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한 모금]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따짓듯이 하고 있는 말들이 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 십일조와 봉헌물을 제대로 드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습니까?"(3:8), 하나님을 완악한 말로 대적하고도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까?"(3:13),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3:14) 

자기 백성들에게 낳으시고 공들여 먹이고 입히시고 돌보신 하나님을 향해서 기껏 한다는 말이, 앞에 언급한 힐난조의 질문들이다. 이 백성을 향한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 종종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억울할 때가 있다. 아이를 위해 충분히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자신의 기분이 상한다고 '엄마가 우리에게 해준게 뭔데?'라고 하면 너무 큰 절망과 분노가 함께 올라온다. 자녀를 위해 나름대로 해온 모든 노력이 부질 없었던 것처럼 무력해 진다. 한 순간 남으로 보이고, 남이 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그래? 그럼 너 혼자 살아봐!' 자녀와의 싸움에서 보통은 자녀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잠그는 것이지만, 이 때 만큼은 부모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엄나가 나에게 해준게 뭔데?' 이 한마다는 그 만큼 강력하다. 그 수많은 인내의 시간과 노력과 수고가 모두 뻘짓(?)이었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도 마음이 상하신다.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하나님은 말문이 막히고, 먹먹하여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실 것 같다. 말라기 이후 400여년간의 침묵은 이렇게 시작되나 보다. 


 - 끝 -



[성경 한 장]


1. 만문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2)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너희가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다. 


  *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가 하나님의 앞 길을 준비하며, 백성들이 기다리던 그가 갑자기 성전에 임할 것이다. 


  3) 그가 임하는 날, 누가 그를 당하며 누가 능히 서리요.

  4) 그는 금을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5)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6) 그들이 결국 공의로운 재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 그는 오셔서 금과 은을 연단하듯이, 표백하는 자가 옷을 깨끗하게 하듯이 레위 자손들을 정결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바른 재물을 여호와께 바치게 될 것이다. 


  7)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히 되려니와 (회복)


  8) 하나님이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1)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2) 품꾼의 삯에 대해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3)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4)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레위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그러는 과정에서 악을 행한 자들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으신다. 야곱의 자손들에게 대해서는 그들을 보존하신다.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 너희 조상 때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했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2)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고 반문함

  3)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습니까? 하고 반문하는데, 너희들이 도둑질 한 것은 바로 십일조와 봉헌물이다. 

  4) 너희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노라. 


  *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십일조 문제를 지적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드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온 나라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원인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 


  5)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나를 시험하여 보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는가 보라. 

   (1) 내가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할 것이며

   (2)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3)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 하나님은 구체적인 하나의 문제(십일조와 봉헌물)를 들어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신다. 이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도 없으며, 그것을 도둑질 한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은 마땅히 해야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향해 경건한 태도를 잃어버린 유다의 모습이다. 


3. 여호와가 이르노라. 


  1) 이 백성이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습니까? 반문한다. 

  2) 이들은 말해왔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오히려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지 않는가!


  *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여호와를 섬기며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을 우습게 말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가 더욱 잘 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이들이 얼마나 불경건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3)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들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놀라며 말한 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다.


  4)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자신을 경건하게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기념책에 기록하여 그들을 분별하심을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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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묵상 한모금]사무엘상 7장. 우상숭배도 문제지만, 불경건도 큰 문제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벧세메스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겨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했다.

2. 궤가 기럇여아림으로 들어간 날부터 20년동안 그곳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했다.

 * 여호와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있을 때, 그 백성들에게 재앙을 하나님의 크심을 드러내셨다. 언약궤가 벧세메스로 왔으나 이들은 경솔하여 궤를 함부로 들여다 보았다. 그들의 경건치 못함이 재앙을 가져왔다. 그러나 기럇여아림에서는 구별된 사람에 의해서 잘 관리되었다.  무지도 부족하고, 경솔함도 부족하다. 경건함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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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사로서의 사무엘

 1)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라.

 2)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3)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다.

4.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일 것을 요구, 너희를 위해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5. 미스바에서 모여 물을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고백함.

5.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렸다.

* 사사시대의 패턴과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삿 2장) 그 중 회복을 위한 과정 속에서 사무엘이 사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악한 사무엘의 모습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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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말을 듣고 블레셋이 미스바로 쳐들어왔다.

