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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3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절.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절.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바닷가로 나가셨고 많은 무리가 나오자 그들에게 가르치셨다.(평범한 사람들의 현장 속을 다니셨고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는 중에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부르셨다. 어부들 중에서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은 이제 세리(당시 죄인이라고 여겨진)를 제자로 부르셨고 레위는 그 부르심에 순종했다.(13-14절)

2. 예수님은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드실 대,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있었다. 예수님 주변에 많은 죄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죄인들은 편하게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들 수 있었던 것이다.(15절)

3.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제자들에게 '예수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물었고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당신이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다.(16-17절)

-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셨을 때 서기관 중에 어떤 사람이 속으로 '하나님 한 분 위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라고 생각했을 때 주님은 그 속 마음을 알아채시고 답변을 주셨다.(막 2:7,8절) 이번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노골적으로 제자들에게 의의를 제기했고 그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예수님이 하셨다. 


[질문하기]

1. 왜 예수님은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을 따로 기록하고 있을까? 

- 어부들은 사회적으로 낮은 자를 대표한다면, 레위는 세리로서 죄인들을 대표한다 하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회적으로 낮은자, 죄인으로 소외된 자를 먼저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 부르셨다.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와 같은 자들이 중심되는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예수님의 이루게 될 나라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선택인지 모르겠다.


2. 예수님께서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얻은 부수적인 효과는 무엇인가? 

-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랐다는 것이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자 레위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 레위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예수와 함께 있고, 그 분을 따르게 되었다.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처럼 한 가정이 돌아오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연결점이 된다. 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다. 아담이 아담 혼자일 수 없고, 예수가 예수 혼자 일 수 없다. 


3. 이 사건을 통해서 마가가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1) 세리조차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세리조차 하나님 나라의 중추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쓸데 없는 곳이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죄인으로 인식되고 인정된 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 된다. 예수님은 그런 죄인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이다. 


[묵상하기]

1. 한 사람은 사람 한 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리 레위가 예수의 제자가 될 때, 많은 수의 세리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레위의 뒤를 이어 예수를 따르게 된듯 하다. 바울을 만나 자주장사 루디아 한 사람을 통해 그의 집이 주님께 돌아왔고,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장 한사람의 회심으로 그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게 된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듯, 한 사람은 숫자 하나가 아니다. 그와 연결된 수 많은 가능성의 시작인 것이다. 아담 한 사람이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된것처럼, 예수 한 분을 통해서 모든 구원받은 백성의 나라가 된다. 한 사람에게는 그와 같은 가능성이 있다. 

2. 건강한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그들에게 의사는 무용한 사람이고 잉여의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병든 사람에게 의사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요 인생의 구원자다. 주님은 인류의 구원자로 치료자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따라서 자신의 병을 인식하고 인정한 사람들은 주님을 찾고 만나 구원을 받지만, 자산의 병을 모른채 자신이 건강한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다. 복음의 적용은 자신이 병든 상태, 스스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 그 병의 끝은 사명이요 멸망이요 비참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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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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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정리]


[교회 안에서 판단해야 할 사람들]


1.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한 자를 용납하는 문제가 있었다.(이 음행의 정도가 심했다.) 음행도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교회가 음행한 자를 통한히 여겨 좇아내지 않고, 교만하여 이들에 대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것.


2. 이와 같은 자들은 가만히 두면 누룩처럼 퍼져감으로 제거해야 마땅하다. 이들을 제거함으로 교회는 살아나게 된다.(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받게 해야 한다. 5절) / 유월절에 누룩을 제거하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을 먹듯 이와 같은 자들은 교회에서 내어 보내야 한다.


3.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명령한 말씀의 의미.

  1)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려며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다. 


  2) 그 때의 의미는 형제라고 말하는 성도들 안에서 그와 같은 자와 사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도라고 말하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3)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는 성도 안에 있는 대상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죄인들에 대해서는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생각 정리]


1. 교회는 두 가지 차원에서 '죄'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 


  1) '죄'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거룩하고 경건한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2) 그럼에도 '죄'가 발생했을 경우, 그 이후 '죄를 저지를 사람'을 처리하는 과정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면서도, 연약한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지도에 신뢰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죄가 발생한 후'에 대한 공동체적인 후속작업이 일관성이 없거나 혹은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죄'가 잘 자라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꼴이 되고 만다. 


따라서 공동체는 두 가지를 잘 준비해야 한다. 죄가 자라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고, 드러난 죄에 대해서는 신속하지만, 지혜롭게 처리하는 준비를 잘 감당해야 한다.


