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사기 18장] 사사기 16,17장이 왕이 없던 시대의 미가의 가정을 보여 주듯이, 사사기 19장은 단 지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왕이 없으니 제멋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왕이 없을 때, 힘이 강한 단 지파가 힘이 약한 미가의 집을 수탈하게 된다. 왕이 없다는 것은 더 강한자가 약한자를 탈취하되, 대응하여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정의롭고 공정하기 위해서는 왕이 필요하다. 세상에서도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말이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에 단 지파는 제멋대로 행했다. 

  1) 그 때에 단 지파는 거주할 기업을 구하는 중이었다.(아직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였다.)

  2) 단 지파는 자기들 중에 용감한 자 다섯 사람을 보내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 이들은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레위 청년이 있음을 보고 레위 청년에게 자신들의 길이 형통할 것인지를 묻는다. 

  3) 레위 청년은 그들이 길이 형통할 것을 말해 주었는데, 그 이후 그곳을 떠나 라이스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 땅은 평온하고 풍성하여 정복하기에 좋은 곳을 발견했다. 이 정탐꾼은 자기 지파에게 가서 그곳을 설명하고 그 땅을 정복하러 가자고 했다. 그 땅을 하나님께서 넘겨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4) 단 지파 중 600명이 무기를 가지고 라이스를 정복하기 위해서 떠났는데, 가는 길에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2. 단 지파가 미가의 집에서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 레위 사람을 데리고 가다.

  1) 전에 이곳에 왔던 5명의 정탐꾼이 미가의 집에 에봇과 드라빔, 그리고 새긴 신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600명의 군사들과 함께 그 집으로 가서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을 가져가려고 하자, 미가의 집의 제사장이었던 레위인은 그들에게 무엇을 행하느냐고 물었고, 단지파의 정탐꾼들은 오히려 이 제사장에게 한 집안의 제사장이 되기보다는 한 지파의 제사장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제안한다. 미가의 제사장은 이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그들을 좇아간다. 

  2) 그들은 그곳에서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함께 가지고 떠나자, 미가는 자신의 이웃들과 이들을 좇아 왔으나, 이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단 지파의 협박에 결국 포기하고 만다. 


3. 단 지파가 라이스를 점령하고 자신의 성을 쌓다.

  1) 단 지파는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살랐다. 그러나 아무도 라이스를 도와 구원할 자가 없었다. 

  2) 단 지파는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그 성읍을 단이라고 불렀다.

  3) 단 자손은 그것에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다. 

  4)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미가가 만든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를 풀어서 쓰기]


하나님의 법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행한 한 집안 미가의 집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이제는 제멋대로 행하는 한 지파, 단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단 지파는 그 때까지 이스라엘에 기업을 얻지 못하고 정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착할 수 있는 땅을 얻기 위해 정탐꾼 5명을 보낸다. 이들 정탐꿈은 그 과정에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신상과 신상을 섬기는 레위인을 보게 되었다. 그 정탐꾼들은 레위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레위인은 그들에게 형통할 것을 약속해주었다. 


정탐꾼들을 통해서 라이스라는 곳이 적합하다는 것을 보고 받은 단지파는 600명의 사람을 무장시켜서 라이스를 정복하도록 한다. 600명의 병사들은 올라가는 길에 미가의 집에 들르게 되고, 그곳에 에봇과 드라빔 그리고 새긴 신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자신들이 가지고 가고자 했다. 이를 본 제사장은 그들을 향해서 무엇을 행하는 것인가 지적한다. 그 때 단지파는 오히려 그 제사장에게 너도 함께 가지고 제안한다. 제사장인 한 집 안의 제사장보다는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는 기뻐하면 그들을 따라 나선다. 


이런 상황을 안 미가는 그의 이웃들과 단 지파의 병력을 쫓아 보지만,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국은 포기하고 만다.  


단 지파는 라이스에 가서 그들을 공격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단 지파는 그곳을 단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왕이 없던 시대에 제멋대로 행했다.


