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Chris Galli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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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7절.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절.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절.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절.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절.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께서 제자들과 다시 갈릴리로 가셨고 그곳에서 큰 무리가 따랐다. 그 무리는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뿐 아니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까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다.(7,8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작은 배를 타고 나가셔야 할 정도였다.(9절) 

 - 갈릴리에 가실 때마다 많은 무리가 따랐다(막 2:13)

2. 물론 그 이유는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셨기 때문이다.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다.(10절)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렸고, 예수님을 향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부르짖으므로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되심을 언급했다.(11절)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지 말라고 그들에게 경고하셨다.(12절)


[질문하기]

1. 갈릴리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는 이전의 기록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1) 이전에도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지금은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음이 강조된다.(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배를 대기함, 몰려왔다 등) 

  2) 많은 무리 중에는 유대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인근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나아왔다는 것이다. 

- 점점 더 늘어나는 무리와 다양한 사람들(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예수에게 나아오게 된 것

2.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께 보이는 반응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이전에 귀신들린 자는 '예수여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3,24) 문구의 차이는 있지만 귀신들은 예수가 누구인줄 알고 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밝힌다. 

->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더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귀신들도 인정하고 엎드러졌다. 

3. 왜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셨는가? 

  오늘 본문 뿐 아니라 막 1:34에서도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예수님은 스스로는 마을로 다니시면 전파하시길 원하셨지만(막 1:38) 귀신들의 고백에 의해서 예수님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원하지 않으셨다. 왜일까?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이후에 그에게도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막 1:44) 예수님 당신은 마을에서 마을로 전도하시며 직접 다니셨지만, 사람의 말에 의해서, 귀신들린자의 입을 통해서는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셨다. 이 정도만 정리하자. 


[묵상하기]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거침없이 확대되었다. 무리는 점점 더 많이 예수를 쫓았고, 예수에 대한 소식은 유대와 예루살렘을 넘어 주변 이방 민족에게까지 확대되었다. 그들이 주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열광하게 된 것은 '병을 고친다'는 것이었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만지고자 했다. 예수님도 사역의 시작은 이 땅의 고통(사람들의 절실한 필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시작하셨다. 우리의 사역이 사역 대상자들의 필요와 분리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 필요가 표면적이고 임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병을 가진자에게 병고침을 받는 문제가 실로 중요한것처럼 인생의 현실적 필요를 등안시 해서는 안된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본질적인고 영원한 것으로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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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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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아 모이라(돌아서라)


  1) 명령이 시행되어 너희들이 겨같이 지나가기 전에

  2)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에,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4)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 다가올 심판, 광역으로 임할 진노에 대해서 지금 당장 돌아서라고 말한다. 왜? 곧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임하게 될 것이니까? 지금 이 시간이 마지막 순간이니까! 전체가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체는 다수가 심판과 진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돌이키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작은 소망이라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여호와의 규례를 붙잡고 지키려했던 자들이여 무리가운데서 돌아서서 나오라. 여호와를 찾으라.



2.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에게 임할 재앙


  1) 가사, 아스굴론, 아스돗, 에그론 그렛 족속,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 버림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2) 그들 중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가라. 그기서 쉼을 얻을 것이니 여호와가 그들을 보살피리라. 


  * 주변 나라도 함께 심판과 벌을 받는다. 유다와 다른 운명은 아니다. 더불어 그들 중 유다로 피하는 자(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유다의 남은 자가 구원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쉼을 얻게 될 것이다. 


  ---------

  3)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교만하여 조롱하고 비방하였다. 

  4) 하나님은 모압은 소돔 같게, 암몬은 고모라 같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5)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할 것이요.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기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게 될 것이다. 


  * 유다를 조롱했던 모압과 암몬에 대해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되는 큰 재앙이 따르게 됨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던(이들은 자신들은 견고하리라 생각했기에)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

  6) 구스 사람들도 하나님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앗수르의 니느웨도 황폐하게 하고 사막처럼 될 것이다. 

