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33편]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그 동력이 불안 때문이라면, 그 기도는 건강한 기도는 아닐것입니다. 영적 전투와 전쟁에 대한 강조가 적에 대한 두려움에만 기인한다면(불안을 조장한다면) 그 또한 건강한 영적 긴장감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만물을 다스리시고, 민족과 나라 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노래합니다. 기도도 그렇고 영적 싸움도 그렇고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싸움을 강조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강조하는 곳이고 그로 인해 나와 주변이 평안을 얻는 종교입니다. 시편 33편으로 추천합니다. 샬롬~


[정리1]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라면, 그 분을 즐거워하고 찬양해야 한다.


1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 온 우주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광대하심


6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7절)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8절)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9절)


3. 하나님은 모든 나라 위에 계시며, 모든 구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10절.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11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12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13절)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14절)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16절)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17절)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19절)


4. 시편 기자가 여호와를 바라고 소망함.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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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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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26편] 성도가 자신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서있는 자리가 평지(평탄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을 오가는 혼재속에 있다면, 우리는 울퉁불퉁한 도로위에 있는 것이며, 비탈진 곳에 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내가 평형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인가 보다. 평소의 삶 속에 의의 자리에 서려 했던 자만이, 지금 자신의 토대가 평평한 곳임을 발견하고 안정감을 가진다. 


[정리1]


1. 나를 살피고 나를 판단하소서. 나는 주의 목전에 있습니다. 


  1절.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절.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3절.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시험하시고 판단해 보시라고 시편 기자는 자신있게 말한다. 자신은 완전함으로 지금까지 행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와 같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피시고 판단하시라고 말한다.


2. 나는 진리 중에 행하고 악과 거리가 먼 자입니다. 


  3절.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4절)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5절)

: 악인들과 함께 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이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죄인들과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애썼음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6절.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7절)


3. 나는 주님과 주님의 계신 곳을 사랑하니, 악인들과 같이 취급하지 마소서.


  8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자신이 죄인들과 함께 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를 사랑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자신을 악인들과 함께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은 완전함에 행하였으니 자신을 속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다. 


내 발이 평탄한 데서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12절)

: 안전한 곳에 서있는 자신을 확신하며 무리 가운데서 여호와를 송축한다. 


[정리2]


1. 시편 기자는 자신이 완전함에 행했다고 말할 정도록 악인의 길은 멀리하고, 의로운 자의 자리에 있으려고 온 힘을 다 기울인 사람이다. 


2. 그래서 자신의 삶을 면밀히 살피고 판단해 달라고, 더불어서 부족함이 있으면 단련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2절) 더 나아가 그런 부족함가운데서 자신의 속량해 달라고 기도한다.(11절)


3. 즉, 시편 기자가 자신을 완전히 행했다는 것은 흠이 없는 완전에 이르렀다는 자기 인식이 아니다. 자기가 의식적으로 최선을 다해 악을 멀리하고, 의를 가까이 하려고 했다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4. 그는 평탄한 곳에 서 있는 자처럼, 안전하며 마음에 평안과 담대함을 가진다. 


5. 오늘날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속에 죄와 의가 혼재되어 있어서 비탈진 곳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탈진 곳에 있으니 늘 균형을 잘 잡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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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23편] 시편 기자는 지금 정적인 평안(수동적인 평안)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해를 받아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면서 얻은 평안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투하여 얻어낸 평안이다. 그래서 왠만한 시련에는 내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얻은 평안은 늘 그 평안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두려움에 몸을 움추린다. 추가적인 작은 바람에도 무너져 내릴것을 두려워해서 말이다. 우리가 말하는 평안은 어떤 평안인가? 두려운 평안은 아닌가!


[정리1]


1. 선한 목자되시는 여호와로 인한 감사(1-3절)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어 양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책임져 주신다고 시편 기자는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육신의 회복만이 아니라, 영혼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결국 시편 기자를 의의 길로 지속하여 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2.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4-6절)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시편 기자는 사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고 있는 상황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깊은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그 현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한 것이고, 그 분의 목자되심을 다시 한번 확신했던 것이다. 그리고 앞 날에 대한 확신과 승리를 예견할 수 있게 되어 평안을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편 기자가 얻은 평안은 수동적인 평안이 아니다. 좀 더 힘든일이 오면 무너져 내리는, 간신히 현재까지만 견디어 낼 수 있는 정적 평안이 아니다. 두려움과 싸워 이긴 평안이며, 과거의 역사로 부터 건져올려 미래로 방향지어진 그런 평안이다. 좀 더 강한 시련이 있다고 해서 금새 무너져 내릴 위태로운 평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시편 기자를 도왔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믿음의 고백이다. 



