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왕기상 2장입니다. 분량으로보면 한 장의 분량이 많은 편이지만 다른 것에 비해서는 그 정리하는 것이 쉽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 형식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야기 형식으로 된 것은 너무 디테일한 표현에 매이지 마시고 인물과 사건의 변화 중심으로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정리1. 내용을 흐름에 따라 정리]

1.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의 내용들(1-12)
  1) 마음을 다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면 이스라엘 왕 위에 오늘 사람이 네게서 끊이지 않음.
  2) 조심해야 할 사람들
   (1) 스루야의 아들 요압: 현재의 군사령관. 불의한 죽임을 많이 행한 자이므로 제거해야 함.
   (2)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 쫓길 때 악독한 말로 저주한 자.
  3) 은혜를 베풀 사람: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라. 피난중 왕의 편에 선자.
  4) 다윗의 40년을 통치하고는 죽고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 앉음.

2. 이전 세력들이 제거됨(13-46)
  1) 아도니야의 죽음: 다윗을 섬기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달라고 요청했다가 죽임을 당함.
  2) 제사장 아비아달의 추방: 마땅히 죽여야 하나, 다윗을 도운 공이 있으므로 제사장 직은 파직하고 고향으로 보내 살게 함.
  3) 군대장관 요압의 죽음: 제사장 아비아달의 소식을 듣고 여호와의 장막으로 가서 제단 곁에 피함. 솔로몬의 명령으로 요압을 죽임
  4) 시므이의 죽음: 시므이는 예루살렘 지역을 떠나면 죽게 될 것이라는 왕의 명령을 소홀이 여겨 예루살렘 밖으로 나갔다가(도망치 종을 잡기 위해) 죽게 됨.

3. 인사 배치를 새롭게 함
  1) 제사장은 아비아달 대신 사독을 임명하고, 군대장관은 요압대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삼음.
  2)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졌다.

 

[정리2. 여러 정황들을 고려하여 재정리]

다윗이 죽으면서 권력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이전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큰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솔로몬 초기에 잘 정돈하지 못하면 그의 왕위는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부분에 정리해야 할 권력이 있다.


첫째는 다윗의 시대 때에 다윗에게 문제가 되었던 사람들(심지어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요압같은 사람까지)이 제거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다윗은 유언으로 솔로몬에게 주지시켰다. 둘째는 솔로몬의 경쟁자였던 아도니야의 편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하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아도니야는 자신이 빌미를 제공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선왕의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이어서 아도니야 편에 붙었던 제사장 아비아달은 직분에서 파면시키고 고향으로 보냈다. 요압은 다윗 시대의 부담스러운 정적이면서, 아도니야의 편에 있던 사람이라 마땅히 제거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압은 스스로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자초했다. 다윗왕이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시므이는 그의 경솔함으로 죽임을 맞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 이전 세력과 반대 세력은 정리가 된다. 그리고 솔로몬을 중심으로 한 지도체계가 세워진다. 제사장은 사독이, 군대장관은 브나야가 된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을 중심으로 안정화 되어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과거 청산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면서 당장 죽여야겠다고 결심해서 죽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위험한 대상이었지만, 그들 스스로가 솔로몬에게 빌미를 제공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 스타일을 살펴보자.

  1) 아도니야: 경솔했던 인물이다.

왕 위에 오를 수 없게 된 것 때문에 다른 보상이라도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여 무리한 요구를 한 사람이다. 선왕의 여인이 아비삭을 구했다.(다윗의 동침하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아버지의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는 거만한 요구를 한 것이다.) 이는 솔로몬 왕의 권위를 우습게 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빌미로 죽임을 당했다.

  2) 시므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무게감을 잊은 가벼운 사람

시므이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다윗을 악독한 말로 저주한 자다. 다윗도 그를 평안하게 죽게 해서는 안된다고 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그를 바로 죽이지 않고 예루살렘 밖을 나가지 못하는 것으로 제한을 두었다.

그러나 시므이는 3년쯤 지나자 자신의 그와 같은 제한이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채 예루살렘을 벗어난다. 솔로몬은 잊지 않고 있던 그것을 본인은 잊고 있을 만큼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가벼이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의 명령을 어기었으므로 결국 죽게 된다.

  3) 요압: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앞 당긴 사람

요압은 제사장 아비아달의 파직과 귀향에 대한 소식을 듣고, 겁을 먹었다. 그리고 두려운 나머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가 제단 뿔을 잡고 죽음을 면해보려고 했다. 솔로몬은 당장에 요압을 어찌 하겠다는 계획이 드러나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는 두려워서 당장의 죽음을 피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요압은 과거의 죄를 물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두려움이 죽음을 앞당긴 꼴이 되고 만 것이다.

  4) 제사장 아비아달: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숙명처럼 받아들임

 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 왕과 함께 동고동락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정확하지 못했다. 왕의 권력이 아도니야에게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붙었다.(아마 아비아달이 보기에도 솔로몬이 왕이 될 재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왕의 위를 솔로몬에게 주었다.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파직시키고 고향으로 돌려보내 살게 했다. 그만이 유일하게 남은 여생을 살 수 있었던 사람이다.

