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느헤미야 6장을 살펴봅니다. 어제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추적자'를 다시보기로 1-3편까지 봤습니다. 정치,경제,문화,검찰,정의,가정,약자...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였습니다.

느헤미야 6장을 보면서 살해계획, 위협을 통한 두려움 조장, 거짓 소문, 거짓 예언 등과 같은 권모술수를 보게 됩니다. 다행히 느헤미야는 마음이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의 대적자들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가장 두려운 무기는 두려움... 그래서 요즘 나꼼수의 쫄지마가 대표적인 이시대의 표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그래서 제목도 선정적으로 달아봤습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문단나눠가며 정리해 보세요. 국어실력이 중요합니다.]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원수들이 느헤미야를 회유하려 함

  1) 성벽의 허물어진 틈은 거의 공사를 마쳐가는 상황이고 아직 성전 문짝은 달지 못한 상황

  2) 사람을 보내어 느헤미야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만나자고 제안함(정치적 협상처럼)

  3) 그러나 실상은 느헤미야를 살해하기 위한 모략이었다.

  4) 4번이나 그런 제안을 했으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해야할 일이 중하므로 가지 않음.(3절)

2. 산발랏이 느헤미야를 거짓 소문을 통해 두렵게 하여 자신의 요구대로 하게 하려고 함.

  1)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 이방인 중에 이런 소문이 있다고 하면서 위협함

    (1) 느헤미야와 유다가 반역을 위해 성을 건축한다.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고 한다.

    (2) 선지자를 세워서 유다에 왕이 있다는 것을 선전하게 하려고 한다.

[대응] 느헤미야가 사람을 보내 산발랏의 모함이 모두 거짓임을 말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손을 힘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이 자신을 두렵게 만들어서 공사를 중지하도록 만들려는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3. 거짓 선지자가 동원되어 느헤미야를 위축되게 하려고 함.

  1) 드문불출한 스마야를 방문했던 느헤미야는 대적들이 너를 죽이러 올테니 성전에 가서 외소에 들어가 문을 닫고 숨어 있으라고 말한다.

[대응] 느헤미야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어찌 성전 외소 안에 숨겠는가라고 하고는 숨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이미 스마야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12절) 느헤미야는 도비야와 산발랏 그리고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의 악행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여

느헤미야를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느헤미야를 비방하려고 한 것이다.

4. 성벽의 역사가 끝나자 대적들이 오히려 두려워했다.

  1) 52일만에 성벽 역사가 끝나자 대적들이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했다.

  2) 이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5. 또 다른 반전의 기운(악의 영향력이 쉽게 떨어지지 않음)

  1)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번 도비야와 교류가 있었으며, 그와 동맹한 자도 많았다.

  2) 느헤미야 앞에서 도비야의 선행을 말하는 유다인들이 많았다.

  3) 느헤미야가 한 말을 도비야에게 편지로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리2. 본문을 정리한 것을 자기 나름의 것으로 재 정리하세요. 그래야 내것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다양한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지요]

느헤미야 6장에서는 개인대 개인의 싸움과 같은 분위기다. 사람들이 이름이 언급된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 그리고 느헤미야.

산발랏은 당시 사마리아의 총독이었을 것으로 본다. 도비야는 암몬사람(느 2:10)이라고 언급되지만, 그의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선하시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염두하고, 그가 유대 사람들과 많은 친분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반은 유대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그를 암몬의 총독으로 보기도 하고, 느헤미야 도착 전의 예루살렘 총독이라고 보기도 한다.(느 5:15) 그러나 사마리아 총독이었던 산발랏과의 친밀한 관계를 본다면 그는 산발랏의 부관이었다고 보는 것 같다. (이 내용은 새 성경사전에서 도비야와 산발랏에 대한 내용을 사전에 한 번 읽어본 것을 기초로 한 내용이다)

암튼, 이들은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마지막 방법으로 느헤미야를 직접적으로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술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산발랏은 거짓 소문을 퍼트리면서 느헤미야가 자신을 만나지 않을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나 느헤미야는 사실이 아님을 전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이 되지 않도록 기도한다.

대적자들의 계략은 매우 집요했다. 한 사람의 예언을 통해서 느헤미야가 성전 외소에 숨을 것을 예언하게 한다. 그것을 근거로 느헤미야를 비방하기 위한 계략이었던 것이다.(아마 도비야를 통한 계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들의 계략을 미리 눈치채고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직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대적자들의 악행을 기억해 달라는 신원만을 올릴 뿐이다.

