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지나고 새롭게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이번주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공간적으로 교회는 아니었지만, 이른 아침 일어나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오늘은 느헤미야 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까지 달고 그 이후의 일들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뿐 아니라 일을 이루고 나서 그 성취한 일을 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까지...느헤미야는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암튼, 느헤미야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소 주제로 문단나누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

1. 성벽을 재건하고 느헤미야가 한 후속 작업

  1) 성벽을 건축하고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을 세웠다.

  2) 동생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이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다.

   :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한 자들에게 예루살렘을 지키는 지침을 줌

   : 높이 해가 뜨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꾼이 있을 때 문을 닫고 빗장을 지름.

   : 주민들이 자기 집 맞은 편을 지키게 하라.

   : 왜? 성읍은 광대하고 주민들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 다시 한 번 옛 귀환자의 명부를 확인하다.

  1)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들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했다.

  2) 그 때 느헤미야는 첫 귀환자(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자)들의 계보를 살펴본다.

  3) 6-69절까지 이전 기록에 적힌 명부를 다시 기록한다.(에스라2장에 언급된 것과 거의일치)

   : 그 중에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기에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도록 했다.(61-65절)

3. 성벽 재건을 위한 헌금과 헌물

  1) 어떤 족장은 성벽 재건을 위해 보조하였다.

  2) 총독은 금 1000 드라크마와 대접 50개와 제사장의 의복 530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다.

  3) 어떤 족장들은 금 2만 드라크마와 은 2200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다.

  4) 나머지 백성은 금 2만 드라크마와 은 2000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67벌을 드렸다.

4.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한 사람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문지기들, 노래하는 자들,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의 성읍에 거주하였다.

  * 느디님 사람들은 이들은 원래 이방인이었다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려온 후 성전의 막일을 부여받은 자들의 명부다. 이스라엘에서 비천한 신분으로 여겨졌다.

  *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57절)들도 이스라엘 포로로 잡혀 왕궁의 경비 등에 종사하도록 된 자들의 명부이다. 이들도 느디님 사람들처럼 이스라엘 사회에서 천민 계급으로 분류되었다. (호크마 주석 참고)

 

[정리2. 정리 1에서 한 내용을 기초로 해서 나 만의 표현으로 다시 바꾸고,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특징과 독특함(주로 이런 곳에서 메시지가 나오는데)을 잡아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고 문짝을 달고 난 후 휴가를 가지 않았다. 그는 그 다음 일을 생각했고, 그 다음 일을 진행했다.

먼저는 성을 다스릴 사람을 세운다. 충성스럽고 신앙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을 세워, 그들로 성을 지키도록 하고 구체적으로 성문을 언제 열고 언제 닫아야 하는 지침까지 주었다. 그리고 아직 성읍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성을 지키는 일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집 앞을 책임지고 지키도록 했다. 성전을 위해서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다시 한번 귀환한 백성들의 명부를 확인했다. 스룹바벨 때에 돌아온 명부를 기초로 해서 예루살렘 성에 있는 사람들의 혈통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는 온전한 혈통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들이 유다의 귀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제사장과 같은 중요한 직책을 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계보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제사장의 일에서 제외시켰다.(64절)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다시 성전을 활성화 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보조하고 헌물해준 지도자들이 있었다. 총독과 족장들이 앞장섰다. 그리고 백성들도 힘을 모아 헌금하는 일에 힘썼다. 그런데 백성들이 모은 것과 비슷한 것을 족장들 중에서 낼 정도의 재력이 있는 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귀환한 사람들 중에 옛 이방인들의 명부도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포로로잡혀와 성전과 궁궐에서 막일을 했던 사람들인데 이들고 귀환한 백성가운데 있으며 그들도 귀환 공동체의 계보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다시 생각해 본다.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까지의 리더십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성벽 재건 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성을 다시 세우는 것 뿐 아니라, 성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까지 챙겼던 사람이 느헤미야다.

