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자료에 대한 견해 차이.


1. 영상

Life - Venus Flytraps: Jaws of Death - BBC One



진화론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자료를 통해서 지적설계를 부정할 것으로 예상한다. 왜냐하면 너무 잔혹해 보이니까... 이런 식으로 설계를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료로 말하지 않을까 싶다.



2. 창조과학자들은 지적 설계의 근거로 이야기 한다.

          출처: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08


벌레잡이 식물의 기원 
: 진화론의 끈적끈적한 문제 
(Flytrap Origins: A Sticky Problem for Evolution)
Brian Thomas

    파리지옥(Venus flytraps)은 육식 식물(carnivorous plants)이다. 그들은 매우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1/3초 보다 적은 시간에 곤충을 낚아챌 수 있도록 정확히 방아쇠가 당겨지는 잎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기원은 진화 식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만약 그들의 정교하고 독특한 덫에 가두는 문(trap doors)들이 진화된 것이라면, 그들은 어떤 식물로부터 진화되었으며, 어떻게 진화되었는가?

New Phytologist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어떻게 파리지옥과 벌레먹이말(waterwheel)과 같은 포획 식물(snap-trap plants)들이 끈적끈적한 덫(sticky traps)을 가지고 있던 식충식물로부터 진화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시나리오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그 포획형 식물들은 끈적끈적한 덫을 가진 식물들과 구별되는 여러 주요한 혁신적 발명품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거기에는 방아쇠 털, 가장자리 이빨들, 끈적끈적한 촉수의 소실, 움푹 들어간 소화액 분비선, 빠른 잎의 운동들이 생겨나야만 했다.[1]    

하지만, 이들보다 더 많은 것들이 식물의 독특한 식사 메커니즘을 위해 필요하다. 벌레를 잡는 문은 특별한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그리고 거울과 같이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가장자리는 소화시킬 먹이 둘레를 밀봉시킬 수 있도록 되어있다. 문의 빠른 폐쇄는 덫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는 무수한 미세한 칼슘 이온 펌프들을 가진, 정확하게 균형잡힌 3차원적 구조의 공동 동작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또한 그 문의 가장자리는 포획된 벌레를 가둘 수 있도록 서로 맞물려지는 정확한 길이와 강도를 가진 섬모들을 가지고 있다.

그 덫의 재설정은 대사 에너지를 요구하는 과정임으로, 문은 천천히 열려진다. 따라서 그 덫은 먹을 수 있는 물질에 대해서만 닫혀지는 것이 중요하다. 파리지옥은 위치적으로 가장 적절한 곳인 잎의 문 기저 부위에 고도로 민감한 탐지기들을 가지고 있다. 이 탐지기들은 숲에서 떨어지는 다른 이물질 조각들과 파리를 구별하고, 방아쇠와 연결되어 있다. 파리지옥의 소화액 분비선들은 수확된 여러 종류의 영양분들로부터 특화된 단백질 칵테일을 제조한다. 그래서 결국 곤충의 빈 외골격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파리지옥이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 비축소적 복잡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 한 요소라도 없다면, 전체 시스템은 전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즉 구성요소들이 하나씩 진화로 생겨나서는 전혀 기능을 할 수 없고, 동시에 모두 같이 생겨나야한다). 예를 들어, 포획식물이 먹을 수 없는 이물질들을 곤충과 구별할 수 없다면, 숲의 다른 조각들도 그 문의 폐쇄를 시발하였을 것이고, 이것은 아무런 영양분도 얻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포획식물은 그러한 노동으로부터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하고 몇 번씩 재장전을 해야 했을 것이다.[2]      

따라서 벌레를 잡기 위해서는 벌레잡이 식물의 특화된 각 부분들은 모두 동시에 제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윈의 진화론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각 구성요소들이 점진적으로 진화되었다는 주장은 기각되는 것이다. 오히려 벌레잡이 식물의 놀라운 모습들은 전체 메커니즘이 한 초월적인 지적존재에 의해서 설계되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 식물은 일종의 진화적 탐욕에 의해서, 즉 ”커다란 먹이의 포획은 커다란 보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동기화되고, 자연선택을 통해서 놀라운 모습들을 발달시켰다”고 제안하였다.[3] 커다란 곤충들의 유인은 파리지옥을 스스로 건설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더 큰 동물을 사냥하고 먹으려는 필요가 식물들의 진화를 추진했다면, 왜 코끼리지옥은 없는 것인가?    
 
