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0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0:24-42

제목: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3. 본문읽기: 삼상 20:24-42

4. 본문의 내용

 

다윗은 들에 숨고 이제 초하루가 되었습니다. 초하루에는 정례적으로 다윗이 왕와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는 날인데 다윗은 사울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왕은 평시와 같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아브넬은 사울 왕의 곁에 앉았습니다. 요나단은 서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첫날 사울은 요나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생각지 못한 부정한 일이 있어서 못 왔나 보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다윗이 보이지 않자 사울은 요나단에게 묻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에 다녀올 것을 자신에게 부탁을 해서 허락해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요나단을 저주하고 다윗을 도망가게 두어서는 사울과 요나단의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라고 질책합니다. 다윗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사울의 속내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이와 같이 화를 내는 사울을 향해서 요나단은 항의 합니다. 다윗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이에 분노한 사울은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요나단도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떴고 그 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윗을 위하여 슬퍼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윗과 약속한 셋째날 요나단은 작은 아이 하나를 데리고 들로 나갑니다. 다윗이 숨어 있는 곳으로 가서 활을 쏘고는 그 아이에게 활을 주워오도록 시킵니다. 요나단은 활을 그 아이 위로 지나게 하여 멀리 쏩니다. 그 아이에게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지체하지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라고 외쳤고 이 모든 소리를 다윗은 다 들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았습니다.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돌려보낸 후 다윗은 숨었던 곳에서 나와 요나단 앞에 절을 세 번 하고 울고 헤어지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맹세하여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니라’라는 상호간의 언약을 확인하고 각각 헤어집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1절.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다윗이 도망치도록 허락해준 요나단을 향해서 사울이 한 말입니다. 사울이 다윗은 왕권의 경쟁상대로 보았음을 드러내주는 표현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그저 감정적으로만 시기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잘되면 잘 될수록 자신의 왕권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품에 두면서 관리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다윗을 제거함으로서 자신의 왕위를 보존할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그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그 모든 계획을 다 망치고 다윗이 도망치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것에 사울은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경쟁자로 봤고 다윗의 편이 아닌 대적자의 자리에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동행하고 있고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셨다는 것을 다 지켜본 사울이 다윗에게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과 대척점에 선 것과 같은 일이 된 것입니다. 요나단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울 왕을 설득해 봤지만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위험한 행위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와 같은 어리석은 결정을 한 것입니다. 다윗을 미워하고 다윗을 경계하여 대적한 것인데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것은 이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양심으로 경고하실 때 그 말씀을 따라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죄는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 42절.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인간적으로 보면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실리적으로 볼 때도 요나단은 사울의 편을 드는 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은 바로 요나단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나단도 다윗 못지않은 용기와 성품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다윗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시기하지 않았고 적으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친구가 되기로 했고 마음으로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인간적인 힘과 권력을 소망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원했고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고 보호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같은 다윗을 보면서 사울의 입장과 요나단의 입장이 전혀 다릅니다. 사울은 다윗의 대적이 되었고 요나단은 다윗의 친구가 되어 영원히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 당시로는 사울의 선택이 맞는 것 같았고 사울이 다윗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력으로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선택은 어리석었고 요나단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고 그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꼭 다윗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윗 일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선택을 받아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요나단처럼 그의 편이 되어 줌으로 하나님의 편에 설수는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과 같은 선택을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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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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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0:1-23

제목: 언약에 충실한 요나단과 다윗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3. 본문읽기: 삼상 20:1-23

4. 본문의 내용

 

사울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윗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그래서 요나단을 통해 사울의 곁에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사울 왕에게서 도망쳐야 할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자신의 무슨 잘못이 있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지 호소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안심시키려 합니다.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모든 일을 자신에게 알리기 때문에 만약 다윗의 생명이 위험해 질 상황이 되면 자신이 책임지고 미리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에 안심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먼저 요나단에게 제안을 합니다. 초하루에 사울 왕 앞에 나아가 식사를 해야 하는데 셋째 날 저녁까지 나가지 않았을 때 사울의 반응이 어떤지를 통해서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판단하고자 합니다. 그 일에 요나단에게 맹약할 것을 요구합니다. 

 

