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지 4년 다섯째 달.


  *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가 주전 597년임으로, 이 때는 대략 592년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다의 완전한 멸망이 주전 586년으로 보면 약 멸망 6년의 상황임을 알게 된다. 완전한 멸망을 6년 앞둔 상황에서 선지자 하나냐와 예레미야 간의 이야기이다. 


2.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말했다. 


  1)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다.

  2) 바벨론이 빼앗아간 성전 기구들을 2년 안에 이곳으로 다시 되돌려 오겠다. 

  3)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여호야긴)와 유다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겠다. 


  * 하나냐는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유다의 희망을 선언했다. 그것도 2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언급했다. 바벨론의 멍에를 꺾을 것이다.(현재 바벨론의 멍에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빼앗긴 성전 기구들을 도로 가져오게 될 것이고, 포로로 잡혀간 왕과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메시지다. 듣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희망과 격려가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공개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있는 선지자가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다음 날 조간 신문에는 하나냐의 말이 대서특필되었을 것이다. 


3. 이를 듣고 있던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그 자리에서 말했다. 


  1) 아멘, 여호와께서 정말 그렇게 해주시기를 원한다.

  2) 그러나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와 재앙과 전염볍을 예언하였다. 

  3)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의 예언은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레미야가 일어나 딴지를 건다. 제일 크게 아멘을 외치고, 정말 하나냐 선지자의 말처럼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곧 그 다음이야기로 이어진다. 하나냐의 메시지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 아니지만,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의 참됨과 거짓됨의 여부는 그 결과가 나타난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함으로 하나냐의 메시지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 

  * 예레미야는 27장에서 유다가 결국 바벨론의 종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하나냐가 했다. 누가 옳은가는 누가 목소리가 큰가로 결정할 수 없다. 다만, 역사가 그 사람의 옳음을 증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마음에 안심을 주는 평화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임을 지적한다 하겠다. 


4. 하나냐의 반응과 예레미야의 행동


  1)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2년 안에 이처럼 우리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꺾으시리라

 

  2) 예레미야는 자신의 길로 가버림.


  * 서로 자신의 메시지를 바꿀 의향이 없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둘다 옳을 수는 없다. 하나가 옳으면 하나가 틀릴 수 밖에 없고 하나가 참이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5. 그 자리를 떠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 임하였다. 

  

  1) 하나냐에게 가서,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다. 

  2)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을 섬기라. 내가 들짐승들도 그들에게 주었다. 

  3) 예레미야는 하나냐가 거짓 메시지를 전하는 거짓 선지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4)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죄를 지적하고 금년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5) 하나냐는 그 해 일곱달에 죽었다.


  * 하나님은 돌아가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냐의 거짓됨을 말씀해 주셨고, 그의 거짓됨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겠다는 저주(금년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이루어짐으로서 누가 참 선지자이고 거짓 선지자임을 밝히셨다. 

  * 결국, 유다는 바벨론의 종이 될 운명임을 본문은 더욱 명확하게 하고 있다.



[묵상 한모금]


1.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평화를 예언하는 자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할 필요가 있다. 평화와 안락에 대한 예언은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것이고, 그것은 참으로 그렇게 되어질 때까지는 그 사람의 참됨을 보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낙관적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배격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성급하게 따르거나 그를 주목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2.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역으로 평화가 아니라 재앙과 심판을 예언하는 선지자에 대해서는 그의 참됨을 확인하는 것에 대해서 나와있지는 않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와 대조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일단 재앙과 심판을 말하는 선지자들에게 대해서는 긍정하는 것 같다. 재앙과 심판을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드는 것인데, 그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모두 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3. 우리의 귀가 평화를 말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쉽게 열리고, 재앙과 심판 그리고 경고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매우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메시지를 좇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도 하고, 거짓된 신앙인이 되기도 한다. 내게 칭찬하는 자들에게 너무 혹하지 말자. 내게 비판하는 자들을 너무 배격하지는 말자. 그래야 내가 참됨에 머물게 된다. 


4. 예레미야 28장은 어떤 메시지가 들려지더라도, 유다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바벨론의 종이 되는 현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가운데 가서 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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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정리]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 26장의 때와 같은 시대로 보이나, 성경의 각주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27장은 계속해서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3절, 12절, 20절)


2.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시드기야 왕을 보기 위해서 온 사신들의 손에 그것을 주어 그들의 왕에게 전해주도록 한다.(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의 왕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전한다. 


3.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자에게 그것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했다.(5-6절) 그래서 정한 기한까지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바벨론이 이지역을 점령하고 다스리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것인데, 그것을 마치 창세기 1-3장에서 아담에게 에덴을 주었다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것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이 땅도 원래 하나님께서 옳은 사람들에게 주셨는데, (그들이 죄악을 행함으로 그들에게서 빼앗아 자기 백성을 징벌하기 위한 또 다른 종 바벨론) 지금은 바벨론에게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정한 기한까지는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이다.


