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가 읽은 모세의 말씀을 읽고는 백성들은 울고 말았지요. 그러나 충분히 회개하고 울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성일 이었고, 즐거운 날이어야 했으니까요. 먹고 마시며 즐기는 날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초막절의 7일을 보냈습니다. 초막절이 끝난 것이 일곱째 날 22일(15일부터 일주일을 초막절로 지키니)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일곱째 날 24일이 되었습니다. 절기는 마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회개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일곱째달 24일에 사람들은 다시 모여 온 민족적인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이후에 새로운 언약 체결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다시 구하게 되지요.

 

[1차 정리. 내용정리]

1. 귀환한 유다 백성들의 이스라엘 역사관

  1) 일곱째 달 24일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씀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함.

   (1) 낮의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함

   (2) 낮의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3)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같은 사람들은 단 위에 올라가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2.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함.(5- 37)

  1)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원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합니다.

  2) 옛적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심(7,8절)

  3) 애굽의 고난받는 것을 감찰하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적과 기사로 애굽을 치셨다.

   :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

  4) 시내산에서 강림하셔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셨다. 안식일 알리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셨다. (11-15) 그 땅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여 주셨다.

  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않고 거역했으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사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17절)

  6)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들의 것을 차지하게 하셨으나, 이스라엘이 순종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거역하여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다.(18-26)

  7) 그래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셨다가 그들이 환란때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다시 구원하였으나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이러기를 계속 반복하는 역사를 보냈다. 그래서 결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신 긍휼로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시지는 않았다.(27-31)

  8) 앗수르 이후부터 지금까지 당한 고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소서. 우리는 악을 행하였으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고, 그들이 우리의 소산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심히 곤란하게 되었습니다.(32-37)

3. 재 언약을 약속하는 귀환한 백성들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였나이다.

 

[2차 정리. 성경 내용을 내 것으로 재정리]

에스라가 읽어 준 말씀에 순종하여 귀환한 백성들은 회개했고, 일곱째 날 15일에 7일간 초막절의 절기를 온 마음을 다해서 지켰다.

그리고 초막절이 끝나고 이틀 후 그 달 24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였다. 아마 에스라가 처음 말씀을 읽었을 때, 사람들이 회개의 마음으로 울려고 했던 것(8:8-10)을 성회이기에 즐거워하라고 했었던 것에 대해서 절기를 지나 따로 회개의 날을 잡아 진행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백성들은 우선 이방인과의 절교를 하고, 죄를 회개했다. 한 낮의 사분의 일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여 듣고, 또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께 경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때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레위인들은 이전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들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분인데, 그 분의 언약 속에서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는데.. 그리고 그 분은 성실하게 우리의 필요들을 채우며 인도해주셨는데, 우리 조상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큰 긍휼로 다시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은 돌아오도록 보낸 선지자마저 듣지 않았다. 이런 악순환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결국은 하나님은 앗수르에 손에 이스라엘을 붙였다. 그러나 아주 멸하게 하시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가 충분히 고난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다시 견고한 언약을 다시 세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오니 하나님이여 돌이키시사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반드시 죄의 문제는 퉁치고 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에스라를 통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 때, 이들은 이들이 직면한 이 모든 고난의 역사가 하나님의 징계며, 조상들과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인 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성일이요 기쁨의 날이었다. 이들은 이들의 감정조차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 맞춰 순종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감정이 상하거나, 감정이 흥분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요즘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감정적으로 아팠고 슬펐지만, 이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초막절로 지켰다.

그리고 초막절이 끝났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았던 자신의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갈 수는 없었다. 지도자들도 그것을 알았다.  초막절을 마치고 이틀만에 다시 모였다. 본격적인 회개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종종 회개의 감정을 갖는다. 그러나 그 감정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무뎌진다. 잠시 회개의 내용들을 말한 후, 아니면 그 감정의 때를 놓치고 나면 회개에 대한 의식조차 잊어 버린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는 회개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이다. 통회, 통증있는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의 파장이며, 느낌이었지 우리의 심비에 새겨질만한 아픔이 없는 죄책감이기 때문이다. 귀환한 이들은 그런 회개는 아니었다. 이들이 말씀을 들었을 때 깨달았던 본인들의 죄는 거대한 파도같아서 자신을 덮쳐왔고, 그 충격과 감정은 우리의 이성에 새겨지는 아픔이었다.

절기를 마친후 이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모인 것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쉽게 죄를 잊는 것이 아니라, 쉽게 죄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 아픔과 파장과 파멸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복음이 복음으로 우리 안에 계속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죄의 아픔과 크기를 잊게 하는 복음이 우리를 방종으로, 무례함으로 교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인하여

긍휼이란 단어 만으로도 호의가 느껴진다. 그런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에 <크신>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긍휼>이란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신 긍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긍휼을 베푸셨는지... 얼마나 많은 거절과 완고함과 교만에 대해서 다시 긍휼을 베푸셨는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긍휼하시다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긍휼은 참으로 크다라고 놀라고 감탄하고 경배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은 긍휼하시다는 말씀에 그나마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의 큰 죄를 덮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는 큰 긍휼을 성경은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우리의 큰 죄 <<<<< 하나님의 크신 긍휼

믿는 자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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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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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8장에 와서 지도자에서 백성으로 중심 축이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지도자 느헤미야를 통해서 진행되던 예루살렘의 회복은 마지막 백성들의 움직임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 본문입니다.