 

2. 선택에 있어서 그릇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후 화를 재촉할 필요는 없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아도니야, 왕이 심판을 참고 있다는 사실을 망강한 채 자신이 죄가 없는 줄로 망각한 어리석은 시므이, 과도한 두려움이 죽음을 재촉한 요압. 이들은 심판을 받아야 했지만, 심판을 받는 입장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사람들이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심판을 받았으면서도 죽음에 임하지 않았던 것은 왕의 심판에 순응했고, 이전에 다윗 왕에게 충성했던 것들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선은 미래의 죄에 대한 형벌에 감해주는 효과가 있나 보다. (반면 과거의 죄가 현재의 심판을 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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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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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65번째 책인 유다서를 정리하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구약으로 돌아와 성경의 11번째 책인 열왕기상으로 왔습니다. 작년에 정리했던 열왕기 역사를 다시한번 살펴볼 생각도 있고 해서 열왕기상로 왔습니다.

열왕기는 이야기와 역사와 정치를 다루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오는 신학적 메시지를 주는 책입니다. 기대해 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스토리 중심으로 정리해 봅니다.]

1. 다윗의 나이가 많아 늙었다.(1-4절)
  1) 몸을 따듯하게 할 몸 종으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주었으나, 다윗이 동침하지는 않았다.

2.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5-10절)
  1)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로 학깃의 아들이다. 용모가 준수하고 아비에게 칭찬만 받음.
  2) 아도니야는 당시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였고 그들은 아도니야를 따름.
  3) 반면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따르지 않음.
  4) 아도니야를 따르는 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임

3. 선지자 나단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자 함(11-27절)
  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가 지금의 상황을 알려줌(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함)
  2)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하나님의 약속대로) 방책을 알려줌
  3) 밧세바가 다윗의 침실에 들어가 빨리 왕이 될 자를 선정해 달라고 요청함. 아비아달이 왕이 되려고 하고, 그렇게 되면 솔로몬이 죄인이 될 것을 지적한다.
  4) 나단이 다시 들어가 재차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을 강조하여 요청함.

4.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다(28-39절)
  1) 밧세바를 불러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솔로몬을 오늘 왕으로 세울 것을 약속하여 준다.
  2)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불러서 솔로몬을 기혼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치자로 삼으라고 명령한다.
  3) 그대로 시행하여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나팔을 불어 온 국민에게 알린다.

5. 오히려 위기에 처한 아도니야(40-53절)
  1) 아도니야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서)
  2) 아도니야와 함께 했던 모든 손님들이 다 놀라 도망갔다.
  3) 아도니야는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제단 뿔을 잡고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원하자 솔로몬은 선하다면 살겠지만, 악하다면 죽으리라는 말만 주고 아도니야를 집으로 돌려보냄.

[정리2. 본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재정리, 요약해 봅니다.]

열왕기상 1장은 다윗의 시대가 끝나고 그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당시에 유력한 왕자 아도니야가 왕이 되지 않고, 솔로몬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본문에서 아도니야는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솔로몬은 매우 수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나단과 밧세바가 솔로몬을 왕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다 이루어진 것을 솔로몬을 받는 형식으로 비춰짐)


하나님은 힘있고 강한자, 당시의 대세인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지 않고,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다. 이는 이스라엘의 왕조가 단순한 힘과 정치의 역학 속에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1. 아도니야는 솔로몬 왕에게 매우 위협적 존재가 될 것이다.
2.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장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아도니야의 편이었다.
3. 반면,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솔로몬의 편에 선 자들이었다.
4. 솔로몬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위태로웠으나, 왕이 된 이후에는 왕으로서 <아도니야>를 견제하였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왕은 되고자 하는 자가 되는 것인가, 세워주는 자로 말미암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이 다윗의 다음을 이을 왕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읽게 된다. 따라서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결정(뜻)을 거스르는 자가 되는 것이고, 나단과 밧세바의 경우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의 승리로 일단락 된다.

   그러나 역사를 좀 더 생동감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을 읽으면서 드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왕이란, 되고자 하는 자가 되는 것인가?(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세워주는 자들로 말미암아 세워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도니야는 왕이 되고자 했다. 그는 왕이 될만한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왕의 인정을 받았으며, 준수했으며 사람들을 규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아마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솔로몬을 왕으로 정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아도니야가 솔로몬보다는 훨신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봤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도니야는 거의 왕이 될 뻔 했다. 이에 반해 솔로몬은 왕이 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성경에서 볼 때) 그는 왕으로 세워진 왕이다. 나단에 의해서 밧세바의 요청과 나단의 직언의 도움을 받아 왕으로 세워진 인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이 왕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왕이 된 후에 아도니야를 다루는 모습(51-53절)은 왕의 권위와 풍모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왕이 되고자 하는 자(능력과 의지를 가진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본인은 소극적이지만 세워져야 할 사람을 세워야 할 것인가? 물론 세워져야 할 사람이 누군인지 어떻게 알겠는가?(솔로몬이라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한다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면, 권력과 힘과 의지를 가진 누군가가 아니라, 시대 정신 혹은 사람들의 지지를 일으키는 그 누군가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수동적일지라도 그를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하나님의 명확한 뜻으로 세워진 솔로몬 조차 많은 과오와 실패를 가진 왕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무흠한 자를 우리 가운데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시대 정신의 반영이면서, 사람들로부터 세워져가는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 아닌가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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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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