4. 만약, 바벨론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할 것이다. 그리니 선지자나 복술가들이 바벨론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을 믿지 말라. 그들이 정작 너희들을 멸망하게 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지금 역사를 주관하시되, 그 힘을 바벨론에게 일정 기간 주셨음을 말한다. 따라서 그 앞에 굴복하게 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 민족과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괜한 민족주의나 막연한 소망을 주는 정치인들과 선지자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5.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이 말을 전하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면 살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 것을 당부한다. (14절) 


6. 하나님은 거짓 예언을 하는 선지자들 멸망시킬 것임을 말하신다. 왜냐하면 이들은 바벨론에 빼앗겼던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그런식의 예언을 했다. 이런 예언을 믿는 것은 이 성을 황무지로 만드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참 선지자라면, 빼앗긴 것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이 빼앗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옳을 것이다.(바벨론의 2차 침략기에 빼앗긴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주전 598년 / 여고니야(여호야긴) 20절)


7.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돌보시는 날까지 그곳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2절)



[묵상 한 모금]


시드기야 왕 시대에 정치적 분위기는 바벨론을 대적하고 기회만 온다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선지자들은 오래지 않아 바벨론에 빼앗겼던 성전 물건들을 도로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처럼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고, 정치적으로 반 바벨론적 여론이 컸다.(물론 물리적으로는 바벨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종교적 희망주의, 정치적으로는 반바벨론 주의.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시대적 흐름과 다른 메시지를 전하신다. 유다에게 준 땅을 빼앗아 바벨론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바벨론을 섬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비관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빼앗겼던 성전 기물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남아 있는 것들이 보존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 당시 예레미야는 종교적으로 회의주의자였을 것이고, 정서적으로는 반민족주의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자의 태도였다. 


물론 바벨론의 지배는 제한적이다. 정한 시기가 있다. 그 때까지 그렇게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종교적 낙관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반민족주의적 메시지를 전하면서, 본인이 혜택을 입었다면 그것은 권력에 아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인이 오히려 고난과 질타를 받았다면 그의 메시지는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선지자적 메시지가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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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정리]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 주전 609년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죽고, 애굽의 영향력 하에서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워진다. 국제 정세의 급변하는 환경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특히 애굽과 바벨론 누구의 편에 설것인가가 나라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결정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호야김 시대는 그랬다. 


2.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뜰에서 가감없이 외치라고 명하신다. 이들이 듣고 혹시라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던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예레미야는 유다를 향한 마지막 회심의 기회라고 보았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듣을 돌이킬 것이다. 니느웨의 죄에 대해서도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께서(요나서) 유다의 회개에 대해서 충분히 뜻을 돌이키실 의향이 있으신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

  1) 너희는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내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 

  2)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에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순종하지 않았다. 

  3) 그래서 내가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 하나님은 언제나 한 번의 죄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두번이나 세번... 횟수의 문제가 아니다. 태도의 문제다. 그 죄를 지적하고 시정하도록 일깨워주고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의향이 없는 자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반역의 의지를 가진자에게 심판을 행하신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

  1)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

  2)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될 것이라고 저주하고, 이 성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예레미야에게 모여듬

  3) 유다의 고관들은 예레미야가 한 말을 근거로 예레미야가 죽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결함.


  * 이 장면에서는 예수님이 생각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무리들. 예수님의 죄 명도 성전을 허물어 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예레미야와 예수님은 유사성을 가진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으로 죽음에 위협을 당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심으로 죽음에 이른다. 


5. 백성들의 반응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한 예언을 청종할 것을 다시 촉구한다. 그리하면 지금이라도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킬 것이라고 말한다. 괜히 나를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그 댓가를 이 성과 성에 사는 주민에게 돌리지 말게 하라.


6. 고관과 모든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말한다. 

  1)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다. 

7.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1)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에 대해 예언하기를 시온은 밭가는 경작지가 되고,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며,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했으나, 유다 왕 히스기야가 그를 죽였느냐?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는냐! 

  2) 우리가 예레미야를 죽인다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다. 


  * 흥분하며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닌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여전히 영적으로 민감하려고 하고 역사적인 판단을 고려하여 하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고관과 백성들 중에 일부가 그랬고,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그랬다. 예레미야를 죽일 죄목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대 히스기야 왕 때도 그와 같은 선지자가 예레미야와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지만, 히스기야는 오히려 겸비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예레미야의 경우도 그와 같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하나님은 무리 중에도 고관과 장로들 중에도 정상적이고 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충동적 마귀적 행동에 대해서 제지하도록 역사하신다.(그런데 왜 예수님에게 대해서 만큼은 그리 침묵하셨는지.. 예수님에게는 왜 그와 같은 대변자가 없었는지...)

