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정리]


[부부와 결혼 문제에 대한 답변 형식]

1. 정식으로 자기 남편, 자기 아내를 두라.(결혼하라) 결혼은 서로에 대한 구속(4절)과 의무를 전제로 하지만,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권면한다.

  1) 혹 분방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기도하기 위해서만 가능하다. 절제하지 못함을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게 하라. 바울은 자신과 같이 혼자 있기를 추천하지만, 누구나 그럴수는 없으니 자기 은사를 따라서 하라.


2. 가능하면 현재 있는대로 살라.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과부라면 굳이 결혼하려고 애쓰지 말라. 그러나 절제할 수 없다면 결혼하라. 결혼한 사람들은 나뉘기를 바라지 말라. 서로 버리거나 갈라서지 말라. 

  1) 지속적인 결혼유지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거룩하게 되어지는가이다.(14절) 거룩하여 지는 과정에서 갈라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하기를 원하시지 다툼속에서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15절) 아내들아, 네가 남편을 구원할지.. 남편들아, 네가 아내를 구원할지 누가 알겠는가?


3.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네 상황을 받아들이라.

  1) 할례자도 아무것도 아니고, 무할례자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다.

  2) 네가 종일때 부름을 받았느냐? 주 안에서는 종도 자유자요, 자유자도 주 안에서 종이다. 너는 세상에서는 종일지라도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4. 각각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하나님과 함께 지내라.(24절. 17절, 20절)


5. 결혼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임박한 환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라.

  1) 아내에게 매인 자는 놓이기를 구하지 말고, 아내에게 놓인 자는 아내를 구하지 말라. 하나님의 법 안에서 장가를 가든 안가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가를 간 사람에게 육신의 고난이 더 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2) 이 땅의 외형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니(31절) 있는 자들은 없는 자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라. 어떤 것이든 있다고 너무 즐거워할 필요도 없고, 없다고 불행해 할 필요도 없다. 

  3) 그런데 장가가고 시집간 사람들은 결국 자기 남편과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더욱 힘쓰는 것만은 사실.

  4) 결혼은 하면 잘 하는 것이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더 잘하는 것이다.(38절) 남편이 죽어 재혼을 해도 좋지만 바울 생각에는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생각 정리]


1. 결혼 혹은 이혼 문제가 큰 이슈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미 가정을 이룬 상태에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이미 결혼한 가정은 신앙이 없는 남편 혹은 아내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결혼할 배우자를 찾는 것이 매우 
까다로운 것이 되고 말았다.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이었다. 

믿지 않는 남편 혹은 아내로 인해서 갈등이 발생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신앙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청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로 힘들어 하는 청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과 상관없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바울을 무엇이라고 권면하고 있는가? 결혼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부름 받았을 때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이는 혹 결혼을 하지 못하더라도, 아니면 신앙으로 인해 남편 혹은 아내와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너무 비참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억지로 결혼에 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반면에 결혼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억지로 깰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믿지 않던 배우자가 믿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박영선 목사의 말씀처럼, 텍스트를 가진 자가 어떤 컨텍스트 속에서도 텍스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자가 되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혼이라는 상황, 신앙으로 인해 이혼이라는 상황, 결혼할 수 없음 등과 같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텍스트를 가진 자로서 컨텍스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으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고전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전 7:18-19)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 결혼 문제뿐 아니라 할례를 받았느냐 안받았는냐? 종이냐 자유자냐에 대한 논의도 함께 있었다.


이 논의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타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다. 유대인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은 이방인으로서 족하다는 것이다. 종과 자유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다면 자유인이 되도록 하라고 하지만, 종이라고 해서 신앙 생활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종이 되어서도 우리는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고, 무할례자가 되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혁명을 말하지는 않는다. 절대적 가치로서의 컨텍스트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복음)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제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컨텍스트는 점점 나아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컨텍스트가 완전한 시대는 오지 않는다. 


(고전 7: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고전 7:21-23)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전 7: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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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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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10-17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경고하신다.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이들이 더럽혔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들의 남자들은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여자들과 결혼하는 일을 행했으며, 또한 젊어서 언약으로 맺은 아내와 이혼하였다. 이러므로 하나님께 이들에게 재앙을 내리나 이들은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하나님께 서운해 한다.