요나단은 들로 나가서 둘 사이에 언약을 맺습니다. 요나단이 사울의 반응이 어떤지 다윗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만약 그리고 사울 왕과 함께 해 주셨던 것처럼 다윗에게도 함께 해 주시길 축복합니다. 더불어 다윗에게 요구합니다. 다윗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요나단과 그 집을 영원히 끊지 않고 보존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상호 이와 같은 내용의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울의 의사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한 서로간의 약속을 정합니다. 초하루를 지나 사흘이 지난 후 사울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돌아와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를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요나단이 활을 쏘고 활을 줍는 아이에게 이쪽에 화살이 떨어져있다고 말하면 ‘안심하고 돌아오라’는 신호고, 만약 아이에게 ‘네 앞쪽에 있다’고 말하거든 도망쳐 네 길로 가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요나단은 진심으로 다윗을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진심으로 다윗이 살게 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절. ...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다윗이 요나단을 향해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지 설명하면서 한 표현입니다. ‘자신에게 죽음이 얼마나 가깝고 급작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불안해 하는 다윗을 요나단은 안심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1) 사울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니 만약 다윗을 죽이고자 한다면 자신이 분명히 그것을 먼저 알게 될 거고 미리 다윗이 피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안심시켜 줍니다.(2절) 그러자 다윗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반문합니다. 사울이 요나단이 다윗을 아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이 슬퍼할까봐 말하지 않고 나를 죽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먼저 요나단에게 하나의 테스트를 제안합니다. 초하루에 식사하러 나가지 않고 셋째 날까지 그리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 때 사울의 반응을 통해 미리 확인해 보자고 합니다. 2) 요나단이 그리 하겠다고 합니다. 결단코 다윗이 죽지 않도록 자신이 미리 알려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또 의심합니다. 사울이 엄하게 말해서 요나단으로 다윗을 만나지 못하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 놓으면 자신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3) 요나단은 평소와 같이 활을 쏘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해서 신호를 삼아 알려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생명의 위협으로 인해 두려움이 많고 의심이 많은 것 같은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다윗의 약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을만한 요나단이 반복적으로 다윗을 안심시켜 주려고 하지만 다윗은 끝까지 믿지 못하고 만일 계획처럼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의심합니다. 저는 다윗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생명의 위협 속에서 이와 같은 불안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목해서 보고 싶은 것은 요나단이 불안해하는 다윗을 안심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설명하고 확신을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왜 믿음이 없냐고 왜 불안해 하냐고 따지기 전에 먼저 상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나단은 불안한 다윗을 안심시켜 주려고 했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온전하게 감당하여 다윗을 사울로부터 구원해 줍니다. (불안해 하는 자녀는 책망이 아니라 품에 안고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용기를 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주님은 부활하신 후 두려움 가운데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싸개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2) 16절.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은 불안해하는 다윗에게 들로 나가서 언약을 맺습니다. 다윗이 죽지 않도록 미리 피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즉 요나단이 다윗의 생명을 담보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으로 하여금 요나단과 그 집의 생명을 담보해 달라는 언약입니다. 실제로 요나단은 그 언약을 지켜 다윗으로 하여금 생명을 살게 했고, 다윗은 훗날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여 요나단의 자식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삼하 9:7) 서로가 서로에게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와 맺은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변하는 언약이고 신실한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의 징표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신실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백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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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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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8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19:1-24

제목: 하나님의 생명싸개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3. 본문읽기: 삼상 19:1-24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사울이 노골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사울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 다윗의 생명이 보존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도록 합니다. 다윗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요나단은 다윗으로 하여금 그 정보를 알려주어 잠시 은밀히 숨어 있도록 돕습니다. 요다난이 사울과 만나 사울을 설득하여 설득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윗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왜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지 따집니다. 다윗은 왕에게 죄를 범한 것이 없고 오히려 선을 행한 자임과 생명을 걸고 블레셋과 싸워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킵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항변에 설득되어 다윗을 죽이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런 맹세를 받아낸 후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제야 다윗은 사울 앞에서 전과 같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의 위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사울은 오히려 다윗을 이 전과 같이 창을 던져 죽이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부리신 악령이 사울에게 접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다윗의 승리에 대한 시기와 질투 혹은 두려움이 사울의 마음을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그 밤에 다윗은 자신의 집으로 도망쳤는데 사울은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 아침에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를 눈치챈 다윗의 아내 미갈(사울의 딸이기도 합니다)은 다윗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 밤에 창에 줄을 달아 내렸고 그 즉시 다윗은 도망칩니다. 미갈은 다윗의 침상에 다른 것들을 넣어서 마치 다윗이 잠자고 있는 것처럼 꾸며놓고 사울의 전령에게는 다윗이 병들어서 사울 왕에게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령들은 이 사실을 사울에게 알렸지만 사울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침상채로 가져오도록 하는데 그 침상에 다윗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사울은 자신을 속인 미갈을 책망했지만 미갈은 다윗이 거짓말을 하도록 협박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제 다윗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도망칩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전후 사정을 다 말합니다. 사무엘은 다윗을 데리고 나욧으로 이동하여 함께 지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이 다윗을 잡아오기 위해 전령을 보냈으니 그 전령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어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잡아오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됨) 나중에 사울이 직접 라마 나욧으로 찾아 갔으나 사울도 역시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서 벗은 몸으로 하루 종일 있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은 위기 속에서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데 그 도움을 준 사람들은 사울의 가장 가까운 인물인 아들 요나단과 딸 미갈 그리고 사울의 정신적 스승인 선지자 사무엘이었던 것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5절. ...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요나단이 사울 왕을 설득하면서 한 말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선을 행한 사람으로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그런 다윗을 아무 죄도 없이 죽이려 하신다면 그것은 오히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범죄하는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비교하여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왕이 그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옳은 일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울은 그 권력을 사사로운 감정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억울하게 쫓기면서도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주변의 부하들은 하나님이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부추겼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차이입니다. 

 

다윗이 다윗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위대한 왕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매일 매일 자신이 다윗이 될지, 아니면 사울이 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사울의 길을 가는 자는 당장은 감정적으로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의 삶도 자신의 삶도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다윗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면 지금 당장은 답답하고 억울한 면도 없지 않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진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제자로 길들여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2) 11절. 미갈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명을 특별히 보호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하지만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사울의 딸 미갈도 선지자 사무엘도 모두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이 오히려 위기의 순간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10:13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라면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생명 싸개로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을 능히 감당해 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도우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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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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