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William Daigneault

Photo by William Daigneault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14절.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절.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절.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절.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절.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성경내용 정리]

1.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서 돼지 떼들이 바다에 몰사하게 되자 돼지를 치던 자들이 읍내와 여러 마을에 다니면서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을 알렸고,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을 보려고 왔다. 

2. 그들이 와서 본 것은 그 귀신 들렸던 자(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이 사람은 그 마을에서 귀신들려 통제할 수 없는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그들은 이 귀신들린 자가 얌전하게 앉아있었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3. 그 현장에서 귀신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 떼에게 벌어졌던 일을 본 사람들이 찾아온 무리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그들의 반응은 '그 지방에서 떠나달라는 것'이었다. 

4.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다시 배에 올라 떠나고자 하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네게 어떤 큰 일이 일어났었는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을 네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에게 있었던 큰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고, 듣는 모든 사람들은 이 일을 놀랍게 여겼다. 


[질문하기]

1.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의 군대 귀신을 내쫓아 준 것을 보고 왜 마을 사람들은 예수를 귀신을 제압하는 권세자로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을까?(17절)

  1) 너무나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생겼을 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적 능력이 있음을 깨닫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2) 돼지에게 벌어진 일을 들었다. 수 천 마리의 돼지 떼가 예수님으로 인해 일순간 몰살되었다. 그 피해의 크기에 그들은 두려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큰 힘을 가진 분이 내게 유익을 줄지, 아니면 해로운 대상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없었던 상태'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떠나 달라'고 요청했을지 모르겠다. 


2. 왜 예수님은 함께 있겠다는 그 사람에게 따라오라고 하지 않고, 이 일을 네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셨을까?(이전에 보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시기도 하셨는데 그것과는 상반된 조처를 하심)

  1)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 귀신들려 고통 받았던 사람은 그 자신과 그의 가족들이었을 것이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귀신들린 자를 집에 둘수 없었고, 마을에 머물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이었기 때문에 마음 아팠을 것이다. 주님은 제일 먼저 그 귀신들린자와 귀신들린 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먼저 이 기쁜 소식(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을 알리도록 하셨다. 

  2) 그러나 귀신으로부터 자유해진 사람이 가족들에게만 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인근 사람들에게 그 소식은 전해졌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 일을 놀랍게 여기게 되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적극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따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그 놀라운 일을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간증이라고 볼 수 있는) 또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묵상하기]

예수님께서 행한 놀라운 일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는 것을 본다. 

우선 그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두려어했다. 예수님이 가지신 그 권능과 힘은 나에게 도움이 될지 나에게 해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힘이라면 그것은 적극적으로 내곁에 두어야 하지만, 내가 예측할 수 없는 힘이 내 주변에 있을때 그것은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의 요소가 되고 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은 없는 것이 났다고 볼수 있다. 그들은 또 많은 돼지 떼를 잃어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지방에서 떠나소서' 그러나 그 힘이 나를 귀신에게서 해방시켜준 힘이고, 내 가족을 고통 속에서 자유하게 해준 힘이라는 것이 분명하다면(귀신들린 자와 그 가족들이 경험했듯이) 예수님께 함께 있기를 원하게 된다. 

귀신으로 인해 고통당했던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절대적으로 구원자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던 자에게는 예수님은 자신의 도움이 될지 해로움이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능력을 가진자에 불과하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rawpixel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40절.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절.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절.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절. 보내시면 엄히 경고하사

44절.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서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서 나아오더라.


[성경내용 정리]

1.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깨끗하게 해 주시길 원했다. 그는 예수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주님은 '당신이 원하신다'고 말씀하시고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니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그대로 이루어졌다. 

2.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깨끗해지자 '곧' 말씀하셨다. 이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엄중히 말씀하셨다. 1)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2) 다만 제사장에게만 가서 몸을 보이고 깨끗하게 된 것을 입증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일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이 일을 많이 전파했고 널리 퍼졌다. 그 이후로도 예수님은 사람많은 곳으로 다니지 않으시고 변두리 한 적한 곳에 계셨지만 사방에서 예수님을 찾아 왔다. 


[질문하기]

1. 일반 병자를 고치신 사건과 구별해서 구체적으로 한 나병환자를 고치는 사건을 통해서 강조되는 것은 무엇인가?