 

[정리 1. 내용 정리]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모세의 율법을 가져오기를 청했다.

  1) 일곱째 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를 불러 모세의 율법 가져오기를 청했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는 율법책을 가지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서다.

  3) 에스라는 나무로 만든 강단에 섰고, 백성 앞에서 말씀을 펴니 모든 백성이 일어났다.

  4) 에스라가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고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굽혀 경배했다.

  5)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레위인들은 그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해석해 주었다.

  6) 그 말씀을 깨달은 백성들은 모두 한결같이 울었다.

  7) 느헤미야는 오늘은 하나님의 성일이니 울지 말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고 요청한다.

  8) 레위 사람들도 백성을 정숙하게 하고는 오늘은 성일이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함.

2. 이튿날 또 다시 백성의 지도자들은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임.

  1) 에스라는 말씀 속에서 초막절 절기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그 말씀대로 행할 것을 요청.

  2) 백성들은 초막절 규례에 따라 무성한 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짓고 이레를 지냄

   : 지붕 위, 뜰 안, 하나님의 전 뜰, 수문 광장,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지음.(16절)

  3) 이와 같은 열심히 초막절을 지킨 것은 여호수아 때부터 그 때까지 없었던 일이다.(17절)

  4)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다.(18절)

 

[정리2. 내용을 내 방식으로 재 정리]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성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후속 작업을 모두 했다. 지도자를 세우고, 명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여 훗날의 혼돈을 막도록 조치를 취해 놨다. 여기까지는 지도자의 몫이고 느헤미야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의 완전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 느헤미야 8장은 그 완성을 향해 움직인다. 백성들이 스스로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에스라를 청하고 모세의 율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에스라는 그들의 요청에 사람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레위인들은 그것이 잘 깨달아지도록 열심히 중간에서 힘쓴다.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자신과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도 깨달은 것 같다.) 온 백성이 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일임을 강조하고 먹고 마시고 축제의 날이 되도록 요청한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꾼 것이다.

다음날 백성의 지도자들은 다시 에스라를 찾아 온다. 율법의 말씀을 더 알고 싶어서이다. 에스라는 내친김에 초막절을 가르치고, 지금이 초막절을 지켜야 할 때임을 말한다. 백성들은 그 말씀대로 마음을 다해 초막절 절기를 지킨다. 그 열심과 진지함이 얼마나 컸는지, 여호수아 이래로 이처럼 초막절을 지킨 일이 없다고 기록할 정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예루살렘 성벽 공사의 최종적인 마무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이다.

성벽이 재건되고, 그것을 유지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서 마지막으로 완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 성벽도 계보도 제사도 ....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방점은 말씀으로 찍어야 한다. 모든 회복을 마무리하는 과정 속에서 반드시 최종 점검을 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그 교회 공동체 안에 말씀으로 채워짐이 있는가다.

내용없는 껍데기에 속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껍데기에 도취되어 알맹이를 간과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 성장을 교회의 건물과 사람 수와 재정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그 교회와 그 성도의 영혼을 채워줄 말씀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성벽이 있고, 성도도 있고, 재정도 있고 좋은 프로그램과 영상 장비도 갖추었는데, 말씀은 비어있는 교회. 껍데기에 성도도 목사도 모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역사도 있고, 치유도 있고, 기적도 있고, 선교와 지역사회 봉사도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목사는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먹을 것 없는 잔치집처럼, 요란하기만 하고 성도는 모두 굶주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나는 말씀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먹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말씀을 먹고 내가 말씀을 익혀야 한다.

잊으면 안된다. 잊으면 안된다.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

 

2. 말씀을 채우는 일은 느헤미야로부터 시작된 일이 아니라,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서 시작된 일이다.

말씀을 잘 가르치고 먹이는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말씀을 달라고, 우리는 말씀에 갈증이 있다고 요청하고 구해야 하는 사람은 백성들인것처럼 우리 성도여야 한다.

참된 성도는 교회의 시설과 크기와 프로그램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배고픔이 있어야 한다. 목사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을 때에라도 우리에게 말씀을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 성도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요청이 성도인 우리들에게서 부터 나올 때, 이것은 제대로 된 회복이다.

성도들은 말씀을 달라고 삐약거리고, 목사는 그 간절한 요청에 부응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수시로 그들의 입에 넣어주는 교회. 그래서 성도도 말씀을 강건해지고 목사도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할 수 있는 교회.

전도든, 선교든, 지역 봉사든, 제자훈련이든.... 모든 것은 그 후에 생각해 볼 일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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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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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서의 마지막 장이네요. 멀게만 보이던 에스라서도 이제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됩니다. 에스라서의 결론과고 같은 장일텐데... 통곡하던 에스라가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게 될지 봐야 할 듯 합니다.

 

[1차. 본문 내용에 대한 정리로, 소제목으로 나누고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합니다.]

