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파괴하는 자가 니느웨를 치기 위해서 올라왔다. 

 

  1) 힘을 다해서 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라.

  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 니느웨의 멸망을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니느웨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니느웨의 심판은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3) 치열한 전쟁의 모습(병사들의 싸우는 모습, 병거들의 움직임들)을 묘사하면서, 결국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왕후는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감으로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장면을 묘사한다. 



2. 하나님이 니느웨를 대적함으로 말미암은 니느웨의 형편. 


  1)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곳 같은 곳인데, 이제는 모두 도망하니 서라고 해도 돌아보는 자가 없다. 

  2) 그 무궁히도 많았던 은과 금은 노략당했다. 

  3) 니느웨가 완전히 공허하고 황폐하게 되었더니 주변 사람들이 이 모습에 놀라고 떠는 모습을 묘사한다. 

        -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다.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4) 전에는 니느웨과 숫사자와 암사자처럼 자신의 굴에 먹을 것을 많이 채워넣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전혀 그렇지 못함을 말한다. 니느웨가 더 이상 사자이지 못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보인다. 


  5)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대적이 되시어 병거를 불사르고,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니느웨가 이와 같이 멸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대적하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한다. 




[묵상 한 모금]


1. 거대하고 강한 나라 앗수르(니느웨)라도 영원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나라가 홀연히 망하게 되어 완전한 약탈을 당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 땅에 영원한 나라는 없다. 영원히 강대한 나라도 없다. 세계 역사는 제국이라 하더라도 흥망성쇠가 있음을 보여준다. 앗수르는 젊은 사자처럼 강했고, 아무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그런데 그 나라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나라, 영원한 왕조, 영원한 왕조는 없다. 마지막을 생각해야 한다. 멸망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멸망을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한다. 멸망하지 않겠다고 무리하게 잔혹하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자는 다음 권력에 의해서 더욱 비참한 종말을 기하게 될 것이다. 끝을 생각하지 않은 정권처럼, 무모한 정권도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2. 제국은 망함은 단순히 자연적 멸망은 아니다. 시대적 흐름만도 아니다. 역사적 숙명만으로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앗수르의 멸망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직접 그들을 대적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기 백성들을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며, 악한 행위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영적인 면에서, 신학적인 면에서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인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으로 만 생각해서도 안된다. 한 나라, 한 제국, 한 시대를 움직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이후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사라져버린게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영토를 넘어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드러나고 밝혀지게 된 것이다. 크신 하나님.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일상의 작은 일들에 대해서는 기도가 응답되든 그렇지 않든 좀 더 초연해 질 수 있다. 여전히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 존경과 경외를 드리면서 말이다. 


이 나라의 지금 모습을 보면, 사방이 막힌듯 답답하다. 출구가 없다. 비상구도 없는 것 같다. 때론 숨죽이고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최선이라는 생각도 든다.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말이다. 미리 용쓰다가 나자빠지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하나님은 크시다.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운행하신다. 믿음은 소망가운데 기다림을 낳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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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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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분을 쏟아 내시는 장면들


  1)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 자기를 거스르는 자들에게, 대적하는 자들에게 진노를 품으신다. 

  3) 회오리바람이나 광풍에 있는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에 불과하다. 

  4) 그는 바다를 꾸짖고, 말리시며 강을 말리신다.

   * 바다는 통제가 되지 않는 곳이고, 그 물의 풍성함을 마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행하시는 분이시다. (마 5:27)

  5)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은 녹고, 땅은 솟아 오른다. 


3. 누가 능히 하나님의 분노 앞에 설수 있겠는가! 누가 그 진노를 감당하랴!


4. (그러나)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리라.

  * 하나님은 잔혹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한 줄, 자기를 의지하는 자는 잊지 않으심을 말씀하신다. 혹 세상의 큰 심판 가운데 함께 공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염려하게 될까봐 그러신지.. 늘 한 두마디씩 언급하신다. 


5. 그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 노아의 홍수 사건을 연상하게 된다. 물이 범람함으로 니느웨를 진멸함으로서 노아 홍수를 당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셨던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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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대적하지 못할 것이다. 