  많은 리더가 자신이 이룬 업적에 도취되기 쉽고, 그 영광에 스스로 만족하며 그 일을 끝을 맺으려 한다. 그러나 참된 리더는 세운 역사가 유지되고 확대되기 위한 초안까지 마련해 놓는다. 그런 측면에서 조직이 필요하고 계보의 정리가 필요하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잘 지킬 총독을 믿을만한 사람으로 세웠다.(아마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 속에서 그 사람을 평가해 왔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도 살펴봤던 것 같다.) 또한 귀환한 백성들의 혈통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것은 장기적인 오염을 막는 기초가 되는 작업이었다. 지금은 느헤미야의 지도력 안에서 다 통제가 되지만, 느헤미야가 없으면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느헤미야는 그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2. 귀환자의 명단에 옛 이방인들까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57절)과 느디님 사람들(46절)은 모두 이방인으로 옛날 이스라엘의 전쟁 포로로 잡혀와 성전과 궁궐에서 막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도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갔고, 어쩌면 그곳에서 예루살렘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조차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는 소식에 합류했던 것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유대인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강제로 유대 사회로 유입된 자들이며 억지로 유대인화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유대인이 아닌 채로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공동체에 함께 하기를 원했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기를 원했으며 함께 목숨을 걸고 피땀을 흘리며 성벽 재건에 힘썼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들을 그들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 귀환한 백성들 속에는 순수혈통 유대인들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후천적인 백성들이 있었으며, 그 기업을 얻기 위해 찾아온 이방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함께 유업의 자리에 이른 것이다.

성경은 그들을 깨알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유입되었다는 것, 또한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음이 아닌가? 왜 기록하셨겠는가? 너희도 이 자리로 들어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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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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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5장입니다. 성벽 재건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던 중 외부의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그 외부적 장애를 담대히 극복해 가는 과정을 4장에서 다루면서 이젠 순적하게 진행되겠구나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내부적 문제이이죠. 외부의 적을 함께 잘 이겨냈다가도, 내부적인 갈등을 만나게 되면 쉽게 무너지는게 우리의 모습인데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

 

[1차 정리.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좋게 정리하기]

1.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

  1) 백성들 중에서 흉년의 때를 만나 먹고 살기 위해서 밭과 포도원을 저당 잡혀 곡식을 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치기도 했다.

  3) 이런 과정 속에서 빚을 갚지 못해 자신의 자녀들이 종으로 팔려갈 신세가 된 사람들(일부는 이미 종이 되었다.)이 자신의 상황을 한탄했다.

2. 백성들의 이런 어려움에 대한 느헤미야의 신속한 조치

  1)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행동했다.(7절)

  2)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1)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2)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를 힘을 다해 도로 찾았는데 너희들은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3)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다. 이로 인해 대적들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4) 내 형제와 종자들도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주었다니 우리는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5) 오늘이라도 너희가 그들에게 받은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3) 귀족들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제안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함.

   (1) 느헤미야는 자신의 옷을 털며, 말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겠다고 경고했고 회중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대로 행하였다.

3. 총독으로서 느헤미야의 헌신적인 삶

  1) 유다 총독으로 와 있는 12년의 시간 동안 느헤미야와 그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않음

  2) 이전의 총독들은 양식과 포도주를 그 지역의 백성들에게서 빼앗았는데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3) 도리어 성벽 공사에만 전심하였고, 땅을 사는 것과 같은 투기도 하지 않았다.

  4) 도리어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을 위해 매일 소와 양과 닭을 잡아 먹였고, 열흘에 한 번은 포도주를 갖춘 잔치를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던 것은 이 백성들의 부역이 중하였기 때문이다.

: 느헤미야는 본인이 백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섬긴 일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함.(19절)

 

[2차 정리. 본문 내용을 내 말로 다시 정리하기. 강조점이 살아있는 정리]

느헤미야 4장이 외부적인 대적에 대한 기록이라면 5장은 내부적인 문제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양극화문제라고 볼수 있다. 가난한 자가 먹을 것과 세금을 내기 위해 밭과 포도원을 담보로 양식과 돈을 빌렸는데 갚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을 종으로 내 주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느헤미야에게 답답함을 호소한 것이다.