1.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회개할 때, 에스라를 돕는 사람들

1)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나아옴

2) 우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범죄하였으나, 아직 이스라엘에게 소망은 잇다.

3) 하나님의 교훈과 명령을 따라 이방 여인을 다 내보내고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당신이 시작하면,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2. 에스라의 본격적인 행동

1)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맹세함.

2) 에스라가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 거기서 죄를 근심하며 음식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3)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공포했다. 3일내에 모이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고 공포함.

4) 사람들은 3일 이내에 모였고, 그 상황과 큰 비로 인해서 두려워했다.(9절)

3. 에스라의 명령

1) 이방 여인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라.

2) 회중이 큰 소리로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 많은 백성이 모인 것(심각성)과 큰 비로 두려워했다고 함.(13절)

3) 이방 여자에게 결혼한 사람은 기한 내에 모두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하라.

: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라.

4) 아홉째 달 20일에 모이고, 열째 달 초하루에 조사를 시작해서 첫째 달 초하루에 마침

* 이런 에스라의 공포에 반대하는 무리들도 있었다.(15절)

4.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명단

1) 제사장의 무리 중에서도 이방 여인을 아내를 맞은 자들이 있었는데, 속건제를 드림.

: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18절)

2) 레위 자손 중에서도...

3) 노래하는 자 중에서도(성전에서 예배를 섬기는 자들 중에도)

4)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5) 이들 중에는 자녀를 낳은 사람들도 있었다. -끝-

 

[2차. 1차 정리를 토대로 자기 자신의 표현으로 재정리합니다. 내가 그 본문에 대해서 그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전 정보가 있느냐에 따라 개인별 차이가 생기겠죠?]

1.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일어설 염치가 없고, 무력했을 때 그를 독려한 사람은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였다. 그가 에스라에게 나와서 우리가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고 새롭게 언약한다면 소망이 있다고 한 것이다. 에스라 당신이 이 일을 주도해야 할 사람이니, 당신이 시작하면 우리가 돕겠다고 하면서, 에스라를 격려한 것이다.

2. 에스라는 이들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이스라엘에게 이 맹세를 하도록 하기 전에 그는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 온전한 금식을 수행했다. 그리고 힘과 용기를 얻은 후 귀환한 동포들을 3일 이내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명령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재산을 몰수하며 유다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3.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여든 많은 인파에 오히려 놀라고 두려워했다. 더불어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큰 비를 경험하면서 뭔가 하나님의 준엄함을 느낀 것 같다. 에스라가 이들을 향해 어떤 명령을 내리기전 이들은 이미 충분히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노하실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4. 에스라는 이방여인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고, 그것을 속히 시행하며 해당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에스라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는데, 그 명단을 작성하는 일에만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아내를 다시 돌려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중에는 아이문제까지 걸려있어 사실상 온전히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는 것을 본문은 마지막에 살짝 언급한다. 물론 내부적으로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소수이긴 했겠지만 말이다.(15절)

5. 에스라의 개혁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에스라는 어쩌면 그 결과가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와 같은 시도를 했다는 것, 하나님이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싫어한다는 것 정도를 말씀하시려는 것 같다.

 

[3차. 묵상과 적용]

1. 에스라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스가냐'아는 사람이었다. 지도자라도 뛰어난 신앙인이라도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오히려 에스라처럼 더 민망해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지식인이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미리 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스가냐'같은 의지를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돕겠다고 나오면 힘을 얻는다.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지도자다. 그러나 지도자라고 늘 생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절망에 노출되며, 더 높은 벽에 부딪힌다. 이 때 필요한 사람은 바로 스가냐와 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너를 돕겠다고, 힘을 내시라고, 당신이 앞장 서기만 하면 내가 사람들을 이끌어서 당신의 가는 길을 지지하겠노라고...

지도자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중에 복이다. 지도자에게 이런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부족한 2%로다. 평시에는 지도자 혼자도 잘 감당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견디고 이기게 해주는 것은 바로 스가냐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느냐 없느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순간을 위해서라도 지도자는 자기 주변에 예비 '스가냐'를 많이 키워놓아야 한다. 지혜롭다면 위기의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

 

2. 매우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큰 비'라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셨다. '큰 비'는 사람들로 하여금 에스라의 공포를 더욱 효력있는 명령으로 들리게 했다. 이로 인해 어떻게 보면 매우 무리한 요구(이미 결혼한 이방여인들을 돌려보내라는... 한 두 집도 아니고 엄청나게 만은 가정에서 아내를 돌려보내야 했을 것이다.)를 이스라엘로 큰 잡음없이 순종하게 하셨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세운 사람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실 때 전면에 드러나시기 보다는 무대 셋팅을 하신다. 이것이 섭리이면서, 하나님의 계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에 있어서 완전한 무대 연출가라는 것은 이런 것에서도 보게 된다.

 

3. 끊어야 한다. 죄는 끊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끊어야 한다.

