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가 즐겨 한던 이야기 중에
북해도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이야기입니다.

청어를 잡은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북쪽끝 바다에서
먼 거리의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운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어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청어를 잡은 배가 런던에 도착할때 쯤이면
청어들은 거의 죽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어부들 가운에 한 어부의 청어만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는 동료 어부들이 그 이유를 몇번이나 물어 보았으나
그 어부는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동료들의 지속적인 강요에 못이긴 어부가 말했습니다.

"나는 청어를 잡아 통에 넣을 때,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지..."
그러자 동료 어부들이 놀라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 먹잖아..."
"그래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하지만 놈은 두 세마리 밖에
못 먹어...하지만 그 통 안에는 수백마리의 청어들은 잡혀먹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헤엄치고 도망다니고 있지...."
그러니 먼 길 런던에 도착해 봐도 청어들은 여전히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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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촉진제가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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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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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치국평천하'를 위해 '수신제가'를 해야하는지...

교회의 리더를 세우기 위해, 

성경은 그 가정의 상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이 말은

1. 리더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리더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일게다. 

2. 한 사람을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중요한 리더로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그의 '과거'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것이다. 

3. '큰 일'을 할 사람을 '작은 일'을 해왔던 것을 통해 점검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작은 일은 큰 일을 결정하고

과거는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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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자는 근본주의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_ 그래서 자신을 보수주의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ㅠㅠ) 
- 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105쪽),


극보수적인 사람도
극진보적인 사람도
자신이 '균형잡혀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견해는 모두 치우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좌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불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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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란 말의 의미가 다음 세가지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1.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것
2. 내 의사를 잘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도 제대로 알아듣는 것
3. 나와 다른 견해까지 담아낼수 있는 것(정신적, 정서적 수용능력)
- 수용하든 아니면 설득을 시키든, 그렇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견해를 존중한다는 마음을 전할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소통이 된다고 느낀다.


폭넓게 쓰이고 있기는 한데, 우리는 주로 1번(말하는 기술)에 머무르거나 2번 정도까지만 가는 것같다. 3번까지 가야 요즘 사람들은 '소통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전과 달리 기대가 높아졌다. 


그런데 주변인물을 자기 편만 세우는 권력자가 있다면 그 리더는 그 '인사'에서부터 소통(3번)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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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순간에 한 두 사람이 아니라, 10-20명이 아니라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는 것은 특별하다.


2. 그중 다수가 고등학교 2학년(자녀)이었다는 것이 특별하다. 만약 다수가 자녀가 아닌 어른이었다면 전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좀 달랐을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많은 수가 아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다수 희생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3. 대형 여객선이고 먼 바다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희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단 한 명도 산채로 구조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가는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 충격이 크다. 개인적인 죽음에 대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국가의 무력함을 보는 충격(보호막으로 생각했던 국가가 아무런 보호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도 그에 못지 않은 충격이었다. 


