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http://blog.daum.net/mahler/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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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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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자는 근본주의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_ 그래서 자신을 보수주의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ㅠㅠ) 
- 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105쪽),


극보수적인 사람도
극진보적인 사람도
자신이 '균형잡혀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견해는 모두 치우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좌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불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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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란 말의 의미가 다음 세가지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1.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것
2. 내 의사를 잘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도 제대로 알아듣는 것
3. 나와 다른 견해까지 담아낼수 있는 것(정신적, 정서적 수용능력)
- 수용하든 아니면 설득을 시키든, 그렇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견해를 존중한다는 마음을 전할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소통이 된다고 느낀다.


폭넓게 쓰이고 있기는 한데, 우리는 주로 1번(말하는 기술)에 머무르거나 2번 정도까지만 가는 것같다. 3번까지 가야 요즘 사람들은 '소통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전과 달리 기대가 높아졌다. 


그런데 주변인물을 자기 편만 세우는 권력자가 있다면 그 리더는 그 '인사'에서부터 소통(3번)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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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박국 1:1-9 소통되는 하나님의 권위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박국은 하박국 선지자가 받은 경고의 계시를 말한다. 계시의 형식은 하박국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박국은 그렇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지, 왜 악과 불의가 일어나고 있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지 묻는다. 하나님의 답변이 이어지지만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다. 


절별 해설

1:2 <<언제까지 들어 주지 않으시렵니까?>> 하박국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첫 번째 내용이다. 그토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음에도 오랫동안 묵묵부답이신 하나님에게 따지듯이 항변하고 있는 것이며, 선지자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1:3,4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까?>> 악한 자가 활개를 치고 불의와 폭력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이와 같은 악에 대해새 아무런 심판을 행하지 않는가에 대한 항변이다. 이런 이유로 하박국은 욥과 함께 성경에서 <신정론> 문제를 제기한 본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1:5 <<내가 놀라운 일을 하겠다>> 하나님게서 하박국에게 말하는 놀라운 일이란, 유다를 구원하기 위한 놀라운 일을 말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악인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는 놀라운 일을 말함이다.


1:6 <<내가 바벨로니아 사람을 시켜>> 당시 바벨로니아는 앗시리아의 니느웨를 멸망시키고, 갈그미스에서 애굽이 주도하는 연합군을 대파함으로 신바벨로니아 제국을 건설하는 강대국이다. 하나님은 장차 바벨로니아 제국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1:9 <<그들은 모두 싸우러 온다>> 바벨로니아가 전쟁을 할 때, 전력을 다하여 싸운다는 것을 말한다. 바벨로니아는 잔인하며(7절) 날쌔고 사납다.(8절) 그 군대는 빠르게 행군하여서 적을 무찌르며 많은 포로를 잡아가는 전쟁에 강한 민족이다. 


기도

하나님,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해 외쳤던 항변이 저의 항변이기도 합니다. 불의하며 악한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답답함이기도 합니다. 하박국 묵상을 통해 마음의 답을 얻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박국은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께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에 대해서 따진다. 특히, 악과 불의 폭력이 횡행하는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는가 힐난하는 듯 하기도 하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경건한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낯설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답답함에서 나오는 울분과 억울함의 항변을 막으시거나 책망하지 않으셨다. 선지자의 입을 막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읽도록 하셨다. 그런 측면에서 성경의 하나님은 권위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는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품어 안으시는 권위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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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정리하면]

1. 우리는 대학생들이 엄마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어림을 비판한다.

2. 그러나 캥거루족이나, 헬리콥터 맘과 같은 생활을 할수있는 것은 다수의 대학생이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들의 이야기일 뿐 다수의 상황까지 대변하지 못한다.

3. 다수의 대학생들은 오히려 부모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존재로 자신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많은 학비를 부모로 받아야 하면서도, 쉽게 취업으로 갚아드릴 수 없기 때문에 가정안에서조차 자신을 잉여로 생각한다.

4. 또한 가정 안에서는 가족간에 대화가 많이 오고가야 건강한 가족이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건강하지 못한, 개선해야만 하는 가정이라는 인식을 주입한다. 가족간에 더 많은 대화, 소통이 요구된다. 그러나 다수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 그런 가정이 있더라도 그럴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경제적 형편이 뒷받침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대다수의 가정에 문제가 있음을 진단하고, 소통과 대화라는 약을 처방한다.