  1) 그를 온전히 멸하실 것이기에 다시 재난이 있지 않을 것이다.(완전한 멸망으로 인해, 재기 불능)

  2)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사악한 것을 권할 것이지만,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 지라도 반드시 멸절 당하리라. 다시는 괴롭히 일이 없을 것이다. 

  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하나님이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 이스라엘이 여전히 앗수르의 강함을 의지하고 기대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이번에 완전하게 멸망시키심으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할 것임을 확인하신다. 그로부터 당했던 결박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끊어 버리실 것이다.(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결박을 결박으로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히려 든든한 배경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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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앗수르의 영광은 이제 끝났다. 


  1)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다. 

  2)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3) 네가 쓸모없게 되었음이라. 


8. 이제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1)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2) 이제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들이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니 절기를 지키고 서원을 갚으라.


  * 앗수르(니느웨)의 멸망이 곧 이르게 될 터이니, 니느웨를 핑계삼아 절기를 지키지 않고, 서원을 소홀이 여겼던 것에 대해서 다시 제대로 지킬 것을 명하신다. 핑계거리를 없애심으로서 유다로 하여금 더이상 변명하지 못하도록 하신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분이다. 그것은 그의 진노를 보면된다. 그가 진노하실 때, 어디까지 동원할 수 있는가를 보면 그의 권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다를 말리고, 산들을 녹인다. 땅을 솟아나게 한다.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말한다. 


국방부를 움직이고, 국정원으로 조정할 수 있으며 모든 국가기관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태통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만큼이 그의 권한이 되고, 보통 위기의 순간(전쟁, 비상사태 등) 그 권한은 최대치가 된다. 요즘 대통령의 권한이 최대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그것은 지금이 평시가 아니라,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념적 위기상황... 그것이 대통령 권한의 최대치까지 인정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문제는 지금이 정말 특수상황인가와 아무리 특수상황이라고 해도 그 절차의 중요함마져 함부로 훼손한다면 그것은 독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엄청난 진노와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자기 백성들(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에 대한 안전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지나가신다. 자신의 뜻을 비추시고, 자신의 구원을 알리시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는 위로를 하시는 하나님의 따듯함을 발견하게 된다. 


3.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재기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으신다. 앗수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설마 설마 하겠지만, 결국 완전히 멸망시키신다. 역사 속에서 더이상 앗수르의 이름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와 같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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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하나님께서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을 향해서 책망하신다. 


  1)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1) 그런데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고 있다. 

   (2)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기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3)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한다.


  *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착취하고 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뼈까지 모두 발라 먹는 묘사를 통해 통치자들의 악이 얼마나 잔혹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2. 그 때에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을 찌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셨고 

   /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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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지자들의 죄를 지적하심


  1) 그 당시 선지자들은 자신의 입에 물것을 주면 평강을 외치나

  2) 그 입에 채워주지 않으면,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이었다. 


  *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뜻에 기초한 사역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탐욕에 사로잡힌 사역자들임을 지적한다. 


4. 그러므로 

  1)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어둠을 만나리니 점을 치지 못할 것이다. 

  2)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으로 선견자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술객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3) 반면, 미가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 거짓 선지자들은 영적인 어둠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미가 선지자 만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야곱과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는 참된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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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에게 하시는 경고

 

  1)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

  2)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 도다.

  3)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4)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5)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으리라! 이런 식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6. 이러므로 너희(우두머리, 통치자, 제사장, 선지자)로 말미암아


  1)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2)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3)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 시온과 예루살렘과 성전..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이곳이 큰 심판과 재앙이 임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우두머리, 통치자, 제사장, 선지자)의 죄악이 그 근거가 된다.



[묵상 한 모금]


1. 크게 3개의 구조로 되어있다. 죄에 대한 고발과 그로 말미암은 심판의 내용이 나오는 형식인데, 처음에는 야곱의 우두머리와 통치자들의 죄에 대한 고발이다. 두번째는 선지자들의 죄에 대한 고발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우두머리와 통치자 그리고 제사장과 선지자를 모두 포함한 죄에 대한 고발이고 그에 따른 심판이다. 