 

8. 또 여호야김 왕은 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우리야라는 사람이 예레미야와 같은 메시지로 경고하여 예언하자, 그를 죽이려 했고 그가 애굽으로 도망하자 사람을 보내 끝까지 그를 잡아와 칼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지 않았느냐...


  * 여호야김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선지자를 얼마나 잔혹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죽였는지를 그 당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 그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함을 지적한다. 


9.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백성들의 손에 그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죽지 않았다. 


  * 다행히도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살아난다. 죽을 위협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움 상황임을 확인하다. 오히려 예레미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묵상 한 모금]


하나님의 심판은 갑작스럽게 한 두 번의 실수와 그릇된 판단으로 임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심판의 근거는 죄의 행위가 아니라 죄를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마음이다. 그것이 우리를 심판과 지옥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26장의 사건은 그 당시 정치와 종교계가 얼마나 죄 가운데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왕부터 제사장과 고관들 그리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무고하게 십자가 형벌을 받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도 우리는 같은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그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죄 가운데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다행히 예레미야는 그의 역할이 남아있었기에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시고 살려주신다. 그러나 예수의 역할은 십자가를 향하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정작 당신의 독생자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살리기 위해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을 동원하셨지만, 당신의 독생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예수)에 대해서는 왜 이리 모지셨는가!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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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의 죄가 더욱 크냐로 심판의 우선권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먼저 고칠 것인가로 징계의 우선권을 두신다. 



[성경한장:예레미야 25장.]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1)


  *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째는 주전 605년을 말한다.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그 때가 609년이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났으니 605년이다. 주전 605년에는 세계사 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애굽과 바벨론과의 전쟁인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의 판도는 변화되기 시작했다.애굽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바벨론의 영향력이 근동지역에서 극대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유다는 그로 인한 위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2. 내가 요시야 왕 13년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해서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았다.

3.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다. 

  -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 땅에서 살 것이다. 우상을 버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하였으나 듣지 않음.


  * 유다가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요시야 13년부터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유다가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한 길에서 우상 숭배에서 돌아오도록 요청했으나 네가 듣지 않았다. 


4. 그래서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을 쳐서 진멸하여 놀림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게 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5.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다. 70년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이다.


  * 그래서(완악하게 듣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 유다를 쳐서 진멸하고 놀림거리와 웃음거리를 만들어 버리시겠다고 하신다. 유다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로 살게 될 것이다. 


6. 여호와의 말이다. 70년이 마치면,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리라.


  * 그러나 70년의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고 나면, 너희들은 돌아올 것이고 너희를 압제한 바벨론 제국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바벨론도 죄악이 크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이전에는 유다를 치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도 반드시 받게 됨을 잊지 않는다. 


7. 그래서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그들의 행위와 손이 행한대로 그들에게 갚으리라. 


  1) 내 손에서 진노의 술잔을 받아 가지고 너를 보내는 바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2) 먼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18절)

  3) 애굽의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과 .... 블레셋,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 아스돗...

  4) 에돔과 모압과 암몬

  5) 두로, 시돈

  6)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시므리, 엘람, 메대 모든 왕, 북쪽 원근의 모든 왕, 세삭 왕

  7) 내가 너희 가운데 보내는 칼 앞에서 마시며, 취하여 토하고 엎드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라 하셨다.  

  8) 잔을 받기를 거절하거든...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8.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



[묵상 한모금]


본문의 이야기는 국제정세가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기울고 있는 시점에 결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고 정복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힘의 결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는 것임을 본문은 지적한다. 


유다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악한 길을 가고, 우상을 숭배함) 이들을 벌하기 위해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벨론이 옳고 느부갓네살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시기의 문제다. 지금 하나님은 유다를 징계하시기를 원했고, 그 곁에 바벨론이라는 회초리(몽둥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이 자랑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유다보다 더 옳아서가 아니라, 지금 유다가 매를 통해서 변화되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개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물론 유다를 개선하시고 나서는 바벨론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더욱 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자간의 죄의 경중만으로 심판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다의 죄보다 바벨론의 죄가 더욱 컸지만, 하나님은 지금 바벨론이 아닌 유다를 심판하셨다. 이는 바벨론을 심판하지 않는다거나, 바벨론이 의롭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바벨론의 심판보다는 유다의 회복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이로 인해 오해하지 말아야 하며(하박국은 오해했다.), 바벨론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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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자, 묵상 한 모금] 사무엘상 17장. 힘의 싸움에서 믿음의 싸움으로



1.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 대치하고 있었다.