5. 저자는 문제제기와 처방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건강한 가족은 대화와 소통이 아니라, 감정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한국 가정은 주로 어머니의 감정노동으로 유지되어왔음을 말한다. 가족 모두가 가족의 유지를 위한 감정노동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 감정노동이란 참아주는거, 수고해주는거, 기다려주는거, 희생하는거 등을 말한다. 가족을 위해서.

6. 과도한 소통의 강조가 가족이 붕행하다는 의식을 더 심어준다. 소통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일 수 있음을 말한다.

7. 매끈한 소통보다 울퉁불퉁한 감정노동이 가족을 떠받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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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옮겨온 글]_음성으로 읽어 저장한 것이라 중간중간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ㅎ


127. 이에 대해 여성학자 이 계정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주부라는 사람을 먹고단지 육아와 교육 금융전문가 누구의 매니저가 된 중산층의 주부와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일하는 주부그 둘 많이 존재한다고말이다관리하는 엄마와 그 관리를 행복하게 받아들이면서 말끝마다 우리 엄마가늘 부칠 수 있는 사이가 될수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는 특권층인 셈이다캥거루 속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128.십년만에 가족은 벗어나야 하는 탈출구가 독립의 대상에서 자괴감과 죄책감을 자아내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134. 감정노동이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 우리 화와 억지를 참아내고 머리를 써야 넘어지고 혼자 있을땐 상대방을 생각하는 이 모든것을 보관한다그래서 감정노동은 인간이 수행하는 노동 중에서 가장 에너지 소비가 많은 피곤한 노동이다가족을 만들고 지탱하는 것은 노동이라고 말할 줄 아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번에 집에 내려가면 친척들과 엄마에게 과일도 잘라드려야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시켜준다는것을 지우면 정확하게 반팔이다아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못도 엄마에게 과일을 잘라주는 것도 명절의 친척들을 방문하는 것도 술취한아빠의 뽀뽀를 참아내는 것도 이런 감정노동이다 가족은 감정노동공동체이다. 

135.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어머니가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가족을 더 맞췄다면접에서 감정노동은 가장 정치적이다이렇게 때문에 엄마의 감정노동에는 이전하는 가족이면 어머니를 착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머니 한탄과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137.소통은 감정노동이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가진가족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엄마가 가족들에게 전문 매니져로 인정받고 그런 매니지먼트를 할수 있는 다른 경제적 자원들이 지금 아침이 될 때나 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141. 우려의 가족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142.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고 그들과 토론을 하면서 나는 소통이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우리는 소통을 최선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우리는소통을 최선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대통령부터 진보적인 현재까지의 정치 문제부터 가족 문제까지 모두가 불통이 문제라 말한다. 그리고 소통이 잘 되면 만사가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폭력에 맞선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가 폭력이 되고, 불행의 해결책이 아니라 소통하라는 강요가 오히려 불행의 시작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142. 매끄러운 소통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감정도 분이 가족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 말을 섞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문제와 갈등은 회피할수 없다는 것을 대해 우리는 입을 다먹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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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왕의 고관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들어 보고 그 내용을 정리한다.


  1)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것이라고 했다. 

  2) 즉 이 성이 바베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3)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파악한 고관들은 시드기야 왕에게 예레미야가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않고, 재난을 구하오니 이 사람을 죽이라고 제안한다. 군사들과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였다.

  4) 시드기야는 나는 힘이 없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건네준다.

  5) 고관들은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는다. 

  6) 그 구덩이는 물은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에 빠졌다.



2.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졌음을 듣고, 왕 앞에 나아가서 예레미야를 변호한다. 


  1) 고관들이 예레미야에게 저렇게 행한것은 악한 행위입니다. 

  2) 성 중에 떡이 떨어졌는데, 웅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던져줄 떡이 없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거기서 굶어죽게 될 것입니다. 

  3) 내시는 왕의 허락을 받고 예레미야를 웅덩이에서 구해 낸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물게 되었다.


  * 시드기야 왕의 얼마나 무력한 왕인가를 보여준다. 우선은 고관들이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5절) 고관들은 자신들의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이 사실을 알고 예레미야가 죽을 수 있음을 지적하자 시드기야는 그의 조언을 따라 예레미야를 웅덩이에서 건져내어 살려준다. 시드기야가 왕이었으나 그에게 강력한 왕의 힘이 없었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3.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성전으로 따로 불러서 비밀리에 만났다.


  1)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한 마디도 숨기지 말고 자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달라고 한다. 