사사기 16,17장이 제멋대로 행한 미가의 집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사기 18장은 제멋대로 행한 단 지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두 사건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법을 떠너 제멋대로 행동하는 단 지파가 제멋대로 행동하던 미가 집안을 심판하는 방식으로 연관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법을 떠나,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생들은 서로 물리고 무는 기가막히는 관계로 엮어지게 되며,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미가의 것을 가지고 단 지파가 세워지는 것 같았으나, 결국 단 지파의 운명도 한계를 가지고 있게 되었던 것이다.(31절)


왕이 없이 제멋대로 살면, 가장 행복하고 이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고, 엮이게 되면 제멋대로 산다는 것은 더욱 복잡한 일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신호를 무시하고 내 편의 대로 길을 건너는 것이 가장 편한 길 같지만, 모든 사람들이 제멋대로 신호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더 불편하고 복잡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당장에는 제한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에게는 왕이 있어야 하고, 전체를 다스려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2. 우상에 대한 무감각과 배반과 배신의 역사를 보여준다. 


단 지파의 정탐꾼은 미가의 집에 신세를 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미가의 집에 있었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훔쳐 가고자 한다. 이를 제지하고자 했던 미가의 제사장에게 단지파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자  그 제사장은 자신을 고용한 미가를 저버리고, 더 좋은 자리를 위해서 과거의 자리를 버리고는 떠나 버린다. 


미가의 것을 훔진 단 지파지만, 미안한 기색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것을 찾으려고 온 미가를 향해서 협박을 함으로 미가가 스스로 돌아가게 만든다. 질서와 법이 아닌, 힘과 성공과 경제적 이익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 인생에게 왕이 없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정부가 없고, 통치자가 없다면 우리가 혼란스러워 지듯이 우리 인생의 주인과 왕이 다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불편하고 복잡한 일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 18대 대통령이 세워졌다. 대통령으로 인해 이 나라가 더욱 질서 있고 서로 규칙을 지키는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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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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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시 1장]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과 사사기 1장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의 성취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현상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마치 열왕기와 역대기가 같은 역사를 다르게 기록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한 듯 합니다. 언약의 성취로서의 종말을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하고 언약의 성취와는 괴리된 현실에 대한 안목도 필요합니다. 이 두가지 안목이 모두 필요하니까 성경은 역사적 사건을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와 시므온의 정복 활동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 대해서

  2) 여호와께서 유다를 먼저 부르셨다. 그래서 유다는 시므온과 연대하여 전쟁을 치르게 됨.

   (1) 유다가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

   (2) 베섹에서 아도니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이기니 아도니 베섹의 엄지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자름

   (3) 아도니 베섹은 자신이 전에 70명의 왕들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아도니 베섹이 그렇게 죽었다. 

  3)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고, 성을 불살랐다.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다.

  4) 갈렙은 기럇세벨을 점령한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했는데,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했다. 갈렙은 그의 딸을 그에게 주었다. 그의 딸 악사는 출가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땅과 함께 샘물로 구했는데, 갈렙으로부터 윗샘과 아랫샘도 얻었다. 

  5) 모세의 장인은 겐사람인데,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거주했다.

  6)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진멸하였는데 그 성읍의 이름이 호르마라 하였다. 

  7) 유다가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다. 

  8)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의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어서 쫓아내지 못했다. 

  9) 헤브론은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여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벧엘을 치다. 

  1) 요셉의 가문도 벧엘(본 이름은 루스)을 치러 올라갔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2) 정탐꾼들은 벧엘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성읍의 입구를 알려달라고 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벧엘을 치고  그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놓아 보냈다. 이들이 헷사람의 땅에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고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있다. 


3.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

  1) 므낫세가 쫓아내지 못하자,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게셀이 그들중에 거주함.

  3)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해서 그들에게 노역을 지켰다. 

  4) 아셀이 그 땅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5) 납달리도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다. 그 중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은 노역함.