  그로 인해 얼마나 큰 손실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끊으라고 한다. 가정 안에 이별이 있고, 부부간의 깨어짐과 분란, 자녀들이 엄마를 잃게 됨과 같은 많은 부작용이 당장 눈에 띄이겠지만, 하나님은 끊으라고 한다. 한 두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될 지라도 하나님은 끊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죄를 끊어야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엄청난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일,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하나님은 끊게 하신다.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무관한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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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9장입니다. 천신막고 끝에 도착한 예루살렘에 와서 들은 첫번째 보고는 참으로 참담한 것입니다. 에스라의 비통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죄라는 것은 그 뿌리가 매우 깊어서 쉽게 뽑히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1차. 본문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재배열 하도록 힘씁니다.]

1. 에스라의 귀환 후에 본 예루살렘의 형편(1-2)

1) 방백들이 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방사람들과 통혼함 고백.

: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을 그 지방 사람들과 섞이게 함.

2) 그 중에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함.

2.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반응(3-5절)

1)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자리에서 떠나지 못함.

2)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이 에스라 주변으로 몰려들게 됨.

3) 에스라는 저녁 제사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아 있다가, 제사 때에 근심 중에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함

3. 에스라의 회개 기도의 내용(6-15절)

1) 하나님 내가 하나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2) 우리가 조상 때부터 이런 죄악을 행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왕들의 손에 우리를 넘겼습니다.

3) 그런데 하나님께 우리에게 잠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돌아오게 하시고 소생케 하셨는데(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울타리가 있게 해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또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10절)

4) 또 다시 이방인과 통혼함으로 말미암아, 더럽게 하였으니 우리 중에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2차. 정리한 내용을 이제 자신의 것으로 다시 정리합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메시지의 크기와 집중도에 따라 재배열한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1.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로 2차 귀환한 에스라. 어려움을 극복하며 예루살렘으로 왔지만, 예루살렘에서 들은 그곳의 형편은 참담한 것이다. 성전만 회복되어 있지, 이들의 삶이라는 것은 전에 조상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우상 숭배와 통혼으로 인해 하나님의 땅과 백성을 더럽혔던 선조들의 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우상 숭배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들은 이방 여인을 아내와 며느리로 맞아들인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일을 방백들과 고관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앞서서 행하고 있는 것이다.

2. 이런 현실 앞에서 에스라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털과 수염을 뜯는 것 말고, 자리에 맥없이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에스라는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한다.

3. 기도의 내용이란 무엇인가? 기도하기에도 부끄럽습니다. 감히 부끄러워서, 죄송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이전의 선조들의 죄로 진노하셨다가, 자비를 베푸셔서 그 중에 남은 자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인데 그 은혜를 받은 우리가 또 다시 그와 같은 일을 백주대낮에 하고 있으니.. 하나님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이 에스라의 기도 내용이다.

4. 아,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이 민족은 어쩌란 말이냐? 한두 번도 아니고, 다시 한 번 살려달라고 기도조차 할 수 없다.(왜? 살려주면 뭐하냐 또 그렇게 안 된다는 법이 없으니...)

 

[3차.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에 있어서도, 일반 백성들이 지는 죄와 방백과 고관들이(제사장과 레위인까지) 주도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상당히 차원이 다르다.(2절)

  백성들이 죄를 짓는 경우라도, 그것을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고관과 종교 지도자들이 바르다면, 백성들의 죄는 시정되거나 충분히 견제 될 수 있다. 따라서 쉽게 확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관과 종교 지도자들이 그 죄에 있어서 으뜸이 된다는 것은 그 죄를 막을 제어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사회는 자생적인 회복이 불가능하다. 이런 사회는 결국 민초들의 폭동으로 전복되는 결과 말고는 다른 변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에스라는 귀환한 공동체에서 이런 모습을 본 것이다. 권세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권세를 맡기신 하나님의 뜻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어하라는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틀 아래에서 우리는 권세에 순복해야 한다. 그러나 권세가 악을 조장하고, 불의를 일삼으며 오히려 정의를 왜곡하는 자의 편에 서서 의를 버리고, 거짓을 조장한다면... 도대체 그 권세을 따라야 할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 권세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와 같은 권세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위해서 주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롬 12장에서 말하는 정당한 국가 권세에 대한 말씀이 과연 여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도층의 타락, 특히 불의를 조장하고 거짓으로 약한 자의 작은 것까지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리거나, 그것을 돕는 권세는 브레이크 없는 덤프 트럭과 같다. 

 

2. 귀환한 백성들도 역시, 우리 안에 있는 뿌리깊은 죄

 귀환한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스라나 느헤미야나 처음 장면과 달린 마지막 장면은 우울하다.  구별되고 선별된 백성이었지만, 결국은 선조와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회복시키셨는데도 그리고 그 중에서 엄선된 사람들, 엄선된 백성들인데도 결국은 또 원래의 모습(죄의 지배를 받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스라가 다시 노력하고, 느헤미야가 다시 노력하지만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제 혈연적으로 남겨진 백성만으로는 진정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이들도 답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스라엘을 회보시킬 것인가?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인가? 돌아온 유다 백성도 아니라면, 에스라도 느헤미야도 아니라면 누가 모세의 뒤를 이은 선지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인가? 

