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9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0:1-23

제목: 언약에 충실한 요나단과 다윗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3. 본문읽기: 삼상 20:1-23

4. 본문의 내용

 

사울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윗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그래서 요나단을 통해 사울의 곁에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사울 왕에게서 도망쳐야 할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자신의 무슨 잘못이 있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지 호소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안심시키려 합니다.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모든 일을 자신에게 알리기 때문에 만약 다윗의 생명이 위험해 질 상황이 되면 자신이 책임지고 미리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에 안심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먼저 요나단에게 제안을 합니다. 초하루에 사울 왕 앞에 나아가 식사를 해야 하는데 셋째 날 저녁까지 나가지 않았을 때 사울의 반응이 어떤지를 통해서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판단하고자 합니다. 그 일에 요나단에게 맹약할 것을 요구합니다. 

 

요나단은 들로 나가서 둘 사이에 언약을 맺습니다. 요나단이 사울의 반응이 어떤지 다윗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만약 그리고 사울 왕과 함께 해 주셨던 것처럼 다윗에게도 함께 해 주시길 축복합니다. 더불어 다윗에게 요구합니다. 다윗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요나단과 그 집을 영원히 끊지 않고 보존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상호 이와 같은 내용의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울의 의사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한 서로간의 약속을 정합니다. 초하루를 지나 사흘이 지난 후 사울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돌아와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를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요나단이 활을 쏘고 활을 줍는 아이에게 이쪽에 화살이 떨어져있다고 말하면 ‘안심하고 돌아오라’는 신호고, 만약 아이에게 ‘네 앞쪽에 있다’고 말하거든 도망쳐 네 길로 가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요나단은 진심으로 다윗을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진심으로 다윗이 살게 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절. ...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다윗이 요나단을 향해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지 설명하면서 한 표현입니다. ‘자신에게 죽음이 얼마나 가깝고 급작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불안해 하는 다윗을 요나단은 안심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1) 사울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니 만약 다윗을 죽이고자 한다면 자신이 분명히 그것을 먼저 알게 될 거고 미리 다윗이 피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안심시켜 줍니다.(2절) 그러자 다윗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반문합니다. 사울이 요나단이 다윗을 아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이 슬퍼할까봐 말하지 않고 나를 죽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먼저 요나단에게 하나의 테스트를 제안합니다. 초하루에 식사하러 나가지 않고 셋째 날까지 그리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 때 사울의 반응을 통해 미리 확인해 보자고 합니다. 2) 요나단이 그리 하겠다고 합니다. 결단코 다윗이 죽지 않도록 자신이 미리 알려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또 의심합니다. 사울이 엄하게 말해서 요나단으로 다윗을 만나지 못하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 놓으면 자신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3) 요나단은 평소와 같이 활을 쏘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해서 신호를 삼아 알려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생명의 위협으로 인해 두려움이 많고 의심이 많은 것 같은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다윗의 약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을만한 요나단이 반복적으로 다윗을 안심시켜 주려고 하지만 다윗은 끝까지 믿지 못하고 만일 계획처럼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의심합니다. 저는 다윗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생명의 위협 속에서 이와 같은 불안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목해서 보고 싶은 것은 요나단이 불안해하는 다윗을 안심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설명하고 확신을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왜 믿음이 없냐고 왜 불안해 하냐고 따지기 전에 먼저 상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나단은 불안한 다윗을 안심시켜 주려고 했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온전하게 감당하여 다윗을 사울로부터 구원해 줍니다. (불안해 하는 자녀는 책망이 아니라 품에 안고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용기를 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주님은 부활하신 후 두려움 가운데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싸개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2) 16절.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은 불안해하는 다윗에게 들로 나가서 언약을 맺습니다. 다윗이 죽지 않도록 미리 피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즉 요나단이 다윗의 생명을 담보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으로 하여금 요나단과 그 집의 생명을 담보해 달라는 언약입니다. 실제로 요나단은 그 언약을 지켜 다윗으로 하여금 생명을 살게 했고, 다윗은 훗날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여 요나단의 자식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삼하 9:7) 서로가 서로에게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와 맺은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변하는 언약이고 신실한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의 징표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신실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백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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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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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6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8:1-16

제목: 시기와 질투에 넘어진 사울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 본문읽기: 삼상 18:1-16