  6) 아모리 족속은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었다. 골짜기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후에 요셉 가문의 힘이 강성해 지자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 노역을 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라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시점으로 보면 여호수아서 다음의 이야기인데, 처음 얼마는 여호수아서와 중첩되는 내용이 있지 않은가 싶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정복을 마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사기에서는 아직도 전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 중에는 아직 완전히 점령되지 못한 지파와 지역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적 관점에서 예언적으로 본 것이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가나안 정복과 관련되어 크게 두 지파가 부각된다. 유다와 요셉지파다. 유다는 시므온과 연합하고, 베냐민과 같이 언급된다. 주로 유다의 성공적인 정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아도니 베섹을 심판한 장면과 옷니엘을 통해 기럇세벨을 정복한 내용, 모세의 장인 겐사람들의 후손들이 유다와 함께 하게 된 것(모세와의 연결점을 의도한 듯) 등 유다의 정복을 성공적으로 그린듯 하다. 물론 유다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로 인해 정복하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유다와 대조되는 지파는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다. 이들은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지파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므낫세와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납달리도 그 땅 주민들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단 지파의 경우는 오히려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서 산지로 몰려나갔다. 그들 가운데 거주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각지파가 강해진 후에야 노역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른 지파에 비해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파는 요셉지파인데 이들이 단 지파를 쫓아낸 아모리 족속을 제압하여 노역을 시킨 것으로 언급된다. 


1. 사사기의 시작에서 유다와 요셉 자파에 대한 기록이 강조되고 있다. 

2. 완전한 정복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정복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오랜시간 가나안 족속과 함께 상존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사사기의 관점 포인트

  1)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읽으라.

  2) 가나안 땅에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역학관계를 살피면서 읽으라.

  3) 다른 지파에 비해서 상당히 위축된 <단지파>의 운명에 대해서 살피면서 읽으라. 


사사기 1장은 사사기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디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초점을 잃지 않으려면 위의 세 가지 항목(추가적으로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을 기본적으로 주의하면서 읽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완전한 정복이면서 충분하지 못한 정복이었다.


사사기 1장에서의 이스라엘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에서 본 이스라엘 정복이야기하고 분위기가 다르다. 사사기는 아직도 정복해야 할 곳이 많고 쉽게 정복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룬 여호수아서는 모든 정복이 잘 마무리 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혼동이 온다. 


이는 여호수아서의 정복이야기 관점은 예언적인 성취에 초점을 둔 것이고, 사사기의 정복이야기는 실재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기간의 역사 기록에 있어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두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언약의 성취시점인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지금 현실에서 보는 역사적 한계에 대해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서는 완성을 지향하고 승리를 지향함으로 연약한 성도로 하여금 소망을 바라보게 한다. 반면 사사기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설명함으로서 영적인 긴장을 유발시킨다. 성도는 이 두가지 내용을 공히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다리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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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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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19장] 12지파의 땅의 분배를 모두 마치게 된다.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유다와 요셉 자손 지파를 제외하면 시므온 지파와 단 지파의 기록이 다소 독특하다 하겠다. 여호수아 19장에서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가나안 땅을 모두 분배받은 것으로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표면적으로는 성취된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더 전개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뭔가 더 하고 싶은 것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인가는 다음 장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나머지 지파들의 땅 분배

  1) 둘째로 시므온 자손의 기업 분배: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는데, 유다 자손이 자신의 분깃이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받음(9절)

  2) 셋째로 스불론 자손의 기업 분배

  3) 넷째로 잇사갈 자손의 기업 분배

  4)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기업 분배

  5)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의 기업 분배

  6) 일곱째로 단 자손의 기업 분배

   (1)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다.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다. 그래서 레셈을 단이라고 하였다. 

  7) 기업 나누기를 마치고, 여호수아가 자신의 기업을 받음

   (1)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다. 


2.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다.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다. 

 

<지도상의 오류 수정. 므낫세 지파의 동쪽, 서쪽 표기가 반대로 되어있습니다. 죄송합니다. 2020. 10. 7 수정>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유다 지파와 요셉 자손의 지파 므낫세, 에브라임 지파의 땅 분배를 마치고 18장부터 나머지 지파들의 분배가 시작되었다. 먼저 베냐민 지파를 분배하고, 오늘 본문부터는 그 이후 지파들의 분배를 말한다.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의 순으로 분배한다. 모든 지파의 분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기업을 분배 받는다. 


