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0:17-27

제목: 불량배는 어떤 시대에도 있더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595장. 나 맡은 본분은
  3. 본문읽기: 삼상 10:17-27

 

4. 본문의 내용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시면서 사무엘을 통해 기름 붓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사울은 하나님의 인정받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이 하나님이 선택된 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불러 모아서 그들이 보는 가운데 ‘사울’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서운함을 먼저 지적합니다. 이미 하나님이 이 백성의 구원자라는 것이 출애굽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 위에 인간 왕을 세우라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먼저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기 위해 지파대로 천 명씩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제비 뽑기를 했습니다. 여러지파 중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 가족별로는 베냐민 지파 중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무엘을 통해 이미 기름부어 세우셨지만, 공적으로는 제비 뽑기를 통해서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택한 사람인 것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왕으로 추대된 사울은 오히려 자신이 백성의 왕이 될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울을 곧 찾아냈습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섰고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기에 사람의 눈에 잘 띄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백성들 앞에서 사울을 향해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람으로서 모든 백성 중에서 짝할 이가 없다’고 선포했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도 왕을 주셨음으로 인해 환호했습니다. 사무엘은 나라의 제도를 백성들에게 알리고 책으로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백성들이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일부 마음에 감동된 사람은 사울을 따라 가기도 했습니다. 또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멸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울은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2절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사울은 제비뽑기라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택한 왕이라는 것이 온 백성 사이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기름부으심으로 그를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앞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사울을 왕으로 택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울을 위해서는 매우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무엘 한 사람의 주장으로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선포한다고 했을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것을 문제 삼을 수 도 있고 사울의 약점을 말하면서 그가 왕이 될 만하지 못하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첫 왕이 세워져 그 권위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할 사울에게 처음부터 리더십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비뽑기를 통해 자신이 뽑힌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해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버린 사울의 모습을 보면 그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방식을 통해서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비 뽑기를 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사울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택하심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실 때, 개인적인 확신도 주시지만 공적인 확신도 주심으로서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우신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다. 사울처럼 자신은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짐보따리 사이에 숨지 마시고 하나님의 세우심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 부르심을 믿고 사람들 가운데 서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에게 감당할 능력도 상황도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2) 27절.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세워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늘 있습니다. 사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이 자격이 되겠느냐? 이 사람이 실력이 있겠느냐? 나는 이 사람을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와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셨다면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에 너무 휘둘리지 마시고 내게 맡겨진 사역에 집중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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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0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9:1-14

제목: 사람은 사람이 알 수 없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75장. 나는 갈길 모르니
  3. 본문읽기: 삼상 9:1-14

 

4. 본문의 내용

 

삼상 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삼상 9장은 ‘사울’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이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될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왕으로 세워지게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는 유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 중 하나가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은 외모적인 측면에서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을 정도로 잘 생겼습니다. 게다가 키도 상당히 커서 누가 보더라도 호감이 갈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울은 부모의 말에도 잘 순종하는 모범적인 자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렸는데 사울에게 사환을 함께 데리고 가서 암나귀를 찾아오라고 시킵니다. 그러자 사울은 그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게 됩니다. 사울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녔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또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보았으나 거기서도 못 찾았습니다.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거기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숲 땅에 이르렀을 때 사울은 사환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말합니다. 너무 오래 나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걱정하시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환은 이 성읍 근처에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살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그를 한 번 찾아가서 물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사울은 그 사람을 찾아 뵐 때 드린 선물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사환은 자신에게 돈이 조금 있으니 그것을 드리고 물어보자고 합니다. 사울과 사환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 선지자(선견자)를 찾아 갔는데 거기서 만난 선지자가 바로 ‘사무엘’인 것입니다. 사무엘이 산당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사울 일행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오늘 본문은 마무리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절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던 사울의 외모에 대한 묘사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호감이 가는 젊은이였고 신체적으로도 장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는 ‘왕’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사울은 아버지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부지런히 찾고 찾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 사알림 땅,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녔다고 말합니다. 그 외에도 아버지의 염려를 헤아릴 줄도 알고 있었고 사환의 제안을 받아들여 마지막으로 선지자를 찾아가 보는 성의를 가졌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때 사울은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 젊은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도 상당히 호감이 있고 만약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한 명을 뽑아서 왕을 세워야 한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사울을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사울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만족할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도 왕의 조건을 생각할 때는 이런 신체적 조건을 중요하게 봤던 것 같습니다.  