2. 블레셋의 싸움을 동우는 자가 나왔는데 골리앗이라는 자다. 키는 6규빗 하고 한 뼘이며, 머리부터 발까지 완전한 보호장비를 갖춘 거대한 자다.

3. 골리앗은 각 나라의 대표가 나와서 싸우고 지는 자가 서로의 종이 되는 것으로 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자신을 이길만한 자가 이스라엘에는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조롱하는 말이다.

4. 사울과 이스라엘은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였다.


 * 전쟁에서 승리만 하던 사울에게도 한계가 왔다. 강한 자를 통해서 자신의 권력을 확보하려했던 사울에게 상대할 수 없는 더 강한 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었다. 사울도 마찬가지다 .

  힘으로 권세를 얻고 유지하는 자는 더 큰 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힘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자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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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새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위의 세 형제는 사울과 함께 전쟁에 나갔고, 막내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던 때였다.(형은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6.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전쟁터로 보내면서 형들을 위해 볶은 곡식과 떡 열덩이를 전해주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치즈 10덩이는 천부장에게 가져다 주고 형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7. 다윗은 전장으로 가서 형들을 만나는 가운데, 가드 사람 골리앗이 하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도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8. 사람들은 도망치면서 골리앗을 죽이는 자는 왕이 많은 재물을 주고, 그의 딸을 주겠다고 했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재차 그들에게 그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한다.

9.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 엘리압은 다윗에게 놀르 발하면 말한다.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


 * 힘을 의지했던 왕 밑에는 여전히 힘으로만 승부하려고 하는 군인들이 있을 뿐이다. 힘이 없는 자의 용기와 믿음을 멸시하고 불편해한다. 엘리압은 이전에 사무엘인 자신 앞에서 자신에게가 아니라, 막내 다윗에게 기름부은 사건이 여전히 못 마땅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10. 다윗의 이와 같은 태도를 보고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 왕에게 고하자 사울은 다윗을 불렀다.

11.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이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다고 말하자. 사울은 어린 다윗을 보고 만류한다.

12.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보이자 사울은 다윗을 보낸다.

13. 사울의 갑옷을 입혀 보내려고 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맞지 않아, 다윗은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갔다.


 * 사울이 다윗을 의지한다. 힘으로만 싸우던 인생에 한계를 직면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다윗은 등장은 옛날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세우심을 입었떤 자신을 생각나게 했는지 모른다. 그와 같은 다윗을 보면서 그는 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잠시 전환을 하게 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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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골리앗은 다윗을 우습게 여겼고,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15. 다윗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이마에 박혀 쓰러뜨리고, 자신의 손에 칼이 없었으므로 블레셋 사람의 칼로 죽였다.

16. 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은 도망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용기를 얻어 전쟁에서 승리한다.


 * 다윗과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은 의외로 간단하게 끝난다. 사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싸움의 승리라기 보다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다양한 인물들 간의 갈등과 기대 등이 더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형편, 사울의 무력함, 엘리압의 분노, 블레셋의 무례함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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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울은 골리앗을 이긴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인지를 아브넬에게 물으나 아브넬은 알지 못했다.

18. 나중에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온 다윗에게 사울이 누구의 아들임을 묻자 다윗은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임을 밝힌다.


 * 다윗은 그 순간까지 철저하게 무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랑하거나 우러러 볼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다윗은 세상 가운데 가려진 인물이었다.


[질문]

사울이 다윗을 알게 된 순서가 궁금하다. 블레셋 과의 전쟁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악령으로 인해 힘들어할 때, 수소문하여 찾아내는 과정에서 다윗을 알게 된 것인지...

17장에서는 분명히 다윗을 처음 본 것처럼,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한다. (55-58절) 그런데 이미 16장에서는 사울이 어려울 때 치료하기 위해서 다윗이 궁 안으로 들어왔고, 그런 다윗을 사울은 총애했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6:14-23)

그런데 18장에서는 블레셋과의 전쟁이 마치고 다음날 악령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울을 위해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수금을 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매우 복잡하게 느껴진다. 어찌 정리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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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포인트] 골리앗과 대결하는 다윗의 명대사와 믿음, 용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그 장면이 있기 전까지 블레셋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다윗에게 화를 내는 형 엘리압의 태도, 다윗을 의지하여 전투를 허락하는 사울과 그의 갑옷이라도 입혀 보내려는 사울의 의식... 사실은 이런 과정들이 더욱 중요한지 모른다. 힘을 중심으로 한 사울 패러다임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어떤 왕이 참된 왕의 자격을 갖춘자인지를 보여준다. [질문] 링크한 글의 내용 마지막을 보면 이 본문을 보면서 생긴 질문이 있다. 아직 무엇이 답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건강하고 상식적인 질문을 가지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또한 성경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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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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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묵상 한모금] 사무엘상 16장. 외모가 아닌 중심으로 인정받은 다윗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서 베들레헴 이새에게로 가도록 하신다. 그 아들 중에서 왕을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2. 사무엘은 사울 왕을 두려워하여 어떻게 다른 왕을 세우러 갈 수 있는냐고 반문하자, 하나님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왔다고 하라고 지시하신다.