지파 분배 중 특징적인 내용이 있다면, 시므온의 경우는 유다의 분깃이 너무 커서 그 땅에서 일부를 분깃으로 받았다는 것과 단지파의 경우는 적극적으로 전쟁을 통해 점령함으로 그 경계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시므온은 유다 땅의 일부를 얻음으로서 손쉽게 땅을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고, 단지파는 적은 영토였지만, 적극적인 전쟁을 통해서 경계를 넓혀 나가기도 했다. 매우 유동적인 분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일을 모두 마치게 되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다른 지파에 비해서 유다와 요셉 자손의 지파(에브라임, 므낫세)가 더 강조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유다 지파의 분배에 대해서는 14,15장에 언급하고 있고, 요셉의 두 아들 지파에 대해서는 16,17장에 언급하고 있다. 각각 두 장에 걸쳐서 언급하고 있는 것에 비해 다른 지파에 대해서는 매우 간소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12지파의 땅 분배에 있어서 유다와 므낫세, 에브라임 지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앞으로 이 지파들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중심 지파라는 것을 복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소수 지파 중에도 좀 유심히 보는 지파는 시므온과 단 지파다.

  1)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로 인해서 쉽게 기업을 얻게 되는 지파로 묘사 된다.(유다 지파의 땅이 너무 커서)

   꼭 시므온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훗날 결국 시므온 지파는 영토적인 면에 있어서 유다에게 흡수되게 되지 않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스스로 전쟁하여 얻지 않고 쉽게 얻은 열매들이란,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결국은 훗날 그 정체성 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2) 단 지파는 작은 땅이지만, 전쟁을 통해서 더 정복함으로 그 경계를 넓힌 지파로 언급되고 있다. 

   반면에 단지파는 적은 땅을 분배받았지만, 적극적으로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이것은 땅의 분배라는 것이 기계적인 분배가 아니라 유동적인 분배라는 것을 보여주고, 기업을 받는 사람들의 적극성에 따라서 확대 혹은 축소 될 수도 있는 분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3. 여호수아는 모든 지파의 기업 분배가 다 마치고 나서 맨 나중에 자시의 기업을 받게 되었음을 기록한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먼저 선점하지 않고 맨 마지막으로 분배받는 모습은 지도자로서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봐야 할 듯 하다. 공로에 비해서 결과를 먼저 취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 사람들의 감동을 준다. 


4. 이로서 모든 지파가 가나안 땅에서 땅 나누는 일을 마치게 되었다는 공식적인 기록이 나온다. 


  이제 땅의 분배라는 중요한 일을 마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모세를 통해서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으로 평가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가 여기서 마무리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한참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당히 멀리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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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스라엘이 왜 두 개의 나라로 분할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 이지만, 분단이라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찌보면 이렇게 함으로서 나머지 한 쪽이라도 더 오래 살려보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세겜에서 이스라엘의 왕 됨을 인정받으려 하였으나...(1-20)
  1)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이스라엘은 애굽에 망명한 여로보암을 불렀고,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2)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대표들이 르호보암에게 <부역>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3) 르호보암은 3일간의 기간을 요청한 후 아버지의 신하들과 자기 주변의 신하들에게 각각 그 의견을 물었다.(아버지의 신하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고, 자기 주변의 신하들은 오히려 더 부역을 강하게 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4) 3일 후에 찾아온 이스라엘의 대표들에게 르호보암은 솔로몬 때보다 더 큰 부역을 시킬 것이라고 말하자, 이스라엘 대표들은 르호보암(유다지파)과 이스라엘이 상관없음 말하고 떠나감.
  5) 르호보암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인 일이 발생하자 르호보암은 급히 예루살렘으로 피신했다.
  6) 르호보암을 다르는 사람은 유다 지파로 제한되고, 이스라엘의 10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르호보암은 애굽의 바로처럼 행동했다.)

2. 르호보암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하였으나...(21-24)
  1)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서 병사를 모집하여 솔로몬의 나라를 회복하려 함.
  2) 180000명을 모집하여 전쟁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서 이를 막으심.
  3) 이와 같은 일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라는 것을 알렸고, 르호보암은 돌아감.