대적자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벽은 52일만에 재건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대적자들의 두려워하고 낙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비야라는 새로운 인물이 부각되며 유대인들이 느헤미야의 대적자인 도비야와 얼마나 깊숙이 관계가 맺어진 존재인지를 성경은 보여줌으로 예루살렘에 뭔가가 더 필요한 조치가 있어야 함을 알려준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대적자가 느헤미야를 무력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1) 대적과 손을 잡고 좀 더 쉽고 안전한 길을 가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성벽이 거의 다 완공되고 이제 문짝만 달면 된다. 지도자의 입장에서 끝이 보이는 상황이고 이 때만큼 이 사역을 빨리 완성하고 싶고,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는 심정이 있을 때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 때, 대적자들이 호의적으로 나오고 같이 협조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들의 협조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시달리며 공사를 진행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완성인데 만일 대적자들이 악한 마음을 먹고 총력을 다하면 공사의 일이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일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대적자들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그래서 한 마을에서 만자가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살해라는 엄청난 속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었다.

  2)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려는 방법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거짓 소문을 만들과 확대해서 왕의 오해를 살 수 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또한 성전 외소에 숨으라고 말한다. 살해의 위협이 있으니..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빙자하여 말하니... 그러나 느헤미야는 두려움이 동인이 되어 행동하지 않았다.

  쉬운 길을 제시하든지(약간의 야합만 하면) 아니면 두려움을 조장하여 스스로 낙담하게 만들거나 충동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하게 만들어 리더십에 큰 타격을 주게 만드는 방식을 대적자들은 즐겨 사용한다.

 

2. 느헤미야는 모든 술수를 알았기에 피해갈 수 있었는가? 아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상황마다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늘 기도한다. 9절에는 자기 손에 힘이 떨어지지 않고 힘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될 때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 그들의 소행을 보응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느헤미야가 극복하려고 했던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만들고,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사단이 주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좇아가는 것(의인의 자리에 서는 것)이 성도들의 마땅한 바다.

오늘도 두려움을 이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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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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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5장입니다. 성벽 재건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던 중 외부의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그 외부적 장애를 담대히 극복해 가는 과정을 4장에서 다루면서 이젠 순적하게 진행되겠구나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내부적 문제이이죠. 외부의 적을 함께 잘 이겨냈다가도, 내부적인 갈등을 만나게 되면 쉽게 무너지는게 우리의 모습인데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

 

[1차 정리.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좋게 정리하기]

1.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

  1) 백성들 중에서 흉년의 때를 만나 먹고 살기 위해서 밭과 포도원을 저당 잡혀 곡식을 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치기도 했다.

  3) 이런 과정 속에서 빚을 갚지 못해 자신의 자녀들이 종으로 팔려갈 신세가 된 사람들(일부는 이미 종이 되었다.)이 자신의 상황을 한탄했다.

2. 백성들의 이런 어려움에 대한 느헤미야의 신속한 조치

  1)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행동했다.(7절)

  2)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1)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2)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를 힘을 다해 도로 찾았는데 너희들은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3)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다. 이로 인해 대적들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4) 내 형제와 종자들도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주었다니 우리는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5) 오늘이라도 너희가 그들에게 받은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3) 귀족들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제안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함.

   (1) 느헤미야는 자신의 옷을 털며, 말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겠다고 경고했고 회중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대로 행하였다.

3. 총독으로서 느헤미야의 헌신적인 삶

  1) 유다 총독으로 와 있는 12년의 시간 동안 느헤미야와 그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않음

  2) 이전의 총독들은 양식과 포도주를 그 지역의 백성들에게서 빼앗았는데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3) 도리어 성벽 공사에만 전심하였고, 땅을 사는 것과 같은 투기도 하지 않았다.

  4) 도리어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을 위해 매일 소와 양과 닭을 잡아 먹였고, 열흘에 한 번은 포도주를 갖춘 잔치를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던 것은 이 백성들의 부역이 중하였기 때문이다.

: 느헤미야는 본인이 백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섬긴 일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함.(19절)

 

[2차 정리. 본문 내용을 내 말로 다시 정리하기. 강조점이 살아있는 정리]

느헤미야 4장이 외부적인 대적에 대한 기록이라면 5장은 내부적인 문제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양극화문제라고 볼수 있다. 가난한 자가 먹을 것과 세금을 내기 위해 밭과 포도원을 담보로 양식과 돈을 빌렸는데 갚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을 종으로 내 주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느헤미야에게 답답함을 호소한 것이다.

