스라엘 연합군의 승리

  1) 이스라엘이 기브아 주변에 군사를 매복하였다. 

  2) 이스라엘이 전처럼 베냐민을 공격하였고, 베냐민은 이전처럼 자신들의 승리하는 줄 알고 이스라엘 쫓았다. 

  3) 그러나 매복했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나와서 기브아 성읍을 공격하고 불살랐다. 베냐민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광야 길로 도망쳤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쫓아가서 그들 중 18000명을 죽였다. 도망치는 베냐민을 림몬 바위에서 5000명을 죽이고, 또 그 뒤를 쫓아가 기돔에서 2000명을 죽였다. 당일 베냐민 사람 25,000명을 죽였다. 이들은 모두 용사였다. 

  4) 베냐민 사람 600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 지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 성읍을 모두 다 불살랐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기브아 불량자들이 레위인의 첩을 욕보이고 죽인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역이 흥분하여 미스바에 모였다. 레위인은 기브아 사람들의 행음행과 망령된 일에 대해서 성토했고, 이스라엘 총회의 어른들은 모두 베냐민의 이와 같은 행도에 대해서 징계를 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이스라엘의 연합군 대표는 베냐민을 찾아가 그 불량자들을 내 놓으라고 했으나, 오히려 베냐민은 이스라엘 연합군과 전쟁을 결정하게 된다. 이 전쟁은 당연히 이스라엘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 갈 것이로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은 유다로부터 올라 것을 지시하셨다. 그러나 베냐민과의 첫 전쟁에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무참히 패배한다.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울며 하나님의 뜻을 물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올라가서 싸우라는 말씀을 듣는다. 다시 용기를 내어 올라갔던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다시 한번 패배하고 만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망연자실해진다. 이들은 다시 울며 저물도록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여호와의 뜻을 물었다. 그 때 언약궤가 같이 있었고, 아론의 자손인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그 앞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다시 묻는다.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올라가라고 말씀하시고 내일은 그들을 넘겨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베냐민을 향해서 나아간다. 이번에는 복병을 두어 베냐민을 속이고자 했다. 처음에 이스라엘은 베냐민에게 또 패배하는 것같이 보였다. 안심하고 이스라엘을 쫓던 베냐민을 속이고 복병으로 있던 이스라엘은 기브아 성읍을 공격하여 그 성읍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베냐민은 광야로 도망쳤지만, 이스라엘 연합군에 의해서 26000명의 베냐민 병사중 25000명이 죽고 만다. 그 중의 소수만 남아서 림몬 바위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이스라엘 연합군의 베냐민 징계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1개 지파다. 그리고 군사는 40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판단했고 이들이 베냐민을 심판하기로 결정했다. 베냐민은 26000명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스라엘 연합군이 위협하면 베냐민을 쫄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냐민은 당돌했다.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을 자극했다. 결국 전쟁은 일어났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이기는 것은 당연하고 얼마나 빨리 결정날 것인가만 궁금할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무참한 패배를 보게 된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 과정 속에 하나님에게 묻는 질문도 있었고, 울며 금식하는 애통함도 있었다. 하나님께 올라가라고 하시는 말씀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연합군은 패배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이스라엘은 연합군은 자신들이 재판장이 되고자 했다. 그들이 심판하면 베냐민은 수긍하고 인정할 줄 알았다. 힘으로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힘으로 다스려지지 않았고, 힘이 있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었다. 왕의 역할이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힘으로만은 통치할 수 없고, 명분만으로도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다. 


2. 두번의 실패 후에 얻게 된 승리의 이유


왜 종국적으로는 이스라엘 연합군이 이길 것이고, 베냐민은 심판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연합군이 두 번이나 패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을까?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 본다. 

  

  1) 이스라엘 연합군의 교만을 깨뜨려야 했다. 이스라엘은 형식상으로는 모든 것을 했다. 하나님께 물었고, 실패했을 때는 하나님께 금식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나아가서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했다. 이 전쟁은 당연한 것이고 누가 먼저 올라갈 것인가의 문제였다.(18절) 그러나 두 번의 패배이후 이들은 비로소 묻는다. 하나님이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28절) 전쟁의 여부를 묻는 질문까지 내려왔던 것이다. 그제서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신다. 그 이전에는 올라가서 싸우라고만 하셨지, 승리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 

두 번의 패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연합군의 교만을 치셨다. 네가 힘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힘으로 안된다. 힘만으로 싸울 때, 너는 베냐민에게 진다.


  2) 베냐민의 교만을 깨뜨려야 했다. 베냐민은 교만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불량자를 달라고 했을 때, 그들을 넘겨주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냐민은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에게는 잘 훈련된 용사들이 있고, 전략을 잘 세우면 이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거대한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두 번의 승리를 얻었다. 그들은 교만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이 교만이 결국은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패배하게 된 이유가 된다. 이스라엘의 작은 속임수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교만했던 베냐민은 이스라엘 연합군에 의해서 섬멸되고 만다. 거의 멸절되다 싶이 한다. 


베냐민도 이스라엘 연합군도 교만했다. 자신들이 마치 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명목상의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섬기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결정대로 할 뿐 이었다. 힘이 있으면 싸웠고, 이길 줄 알았다. 이들의 교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들이 이 교만이 얼마나 큰 피해를 일으켰는지를 본문은 알려 준다. 