이정도 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느헤미야는 실상을 파악하고 깊이 생각한 후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자신과(자신의 형제와 종자들과) 귀족과 민장들 편에서의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자를 받지 말 것과 원금의 1/100은 탕감해 주라는 명령인 것이다. (원금을 탕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자로 받았던 것을 돌려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2013. 4.4 수정)

느헤미야의 다소 불합리하게 보이는 요구에 대해서 귀족과 민장들은 그대로 따르기로 결정하고 맹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가 보여준 청렴하고 희생적인 삶이 모든 사람에들에게 영향력을 준 것이다.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으로 있는 12년 동안 당연히 받고, 마땅히 받을 수 있는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세금 부담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게다가 느헤미야는 자신의 재산을 소비해 가면서 유다 사람들을 위해 소와 양과 닭을 매일 공급했고, 열흘에 한 번씩은 회식을 시켜주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성벽 재건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감당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이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중간에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힘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외부의 갈등보다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느헤미야는 외부의 적을 유다 공동체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극복해 가는 과정 중이다.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힘이 나기도 한다. 성취감도 있다. 공동체원들이 서로 희생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몸은 피곤하지만 오히려 결속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내부적인 문제가 터졌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요. 귀족과 농민의 문제다. 어느 정도는 참았지만, 자신의 자녀들이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이들에게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다 민족 내부적으로 서로가 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팀이라는 인식으로  나눠지게 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균열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일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유다 공동체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2. 느헤미야의 깊은 생각과 자기 희생적 결단

느헤미야는 이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크게 분노했지만, 흥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깊이 생각했다.(7절) 그리고 이 양자간의 갈등(양극화 갈등으로 볼 수도 있을까?) 속에서 그가 찾았던 방법은 자기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 그리고 귀족들과 민장들이 자기 희생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부자라고 해서 희생을 해야 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봐줘야 한다는 논리는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부자들은(구조적 시스템 문제로 보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이 문제만 본다면) 가난한 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주고 정당한 대가(이자가 크지 않았다면)를 받는 것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면 환경적으로 경제 침체라는 어려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양자 간의 갈등을 낳았고, 결국 약한 자 쪽에서 문제 제기를 한 일이 된 것이다.

성경에서 이 문제는 경제 논리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성벽을 재건하는 전국가적 중요한 목표 속에서 일어난 이 내적 갈등을 어떻게 풀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의 과제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느헤미야는 내적 갈등을 종식시키고 다시 본연의 목적을 위해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진자가 희생해야 한다고 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들의 자기 희생적 결단과 포기가 있어야만 공동체는 양자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제부터 이자 받기를 금하고, 오히려 원금의 1/100을 탕감해 주는 정도의 개혁을 감행하고 이런 결정에 이들이 따라 줌으로서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3. 느헤미야가 이런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평소의 삶 때문이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개혁을 하더라도, 그것을 따라주어야 가능하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이자는 안받겠지만 원금의 일부는 탕감할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논의는 길어졌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국논을 더 분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맹세하고 따라오 것은 느헤미야가 보여준 그간의 삶 때문이었다.

느헤미야는 12년간 총독으로 있으면서도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내놓고, 정기적으로 회식을 시켜주시까지 했다. 느헤미야의 이와 같은 자기 희생적 삶은 많은 지도자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또한 존경을 얻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느헤미야의 이런 삶이 뒷받침 되었기에 그의 개혁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버스파업의 노사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현장에 가서 머리를 숙여 도움을 요청할 때, 노조측과 사측은 서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버스파업을 막을 수 있었다는 기사를 우리는 봤다. 그가 시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박원순 시장의 삶이 그간 사람들에게 존경이 되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리더의 영향력은 재간에서 나오지 않는다. 평소의 자기 희생적 삶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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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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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느헤미야 4장입니다. 성벽 재건을 위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고 곧 이어 본격적인 대적자들의 활동이 시작되는 장입니다. 고난이 없고, 장애가 없다면 대적자가 없다면 인생은 덜 다이나믹 할 것입니다. 힘든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평생 추억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대적자들의 공격에 대한 느헤미야와 백성들의 대응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길이길이 기억되어질 내용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대적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지요. 대적자로 인해 이야기는 흥미진진해 지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도드라짐은 더욱 명확해 집니다.