4. 그 배의 선장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학생들은 그 소리에 순응했고 그래서 더 큰 피해를 일으켰다. 학생들을 배신한 어른을 보여준다.  또 한 배의 리더인 선장이 무지하여 순응적일 수 밖에 없는 승객을 속였다. 이것은 우리가 어른을 믿을 수 없고, 리더를 믿을 수 없는(전문가를 믿을 수 없는) 사회임을 보여준 것이다. 거기다 이 사태를 정리하고 조정해야 할 국가 지도자와 책임자들의 무능과 무책임함에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5. 우리는 언론의 무능을 봤다. 정부의 하수인이 되어 정부를 보호하고, 옹호하고자 하는 언론을 본 것이다. 그 오랜 시간동아 축적된 부패의 관행을 언론이 못 짚어낸 것도 문제다. 알지 못했는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는지... 어떤 것도 문제가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를 감시하고, 사각지대를 비춰주어야 할 언론이 권력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역할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6. 우리 나라는 마치 말기암 환자와 같은 상황이다. 암 덩어리가 커지고 커저서 진도 앞 바다에서 터졌다. 그러나 그곳은 드러난 것일 뿐, 실제는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다. 이 나라가 이러한 지경이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감기나 두통 배탈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근원적인 치료보다는 드러난 증상만 잡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는 과정 중에 병을 키운 것이다. 그 병은 크고 커서 '암'이 되었고, 암은 이 나라 구석 구석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7. 이제 암이 내부적으로만 자라기 않고 밖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나라는 진도 앞 바다에서 쓰러진 것이다. 응급실로 들어온 이 나라는 '암 말기'라는 것을 알았다. 전국민이 알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대로 두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나라가 죽는다. 먼저 '암'을 도려내야 한다. 최대한 눈에 보이는 모든 덩어리들은 제거해야 한다. 크든 작든 도려내야 한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는대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항암 치료는 암이 있는 부위만 치료하기 위한 약물이 아니다. 몸 전체에 퍼져있는 암세포를 치료하는 약물이다. 알듯이 암 세포도 제거하지만, 건강한 세포도 상하게 만드는 것이 항암치료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몸 전체가 몸살을 앓듯 고생해야 한다. 


8.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 소망이 있다. 누가 해야 할까? 주치의가 해야 한다. 사태의 위험함을 인식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주치의가 해야 한다. 주치의가 누군가? 대통령이다. 지금은 실력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주치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이 세월호 사태의 심각함을 인식해야 한다. 감추고 숨기려고 하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고통스럽고 제 살을 깎는 고통이 있겠지만,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도려내야 한다. 그 작업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지금 현재로는 대통령 뿐이다. 


9. 이 나라의 주치의가 수술과 치료를 다 완성할 수 없다. 임기제니까. 그러나 자신이 역할을 맡는 만큼 시도해야 한다. 자꾸 덮으려고 하고 감추려고 하고, 암 덩어리 몇 개를 떼어내고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의 이 사태는 우리가 암 말기로 암 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참사를 계기로 이 나라의 고질적 질병을 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며, 어쩌면 다음에는 더 큰 희생을 치려야 할지도 모른다. 왜? 이와 같은 경고에도 우리는 완악하게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변해야 한다. 죽기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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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단절이후 인류는 언제나 '결핍'이었다.


그런데, 믿음과 기도로 그 '결핍'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충분한 '믿음'과 '신앙'에 있어서도 결핍의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성도들에게
오히려 '내 믿음이 없어서', '내 기도가 부족해서'라는 
율법주의적 절망을 반복하도록 하는게 아닌가 싶다.


'믿음'과 '기도'에 있어서도 결핍일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삼위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복음' 이지 않겠는가!


- 얼마전 요한복음 2장의 가나혼인잔치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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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관한 한 나는 현실주의자이지만 선생에 순결주의 같은 든든한 의지 처가있어야 현실주의도 용을 쓴다. 선생이 깊은 지식과 열정은 우리말에 소금이다. 이 소금이 너무 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쳐 생각한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그것을 어찌 소금이라 하겠는가.

_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248쪽

이 글은 엄격한 한글 사용을 주장하는 이수열 선생에 대한 황현산 작가의 글이다. 작가도 이수열 선생의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나 법에 엄격한 그의 비평에 다 공감하지 않고 입장도 다른 것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수열 선생과 같은 분이 있으므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다고 보는듯 하다.

근본주의 신학을 보는 우리 입장도 이와 같아야 함을 생각했다. 너무 엄격하며 너무 융통성이 없으며 문자적이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우리를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보수적 신앙의 끈이다. 답답하다고 끊어버려서는 안될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너무 엄격하고 너무 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금은 짜야 소금이다.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의 문제지, 소금이 문제일 수는 없는 것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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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글: 김수억



한 남자의 품에
왜소한 한여인이
안겨있다.

부끄러운듯
고개를 돌린채.