왕이 없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상호간의 전쟁으로 이어지며 전쟁의 최후는 멸망이라는 것을 사사기는 우리 가운데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닌 나를 왕으로 세울 때, 인류는 이와 같은 불행을 맞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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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19장] 음행을 행한 첩을 다시 데리고 오는 레위인의 모습, 다른 이방 성읍보다는 자기 민족의 성읍을 의지했는데, 오히려 자기 민족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게 되는 레위인의 상황. 그리고 그 처참한 사건의 배경 속에 너무나 중요한 존재인, 에브라임과 유다와 레위인이 주배경이라는 것이 혼란스럽게 만드는 본문이다. 혼란을 위한 장이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상황 설정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2)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 하였다. 

  3)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의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넉 달을 머물렀다.


2. 레위 사람이 자기의 첩을 데리러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다.

  1) 레위 사람은 자기의 첩을 잘 설득하여 데리고 오려고 유다 베들레헴 장인의 집으로 갔다.

  2) 첩의 아버지는 레위 사람을 반기면서 3일간을 머물게 했다. 넷째 날 떠나고자 했으나 하루 더 머물것을 제안해서 하루더 머물렀다. 넷째 날 떠나고자 했으나 장인의 간곡한 제안으로 하루더 머물렀다. 다섯 째 날 떠나고자 하자 저녁까지 머물게 했고, 또 자고 갈 것을 제안했으나 레위인은 그 집에서 더 머물기를 원치 않아 늦은 시간에 나오게 되었다. 

  3) 늦은 시간에 나온 터라 얼마가지 못해서 숙박을 해야 할 곳이 필요했다. 가까운 곳에 여부스(예루살렘)가 있었지만, 레위인은 그래도 자기 민족이 다스리는 기브아로 갈 것을 결정한다.    4)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에 들어갔으나 아무도 자기 집에서 유숙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저녁 늦게 밭에서 일하다 돌아온 노인의 초대로 그 집에 유숙할 수 있게 되었다. 


3. 베냐민 땅 기브아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

  1) 노인의 배려로 하룻 밤을 평안이 머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기브아에 있는 불량자들이 노인의 집으로 찾아와 집에 들어온 손님을 끌어내라고 협박한다. 

  2) 노인이 자신의 딸과 이 사람의 첩을 내어 줄테니 손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만, 이들은 진정되지 않았다. 레위인은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들은 그 첩을 밤새도록 괴롭히고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아주었다. 그 첩은 그 집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3) 아침에 레위인이 집에 가고자 하였으나, 그 여인은 문 앞에서 죽은 채로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여인을 데리고 집으로 온다.

  4) 그 레위인은 자기 첩의 시신을 12 덩어리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으로 보냈다. 

  5)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로 이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오늘 본문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한 레위인과 에브라임 그리고 유다 베들레헴이라는 핵심적인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한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첩이 있었다. 그 첩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여자였다. 그런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레위인은 선한 마음으로 그 행음한 첩을 데리고 오고자 유다 베들레헴 장인의 집으로 갔다. 자신의 딸을 데리러 온 장인은 3일간 레위인 사위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돌아가고자 한 레위인을 붙잡고 붙잡아 이틀을 더 머물게 했다. 장인은 계속 붙잡았지만, 레위인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늦은 시간이지만 장인의 집을 나와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해가 떨어지고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해야 했다. 


가까운 곳은 여부스, 지금의 예루살렘이지만 그곳은 그 때까지만 해도 이방의 성읍이었다. 그래서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이 아닌 자기 백성의 성읍에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무도 레위인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노인의 배려로 간신이 머물 곳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곳에 있는 불량배들의 행패로 인해 곤란한 상황이 되자,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첩은 밤새 능욕을 당하고 죽게 된다. 이 사실에 분개한 레위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그 첩의 시신을 12 덩어리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내게 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함께 분개하게 된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또 다시 에브라임, 유다, 레위인 이라는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사기의 이야기 속에서 에브라임이 자치하는 비중과 유다가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유독 레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브라임은 대부분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유다는 자꾸 에브라임과 연관되는 관계로 등장한다. 레위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구분된 지파의 백성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세속적이며 영적으로 무감각한 존재로 등장한다. 


훗날 북이스라엘의 중심과 남유다의 중심 그리고 성전의 중심이 될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부정적임을 사사기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많은 다수의 사사들이 그 외의 지파에서 나와서 활동하고 있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2. 믿었던 자기 백성에게 오히려 배신을 당하게 되다.


레위인은 길에서 밤을 맞게 되었기 때문에 머물 곳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성읍은 여부스(예루살렘)였지만, 그래도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에 머물기 보다는 자기 백성이 다스리는 성읍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 백성들은 레위의 일행을 맞아주지 않았다. 나중에 한 노인의 초대로 머물수 있는 곳을 얻긴 했지만, 불량배들의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레위인은 자신의 첩이 능욕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백성에게 더 큰 피해를 입었고, 더 큰 고통을 얻게 된 것이다. 


왕이 없언 시대, 법이 없고 믿음과 신뢰가 모두 깨어진 시대가 우리가 보고 있는 사사 시대였다. 믿었던 자기 민족이 오히려 더욱 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볼 수 밖에 없는 시대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누가 딱히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구분하기도 어려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시대가 이 시대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인지, 과거 사사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모든 혼란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왕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왕을 세우자가 아니라, 과연 나는 지금 누구를 나의 왕으로 섬기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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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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