4. 본문의 내용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다윗의 극적인 승리로 끝납니다. 그에 따라 블레셋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게 되고 결국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쟁은 마무리됩니다. 이 일로 인해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여 자신의 곁에 두게 됩니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은 다윗이 마음에 들었고 자시의 생명처럼 여기는 관계가 됩니다. 심지어 자신이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기도 했고 자신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등용하여 여러 지역에서 일하게 했는데 다윗이 지혜롭게 감당하여 나중에는 군대의 장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초고속 승진이었지만 온 백성도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하게 여길 정도로 다윗은 사울의 정부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온 백성들로부터 얻은 다윗의 인기는 오히려 다윗이 사울에게 미움과 시기를 받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환영식에서 여인들이 사울 왕과 다윗을 칭송하며 부른 노래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래 가사가 사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여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다윗에 대한 이런 경계와 시기는 사울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마음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악령에 의해서 시달리게 될 때 평소와 같이 다윗은 왕을 위해 수금을 탑니다. 평소 같으면 진정되었을 사울은 더욱 흥분하게 되고 ‘다윗을 죽이겠다’ 생각에 사로잡혀 손에 잡고 있던 창을 다윗에게 두 번이나 던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창을 피하여 살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시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같은 일이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절) 사울은 다윗을 곁에 둘 수 없어 천부장을 삼았는데 다윗은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사울은 더욱 다윗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게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9절.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다윗은 사울에게도 고마운 존재입니다. 블레셋 앞에서, 골리앗 앞에서 모욕당할 때 사울 왕의 체면을 살려준 인물이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자신의 곁에 두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윗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요나단에게 엄청난 사람과 신뢰를 받습니다.(요나단의 행동과 말을 살펴보면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을 잘 따르고 순종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다윗에게는 온갖 호의를 다 표현합니다.) 결정적으로 백성들의 민심이 자신에게서 다윗에게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사울은 오히려 다윗을 경계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보다 인정을 받고 인기를 누리는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리고 경계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고난을 겪지만 사울은 본격적으로 불행해 지는 계기가 됩니다. 다윗은 고난을 통해서 점점 하나님 앞에 길들여졌고 강인해갔지만 사울은 인생이 망가지는 길로 가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보다 좀 더 잘난 사람을 보면 시기하는 마음도 생기고 질투하여 속으로 잘못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까지만 가야 합니다. 그 이상 실제적으로 그 사람이 잘못되도록 거짓을 만든다 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동원해 억울한 일을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타인의 인생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망가뜨리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보다 잘 난 사람이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내 곁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내  자리가 유지되고 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생기는 시기와 질투에 대한 마음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잘 다스리시고 오히려 내가 도전받고 성장하는 기회로 만들어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2) 12절.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과 그로 인해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사울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눈으로 보였던 것은 아닐테고 다윗이 맡아서 하는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는 결과가 나오게 됨으로 사울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측면에서 축복이지만 그로 인해 사울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복된 일이지만 동시에 다른 측면에서는 고난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고난이 있고 억울함이 있다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게 아닙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도 당하고 억울함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억울함과 고난은 우리를 망가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를 다윗처럼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로 인해 당할 수 있는 고난을 통과하십시오. 그렇게 우리는 다윗이 되기도 하고 요셉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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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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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3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7:1-23

제목: 골리앗과 다윗의 대면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 본문읽기: 삼상 17:1-23

 