2. 우두머리와 통치자들의 죄는 정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이 무엇을 위함인줄을 알지 못하고, 그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오히려 자신을 위해 약자를 착취하는데, 악한 방식으로 그리 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자 그것이 왜 자신에게 주어지게 되었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그 자신을 위해서 주어진 권력은 없다. 권력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자신의 공로로부터 얻은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권력은 폭력이 되고 악이 된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부여하는 절차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나, 일단 권력이 주어지고 나면 그 권력자로부터 분리되고 마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3.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죄는 이들은 직업적 종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사장은 삯을 위해 일하고(삯이 없으면 안한다.) 선지자는 돈을 위해 점을 친다.(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점도 친다) 이들은 신성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잊은 채 물질에 사로잡혀버린 직업적인 종교인에 불과하다. 종교에서조차 세속적인 가치관이 관여하자 더이상 그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해 버린 것이다. 


4. 권력자들의 타락, 종교 지도자들의 세속성... 이것이야 말로 이 땅이 막장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권력자들의 타락이야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종교 지도자들과는 훨씬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이 내부적 세속성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경계하지만, 종교와 관련해서는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사람들간의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멸망은 한 요소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과 종교 둘 다 실패할 때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라도 잘 버티면 큰 재난은 막을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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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권력에 대한 개혁주의의 저항적 전통>

역사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권력에 대한 복종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1572년 프랑스 왕은 전국에 있는 개신교도, 즉 위그노 수만 명을 학살하라는 칙령을 내렸고, 그 명령은 실제로 집행되었다. 이 '성 바돌로메 날의 학살' 사건 이후 프랑스 위그노들은 "과연 그리스도인은 모든 정치권력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217쪽

정부가 정의가 아니라 불의의 주체가 되고, 공공선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그런 때에도 기독교인들이 정부에 순종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16세기까지의 지배적인 대답은 "그래도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로마서의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는 본문은 왕권신수설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 그러므로 위정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폭정 하에 신음하는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 그러나 칼빈주의 신학자들에 의한 로마서 13:1-7 등 성경본문들의 새로운 해석은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았다. 신학자들은 사무엘서 등에서 사울과 다윗이 일찍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실제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백성들이 그들을 왕으로 선택하고 추대한 후였다는 본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경본문들에 근거하여 그들은 하나님이 위정자들에게 권세를 주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접(immediately)이 아니라 백성들을 통해 '간접적으로(mediately)'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즉, 본래 하나님의 것이던 권세가 지상에 내려와서 머무르는 첫 번째 좌소(the first seat of the power)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이라는 것이었다. 지상에서 권력의 일차적 수령자(the first receptacle of the power)는 왕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이 생각은 주권 이론에 관한 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었다. 정치사상에 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 프란시스 쉐퍼가 자신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선언]에서 지적한 것 같이, 칼빈주의가 가장 널리 보급된 나라들 - 미국, 영국, 스위스, 스코틀란드, 프랑스, 화란, 덴마크 - 에서는 17,8세기에 예외없이 폭군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이 일어났다. 

••• 캐나다의 기독교 철학자인 폴 마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자들은 결코 폭군들에게 만만한 백성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부의 통치를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했다. 교회사, 특히 칼빈주의 교회사는 예외없이 정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고 그것을 재정의하는 역사였다." 그리하여 칼빈주의적 기독교는 절대 권력의 제한과 현대 입헌 정치를 위한 기초를 제공했다.
218-221쪽
역사적 칼빈주의의 정치적 전통은 보수적인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모른다. 물리력의 사용은 어떤 경우에도 비기독교적이며 비성경적이라 여기는 한국 교회의 보편적 정서에 비추어 볼 때, 폭정에 대한 무력 항거를 정당화하고 실행한 칼빈주의의 역사는 생경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 물리력의 행사가 기독교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그러나 보다 지배적인 견해는 몇 가지 조건 하에서 물리력의 사용이 정당화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를 무력 침공할 때 그것을 군사력으로 격퇴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재세례파적 평화주의자는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혁명의 경우에 있어서도 소위 '의로운 전쟁'의 경우와 비슷한 조건으로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24쪽

정부가 불의한 혹은 우리의 신앙 양심에 반하는 명령을 한다면, 우선 합법적으로 그것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잘못된 법 개정을 위해 입법 활동이나 건전한 로비나 관계자 설득을 해야 한다. 