이정도 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느헤미야는 실상을 파악하고 깊이 생각한 후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자신과(자신의 형제와 종자들과) 귀족과 민장들 편에서의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자를 받지 말 것과 원금의 1/100은 탕감해 주라는 명령인 것이다. (원금을 탕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자로 받았던 것을 돌려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2013. 4.4 수정)

느헤미야의 다소 불합리하게 보이는 요구에 대해서 귀족과 민장들은 그대로 따르기로 결정하고 맹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가 보여준 청렴하고 희생적인 삶이 모든 사람에들에게 영향력을 준 것이다.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으로 있는 12년 동안 당연히 받고, 마땅히 받을 수 있는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세금 부담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게다가 느헤미야는 자신의 재산을 소비해 가면서 유다 사람들을 위해 소와 양과 닭을 매일 공급했고, 열흘에 한 번씩은 회식을 시켜주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성벽 재건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감당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이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중간에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힘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외부의 갈등보다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느헤미야는 외부의 적을 유다 공동체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극복해 가는 과정 중이다.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힘이 나기도 한다. 성취감도 있다. 공동체원들이 서로 희생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몸은 피곤하지만 오히려 결속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내부적인 문제가 터졌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요. 귀족과 농민의 문제다. 어느 정도는 참았지만, 자신의 자녀들이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이들에게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다 민족 내부적으로 서로가 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팀이라는 인식으로  나눠지게 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균열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일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유다 공동체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2. 느헤미야의 깊은 생각과 자기 희생적 결단

느헤미야는 이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크게 분노했지만, 흥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깊이 생각했다.(7절) 그리고 이 양자간의 갈등(양극화 갈등으로 볼 수도 있을까?) 속에서 그가 찾았던 방법은 자기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 그리고 귀족들과 민장들이 자기 희생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부자라고 해서 희생을 해야 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봐줘야 한다는 논리는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부자들은(구조적 시스템 문제로 보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이 문제만 본다면) 가난한 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주고 정당한 대가(이자가 크지 않았다면)를 받는 것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면 환경적으로 경제 침체라는 어려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양자 간의 갈등을 낳았고, 결국 약한 자 쪽에서 문제 제기를 한 일이 된 것이다.

성경에서 이 문제는 경제 논리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성벽을 재건하는 전국가적 중요한 목표 속에서 일어난 이 내적 갈등을 어떻게 풀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의 과제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느헤미야는 내적 갈등을 종식시키고 다시 본연의 목적을 위해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진자가 희생해야 한다고 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들의 자기 희생적 결단과 포기가 있어야만 공동체는 양자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제부터 이자 받기를 금하고, 오히려 원금의 1/100을 탕감해 주는 정도의 개혁을 감행하고 이런 결정에 이들이 따라 줌으로서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3. 느헤미야가 이런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평소의 삶 때문이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개혁을 하더라도, 그것을 따라주어야 가능하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이자는 안받겠지만 원금의 일부는 탕감할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논의는 길어졌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국논을 더 분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맹세하고 따라오 것은 느헤미야가 보여준 그간의 삶 때문이었다.

느헤미야는 12년간 총독으로 있으면서도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내놓고, 정기적으로 회식을 시켜주시까지 했다. 느헤미야의 이와 같은 자기 희생적 삶은 많은 지도자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또한 존경을 얻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느헤미야의 이런 삶이 뒷받침 되었기에 그의 개혁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버스파업의 노사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현장에 가서 머리를 숙여 도움을 요청할 때, 노조측과 사측은 서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버스파업을 막을 수 있었다는 기사를 우리는 봤다. 그가 시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박원순 시장의 삶이 그간 사람들에게 존경이 되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리더의 영향력은 재간에서 나오지 않는다. 평소의 자기 희생적 삶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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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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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느헤미야 4장입니다. 성벽 재건을 위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고 곧 이어 본격적인 대적자들의 활동이 시작되는 장입니다. 고난이 없고, 장애가 없다면 대적자가 없다면 인생은 덜 다이나믹 할 것입니다. 힘든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평생 추억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대적자들의 공격에 대한 느헤미야와 백성들의 대응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길이길이 기억되어질 내용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대적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지요. 대적자로 인해 이야기는 흥미진진해 지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도드라짐은 더욱 명확해 집니다.

 

[1차 정리. 본문 내용을 중심으로.. 본문에 대한 관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 장애1. 산발랏과 도비야가 주변 사람들을 선동하고, 조롱함

1) 산발랏: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2) 도비야: 유다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대응]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이 당하는 업신여김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머리로 그 수치가 돌아가도록 해달라고 기도함. 그러고는 다른 대응없이 다시 성을 건축하는 일에 매진함. 백성들은 마음을 들여 공사를 진행했고 그래서 성 공사는 절반높이까지 이르렀다.

2. 장애2. 성벽이 계속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발랏과 도비야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분노해서 예루살렘을 쳐서 요란하게 하자고 결의함.