단순한 선택적 압력은 끈적끈적한 식물이 포획식물로 변하는데 필요한 일련의 생물학적 변화들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한 파리지옥이 진화되기 위해서는 벌레를 가두는데 필요한 구조들을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유전정보의 획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보(information)는 어떤 지성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무작위적이고 우연한 자연적 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 연구의 저자들은 벌레잡이 식물의 먹이포획 시스템에 필요한 특별한 구조들이 점차적으로 진화했다는 우아하고 완전히 공상적인 단계적 과정들을 제안하고 있었다. 과학적 연구로서 포장되고 있지만, 그들의 제안은 단지 진화론적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이들 식물들의 기원에 관한 의구심에 대해 어떠한 과학적 이유나 다른 근거를 제시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었다. 파리지옥과 같은 육식식물은 복제실수인 돌연변이들로 인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지성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다.  

 

References

[1] Gibson, T. C. and D. M. Waller. 2009. Evolving Darwin’s ‘most wonderful’ plant: ecological steps to a snap-trap. New Phytologist. 183 (3): 575. 
[2] The number varies and depends on the rate of triggering. 
[3] Walker, M. Venus flytrap origins uncovered. BBC News. Posted on news.bbc.co.uk/ July 20, 2009, accessed July 30, 2009.

 

출처 : ICR News, 2009. 8. 14. 
URL : http://www.icr.org/article/4833/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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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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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렸던 글에서 언급했던 '예전에 복클에서 썼던 글'입니다.
조금 다듬고 추가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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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진화 논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창조론의 영어 표현이 'Theory of Creation'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창조론'에 대응되는 영어 표현은 'Doctrine of Creation'입니다. (Doctrine : 교리) 즉, 창조론은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등 기독교의 여러 '교리이론'의 한 영역인 것입니다.

네이버 사전만 찾아봐도 바로잡을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오해 때문에 쓸 데 없이 논의가 꼬이고 감정이 상하고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이 오해로 인해 발생되는 대표적인 문제들을 짚어 보자면...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오해와 갈등은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고, 다시 말해서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면 아주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1. 많은 개신교인들이 이런 논리를 내세우곤 합니다.
"창조론도 이론(Theory)이고 진화론도 이론이다. (진화'법칙'이 아니고 진화'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우세하다고 할 수 없다." (응용 : "과학교과서에서 동등한 비중을 두고 가르쳐야 한다.")
(1) 이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창조론은 'Theory'(과학이론)가 아니고 'Doctrine'(교리이론)이거든요.
(2) 그리고 이건 과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과학적 권위가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부여되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 단적인 예로, 뉴튼이 제창한 만유인력의 '법칙'(혹은 중력법칙)은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창하고 이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면서 완전하지 못하다는 게 입증되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만유인력의법칙에 비해서는 훨씬 정확하고 정교하다는 것이죠.)
- 드 브로이가 제창한 '물질파 가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물리 과정에서도 잠깐 나옵니다.) 사실상 현대 양자역학의 전제조건이 되는 이론이고, 당연히 실험적으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 일반상대성'이론'에는 (양자역학과의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물질파 '가설'은 그런 거 없습니다.
- 이 사례들만 보면 오히려 '가설(물질파 가설)>이론(일반상대성이론)>법칙(만유인력의 법칙)' 순서로 진리에 가까운 것 같네요.(!!)
다시 말하지만, 과학에서 꼭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권위가 있고 진리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아닙니다.

2. 개신교 측의 이런 어리석은 주장들 때문에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이런 반대 논리를 내세웁니다.
"창조론을 어떻게 이론(Theory)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과학이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요건도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이라고 하면 안되고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
(1) 당연히 창조론을 Theory라고 할 수 없죠. 창조론은 Doctrine이니까요.
(2)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서 '설'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가설', 그리고 하나는 '설화'. 그런데 둘 다 이 논의에서 유의미한 접근이 못됩니다.
- '가설'의 경우 : 앞에서 말한 '법칙/이론/가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가설이라고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창조론은 '가설'이라고 부르기에도 적합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애초에 창조론은 Theory가 아니죠.)
- '설화'의 경우 : 차라리 이 쪽은 교리(Doctrine)로서의 창조론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창조론을 깎아 내려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감정적 만족 이외에 실제 논의에서의 실익은 없습니다. 애초에 창조론이 과학이론으로서 진화론과 대립하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어제 글에서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과 대립관계에 있는 창조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창조과학'이라는 것입니다.)