이런 궁금증과 두려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시는 것은 아닌가 본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언약백성들이 가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세로은 세계를 열고 등장하시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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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늘은 에스라 8장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읽을 때 저자의 진행속도에 우리 자신도 맞춰야 합니다. 저자가 빨리 지나가면 전체적인 큰 흐름만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매우 천천히 이것 저것 꼼꼼히 보고 지나간다면 우리도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할 말이 있어서 빨리 감기를 하기도 하고 더디게 감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저자의 의도를 알고 그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기만 하면 된다.

 

[1차. 본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라]

1.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의 계보(1-14절)

2. 모인 백성 중에서 레위인이 없음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특별히 찾아 냄(15절)

1)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서 3일간 머무르며 백성과 제사장을 살핌(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음)

2) 에스라가 느디님 사람들을 통해 레위인들을 찾아 오라고 요청. 레위인을 찾아 옴

3. 에스라가 출발 전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겸비하여 기도함(21절)

1)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왕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22)

2) 그러나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 평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3) 에스라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그 응답을 받았다.

4. 성전에 바칠 예물은 책임자를 정해서 따로 운반하도록 임무를 맡기다.

1)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 12명을 따로 세워서 성전을 위해 드린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맡김

2) 예루살렘 성전의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5. 하나님께서 에스라와 귀환 유다인들을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다.(31-36)

1)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와 무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셨다.

2) 예루살렘의 제사장에게 금, 은 그리고 그릇을 무게를 달아보고 건네주었다.

3)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4) 에스라가 왕의 조서를 유다 총독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주자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다.

 

[2차. 본문의 내용을 내가 정리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재정리] 이 때, 내용은 더욱 간단 명료해져야 하고, 강조점은 좀 더 선명해 져야 한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과 지원받고 예루살렘에서 오기 전 준비와 도착해서 제사드리는 모습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출발하기 전 세 가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첫째는 레위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레위인을 찾아오도록 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에스라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필수적인 사람을 꼼꼼히 체크했고,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들을 채워서 귀환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성전에 드려진 은과 금, 그리고 그릇들을 잘 운반하기위해 제사장 중 12명을 따로 뽑아서 그들에게는 특수한 임무를 주었다는 것이다. 귀환하면서 에스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성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셋째는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에스라의 인식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에스라가 왕에게 자신들을 호위해 줄 말과 마병을 요구했다면 왕은 허락해 주었을 것이다. 그라나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이 왕의 호위병을 의지해야지만 안전할 수 있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왕의 호위병을 거절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웠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금식하고 간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다.

도착하자 주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성전을 돕는 역할을 했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이방 땅에서 귀환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성전 기물 그리고 제사(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중요성이 매우 대두된다.

   : 성전, 제사, 제사장, 레위인... 귀환 공동체를 생각할 때 이 요소들에 대해 잘 관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면서 잃어버린 결정적인 것은 나라 이전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 제사>다.

2. 에스라라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자가 귀환하여 돌아오는 과정을 잘 진행한다.

  1) 돌아오는 사람의 계보를 파악해서, 레위인이 부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채워서 데려갔다.

  2) 성전을 위해 드린 금은 그릇은 또 따로 제사장을 세워 책임지도록 했다.

  3) 안전을 위해서 왕의 힘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 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유다 백성을 건저낸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모세와 비견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도움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케 하심이라고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 권세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의 도움을 거절할 수 있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아브람이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했던 것처럼(당신의 준 것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우리는 세상의 유익을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와 귀환 백성들을 대적과  매복자들의 손에서 보호해 주시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형통하게 해주셨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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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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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8장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읽을 때 저자의 진행속도에 우리 자신도 맞춰야 합니다. 저자가 빨리 지나가면 전체적인 큰 흐름만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매우 천천히 이것 저것 꼼꼼히 보고 지나간다면 우리도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할 말이 있어서 빨리 감기를 하기도 하고 더디게 감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저자의 의도를 알고 그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기만 하면 된다.

 

[1차. 본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라]

1.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의 계보(1-14절)

2. 모인 백성 중에서 레위인이 없음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특별히 찾아 냄(15절)

1)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서 3일간 머무르며 백성과 제사장을 살핌(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음)

2) 에스라가 느디님 사람들을 통해 레위인들을 찾아 오라고 요청. 레위인을 찾아 옴

3. 에스라가 출발 전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겸비하여 기도함(21절)

1)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왕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22)

2) 그러나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 평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3) 에스라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그 응답을 받았다.

4. 성전에 바칠 예물은 책임자를 정해서 따로 운반하도록 임무를 맡기다.

1)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 12명을 따로 세워서 성전을 위해 드린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맡김

2) 예루살렘 성전의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5. 하나님께서 에스라와 귀환 유다인들을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다.(31-36)

1)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와 무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셨다.

2) 예루살렘의 제사장에게 금, 은 그리고 그릇을 무게를 달아보고 건네주었다.

3)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4) 에스라가 왕의 조서를 유다 총독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주자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다.