4. 본문의 내용

오늘 읽은 본문부터는 성경에서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군대가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이 때 블레셋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나왔는데 그가 바로 골리앗입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거구였습니다. 몸에는 대략 57킬로그램 되는 갑옷과 투구로 감싼 것도 모자라 방패를 든 자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봐도 상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장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서 제안합니다. 서로 한 사람씩 택해서 싸우고 그 사람이 지면 그 나라가 진 것으로 하여 종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자신을 이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한 말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거구의 골리앗 앞에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농락을 당하고 있는 중에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이곳에 오게 됩니다. 이새의 세 아들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가 이 전투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면서 형들의 안부도 살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당시 다윗은 사울의 부름이 있으면 왕에게로 갔다가, 때로는 다시 고향 베들레헴에 와서 아버지의 양 떼를 돌보면서 지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치던 양들은 양 지키는 자들에게 맡기고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대치하고 있는 전장으로 가서 형들을 문안하게 됩니다. 이 때 때마침 블레셋의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다윗이 듣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골리앗의 조롱을 듣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골리앗과 다윗 이야기의 서론에 해당되는 내용이라면 내일부터 골리앗과 다윗의 구체적인 싸움이야기가 나오게 될 듯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0-11절. 내가(골리앗) 오늘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울과 온 이스라엘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블레셋의 골리앗 한 사람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여기에 대해 분노하여 싸우지 못하고 오히려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블레셋의 싸움을 돋우기 위해서 나온 골리앗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군대는 얼마나 무력하고 초라한 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게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나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들을 불러모아 강한 군사를 키우고자 했던 사울의 노력이 블레셋의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과 이스라엘이 당시 주변의 나라들과 아말렉에게는 크고 두려운 존재였지만 블레셋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군대였던 것입니다. 왕이 없던 시절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좀 더 조직적이 되었고 좀 더 강해졌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천하무적이 된 것은 아닙니다. 더 강한 군대와 전투력을 갖춘 블레셋에 비하면 이스라엘의 전투력은 보잘 것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기 인식이 골리앗 앞에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눈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있지만 감히 대응할 힘도 용기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부끄러운 순간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실제 모습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부끄럽게 되는 순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온전히 하나님의 도움에 의존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무능과 수치를 발견하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수치의 자리 무능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자신만 바라보면 두려워떱니다 

 

  2) 14절. 다윗은 막내라 / 23절 다윗이 들으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방식은 예상치 못한 방식입니다. 이새의 큰 아들들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새의 아들 중 막내 아들인 양치기 다윗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전투를 해 본 적이 없는 소년입니다. 그저 아버지의 양들을 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자 그런 다윗을 불러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거대하고 힘 있는 것으로 오지 않습니다. 강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 왔던 사람을 세워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화려한 제사도, 좋은 제물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큰 것을 보고 두렵기도 하고 때론 든든해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작고 은밀한 것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아시고 주님 앞에 나아와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통해서 큰 폭우를 만드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작은 것에 주목하시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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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2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6:1-23

제목: 내가 자리를 찾는게 아니라 자리가 나를 찾는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3. 본문읽기: 삼상 16:1-23

 

4. 본문의 내용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새로운 왕을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사울이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매우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사무엘을 통해서 새로운 왕을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차근차근 준비해 가도록 하십니다. 첫 번째 장면(1-5절)은 사무엘에게 뿔에 기름을 가지고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 가도록 합니다. 그의 아들 중에서 왕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울이 현재 왕으로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사무엘이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무엘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드리러 가는 것으로 해서 베들레헴에 가고, 이새의 가족들을 제사에 청하는 형식으로 일을 진행하도록 가이드를 해 주십니다. 

 

두 번째 장면(6-13절)은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서 첫 아들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은 첫 눈에 왕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압 이후에 아비나답도 삼마도 나머지 아들도 다 보았지만 그 중에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이게 아들이 다 인가를 묻자 막내가 있는데 지금 양을 지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급히 그 막내를 데리고 오라고 요구합니다. 얼마 후 막내 다윗이 등장하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싸인을 받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됩니다. 그 이후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고 사무엘은 다시 라마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장면(14-23절)은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령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사울의 신하들은 사울에게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그래서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찾는 중에 한 소년의 추천으로 베들레헴에 이새의 아들 중 수금을 잘 타면서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추천합니다. 게다가 그는 여호와와 함께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즉시 사람을 보내 다윗을 착출합니다. 이새는 먹을 양식을 챙겨서 다윗을 사울에게 보내게 됩니다. 다윗은 이렇게 왕궁에 입성하게 되고 거기서도 사울의 사랑을 받아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았다. 사울이 악령에 의하여 괴로워할 때 다윗이 수금으로 연주하면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떠나게 되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7절.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실제적인 외모에 따라 호감과 비호감을 나누기도 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펙에 따라 그 사람을 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하찮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외형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은 하나님은 외적인 스펙을 무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은 스펙은 우리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의미는 하나님은 보여지는 것에 속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편견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보이는 것이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한계를 인식하고 누군가를 평가할 때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이 없는지(혹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람의 중심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을 판단해야 할 때 겸손해야 하며 신중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그래서 우리의 영적 눈이 열리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중직자를 세우는 중에 있습니다. 사람의 눈, 사람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2) 11절.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모두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무엘은 이새에게 묻습니다. 다른 아들이 없는가? 그때 이새는 막내 다윗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 모두가 왕의 후보가 되기 위해 사무엘과 면접을 보고 있는 시간에 홀로 잊혀진 아들처럼 양을 치고 있어도 하나님은 합당한 사람을 찾아내서 세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고, 내가 적임자라고, 나를 선택해 달라고’ 소리치지만 하나님의 일꾼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으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들어 세우신다면 양을 치고 있던 현장에서 나를 불러오실 것입니다. 왕으로 세움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나에게 맡겨주신 양을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자리가 나의 자리, 나를 세우신 자리라고 믿고 충성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가 나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나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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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5:16-35