7. 백성들은 두려워하였으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8.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

9.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올 때에 여호와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 어지럽게 하시니 패했다.

10.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추격하여 벧갈까지 가서 쳤다.

*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통치 아래에서 영적인 회복을 도모하고 있는 중에 위기의 상황이 왔다. 블레셋이 쳐들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항상 위기만은 아니다. 또 하나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극복할 수 있다면, 이제 블레셋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더욱 결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위험한 기회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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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무엘은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워 <에벤에셀>이라고 했다.

12. 블레셋 사람들은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동안 블레셋 사라을 막으셨다.

13.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땅을 회복하였고,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

* 사사가 다스리던 시대에 평화가 있었던 것처럼, 사무엘 시대에도 블레셋을 이기고 아모리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평화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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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무엘이 사는 날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림.

15. 라마는 자기 집이 있는 곳인데,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거기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았다.


[정리]

이전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신을 쫓는 문제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게 되었다고 했다.(삿 2:12) 그러나 사무엘서에 와서는 다른 신을 섬기는 부분에 대해서 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여호와를 경홀히 여겼으며 불경건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자로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심각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브레이크가 온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이 결국은 언약궤를 빼앗기는 재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사무엘이 사사가 되던 시절에는 이전과 약간은 다른 문제가 있었다. 우상 숭배도 큰 문제지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불경건도 큰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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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성경 한모금] 삼상 2장. 한나의 기도 내용 / 엘리 아들들의 패역함.


[한나의 기도]

1.한나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함

 1)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다.

 2) 교만하고 오만한 말을 내지 말라.하나님은 그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이시다.

 3) 하나님은 용사의 활은 꺾으시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4)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스올에 내리기도 하시고, 거기서 올리기도 하신다.

 5)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신다.

 6)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다.

 * 신상에 뜨인 돌에 의해서 깨어짐같이, 세상의 높아진 것들은(하나님을 대적하여) 산산조각 날 것이다.

 7) 하나님은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고,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2. 엘가나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는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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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제사장 아들들의 악한 행실]

3.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

4.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고 고기를 삶을 때, 갈고리로 아무 것이나 걸리는대로 가져갔다.

5. 때로는 제물을 기름에 태우기도 전에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고기를 삶기 전에 날 고기를 원한다고 달라고 한다.

6. 제사 드리는 사람이 이를 거절하여, 먼저 기름에 태운  후에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억지로 그것을 빼앗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7.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으로 여호와 앞에 큰 죄를 지었다.

 * 엘리 아들들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경건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와 불경건에 나타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롬 1:18)

 * 엘리의 두 아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었는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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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사무엘은 어떻게 자라갔는가?]

8. 반면,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

9. 한나는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남편과 올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사무엘에게 주었다.

10. 엘리 제사장은 이들을 축복하여 그 가정에 다른 자녀들이 있도록 간구하였고,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사 그로 하여금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

11.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갔다.

 * 엘리는 경건한 부모의 섬김 속에서 경건하게 자라갔고, 하나님은 그 가정에 복을 주셨다. 악한 시대 속에서도 경건한 가정은 있고, 그들의 씨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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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엘리의 두 아들의 타락은 갈때까지 갔다. 엘리는 사람들에게 그 아들의 행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책망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없다. 결국 그들을 하나님은 죽이기로 작정하셨다.

13. 반면, 사무엘은 점점 자랐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았다.

 * 엘리의 두 아들의 운명과 사무엘의 운명이 대조되면서 교차하고 있다. 패역한 사람을 폐하시지만, 그 일을 대신할 새로운 사람을 예비하고 준비하셨다. 하나님도 사람을 세우시고 준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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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엘리의 집안을 폐하고, 새로운 사람을 세움]

14.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말씀하심.

15. 애굽에 있을 때 너희 조상을 세워 내 제사장으로 삼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의 모든 화제를 네게 주지 아니하였는냐?

16. 그런데 너희가 어찌하여 나의 예물을 밟고, 네 아들을 나보다 중히 여겨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를 살지게 하느냐?