 

삼상 16장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 이후의 왕을 세우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를 찾아 갑니다. 그 때 이새의 아들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은 생각합니다. 6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사무엘이 볼 때 엘리압이 ‘왕의 될 외모’를 갖추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저는 이 장면에서 사람을 세우는 일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1.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구나. 아니 정확한 판단이라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울은 외모 뿐 아니라 성품과 태도에 있어서도 매우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묘사되는 내용 중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어 보입니다. 사울의 문제는 현재의 조건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의 문제는 그가 왕이 된 이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머리에 왕관이 씌워지고 나서 사울은 변한 것입니다. 사울은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권력과 힘이 사울을 변질 시킨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미래의 모습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권세가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일이 바로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2. 겉모습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중심을 정확하게 볼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판단할 때 외부로 보여지는 것을 가지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만 보고 실망해서도 안 되고 겉만 보고 너무 큰 기대를 가져서도 안 됩니다. 어느 정도 구분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중심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또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3. 사람을 세우는 일에 기도가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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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8:1-22

제목: 어리석음을 허용하시는 하나님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67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3. 본문읽기: 삼상 8:1-22

 

4. 본문의 내용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무엘이 늙으매 상황이 달라집니다. 사무엘의 아들(요엘, 아비야)을 사사로 삼았으나 그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도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사무엘은 장로들의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도 이 백성의 요구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십니다. 대신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왕의 제도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 가르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왕의 제도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고 경고하십니다. 왕의 제도를 두고 왕이 백성을 통치하게 되면 다른 나라와 전쟁을 치르는 것에 있어서는 유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왕과 그의 신하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너희들과 너희 자녀들의 노동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음을 알려줍니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소산의 십일조를 바쳐야 할 것도 알려줍니다. 예를 들면, 아들을 끌어다가 왕의 병거와 말을 관리하면서 말과 함께 달려야 하고, 왕의 밭과 추수를 도와야 하고 왕의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어야 합니다. 딸들을 데려다가는 요리하는 자로 삼을 것입니다. 또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바쳐야 하고 왕은 백성들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갈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이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왕을 세우기를 원하는지 묻습니다. 

 

이와 같은 경고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사무엘 말 듣기를 거절하고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들은 왕을 세워야 타국과의 전쟁에서 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자신의 가족과 재산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사무엘은 이들의 요구가 확고한 것을 확인하고 ‘왕을 세울 것’을 약속하고 돌려 보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왕을 요구한다는 것은 현재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절)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불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향해 불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주변 나라들에는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을 보좌하는 신하들이 있고 왕의 명령에 신속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이 군인들은 평시에 잘 훈련되어 있었기에 전쟁에 효과적이었습니다. 주변 나라에 그런 군대가 있고 그런 군대를 이끌을 수 있는 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런 군대가 없습니다. 주변 나라가 전쟁을 하려고 하면 그 때 사람들을 모아 전쟁에 대비하려고 하니 시기적으로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투력도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쟁에서 지기 쉽고 전쟁에서 지면 자신의 재산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모두 노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사무엘과 같은 사사가 있어서 위기의 순간마다 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사무엘이 늙고 그 아들들은 믿고 의지할 만한 사사가 아니라면 백성들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신지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가 불만족스럽지만 그 요구를 들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물론 그 선택이 가져오게 될 위험요소를 미리 알려주시고 경고하십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1. 하나님은 백성들이 때때로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하고 그것을 고집할 때 원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의 판단이 옳고 지혜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리석은 주장을 하며 고집 부리면 때려서라도 포기시키는게 맞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2. 하나님께서 왕의 제도를 선택할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십니다. 이는 상대를 협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이 해주셨던 경고를 기억하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올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그릇된 선택을 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시고 그 선택으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하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은 백성들의 어리석은 선택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다윗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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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8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7:3-17