 

절별 해설


2:10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다>> 현재의 유다 백성과 이전의 유다 백성이 모두 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하면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하나님과 한 언약 공동체임을 드러내주는 구절이다. 언약은 과거의 조상들과 맺었지만, 현재의 백성들과 맺은 것과 다름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2:11 <<유다의 남자들은 외국 우상을 섬기는 여자들과 결혼했다>> 유다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 여인과 통혼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말라기를 느헤미야의 시대와 같은 시대로 보는 것 중에 하나가 느헤미야 시대에도 같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13:23-29)

 

2:14 <<왜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까?>> 유다 백성들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향해서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다. 제물을 드려 제사를 잘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제사가 경건함이 없는 제사인지, 자신들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2:15 <<여호와께서는 남편과 아내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과 영이 되어>> 2:24을 연상시키는 말씀이다. 유다 백성들에게 결혼제도라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룩한 제도이며 그 가정으로 인해 경건한 자녀를 낳기를 바라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의도는 다르지 않으시다.

 

2:17 <<너희는 말로 여호와를 괴롭혔다>> 여기서 말로 여호와를 괴롭힌다는 것은 하나님을 왜곡되게 말하고 진리를 거스려 말하는 것을 말한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악인도 좋게 보신다고 말함으로서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다 백성들 가운데 흔하게 들려지고 있는 이런 말로 인해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셨던 것이다.

 

기도

하나님, 결혼과 성이 무분별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는 저와 주변에 성경적인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주시고, 경건한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오늘 본문은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주고 있다. 첫째는 이방여인과의 결혼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구약에서 뿐 아니라 신약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부정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후 6:14) 둘째는 결혼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하신다. 결혼이라는 남녀 간의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다. 따라서 쉽게 언약을 파기해서는 안 됨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한 배우자를 맞게 하심으로 경건한 자녀를 얻길 원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셋째는 이혼과 가정폭력에 대한 문제다. 하나님은 상호 언약을 파기하는 이혼을 미워하시며, 가정 안에서의 폭력에 대해서도 싫어하신다. 이와 같은 대원칙 속에서 이 시대의 결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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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순서가 늘 장 요약하고 묵상으로 이어졌는데, 글의 순서를 바꿉니다. 어차피 장요약 한 것은 묵상을 하기 위한 기초작업인데 혹 읽는 분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묵상 작업을 앞에 놓습니다. 묵상을 보시고 혹 궁금함이 더하시면 본문 정리한 것을 보시라고. ㅎㅎ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두 부류의 대상에게 실망하시고 분노하신다. 첫째는 제사장들이다. 이들에게는 두가지 책임을 따진다. 하나는 제사며 다른 하나는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지도하는 것이다. 제사의 문제는 말 1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2장에서는 율법과 관련된 제사장들의 그릇된 태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율법을 지키고 따르는 삶을 인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은 제사장들과 맺었던 언약(레위의 언약)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희생의 제물의 똥처럼 제하여 버릴 것이라 말씀하신다. 


2. 또 하나의 부류는 유다 백성이다. 이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은 분노하시는데, 특히 이들이 아내에게 대해서 행하는 악행에 대해서 분노하신다. 어려서 맞은 아내와 경건한 자녀를 낳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쉽게 아내를 버리고, 아내에게 폭행을 행하는 것으로 인해 이 결혼관계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분노하신다. 하나님은 이들의 봉헌물을 받지 않으시고 이들을 야곱의 장막에서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3. 말라기 시대에 유다의 영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제사장들은 허술한 제사를 드리며, 율법으로 자기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레위와 맺은 언약이 있음에도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산다. 그러하고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서운하게 생각한다. 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가정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젊어서 맞이한 아내를 버려 쉬 이혼하고 이방의 딸을 맞아들인다.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4. 구약 시대 동안 이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들이신 공로와 수고가 그렇게도 많은데 이 백성의 종교와 삶과 가정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수천년간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들은 방자하고 하나님은 이제 이 백성에게 지치셨다.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이 백성은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나님의 낙심(?)도 이만저만이 아니셨으리라... 구약의 끝은 참, 무력하게 끊나고 만다.