 

[2차. 본문의 내용을 내가 정리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재정리] 이 때, 내용은 더욱 간단 명료해져야 하고, 강조점은 좀 더 선명해 져야 한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과 지원받고 예루살렘에서 오기 전 준비와 도착해서 제사드리는 모습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출발하기 전 세 가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첫째는 레위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레위인을 찾아오도록 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에스라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필수적인 사람을 꼼꼼히 체크했고,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들을 채워서 귀환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성전에 드려진 은과 금, 그리고 그릇들을 잘 운반하기위해 제사장 중 12명을 따로 뽑아서 그들에게는 특수한 임무를 주었다는 것이다. 귀환하면서 에스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성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셋째는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에스라의 인식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에스라가 왕에게 자신들을 호위해 줄 말과 마병을 요구했다면 왕은 허락해 주었을 것이다. 그라나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이 왕의 호위병을 의지해야지만 안전할 수 있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왕의 호위병을 거절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웠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금식하고 간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다.

도착하자 주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성전을 돕는 역할을 했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이방 땅에서 귀환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성전 기물 그리고 제사(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중요성이 매우 대두된다.

   : 성전, 제사, 제사장, 레위인... 귀환 공동체를 생각할 때 이 요소들에 대해 잘 관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면서 잃어버린 결정적인 것은 나라 이전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 제사>다.

2. 에스라라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자가 귀환하여 돌아오는 과정을 잘 진행한다.

  1) 돌아오는 사람의 계보를 파악해서, 레위인이 부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채워서 데려갔다.

  2) 성전을 위해 드린 금은 그릇은 또 따로 제사장을 세워 책임지도록 했다.

  3) 안전을 위해서 왕의 힘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 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유다 백성을 건저낸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모세와 비견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도움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케 하심이라고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 권세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의 도움을 거절할 수 있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아브람이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했던 것처럼(당신의 준 것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우리는 세상의 유익을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와 귀환 백성들을 대적과  매복자들의 손에서 보호해 주시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형통하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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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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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7장입니다. 성전 재건에 대한 이야기가 6장까지 나오고, 이제 그 이후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난 아닥사스다 왕 때의 이야기 이면서 동시에 성전 재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구현해줄 에스라의 출현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1차. 성경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정리]

성전건축(주전 516년)으로부터 약 58년이 지난 후의 에스라 이야기(아닥사스다 왕,주전 458년)

1. 성전 건축 후 약 58년 후,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인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5절)

1)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2)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3) 아닥사스다 왕 제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에스라도 함께 올라왔다.

4) 넉달이 걸리는 거리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다.

5)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함.

2.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초본 내용(11절)

1)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가라.

2) 목적: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다.

3)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성심으로 은금의 예물을 드리게 함.

4)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은 모든 은금과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예물을 가져다가 신속히 제물로 사서 하나님의 제단위에 드리고, 남은 것은 좋게 여기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라.

5) 그 외에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궁정 창고에서 내다가 쓰도록 해라.

6) 왕의 명으로 강 건너편 창고지기에게 명하니, 은은 백달란트, 밀은 백 고르, 포도주는 백 밧,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주라고 명함.

7) 귀환하는 유다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지 않도록 하라.

8) 너희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에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9) 네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죄를 정하여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두라.

10)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삼가 행해서 그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지 않도록 하라.

3. 여호와를 찬양하는 에스라

1) 왕의 마음으로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다.

2) 나로 하여금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다.

3)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다.

 

[2차. 1차 정리한 내용과 이전의 흐름, 더 나아가 작성자가 가지는 기초 정보를 기반으로해서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정리한다]

 

1.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다. 아닥사스다 왕 때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어떻게 왕의 은혜를 얻고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특히,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자임과 하나님의 율법으로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보여준다.

2. 이와 같은 그림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 통치하시려고 했던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기억나게 하고 에스라의 역할이 모세의 역할임을 연상케 한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이 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에스라의 귀환을 돕고,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제사 회복을 지원하는 모습은 출애굽 당시 바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론 바로는 자발적인 지원이 아니었다. 아닥사스 왕도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모 종의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다. 2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라는 왕의 고백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내쫓은 것이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아닥사스다 왕도 크게 다르지 않는 이유 속에서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명하는 것 같다.

(딴 이야기지만,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가 애굽에서의 요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

3. 에스라가 아론의 16대 후손이라는 것과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라는 것은 성전 제사와 모세 율법 통치의 회복을 위해, 약 60여년 전에 다시 세워진 성전을 근거로 그 토대를 온전케 하고 확대를 목적으로 한 귀환 공동체를 위한 2차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에스라서는 지금 아닥사스다 왕 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과거 출애굽 역사와 유사한 패턴으로 해석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과거 출애굽 역사를 기억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금과 그 때를 비교해서 보도록 하고, 그것은 지금 이시대가 그 때와 같은 하나님의 때로 전에는 실패한 공동체(제사와 말씀 중심)의 회복의 때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따라서 제사장이면서 율법 학자인 에스라의 귀환은 마치 모세의 등장, 그러면서도 모세보다도 어느 면에서 뛰어난(모세는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는 못했고, 모세는 제사장은 아니었으니...) 존재로서의 에스라를 보여준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람으로 기대된다.

3. 하나님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역사하고 있고, 아닥사스다 왕은 그 일의 종처럼 일한다. 하나님은 아닥사스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가지게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그 위협을 피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이 땅의 권세도 사용하시고, 그들의 두려움도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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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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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성경퀴즈대회를 했습니다. 저도 청년들과 함께 성경퀴즈대회는 오랫만에 하는 듯 합니다. 청년들도 초등학교 시절에 성경퀴즈대회를 하고 처음하는 거라 하더군요. 암튼, 추억을 돋게 만는 성경 퀴즈대회.