[대응] 이에 느헤미야와 유다인들이 함께 기도하며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면서 일을 함.

3. 장애3. 내부적인 위축과 두려움으로 인한 갈등

(1) 유다 사람들은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으니 짐 나르는 자가 힘이 빠져 건축하지 못한다함.

(2) 원수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달려들어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할 것이라고 위협함.

(3) 원수 근처에 사는 유다인들도 10번이나 느헤미야와 지도자들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함.

[대응]

1. 일하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서 있게 함.

2.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들에게 ‘네 형제와 자녀와 아내를 위해 싸우라’고 독려함.

: 위협에 대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대응하며 나왔다.

4. 느헤미야의 강력한 대응

1) 느헤미야 수하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무장을 했다.

2)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 각 한 손으로 일을 하고,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았다. 건축하는 자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했다.

3) 나팔 부는 자는 느헤미야의 곁에 두어 그 소리에 맞춰 신호를 삼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했다.(나팔을 불면 그 소리를 듣고 한 곳으로 모여 전쟁을 준비하도록 했다.)

4)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다. 밤에는 예루살렘 안에서 자면 파수꾼을 두어 쉬게 하였다.

5) 느헤미야를 포함하여 파수하는 자들은 옷을 벗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갈때도 각각 병기를 잡았다.

: 모든 상황을 전시 상황으로 하고, 특정 목적을 위해서 비상사태도 정하여 비상한 삶으로 생활할 것을 요구했으며, 느헤미야 자신도 그와 같은 비상 모드의 생활을 한 것이다.

 

[2차 정리. 본문의 내용을 내 것으로 재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성경 해석을 풍성하게 하는 핵심입니다. 이것이 잘 되면 묵상과 적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느헤미야 4장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 속에서 백성들이 집중해서 일이 잘 진척되자 이에 대해서 위기감을 가지게 된 대적자들의 본격적인 위협 속에서 느헤미야와 유다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보면 대적자들의 위협에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위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한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소극적 대응을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것이다.

물론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호응이 중요하다. 이런 위협이 살아 있는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목숨걸고 성벽 재건을 강행한다는 것은 비상한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명하고, 추진했으며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요구에 부응했다. 그들은 방비하는 일력을 따로 확보하기 위해 성을 건축해야 하는 인원을 축소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무장한 채 일해야 했다. 밤에는 돌아가면서 보초도 서야 했다. 성벽 재건을 지속하는데 방해되는 상황이지만, 대적자들의 위협 앞에서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백성들은 힘들었겠지만 끝까지 잘 감당했다. 이런 비상한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로부터 보여주는 모범적인 헌신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느헤미야가 대외적인 적의 위협에 있어서도 대응해야 했지만, 사실은 내부적인 반대자들에 대해서도 대응을 해야 했다는 것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이 공사를 마칠 수 없다고... 위협하는 자가 계속 공격하겠다고 와서 도와 달라고 하는 많은 요청들이 있었다. 이런 일들은 매우 피고한 일들이다. 이들을 성의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손실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했다가 어떤 여론의 비판을 받을지 알 수 없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대책을 함께 구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넘어간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본격적(의욕적)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려고 할 때, 대적자들의 움직임 또한 본격적(의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대적자들도 함께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어야 한다. 그 준비라는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영적 긴장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럴 때 대적자의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으며, 우리가 너희들의 행위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라고 여유있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15절.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었다.)

2. 느헤미야가 대적자들의 위협과 조롱 속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반응은 기도라는 것을 기억하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 했다.(4-5절, 9절) 느헤미야는 너무 흥분하거나 너무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아룄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어떤 신비한 능력이나 역사를 이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느헤미야는 기도를 통해서 지혜를 얻었고, 담대함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6절) 느헤미야는 기도한 후에 오히려 하던 일에 더 열심을 했다. 기도하고 나서 위험한 사태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찾아 대응하는 모습을 본다.(9절)

  대적자의 공격을 받았는가? 위태로움과 위협함이 있는가? 먼저 기도하라. 그리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지혜를 구하라.

3. 느헤미야와 유다의 백성들은 비상한 순간에 비상한 방식의 삶을 살았다.

  비상(emergecy)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비상(飛上)한 삶을 살았다. 비상한 삶이란 무엇인가? 일상의 삶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잠시 포기 했다. 이들은 공사를 하면서도 무기를 잡았으며, 낮에 일을 하면서도 밤에는 보초를 서야하는 삶을 살았다. 일을 마치고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심지어는 옷을 벗어 놓지 못한 채 5분대기조와 같은 삶을 받아들였다.