모든 합법적 방법을 다 동원하고 모든 적법한 절차를 다 사용해도 불의하고 부조리한 규정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양심적 불복종, 혹은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보다는 인간 권세를 거스르는 것이 낫다. 인간의 법보다는 하나님의 법이 우위이며, 국가의 법보다는 신앙양심의 명령이 우선이다. 물론 그 신앙양심은 자신의 주관적이고 엉뚱한 고집이나 심지어 불순한 이익에 대한 고려의 산물이 아니라, 성경에 의해 충분히 지지받는, 그리고 객관성이 있는 확신이어야 한다.

228-229쪽

출처: 개혁주의를 말하다, 루로우니 님 (페북)담벼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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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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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장.므낫세 왕] 므낫세는 두 가지 메시지를 준다. 하나는 절대권력에 제동장치가 없을까 생기는 최악의 경우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출애굽 이후부터 지금까지 유다와 하나님과 관계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으로 유지된 것이었음을 밝혀준다. 므낫세는 그 인내의 한계점을 보여준 인물이다.  

 

[정리1. 내용을 객관적으로 정리]

 

1. 유다 왕 므낫세 왕의 악행에 대해서
  1) 20세에 왕이되어 55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함. 그의 어머니는 헵시바.
  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전에 좇아낸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함.
   (1)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움
   (2)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3)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겼다. 그것도 여호와의 성전에다...
   (4)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
   (5) 여호와의 이름을 두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아세라의 목상을 세워놓음
   (6)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고, 백성들은 므낫세의 꾐을 받아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므낫세에게 말씀하신 내용
   (1) 유다 왕 므낫세의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전에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악하다.
   (2)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씻어버릴 것이라.
   (3) 나의 백성들 중에 남은 자들(유다)을 버려 원수의 손에 넘겨 모든 원수의 노략거리가 되게 하겠다.
   (4)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4) 므낫세는 이와 같은 종교적인 악행 뿐 아니라,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
  5) 므낫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있고, 그가 죽고 아들 아몬이 왕이 됨.

 

2. 유다 왕 아몬에 대해서
  1) 왕이 될 때의 나이는 22세, 예루살렘에서 2년간 다스림. 그의 어머니는 므술레멧이요.
  2) 아몬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와 같은 악을 행했다.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했다.
  3)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했다.
  4)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였다.
  5) 국민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세움.
  6) 아몬의 남은 사적은 유대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됨.

 

[정리2. 내용을 개인화해서 정리]

 

유다가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로부터의 위협을 이겨 북이스라엘과 같이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스기야가 깨어있음으로 앗수르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의 모든 개혁을 원점으로 돌렸을 뿐 아니라, 더욱 악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웠고, 이방의 우상을 가져왔다. 아합의 때와 같이 바알을 섬겼고, 아세라 신을 섬겼으며 일원성신을 섬기기도 했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도 했고, 점치며 사술을 행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세우기도 했다. 므낫세는 왕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일삼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하나님은 이제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그 기준을 가지고 그대로 유다에게 행할 것이며 완전히 씻어버릴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원수들의 조롱거리와 노략거리가 되게 하시겠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므낫세를 계기로 그 동안 담고 있으셨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므낫세에 와서는 결국 폭발한 것이다.

 


그의 아들 아몬은 2년간 통치한다. 아버지 므낫세의 통치와 달라진 것은 없다. 므낫세와 같이 악을 행한 왕으로 기록된다. 결국 신하들에 의해 죽고 국민들은 그의 아들 요시야를 세운다.

 

 

[정리3. 내용을 통한 묵상과 적용, 주관화]

 

1. 장기간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 므낫세

 

므낫세는 왕이 되어 55년을 통치한 왕이다. 역대 이스라엘의 왕 중 가장 오랜 통치를 한 왕이다. 55년을 통치했다는 것은 그의 평가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는 매우 강력한 권력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반증으로 보여준다. 무력하면서 악을 행했다면 결국은 반대자들에 의해서 혹은 자신이 키운 신하들에 의해석 배신을 당할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55년 동안이나 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이 막강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강장 악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29년간 이루어 놓은 개혁을 한 순간에 다 수포로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의 정확하게 반대되는 정책들로 나라를 이끌었다. 아버지가 버린 모든 우상을 다시 다 가지고 들어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를 참으실 수 없을 만큼, 므낫세는 하나님의 심기를 매우 분편하게 했던 왕이다. 그동안 베푸신 인내와 자비를 모두 무색하게 만드는 악행을 행했고, 결국 하나님은 므낫세 때에 유다를 완전하게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가장 오랜 통치를 했던 므낫세의 통치가 이와 같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므낫세 한 사람의 문제만은 아닌듯 하다. 누군가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그 권력이 견제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발생하게 마련이고, 아니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므낫세 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조차도 그의 마지막 임기 때에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장기간 지속되는 절대권력 앞에서 균형을 잡고 초심을 잃지 않기란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권력을 가진자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이는 겉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닷는다. 그 때는 아무도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죽이지 않는한 말이다.