 

[1차 정리. 본문 내용을 중심으로.. 본문에 대한 관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 장애1. 산발랏과 도비야가 주변 사람들을 선동하고, 조롱함

1) 산발랏: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2) 도비야: 유다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대응]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이 당하는 업신여김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머리로 그 수치가 돌아가도록 해달라고 기도함. 그러고는 다른 대응없이 다시 성을 건축하는 일에 매진함. 백성들은 마음을 들여 공사를 진행했고 그래서 성 공사는 절반높이까지 이르렀다.

2. 장애2. 성벽이 계속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발랏과 도비야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분노해서 예루살렘을 쳐서 요란하게 하자고 결의함.

[대응] 이에 느헤미야와 유다인들이 함께 기도하며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면서 일을 함.

3. 장애3. 내부적인 위축과 두려움으로 인한 갈등

(1) 유다 사람들은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으니 짐 나르는 자가 힘이 빠져 건축하지 못한다함.

(2) 원수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달려들어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할 것이라고 위협함.

(3) 원수 근처에 사는 유다인들도 10번이나 느헤미야와 지도자들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함.

[대응]

1. 일하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서 있게 함.

2.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들에게 ‘네 형제와 자녀와 아내를 위해 싸우라’고 독려함.

: 위협에 대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대응하며 나왔다.

4. 느헤미야의 강력한 대응

1) 느헤미야 수하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무장을 했다.

2)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 각 한 손으로 일을 하고,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았다. 건축하는 자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했다.

3) 나팔 부는 자는 느헤미야의 곁에 두어 그 소리에 맞춰 신호를 삼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했다.(나팔을 불면 그 소리를 듣고 한 곳으로 모여 전쟁을 준비하도록 했다.)

4)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다. 밤에는 예루살렘 안에서 자면 파수꾼을 두어 쉬게 하였다.

5) 느헤미야를 포함하여 파수하는 자들은 옷을 벗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갈때도 각각 병기를 잡았다.

: 모든 상황을 전시 상황으로 하고, 특정 목적을 위해서 비상사태도 정하여 비상한 삶으로 생활할 것을 요구했으며, 느헤미야 자신도 그와 같은 비상 모드의 생활을 한 것이다.

 

[2차 정리. 본문의 내용을 내 것으로 재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성경 해석을 풍성하게 하는 핵심입니다. 이것이 잘 되면 묵상과 적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느헤미야 4장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 속에서 백성들이 집중해서 일이 잘 진척되자 이에 대해서 위기감을 가지게 된 대적자들의 본격적인 위협 속에서 느헤미야와 유다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보면 대적자들의 위협에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위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한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소극적 대응을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것이다.

물론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호응이 중요하다. 이런 위협이 살아 있는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목숨걸고 성벽 재건을 강행한다는 것은 비상한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명하고, 추진했으며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요구에 부응했다. 그들은 방비하는 일력을 따로 확보하기 위해 성을 건축해야 하는 인원을 축소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무장한 채 일해야 했다. 밤에는 돌아가면서 보초도 서야 했다. 성벽 재건을 지속하는데 방해되는 상황이지만, 대적자들의 위협 앞에서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백성들은 힘들었겠지만 끝까지 잘 감당했다. 이런 비상한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로부터 보여주는 모범적인 헌신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느헤미야가 대외적인 적의 위협에 있어서도 대응해야 했지만, 사실은 내부적인 반대자들에 대해서도 대응을 해야 했다는 것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이 공사를 마칠 수 없다고... 위협하는 자가 계속 공격하겠다고 와서 도와 달라고 하는 많은 요청들이 있었다. 이런 일들은 매우 피고한 일들이다. 이들을 성의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손실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했다가 어떤 여론의 비판을 받을지 알 수 없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대책을 함께 구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넘어간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본격적(의욕적)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려고 할 때, 대적자들의 움직임 또한 본격적(의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대적자들도 함께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어야 한다. 그 준비라는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영적 긴장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럴 때 대적자의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으며, 우리가 너희들의 행위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라고 여유있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15절.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었다.)