성벽을 재건해야 하겠다는 긴급한 목적 앞에서 그들은 일상을 비상으로 바꾸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대적자들이 없는 일상의 상황이 아닌, 대적자들의 공격으로 위협받고 있는 비상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비상한 목적을 이루어야 했기에 비상한 방식의 삶을 잠시 받아들인 것이다.

  비상한 상황에서 비상하기 위해 일상을 잠시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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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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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느헤미야 3장입니다. 사람 이름 나오고, 반복적인 패턴.. 끝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본문입니다. 성경에 이런 본문 종종있지요?^^ 너무 꼼꼼히 볼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 어떤 불균형을 통한 저자의 강조가 드러날 때가 종종 있지요^^ 그 불균형을 찾으려면 좀 살펴봐야 겠지요.

마태복음 1장의 족보속에도 불균형이 있지요. 여성들의 이름이 중간 중간 들어가 있다든가 하는...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무 쉽게 간과하려고 해서는 안되지요. 그래도 이런 본문은 정독하기가 힘들다능...

 

[1차 정리. 본문의 내용 중심으로]

1. 성벽 재건을 개인과 가족별로 할당하여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였다.

1)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였다.(1)

    :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용되는 곳, 양의 출입이 있는 양문을 중수하였다.

2) 드고아 사람들이 어떤 지역을 중수할 때,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부담하지 않았다.(5절)_네가티브한 사실을 공개한 느헤미야.

3)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향품 장사 하나냐,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자..(8,9절)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한 영역이 또 있다.(31절)

4) 자기 집과 마주대한 곳을 중수한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10절)

5)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함(12절)

6) 제사장들도 부분을 정해 중수하였는데, 주로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다.

 

[2차 정리. 내것으로 소화해서 다시 정리하기]

느헤미야 3장은 성벽 재건을 위해 구체적으로 각 가정마다 담당할 영역이 있었고, 그 부분을 열심히 감당했다는 내용이다. 참여한 대상도 다양했던 것 같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일반 인들.. 상인도 있었다. 금장색이나 향품 장사 등과 같은. 그리고 관리들도 있었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들의 자녀들도 구역을 맡아서 성실히 성벽 재건에 힘썼다.

제사장들은 약간의 독특함이 있었는데, 제사와 관련된 양문을 직접 담당한다든지, 자기 거주하는 집 앞의 성벽 재건을 담당했다.

암튼,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열심히 성벽 재건에 힘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그 중에 성벽 중수의 일을 분담하지 않은 부류에 대한 언급이다. 5절에 나온대로 드고아의 귀족들은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itistory-photo-1

참고할 만한 것이 있어서 사진으로 찍어 봅니다. 안에 있는 성벽이 느헤미야때 재건한 성벽인데, 40구역으로 나누어서 오른쪽 위인 양문부터 시작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작업 배치를 했다고 하네요. 성 안에 E 라고 쓴 구역이 제사장들의 집터인데, 그들은 자기 집 앞 부분의 공사를 맡았다고 하고요. 참고하세요.^^(IVP성경주석 p.584)


[3차 묵상 및 적용]

1. 느헤미야가 일을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생각했고 계획했다. 그리고 일이 시작되면 그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고 적용했다. 느헤미야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지도자라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사역과 팀웍에 서투르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는 방식에는 취약한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사역을 감당할 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도다. 기도로부터 생각과 전략과 지혜와 은혜가 함께 묻어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2. 전체가 다 수용할 것 같지만, 이 땅에서 완전한 100%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의 리더인 느헤미야가 해도 100% 적극적인 지지가 나오지는 않는다. 언제나 딴짓하는 사람이 있고, 딴지를 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들까지 다 챙겨서 100%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일 수 있겠다.

나를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대상이 다수라면 나는 나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소수라면 잠시 그들의 존재를 품어주는 것으로 유익을 삼을 수 있겠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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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4-9

아닥사스다 왕에게 느헤미야가 요청하고 아닥사스다 왕에 그 요청에 수락해주는 과정을 통해서 느헤미야는 이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고 해석했다.

(느 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는 지금 비상한 능력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을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모습을 보고는 <하나님이 도우셨다>라고 신앙의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해석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이요 사건을 바라보는 해석이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면서도 <운이 좋았다> 혹은 <내가 말을 잘 했다>와 같은 해석을 달기도 하고, <아닥사스다 왕은 참 좋은 분이다>라는 것으로 평가를 달 수도 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다른 방식으로 이 현상을 해석해 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의 입술을 다리스고 분위기와 상황을 다스려 주셔서 마치 순풍에 돛단 배처럼 일이 술술 풀리게 해 주셨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중심으로 세상의 현상과 역사적 흐름을 해석하는 해석법이라 하겠다. 아마, 함석헌 선생과 같은 분은 <성서로 본 한국 역사(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한국 역사를 해석해 내려고 했던 것이리라 본다.