3. 원래 이렇게 민감한 토론에서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하면 으레 논의가 겉돌고 유의미한 결론에 다다르기 어려운 것이 보통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간단한 사실관계만 바로잡아도(네이버 영어사전만 한 번 찾아봐도...ㅠㅠ)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너도나도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기독인이든 비기독인이든 이 사실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전혀 본질적이지 않은 이 문제로 박터지게 싸우느라 정작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4. 창조과학에 동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창조과학이 창조론의 동의어(혹은 전부)인 마냥 여겨지고 있는 현실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갈등들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4-1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어떤 방식으로'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바로 '창조론'이라고 하는 영역일 것입니다. 성경관과 세계관에 따라 창조론의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떤 방식이든 간에'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정해버리면 기독교 신앙이 성립될 여지가 없거나 심각하게 왜곡된 형태의 신앙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4-2. 바로 이것이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동일시하는 것의 가장 큰 위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이 개신교 창조론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약 창조과학과 진화론과의 대립구조에서 창조과학이 진화론에 비해 훨씬 열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창조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 혹은 성경에 대한 신뢰가 창조과학에 대한 신뢰로 잘못 연결되어 다양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실제로 굉장히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결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쉽게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섞어서 부르는 기독인들의 습관은 고쳐져야 하며(예를 들어서, 어제 글에서 차성훈님께서 제안하신 것인데, 창조론 대신 창조신학이라고 바꿔서 부르는 것도 좋은 시도인 것 같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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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하여 10년 만인 2003년에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31억 개의 유전사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를 완성한 <프랜시스 S. 콜린스>의 글을 통해서 볼 때, 현재 과학자들이 믿는 진화론적 확신은 보수적 창조론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확고하고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 보인다. 콜린스도 신을 믿는 유신론자이지만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쓴 것을 볼때,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 진화론은 확고부동한 논리로 여겨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적 진화론자가 아닌 유신론적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학을 하는 학자들에게 진화론은 학문적 기본 토대라는 것이다. 이것인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직면해야 할 내용이다.


------------------------(책 내용 중 일부)


1. 오늘날 그 어떤 진지한 생물학자도 생명의 경이로운 복잡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는 진화론을 의심치 않는다. 사실 모든 종이 진화 메커니즘 안에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생물을 이해하는 데 워낙 중요한 기초가 되기 때문에 진화론을 생각하지 않고, 생명을 연구하리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적 탐구영역 가운데 다윈의 혁명적 통찰력만큼 종교적 견해와 마찰을 일으킨 영역이 또 있을까? 1925년에 일어난 스콥스의 '원숭이 재판'부터, 오늘날 미국 학교에서 진화론 수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 이르기까지, 양쪽의 싸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p.104)



2. 현재 활동하는 거의 모든 생물학자들은 다윈이 말한 변이와 자연선택이 기본적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이론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유전학을 연구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다윈의 이론이 기초가 되지 않았던들 게놈 연구에서 지금 같은 방대한 자료를 얻기란 불가능했다. (p.144)



3. 어쩌면 진화론에서 '론(theory)'이라는 단어를 오해해 이런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비평가들은 전화가 "단지 이론일 뿐"이라는 점을 즐겨 지적하는데, '이론'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가진 <<펑크앤드왜늘스>> 사전을 보면 'theory(이론, 학설)'에 다음 두 정의를 달아놓았다. 


"(1) 추측 또는 억측에서 나온 견해 (2) 과학, 예술 등의 밑바탕에 깔린 근본 원칙. 예) 음악이론, 방정식론."


과학자들이 진화론이라고 할 때는 중력이론 또는 전염병에 관한 세균이론 등을 말할 때처럼 (2)번 뜻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론' 또는 '설'은 불확실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을 드러낼 때 과학자들은 '가설'이라는 말을 쓴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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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 양승훈, SFC, p100.

다윈의 업적은 진화론을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진화론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유럽 지성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다. 다윈이 어린 시절을 보낼 때 이미 유럽에는 우리가 충분히 진화론자라고 부를 수 있는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사람들은 진화론을 '다윈 혁명"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윈이 진화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윈은 어떻게 생명체가 초자연적인 창조주의 직접적인 간섭이나 감독 없이 진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다윈이 제안한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메커니즘은 단순한 개념이긴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함의를 갖는 말이기도 했다.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은 당시 사회에 진화론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사실 사람들은 진화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초월적인 목적이라는 개념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의 전통과는 어느 정도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신앙적으로 헌신되어 있으면서도 진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신앙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다윈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정통 교회의 신관을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이 자연계의 배후에는 어떤 종류의 신적인 지성이 있을 거라는데 의심하지 않았다....(중략) ... 하지만 다윈은 종래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이 생명의 발생과 관련하여 스스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제시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다윈 이론은 생물 세계, 나아가 이 우주 뒤에 어떤 목적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개인적 정리]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충격은 진화론이라는 논리라기 보다는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 선택_신적 간섭이 아닌 신을 배제한 자연의 선택으로만 진화한다는 논리>으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어정쩡한 <이신론>자들로 하여금 <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이성적 변명>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자연 선택>은 세상의 다양한 현상(생물의 기원을 넘어서)을 해석하는 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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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공룡이 함께 공존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는 그림이라네요.

요즘 창조과학회와 진화론자들간에 교과서에서 시조새의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 빼게 해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진데 대한 논쟁이 있나 봅니다.

주요 일간지에서 진화론에 문제제기하는 논의가 있다는 것을 보도하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창조론자들의 반박도 있고요.. 참고할만한 주제네요. 

http://zum.com/#!/news=036201207012946416&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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