제목: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3. 본문읽기: 삼상 7:3-17

4. 본문의 내용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은 큰 충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엘리 제사장 가문에 벌어진 재앙을 보면서 현재 자신들의 신앙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스스로 돌아온 언약궤를 여전히 경솔하게 다루었던 벧세메스 사람들에게 임한 재앙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도전하며 이스라엘의 죄에서 돌이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와 같은 사무엘의 도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지금껏 함께 섬겨왔던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회개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1차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나게 됩니다.(2차 회개 운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고 미스바에 모인 사람들은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통회하는 마음을 토로했고 종일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미스바에서 영적 통치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미스바로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웠지만 그들의 태도는 이전과 달랐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전쟁하려고 오는 블레셋에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함으로 블레셋으로 하여금 완전히 패하게 하십니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는 다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못하게 하셨고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땅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 나라들과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사는 동안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리게 되었음을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절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지금 이스라엘은 비탄에 빠져있고 절망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블레셋에게 완전히 패배한 것도 있겠지만 더욱 큰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것이고 그것은 여호와의 언약궤가 상징하고 있는 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이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잘 섬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언약궤를 빼앗기고 하나님의 임재(보호하심과 도우심)가 떠나 버린 이 상황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스스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것인데, 그것도 잠시 언약궤를 잘못 다룸으로 벧세메스 사람들은 큰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언약궤 없이 살아갈 수도 없고, 그 언약궤를 반갑게 맞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은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정말 너희들이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먼저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만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다른 신도 섬겼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도 보고 무당집에도 찾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건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것이 결국 이런 신앙적 파국을 맞게 된 이유였다는 것을 사무엘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문제도 이와 같을 수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사람들에게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은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간다면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세상의 가치관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고 그런 삶은 반드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먼저 그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실제로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만 의지했을 때(여호와를 이용하려고 했을 때와는 다르다. 그 때는 언약궤만 가져오면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사무엘도 온전한 제사를 드렸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잃어버렸던 옛 땅도 회복하고 주변의 나라와도 대등한 힘의 균형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처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씩 제거해 가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온전한’ 자리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내 안에 보여주시는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당신만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해 드리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거기에 회복이 있고 거기에 승리가 있으며 평화가 있습니다. 그 은혜가 오늘 하루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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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3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3:1-21

제목: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3. 본문읽기: 삼상 3:1-21

 

4. 본문의 내용

사무엘상은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죄로 인해 점점 몰락해가는 모습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사무엘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의 시대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고 엘리의 눈도 점점 어두워갔지만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밤 중에 자고 있는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이런 경험이 없었던 사무엘은 그 음성이 엘리 제사장이 자신을 부르는 것인 줄 알고 달려가지만 엘리는 부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다시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들은 사무엘이 엘리에게 달려가 보지만 역시 엘리는 부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됩니다. 그제서야 엘리 제사장은 눈치챕니다. 여호와께서 이제 자신을 부르지 않고 사무엘을 부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엘리는 다시 그 부르심이 있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네 번째 사무엘을 부르고 그제서야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답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엘리 제사장 집 안의 죄와 그에 따른 심판에 대한 말씀을 재차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날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을 불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사무엘은 주저했지만 엘리 제사장의 요구에 자신이 들은 말씀을 자세히 전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이미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들었던 말씀이라 받아드립니다.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사무엘에게까지 말씀하신 것으로 봐서 정말 그렇게 하시겠구나 짐작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엘리 제사장의 집안은 몰락을 향해 갔고 반면 사무엘은 자라면서 온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말에 권위가 있게 역사해 주셨고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절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엘리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스라엘에는 전혀 희망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제사장의 집안이 이 정도면 이스라엘은 ‘끝났다’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엘리는 늙었고 눈은 점점 어두워갔습니다. 그 뒤를 이을 홉니와 비느하스는 망나니였습니다. 하나님도 실로를 떠나셨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로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어둠의 중심부에서 어린 사무엘을 키우고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두셨고 꺼지지 않는 등불을 두셨고 그 곁에는 아직은 어리지만 곧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사람을 키우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이런 방식을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적진 깊숙이 하나님의 사람을 심어 놓는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애굽 바로의 궁전에 어린 모세를 숨겨 놓지 않았습니까? 히브리 민족의 남자는 다 죽이라는 애굽 왕의 명령 때문에 멸망의 위기 가운데 있었던 히브리 민족은 그 모세를 통해서 구원을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모세를 누가 키웁니까? 애굽의 왕이 키웁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적의 심장부에 하나님의 씨를 심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전략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로마서 11:33-34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낙심하고 깊은 좌절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희망’이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 가문에서 사무엘이 자라고 있었고, 바로의 왕궁에서 어린 모세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참된 신앙인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현재의 시대가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 숨어있는 ‘소망의 씨’가 있음을 믿을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 속에서 부활을 보는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고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모든 우는 자의 위로이시며 없는 자의 풍성이 아니십니까? 약한 자의 강함과 눈 먼 자의 빛이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이며 생명이신 분이 아니십니까? 