 

우리도 세상을 해석하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사건과 현상을 해석하면서 봐야 한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볼 것인가에 따라(사관에 따라) 해석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섭리(구속사적인 섭리)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역사에서도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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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을 지난 월요입니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한주의 업무가 시작되는 활기찬 날이기도 하지요. 죠이에서는 여름 수양회를 위한 선발대가 출발하고 본격적인 수양회모드로의 변경되는 날이지요.

저야, 올해부터는 참석해야 할 이유가 크게 없게 되었지만 말이죠. 하지만 응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이시대의 청년 대학생들의 생각과 삶을 만져주시기를 말이죠^^

느헤미야 2장으로 들어갑니다.

[1차.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기. 국어 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근심을 알아차리다.(1-4절)

1) 왕 앞에 포도주가 있어 잔을 드릴 때, 느헤미야에게 있는 근심을 왕이 먼저 알아차리고 무슨 일이 있는지 왕이 먼저 물어 봄

2) 느헤미야는 자기 조상들이 뭍혀 있는 성읍이 지금까지 황폐한 상태라 근심한다고 말함.

3) 느헤미야는 왕의 무엇을 도와주랴라는 질문에 하나님께 묵도하고, 요청한다.

2. 느헤미야의 요청과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 그리고 반대세력(5-10절)

1) 나의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 기한을 정해서 보내주기로 함

2)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가게 하소서. 그리고 왕의 삼림 감독에게 문과 성곽과 집을 위한 재목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해주소서.

: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였다.

3) 호른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의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근심함.

3.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보고, 성벽 재건을 독려하는 느헤미야(11-20절)

1) 예루살렘에 온지 3일 만에 느헤미야는 몇 몇 사람들과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보았다.

2) 성벽이 무너져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3)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 한다.

(1)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곤경은 너희도 아는바라.(예루살렘은 황폐하고, 성문은 불탔다)

(2)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요청함

(3) 하나님의 선한 손이 어떻게 나를 도왔는지 간증하고, 왕이 허락해 준 일을 고하면서 성벽을 건축하자고 제안하자 모두가 힘을 내어 선한 일을 하려했다.

4)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느헤미야를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왕을 배반하느냐고 왜곡함.

: 느헤미야는 이들의 간섭을 무시하고, 예루살렘 재건에 합류하기를 원치 않음.

 

[2차. 본문의 내용을 나의 글로 재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요점과 강조점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느헤미야 2장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총독 자격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을 보여준다.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이 있었을 뿐 아니라, 왕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는 도움까지 미리 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모든 도움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장면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느헤미야의 주도면밀함이다. 느헤미야갸 동생 하나니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들었을 때가, 20년 기슬르월(히브리력으로 9월)이었다. 그리고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을 때가 같은 해 니산월(히브리력으로 1월)이다. 대략 4개월간의 시간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느헤미야는 참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기도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유다의 총독으로 발령이 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많은 자재가 필요한데 그런 물량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려면 왕의 명확한 조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는 것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근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못하고 있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입을 열게 한 오히려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이다. 그리고 왕의 질문 앞에 묵도하고 답을 하는 느헤미야는 지난 4개월간 정리했던 요구사항들을 하나씩 하나씩 말한 것이다. 이런 요구는 하나라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것을 왕은 요구하는 것마다 다 허락해 주었다. 이것을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왔다고 표현한 것이다. 예루살렘에 온 느헤미야는 이런 상황과 의도를 섣불리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정확히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때가 되었을 때,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말했고.. 하나님의 도우심도 확인시켰다. 느헤미야의 주도면밀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더불어 함께 봐야 할 것은 산발랏으로 대표되는 대적자의 등장이다.(10절) 이들은 처음에 긴장하고 있다가 가볍게 쨉을 날려본다.(19절.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이들이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할 요소들이다.