 

대통령의 임기제를 생각한다. 훌륭한 대통령이 들어선다면 임기를 더 연장해서 대통령 직무를 더 수행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재임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좋은 방법인듯 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대통령, 아무리 좋은 왕이라고 할찌라도 권력을 집중하여 견제할 수 없도록, 임기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빠른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어야 하듯이, 권력에는 언제나 멈춰 세울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에 대한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감리교회가 세습반대 법안을 통과시켰고, 한기총 회장을 역임한 목사는 자기 아들에게 급하게 교회를 세습시켰고... 대형교회로서는 처음으로 무리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한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전 자신이 무리하게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시킨 것을 후회하는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교회의 목사도 이와 같은 부분에서 더욱 깨어있지 않으면 끝이 좋지 않은 결말을 보게 될 것이라 본다.

 

2. 므낫세는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의 한계점을 보여준 왕

 

하나님은 므낫세의 악행에 치를 떠셨다. 그리고 그의 악행을 통해서 그 동안 묵혀 두고 있던 내면의 상처(?)를 유다에게 쏟아 내셨다.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15절)

 

사실 그 동안도 유다가 이쁘고 괜찮아서 관계가 유지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이 백성들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들이 악을 떠나지 않는 것에 대한 진노가 한 순간도 없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다윗의 시대에 조차도.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은 참고 인내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면서 견디어 오신 것이다.

 

그러다가 므낫세를 만나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므낫세는 유독 악한 왕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한 심판의 기폭제와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므낫세와 같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동안 우리가 하나님과 잘 지내온 것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괜찮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오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구원하신 순간부터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때문에 분노를 느끼신다. 우리에게 진노를 쏟을까 하는 충동을 늘 느끼신다. 그러나 그 분의 인내와 자비가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것을 간과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계의 평화의 근거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있고, 십자가의 진노에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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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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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아침에 집에서 정리1과 정리2를 하고, 출근하고 나서 정리3 작업을 합니다.  

 

[정리1. 내용을 이야기의 순서대로 정리]

 

1. 유다 왕 아마샤에 대하여
  1) 25세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29년간 다스림. 어머니는 여호앗단, 예루살렘 사람이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같지는 못했다. 그의 부친 요아스과 같이 행함. 산당은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3)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아버지를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그 자녀들은 죽이지 않음.
   (1)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한대로 한 것이다.
   (2) 자녀로 말미암아 부모를 죽이지 말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라는 법대로.
  4)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명을 죽이고, 또 전쟁하여 셀라를 취하여 욕드엘이라 함.
  5)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만나서 전쟁할 것을 알림
   (1)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아마샤가 에돔을 이기더니 교만해졌다며 그의 제안을 일축하려 했다.
   (2) 아마샤는 고집스럽게 전쟁을 하려하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가서 유다를 침.
   (3)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벧세메스에서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었다. 
   (4)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6) 아마샤는 요아스 왕이 죽은 이후 15년간을 다스렸는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여 라기스로 도망하던 중 거기서 죽게 된다. 시신은 다윗 성으로 옮겨져 장사하게 된다.
  7) 유다 온 백성이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를 왕으로 세우고, 아사랴는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다.