  1) 나병환자는 일반적인 병자와 구분해서 '부정한 병'이라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었고 부정한 자라고 여김받았던 병이다. 그런데 그 병을 가진자가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은 그 나병환자를 물리치지 않고 받아주셨다.(부정한 자, 죄인을 수용하시는 예수님)

  2) 나병환자는 예수님이 '원하시면' 고치실수 있다고 고백했고, 예수님은 '내가 원한다'는 것으로 화답하심으로 정말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원하시면 그 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마음에 원하시는 것을 실제로 이루어 내시는 분)

  3) 나병환자를 치료하신 이후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것을 경고하시면서도 제사장에게는 보이라고 하심으로 '구약의 율법'을 무시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제사장'으로부터 입증을 받고 온전한 회복을 이루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셨다.(모세의 법을 인정, 제사장 인정, 전통을 파괴하는 위험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왜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치신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강요하셨을까?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경고를 순종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순식간에 퍼지게 된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감추고 숨기려고 했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숨겨지지도 감출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마을을 피해 한적한 곳에 머물렀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찾아 나왔다. 예수님은 감추고 숨기려했으나 참출수도 숨길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묵상하기]

1. 예수님은 원하시면 그 원하시는 것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한계는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많은 것을 원하시지만 그것을 성취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고통당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나병환자의 경우 그는 얼마나 많이 그 병이 낫기를 원했을까? 얼마나 오랜시간 간절히 기도했을까? 그러나 그런 원함과 소망만으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면' 그 일은 실행된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인들은 나병환자를 혐오했다. 그들이 낫기를 원하기 보다 그들이 자기 주변으로 오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제사장들은 나병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는 일에는 정확했을지 모르지만 그 병을 가진 사람의 아픔과 간절함에는 무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물리치지 않았고 오히려 '나병환자가 낫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그 나병환자를 낫게 하셨다'. 어떤 사람이든 나병환자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사람이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간 사람들은 회복된다.(확실히 구원이 임한다)

2. 어둠은 빛을 감출수 없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높이고 드러내고 알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 분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고 스스로 확장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출수가 없었다. 그를 경험한 사람은 예수를 숨길 수가 없었다. 마을 변두리에 숨어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빛에 대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 올 수 밖에 없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듯 빛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를 향해서 나아오게 된다. 

최근 한국 사회에 기독교의 영향력이 추락하고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가 감추어지는 것이고, 그릇된 전통이 추락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감출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비판은 예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는 빛인데 예수를 예배하고 섬긴다고 하는 너희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왜 어둡냐고 힐난 하는 것이다. 이럴수록 우리의 신앙은 '예수'에 집중하고 '본질'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Toa Heftiba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29절.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절.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32절.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절.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회장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2. 시몬의 집에 있던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있었다. 사람들이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음을 급하게 알렸고, 예수님은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열병은 떠나고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종들었다. 

3. 해가 저물때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사람들이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4. 예수님은 각 종 병이 든 많은 사람들을 고쳤고, 많은 귀신을 내쫓았다. 

5. 귀신들도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질문하기]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것은 귀신을 내쫓았다는 것이고, 병자들을 고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이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수 있도록 세례 요한은 준비했고,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귀신을 내쫓는다는 것은 이 땅의 권세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병을 고친다는 것또한 이 땅의 능력으로는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시작하심과 동시에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쳤다' 귀신에게 명한즉 귀신도 순종했다.(34절. 귀신이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많은 병자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이 가지신 권세의 영역과 힘이 이 세상의 권세와 힘과는 다르다는 것을 처음부터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묵상하기]

예수님의 사역에 병을 고치시는 사역과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땅의 권세과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류의 문제-질병-를 간단하게 해결해주시는 분으로서의 예수를 드러내고 있고 인생이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인 영역에서의 고통-귀신들림-에 대해서도 말씀으로 통제하시는 분임을 도드라지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병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귀신도 말씀을 쫓아내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보여주시는 것처럼 지금도 우리의 일상다반사로 그 일을 행하실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모든 질병을 없애기 위해 오신 것도 아니고, 귀신들을 다 잡아들이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은 어떤 능력으로 어떤 권세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때 행하셨으니까 지금도 할 수 있으시다. 그러나 그 때 하셨기 때문에 지금도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분에 오해를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은 지금도 병고치고 귀신 쫓느라 정신없이 바쁘실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 101-102쪽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립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 듯한 집이 좋다고 하지요.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이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잘못된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서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