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다.


2. 하나님, 하나님의 큰 일을 속히 이루시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2절)



  * 하박국은 1장과 2장의 분위기와 달리 갑자기 겸비해졌다. 악한 바벨론에 대해서 고소하다가 그 문제가 바벨론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진노와 심판에서 긍휼과 자비쪽으로 돌아셨다. 심판이 우리의 대적을 향하는 것이라고 믿으면 왜 빨리 심판하지 않는가 따지지만, 심판이 나를 향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 일이 더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지금 하박국의 심정이 그와 같은 심정이다. 


3.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면 얼마나 두려운가에 대한 묘사다.

  

  1)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고, 불덩이가 그의 발밑에서 나오는 도다.

  2)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엎드려진다.

  3) 주께서 활을 쏘시고, 강들로 땅을 쪼개셨다. 

  4)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고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셧다. 


4.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모습


  1) 주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에 드러내셨다. 

  2) 대적들이 나를 흩으려 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다. 


  * 바벨론(대적)이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겠지만,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여 그들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말씀이다. 미래적인 표현으로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승리와 그 백성의 승리로 마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5. 지금 현재의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하박국의 고백


  1) 대적자들이 우리를 처들어 오는 것으로 인해 입술이 떨리고, 내 몸이 떨었다. 

  2) 그래서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3)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왜?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으므로 인해서 현재의 두려움과 환난을 극복하며 오히려 소망 가우데 지날 수 있는 것이다. 


  4)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리로다. 


  * 여호와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상황을 뛰어넘는 즐거움과 기쁨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환경을 뛰어넘게 하시어(극복했다기 보다는 극복할 수 있는 신앙과 소망 중 인내를 주심으로)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셨기 때문이다. 



[묵상 한 모금]


1. 하박국의 태도 변화(우리도 마찬가지)


하박국 1,2장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바벨론의 죄악을 고발하고, 이 극악 무도한 죄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로 의인(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시는 것이 의로운 일인지 하나님께 따집니다. 참고 말씀을 아끼시던 하나님은 결국 악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는데, 그 악은 바벨론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역시 그와 같은 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박국은 바벨론을 고발하다가 우리 자신도 같은 죄를 지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자 하박국은 돌연, 바벨론에 대한 고발을 멈추고 정신을 차린다. 자신이 고발한 것으로 자기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 상황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하박국은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기다리게 된다. 정죄하는 자리에서 긍휼을 구하는 자리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바리새인의 자리에서 세리와 죄인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자리에 있는가! 심판하는 자리에 있기 원한다면, 심판을 받을 것이고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자리에 있다면 긍휼과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행하실 심판을 기대함


하박국의 초기 기대는 바벨론의 신속한 심판이었다. 바베론이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그리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긍휼과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박국은 신속한 심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그래서 지금이 아니라도, 어쩌면 우리가 바벨론에게 능욕을 당하고나서라도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하박국의 기도는 바뀐다. 오히려 찬양으로. 지금 당장 두렵고 떨리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섭리) 그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겠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범죄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3. 나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현재의 상황(기쁨이든 고통이든)에 좌우되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시니 마치 사슴이 높은 곳을 다니듯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란, 만사형통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어떤 장애물도 그의 신념과 믿음을 굽히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왜 우리는 이런 사람을 키워내지 못했는가! 장애물을 극복할 때 얻게 되는 배움도 크지만, 장애물 앞에 멈춰서야만 할 때 배우는 교훈도 적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가 높은 곳을 다니지 못하고, 낮은 곳에 머물고 있으니... 우리를 낮게 보는 것 같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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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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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7:1-3] 오늘은 37편 중 1-3절만 다룹니다. 아니 3절을 통채로 외웁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와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대해서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과 함께 하는 하루 되시길.


[옮기기/ 외우기]


1절.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소극적 권면)


2절.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하나님의 질서/심판)


3절.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적극적 권면)


[정리]

악을 행하는 자 때문에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속히 베임을 당하고 쇠잔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을 우리의 먹거리로 삼고 그를 의뢰하면서 선을 행해야 한다. 


[묵상] 

그리스도인 만큼 죄에 대해서 묵인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는 곳도 없을 것이다. 작은 흠 하나까지 다 털어내려 한다면 문제가 크겠지만, 누구나 눈에 보이고 누가 해도 악행이라고 여겨지는 것까지 지적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참 이상한다. 성경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식의 교육도 받았고, 성경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만 문장을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악행을 하는 자들에 대한 불평과 시기를 금하라는 것이 그들의 죄를 보고도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신고했는데, 바로 심판을 받지 못하는 사회 구조와 모순을 보면서 세상을 향해서 불평만 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향해서 뭐하고 계시냐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심판이 구부러지고, 더딘것 같지만 속히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불평해서 사회에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혹은 그들의 악행에 심판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삶을 따라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악행을 보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 더 큰 악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판단하고(물론, 공정하게) 그것을 지적하거나 심각할 경우 국가권력의 힘을 의존하여 제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물론 내게 그와 같은 죄의 요소가 없다는 입장에서의 정죄가 아니다. 나도 그와 같은 죄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표출된 자의 형벌을 내가 실제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내 안에서는 표출되지 않도록 경고를 얻기 때문이다. 내가 죄인이고 내 안에 그와 같은 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서 민감해야 한다. 더불어 단순한 고발이 아닌, 그 죄를 개선해 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 대응해 주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판단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는 말을 너무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3절 말씀일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머무는 동안 그 분의 성실하심을 먹을 거리로 삼아, 늘 그분을 (공의로운 심판을) 의뢰하고 선을 행하기에 힘써라. 혹 세상이 불공정하고 모순되었다고 하더라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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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서를 읽고 묵상하고 쓴 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일지라도 회개하지 않은 채 죄를 반복할 때 심판하신다는 것을 성경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명확하게 하나님으로부터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우리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책망하시고 심판하시는 근거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기 자신은 이스라엘의 죄와 같은 죄가 없는 것처럼, 자신은 영원히 그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처럼 생각하고 고통가운데 있는 형제를 정죄하고 판단하며 그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면 그것은 형제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바댜서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가 고통당하고 있다면, 그 원인을 따지기 전에 먼저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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