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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절.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절.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절.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고침받기를 원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가 주시하고 있었다. 

2. 예수님은 오히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신듯 하다. 그 손 마른 사람을 한 가운데 일어서라고 하고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질문하시고 그들 스스로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를 답하도록 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무엇이 옳은 일인가?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무엇이 옳은 것이냐?” 무리는 잠잠했지만 그것은 모르거나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아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 

3. 문제의 핵심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에 있는 것이었다. 안식일 규정도 문제가 없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안식일의 본질은 잊고 껍데기를 율법주의적으로 붙잡고 강요하고 있는 이들의 ‘완악함’이 문제인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탄식하시고 노하셨다. 

4. 예수님은 한쪽 손 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하시고 그가 내밀매 손이 회복되게 하셨다. 

5. 이런 현장을 직접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헤롯당과 함께 예수를 죽이는 것에 대한 논의를 한다. 이런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완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왜 굳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심으로 스스로를 생명의 위협에 빠지도록 자처하셨는가? 

  - 예수님은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으시고 손 마른 사람은 긴급한 환자는 아니기 때문에 다음날 오라고 해서 고치셔도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괜한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고, 실속도 있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안식일에 그 병자를 공개적으로 고치심을 통해 ‘안식일이 무엇을 위한 날’인지, ‘하나님이 왜 안식일 규정을 주셨는지’ 명확하게 알리기 원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안식일,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것 만큼 좋은 효과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바리새인들은 그 손 마른 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더욱 효과적)

2. 과연 안식일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날인가? 

  - 안식일은 구별된 날로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날이다.(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처럼)

  - 그러나 안식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 날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나 선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날이다.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것처럼.

3. 예수님께서 탄식하시며 분노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완악함이다. 가르쳐주어도 듣지 않고, 깨닫게 해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완악함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옳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귀를 닫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서 주님은 탄식하시고 분노하신다. 

[묵상하기]

1. 안식일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확장, 자신의 번영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여주는 날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회적 선을 행함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 땅에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일꾼으로서의 충성을 보여주는 날이어야 하는 것이다.    

2. 사람들이 죄 때문에 망하는게 아니다.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죄를 숨기고 부정하고 죄를 드러낸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완악함이 결국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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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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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하기]

21절.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절.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절.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절.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절.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절.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성경내용 정리하기]

1. 마가복음은 여전히 사건 전개가 급하게 진행되는 형식으로 전한다. ‘곧’ 안식일이 되었고(21절)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게 되었다.(28절) 

2. 안식일 회당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첫째는 그의 가르침에 대한 것이었다.(22절) 예수의 가르침은 권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 형식적이거나 뻔한 내용의 반복이 아니었다. 그 가르침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었다.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울림이 있는 말씀으로 생명력이 느껴지는 가르침이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가르침이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두번째는 그의 권세있는 말씀(귀신에게 명한즉 귀신도 순종하게 되는)이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단순히 깊은 통찰이나 깨우침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권위’(말을 하면 그 말대로 되는. 심지어 귀신조차도)있는 새 교훈인 것이다.(27절)

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가르침과 귀신을 내쫓는 말씀은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게 되었다. 어둠은 빛을 감출수 없듯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 가르침과 권위는 순식간에 온 갈릴리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질문하기]

1.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시작된 일을 정리해 보자.

제일 처음 하신 것은 갈릴리에서 제자를 부르신 것이었다.(부름받은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 그 이후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 권위있는 말씀(귀신을 쫓아내심)을 행하셨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공동점이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에 대한 반응(순종)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 주님의 사람(백성. 12명의 제자)이 부르심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심지어 귀신조차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 예수님이 말씀으로 귀신에게 명한즉 귀신이 나가게 된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귀신을 내쫓는 사건은 단순한 치유사역과 구별된다. 귀신을 내쫓았다고 말하지 않고 귀신에게 명한즉 순종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귀신 조차도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모든 사람이 순종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대적자, 인간의 대적자인 귀신까지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는 순종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에까지 미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묵상하기]

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14절) 그리고 첫 사역은 향후 12사도가 될 제자를 부르신 것이었고, 가르침(율법과 대비되는)을 주셨고, 권위있는 일(귀신에게 명하고 귀신이 순종하는)을 하셨다. 이 일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말씀하시면 바로 순종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 일은 신속하게 확장되었다.(말씀에 권세가 있다는 것과 귀신을 내쫓았다는 것은 소문으로 갈릴리 사방에 퍼져나갔다.)

공생애를 시작하자 거침없이, 신속하게 예수님의 영역이 확장되고 실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가복음은 1장은 진행된다. 사람들의 불순종과 무지 그리고 귀신들의 방해로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해왔던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과 함께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귀신들의 방해에서 귀신들을 내쫓음으로 전환되었음을 마가복음 1장은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2.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많은 노력이 열매를 거둘 수 없지만, 정권이 바뀌고 나면 그 동안 쌓여왔던 적폐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이전의 권세를 대체하고 새로운 왕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그동안 결실을 맺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실행해 나가시는 것이다. 그 시작을 보여주시는 장면이라 하겠다. 아직 모든 영역에 그 질서를 실현한 것은 아니지만, 시작되었고 완성될 것을 보여준다. 

3. 우리는 지금 그 시작을 과거에 두고 있고, 그 완성을 미래에 두고 있다. 그 시작을 믿는 자는 완성을 확신해야 하며 그 완성을 믿기에 오늘을 흔들림없이(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를 믿지 못하는 자가 미래를 논할 수 없다. 과거의 시작을 믿지 못하는 미래의 완성을 확신할 수 없고 당연히 오늘의 믿음이라는 것도 시련과 유혹에 쉽게 무너지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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