 

이런 자료있으면, 대략 느헤미야 1장과 2장 사이의 간격이 어느정도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

 

[3차. 묵상과 적용입니다]

1. 느헤미야의 고민과 기도는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

기도는 막연히 부르짖는 열심만이 아닙니다. 기도는 생각입니다. 아니, 기도하면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많은 가능성들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 기도는 간절함만이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4개월간 기도할 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리되고 압축되었을 때가 4개월 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기도가 여물어 열매를 딸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결정적인 용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의 입을 통해서 말을 하게끔 합니다. 느헤미야의 말이 즉흥적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가 여물어야 합니다. 생각이 여물고 내용이 정리되고 불필요한 것들이 제거되고 마음 속에 단순해지고 단단해지는 것... 이런 것들이 기도가 우리 안에서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역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이런 경험들을 많이 합니다. 기도할 때 길이 열리고, 열리는 길이 어떤 길이 보이게 되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2. 대적자들은 기도의 응답과 함께 등장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응답될 때,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대적자들은 그 때 그곳에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란 대적자를 견디고, 대적자를 넘고, 대적자에게서 승리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대적자가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도 없는지 모릅니다. 아니, 대적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로서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적자를 만나는 것은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음악에 있어서는 장단과 같고 리듬과 같고 클라이맥스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들의 삶이 단조롭지 않고 흥미진진하다는 것은 끊임없는 대적자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대적자를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편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세요.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에 대적자들만큼 유용한 사람들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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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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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느헤미야로 들어왔습니다. 에스라에 이어지는 성경인데, 역사적인 시점으로 볼 때, 스룹바벨로부터는 93년 시간 차, 에스라의 귀환으로부터는 13년의 시간 차이를 가지는 이야기 입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중심으로한 재 배열]

 

1. 느헤미야가 들은 유다 땅 예루살렘의 형편(1-3절)

1)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월에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있을 때의 일이다.(B.C. 445년)

* 에스라의 귀환은 아닥사스다 왕 7년 다섯째 달에 있었던 일이다.(B.C 458년, 13년 전)

* 고레스의 명령으로 스룹바벨과 함께 1차 귀환한 때가 주전 538년.(93년 전)

2) 예루살렘을 다녀온 사람들 중 동생 하나니로 부터 그 형편을 듣게 됨.

(1) 그 지방 거기에서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2)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을 불탔다.

2. 예루살렘의 소식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4-11절)

1) 그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함.

2) 느헤미야의 기도

(1)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2)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3)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모세의 명령한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지금 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형편이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인하고 고백함.

(4) 그러나 하나님이 흩으신 곳에서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면,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서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기억하소서.

(5) 이 백성들은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님의 종들이요 백성입니다.

(6) 주여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

3. 그 때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다.(11절)

 

[정리2. 본문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 재 배열]

 

느헤미야의 이야기다. 느헤미야는 에스라가 귀환한 시점보다 13년 후의 일을 다룬다. 스룹바벨의 귀환과는 93년, 성전 재건과는 73년 이후의 일이다.

예루살렘의 형편은 100여년 전에 1차 귀환한 백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나아진게 없다. 여전히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동포들은 환난과 능욕 가운데 살았고, 성은 허물어진 상태며 성문들도 불타 재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보수할 여력이 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스룹바벨과 함께 1차 귀환을 했을 때(93년 전), 방해 속에서도 성전을 재건했을 때(73년 전), 에스라가 2차 귀환하여 개혁을 시행했을 때(13년 전) 경건한 유다인들은 뭔가 기대했을 것이고, 특히 멀리 타국에 있은 신실한 유다인들 중에는 자기 고향 예루살렘에서 뭔가 새로운 일과 옛 영광의 회복이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첫 귀환 후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성전의 재건도 에스라의 개혁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땅의 자기 백성은 비탄 속에 방치되어 있는 듯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의뢰하며 고민하던 유다인이 있었으니 그가 당시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였던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시작된 돌아온 백성 공동체는 처음 기대하고 꿈꿨던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성전을 건축한 후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도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쉽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적인 어려움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막혔던 길도 열여졌다. 그러나 내부적인 것은 그렇지 않았다. 모세의 말씀을 따르겠다던 백성들은 금새 타락한 것이다. 성전은 다시 엉망이 되었고, 구별된 백성을 통해 세운 귀환 공동체는 다시 이방 여인과의 결혼으로 부정하게 되었다. 이것이 스룹바벨과 에스라의 1,2차 귀환 공동체를 통해서 보여준 모습이었다.

에스라를 통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편에 설것 같았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결단 촉구 이후 사사시대에 혼잡했던 모습처럼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단순한 땅의 귀환, 성전의 재건, 직분의 회복, 제사의 다시 드려짐 만으로는 예루살렘 언약의 성취가 필요충분의 조건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귀환 공동체를 통해서 보여준 것은 외부로부터의 하나님의 역사는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없이는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신약 시대에 와서 강조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그런 측면에서 신약시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더불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 느헤미야가 다시 붙잡았던 것은 다시 하나님의 언약이었다.

  죄를 지어 온 땅에 흩어졌을지라도,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 지라도(9절) 돌아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느헤미야는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은혜와 긍휼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

  회복은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귀환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도 수차례의 회개과 개혁이 진행되었다. 그러고도 형편이 나아진 것이 없었다. 절망하게 되고 회의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은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결과를 미리 볼 수는 없었지만,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고, 그 약속을 가지고 은혜를 구하며 기도했다.