[정리2]

 

1. 시편 23편은 참으로 목가적인 시이지만, 그 글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쓴 시다. 


2. 시편 기자가 얻은 평안은 수동적으로 받은 정적 평안이 아니다. 그는 두려움과 싸우고, 불신과 싸우고, 죽음과 싸워 얻은 역사적이고 종말론적인 전투를 거쳐 얻어낸 평안으로 능동적인 평안이다. 


3. 그래서 시편 기자가 얻은 그 평안은 쉽게 빼앗길 수 없는 평안이다. 지금보다 약간의 바람, 고통이 더하며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는 위태로운 평안이 아니다. 


4. 버림받아 고통스러워 하는 시편기자의 고백(22장)에 이어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평안을 얻고 여호와 안에서 큰 위로와 확신을 얻는 시편 기자의 고백(23장)은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틍스럽게 버림받은 몸으로 돌아가셨지만, 결국 그 안에 큰 평안으로 인도받았음을 암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의 아들을 그렇게 인도하셨고, 결국 예수님은 부활과 승천으로 원수들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상을 차림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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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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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4편] 하나님은 어떻게 증거되는가? 고양이가 개가 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고양이가 개 앞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태도를 가지고 아량을 베풀어 주는 삶을 통해서다. 하나님의 위대함은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개보다 더 위대한 고양이를 만드심으로 증명된다. 고양이들이여, 개의 인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기]


1. 서언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본론


<시편기자가 인생들을 향해서 주는 경고>


  1)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2)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을 너희가 알지어다.

   (1) 내가(시편 기자와 그의 백성) 그를(여호와 하나님)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3) 너희는 

   (1)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2)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

   (3)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3. 결론: 여러 사람들이 주의 백성에게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우리 안의 확신


  1)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누구뇨 하오니

   (1)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2)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3)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정리2. 본문의 정황과 시편기자의 심중으로 들어가기]


시편 기자는 현재 하나님을 부르고 찾는 중에 있다. 그리고 주의 얼굴을 들어 자신에게 비추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것은 시편 기자의 상황이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 아닌, 현재 문제가 지속되는 상황이며, 가시적인 해결의 실마리고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인생들, 너희들)은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가 누가 있느냐? 하면서 거들먹 거리고 있다. 그들이 득세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백성인 시편 기자는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증명해 낼 만한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당연 위축되어 있어야 할 이 사람이, 그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떨며 두려워하라고, 그 앞에서 잠잠하라고, 빨리 의의 제사를 드려 여호와를 의지하는 백성이 되라고 말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들의 입장에서보면 적반하장인 상황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인생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풍성하고 여유있는 태도를 가진다.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여호와께서 마침내 그의 얼굴을 우리 자신에게 비추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노래하고 찬양한 시다. 


[정리3. 본문에서 시편기자가 전해 주고 싶었던 메시지]


1.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셔서 찬양을 받지 않으신다 


시편 기자의 소원은 인생들을 향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는 이방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보란듯이 자신을 증명해 주시길 바랬을 것이다. 힘으로 그들을 정복하고,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을 일으켜 세워서 보란듯이 그들의 교만을 누르시는 방식으로 일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조롱은 더욱 컸고,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흔들림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지금은 아니었지만, 반드시 자신의 손을 들어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확신하고 나니, 그와 같은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찬양이 결과(긍정적)에 대한 찬양이었다는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찬양이며, 이방인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가 믿음이 적은 자도 자연스럽게 하는 찬양이다. 그러나 참된 찬양은 신학적인 확신과 믿음 속에서 나오는 찬양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눈물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찬양이 참된 깊이 있는 찬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백성)의 승리를 믿는 자는 불리한 중에도 여유와 평안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백성들은 지금 패배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7절)하고 평안이 눕고 자기도 한다(8절) 오히려 자신보다 유리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권면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의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우리는 전도를 하려고 해도 내가 잘되고, 내가 성공해야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며 살아계신 전능한 하나님이심이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면, 풍부하지 못하면 간증도 전도도 불가능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증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시지 않는다. 또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옳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보여주는 여유과 평온함이 그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불안정한 기반 속에서도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는 자의 그 삶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방식이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그렇게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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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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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8장]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물론 그 백성의 죄 때문입니다. 적당히 했다면 용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자히 행함으로 더이상은 두고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상하도록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상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니의 마음도 상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고통하십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기]