 

우리가 이 어둠의 시대에 사무엘이 되십시다. 하나님의 전을 가까이 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한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김으로 하나님의 존중함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사람이 되십시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여러분이 이 시대와 산울교회의 소망이요 등불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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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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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22-36

제목: 자녀를 사랑하는 기준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3. 본문읽기: 삼상 2:22-36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제사를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온 백성들에게 알려졌고 엘리 제사장도 알게 되어 그들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행하는 죄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기에 엘리는 그 심각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이 사무엘은 점점 자라면서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게 되었다고 대조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26절)

 

이젠 여호와의 심판이 예고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의 집안에 내리실 재앙에 대해서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을 삼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한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을 멸시한 두 아들의 행위를 문제 삼았습니다. 더불어 그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긴 엘리의 태도를 책망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에 영원히 보장해 주신 것을 무효화 시키십니다. 약속을 뒤집은 것이지요. 그 근거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멸시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 구체적인 결과로 그 집 안에 노인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엘리 집안의 사람들이 젊어서 죽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을 예언해 주십니다. 즉 엘리 가문의 멸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제사장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를 위해 견곤한 집을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실한 제사장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가까이는 사무엘이라고 보고 멀리는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9절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책망을 받고 있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두 아들이 제사와 제물을 함부로 했고 심지어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버젓이 행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두 아들이 그런 심각한 잘못을 함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엘리 제사장의 잘못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지적의 내용이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이 잘못이 심하고 사람들이 그 잘못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불러다 놓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통제가 되지 않는 아들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한 번의 문제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바로 ‘엘리가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꼈는데 오히려 아들을 망치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녀를 보면서 그 아버지가 그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면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조차 함부로 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아버지에게 자신은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엘리의 두 아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큰 사랑을 보여준 것인데 오히려 두 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도록 권면하고 때로는 책망하며 양육하는 것이 그 자녀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아버지를 존중하며 자라게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자녀들 더 사랑하여 자녀들이 하나님을 법을 무시하는 때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행동을 방치한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릇된 생각을 집어넣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할 듯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법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을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우리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도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보다 더 큰 법과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이 최고란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가장 높은 기준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자녀를 위한 사랑도 그 기준에 기초한 것임을 보여주어야 자녀들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시되 하나님의 말씀에 더 큰 권위를 가지고 사랑으로 양육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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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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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11-21

제목: 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신앙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3. 본문읽기: 삼상 2:11-21

 

4. 본문의 내용

사무엘이 젖을 뗀 후에 한나는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사무엘을 구별하여 드립니다. 그 이후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의 가정에서 자란다고 모두 경건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도 제사장이었지만 행실이 나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12절) 

 

엘리의 두 아들은 무엇보다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함부로 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물을 가져와 제사를 드리고 나서 그 고기를 삶을 때 제사장의 사환들이 와서는 임의대로 세 살 갈고리에 걸려 올라오는 고기를 제사장의 몫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취해야 할 고기의 부위가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갈고리에 걸려 올라오는 아무 부위나 챙겨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는 제사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제물을 취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람들이 반드시 기름을 태운 후에 고기를 가져가도록 사정을 해도 그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억지로 고기를 빼앗아 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당시가 사사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도록 해야 할 제사장이 이와 같이 제사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실로 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다라’(17절)라고 기록합니다. 