제목: 다소 엄격한 신앙 생활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3. 본문읽기: 삼상 15:16-35

 

4. 본문의 내용

하나님께서 사울로 하여금 아말렉을 진멸하도록 명령하셨고 사울은 성공적으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는 버림을 받게 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스스로를 작게 여길 때에는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왕이 되고 나서는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한나님의 말씀을 거스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하신 내용을 변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그런 잘못을 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다 진멸했고 다만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남겨서 제사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변명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바로 그 지점이 잘 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좋아하시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지적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백성 핑계를 댑니다. 백성이 두려워서 그들의 말을 청종했다고 변명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와 같이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사울은 사무엘에게 함께 가도록 요청합니다. 사무엘이 거부하자 그의 옷자락을 붙잡기도 했고 그로 인해 옷이 찢어지기까지 합니다. 사울은 내 백성과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자신을 높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함께 가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과 지도자들 앞에서의 인정받아야 하는 자신의 권위로 가득차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무엘은 결국 사울의 요청에 따라 그와 함께 가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말렉 왕 ‘아각’을 죽입니다. 그리고 사울을 떠나 라마로 돌아가서는 평생 사울을 보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마음에 슬픔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심이 있을 만큼 사울은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1절.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사울의 잘못을 지적했는데 사울은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울의 항변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했고 ‘다만’ 한 가지만 다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도 ‘하나님을 위해서’(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사무엘은 지금 사울의 이와 같은 판단과 행동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셨던 이유 중에 하나가 사울이 자신의 아버지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하려고 했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은 필요에 따라 백성들 위에서 그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한 순종을 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백성들의 왕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해야 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임의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변명하기를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백성들의 말을 청종했다고 핑계를 댔습니다.(24절) 나중에 사무엘에게 장로들과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30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식하기 보다는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과거 한국교회의 신앙은 너무 율법적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합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임의대로 변경해서 해석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여론에 따라 임의로 변형함으로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오히려 세상의 가치가 교회 깊숙이 들어온 시대에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올바르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엄격하고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적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다시 율법주의적으로 돌아가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좀 더 자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판단의 폭을 넓혀 가지만 나 자신을 향해서는 좀 더 엄격한 신앙적 잣대를 가져보는 것이 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해야만 좋은 신앙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는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야 좋은 신앙으로 증명되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내 스스로 술과 담배를 절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처럼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거나 율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물질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십일조를 스스로 정해서 하는 것은 참 귀한 신앙적 순종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의 개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존중이 드러나게 됩니다. 내 임의적인 판단보다는 다소 엄격한 의미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시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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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0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4:36-52

제목: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3. 본문읽기: 삼상 14:36-52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에서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기세를 몰아 밤새 블레셋을 추격하여 그들의 것을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고 말하자 백성의 무리들은 왕의 명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고 결정하자고 합니다. 이에 사울이 하나님께 블레셋 사람을 추격할 것인지를 묻고 이 전쟁에서 이길 것인지를 물었으나 그날 하나님은 사울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도 하나님께서 대답하시지 않자 사울은 그제서야 뭔가 문제가 있다고 인식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죄가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누구에게 죄가 있는지 제비뽑기를 통해서 알아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죄가 있는 자는 자신의 아들 요나단이라도 죽일 것이라고 선언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비뽑기를 했는데 정말 요나단이 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은 요나단이 사울의 명령을 알지 못한 채 사울의 명령을 어겼던 것입니다. 사울이 ‘내 원수에게 보복할 때까지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도록 했고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런 명령이 있는지 몰랐던 요나단은 배고픈 중에 자신의 지팡이 끝으로 꿀을 찍어 먹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그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입니다. 

