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해설]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은혜와 사랑, 자비와 구제를 힘써야 하는 것이 교회이지만 교회는 구제단체는 아니다. 교회가 구제하고 도와야 하는 대상은 열심히 살고자 하지만 개인의 병과 환경 그리고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 개선하기 어려운 대상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국가가 해야할 혹은 할 수 있는 복지의 영역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싶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제도적으로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찾아 도와야 하는 것이 교회의 구제 사역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구제하기 이전에 교회는 자기의 일을 자기가 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즉, 교회가 게으름이나 나태함을 보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개인의 짐을 스스로가 져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책임져야 할 대상의 가족은 먼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서로의 짐을 져주어야 한다.(갈 6:2)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 말씀은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존중하고 잘 대접하도록 힘쓰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단순히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대접을 잘 해주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가르치는 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그 중요함에 합당한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보는 것이다. 


이 권면은 더 나아가서 '가르치는 자'를 선정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전 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는데, 참석했던 한 성도는 집회를 인도했던 부흥사에 대해서 큰 실망을 했다. '우리를 어떻게 보고 저런 분을 모셨는가?'에 대해서 분개해하셨다. 그만큼 우리가 우리의 교사를 선택할 때도, 또 가르침을 받는 자를 대할 때에도 매우 신중하고 또 그에 대한 대우를 함으로서 계속해서 그와 같은 좋은 가르침을 기대하로 바란다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어느 교회는 '가르치는 자'를 고용(?)하듯 데리고 와서는 함부로 하려고 하는 교회도 있다고 한다. '가르치는 자'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종'을 데리고 온 것에 불과하다. 그 교회의 수준이 어찌 될지는 뻔한 것이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사람들의 행위는 그 행한대로 대우를 받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은 심은대로 거두게 되어있다.(갈 6:7) 육체의 소욕을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된다. 반면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자는 영생을 거두게 된다. 이 말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언급한 육체와 성령의 대조를 다시 한 번 언급해 준다. 


갈 6:1-6까지의 여러가지 권면들이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우리 육체의 소욕을 따른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썩어질 것 밖에는 거둘것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도 쉽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때가 이르게 되어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때가 되어 예수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듯이, 우리 인생에도 때가 되면 결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묵상]


1. 특별법을 가르치기 전에 일반법을 가르쳐야 한다. 


복음이 중요한 줄은 알지만, 복음이라는 특별법이 선포되기 전에 우리는 윤리라는 일반법이 선포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율법이 온 이후에 복음이 온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마땅히 해야할 윤리를 배우고 그 다음에 관용과 자비인 복음을 배워야 하는지 모른다. 


서로의 짐을 져주기 전에 우리는 자기의 짐을 자기가 지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자기의 짐을 다른 사람이 져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복음이 중요한 줄은 알지만, 때로는 복음이 사람을 망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값싼 복음에 물든 한국 기독교가 바로 그 지경에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한다. 특별법 이전에 일반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2. 바울의 권면의 핵심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의 일을 자신이 하는 것(책임감)도, 다른 사람의 짐을 져주는 것(돌아봄, 섬김)도 서로 종노릇 하는 것도 모두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 공동체 있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인 섬김'을 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성도들이 많을 때 교회 공동체는 성숙함으로 자라갈 수 있는 것이다. 



특별법을 가르치기 전에 보편적인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보편적인 법을 모른채, 특별법만 강조하게 되면 이상하게 되는 것처럼 '은혜라는 측면에서의 특별법'만 가르친 것이 오늘 많은 한국 교회 성도를 방자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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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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