[성경 한 장]


1.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은 제사장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


  1) 만일 너희가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고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2)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3) 이미 저주하였다. 너희가 마음에 두지 아니함으로


  4) 너희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5)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6)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7)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다. 

   (1)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2)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3)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라.

   (4) 그러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5)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6)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다. 그래서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다. 


  * 하나님께서 레위(제사장)들에게 언약을 맺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경외함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이들을 절기의 희생의 똥과 같이 여기고 이들을 버리고 제하였음을 말한다. 이들은 옳은 길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율법에 거스르게 했으며, 사람들을 치우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들과 세운 언약,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파기하셨다. 그래서 결국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되었다.


2. 거짓을 행하는 유다


  1) 우리는 한 아버지, 한 하나님을 통해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2) 그럼으로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자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버리시리라.

  3) 너희가 이런 일을 행하나니,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신다.

  4) 그런데 너희들은 이것이 어찜 됨이냐? 하고 놀란다. 


  5)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는데, 너와 서약한 아내에게 네가 거짓을 행한다. 하나님께서 너의 짝으로 하나만 만든 것은 네게서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 아니냐? 너는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라. 

  6) 나, 여호와 하나님은 두 가지를 싫어한다. 

   (1) 나는 이혼하는 것을 싫어한다. 

   (2)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한다.(가정 폭력을 말하는 것인가?)

  7)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라. 


  *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유다의 장막에서 끊어질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구체적인 유다의 죄에 대해서 결혼한 아내에 대한 사례를 말씀하신다. 어려서 맞이 한 아내와 경건한 자녀를 낳으려 하지 않고, 가정을 소홀히 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그릇된 방식으로 아내를 버리려하는 유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태도에 당황해하고 놀란다. 그 정도로 하나님과 유다의 관계는 유지되기가 어려워졌다. 



3.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여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1) 이들은 말한다.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고 그에게 기쁨이 된다.

  2)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라고 말한다. 


  * 이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판단과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께서 좋게 보실 것이라, 기쁨이 될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행태다. 더불어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경시하며 자신의 불의에 대해 아무런 죄 의식도 갖지 않음을 말한다. 이들은 뻔뻔하게도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한게 무엇이 있냐고 고개를 치켜들도 따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참으로 당황스러워 하시면 더 이상 손 쓸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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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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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호와께서 말씀하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이스라엘의 답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여호와: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다.(이스라엘을 택하심)

         에서는 내가 미워하였다.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다. 

에돔이 무너뜨림을 당해도 황폐된 곳을 다시 쌓겠다고 하나, 나는 헐 것이다.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할 것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은 그 특별한 사랑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에돔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판단하시고 심판하셔서 그들이 회복하려고 해도 그들을 헐어 버리시지만,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치시고 징계하셨지만, 다시 세우고 회복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밖에서는 크다 인정을 받고 경배를 받으신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사랑하여 공들인 자기 백성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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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1)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는데 

  2) 내가 너희의 아버지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없고, 네가 너희의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없다. 멸시하였다. 

  3) 너희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는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한다.

  4) 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5) 너희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도 이와 같이 행하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는가?

  6) 오히려 내 제단이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누가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7)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온 땅에,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향해서 말씀하신다. 이들이 드리는 제사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거룩하지 못한 떡과 온전하지 못한 제물을 가져오면서도 문제 의식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이방 세계에서는 인정을 받고, 오히려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께 경배를 하기 위해서 오지만,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소홀이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더욱 마음 아프게 한다. 아버지이고 주인이데 공경함도 두려워함도 없는 자기 백성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한탄하시며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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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너희들은 말한다. 


  1)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다. 

  2)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가 하며 코웃음치고는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다. 

  3)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서 받겠는가?

