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사역을 시작한 사람은 아니다.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필요를 느끼고 신학을 했고 그러다 보니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목사이기 전에 사역자였고, 사역자 일때 한 때 '서리집사'였다. 어떻게 보면 일찌감치 목회로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신 분들과는 약간의 다른 과정을 거친 셈이다. 물론 뒤늦게 부름을 받아 직장 혹은 사업을 그만두고 신학을 하신 분들도 있긴 하지만 그 분들과도 약간은 다른 경로를 밟아 목사가 되었다. 


지금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부천 상동에 있는 '중동교회'다. 예장 합신 측 교회로 교단 안에서는 규모가 있는 교회다. 중동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목사직과 연관이 있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친구가 개척하여 목회하는 곳에 출석했다. 조금이라도 개척하는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그 친구의 아들과 우리 두아이를 데리고 주일학교를 시작했으니 약간의 도움은 되었으리라. 물론 그 친구 목사로부터 내가 받은 도움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지내다가, 목사 고시를 보고, 면접을 보는데 노회 어른신들이 조건부 안수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지금 출석하는 교회가 합신 측 교회가 아니고, 현재 하고 있는 사역도 교회 사역인 아닌 선교단체 사역이기 때문이란다. 다음 봄 노회까지 우리 교단으로 옮기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목사 안수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옮기지 않아도 그것까지 따져 묻지는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장로교 목사가 되려고 하는 이상 기분이 내키지 않더라도 장로정치의 원리를 따라야 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고, 결국 지금 중동교회로 옮기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중동교회로 옮기기 위해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중동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 중동교회를 출석하게 된 것은 2006년 1월 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목사이면서 새가족이 되었다. 사역을 위해서 교회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일에는 한가했다.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교회에서 먹고 좀 있다가 집으로 갔다. 오후 예배가 있었지만 집이 멀었기 때문에 가족들을 데리고 일찍 갔고, 아무도 협동목사인 나를 사역자로 알아보거나 눈치주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정말 중동교회의 새가족이 되어 조금씩 적응해 가야하는 성도였다.그 한해 동안 식사 후 교회 1층 로비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으면 찾아와 인사를 먼저 건네주신 분들이 있었다. '교회에 새로 오셨냐?'고 물으시면서. 그러면 우리는 그건 아니고 '협동목사'라고 하면 갑자기 당황스러워하며 무안해 하셨다. 교회에 협동목사로 내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아무도 그 이름의 얼굴이 누구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기에. 내가 협동목사로 오기 전에 협동목사로 계시던 분은 이름만 있었지 실제로 교회에서 본적은 거의 없다. 다른 교회를 다니시거나 주일에 다른 사역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우리 교회에 적만 두셨던 것같다. 성도들에게도 협동목사는 이름만 있고, 얼굴은 없는 목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나와 가족은 그렇게 새가족으로 1년의 교회 생활을 했다. 한 번은 금요철야를 가겠다고 인천 집에서 출발했다가, 인천대공원 앞 도로에서 길이 막혀 교회에는 정작 다 끝날때 도착해서 얼굴만 비치고 돌아왔던 경험도 있었다. 집이 멀었기에 교회의 공예배를 충실히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성도로서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는 노력했다. 난, 목사이기 이전에 성도이니까 말이다. 


2006년 말 교회에서 '유치부'사역을 제안을 받고 2006년 12월부터 유치부 사역을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공식적인 사역하는 목사였다. 교회 주보에는 여전이 협동목사로 표시되었지만, 유치부를 하면서 유치부 교사들과 대면하고, 종종 주일 오후 혹은 저녁 예배 때 설교도 하면서 성도들은 내가 교역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지나고, 교회 청년부 설교자가 없을 때에는 청년부 설교도 하곤 했으니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인식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올 해까지 만 8년동안 중동교회의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물론 선교단체 사역을 하면서 해야 했기에 주말에만 사역했지만, 오랜 기간 사역했고, 4년 전에는 교회 주변으로 이사해서 동네 주민이 되었고 3년전부터는 주일 저녁 설교를 자주했으니 중동교회와는 긴밀하게 되었다. 게다가 1년에 한 번 정도 담임 목사님께서 선교지 사역을 다녀오실 때는 주일 낮설교까지하곤 했으니 교회 안에서 목사로서의 위치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목사지만, 한 사람의 성도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성도됨을 잃어버린 목사는 권위와 특권 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고 여겨졌기에.


2014년 11월 말, 나는 만 8년동안 섬기던 유치부를 사임했다. 사역지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20년 가까지 사역하던 단체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고, 교회 부서 사역과 겸해서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교회의 허락을 받아 사임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서사역은 사임했지만, 교회를 옮겨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른 교회 사역지를 찾아봐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나는 다시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성도로 교회를 다닐 생각이었다. 교회를 옮겨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 '중동교회'만큼 좋은 교회는 없기 때문이다.(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교회를 소개할 때,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교회' 라고 소개한다.그만큼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의 진로를 묻는 성도님들에게 여러차례 이야기 했다. 유치부만 사임하고 중동교회는 계속 다닐 거라고. 우리는 할 만큼 많이 이야기 했지만, 성도님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으셨나 보다. 계속해서 재차 물으셨고,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렇지 않다고 웃으면서 말씀드렸지만, 11월 말까지 성도님들은 미더워하지 않으셨던것 같다. 


생각해보니, 성도님들의 경험 속에서 이런 교역자는 없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로 교회를 사임하든, 교회에서 더 이상 일할수 없어서 다른 교회로 옮기든(사역지가 결정되든 그렇지 않든) 사임과 동시에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을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성도님들이 경험했던 교역자들은 모두가 그랬던 것이다. 부교역자로 있다가 협동목사로 바뀌면 당연히 교회에 매이지 않고 사역이든 다른 교회든 다니셨기 때문에 그랬다. 성도님들의 경험하셨던 교역자들은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목사가 교회 안에서 아무 사역도 없이 성도의 한 사람으로 교회에 출석만 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묻고 또 묻고 다시 묻고 하셨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 이후 감사하게도 담임목사님께서 주일 저녁 설교를 제안해 주심으로 작은 역할이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마음은 동일하다. 목사이기 전에 성도임을 말이다.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겠다. 이 마음을 잊게 되면서부터 목사는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목사가 되는 과정이 귀하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해서, 중고등부 청년부를 거치고 결혼하고 서리집사를 한 후에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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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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