17. 그래서 내가 너희를 멸시하여 너희 집에 늙은 자가 없도록 하겠다. 젊어서 죽으리라. 네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인데, 이것이 표징이니라.

18. 내가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킬 것이다.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울 것이다 그가 나의 기름부음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할 것이다.

 * 엘리 집안의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솔로몬에 의해서 제자장직에서 파면되면서 이 말씀은 성취되게 된다.


* 한나의 기도 내용처럼 자녀를 낳지 못해 고통당했던 한나는 사무엘을 얻고 그 이후  세 아들과 두 딸을 얻어 큰 복을 받았다. 반면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오만하게 행하여 그들의 운명이 비참해 질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비참하게 하심으로써(대적하심) 그의 오만을 꺾으신다. 반면 가난하여 절망 속에 주를 의지하는 자에게는 높이시는 은혜를 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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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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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여름 사역이 한창 진행하는 상황이고, 아이들은 방학인 상황이라 공휴일이라는 생각도 크게 없는 날이네요. 오늘은 아무도 없는 교회 교역자실로 느즈막히 출근해서 베드로후서의 마지막 장을 정리해 봅니다. 베드로서의 서신은 바울의 서신과는 다른 맛이 있네요.^^ 우리는 너무 바울의 서신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야고보서도 베드로서도... 우리의 신앙에서 바울이 주지 못하는 부분들을 제공할 수 있는 성경입니다.

조용한 공간, 조용한 시간 또 하나님과 성경 말씀을 알아가는 기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도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논리적 흐름과 연관성입니다.]

1. 베드로가 두 번째 편지를 써서라도 이들에게 알리고 생각나게 하기를 원했던 것

  1)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구주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함이다.

    (1) 먼저,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한다:

     : 주의 재림하신 다는 약속이 어디 성취가 되냐? 봐라. 늘 창조 때와 같은 상황 아니냐?

    (2) 아니다. 이들은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는 것을 간과하려고 하는 것이다.

     : 그 당시(노아) 세상은 물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한 것 같이, 동일한 말씀으로 하늘과 땅은 불 사르기 위하여 지금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심판 보류중)

  2) 하나님은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분이시다.

    (1) 하나님의 심판이 더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빠르게 임할 것이다.(도둑처럼)

    (2) 다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에 보류하신다.

    (3) 그러나 하나님의 날은 도둑같이 오게 될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것이 풀어지고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느냐?]

    a.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13절)

 

2. 따라서 너희들은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니... 이렇게 살아라.

  1)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2)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급하게 심판하지 않고 더디하심을)

     : 베드로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울도 그와 같은 내용을 너희들에게 썼다. 그의 편지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빠진 자들이 있다.

  3) 이제 알았은 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4)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정리2.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큰 흐름으로 내 논리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내 논리로 정리한다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지 내용을 주관적으로 조절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두 번째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과 신약의 사도들의 명한 것 속에서 일관되게 말씀하시는 것을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종말에 대해서 거짓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자들은 앞으로는 심판이 없다고 말하면서 성도들을 현혹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니 삶은 느슨해지고, 도덕은 약해지며 점점 방탕한 자리로 나아가 경건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성도들에게 솔깃했던 것이다.

베드로는 말한다.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지금 심판을 보류하고 있는 것이지, 앞으로의 세상은 전에 물로 심판에 이른 것처럼 불로 심판을 받기 위해서 보존되고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어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판은 도둑처럼 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삶에 있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미혹하는 자들의 미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매일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알아가는 자리에서 자라가야 한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세상에 심판이 없는 것과 하나님의 심판이 더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심판이 없는 것처럼 느꼈다. 악인의 승승장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더욱 인정받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오랜 관찰을 통해서 볼 때, 사람들은 판단한다. 심판은 없다. 심판이 있다면 이럴수가 없다. 그렇다면 의를 행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이런 가치관이 세상의 가치관이면서, 동시에 교회 안에서 몇 몇 성경구절을 그릇된 입장에서 사사로이 해석하여 마치 성경에도 주님의 심판이 없다거나 혹은 이미 주의 재림이 지나갔다는 식의 해석을 가함으로 믿는 자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아마 바울이 쓴 서신을 근거로 그런 논리를 펴지 않았는가 싶다.) 그것이 교회에 큰 문제가 되었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베드로는 편지를 쓰지 않았나 싶다.