  4) 짐승 중에 흠 있는 것으로 내게 속여서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5)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단이 더러워졌다고 말하고, 제물을 드리는 기준이 너무 번거롭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봉헌물을 가지고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이런 대우에 낙심하신다. 그렇게 많은 기다림과 용서와 사랑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자히 행동하는 이들에게 실망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큰 임금, 이방인들이 두려워하는 분이 되었으나 그의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묵상 한 모금]


1. 구약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과 모든 열방의 하나님이심이 분명하게 드러나셨다. 바벨론 포로 이후 고레스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한할 수 있게 되고, 성전과 성벽을 제건하면서 모든 제국의 왕을 다스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으로 위상이 입증되게 된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낳으시고 사랑과 인내와 헌신으로 키우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도 모른다. 동물도 주인을 알아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이름으로만 부르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방자히 행한다. 이들의 이런 태도에 하나님은 말라기서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문제를 들춰내신다.


2. 말 1장은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결별할 수 밖에 없으셨는지에 대해 쓴 것 같다. 말라기 이후 400년간의 침묵이 있기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을 보여주고 있는 것같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이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고발하신다고 할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이런 수모와 대우를 받고도 계속해서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 같다.


3.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인내하심이 크고 인자와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시지, 마냥 착해빠진 분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자한 분이라고 해서 쉬운 분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쉬운 상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용납하심이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나 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내하심이 그렇게 평가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성전 문을 닫으시려 한다. 외부에 의해서 파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영업을 정지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왜곡하는 경향을 가진다. 은혜가 풍성한 것을 쉬운 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은혜를 왜곡하는 것으로 금새 나타난다. 은혜를 베푼 사람을 우습게 알거나, 왜 또 그런 은혜를 주지 않느냐고 따진다. 은혜를 강요하고 은혜를 주지 않으면 화를 낸다. 마치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요구한다. 이 정도되면 이제 하나님은 알라딘의 램프 요정이 되고만다. 이런 왜곡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은혜를 거두고, 관계를 접는다... 은혜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늘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늘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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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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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C.S.루이스가 그리스도인의 결혼 문제에 대해 다루면서, 혼외정사, 이혼,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아내에 대한 견대를 말합니다. 이시대의 가치관으로 볼 때, 여성의 관점으로 볼 때 논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생각을 정리하는데는 유익합니다.



1. 이전에 성적 충동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만 다루었으나 이제는 올바른 쓰임새, 즉 결혼생활에 대해 다루려 함. 다루기가 꺼려지는 주제이다. 

  1) 이 주제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는 지극히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2) 본인이 결혼 해 본적이 없으므로...(이 당시까지는 독신이었다. 후에 1956년 미국 여성과 결혼했다.)


2. 기독교의 결혼관: 남편과 아내는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라는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짝임.


  [혼외정사에 대한 입장]

  1) 혼외정사가 그토록 흉악하게 보이는 것은 원래 모든 차원에서 연합되도록 이루어진것에서 딷 하나(성적인 연합)만을 때어낸 땃이다. 

  2) 기독교적 자세란, 성적 쾌락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씹어서 미각적 쾌락만 얻으려하면 안되는 것처럼, 성적 쾌락 역시 그것만 떼어내 즐기려 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혼에 대한 입장]

  1) 교단마다 기독교적인 입장에 조금씩 다른 것이 유감이지만, 적어도 이혼이 일종의 외과수술처럼 살아 있는 몸을 잘라내는 일과 같다는데에는 모두 동의한다.(이는 현대인들의 관점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2) 이미 살펴본 덕목에서 <정의>란 약속을 지키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교회에서 한 결혼에는 죽음이 서로를 갈라 놓을 때까지 배우자에게 충실하겠노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약했는데, 그것에 충실해야 함은 당연한 덕목이다.

  3) 성적 충동 역시 다른 충동과 마찬가지로 약속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 진지하게 한 서약이 아니라는 것으로도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거짓으로 서약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순결에 대한 요구를 하고 싶지는 않다. 

  4) 이혼을 피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죄인 간음의 죄(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를 짓는 것입니다. 

  5) 서약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약속으로 자신을 묶으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이에게 진실하겠다는 약속은 사랑의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유효하다. 