3. 여로보암도 나라를 견고히 하려고 했으나...(25-33)
  1) 여로보암은 자신의 나라를 견고히 하려고 하는데 있어서 성전과 절기가 문제가 됨을 인식.
  2)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서 제사와 절기를 지키다보면 민심이 유다 왕에게로 갈 것을 두려워하였다.
  3)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다 두었다. 이 금 송아지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라고 했다.(아론처럼 행동했다.)
  4) 산장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다.
  5) 여로보암이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정해(여덟째 달 15일) 벧엘에서 분향하였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솔로몬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는 남유다 출신이기에 북 이스라엘 지파들에게도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세겜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젊은 친구들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권위에만 집중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심을 간과했다.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을 무시하자, 이스라엘은 르보호암의 왕 됨을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다. 이렇게 해서 남 유다는 르호보암을,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두 왕국이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 내용을 읽다보면 르보호암이 애굽의 바로왕과 유사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된다.


르호보암이 병력을 모아 이스라엘과 전쟁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이를 막으심으로 극단적 위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반면 열 개 지파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된 여로보암은 민심이 예루살렘 제사와 절기로 인해 결국은 남유다에게로 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결정을 하고 만다.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고 북쪽에 두 개(벧엘과 단)의 제단을 만든다. 그리고 일반 백성 중에 제사장을 임의로 세우고, 절기의 날짜도 의도적으로 왕의 마음대로 변경하여 남 유다와 분리하려고 했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타락하게 된 계기가 된다. 여로보암을 보고 있으면, 제사장 아론의 실수가 생각난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민심을 배반한 르호보암.

르호보암은 솔로몬을 계승한 정통성을 가진 왕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북쪽 세겜을 찾은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지파간의 갈등을 염두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는 남쪽 유다 출신이기에 북쪽에서도 왕으로서 인정을 받고 명실상부하게 이스라엘 전역의 왕으로 추대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솔로몬과 같은 왕으로 인정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지,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의 민심을 전혀 읽지 못했다. 부역을 가볍게 해달라는 민생의 간절한 요구를 르호보암은 철없는 젊은 신하들의 제안에 현혹되어 무시해 버린 것이다. 이 장면에서 <바로 왕>이 생각난다. 모세의 요구에 애굽의 바로는 더 큰 고통으로 이스라엘에게 돌려주었던 것 말이다. 이것을 계기로 르호보암은 북쪽 열개 지파의 대표로부터 지지를 잃고 이스라엘을 다른 왕을 찾게 된다.

르호보암은 왕의 정통성을 가진다. 그가 민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하기만 했다면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솔로몬과 같은 왕이 되었다고 생각한 르호보암은 민심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그들의 요구를 무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백성은 그 왕을 버린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을 될 만한 사람이 진정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제반 환경이 그를 돕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민심을 읽지 못하고(읽는 척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요 오히려 배반하는 가증한 것이다.) 자기의 승리에만 도취되어 있다면, 그는 르호보암처럼 버림 받을 것이다. 민심은 그런 것이다. 민심의 마음을 읽지 않고 민심을 우습게 여기면 선거 때 표 한장 더 받으려는 속셈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결국 백성으로 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2. 무리하게 민심을 잡으려고 했던 여로보암. 

민심을 배반한 르호보암으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다.  혈통적으로가 아니라 백성의 지지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왕이 된(물론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지만) 여로보암은 백성들의 민심이 다른 곳으로 갈 것을 가장 우려했던 것 같다.

제일 큰 문제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기 위해 일년에도 몇 차례식 모든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다. 이것은 백성들의 마음이 지금은 르호보암에 대한 반감으로 국가가 나뉘어 졌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남유다로 향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그렇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무리수를 두었다. 민심을 잡기 위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행한 것이다. 금 송아지 둘을 만들었고,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했다. 레위인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며하고, 명하신 절기가 아닌 다른 날에 여로보암이 임의대로 정해서 절기를 지키도록 했다. 이것은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북 이스랴엘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과거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 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뻔 했다.

민심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민심을 잡으려고 하면 그곳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할 수 없는 정책을 남발하거나,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추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도 않을 것을 할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 그릇된 방법을 동원하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다. 누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인가? 민심을 무시하는 자도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자기의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 민심을 얻으려고 하는 자도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민심을 천심으로 알고, 하늘의 뜻을 읽고 사심없이 겸허히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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