2. 느헤미야가 대적자들의 위협과 조롱 속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반응은 기도라는 것을 기억하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 했다.(4-5절, 9절) 느헤미야는 너무 흥분하거나 너무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아룄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어떤 신비한 능력이나 역사를 이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느헤미야는 기도를 통해서 지혜를 얻었고, 담대함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6절) 느헤미야는 기도한 후에 오히려 하던 일에 더 열심을 했다. 기도하고 나서 위험한 사태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찾아 대응하는 모습을 본다.(9절)

  대적자의 공격을 받았는가? 위태로움과 위협함이 있는가? 먼저 기도하라. 그리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지혜를 구하라.

3. 느헤미야와 유다의 백성들은 비상한 순간에 비상한 방식의 삶을 살았다.

  비상(emergecy)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비상(飛上)한 삶을 살았다. 비상한 삶이란 무엇인가? 일상의 삶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잠시 포기 했다. 이들은 공사를 하면서도 무기를 잡았으며, 낮에 일을 하면서도 밤에는 보초를 서야하는 삶을 살았다. 일을 마치고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심지어는 옷을 벗어 놓지 못한 채 5분대기조와 같은 삶을 받아들였다.

성벽을 재건해야 하겠다는 긴급한 목적 앞에서 그들은 일상을 비상으로 바꾸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대적자들이 없는 일상의 상황이 아닌, 대적자들의 공격으로 위협받고 있는 비상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비상한 목적을 이루어야 했기에 비상한 방식의 삶을 잠시 받아들인 것이다.

  비상한 상황에서 비상하기 위해 일상을 잠시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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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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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느헤미야 3장입니다. 사람 이름 나오고, 반복적인 패턴.. 끝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본문입니다. 성경에 이런 본문 종종있지요?^^ 너무 꼼꼼히 볼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 어떤 불균형을 통한 저자의 강조가 드러날 때가 종종 있지요^^ 그 불균형을 찾으려면 좀 살펴봐야 겠지요.

마태복음 1장의 족보속에도 불균형이 있지요. 여성들의 이름이 중간 중간 들어가 있다든가 하는...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무 쉽게 간과하려고 해서는 안되지요. 그래도 이런 본문은 정독하기가 힘들다능...

 

[1차 정리. 본문의 내용 중심으로]

1. 성벽 재건을 개인과 가족별로 할당하여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였다.

1)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였다.(1)

    :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용되는 곳, 양의 출입이 있는 양문을 중수하였다.

2) 드고아 사람들이 어떤 지역을 중수할 때,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부담하지 않았다.(5절)_네가티브한 사실을 공개한 느헤미야.

3)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향품 장사 하나냐,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자..(8,9절)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한 영역이 또 있다.(31절)

4) 자기 집과 마주대한 곳을 중수한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10절)

5)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함(12절)

6) 제사장들도 부분을 정해 중수하였는데, 주로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다.

 

[2차 정리. 내것으로 소화해서 다시 정리하기]

느헤미야 3장은 성벽 재건을 위해 구체적으로 각 가정마다 담당할 영역이 있었고, 그 부분을 열심히 감당했다는 내용이다. 참여한 대상도 다양했던 것 같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일반 인들.. 상인도 있었다. 금장색이나 향품 장사 등과 같은. 그리고 관리들도 있었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들의 자녀들도 구역을 맡아서 성실히 성벽 재건에 힘썼다.

제사장들은 약간의 독특함이 있었는데, 제사와 관련된 양문을 직접 담당한다든지, 자기 거주하는 집 앞의 성벽 재건을 담당했다.

암튼,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열심히 성벽 재건에 힘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그 중에 성벽 중수의 일을 분담하지 않은 부류에 대한 언급이다. 5절에 나온대로 드고아의 귀족들은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itistory-photo-1

참고할 만한 것이 있어서 사진으로 찍어 봅니다. 안에 있는 성벽이 느헤미야때 재건한 성벽인데, 40구역으로 나누어서 오른쪽 위인 양문부터 시작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작업 배치를 했다고 하네요. 성 안에 E 라고 쓴 구역이 제사장들의 집터인데, 그들은 자기 집 앞 부분의 공사를 맡았다고 하고요. 참고하세요.^^(IVP성경주석 p.584)


[3차 묵상 및 적용]