3. 사무엘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베들레헴에게 가서 장로들에게 제사하러 왔다고 말하면서,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청했다.


 *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울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미련을 더이상 참아보지 못하고 그를 책망하듯이 불러서 새롭게 하나님이 부르신 다윗에게로 보내신다.

 * 사울을 두려워하여 이새의 집으로 가는 것을 머뭇거리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약간의 요령을 가르쳐준다. 마치 제사를 드리러 가는 것처럼 해서 가라고 말이다. 하나님도 종종 정면 돌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매우 인간적인 방식을 택하신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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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께서 기를 부을 자라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신다.

5. 이새의 다른 아들 아비나답도, 삼마도 지나가게 했지만, 모두 하나님의 택함이 없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갔지만, 그 중에 하나님이 택한 자가 없었다.

6. 사무엘은 아들이 전부인가를 묻자, 이새는 막내가 남아 있는데 그는 양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사무엘은 그가 오기 전까지는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말한다.

7. 이새는 사람을 불러 다윗을 데리고 온다. 다윗은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 여호와께서 바로 다윗 이라고 말하니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8. 그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사무엘은 라마로 돌아갔다.


*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을 보면서 여전히 인간적인 안목으로 왕의 자격을 생각했다. 엘리압은 사울과 같은 자격을 갖춘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조건으로 왕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외적 조건을 갖춘 자를 왕의 자격으로 보지 않았다.(이미 사울에게서 그것이 실패했다는 것을 확인했다.)하나님은 사울과는 다른 기준의 왕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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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다윗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한 순간, 사울에게서는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

10. 사울 왕에게 이런 일이 빈번하자 신하들은 수금을 잘 타는 사람으로 왕 앞에서 연주하게 하여 왕을 진정하도록 했다.

11. 그래서 수금을 잘타면서도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베들레헴의 이새의 아들 다윗을 데리고 왔다.

12. 처음에 사울은 다윗을 사랑하여 자신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았다.

13. 사울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에게 이를 때,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났다.


 * 다윗에게는 그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임했고, 사울은 그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하나님이 부리는 악령이 다스렸다. 다윗과 사울의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 사울에게 악령이 들면서, 그것을 진정하기 위한 어떤 대책이 필요했다. 신하들은 수금을 연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겼고, 수금을 치는 자 중에 가장 적합한 자로 이새의 아들 다윗을 선발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다윗은 사울 주변으로 오게 된다. 이렇게 다윗은 예기치 않게 궁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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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묵상 한모금]  사무엘상 15장. 아말렉 전투에서의 결정적 실패를 한 왕, 사울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와서 말한다. 하니님께 사울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셨으니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아말렉이 대적한 것으로 인해 그들을 벌하려고 하노니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고 모든 사람을 다 죽이라. 동물과 어린아이까지 모두.


* 이와 같은 명령은 아말렉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매우 잔혹한 명령처럼 들리지만, 아말렉을 벌하시는 것임을 성경은 말한다. 성경인 잔혹하게 정복할 것을 명령할 때 그것은 심판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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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울은 만은 군인을 소집했다. (보병이 20만, 유다 사람이 1만명)

4. 사울이 아말렉 성의 골짜기에 복병하면서, 아말렉과 함께 있는 <겐>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도피할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겐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선대했고, 아말렉만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5. 그렇게 아말렉을 치고 모든 백성들을 진멸하였으나, 사울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두어 진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  사울은 전쟁에는 능한 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왕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대해 온전히 순종하였으나, 사울은 자신의 임의대로 행함으로서 온전한 순종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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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그는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7. 그로 인해 사무엘은 밤새 기도했고, 아침일찍 사울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 사울은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다고 알려졌다.

8.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가자,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하신 일을 모두 다 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하나님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임의로 행동했다.

9.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사울에게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1)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는 이스라엘 지파의 왕으로 삼으셔서 아말렉은 온전히 치라고 명하였는데 왜 그리하지 않았습니까?

 2) 무슨 말인가? 나는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을 했고, 그 중에 여호와께 제사드리기에 좋은 재물만 남겨왔다.