 

반면 어린 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매년 제사 드리러 올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사무엘에게 주었습니다. 사무엘과 떨어져 있지만 매년 커가는 사무엘을 생각하며 옷을 만들고 있을 한나의 행복한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이를 본 엘리는 엘가나와 한나를 축복합니다. 다른 후사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의 축복대로 하나님께서 한나를 돌보사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셨습니다. 아이 사무엘은 이렇게 여호와 앞에서 자라갔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1절 그 아이는(사무엘) 여호와를 섬기니라.(18절.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21절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우리가 사사 시대라고 하면 영적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사기의 내용들을 보면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의 두 아들의 행실을 보면 사사 시대의 모습이 정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치지 말고 봐야 할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시대 속에서도 한나가 있고 사무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녀를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을 때 자신이 서원한 대로 그 소중한 아이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여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해가 지면 하늘은 어두워지지만 그 밤 하늘에도 작은 별들이 빛나고 있음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사무엘은 아이였지만 그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거룩하게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고(18절) 그 앞에서 자라갔습니다.(21절) 사람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환경의 영향만 받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사 시대에 ‘한나’와 같은 인물은 존재할 수 없고, ‘사무엘’과 같은 사람이 세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나에게는 간절함과 기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에 대한 채울 수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영적으로 거듭났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픔이 있습니다. 한나가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매년 제사하러 올 때마다 사무엘의 겉옷을 지어왔습니다. 저는 그 겉옷이 한나의 기도로 지어진 옷이라 생각합니다. 한 땀 한 땀 어머니의 간절함과 소망으로 짜여진 옷이라 믿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자녀에게 기도의 옷을 입혀 주시길 축복합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섬기고 자라갔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려서부터 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도록 교회를 섬기며 자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란다고 모두가 사무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의 두 아들과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무엘과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부모님의 기도와 사랑, 섬겨주시는 교역자와 교사의 섬김과 기도를 함께 받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두운 시대를 탓할 것만이 아니라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앙을 이어갈 수 있고 자라갈 수 있는 영적 싸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와 우리 가정에도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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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6 새벽기도회

본문: 룻기 3:14-4:6

제목: 신앙의 진위를 파악하는 기준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3. 본문읽기: 룻기 3:14-4:6

 

4. 본문의 내용

보아스는 늦은 밤 타작마당으로 찾아와 자신의 발치 이불을 덮고 누운 룻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룻의 현숙함을 신뢰했기 때문에 보아스는 룻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의미로 전달될 때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다는 것도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룻이 이상한 여인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새벽까지 있도록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호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룻은 보아스와 있었던 일을 나오미에게 모두 말합니다. 그리고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오미는 이를 통해 보아스가 최선을 다해 기업 무를 자의 역할을 다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보아스를 믿고 앉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보아스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성문으로 가서 기다렸다가 먼저 기업무를 자(아무개)를 찾아 붙잡아 두었고 장로 10명을 청하여 한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공식적인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보아스는 앞선 기업 무를 자인 아무개에게 나오미가 소유를 팔려고 하니 그것을 살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가 거절하면 자신이 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개라는 사람이 본인이 무르겠다고 답하는 것입니다. // 보아스는 당황했겠지만 물러서지 않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좀 더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나오미에게 그 밭을 사는 날에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잇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러자 아무개는 포기합니다. 자기는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있는 거라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책임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보아스에게 넘깁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장 14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보아스는 선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세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은 룻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는 판단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 상황을 동일하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룻이 밤에 타작마다에서 보아스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전후 상황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먼저 기업 무를 자가 룻과 결혼하려고 할 때 자칫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밤에 보아스와 룻이 같이 있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 일은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이른 아침, 아직 사람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 시간을 이용해 성읍으로 들어가도록 조치를 취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이기에 오히려 세심함을 기울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그런 선한 일이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주변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선한 일을 할 때도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을 도와 준 행위보다 그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인해 감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비참해 지기도 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우리 산울교회 성도님들이 주변에 선한 일을 하되 매우 그 방식에 있어서까지 지혜롭고 아름답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움을 준다는 것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시는 지혜를 얻으시길 축복합니다. 