  2) 예레미야가 내가 말을 해도 왕이 듣지 않고 나를 대적자들의 손에 넘기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왕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3) 예레미야는 시종일관 바벨론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않으며 너와 네 가족이 살지만, 항복하지 않으면 갈대아인들의 손이 이 성을 넘길 것이고 이 성을 불사를 것이다. 

  4) 시드기야는 자신이 항복하면, 이미 갈대아인들에게 항복한 유다인들이 자신을 조롱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5) 예레미야는 오히려 그렇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다. 오히려 항복하지 않을때 바벨론의 고관들에게 잡혀가는 여인들이 왕에게 속임을 당했다고 원망할 것입니다. 


  * 시드기야는 고관 대신들에 의해서 자신의 역량을 펼수는 없는 왕이었으나, 예레미야의 말에게 많은 의지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시드기야는 유약한 왕이란 생각이 든다. 나라를 운영하는 일에 있어서도, 신앙에 있어서도...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두려움과 수치다. 한 마디로 시드기야는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한듯 하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으로 인해 온갖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바꾸지 않는다. 왕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메시지를 그대로 전한다. 예레미야는 약해 보이지만, 약하지 않다. 흔들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다. 



4.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만나고 나서 주의 시킨 일

  

  1)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로 하여금 자신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것을 요청한다. 

  2) 오히려 고관들이 와서 묻거든, 자신을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주소서 요청했다고 하라.

  3) 고관들이 찾아와 예레미야에게 무슨 말을 전했는지를 물었으나, 예레미야는 왕이 지시한 대로만 했다. 

  4) 이 일은 탄로나지 아니했고, 고관들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5)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감옥 뜰에 머물러있었다. 


  * 시드기야 왕이 고관 대신들의 눈치를 얼마나 보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시드기야가 불쌍하다는 생각마져 든다. 본인의 능력에 맞지 않는 역할을 감당할 수 밖에 없는 혈통적, 시대적 상황 때문일 것이다. 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에서 마지막 왕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묵상 한 모금]


1. 옳은 소리를 듣지 않는 지도자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예레미야는 그 시대에 마지막 남은 하나님의 메시지와 같다. 오직 그에게서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보여지고 전해진다. 다른 많은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요 그들의 입에 진리가 없다. 오직 듣는 자들을 만족시켜주는 이야기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위기를 넘어 부강을 말한다든지,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말한다든지, 민족주의를 말한다든지... 어떤 말이든지 그 말은 그 시대에 거짓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멸망을 예언하며,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요청하고 그렇게 하면 생명을 얻을 것이고 성은 불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지만, 그것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을 거슬르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예레미야가 진창인 웅덩이 속에 내던져지듯, 이 시대는 권력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내친다. 그 사람이 바름에 가깝다면, 혐의를 뒤집어 씌워서라도 명분을 만들고 여론을 조작해서 내친다. 고관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예레미야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만약 이 나라의 고관들이 계속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쳐내기만 한다면 스스로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이고 결국 몰락할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 본다. 


2. 어제는 4대강과 관련된 영상을 보았다. 


더 이상 그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람은 전 국민의 세금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전 국토를 훼손시킨 사람이다. 더욱 악한 것은 그 적법한 절차들을(철저한 점검과 제동장치) 의도적으로 바꾸고 무시함으로 그리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을 이용해 법을 어긴 행위다. 대국민 사기라는 말이 맞다.


무책임과 사적 욕망으로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큰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함부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며 법과 절차를 무시하지 못할테니까.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책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해야한다.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고 후세의 본보기를 삼아야 할 대상이라 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귀를 닫았기 때문이다. 쓴 소리 하는 사람들을 모두 쳐냈기 때문이다. 권력으로 두려움을 조장하고 입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정 정부가 했고, 그래서 이런 거대한 사기극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도 그 길을 가고, 아니 이전에 쌓아놓은 토대위에 더 큰 집을 지으려 하니 참 이 나라의 운명이 안타깝다.


왜 들으려 하지 않는가? 왜 다 적으로 만들고 악으로 만드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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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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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9장] 토기장이에게 가서 옹기를 하나 사가지고 갔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옹기를 깨뜨리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은 당시의 메시지를 전하시려 합니다. 시청각적 효과를 통한 소통의 노력이지요. 그러나 듣지 않으려는 백성들 앞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고 마는군요. 하나님은 탁월한 교사이나, 백성들은 불량학생입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토기장이에게 옹기를 사서 그것을 깨뜨림으로서 전하시는 메시지


  1)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에게 가서 옹기를 사서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하시드 문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내 말을 이르라.