  7) 기쁜 성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말하던 앗수르의 신은 황폐하게 되어 들짐승이 다니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 구스와 앗수르와 같은 큰 나라도 황폐하게 되고 만다. 특히, 앗수르는 세상에 자신만이 유일하다고 말하는 신을 믿고 있었는데, 앗수르의 멸망으로 그것은 웃음거리와 조롱이 되고 만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는 그 백성만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백성들의 대적자들은 기뻐할 것이 아니라 슬퍼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기 백성의 잘못에 대해서 책망하시고 혼내시는 것은 죄에 대한 형벌도 있지만, 그 가운데 정화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 대해서는 다르다. 오히려 심판과 형벌이 우선이다. 혹 그 중에 돌이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있다면, 혹 그들에게 은혜가 있을지 모르지만.


2. 하나님의 구원은 진노 중의 구원, 심판 중에 행하시는 구원이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모두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다수는 심판과 진노아래 있다. 그 중에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 전에 하나님의 진노 전에 하나님을 찾고 그 분의 은혜와 긍휼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하나니은 그와 같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다. 


종말 즉 주님의 재림의 때가 오기전 우리는 그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것이다. 시간의 길이로 보자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시간이 충분하지만, 기회로 본다면 일생에 한 두번 올지 않올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3. 스바냐 1장은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따른 심판을 말씀하신다. 스바냐 2장은 유다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대적자들에게 대한 심판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중에 구원이 있다. 유다 백성 중에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 이방인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오는 자들은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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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지나고 새롭게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이번주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공간적으로 교회는 아니었지만, 이른 아침 일어나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오늘은 느헤미야 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까지 달고 그 이후의 일들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뿐 아니라 일을 이루고 나서 그 성취한 일을 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까지...느헤미야는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암튼, 느헤미야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소 주제로 문단나누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

1. 성벽을 재건하고 느헤미야가 한 후속 작업

  1) 성벽을 건축하고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을 세웠다.

  2) 동생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이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다.

   :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한 자들에게 예루살렘을 지키는 지침을 줌

   : 높이 해가 뜨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꾼이 있을 때 문을 닫고 빗장을 지름.

   : 주민들이 자기 집 맞은 편을 지키게 하라.

   : 왜? 성읍은 광대하고 주민들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 다시 한 번 옛 귀환자의 명부를 확인하다.

  1)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들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했다.

  2) 그 때 느헤미야는 첫 귀환자(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자)들의 계보를 살펴본다.

  3) 6-69절까지 이전 기록에 적힌 명부를 다시 기록한다.(에스라2장에 언급된 것과 거의일치)

   : 그 중에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기에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도록 했다.(61-65절)

3. 성벽 재건을 위한 헌금과 헌물

  1) 어떤 족장은 성벽 재건을 위해 보조하였다.

  2) 총독은 금 1000 드라크마와 대접 50개와 제사장의 의복 530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다.

  3) 어떤 족장들은 금 2만 드라크마와 은 2200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다.

  4) 나머지 백성은 금 2만 드라크마와 은 2000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67벌을 드렸다.

4.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한 사람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문지기들, 노래하는 자들,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의 성읍에 거주하였다.

  * 느디님 사람들은 이들은 원래 이방인이었다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려온 후 성전의 막일을 부여받은 자들의 명부다. 이스라엘에서 비천한 신분으로 여겨졌다.

  *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57절)들도 이스라엘 포로로 잡혀 왕궁의 경비 등에 종사하도록 된 자들의 명부이다. 이들도 느디님 사람들처럼 이스라엘 사회에서 천민 계급으로 분류되었다. (호크마 주석 참고)

 

[정리2. 정리 1에서 한 내용을 기초로 해서 나 만의 표현으로 다시 바꾸고,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특징과 독특함(주로 이런 곳에서 메시지가 나오는데)을 잡아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고 문짝을 달고 난 후 휴가를 가지 않았다. 그는 그 다음 일을 생각했고, 그 다음 일을 진행했다.