2. 교회 성도들이 판단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교회 안 사람들인가 교회 밖 사람들인가?


  1) 바울은 일차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대해서보다는 '교회 안' 성도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도라고 말하면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사기치는 사람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도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오히려 교회는 이들을 '판단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죄'에 대해서는 세상보다 더 엄격한 공동체다. 


  2) 반면, 교회 밖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라고 말씀한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해 질 것으로 말한다.(용서하거나 봐주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대하지 말고(일부라는 측면이라면, 병든 곳을 도려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을 대하듯 좀 더 관대해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은 하나님께 맡기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 몸의 자정능력으로 신속히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도록 하고(아니면 의사에게 우리 몸의 병든 곳을 맡기든지), 우리 몸 밖에서 일어나는 일(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치려고 하지 말고, '경찰'에게 맡기라고 바울이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죄를 지적하지 말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직접 재판하지 말라는 의미일듯 하다. 



[적용]


1. 우리 몸의 문제는 '의사'에게 맡기고, 다른 사람의 문제는 '경찰'에게 맡기자.


2. 죄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이니 노력과 개인적인 노력을 힘써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언제든 발생하게 되는 죄에 대해서 공동체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 세월호 사건을 단순화 하자면, 죄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인 정책은 존재했으나 그것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도덕에 대해서는 검증하지 않았다. 검증이 오래도록 되지 않음으로 방치되었고 그곳에서 불법적인 관행이 생기게 되었다. 악이 구조화된 것이다. 구조화된 악은 권력과 밀착해있고, 그것을 고발해야 할 언론은 그들의 입을 닫았다. 최후의 경보까지 모두 구조적 악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세월호는 침몰했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 중에 하나는 언론이라고 본다. 언론은 사회 감시라는 기본적인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했다. 마지막 경보장치만 미리 울렸다면, 사태가 이렇게 가지 않았을 것이고 이 사건은 예방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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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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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91번지의원: 최명은 원장을 만나다.

글: 김수억 간사

 * 본 내용은 2014년 4월 2일 인터뷰를 근거로 작성한 글입니다. 죠이에서 발간하는 '더 죠이'에는 내용을 축약하여 5월에 발간될 예정입니다.(이 글은 최 원장과 함께 있었던 3시간 반의 나눔과 만남, 상황 속에서 일어난 생각을 본인이 정리한 글)

 * 이미 언론에서 취재한 내용: <동아일보>, <뉴스앤죠이> 이와 같은 병원을 열게된 배경과 원장의 철학 등에 관해서는 이미 취재된 기사를 참고하시라.





한 죠이어의 페이스북에서 독특한 병원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성북동 91번지의원". 가정집을 개조해서 병원을 만들었는데, 공간을 가정의 편안함을 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병원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생각했다. '병원은 사실 가고싶어서 가는 곳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어서 가는 곳,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일 수 밖에 없는 곳인데 병원이 가정집의 옷을 입었다고 평안한 공간이 될 수있겠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 만큼은 신선해 주목하게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 글 아래에 '그 의사 분이 죠이어'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궁금해졌다. 결국 '더 죠이'에서 "성북동 91번지의원"의 최명은 원장의 인터뷰를 싣기로 결정했다. 최명은 원장이 서울대 죠이 활동을 할 때 담당 간사였던 정희원 간사와 '더 죠이' 편집국장이신 장정애 국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4월 2일 화창한 봄 날에 성북동을 향했다. 나는 기사에 실을 내용을 위해서 어떤 내용의 질문을 할 것인가를 정리해서 갔다. 


#1 의원에 들어서는 첫 느낌



작고 이쁘게 쓴 "성북동 91번지의원"이라는 간판(?)이 달린 병원은, 목련 나무가 있으며 커다란 개집이 있는 마당을 둔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2층에서 개 한 마리가 짖었고(이름은 '봄'이란다. 또 다른 개 '가을'이도 있다고 한다.) 

병원이 일반주택을 개조한 것이기에 주변은 모두 일반 주택이었다. 병원 바로 옆에 '피정의 집'이 있었고 큰 길을 건너면 '덕수 교회'라는 크고 오래 된 교회도 있었기에 이 병원도 뭔가 '신성한 어떤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우리 옆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같이 있었다. 혹 환자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그 분도 신문에서 이 의원 이야기를 보고 지나가는 길에 들려보고 싶었는데 한 무리가 병원 안으로 들어가니 따라 들어오신 것이다. 그렇게 들어오신 아주머니는 우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30-40분을 이야기 하시다가 일어나셨다. 앞에 있는 덕수 교회 문화교실에서 아이들 미술치료 수업을 하시는 분인데, 혹시 이 '특별한' 병원에서 도울 일이 없을까 물어보시기 위해서 들렸다고 하셨다.