 

사울은 처음부터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이 죄가 있어도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정말 요나단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사울을 말립니다. 요나단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큰 구원을 이루었는데 요나단을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간곡한 요구에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지 않습니다. 또한 블레셋 추격하기를 그쳤고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각자 자신의 곳을 돌아가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것입니다. 사울이 다스리던 시절에 사방의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고 향하는 곳마다 승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했습니다. 사울은 계속해서 전쟁을 위해 힘 센 사람들이나 용감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블레셋과의 전쟁을 늘 대비하였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6절.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지금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는 완전히 이스라엘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상황이 역전된 것입니다. 사울이 이 기세를 몰아서 블레셋을 완전히 섬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때로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함으로 오히려 백성들이 피채 가축들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늘 본문에서도 블레셋을 밤 새 쫓아가서 완전히 섬멸하려고 했고 이에 대해 무리도 그렇게 하자고 동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제사장이 제동을 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사울의 생각에는 하나님을 뜻을 물어 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해야 할 공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사장의 제안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 안에 어떤 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이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 번 더 하나님께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사장의 이 제안이 없었다면 어쩌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 하여금 오히려 대패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안에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겠습니까?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묻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새벽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45절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사울은 요나단이 죄를 범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울이 왕의 권위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요나단의 생명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그만큼 요나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두 가지 측면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사울의 권위가 많이 손상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명령에는 무리가 있었고 오히려 그 명령으로 인해 사람들을 범죄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 요나단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할 정도였습니다. 요나단도 아버지 사울이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의아해할 정도였습니다. 무리한 요구가 의도지 못한 범죄를 만들었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아들까지 죽음으로 몰아 넣는 어리석음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사울의 명을 거두어 달라고 요구함으로 오히려 사울의 권위는 많이 손상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요나단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가 상당히 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서 요나단을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대조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요나단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내가 결정적 실수를 하여 위기에 처해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줄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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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7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3:1-23

제목: 부득이한 신앙을 극복하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3. 본문읽기: 삼상 13:1-23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사울이 왕이 된 이후 처음으로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을 이겼느냐 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사울이 왕으로서 어떤 행동을 취하였는가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상비군 삼 천 명을 두고 그 중에 자신이 이 천 명을 데리고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고, 나머지 일천 명은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납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선제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에 전면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의도하지 못한 국지전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블레셋은 엄청난 군대와 장비를 동원해서(병가가 삼만, 마병이 육천명, 백성은 무수히) 이스라엘 앞으로 나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겁에 질리게 됩니다. 싸우기도 전에 패한 것과 같았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빨리 와서 제사를 드려 주기를 기다렸지만 오기로 정한 기간 내에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울에게서 흩어지자 불안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울은 다급한 마음에 본인이 번제를 드려버립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왕은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사울은 급한 마음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했으나 사울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변명합니다.(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이 일이 사울에게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맙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왕위가 영원하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다른 왕을 세울 것을 말씀하십니다.(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되었음을 말함) 사무엘은 길갈을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갔고 사울은 600명의 백성들과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세 대로 나누어 들어왔는데 사울은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병력도 병력이지만 무기에 있어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은 철을 다룰 수 있는 기술도 있고 무기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그와 같은 무기도 기술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농기구에 불과한데 그 또한 필요가 있으면 블레셋에 가서 벼려와야 할 정도였습니다. 사울과 요나단 외에 칼과 창을 가진 자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없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길 확률은 없다고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2절.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간 내에 오지 않자 급한 마음에 스스로 번제를 드립니다. 그 때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는 사울이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해 놀라서 문제를 제기하자, 사울이 사무엘에게 답변하면서 했던 말이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울의 변명이 납득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사무엘이 정한 기간 내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백성들은 블레셋을 두려워하여 흩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가능한 전쟁인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야 할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자 조급한 마음에 왕인 자신이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부득이한 상황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 앞에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신앙은 아닌가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우리는 변명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때론 우리의 형편을 살피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그 부득이 함을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부득이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2) 13절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은 자신이 제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임의대로 번제를 드린 것에 대해서 사무엘이 지적한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에게는 결정적인 잘못이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왕위를 거두어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른 사람을 찾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왕이라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반면 이방 왕들은 왕의 권위가 주어지는 순간 신적 권위가 부여되어 무슨 일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급하고 두려운 마음에 오직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드린 것입니다. 세상 왕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왕은 이방의 왕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 이스라엘의 정치적 왕은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 아래 있어야 합니다. 

