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시티교리문답03


문3] 하나님께는 얼마나 많은 위격이 있습니까? 

답] 한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 있습니다. 


[암송구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핵심덕목] 경외

보고(see), 느끼고(feel), 행하는(do) 태도

- 산이나 바다에서 멋진 장면을 보면, 감동하게 되고, 카메라를 들어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자 한다.    

- 대상은 크고 위대해 보이는 반면, 상대적으로 나 자신은 작아지고 초라한 느낌


[문답목적]

  1. 하나님을 완전하게 예배하려면 하나님의 존재(삼위일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 한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의 성품(존재)과 행한 일(사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2. 하나님께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 있고 각 위격은 온전한 하나님이자 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 존재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도움


<활동 퀴즈> (교재. 34쪽) 질문하면서 답하면서 교육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1.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거짓)

 2. 하나님은 한 분이다.(참)

 3. 성부 하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다.(참)

 4. 하나님은 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참)

 5. 성자 하나님은 마리아가 잉태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셨다.(거짓)

 6.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이 아니시다.(참)

 7. 삼위일체의 위격은 저마다 구별된 역할을 맡고 계시다.(참)

 8. 성부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거짓)


[토론문제]

 1. 성부, 성자  성령으로 역할이 구별되지만 가치는 동등하다는 마은 어떤 뜻인가? 

- 쌍둥이 조차 차이와 차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은 다르다. 

 2. 하나님 한 분 안에 계신 세 위격이시라는 것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하나님의 형상 안에 공동체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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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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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 1. 31)


제목: 축복의 공동체

본문: 시편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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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해설]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하고 있는 권면은 개인적인 경건을 위한 권면은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성도 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권면이다. 6장 1절이 '한 사람의 범죄'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권면하고, 6장 2절에서는 성도 중 누가 자신의 짐을 지는 것이 힘겨워할 경우 그 짐을 서로 져주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 


교회는 지상의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여전히 '죄'가 있고, '연약함'이 있다. 죄의 문제를 다룰 때, 그 죄를 범한 자를 온유한 심정으로 바로 잡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서는 안된다. 그 죄가 드러나게 된 <공동체>의 문제도 개선되어야 한다. 죄는 그냥 발생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토양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란 것이다. 그와 같은 토양이 형성되도록 방치한 공동체도 문제가 없지는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 죄를 다루는 방식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연약한 지체>에 대한 교회 성도들의 태도다. 그들의 연약함에 대해서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 주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각자 개인의 짐을 개인에게만 두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인 원칙은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각자 자기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개인의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고, 개인의 주변 환경이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와 같을 때, 교회 공동체는 그 사람의 연약함을 보고(게으름이 아니다.)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짐을 함께 져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한 몸을 이룬 지체다. 지체가 지체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강한 지체가 약한 지체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것은 한 몸으로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 몸이라 말할 수 있고, 한 몸은 당연히 그렇게 한다.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자랑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면이다. 자랑할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을 때에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만 그렇다고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자랑할 만큼 스스로 높이지를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주님도 사람들에게 상석에 앉지 말고, 낮은 곳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높여서 자리를 옮겨주면 모르지만, 괜히 높은 곳에 먼저 앉다가 나중에 낮은 자리로 쫓겨나게 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연약한 자의 짐을 많이 져주었다고 할찌라도 그것이 자랑이 되지 못하도록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일수록 자신의 일을 늘 살피어, 겸손해야 함을 바울은 권면하고 있다.


[묵상] 


1. 바울의 권면은 개인 경건의 권면이라기 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성도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2. 죄를 범한 자에게 대해서는 바로잡도록 하고, 공동체의 경계를 삼아야 한다. 


3. 연약한 자에 대해서는 서로 짐을 져주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남의 일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4. 능력있어서 자신의 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 섬긴 자는 교만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교회 공동체는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다. 모든 사람을 공평케 만드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약해도 절망할 필요가 없고, 강해도 자만할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약한 자도 함께 존중받으며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강한 자의 능력은 섬기기 위한 능력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곳이 교회 공동체다. 

교회 공동체는 심지어 '죄'가 일어나는 곳이지만, 그 죄를 일으킨 사람을 '옳게 세우는 곳'이며 심지어 그 한 사람의 죄로 인해 교회 전체가 새롭게 갱신되는 곳이다. 교회를 이런 공동체여야 하는 것이다. 