 

 2) 4장 6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보아스보다 기업 무를 순위에 앞선 아무개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기업을 무르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기업을 무르지 못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 아무개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시대의 평균치는 보아스가 아니라 아무개입니다. 아무개가 나쁜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보아스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무개는 당시에 평범한 사람의 기준이었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오르바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르바가 이기적이고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게 그 당시의 세상 평균인 것입니다. 오히려 보아스와 룻이 특별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우리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믿음과 신앙이 기준이 됩니까? 어쩌면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없는 경우에 한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내가 손해 보는게 없고 내가 희생하는 것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종교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무개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찌인지는 언제 판단되겠습니까? 평상시가 아닙니다. 내가 손해보고 희생하면서까지 주님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의 진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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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새벽기도회

본문: 룻기 3:1-13

제목: 오해를 방지하는 삶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3. 본문읽기: 룻기 3:1-13

 

4. 본문의 내용

룻은 보리추수와 밀 추수가 모두 마쳐질 때까지 보아스의 밭에서 안정적으로 이삭을 주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베들레헴에 올 때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막막했겠지만 막상 하나님의 땅에 와보니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보아스가 있어서 그를 통해 부족하지 않게 지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보리 추수를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오미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나오미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 기업을 무러줄 보아스로 하여금 자기 가족의 기업을 무르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계획을 세웁니다. 보리 타작 마당에서 룻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요구를 하도록 전략을 세웁니다. 보아스로 하여금 가장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일 때를 노립니다. 룻도 그 의 의견에 동의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과정 계획대로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룻이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자리에 누울 때까지 지켜봅니다. 보아스가 곡식 단 더미 끝에 눕는 것을 확인하고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은 모르게 보아스가 누운 곳 발치 이물을 들고 거기 눕 습니다. 보아스는 잠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자 룻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요구할 내용을 말합니다. (9절.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룻은 당황하지 않고 보아스에게 자신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또박또박 설명합니다. 보아스는 룻의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 오해없이 순수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룻의 요구대로 이행하겠노라고 약속해 줍니다. 물론 생각지 못한 변수는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보아스보다 기업 무를 순서가 앞선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책임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할테니 걱정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절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사 시대는 영적으로 매우 우울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던 시대에 자기 자신이 왕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시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 가운데 룻기의 이야기는 특별합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어두운 시대에 반짝 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서로가 서로에게 잘 되기를 축복하고 있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일하던 룻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축복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나오미가 룻을 향해서 말합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1절) 룻이 잘 되어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면 나오미는 홀로 남아 더 힘든 삶을 살게 됨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의 마음은 그저 룻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룻은 나오미를 모시기 위해 충성을 다하고 나오미는 그런 룻이 복을 받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환경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정말 아름다운 관계는 서로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세상이 치열하고 퍽퍽한데 어떻게 그렇게 말랑말랑한 삶을 살수 있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사 시대를 살아가는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는 정말 그렇게 살았습니다. 기회되는 대로 그런 축복의 말을 했고 구체적으로 자신이 잘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복이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복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복이 흘러 넘쳐 우리의 이웃과 세상에 흘러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2) 11절.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남편 잃은 여자가 한 밤중에 남자의 이불을 들추고 그 아래에 가서 눕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일 것입니다. 이상한 여인으로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인 것을 문제 삼고자 한다면 그 하나의 사건 만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가 룻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룻이 그 동안 보여주었던 행실 때문이었습니다. (11절.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룻의 현숙함과 정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된 것이었습니다. 처음 나오미를 섬기겠다고 편한 삶을 버리고 낯선 백성들 사이에 온 것부터 시작해서 이삭을 주워 가면서도 나오미를 극진히 섬겼으며, 일을 할 때도 부지런 했으면 소녀들과 함께 다녔으며 젊은 소년들과는 거리를 두며 지내 왔습니다. 정숙하게 살아온 모습을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있었으며 보아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룻이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누운 것이 좀 이상한 행동처럼 보였지만 보아스는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평소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과거 평소 행동이 쌓여 오늘의 내가 평가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잘못한 것에 대해 오늘 혼이 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을 정직하게 순결하게 사는 것은 내일의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가올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정직하게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내가 억울하게 혼나고 있다면 어쩌면 과거의 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오늘 지불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억울하다고 남탓만 하지 마시고 지난 삶을 반성하시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개선하여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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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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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4 새벽기도회