- 교회에서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든 장로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길들여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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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6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2:16-25

제목: 때론 우레와 비가 필요하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 본문읽기: 삼상 12:16-25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큰 경고를 보여주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불편한 마음을 비추셨는데 오늘 본문은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두렵게 할 하나의 큰 일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보내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 때가 ‘밀 베는 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밀 베는 때는 보통 4월 셋째주에서 6월 둘째주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이 때는 건조기라 비가 전혀 오지 않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레외 비가 내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재앙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께 아뢰자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냈고,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사무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모든 백성들은 두려움 때문에 사무엘 앞에 나아와 자신들이 이 재앙으로 인하여 죽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다’고 자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사무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장 심판하시기 위해서 이와 같은 큰 재앙의 징조를 보이신 것은 아닌 듯합니다. 모든 백성들이 두려워함으로 회개하자 사무엘은 오히려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이들이 악을 행했지만 여호와를 따르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길 것을 권면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 백성들을 위해서 약속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하지 않고, 선하고 의로운 일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다’(23절) 또한 백성들을 향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섬길 것을 요구합니다. 만일 여전히 악을 행한다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본문이 마무리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8절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왕’을 요구한 이래 사무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고 다스려오셨는데 그것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대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자 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잘못이며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밀 추수를 하는 건조기에 우레와 비를 내리심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한 것입니다. 실로 전에 없는 일로 인해 백성들도 두려움을 가졌고 사무엘을 통해서 죽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집고 넘어가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의 우레와 비는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멸망하시려는 의도는 아닌 듯합니다. 다만 전에 없는 천재지변을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여 자신의 죄를 살피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기도 하시고 때론 우리가 정말 심판에 이르기 전에 경고성 재앙을 만나게도 하십니다. 그 경고성 재앙을 만났을 때 두려움으로 돌이키는 자는 삽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죄를 멈추지 않음으로서 심판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로 주시는 싸인을 잘 살피셔서 큰 심판으로 나아가는 일이 없게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눈치가 있는 자식은 부모의 분노와 경고를 잘 파악하여 재앙을 피한다)

 

  2) 22절.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사무엘은 돌이켜 회개하는 백성들을 향해서 3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사무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무엘 자신이 백성들을 향해 약속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백성들의 중보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고백에 목사로서 도전도 받고 거룩한 도전도 느끼지만 사실 사무엘의 이 고백은 목사인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감당하시는 사역입니다.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 주님이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은 백성들을 향해서 결단하도록 촉구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너희 마음을 다하여 진실하게 섬기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만약 악을 행하면(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리에서 떠나면) 너희와 너희가 세운 인간의 왕이 모두 멸망할 것을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주님을 의지하시고 내 자신의 삶 속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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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5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2:1-15

제목: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67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3. 본문읽기: 삼상 12:1-15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사울로 세워지고 모든 백성들 가운데 그 권위도 인정받게 된 상황에서 사무엘이 모인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무엘이 나이가 많게 된 것도 있고 사울이 왕으로 자리를 잡은 것과 자신의 아들도 백성들 가운데 함께 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은퇴를 하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내용은 1-5절로, 사무엘이 지금까지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지도하면서 정직하고 공평한 사역을 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확인받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누구의 것을 속였거나 빼앗았거나 뇌물을 받아 재판을 흐리게 한 것이 없다는 고백을 했고 이에 대해서 백성들도 모두 인정하는 고백을 합니다. 사무엘은 평생에 사사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성되게 사역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저도 나중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하고, 성도님들께 인정을 받고 은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두 번째 내용은 6-12절로, 출애굽 이후 사사 시대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려 오셨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세우셔서 고통 속에 있을 때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하셨고 애굽에서 인도해 가나안 땅에 살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를 잊었다. 사사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신을 섬기자 하나님께서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겼더니 이 백성이 부르짖어 ‘이제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라고 해서 여러 사사를 보내고 나 사무엘을 보내 사방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다.(현재까지의 이야기) 그런데 너희가 이제 나에게 요구하기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라고 한 것이다.(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에 대한 황당함에 대한 표현)

마지막 부분은 13-15절로, 이제 너희들이 요구한 왕을 너희 가운데 세웠다. 그러나 원리는 동일하다. 너희와 너희 왕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따르면 좋지만, 만약 그렇지 않고 여호와를 거역하면 이전과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들을 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절 내가 여기 있나니 ...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평생을 불의한 방식으로 누구의 것을 임의로 취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고 이를 듣는 모든 백성들도 그의 결백함을 확인해 주는 장면입니다. 사무엘의 이와 같은 표현은 그 이전까지 사사들은 자신의 권력과 힘을 가지고 부정하고 부패한 일들을 어느 정도 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엘리의 두 아들이 제사의 일을 하면서 그와 유사한 악행을 행했다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사사라는 힘을 가지고 얼마든지 자신의 유익을 취할 수 있는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결백하게 자신에게 허락된 것만을 취하였던 사무엘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더욱 존경하게 되는 것은 늙어서까지 그와 같은 태도가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저도 사무엘처럼)