지상의 교회 공동체에 죄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또한 지상의 교회를 세상의 어떤 공동체보자 강한 공동체로 만들려고하는 시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죄'와 '연약함'을 부정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세상의 여느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죄'와 '연약함'으로 불완전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선'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가 바로 이 땅의 교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한 사람의 죄를 통해 공동체의 자정능력을 키우고, 한 사람의 연약함이 공동체의 한 몸 됨을 드러냄으로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죄와 연약함을 부정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와 연약함을 거쳐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려 하는 것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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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te.com/view/20130218n00351?mid=n0411

영성 2.0 ④ 김용택 목사
신앙, 자녀교육, 살림 모두 함께
초기기독교 공동체 6년째 실험
기성 교회·가정 반성에서 출발
최소한의 자급자족, 할 수 있어요

경기도 연천에서 신앙공동체 실험을 하는 김용택 목사 가족.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 목사, 성은군, 성찬(아들)씨, 아내 김지숙씨, 성경(딸)씨. 사회적 기업 해피 트리도 운영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교회는 원래 신앙공동체였다. 함께 생활하고 나눠 쓰며 하나님을 섬기는 모임이었다. 예수 제자들의 복음을 전파한 기록인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모습이다. 당시 교회는 요즘처럼 예배당 건물이나 교회 세습에 연연하지 않았다.

 감리교 김용택(53) 목사는 그런 초기 교회의 실현을 꿈꾸는 목회자다. 2008년부터 ‘주님의 가족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뜻 맞는 이들과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자녀 교육, 신앙 생활을 함께한다. 살림살이도 합쳤다. 함께 벌어 똑같이 쓴다.

 교회 건물, 물론 없다. 공동체 식구들이 식사를 함께하는 공간이 주일이면 예배 장소가 된다. 현재 구성원은 김 목사 가족 7명을 포함해 8가족 30명. 휴전선과 한탄강 유원지가 지척에 있는 경기도 연천군 초성리가 근거지다. 20∼30평대 저층 아파트 5채에 나뉘어 산다.

 지난 8일 공동체를 찾았다. 제도권 교회와 학교, 일자리 등을 등지고 ‘극단적인’ 공동체 실험을 하게 된 이유와 의미가 궁금했다.

 김 목사는 ‘해피 트리’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에서 나와 기자를 맞았다. 2011년 가을 세운 사회적 기업이다. 새터민(탈북 정착민)을 고용해 우리밀 빵을 만드는 해피 베이커리, 동네 도서관과 재활용 의류매장을 겸한 카페 행복한 나무, 지역특산물인 자색 고구마 등을 재배하는 해피 팜 농장 등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공동체 식구들의 한 달 월급은 모두 600만원. 김 목사는 “그게 공동체 수입의 전부”라고 했다. 모기 눈물만한 돈으로 대식구가 먹고 살 수 있는 비결은 큰 교육비가 들지 않기 때문. 아이들은 학교·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대신 공동체 어른들이 과목별로 돌아가며 가르쳐 검정고시를 치르게 한다. 그런데도 김 목사는 2011년 큰딸 민애(24)와 둘째 딸 신애(21)를 캐나다 토론토의 세나카 칼리지에 나란히 입학시켰다.

 농장 덕분에 먹거리도 웬만큼 해결된다. 어른은 한달 13만원, 청소년은 6만원씩 용돈을 준다. 이에 비하면 도시의 우리들은 너무 많이 먹고 쓰는 것은 아닐까.

 김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것을 잘 모아 나눠 쓰면 최소한의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공동체는 기성 교회와 가정, 교육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김 목사는 감리교신학대 운동권이었다. 목사 안수 이후 경남 마산에서 도시빈민 등을 상대로, 소위 민중사목을 했다. 하지만 나날이 거칠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후 서울의 번듯한 교회에서 한 10년간 교회 성장을 위해 뛰었다. 그러나 교회 바깥의 시대와 역사에서 동떨어졌다는 회의가 들었다.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 교육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채 이중적 생활을 하는 ‘선데이 크리스천’ 신자들도 목사로서 보기에 안타까웠다.

 김 목사는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온 배경이나 성격,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이라는 파이의 크기는 어떤 사람과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게 공동체다. 그는 “신앙을 새로운 형식 안에 담아내라는 시대의 명령 앞에서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새 포도주를 담을 새 그릇, 새로운 가치를 찾아 순례하는 신앙적 보헤미안들의 기착지라는 것이다.

 김 목사는 “젊어서부터 영성운동에 관심이 컸다”고 했다. 그에게 영성운동은 신앙이 깃드는 처소인 영혼, 그걸 살펴 바른 신앙의 길로 향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공동체는 그 밑바탕인 셈이다.