본문: 룻기 2:14-23

제목: 기본에 충실한 성도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3. 본문읽기: 룻기 2:14-23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어제 이야기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축복과 위로의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까지 확보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식사 시간과 식사 이후에 베푼 보아스의 특별한 혜택에 대해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식사할 때가 되었습니다. 보아스와 일꾼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준비해 온 식사를 하고 있었겠지만 룻은 식사를 위해 준비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색하게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그와 같은 룻을 주목해서 보고는 그를 불러서 떡을 먹도록 해주었고 볶은 곡식도 넉넉히 주어 먹도록 했습니다. 식사 후에 다시 일할 때에는 룻으로 하여금 곡식 단 사이에서 줍도록 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리도록 했습니다. 룻에게 더 많은 이삭을 줍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혜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어 룻은 주은 곡식을 가져왔는데 보리가 한 에바쯤 되었습니다. 대략 20리터 정도된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습니다. 나오미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돌봄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일했다는 것을 말하자 나오미는 보아스를 위해 축복의 말을 합니다. (20절.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룻기가 새롭게 알려주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오미의 집 안과 보아스가  특별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집 안과 관련하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대신 사줄 책임이 있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룻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다른 밭에 가거나 소년들 사이에서 일하지 말고 보아스의 밭에서 그의 소녀들과 가까이에 있도록 지침을 줍니다. 룻은 그렇게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마치기까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며 나오미와 함께 거주했다는 것으로 오늘 본문은 마무리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4절 그(보아스)가 볶은 곡식을 주매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아스가 룻에게 볶은 곡식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룻 스스로에게는 먹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주 적은 요기거리 정도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눈치 챈 보아스가 룻을 불러서 식사 하라고 자리를 내 주었고 떡과 함께 볶은 곡식도 주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은혜는 보아스가 그 볶은 곡식을 넉넉히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남을 수 있었습니다. 룻은 그 남은 볶음 곡식을 싸와서 자신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그만큼 넉넉한 양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룻만 배불리 먹을 정도만 주었다면 룻은 충분히 배불리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집에 있는 시어머니를 생각해서 다 먹지 않고 일부를 남겨 놓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염두한 보아스가 룻도 배불리 먹고 넉넉히 챙겨갈 수 있을 만큼 큰 배려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수 많은 무리를 먹게 하시는 기적을 베풀면서 열 두 바구니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모인 무리가 아껴서 조금씩 먹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풍족하게 먹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넉넉히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시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하나님의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기억하시며 믿음으로 크고 넉넉하게 기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2) 20절.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우리는 룻과 보아스가 만났고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해서 나중에 잘 되었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사실은 그 저변에 룻의 가정과 보아스의 가정이 ‘기업 무를 정도로 가까운 친족’이라는 관계가 전제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 전제가 있기 때문에 룻은 보아스에게 기업을 물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고, 보아스도 책임을 다해 자신의 기업 무를 의무를 성실히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룻기는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기업 무를 제도’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봐야합니다.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나오미를 섬기려고 했던 룻과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보아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어져서 어둡고 우울한 사사시대를 넘어 영광스러운 다윗의 시대로 확장되고 부흥하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룻기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의 회복과 부흥은 특별한 기도회를 한다고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효과 좋은 프로그램을 돌린다고 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전부터 늘 해야 하는 것에 우리 자신의 안락함과 유익을 포기하면서라도 끝까지 충성스럽게 순종하여 지켜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배, 성령의 임재를 확인하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기도 아니겠습니까? 늘 일상의 기도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우리 교회가 정한 기도 시간, 새벽에 기도하고 수요일 저녁에 기도하는 그 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나와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성도간의 교제 아니겠습니까?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기본에 충성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길 축복합니다. 거기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은혜가 있길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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