     * 하시드 문: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으나, 그 일대에 토기장이의 작업장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그 문 근처에 깨어진 토기들을 버렸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루살렘 성 남쪽에 있는 문으로 본다.

 

   (1)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듣는 모든 자가 떨게 될 것이라.

   (2)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하게 하였다. 우상에게 분향하고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 채웠다. (아들들을 바알에게 바치고, 바알을 위해 산당을 건축했다.)

   (3) 이곳을 다시는 도벳이나 힌놈의 골짜기라고 부르지 않고 오직 죽음의 골짜기라 부르리라.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넘어뜨리며 그 시체를 짐승과 새의 밥이 되게 하리라. 

   (4) 이 성읍을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가 조롱함.


  2) 이 말을 하고 함께 있는 자들 앞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말하라. 

   (1)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백성을 무너뜨리리라.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는 것만큼 이 성읍에 재앙을 내리리라.

   (2)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한다. 이 성읍에 예언된 재앙이 모든 성읍과 모든 촌락에 내리리라. 

   (3)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토대로 다시 풀어서 작성하기]


하나님께서 옹기를 깨뜨리는 것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신다. 예레미야는 옹기를 사서, 백성들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함께 힌놈의 골짜기(예루살렘 성 남쪽에 있는 골짜기)에 가서 이 곳에 임할 재앙을 선포한다. 이곳이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고, 많은 피를 흘린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지도자들이 볼 때도 이곳은 그와 같은 악한 곳이었다고 보여진다.) 


그 다음 갑자가 그 지도자들 앞에서 가지고 온 옹기를 깨뜨린다. 옹기는 한번 깨지면 다시 온전히 회복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백성도 무너지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도벳이 진노의 재앙을 받는 것처럼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과 촌락이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니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도벳의 심판을 예언하는 것처럼 해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임할 동일한 심판을 경고하신 것이다.  



[정리3. 정리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교훈들]


1. 하나님은 강의(메시지)를 위해 시청각적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신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옹기를 강의(메시지)에 이용하시려고 했다. 예레미야에게 먼저 토기장이의 집에 가서 옹기를 사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야 함께 있던 지도자들은 약간 의아해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가 왜 옹기를 하나 들고 나와서 옹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예레미야가 든 옹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적절한 때에 예레미야는 느닷없이 옹기를 깨버린다. 그는 소중하게 들고 있던 옹기를 갑자기 깨뜨리심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 소리에 의해서 놀랐을 것이다. 흐릿해지던 사람들의 느슨한 태도가 갑자기 주의를 집중하게 되는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을 낳았을 것이다. 왜 소중히 들고 있던 옹기를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깨뜨린단 말인가!! 사람들은 다소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제 깨진 옹기를 통해서 말한다. 깨진 옹기는 다시 완전히 회복 될 수 없는 것처럼 예루살렘과 유다는 다시 완전히는 회복될 수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갑자기 사람들은 깨진 옹기와 예루살렘의 운명을 연결할 것이고, 이것은 잠시의 고난이 아니라 원상복귀가 불가능한 상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듣게 될 것이다. 


메시지 전달을 위한 하나의 준비된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장치들을 모두 활용하신다. 문학적인 표현이 그렇고, 이와 같은 퍼포먼스도 마찬가지다. 결국을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시는 그분의 노력인 것이다. 하나님도 <불통>인 백성들을 향해서 최대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의 소통을 위한 노력은 좀 더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할만큼 했다고 말하기 전에 좀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2. 공감할 수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도벳) 이야기로 시작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당시 백성들의 지도자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보낸 것은 아마, 그곳은 타락한 유다 백성들이 볼 때도 정도가 아주 심할 정도로 타락한 곳이 아니었나 싶다. 그곳에서 바알을 위한 산당이 건축될 뿐 아니라 바알을 위해서 아들들을 번제로 드리는 일까지 있었던 것을 볼 때(5절) 또한 무죄한 자의 피가 이곳에서 많이 흘려졌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불의와 죄악이 컸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백성의 지도자들을 데리고 가서, 재앙과 심판을 예언할 때 이 지도자들은 별말이 없었던 것이라 보인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이곳은 매우 심각한 곳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끝나지 않는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일어나는 재앙과 심판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뒤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도 결국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의 질과 비교해 볼 때 다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강건너 불구경하던 심정으로 듣던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갑자기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서 모든 백성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한다.(14절)


예레미야서에서는 하나님 그분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노력이 가득차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이 백성들은 듣지를 않는다.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통해서도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사람에게는 방법이 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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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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