1. 느헤미야가 일을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생각했고 계획했다. 그리고 일이 시작되면 그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고 적용했다. 느헤미야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지도자라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사역과 팀웍에 서투르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는 방식에는 취약한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사역을 감당할 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도다. 기도로부터 생각과 전략과 지혜와 은혜가 함께 묻어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2. 전체가 다 수용할 것 같지만, 이 땅에서 완전한 100%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의 리더인 느헤미야가 해도 100% 적극적인 지지가 나오지는 않는다. 언제나 딴짓하는 사람이 있고, 딴지를 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들까지 다 챙겨서 100%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일 수 있겠다.

나를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대상이 다수라면 나는 나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소수라면 잠시 그들의 존재를 품어주는 것으로 유익을 삼을 수 있겠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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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서의 마지막 장이네요. 멀게만 보이던 에스라서도 이제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됩니다. 에스라서의 결론과고 같은 장일텐데... 통곡하던 에스라가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게 될지 봐야 할 듯 합니다.

 

[1차. 본문 내용에 대한 정리로, 소제목으로 나누고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합니다.]

1.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회개할 때, 에스라를 돕는 사람들

1)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나아옴

2) 우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범죄하였으나, 아직 이스라엘에게 소망은 잇다.

3) 하나님의 교훈과 명령을 따라 이방 여인을 다 내보내고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당신이 시작하면,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2. 에스라의 본격적인 행동

1)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맹세함.

2) 에스라가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 거기서 죄를 근심하며 음식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3)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공포했다. 3일내에 모이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고 공포함.

4) 사람들은 3일 이내에 모였고, 그 상황과 큰 비로 인해서 두려워했다.(9절)

3. 에스라의 명령

1) 이방 여인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라.

2) 회중이 큰 소리로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 많은 백성이 모인 것(심각성)과 큰 비로 두려워했다고 함.(13절)

3) 이방 여자에게 결혼한 사람은 기한 내에 모두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하라.

: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라.

4) 아홉째 달 20일에 모이고, 열째 달 초하루에 조사를 시작해서 첫째 달 초하루에 마침

* 이런 에스라의 공포에 반대하는 무리들도 있었다.(15절)

4.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명단

1) 제사장의 무리 중에서도 이방 여인을 아내를 맞은 자들이 있었는데, 속건제를 드림.

: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18절)

2) 레위 자손 중에서도...

3) 노래하는 자 중에서도(성전에서 예배를 섬기는 자들 중에도)

4)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5) 이들 중에는 자녀를 낳은 사람들도 있었다. -끝-

 

[2차. 1차 정리를 토대로 자기 자신의 표현으로 재정리합니다. 내가 그 본문에 대해서 그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전 정보가 있느냐에 따라 개인별 차이가 생기겠죠?]

1.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일어설 염치가 없고, 무력했을 때 그를 독려한 사람은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였다. 그가 에스라에게 나와서 우리가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고 새롭게 언약한다면 소망이 있다고 한 것이다. 에스라 당신이 이 일을 주도해야 할 사람이니, 당신이 시작하면 우리가 돕겠다고 하면서, 에스라를 격려한 것이다.

2. 에스라는 이들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이스라엘에게 이 맹세를 하도록 하기 전에 그는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 온전한 금식을 수행했다. 그리고 힘과 용기를 얻은 후 귀환한 동포들을 3일 이내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명령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재산을 몰수하며 유다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3.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여든 많은 인파에 오히려 놀라고 두려워했다. 더불어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큰 비를 경험하면서 뭔가 하나님의 준엄함을 느낀 것 같다. 에스라가 이들을 향해 어떤 명령을 내리기전 이들은 이미 충분히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노하실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4. 에스라는 이방여인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고, 그것을 속히 시행하며 해당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에스라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는데, 그 명단을 작성하는 일에만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아내를 다시 돌려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중에는 아이문제까지 걸려있어 사실상 온전히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는 것을 본문은 마지막에 살짝 언급한다. 물론 내부적으로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소수이긴 했겠지만 말이다.(15절)

5. 에스라의 개혁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에스라는 어쩌면 그 결과가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와 같은 시도를 했다는 것, 하나님이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싫어한다는 것 정도를 말씀하시려는 것 같다.