무심한 남자는
넓은 가슴을 
그녀에게 맡긴다.

부끄러움과
무심함이

이 시간, 이 공간에서
이렇게 어울리다니.

- 출근길 1호선 급행쟈철 안에서.


* 코레일 파업 때문인지, 출근피크 타임 때문인지 빈틈없는 1호선 지하철 출근길에서 제 앞에 있는 남녀의 어색한 포옹(?)을 보며, 잠시 글써 봅니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그런 자세로 있었다면 연인으로 오해 받았을 일이지만, 출근길 만원 지옥철 안에서는 당사자도 주변 사람도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그렇다고 외면하여 자세를 바꾸지도 않는다.(자세를 바꿀수도 없고) 그 시간 그 공간에서는 전혀 윤리와 도덕이 개입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의도적 성추행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ㅎ)


일상적 윤리와 상식의 껍데기가 벗겨지는 특수한 상황과 시간이 그 공간안에서 벌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특수하다기 보다는 일상적입니다. 남녀의 대상이 바뀌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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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해주는 삶, 용서 받는 삶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겸손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이 <겸손>하게 행동해서 <성숙>함을 보이라는 권면으로 들려질 수도 있고, <겸손>한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정말 <성숙>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할 때도 사용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겸손은 하나의 덕목이 된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겸손해야 하고,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성숙함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겸손한 척 행동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우리는 그것을 겸손과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겸손한 척하는 자기 자신조차도 말이다.

 

겸손이라는 덕목을 <용서>라는 덕목으로 대체해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횟수를 용서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큰 잘 못을 용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숙함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잘못에 대해서 화내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쿨하게 웃어 줌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과시하기도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런 의도로 질문을 한 듯하다. 자기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되냐고? 일곱 번이면 되냐고 말이다. 그 말은 자신이 일곱 번 비슷하게 용서해 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사람 아니냐고 예수님께 확인 받고 싶어서 인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그렇게 쉽게 칭찬해 주시지 않는다. 아니 칭찬해주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베드로의 생각이 전면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어떻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말이다.

 

주님의 논지는 간단하다. 일곱 번의 용서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백 구십 번을 용서해야 만족스럽다는 말도 아니다. 핵심은 내가 얼마나 용서해 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가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고 기다려주지 않음으로서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이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을 그 비유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몇 번이나 용서해 줄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성숙함을 드러내 주는 성적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숙함에 대한 진짜 성적표는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얼마나 많은 횟수에 걸쳐서 받았는가!를 깨닫는 것으로 확인된다. ‘주는 것으로가 아니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 일게다. 다른 종교에서의 성숙함이란, 몇 번을 참되게 용서해 줄 수 있고 얼마나 겸손한가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 그래서 도덕적인 종교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자기 의>를 이루는 종교다. 반면 기독교는 내가 얼마나 큰 은혜와 용서를 받은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깨달음으로서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람들을 향해, 겸손과 용서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것이 전혀 자기 자랑이 되지 못함을 강조한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었다고 칭찬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바울의 이와 같은 권면은 모두 위에서 설명한 것들에 기초한 가르침에 의한 것이다.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참, 건강하다.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데, 불편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사랑받음에 대한 경험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훈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타인을 사랑하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세상으로 보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충분한 사랑과 용서 그리고 따듯함으로 수용된 경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과 용서의 의무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용서하기도 하고 겸손한 듯한데,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건강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워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벼는 익었기 때문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내적 충실함이 겸손으로 나타는 것이다.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좀 더디더라도 건강한 사랑을 한다. 충분한 용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 용납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성급한 행동을 요청하기 보다는 사랑과 용서가 우러나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좀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더디더라도 좀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건강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생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은 인생이다. 부모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연으로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말이다. 이걸 좀 알아야 복음적인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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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통장(금고)에 자신의 돈이 얼마있는지 모르는 사람이고, 

가난한 자는 늘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부자일 수 있는 근거는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통장의 남은 잔고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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