 

사무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다스림 안에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사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욕심을 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가까이 있었고 얼마든지 그것을 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자신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젊어서는 옳고 바르고 정직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도 할 수 있지만 그 마음과 행동이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누구나 권력과 힘이 주어지만 그것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자신을 믿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까지만 가지시고 그 이상의 욕심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사는 것입니다. 

 

  2) 14절.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원리는 동일합니다. 중간에 사람이 원하는 왕을 세운 것일 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겠지만 만약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면 이전에 왕이 없던 시대와 다르지 않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왕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 백성을 다스리는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제도가 인간을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다스려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제도의 개선은 인간의 필요와 요구에 의한 것이지만 그 백성의 왕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 원리를 잊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시스템을 의존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큰 고통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잊지 않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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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4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1:1-15

제목: 하나님이 왕으로 만들어 가신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 본문읽기: 삼상 11:1-15

 

4. 본문의 내용

 

사울이 왕으로서 첫 번째 전쟁을 치루고 승리한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세 번에 걸쳐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짐을 확인받게 되는데 한번은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서, 한 번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비뽑기를 통해서 마지막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그렇게 됩니다.(15절.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모두가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을 침략해 옵니다. 길르앗 야베스는 적당한 선에서 언약을 맺고 그들을 섬기려고 했으나 암몬 사람 나하스는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오른 눈을 다 빼야 언약하겠다는 식으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전령을 사울에게 보내 도움을 요청해 봅니다. 사울은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분노가 일어났고 한 겨리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을 통해 전 이스라엘 지역에 각을 뜬 소를 들고가서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않으면 그의 소들을 이와 같이 하겠다’고 말하면서 군대를 소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사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스라엘 자손은 30만명이, 유다 사람은 3만명이 모이게 됩니다. 

 

사울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구원할 것을 약속하고 군대를 세 대로 나누어 이튿날 새벽에 적진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이지요. 암몬 사람들은 완전히 패배하여 살아남은 자도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첫 전투에서 사울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사울의 권위도 올라갔을 것이고 사울의 따랐던 사람들도 흥분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 전에 사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대해서 끌어내서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사울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지 않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줍니다. 

 

사무엘은 사람들을 길갈로 불러 모아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했고 사람들은 사울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는 것으로 오늘 본문이 마무리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6절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 7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사울이 길르앗 야베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분노했고, 전령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할 때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라는 표현과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라는 설명이 들어감으로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와 일하심이 없었다면 이 문제가 이와 같이 진행되지 않았을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울이 듣고도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느낄수 있고 사울이 군대를 불러 모으려고 해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니 이전과 같았으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의 구심점을 갖지 못한 채 주변 민족들에게 노략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고, 위기의 순간에 사울에게 자기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먼저 사울의 마음에 분노하는 마음을 주셨고, 백성들을 불러모을 때 백성들의 마음에도 두려움을 주셔서 그들이 적극적으로 모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울에게 군대를 전략적으로 잘 운용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백성을 세 대로 나눈다든지, 새벽에 기습한다든지..) 결국 전쟁을 이기게 하심으로서 사울의 왕권을 더욱 강하게 하셨고 이 승리를 통해 온 이스라엘이 사울을 왕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사울 개인에게도 능력을 주시지만 주변 환경도 그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알고 우리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자리에 세우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신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지만,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믿지 못하는 자도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울에게 주셨던 이 승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사울만 못하는 게 아니라 그 공동체 전체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리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 13절.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사울이 왕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측근들은 반대하고 빈정거렸던 사람들을 제거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을 베푼날 심판을 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외부의 적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응하지만 내부의 동포를 향해서는 다른 견해 다른 판단을 가졌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함께 구원의 은혜를 누리도록 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사울은 정말 첫 시작은 괜찮은 왕이란 생각을 합니다. 사울 왕의 시작은 실로 괜찮은 모습이었습니다. 싸워야 할 때와 품고 안아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싸워야 할 대상과 품고 안아야 할 대상을 구분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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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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