 

[3차. 묵상과 적용]

1. 에스라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스가냐'아는 사람이었다. 지도자라도 뛰어난 신앙인이라도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오히려 에스라처럼 더 민망해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지식인이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미리 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스가냐'같은 의지를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돕겠다고 나오면 힘을 얻는다.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지도자다. 그러나 지도자라고 늘 생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절망에 노출되며, 더 높은 벽에 부딪힌다. 이 때 필요한 사람은 바로 스가냐와 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너를 돕겠다고, 힘을 내시라고, 당신이 앞장 서기만 하면 내가 사람들을 이끌어서 당신의 가는 길을 지지하겠노라고...

지도자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중에 복이다. 지도자에게 이런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부족한 2%로다. 평시에는 지도자 혼자도 잘 감당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견디고 이기게 해주는 것은 바로 스가냐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느냐 없느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순간을 위해서라도 지도자는 자기 주변에 예비 '스가냐'를 많이 키워놓아야 한다. 지혜롭다면 위기의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

 

2. 매우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큰 비'라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셨다. '큰 비'는 사람들로 하여금 에스라의 공포를 더욱 효력있는 명령으로 들리게 했다. 이로 인해 어떻게 보면 매우 무리한 요구(이미 결혼한 이방여인들을 돌려보내라는... 한 두 집도 아니고 엄청나게 만은 가정에서 아내를 돌려보내야 했을 것이다.)를 이스라엘로 큰 잡음없이 순종하게 하셨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세운 사람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실 때 전면에 드러나시기 보다는 무대 셋팅을 하신다. 이것이 섭리이면서, 하나님의 계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에 있어서 완전한 무대 연출가라는 것은 이런 것에서도 보게 된다.

 

3. 끊어야 한다. 죄는 끊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끊어야 한다.

  그로 인해 얼마나 큰 손실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끊으라고 한다. 가정 안에 이별이 있고, 부부간의 깨어짐과 분란, 자녀들이 엄마를 잃게 됨과 같은 많은 부작용이 당장 눈에 띄이겠지만, 하나님은 끊으라고 한다. 한 두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될 지라도 하나님은 끊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죄를 끊어야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엄청난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일,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하나님은 끊게 하신다.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무관한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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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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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8장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읽을 때 저자의 진행속도에 우리 자신도 맞춰야 합니다. 저자가 빨리 지나가면 전체적인 큰 흐름만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매우 천천히 이것 저것 꼼꼼히 보고 지나간다면 우리도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할 말이 있어서 빨리 감기를 하기도 하고 더디게 감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저자의 의도를 알고 그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기만 하면 된다.

 

[1차. 본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라]

1.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의 계보(1-14절)

2. 모인 백성 중에서 레위인이 없음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특별히 찾아 냄(15절)

1)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서 3일간 머무르며 백성과 제사장을 살핌(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음)

2) 에스라가 느디님 사람들을 통해 레위인들을 찾아 오라고 요청. 레위인을 찾아 옴

3. 에스라가 출발 전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겸비하여 기도함(21절)

1)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왕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22)

2) 그러나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 평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3) 에스라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그 응답을 받았다.

4. 성전에 바칠 예물은 책임자를 정해서 따로 운반하도록 임무를 맡기다.

1)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 12명을 따로 세워서 성전을 위해 드린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맡김

2) 예루살렘 성전의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5. 하나님께서 에스라와 귀환 유다인들을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다.(31-36)

1)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와 무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셨다.

2) 예루살렘의 제사장에게 금, 은 그리고 그릇을 무게를 달아보고 건네주었다.

3)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4) 에스라가 왕의 조서를 유다 총독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주자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다.