먼저는 성을 다스릴 사람을 세운다. 충성스럽고 신앙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을 세워, 그들로 성을 지키도록 하고 구체적으로 성문을 언제 열고 언제 닫아야 하는 지침까지 주었다. 그리고 아직 성읍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성을 지키는 일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집 앞을 책임지고 지키도록 했다. 성전을 위해서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다시 한번 귀환한 백성들의 명부를 확인했다. 스룹바벨 때에 돌아온 명부를 기초로 해서 예루살렘 성에 있는 사람들의 혈통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는 온전한 혈통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들이 유다의 귀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제사장과 같은 중요한 직책을 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계보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제사장의 일에서 제외시켰다.(64절)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다시 성전을 활성화 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보조하고 헌물해준 지도자들이 있었다. 총독과 족장들이 앞장섰다. 그리고 백성들도 힘을 모아 헌금하는 일에 힘썼다. 그런데 백성들이 모은 것과 비슷한 것을 족장들 중에서 낼 정도의 재력이 있는 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귀환한 사람들 중에 옛 이방인들의 명부도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포로로잡혀와 성전과 궁궐에서 막일을 했던 사람들인데 이들고 귀환한 백성가운데 있으며 그들도 귀환 공동체의 계보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다시 생각해 본다.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까지의 리더십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성벽 재건 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성을 다시 세우는 것 뿐 아니라, 성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까지 챙겼던 사람이 느헤미야다.

  많은 리더가 자신이 이룬 업적에 도취되기 쉽고, 그 영광에 스스로 만족하며 그 일을 끝을 맺으려 한다. 그러나 참된 리더는 세운 역사가 유지되고 확대되기 위한 초안까지 마련해 놓는다. 그런 측면에서 조직이 필요하고 계보의 정리가 필요하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잘 지킬 총독을 믿을만한 사람으로 세웠다.(아마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 속에서 그 사람을 평가해 왔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도 살펴봤던 것 같다.) 또한 귀환한 백성들의 혈통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것은 장기적인 오염을 막는 기초가 되는 작업이었다. 지금은 느헤미야의 지도력 안에서 다 통제가 되지만, 느헤미야가 없으면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느헤미야는 그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2. 귀환자의 명단에 옛 이방인들까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57절)과 느디님 사람들(46절)은 모두 이방인으로 옛날 이스라엘의 전쟁 포로로 잡혀와 성전과 궁궐에서 막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도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갔고, 어쩌면 그곳에서 예루살렘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조차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는 소식에 합류했던 것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유대인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강제로 유대 사회로 유입된 자들이며 억지로 유대인화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유대인이 아닌 채로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공동체에 함께 하기를 원했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기를 원했으며 함께 목숨을 걸고 피땀을 흘리며 성벽 재건에 힘썼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들을 그들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 귀환한 백성들 속에는 순수혈통 유대인들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후천적인 백성들이 있었으며, 그 기업을 얻기 위해 찾아온 이방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함께 유업의 자리에 이른 것이다.

성경은 그들을 깨알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유입되었다는 것, 또한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음이 아닌가? 왜 기록하셨겠는가? 너희도 이 자리로 들어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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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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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택과 은혜가 이방인에게만 적용되고 유대인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도 선택과 은혜가 적용된다. 지금은 복음을 거절하는 것같지만 선택받은 유대인들은 나중에 모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 교회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들도 너무 교만하지 마라. 너희들의 뿌리이는 유대인들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도 치셨다면, 너희들이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느냐? 이방인의 겸손을 요청한다.

복음의 역사적 흐름을 알려주는 바울의 글이며, 그것은 신비하고 놀란 것으로 바울의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찬양한다.

 

 

음질은 감안하시고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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