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은 대략 4 덩어리로 보렵니다. 인사말(1-2), 바울의 감탄(3-14), 바울의 기도(15-19), 바울의 교회에 대한 설명(20-23). 이정도로.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해 가면서 교회의 의미를 깨닫고는 매우 놀란듯 합니다. 성도들이 모인 교회라는 것이 이런 것이란 말이가! 그리고 그가 감탄하며 쏟아낸 단어들은 완전함과 풍성함을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하늘에 속한(3) 신령한 복(3), 창세 전(4),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4),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7),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8), 때가 찬 경륜(9),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10),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13)

교회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리하면 23절의 표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교회로 존재하는 우리는 왜 날마다 교회의 빈곤함을 보고 듣는가? 이유를 두가지로 추려보면

첫째, 성도인 우리가 이미 구속받은 거룩한 백성이면서도 아직 완성된 성도가 아닌 것처럼, 교회는 그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아직 완성된 상태에 있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잘 못해서만 완성된 의인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니다. 때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현 교회의 불완전성은 교회 스스로의 부족함도 있지만, 때가 차기까지 그 불완전함 속에서 겪어야 할 성도들의 고난(갈등?)이 남아 있는 것이며, 그 과정은 교회가 거쳐가야 할 과정이다. 따라서 부정하고 훼피하기 보다는 그 속에서 성도들이 성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교회는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원리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가 우리가 보이는대로 흘러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요셉의 역사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흘렀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르게 흘렀다. 보이지 않는 영적 영역에서의 원리가 있었고, 그 원리는 한참 지난 뒤 역사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와 같은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교회의 보이는 것(어리석음과 불완전함)이 참 교회의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한다. 성도들의 마음 눈을 밝혀서 교회의 풍요와 능력을, 그리고 그런 계획을 그의 뜻대로 진행하실 하나님을 알도록 말이다.(17-19)

성도인 우리의 꿈과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성공을 기도하면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건강을 기도하면 우리는 우리 몸으로 죄를 더 지을 수도 있다.
명예를 기도하면 우리는 교만에 빠질 수도 있다.
안정을 기도하면 우리는 안일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완전함, 충만함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이루어질 기도이며 변질되지 않는 영원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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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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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에 가서 느끼는 것은 바울이 당한 고난은 육체적인 것을 넘어 치열하게 반대하는 자들과 싸워야 했던 흔적들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인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싸움과 논쟁 속에서 바울이 확실히 믿었던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바울이 목숨을 걸로라도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집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에게 감사합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당신들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거나 흥미롭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복음이 선명하게 무엇인지 우리의 것으로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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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이 매우 정성들여서 강조하여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그 만큼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의 강조점을 마지막으로 짚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변명] 6:1-10에 대해 일반적인 차원에서 <서로 짐을 지라>는 교훈으로 정리하기에는 전체 맥락 속에서 제가 잘 이해되지 않아, 개인적인 사적 견해로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간의 관계로 좀더 구체화하여 해설해 보았습니다.

1. 바울에 대해서 여전히 경계하는 성도들에게(1-5절)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것으로 밝혀졌더라도, 너희들은 나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주려고 했어야 했고, 그와 동시에 나는 그릇되지 않았는가? 하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바른 태도다. 그런 태도로 나를 대해줌으로서 짐을 서로 져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떠했는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현혹되어 복음에서 멀어진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심으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나에게 대해서조차 비난과 헛소문 그리고 악성 댓글이 난무하니 이것이 성도 안에서 말이나 될법한 일이냐? (갈라디아 교회의 그릇된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여집니다.)

2. 바울에 대해서 여전히 따르는 성도들에게(6-10절)_이들은 여론적으로는 소수였는데.

너희들은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라. 우리가 할례의 조건을 거절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으로(너희들은 믿고 따르는 것으로) 힘들겠지만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그것을 붙잡고 기회있는대로 전하면 때가 이르거 거두리라.(결국 믿음의 복음이 이기지 않았는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따르는 너희는 결국 나와 함께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힘써 이 복음을 전하라.

3.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는(11-14)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로부터 받는 불이익(핍박)을 면하려고 자꾸 할례를 요구하는 자들이다. 사실 이들은 할례 외에 다른 율법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지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가르침에 많은 추종자들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 뿐이다.
이들의 어리석은 가르침에 넘어가지 말아라.

4. 바울의 확신(15,17절)

1)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은 받았다는 것만이 중요하다.(15절)
2) 나는 내 몸에 부인할 수 없는,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17절)
3) 더 이상 댓글달지 말라.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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