 

[2차. 본문의 내용을 내가 정리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재정리] 이 때, 내용은 더욱 간단 명료해져야 하고, 강조점은 좀 더 선명해 져야 한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과 지원받고 예루살렘에서 오기 전 준비와 도착해서 제사드리는 모습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출발하기 전 세 가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첫째는 레위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레위인을 찾아오도록 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에스라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필수적인 사람을 꼼꼼히 체크했고,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들을 채워서 귀환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성전에 드려진 은과 금, 그리고 그릇들을 잘 운반하기위해 제사장 중 12명을 따로 뽑아서 그들에게는 특수한 임무를 주었다는 것이다. 귀환하면서 에스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성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셋째는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에스라의 인식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에스라가 왕에게 자신들을 호위해 줄 말과 마병을 요구했다면 왕은 허락해 주었을 것이다. 그라나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이 왕의 호위병을 의지해야지만 안전할 수 있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왕의 호위병을 거절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웠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금식하고 간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다.

도착하자 주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성전을 돕는 역할을 했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이방 땅에서 귀환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성전 기물 그리고 제사(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중요성이 매우 대두된다.

   : 성전, 제사, 제사장, 레위인... 귀환 공동체를 생각할 때 이 요소들에 대해 잘 관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면서 잃어버린 결정적인 것은 나라 이전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 제사>다.

2. 에스라라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자가 귀환하여 돌아오는 과정을 잘 진행한다.

  1) 돌아오는 사람의 계보를 파악해서, 레위인이 부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채워서 데려갔다.

  2) 성전을 위해 드린 금은 그릇은 또 따로 제사장을 세워 책임지도록 했다.

  3) 안전을 위해서 왕의 힘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 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유다 백성을 건저낸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모세와 비견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도움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케 하심이라고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 권세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의 도움을 거절할 수 있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아브람이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했던 것처럼(당신의 준 것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우리는 세상의 유익을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와 귀환 백성들을 대적과  매복자들의 손에서 보호해 주시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형통하게 해주셨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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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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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는 바울이 그레데에 디도를 남겨두고 그곳에서 남겨 진 일을 감당하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서 1)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과 또 2)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확대하고,  3) 영생의 소망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더불어 그레데에서 경계해야 할 부류와 그들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1. 장로와 감독의 자격

  1) 장로의 자격: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며, 주로 가정에 대해 경건하고 온전한 양육의 본을 가진 자라한 한다고 한다. 특히, 자녀가 방탕하다거나 불순종한다든지 혹은 믿음이 없다는 평을 듣는 자는 장로의 자격에서 제한을 두어야 함을 지적한다.

   2) 감독의 자격: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며, 민주적이며 합리적이고 청렴한 자라야 한다. 선을 행하기 즐거워 해야 하고 신중하고 거룩하며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대로 권면할 수 있도록 본인이 먼저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장로는 가정에 대한 측면에서의 평가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감독은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리더십과 경건과 청렴한 삶, 그리고 먼저 말씀으로 누군가를 권면할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여야 한다.

 

교회의 장로 혹은 감독을 세우는 것은 성도를 위한 것이다 바울은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장로 혹은 감독을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직분과  역할을 가진 사람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성도들을 세우는데 필요한 방식이라고 본다. 현재 교회가 교회마다 장로 혹은 감독의 직분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세상적인 조직의 원리에 근거해서라기 보다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그 동안 노력하고 수고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자리가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명예직이 아닌 것이다. 직분자들은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세우려고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과 경건을 확대하여 영생의 소망을 더욱 일으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와 같은 거룩한 일을 위해서 세워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2. 경계해야 할 대상들 태도들

  아래와 같은 태도와 행위에 대해서는 막아야 한다.

불순종, 헛된 말, 더러운 이득을 취함, 가정을 무너뜨림, 거짓말, 악한 행위, 배만 위하는 것

  이와 같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거나 확대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장로와 감독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와 감독의 자격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건을 독려하고,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제제를 가할 때 성도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면 먼저 그 자신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아 왔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흠잡힐 것이 없을 정도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로와 감독을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자격 조건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존경할만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이 먼저 되어야 한다.

존경할만한 사람 중에서(존경받는 사람 중에서) 좀 더 구체적인 제약으로 점검하며 사람을 세워야지, 꺼꾸로 (최소)조건이 맞는 사람 중에서 단순히 투표로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순서가 바뀐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기능에 맞는 사람이기 이전에 교회를 지도할 수 있는 권위(인격적, 삶의 모범적)를 가진자여야 한다는 목적을 염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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