 

2.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에 대하여
  1)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41년 간 다스림
  2)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함
  3) 요나를 통해 말씀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함(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4)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다.
  5) 여로보암의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다메섹을 회복한 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

 

[정리2. 내용을 재구성하여 자신의 말로]

 

본장은 유다와 아마샤와 이스라엘 왕 요아스 사이의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2)의 활약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유다 왕 아마샤는 평균 이상은 되는 왕이었지만, 다윗과 같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그가 나라를 그의 손에 장악했을 때,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단한다. 그러나 과도한 처벌을 하지는 않았다. 모세의 법대로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처벌하고, 그의 자녀들까지 죽이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에돔을 정벌하고 셀라를 취하여 얻기도 했다. 아마샤는 국내에 있어서도 국외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갖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이 교만으로 넘어갔던 것 같다. 무리하게 유다 왕 요아스와 전쟁을 하려고 했고, 결국 요아스에 의해서 아마샤는 사로잡히는 수모를 당하고, 예루살렘 성벽은 일부 허물어졌으며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과 모든 기명이 탈취를 당하게 된다. 나중에 아마샤는 자신의 부친과 같이 반역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유다는 아마샤를 대신해서 아사랴(웃시야)를 왕으로 세운다.


북이스라엘은 요아스가 죽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된다. 여로보암은 요나의 예언처럼 이스라엘 전역을 확대한 위대한 왕이었다. 그의 영토는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였다. 아람으로부터 다메섹을 빼앗았고, 유다로부터는 하맛을 빼앗았다. 이와 같은 역사를 놓고, 열왕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자가 없으므로 또한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게 하셨다고 다소 시크하게 평가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왕도 법을 지켜야 한다.

 

아마샤는 아마 평점 4(5점 만점) 정도는 맞는 왕이었던 것 같다.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아버지를 뒤를 이어 갑작스럽게 왕이 되었지만, 안정적으로 자신의 기반을 잘 닦아 갔다. 하나님께로부터 다위과 같지는 못하지만 괜찮은 왕이라는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숙청한다. 눌러왔던 복수와 심판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샤의 심판은 달랐다. 복수를 위한 복수가 아니라 죄를 묻기 위한 형벌이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아마샤가 법이 제한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했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는 죄를 지은 그 당사자만을 심판했지,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형벌을 가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이 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샤는 법 안에서 절제있게 권력을 사용한 것이다. 아마샤의 놀라움은 이 절제된 권력 사용에 있었다. 열왕기 기자도 아마샤의 그 부분을 기록함으로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권위를 위한 권력을 필요하고,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의 권력이 온다. 그러나 그 권력은 언제나 통제가 되고 절제가 되는 권력일 때 정당성을 가지고, 유익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권력이 법이라는 절차와 테두리를 벗어나 한 개인과 집단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다면 그것만큼 역사적으로 큰 비극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역사가 진보한다면, 오늘 대한민국은 이와 같은 측면에서의 진보가 필요하다. 법을 무시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권세가들로부터 그 권력을 빼앗아, 법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권력을 사용하는 권세자를 세워야 할 것이다.

 

2. 교만은 결국 사고를 치게 되어 있다.

 

아마샤는 국내 정치를 안정적으로 운영했을 뿐 아니라, 국외적으로도 그 힘을 확장해 갔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경험했고, 국방도 강화하여 에돔과 같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셀라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샤의 마음에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었나보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 아마샤의 이런 제안을 우습게 여겼지만, 아마샤는 결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원했고 그 결과는 비참한 패배였다. 왕은 사로잡혔고, 많은 재산을 빼앗겼으며 성도 허물어지고 포로도 잡혀갔다. 아마 이 전쟁을 계기로 아마샤의 지지도는 급격히 하락했을 것이라 본다. 결국 아마샤는 반역자들의 손에 의해 라기스로 도망하는 도중에서 죽게 된다.

 

아마샤의 시작은 좋았다. 다윗까지는 아니어도 다윗과 견주어 비교할만한 왕이었다.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인정받는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도를 넘었다. 교만을 다스리지 못했고 과시하려고 했고, 자신을 더 크게 보이고 싶어했다. 무리한 전쟁을 한 것이다. 그것이 한 순간 아마샤의 인생을 망처버린 것이다.

 

최근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인해 월드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참, 대단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김장훈 씨와의 불화설이 나돌고, 둘 사이가 않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확한 불화의 원인을 모르지만, 마음 한 편 불안한 것은 교만으로 인해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너무 높은 곳을 갑자기 올랐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걱정이다. 아직까지는 그의 모습이 자신감으로 보일 뿐, 교만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섰을 때 우리는 넘어질까 조심할 수 있어야 한다.

 

교만 교만 교만 = 패망 패망 패망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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