본문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로 했고, 2주전에 공지했습니다. 일찌감치 해도 미리 공부를 하지는 않으니 시간을 부족하게 준 것은 아니라 봅니다. ^^

출제는 담당 교역자인 제가 내고, 진행은 청년부의 대표적인 사회자이자 초원대지인 요섭이가 진행했다. 확실히 단조로울 수 있는 성경퀴즈를 재미있게 만들었고, 개인전과 목장전을 함께 운영했다. 혼자 효과음도 내면서 1인 3역쯤 했다.

청년들은 생각보다 많이 참석했고, 준비도 제법 했다. 물론 상금에 대한 욕심이 돋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다들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청년은 에스라-에스더 관련 참고 서적도 보고, 따로 노트도 정리해서 공부하기도 했다.

물론 공부하지 못한 청년들을 배려하여 오픈북으로 진행을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어느 정도 읽고 공부한 사람들이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 높은 것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공부한 사람과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구별해 주는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진행되고 있던 장면들을 사진을 담아 본 것들이다. 참석인원은 약 40명 조금 안된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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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퀴즈 대회를 시작할 때의 장면이다. 요섭이가 설명하고, 자리를 잡은 청년들은 시험에 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저 멀리 한희가 새로산 스맛폰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사진을 찍어 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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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섭이가 진행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명철이와 호건이는 집중하지 않고 사진을 의식하고 있다. 산만한 녀석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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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제. 오 엑스 문제였는데, 처음 문제에 맞춘 사람은 전체 36명에서 5명.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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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3일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했다는 청년. 참고서도 있고 노트에 따로 정리한 것도 가지고 왔다. 이 친구 결국 2등했다. 노력해서 안될 건 없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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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열심히 공부한 청년. 따로 노트한 것을 무릎에 놓고 연신 문제를 푸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를 얻지 못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얼마나 귀하게 보였는지..응원한다. 다음에는 1등 먹을테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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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한 왕의 이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 고레스.  그런데 중간 중간 아닥사스다 왕 이라고 쓴 친구도 적지 않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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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춘사람들은 카메라가 부끄럽지 않다. 당당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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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집계 1등을 달리는 새롭자매. 공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뻔한 소리를 한다. ㅋㅋ 결국 이 청년이 1등을 하는데, 전날 밤 3시까지 읽었다고 합니다. 열심없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암튼, 신새롬의 단기기억력은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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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성경퀴즈대회를 인도해간 1인 3역의 사회자, 박요섭...

사랑해요. 박.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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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흥미를 잃어하는 사람도 있다. 미리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미없는 시간이었을 수 있지만... 참여해준, 자리를 지켜준 당신이 있어서 청년부는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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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더 맞혀보겠다고 성경책을 뒤적이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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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에서 3등까지 상이 있는데, 최후에 4명이 선별되었다. 중요한 순간.. 누가 떨어질 것인가? 1등 신새롬, 2등 인성택, 3등...... 강선영. 3등 친구의 기뻐하는 모습은 뒤에 가서 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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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참고서적까지 동원해서 열심히 공부한 형제가 2등을 차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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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출때는 누구나 기쁘죠?^^ 멋지고 이쁜 예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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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꼴등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꼴등한 친구에서 청년리더들이 선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것도 비싼 성경책을. 다음에는 이 성경책 보고 더 열심히 준비하라고 주었는데.... 꼴찌를 격려해 줄 수 있는 청년, 우리 청년들 말고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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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친구가 마지막 3,4위 전에서 3등한 자매. 3등하고는 절 찾아와서 얼마나 기뻐하든지. 사실 이친구가 제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모두 참석해서 열심히 공부했던 친구인데, 목사님 부끄럽지 않게 자기가 3등했다고 얼마나 기뻐하든지. 물론 저도 기뻤구요. 제 성경공부 제자가 3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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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퀴즈대회 이후 목장별로 성경암송대회를 인도하는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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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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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5장입니다. 주변 민족들의 방해로 인해 13년간 성전 재건을 멈출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지난 4장의 내용입니다. 그럼 성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대로 귀환한 유다인들의 역사는 끝나는가? 아니면 다른 길이 열리는가?

에스라 5장은 성전 재건의 길을 하나님이 다시 열어가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차. 내용정리] 본문 내용을 가능한 충실하게 이해하기 용이하게 정리합니다.

 

1.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1-2절)

1)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함.

2)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도왔다.

2. 성전 재건에 다시 제동을 거는 사람들(3-17절)

1)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관들이 찾아옴.

2) 누구의 허락을 받고 성전을 재건하는가 물었으나, 겁먹지 않고 공사를 계속 했다.

: 과거 고레스의 명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했을 것이고, 그것을 근거로 다시 성전을 재건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3)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다리오 왕에게 조서를 보내, 이들의 말처럼 고레스 왕의 허락을 받아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함.