 

1.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한 지도자들의 결과
  1) 그 죽음의 시체 가운데서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들의 뼈를 그 무덤에 끌어내고
  2)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 펼쳐지게 하리라.
  3) 이 악한 민족의 남은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심

 

2. 회개하고 돌아올 줄을 모르는 이 백성에 대한 한탄
  1) 사람이 넘어지면 일어나고, 떠나갔다가도 돌아오는 법인데, 너희들은 항상 떠나기만 한다.
  2) 너희들 중에는 악을 뉘우쳐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자가 없이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기만 한다.
  3) 어찌 예루살렘 백성은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가느냐?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한다.
  4)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돌아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는 도다.

 

3. 그러면서도 안다고 말하는 너희들은 정말 어리석도다.
  1) 그런데 너희들은 우리는 지혜가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고 하나, 너희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너희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아내와 밭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리라.
  3)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거짓행함.
  4) 내 백성의 상처를 가벼이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다.
  5) 이 백성은 부끄러움도 없이 가증한 일을 하였다. 그래서 엎드러지고 거꾸러지리라.

 

4. 여호와께서 이들을 심판하여 진멸하심
  1)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다.
  2) 온 땅에서 평강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고, 고침을 얻지 못한다.
  3) 하나님께서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 심판하리라.

 

5. 여호와 하나님의 고통
  1) 하나님은 위로 받지 못할 만큼 병들어 있다. 그 딸인 유다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2)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백성이 탄식함.
  3)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4)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내 백성이 치료받지 못함은 어찜인가?

 

[정리2. 정리된 내용을 내 말로 다시 정리하기]

 

예루살렘의 왕과 지도자들은 더욱 큰 심판을 받아, 죽은 뼈를 끌어내어 그들이 섬기던 해와 달과 별들 앞에 펼쳐보이게 하여 부끄러움을 드러내게 하리라는 말씀을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한탄하신다. 이들은 돌아올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넘어졌으면 일어나는 법이고 떠났더라도 때가 되면 돌아오는 법인데, 유다 백성들은 계속 떠나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교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혜가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가벼이 여기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며, 곧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는 평강이 없다. 엎드러지고 꺼꾸러짐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진멸하시기로 결정하신다. 열매를 없이하고,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보낸다. 이들은 평강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나 좋은 것을 얻지 못하고 고침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의 심판은 그들만의 고통이 아니다. 하나님의 고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고통에 함께 맘이 상하고 고통을 당하신다. 왜 자기 백성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신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돌아올 줄을 모르는 백성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이것이다. 사람은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고, 떠났다가도 때가 되면 돌아와야 하는데, 이 백성은 계속해서 멀어져만 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로서 안타까운 것이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사춘기를 겪을 때가 있고, 방황을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멀어지기도 하고, 반항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어 철이 들면 자신의 미숙함을 깨닫고 수줍어 하면서 돌아오게 되는 법인데, 유다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만 계속한다는 것이다.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 백성이 자만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스스로가 돌아갈 때를 알고, 돌아갈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 마지막 순간인데도 그것을 모르면서도 더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주인이 더디 오리라 더디 오리라 생각하는 종과 같다.)

 

하나님은 이들의 병을 심각하게 보고 병원에 데리고 가고자 하지만, 이들은 병의 심각성은 모른채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즐거움을 빼앗으려 한다고 불평만 하는 꼴이다. 아직 견딜만 하다고 문제 없다고만 하는 자식과 같다. 병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악화되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이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2. 딸인 내 백성이 상하였으니 나도 상하였다.

 

하나님이 직접 자기 백성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래서 자기 백성은 고통을 심하게 당해 죽을 지경이 된다. 살려달라고 하고 건져 달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전까지 그들을 외면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업을 하나님은 재판관으로서나 공정한 3자의 입장에서 진행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백성의 부모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형벌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상하므로 자신도 상하신다. 그들이 고통당하니 자신은 더 고통당하신다. 그들이 아프니 자신은 더욱 아파하신다. 부모이기 때문에 심판하시지만, 부모이기에 사랑때문에 자식의 고통에 함께 고통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아픈가? 우리가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부모이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는가? 내 백성이 상함으로 나도 상하는구나... 탄식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듯 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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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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