 3) 여호와께서는 번제와 다른 제사보다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드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

 4) 당신이 거역한 것은 점치는 것과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


 * 사울의 죄가 무엇인지 분명해졌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졌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철저한 순종을 원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더 좋은 제사를 위해서 말씀에 대한 순종을 버렸다. 그 자신의 생각으로 말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것과 같고, 완악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은 죄라고 말씀하실 정도록 불순종과 완고함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다. 이와 같은 죄로 인해 하나님은 그가 기름부운자까지 버리기로 결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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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울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도, 백성들로 인해 두려워서 그리했다고 변명했다. 자신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왕을 버리셨음을 다시 지적한다.

11. 그러자 사울은 사무엘의 옷을 붙잡았고, 옷이 찢어지게 된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왕을 이웃에게 주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함이 없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한다.

12. 사울은 자신이 범죄했을지라도,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자신과 함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사무엘은 돌이켜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


 * 사울은 자신의 범죄함을 고백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진정한 회개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자신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백성들의 요구가 있었고, 그것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으로 변명한다. 더 나아가서는 왕의 체면을 생각해 달라는 요청을 사무엘에게 한다. 사울은 하나님께 책망받는 자리에서 조차 죄를 변명하고, 자신의 체면을 더 중시여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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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무엘은 아각을 데리고 오라고 해서 아각을 심판한다.

14. 사무엘은 라마로 갔고, 사울은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갔다.

15. 사무엘이 그 이후로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였다.


 * 이 사건을 계기로 사무엘과 사울은 등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을 생각하며 인간적인 슬픔을 느끼게 되었고(왕의 자리에서 빗겨가게 되었으니..) 사울 또한 훗날 힘든 순간 사무엘을 찾게 된다.(물론 사무엘이 죽은 후라, 무당을 통해서 사무엘을 불러낸다.)


 * 왕정 제도를 시작하고 첫 왕은 이런 성적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웠지만, 결국 그 왕을 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을 세우고자 하신다. 이것은 새로운 왕에게는 하나의 교훈이 되어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게 하는 교훈이 될 것이다.


[생각] 성경의 인물들은 그 사람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과에 대한 유혹,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 예수님에게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 자신의 필요를 채우라는 유혹... 사울에게는 아말렉을 온전히 심판하는 것에 대한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말렉의 왕 아각에게 있었던 양과 염소들은 이스라엘의 그것들보다 더 좋아보였던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좋은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면 더 좋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런 생각들이 들어왔고 그렇게 했다. 이렇게까지 하나니의 말씀을 어기게 된 것에는 그 자신이 왕이라는 것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왕인데... 이 정도의 사소한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왕인데... 내가 왕인데... 왕일지라도, 내가 왕인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망한다. 대통령일지라도, 내가 대통령인데... 누가 어떻게 하겠나? 라는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망한다. 왕을 세운 하나님에게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대통령을 세운 국민에게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 권력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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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묵상 한모금] 사무엘상 14장. 힘과 승리의 논리를 따르는 왕, 사울



1.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무기 든 소년과 함께 블레셋이 진 치고 있는 곳으로 갔다.

2.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이 아님을 믿고 나아갔고, 무기 든 자는 같은 마음으로 나아갔다.

3.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이 자신들을 향하여 <올라오라>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그들을 넘기셨다는 징표로 알고 나아갔다.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을 보고는 이스라엘이 굴에서 기어나온다고 말하면서 <올라오라>고 말했다.

4. 요나단은 하나님의 붙이신 줄 알고 올라가서 그들을 하나 둘씩 죽인다. 거기에 어떤 떨림이 있었다.


 *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의 대치 국면에서 누군가의 선제 공격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불리한 상황이었다. 군인들이 부대를 떠나는 상황이었기에... 블레셋은 가만히 두면 저절로 무너질 것으로 봤을 것이다. 이 침묵을 깨고 요나단이 나선 것이다. 믿음과 결단을 가지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스라엘에게는 불리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하니님 함께 하셨다. 요나단의 선제공격이 블레셋을 혼란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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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블레셋 진영이 혼란스러움을 본 파수꾼이 그 상황을 사울에게게 알리자 사울은 자기 진영내에 누가 나갔는지를 알기 위해서 인원파악을 한다. 요나단과 그의 무기 든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6. 사울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블레셋 진영에 혼란이 더하자 더이상 언약궤를 찾지는 않았아다.

7. 사울과 군인들이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안에서 서로를 칼로 치는 혼란이 일어났다. 이는 블레셋과 함께 했던 히브리 사람들이 돌이켜 요나단과 합세했고,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의 도망함을 듣고 싸웠다.

8.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 블레셋은 혼란에 빠졌다. 요나단의 선제 공격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블레셋의 편으로 돌아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섰다. 흩어져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다시 모여들게 되었다. 블레셋 진영은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혼란이 가중됨으로 쉽게 무너졌다.