그렇게 '성북동91번지의원'은 지나가던 동네 주민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을 선뜻 기부하고픈 마음을 일으키는 곳이었다. 이곳은 우리 안에 뭍혀있던 '선함'이 고개를 내밀수 있도록 따듯한 온기를 주는 곳이란 생각을 했다.




#2 준비한 질문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수다만...

최명은 원장은 우리에게 손수내린 커피를 대접해 주었고, 우리가 둘러 앉은 자리로 볓이 따듯하게 들어왔기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웠으나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기사 작성을 위해 온 자리였고, 그 내용을 최 원장의 입을 통해서 들어야 했기에 화기애애한 수다가 빨리 끝나길 기다렸다. 

수다란 원래 마침표가 없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세 여성분의 대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을 나는 찾지 못했다. 간신히 조심스럽게 치고 들어가면, 어느새 다른 주제로 흘러흘러... 결국 난 무능한 기자임이 드러났고 이야기 꽃은 더욱 만개했다. 그리고 이내 나도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속의 목적을 위해 왔건만, 세속의 목적은 간곳 없고 따듯한 봄 꽃같은 사람 냄새만 가득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런 분위기에서 점심도 먹었고, 다시 돌아와 다시 커피 한잔을 마셨다. 



최명은 원장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삶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젊지만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더불어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했다. 그래... 모름지기 의사란 사람의 몸을 다루는 것이고, 사람의 몸이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일텐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에 대한 스토리를 모르고서야 어찌 그 몸을 고친다 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치유란, 환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라는 최명은 원장의 철학이 말로가 아니라 분위기와 상황으로 내게 전달되었다. 설명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들은 설명보다는 깨달아지는 내용이 더 컸는데 그것은 말이 아니라 영으로 전해졌다고 하면 '오버'인가? 



# 3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오전 11시부터 점심 먹고 2시 반에 이르는 시각까지 우리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약간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왜? 환자가 오시지 않지?', '병원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때 즈음 할머니 한 분이 의원 안으로 들어오셨다. 최명은 원장은 가운을 입고 나오더니 할머니를 모시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병원에 와 있는 3시간 반동안 처음 진료하는 모습을 봤다. 

  _ 사실은 그랬다. 작년(2013년) 11월에 오픈해서 지금까지 방문한 환자가 4백여명 정도란다. 지금까지는 건물 세를 내면 딱 떨어진다고 한다. 개인 생활은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면서 받는 것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이 부분은 앞으로 방법을 찾아가야 할 부분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조금 있으니 왠 젊은 엄마가 6개월된 아이를 안고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이 곳이 매우 익숙해 보였고 진료를 목적으로 온 것 같지도 않았다. 진료실에서 진료를 마친 최 원장은 그 아이 엄마와 인사를 하고 그 엄마의 아이를 안는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 동네 젊은 엄마는 아이 데리고 놀러왔으며, 최 원장은 그 아이를 안아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 원장이 안고 있는 아이의 엄마는 최 원장 뒤에 있어서 사진에 포착되지는 못했다.]


 _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동네 주민과 함께 어우러진 병원과 의사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저 오지의 선교현장에서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서울 도심 한 복판에 있다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좀 더 순수하게, 욕심을 좀 덜부리며 피곤하지만 본질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그곳이 천국이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그래, 여기가 천국이라면 이곳은 진정 '신성한 곳'임이 분명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들은 이야기다. 그 날 저녁에 옆에 계신 신부님(수녀님)들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고... 

나도 가족이 아파서, 의사의 신세를 많이 진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가깝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인식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마치 예수님처럼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그리고 장차 아플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생활하는 의사를 본 것이다. 이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 아닐까? 

난 성북동, 그 동네는 처음 가봤지만, 이 동네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 여기가 병원이었지? 그제서야 병원임을 깨닫는 병원이다]


[병원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탁자와 피아노, 첼로... 거실인지 카페인지...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피아노 위에 있는 악보는 죠이 선교회의 자랑스러운 '많은 물소리'찬양집]

[우리를 대접하기 위해 손수 커피를 갈아서 내려주시려는 최 원장. 의사인지 바리스타인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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