  6)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데도 굳이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1) 자녀들을 위해 가정을 지킨다.

   (2) 여성들이 남성들이 싫증낼 때마다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한다. 

   (3) 추가적인 이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감정은 시동만 걸어주고 점차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된 사랑의 엔진이 돌아가면서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자꾸 극적 감정의 사랑만을 찾아서는 안된다.(그런 감정적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고, 유지 해서도 안된는 것이다.)

    * 사랑을 느끼는 감정과 사랑을 하는 관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사랑을 느끼는 감정은 차의 시동을 걸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고, 사랑하는 관계의 유지를 통해서 결혼의 엔진을 계속 가동시키는 것은 두번째 사랑이다. 


 6) 이혼을 막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의 과도한 생각

   (1) 그리스도인들이 유권자나 의회 의원으로서 이혼 법률에 자신들의 관점을 반영하여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관점을 강제하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2) 만약 회교도가 누구도 술을 못 마시게 하도록 법으로 정한다면 본인은 화가날 것이라고 말한다. 

   (3) 비그리스도인들도 함께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도록 하는 법으로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법을 통제할 것과 교회가 교인들에게 법으로 통제되는 결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서약하는 것에 대해서]

1. 머리가 왜 필요한가? 부부가 서로 동등하게 살면 되지 않습니까? 설사 머리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왜 남자여야 하는가? 

  1) 그것은 결혼이 영속적이기 때문이라고 루이스는 본다. 서로가 의견이 일치한다면 머리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의견이 달라질 경우 어떻게 하는가? 할 수 있다면 대화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두 사람이라 다수결로도 불가능한다. 서로 일치 할 수 없다면 결론은 둘 중에 하나다. 각 자 따로 자기의 결정대로 살든지 아니면 둘 중에 누군가는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은 영속적인 것이기에 따로 살 수는 없는 것이고, 둘 중에 한 명은 결정을 내리는 머리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어떤 연합체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 루이스의 관찰에 의하면, 여성 자신들도 아내에게 휘둘리는 가정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남성은 가정 밖 사람들에 대해서 언제나 더 공정해야 할 입장에 있으며 대게는 더 공정하다. 그러나 여성은 자녀와 남편을 위해 세상과 싸우는 일을 한다. 여성들이 더 가정 중심적 편향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남편의 역할은 이러한 여성의 자연스러운 편애가 가정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살피는 것이다. 


  - 루이스의 견해에 대해서 여성분들의 견해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루이스는 이렇게 정리를 했지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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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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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서의 마지막 장이네요. 멀게만 보이던 에스라서도 이제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됩니다. 에스라서의 결론과고 같은 장일텐데... 통곡하던 에스라가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게 될지 봐야 할 듯 합니다.

 

[1차. 본문 내용에 대한 정리로, 소제목으로 나누고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합니다.]

1.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회개할 때, 에스라를 돕는 사람들

1)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나아옴

2) 우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범죄하였으나, 아직 이스라엘에게 소망은 잇다.

3) 하나님의 교훈과 명령을 따라 이방 여인을 다 내보내고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당신이 시작하면,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2. 에스라의 본격적인 행동

1)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맹세함.

2) 에스라가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 거기서 죄를 근심하며 음식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3)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공포했다. 3일내에 모이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고 공포함.

4) 사람들은 3일 이내에 모였고, 그 상황과 큰 비로 인해서 두려워했다.(9절)

3. 에스라의 명령

1) 이방 여인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라.

2) 회중이 큰 소리로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 많은 백성이 모인 것(심각성)과 큰 비로 두려워했다고 함.(13절)

3) 이방 여자에게 결혼한 사람은 기한 내에 모두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하라.

: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라.

4) 아홉째 달 20일에 모이고, 열째 달 초하루에 조사를 시작해서 첫째 달 초하루에 마침

* 이런 에스라의 공포에 반대하는 무리들도 있었다.(15절)

4.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명단

1) 제사장의 무리 중에서도 이방 여인을 아내를 맞은 자들이 있었는데, 속건제를 드림.

: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18절)

2) 레위 자손 중에서도...