 * 요나단의 믿음의 행동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대되어가면서 전쟁은 승리하게 되어간다. 누가 알았는가? 우리는 첫 단추만 꼈는데 그 다음 수순으로 둘째와 세째가 자신도 모르는 동력에 의해서 이루어져갈때가 있다. 이 장면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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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계속되는 전쟁으로 백성들은 피곤하고 허기졌으나, 사울은 원수를 완전히 보복할 때까지는 아무 음식도 먹지 말고, 먹는 자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함.

10. 이를 모르는 요나단은 숲에서 꿀을 먹어 힘을 얻었으나, 군인들은 그 때서야 사울의 명령을 요나단에게 알려준다.요나단은 아버지가 무리한 명령을 했음을 지적한다.

11. 허기진 백성들은 더 극단적인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데, 탈취한 양과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땅에서 잡아서 피채 먹었다.

12. 뒤 늦게 그런 죄를 짓는 다는 것을 안 사울은 다시 지시를 내려 피채 먹지 못하도록 한다. 사울이 이 일로 제단을 쌓았는데 그가 처음 쌓은 제단이었다.


 * 요나단이 매우 믿음의 결단을 통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비해, 사울은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무리한 요구의 명령을 내린다. 그로 인해 백성은 왕과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된다. 그로인해 축제같아야 할 전쟁의 승리가  정죄하고 심판해야 하는 분위기로 변경된다.

 * 왕이 자신의 권위와 승리에 대한 도취에 빠지게 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자신이 더 큰 사람인줄로 생각하여 무리한 명령을 내리고는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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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울은 블레셋을 그 밤에 추격하여 끝까지 쫓자고 제안하자,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제안한다. 사울이 하나님께 물었으나 그 날에 대답이 없었다.

14. 사울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 죄가 있음을 직감하고 죄인을 찾아내라고 한다.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한다.

15. 사울은 제비 뽑기를 했고 처음에 사울과 요나단이 뽑혔다. 그리고 둘 사이에 요나단이 뽑혔다.

16. 요나단은 자신의 행위를 사울에게 말했고,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17. 큰 공을 세우 요나단을 죽이지 말라는 백성들의 요구가 있었고 그로 인해 요나단은 죽지 않을 수 있었다.

18.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단 여기서 소강되었다.


 * 사울의 명령을 어긴 사람은 요나단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무리한 명령을 내린 사울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이번 일로 사울은 자신의 명령을 준행하지 못한 자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반대로 이행하지 못함으로 인해 리더십에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된다. 13장에 이어 사울이 가지고 있는 왕정 제도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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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울이 왕 위에 오른 뒤에 사방에 모든 대적, 모압, 암몬, 에돔, 소바의 왕들,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 전쟁마다 승리했다. 약탈자의 손에서 건져냈다.

20. 사울과 주변 사람들의 가족 관계 설명

21. 사울은 사는 날 동안에 늘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다.   


 * 사울은 왕을 기대했던 백성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사사 시대에는 적의 침공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고통당했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로 인해 구원을 얻는 소극적 상태의 구원이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달랐다. 주변에서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였고, 그로 인해 승리를 했다.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으로 이스라엘이 변화된 것이다. 왕의 세운 이후의 큰 변화를 얻었다.

 * 그런 측면에서 사울은 힘쎈 사람들을 불러 모아 더욱 힘을 키워갔다. 사울은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기를 원하는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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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묵상 한모금] 사무엘상 13장. 사울,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치명적 한계 드러냄.


1.사울은 40세에 왕이 되었다. 왕된 2년 때의 일이다.

2.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3천명을 뽑아, 2천명은 자신이 데리고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1천명은 아들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나머지는 장막으로 돌려보냈다.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침으로 블레셋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과 전쟁을 준비하게 됨

4.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모여 사울을 따랐다.

5. 그런데 전쟁을 하기 위해 온 블레셋의 그 수가 엄청났다. 병거가 3만이고, 마병이 6천이었다. 이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굴과 수풀과 바위 틈에 숨었다. 어떤 사람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주하기도 했다.


 * 사울은 왕으로서 상비군을 두어 운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상비군을 통해 눈에 가시 같은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도 할 수 있었고, 그로인한 성공도 거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블레셋과의 전면전으로 이어졌고, 블레셋의 병력을 전면적으로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이스라엘에게는 아직 없었다. 그래서 블레셋의 엄청난 병력을 보자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두려움 속에 숨거나 도망쳐 버리고 만다.

 * 이스라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강해졌다. 그러나 세상은 더 강한 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에 비하면 이스라엘의 인간적인 강함이란 현실 속에서 매우 부끄러운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 간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병력의 우위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신이었다.



6. 사울은 기갈에 머물면서 사무엘을 기다렸다. 그가 제사를 드린 후에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이 늦어지고 백성들은 사울에게서 흩어지자 조급해진 사울은 본인이 직접 제사장의 역할까지 해서 제사를 드려버린다.