  다시 시작하는 믿음, 다시 도전하는 믿음, 다시 희생하는 믿음.

  느헤미야는 수많은 실패의 역사 속에서 안정된 자신의 상태를 버리고 다시 그 실패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약속을 끝까지 믿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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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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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성경퀴즈대회를 했습니다. 저도 청년들과 함께 성경퀴즈대회는 오랫만에 하는 듯 합니다. 청년들도 초등학교 시절에 성경퀴즈대회를 하고 처음하는 거라 하더군요. 암튼, 추억을 돋게 만는 성경 퀴즈대회.

본문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로 했고, 2주전에 공지했습니다. 일찌감치 해도 미리 공부를 하지는 않으니 시간을 부족하게 준 것은 아니라 봅니다. ^^

출제는 담당 교역자인 제가 내고, 진행은 청년부의 대표적인 사회자이자 초원대지인 요섭이가 진행했다. 확실히 단조로울 수 있는 성경퀴즈를 재미있게 만들었고, 개인전과 목장전을 함께 운영했다. 혼자 효과음도 내면서 1인 3역쯤 했다.

청년들은 생각보다 많이 참석했고, 준비도 제법 했다. 물론 상금에 대한 욕심이 돋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다들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청년은 에스라-에스더 관련 참고 서적도 보고, 따로 노트도 정리해서 공부하기도 했다.

물론 공부하지 못한 청년들을 배려하여 오픈북으로 진행을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어느 정도 읽고 공부한 사람들이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 높은 것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공부한 사람과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구별해 주는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진행되고 있던 장면들을 사진을 담아 본 것들이다. 참석인원은 약 40명 조금 안된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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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퀴즈 대회를 시작할 때의 장면이다. 요섭이가 설명하고, 자리를 잡은 청년들은 시험에 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저 멀리 한희가 새로산 스맛폰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사진을 찍어 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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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섭이가 진행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명철이와 호건이는 집중하지 않고 사진을 의식하고 있다. 산만한 녀석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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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제. 오 엑스 문제였는데, 처음 문제에 맞춘 사람은 전체 36명에서 5명.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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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3일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했다는 청년. 참고서도 있고 노트에 따로 정리한 것도 가지고 왔다. 이 친구 결국 2등했다. 노력해서 안될 건 없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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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열심히 공부한 청년. 따로 노트한 것을 무릎에 놓고 연신 문제를 푸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를 얻지 못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얼마나 귀하게 보였는지..응원한다. 다음에는 1등 먹을테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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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한 왕의 이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 고레스.  그런데 중간 중간 아닥사스다 왕 이라고 쓴 친구도 적지 않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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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춘사람들은 카메라가 부끄럽지 않다. 당당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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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집계 1등을 달리는 새롭자매. 공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뻔한 소리를 한다. ㅋㅋ 결국 이 청년이 1등을 하는데, 전날 밤 3시까지 읽었다고 합니다. 열심없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암튼, 신새롬의 단기기억력은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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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성경퀴즈대회를 인도해간 1인 3역의 사회자, 박요섭...

사랑해요. 박.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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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흥미를 잃어하는 사람도 있다. 미리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미없는 시간이었을 수 있지만... 참여해준, 자리를 지켜준 당신이 있어서 청년부는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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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더 맞혀보겠다고 성경책을 뒤적이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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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에서 3등까지 상이 있는데, 최후에 4명이 선별되었다. 중요한 순간.. 누가 떨어질 것인가? 1등 신새롬, 2등 인성택, 3등...... 강선영. 3등 친구의 기뻐하는 모습은 뒤에 가서 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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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참고서적까지 동원해서 열심히 공부한 형제가 2등을 차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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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출때는 누구나 기쁘죠?^^ 멋지고 이쁜 예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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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꼴등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꼴등한 친구에서 청년리더들이 선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것도 비싼 성경책을. 다음에는 이 성경책 보고 더 열심히 준비하라고 주었는데.... 꼴찌를 격려해 줄 수 있는 청년, 우리 청년들 말고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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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친구가 마지막 3,4위 전에서 3등한 자매. 3등하고는 절 찾아와서 얼마나 기뻐하든지. 사실 이친구가 제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모두 참석해서 열심히 공부했던 친구인데, 목사님 부끄럽지 않게 자기가 3등했다고 얼마나 기뻐하든지. 물론 저도 기뻤구요. 제 성경공부 제자가 3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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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퀴즈대회 이후 목장별로 성경암송대회를 인도하는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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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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