3) 노래하는 자 중에서도(성전에서 예배를 섬기는 자들 중에도)

4)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5) 이들 중에는 자녀를 낳은 사람들도 있었다. -끝-

 

[2차. 1차 정리를 토대로 자기 자신의 표현으로 재정리합니다. 내가 그 본문에 대해서 그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전 정보가 있느냐에 따라 개인별 차이가 생기겠죠?]

1.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일어설 염치가 없고, 무력했을 때 그를 독려한 사람은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였다. 그가 에스라에게 나와서 우리가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고 새롭게 언약한다면 소망이 있다고 한 것이다. 에스라 당신이 이 일을 주도해야 할 사람이니, 당신이 시작하면 우리가 돕겠다고 하면서, 에스라를 격려한 것이다.

2. 에스라는 이들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이스라엘에게 이 맹세를 하도록 하기 전에 그는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 온전한 금식을 수행했다. 그리고 힘과 용기를 얻은 후 귀환한 동포들을 3일 이내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명령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재산을 몰수하며 유다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3.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여든 많은 인파에 오히려 놀라고 두려워했다. 더불어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큰 비를 경험하면서 뭔가 하나님의 준엄함을 느낀 것 같다. 에스라가 이들을 향해 어떤 명령을 내리기전 이들은 이미 충분히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노하실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4. 에스라는 이방여인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고, 그것을 속히 시행하며 해당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에스라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는데, 그 명단을 작성하는 일에만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아내를 다시 돌려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중에는 아이문제까지 걸려있어 사실상 온전히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는 것을 본문은 마지막에 살짝 언급한다. 물론 내부적으로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소수이긴 했겠지만 말이다.(15절)

5. 에스라의 개혁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에스라는 어쩌면 그 결과가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와 같은 시도를 했다는 것, 하나님이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싫어한다는 것 정도를 말씀하시려는 것 같다.

 

[3차. 묵상과 적용]

1. 에스라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스가냐'아는 사람이었다. 지도자라도 뛰어난 신앙인이라도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오히려 에스라처럼 더 민망해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지식인이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미리 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스가냐'같은 의지를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돕겠다고 나오면 힘을 얻는다.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지도자다. 그러나 지도자라고 늘 생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절망에 노출되며, 더 높은 벽에 부딪힌다. 이 때 필요한 사람은 바로 스가냐와 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너를 돕겠다고, 힘을 내시라고, 당신이 앞장 서기만 하면 내가 사람들을 이끌어서 당신의 가는 길을 지지하겠노라고...

지도자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중에 복이다. 지도자에게 이런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부족한 2%로다. 평시에는 지도자 혼자도 잘 감당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견디고 이기게 해주는 것은 바로 스가냐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느냐 없느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순간을 위해서라도 지도자는 자기 주변에 예비 '스가냐'를 많이 키워놓아야 한다. 지혜롭다면 위기의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

 

2. 매우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큰 비'라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셨다. '큰 비'는 사람들로 하여금 에스라의 공포를 더욱 효력있는 명령으로 들리게 했다. 이로 인해 어떻게 보면 매우 무리한 요구(이미 결혼한 이방여인들을 돌려보내라는... 한 두 집도 아니고 엄청나게 만은 가정에서 아내를 돌려보내야 했을 것이다.)를 이스라엘로 큰 잡음없이 순종하게 하셨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세운 사람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실 때 전면에 드러나시기 보다는 무대 셋팅을 하신다. 이것이 섭리이면서, 하나님의 계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에 있어서 완전한 무대 연출가라는 것은 이런 것에서도 보게 된다.

 

3. 끊어야 한다. 죄는 끊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끊어야 한다.

  그로 인해 얼마나 큰 손실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끊으라고 한다. 가정 안에 이별이 있고, 부부간의 깨어짐과 분란, 자녀들이 엄마를 잃게 됨과 같은 많은 부작용이 당장 눈에 띄이겠지만, 하나님은 끊으라고 한다. 한 두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될 지라도 하나님은 끊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죄를 끊어야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엄청난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일,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하나님은 끊게 하신다.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무관한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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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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