 

[2차. 내용정리] 이 때는 자기 자신의 말로 바꾸어 정리합니다.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13년간 멈춰있던 성전 공사는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서 다시 시작된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다시 용기를 내었고,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전 재건이라는 목표를 잊어버린 채 자기 자신의 삶에만 집중해버린 돌아온 유다인들의 정체성을 지금이라도 깨우쳐주어야 한다고 본 것일게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앞에서 주도했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옆에서 보조해 주었다. 또한 유다의 장로들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힘을 다했던 것 같다.(5절)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또 다시 성전 재건을 막으려고 왕의 힘을 빌리고, 위협하는 무리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들은 떳떳하게 계속해서 공사를 했으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유다인들의 공사를 막으려고 했던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닷드내와 스달보스내는 당시 왕이었던 <다리오 왕>에게 조서를 보내 유다인들의 말(고레스 왕의 허락을 받았다.)이 진실인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성전 재건을 막을 뿐 아니라 이들을 고소할 조건도 찾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오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공사는 계속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다시 멈추어야 하는가? 성전재건을 위한 하나님의 시작은 있었던 것 같은데 과연 그것은 성취될 것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3차. 묵상/적용] 정리한 내용 속에서 묵상하고 적용할만한 것들을 기록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이 인간적인 방해로 잠시 멈출 수는 있다. 그 일을 맡은 사람들로부터 동력이 나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친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작하게 하신다.

   :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

2.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동원하시어 일을 시작하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방해는 존재한다. 방해하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은 여전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방해와 장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3.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였다.(5절) 하나님의 돌보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슨 외적으로 오는 특별한 보호하심이 아니다. 여기서는 유다 장로들의 마음을 강하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처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에 흔들림이 없게 되어고 오히려 평안하게 자신의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돌보심이란 말의 구체적인 해석이다. 외부의 공격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돌보심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에스라도 재미있는 이야기 서술방식을 가진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가(고레스의 귀환과 성전 기초까지의 상황) 그러다가 뜻 밖의 대적을 만나고, 그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어 성전재건을 중지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13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러다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등장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고 또 전과 비슷한 패턴의 방해를 만나게 되고...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5장을 마친다. 재밌는 한 편의 스토리다. 그의 스토리. 드라마를 만드시는 그의 스토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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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3장입니다.

본문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 내용정리]

1. 귀환한 해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키는 사람들(1절)

1) 예수아와 제사장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율법대로 번제를 드림

2) 무리가 모든 나라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가운데, 터 위에 제단을 만들고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림.

3) 초막절의 규례대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림.

4) 그 이후부터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예물을 드리기 시작함

: 첫 해 초막절부터 조심스럽게 모세의 율법을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

5) 바사 왕 고레스의 명을 따라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기 시작했다.

2. 귀환하고 그 다음해 둘째 달에 비로소 성전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다.(8절)

1) 예수아와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 레위 사람들과 돌아온 사람들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2) 2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 예수아는 레위인으로 성전 공사 감독의 실무자가 되었다.

3)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어 여호와를 찬양함.

4)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5)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오히려 대성통곡함.

6) 기쁨과 슬픔의 소리가 함께 뒤섞여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가지고 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한 반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용면에서는 같지만 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서 내가 발견한 강조점등이 뭍어나게 된다.

 

[2차 내용정리]

예루살렘으로 귀한 한 유다인들은 먼저 명단을 확인하고, 정통 유다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였다. (2장)

그 다음으로 행했던 것은 우선 모세의 율법대로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초월절로부터 터만 남은 곳에 제단을 만들고 거기서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다.(얼마나 긴장하며 두려움가운데 조용히 행했을까.. 상상이 된다.) 그러는 과정 중에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자 그 이후부터는 상번제와 월삯과 절기의 제사를 본격적으로 드리기 시작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번제를 다시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자재를 레바논으로부터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전은 레위인을 중심으로 감독되면서 사람들이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성전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흥분되는 일인가? 함께 찬양을 하며 백성들은 즐거움과 감격에 찬양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옛 성전의 영광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본문은 강조하고 있다.

 

[3차 묵상과 적용]

1. 돌아온 유다인들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믿음 때문에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았다. 신중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자신들의 해야할 것을 행했다.

먼저, 초막절을 지키면서 주변 상황을 살폈다. 큰 이상이 없자 이제는 상번제와 월삯을 드렸다. 그 이후 여러 절기들을 하나씩 지켜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성전 재건에 필요한 자재를 준비했다.

우리도 지혜가 있어야 겠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막무가내로 해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중함과 그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조심성 없이,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일한다면 일은 어려워지고 그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2. 두번째 성전의 재건은 한 편으로는 감사와 감격이요,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이다. 

나라를 잃고 성전도 잃었던 유다인들이 다시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시작으로 성전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감격스럽고 놀라운 기적이지만... 그 영광이 옛 날의 영광(솔로몬 성전)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안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죄의 결과로 인해 받은 피해는 다시 회복되어 원 자리로 돌아왔을지라도, 그 모습이 전과 동일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복의 감격이 있지만, 원 모습으로의 온전한 회복이 아니기 때문에 받게 되는 안타까움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초라한 회복이 오히려 미래의 더 큰 완성(충만한 성전, 완전한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함)을 기대하게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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