 그의 실험은 여태까지는 성공적인 것 같다. 원년 멤버 정연훈(43)씨에게 만족스러운지를 물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그는 인천에서 아내와 함께 사설 공부방을 운영하다 공동체에 발을 들였다. 다음은 그의 대답이다.

 “사람들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못 살 정도는 아니다. 누가 물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문제가 생기면 우선 기도를 드리고 상대방 의사를 존중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간다.”

연천=신준봉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신준봉.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박종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jokepar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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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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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수련회를 다녀와서 다시 요한일서를 시작합니다. 장별요약이 좋은 것 중에 하는 어느 정도 일정한 패턴의 생활 속에서 중간에 새로운 상황이 되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시간에 작성했던 글을 다시 한 번 읽고 흐름을 잡은 후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정리1. 본문 내용 정리]

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1절)
  1) 왜?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서 나왔음이라. 따라서 영을 다 믿지 말라.
  2)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
   (1) 육체의 악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육체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율법과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함.
  3)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2.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들을 이긴(그들에게 미혹당하지 않은) 자들이다.(4절)
  1) 그들은 세상에 속해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2)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는다.
  3) 반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것으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안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7,21절)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안다.(조건이 아니라 원리)
  2)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함)
  3)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다.
   (1)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려고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셨다.
   (3)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 우리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는 사람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리라. 따라서 우리가 사랑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고, 사랑을 온전히 이루면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다. 따라서 성도는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한다.
   (5)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이다.
    :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리2. 본문 내용을 흐름에 맞춰서 다시 정리]

기독교가 영적인 종교이기는 하나, 모든 영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단의 영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을 구분해야 하고, 그 구분하는 기준 중에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이다.(당시 이단의 영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것이었다.)


한차례 이와 같은 이단이 요한의 공동체를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넘어졌고, 교회를 떠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그 영향을 받은 세력들이 남아있었고, 또 그 가운데 흔들리는 성도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요한은 그들의 편과 우리 편을 명확하게 갈라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말이 통할 수 없는 집단이다. 그들은 그들의 말만 듣기 때문이다.


이제 남아있는 성도들간의 중요한 지침은 사랑이다.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했던 그간의 과정을 거쳐,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났다. 그리고 그 과정중에 남아있는 자들 중에도 많은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전쟁후의 피폐한 상황과 같은 것이다. 이제 살아남은 이 공동체는 서로간의 사랑으로 다시 세워져야 한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받았고, 사랑을 실천해야만 한다. 사랑은 절대계명이면서 동시에 시대적 사명이었던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이단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후에 그 후속작업의 중요성.

요한은 영지주의 이단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교회를 휩쓸고 지나간 공동체를 향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듯 하다.(에베소 교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시록 2장에 언급된 에베소 교회는 이단을 정죄하고 판단하느라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는데, 요한복음 4장에서는 그 메시지와 매우 일치하는 상황을 접한다.) 이런 큰 어려움을 만난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두가지 메시지 일 것이다.

  첫째는, 남아있는 세력 혹은 정리되지 못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해 주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모호함이나 포용이 아니다. 분명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며,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요한일서 1-3장은 그런 측면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는, 이단논쟁으로 전쟁터처럼 상처입은 공동체를 사랑으로 다시 세워내는 것이다. 전쟁은 큰 상처를 만들고, 가족간에도 분열과 다툼을 만들어 낸다. 이 상처는 전쟁이 마친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 내면의 상처, 관계의 상처가 서로 싸우는 중에(진리의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할일서 4장부터는 <서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요한계시록 2장에 언급된 에베소 교회도 같은 상황에서 그런 지적과 책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이다.

2. <서로 사랑하라>는 당시 시대적으로 가장 시급한 메시지 였으나, 이 메시지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시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갈등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크게는 전쟁으로, 작게는 대립과 양극화(계급,빈부 등과 같은)로 늘 긴장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유경쟁의 시대인 지금 그것은 성장과 생존이라는 미명하에 조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이 피곤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부는 있으나, 영혼과 삶은 가난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치유하고, 이런 핍절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대상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처럼, 자기 희생을 통한 사랑을 감행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되며 그것이 사랑으로서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공동체와 사회는 치유가 되고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교회는 전해야 한다. 세상에 전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부터 교회는 그것을 실천함으로서 <서로 사랑함>이 교회의 핵심 강령이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예증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세상을 향해 <사랑의 메시지의 실효성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도 온전하지 않기에 완전한 기준의 사랑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위인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교회에서 보여지고 있고,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이것 저것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비상식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초상식적인 가치관이 일어나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비상식적인 가치관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만 보여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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