  베드로는 말한다. 더딘 것이라고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딘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더딘 것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디면 그리고 장시간 그 사인조차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판단을 내리기 쉽다. 없는 것으로 해야 삶이 편해지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혹 심판이 있는가하여 긴장하였다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금세 방종으로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심판의 더딤은 참과 거짓을 가르는 하나님의 방편인지 모르겠다. 더딤을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마음껏 살고자 하는 자와 더디지만 심판이 있음을 믿고 단정히 행하는 자를 가르기 위한 하나님의 기준인 것이다.

 

2. 심판이 남아있다고 믿는 다면 우리는 거룩한 행실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무법한 삶으로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이 되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와 자비로 시작되는 것이므로 법(행한대로 갚는다는 논리)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구원의 자리로 들어온 다음에 바로 의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이 풀어지고 밝혀지는 순간에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삶에 대한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경건이다. 그런데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불경건이라고 한다.

  생명의 시작은 은혜와 자비(무법)에 의해서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생명은 행한대로 판단하신다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법)임을 알고 경건한 태도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약한 것이 아닌가 싶다.

 

3. 바울 신학에만 익숙해진 우리가 야고보나 베드로 사도의 신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균형있는 성도의 모습을 제시하고, 교회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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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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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은 말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고통의 때라고 표현한다.(1절) 갑자기 껑충뛰어 종말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현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역사적 이해와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할지를 알려준다.

말세의 특징을 한 마다로 표현하면, 불경건이라고 볼 수 있다.(2-5절) 좀 더 구체적으로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5절)는 것이다. 종말에 가서는 불경건함이 더욱 거세질 것이고, 그것은 주류가 되고 상식이 될 것이다. 오히려 경건하게 사는 자들은 낯선 사람이 될 것이고, 비주류가 될 것이다. 외계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직장 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과 능력과 실력의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말한다. 직접적인 갈등도 있지만, 그들(의 불경건)과 어울릴수 없는 것으로 인한 고립감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하나의 고통이며 박해이다.)

또 하나의 말세적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미혹'이다. 거짓 가치관, 거짓 진리로의 미혹이다. 이들은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나 마침내 진리에는 이를 수 없는 자들이다.(7절)

이 두가지 현상들이 말세의 현상이라면, 적어도 말세는 모세 때부터 존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시대에도 사람들을 미혹하던 얀네와 얌브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말세라는 것은 먼 미래의 종말의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말세의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최종적인 종말에는 그와 같은 현상의 농도가 더우 진해질 것이며, 강해질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아담의 타락이후 아담이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의 현상들을 인류가 직면하면서 말세는 존재해왔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도 된다.

암튼,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이와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5절)이다.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지침 중에 하나는 이와 같은 불경건의 가치관과 현상 속에서 날마다 돌아서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에 의해 흘러가고 그와 같은 가치관이 주류가 되어 다른 말을 하거나 가치관을 피력할 때, 왕따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나는 그와 같은 가치관에 동조할 수 없다고, 그와 같은 불경건에 동참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매일 매일의 결단과 순종이 일상의 제자도인 것이다.

세상은 모든 것을 잠식할 것같이 덤벼들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역사적 의식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모세 시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영향력 그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의 어리석음은 드러났고 그들의 공격도 힘을 잃었다.(8,9절)

하나님은 불경건과 거짓 진리의 미혹에 대해서는 한계를 정해 놓으셨다. 어느 정도는 활동하여 영향력을 키울수는 있지만, 항상 그 한계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도 정해져있다.(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이를 수 없다.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또하나의 중요한 지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배운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가운데 거하는 삶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따라서 진리다.)으로 된 것으로 읽고 순종하는 자들로 하여금 유익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14-17절)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서 이 일에 착념할 것을 계속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불경건과 미혹의 시대에 살아남는 길은

1. 불경건함과 미혹의 가치관으로부터 매일 매일 돌아서는 것이다.

   : 집에 돌아오면 손을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도 많은 병을 예방할 수 있듯이... 더러운 것이 뭍어 들어오지 않도록 (정신)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건강한(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다.

   :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식생활을 하며, 적절한 운동으로 자신을 훈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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