 * 왕은 사무엘이 제 때에 오지 않자, 본인이 직접 제사를 드린다. 제사만 드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겠지만, 그 마음 속에는 왕인 자신이 제사까지 드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왕이 되자 자신이 모두 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교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7. 제사가 마칠 때 즈음 사무엘이 등장하고, 사무엘은 이 일로 인해 사울을 책망한다.

 1)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다.

 2)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다.

 3) 왕이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셨으니,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로 삼을 것이다.

8. 사무엘은 일어나 길갈로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갔다.


*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왕 위는 길지 못하게 된다. 왕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임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의 왕은 절대군주가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왕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이 마치 절대군주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사울의 한계와 세상 왕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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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울과 함께 전쟁하기 위해 남아 있는 자는 600명에 불과했다.

10.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백성들과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을 쳤다.

11. 블레셋은 세 대로 나누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12 이 당시 이스라엘은 철재 무기가 없었다. 이스라엘 중에는 사울과 요나단만 철로 된 칼이나 창이 있었을 뿐이다. 이스라엘에는 철공도 없어서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는 블레셋에 내려갔다 와야 할 정도였다.


 * 현재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형편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 수에서도 그렇고, 군사들의 사기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또한 무기 또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철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전쟁과 같은 형편이다.


[정리] 사울은 자신을 백성들의 왕이라고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왕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울은 왕이 된 이후, 아래에 있는 백성만 봤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모든 권력자들이 무너지는 이유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자리에서 이것을 인식하여 자신을 겸비하는 사람 또한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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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묵상 한모금] 사무엘상 12장. 사무엘의 퇴장과 왕정시대의 도래:불안한 시작.


1. 사울 왕이 세워지면서,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는 사무엘

2. 너희 앞에 왕을 세웠고, 나는 늙었으며 나의 아들들도 너희들과 함께 있다.

3. 그 동안 너희 가운데 사역하면서, 내가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말하라. 빼앗거나 속였거나 뇌물을 받아 눈을 흐리게 한 일이 있었는가? 내가 갚으리라.

4. 백성들은 사무엘의 결백을 확인해주고 증언해 주었다.


*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사역 속에서 그릇된 것이 있었는지에 대해 백성들 앞에서 스스로 청문회를 한다. 힘과 권위로 부당하게 빼앗거나 뇌물을 받아 눈을 흐리게 한 판단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백성들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확인해준다. 그만큼 사무엘은 흠 잡을 것이 없는 사역을 했다. 사무엘은 선지자와 사사로 왕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백성들의 재물을 탐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았다.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지도 않았다. 사무엘은 이와 같은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이 운영되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 일을 건강하게 잘 감당한 사역자다.(그러나 그의 자녀들에게서는 그와 같은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런 경험은 엘리와 그 자녀들에게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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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무엘은 이들을 향해서 과거 역사를 설명해 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권면한다.

6.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이후 너희들이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세우셔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 그래서 너희들이 여기에 살게 되었다.

7. 그런데 너희는 하나님 여호와를 잊었다. 그래서 블레셋과 모압의 손에 너희들을 넘겼다. 너희들이 다시 부르짖으며 자신의 우상 숭배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보내 구원해 주셨다.

8. 그런데 너희가 암몬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오자 너희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너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너희 위에 세우셨다.

9. 만약 그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 조상들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다.

10.여호와께서 오늘 밀 베는 때에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밝히 알게 하시리라.

11.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매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였다.


* 출애굽 이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구원해 주셨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수많은 죄악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펴셨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제 암몬의 나하스가 치러오자, 하나님을 통한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 동기가 악하다. 하나님은 이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 주셨지만, 이들은 동기가 악함을 지적하신다. 사울은 사실 그런 측면에서 세워진 왕이다. 하나님의 기대하는 입장에서의 왕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 요구되어지는 측면에서의 왕인 것이다. 결국 사울에게서 왕정 제도의 한계와 부정적인 측면이 크게 부각 될 것임은 자명한 것이다. 왕 한사람의 이스라엘 전체를 죄악으로 끌고 갈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 이후 분열왕국에서 충분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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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모든 백성들이 두려움으로 사무엘을 통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였이다.

13. 사무엘은 백성에게 너희가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14.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하지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15.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않을 것이다.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다.

16.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 백성들은 사무엘의 이런 메시지를 듣고서야, 또 하늘에서 우뢰와 비가 내리자 두려움에 휩쌓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중재를 부탁했다. 사무엘은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지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를 섬기라고 요청한다.(왕정 제도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과 태도의 문제이다.) 사무엘은 이들을 위한 중재를 지속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면서도 만약 너희들이 악을 여전히 행한다면 그 중재라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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