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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30절.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절.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절.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절.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절.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절.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절.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 자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다. 그리고 무리 가운데 돌이켜 누가 내 옷에 손을 댓는지 물으신다. 이유를 모르는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미는 상황에서 누가 손을 댓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한다. 

2. 예수님은 무리를 둘러보셨고,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대서 몸이 나았다는 것을 알았던 혈루병 걸렸던 여인은 자신이 에수님의 허락도 없이 몰래 그렇게 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 모든 사실을 예수님 앞에 실토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여인이 병에서 놓여  건강할 것임을 주님의 입을 통해서 확인받게 되었다. 

3. 그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음을 알린다. 딸이 죽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더 이상 번거롭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오히려 절망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라’고 독려하신다. 예수님은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신다. 

4.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딸의 죽음으로 인해 통곡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히려 비웃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아이의 부모와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딸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자 소녀가 곧 일어나 걸었다. 소녀의 나이는 12살이었다. 

5. 아이가 살아나자 사람들은 크게 놀라고 놀랐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야기가 마친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왜 급한 상황 속에서 굳이 멈추어 혈루증 걸린 여인의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알게 하셨을까? 

  1) 단순히 혈류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대어 치유되었다는 것만을 알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 

  2) 그 이후 예수님의 행동,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혈루병 걸린 여인이 회복되었고 단순히 혈루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과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병에서 놓여 건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리들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세상의 모든 의사들은 날 고치지 못했지만)을 가지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예수님은 기꺼이 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옷 자락만 손을 댄다는 측면에서 작은 믿음이라고 할 수 도 있고, 세상 의술은 실패했기 때문에 유일한 소망이라는 측면에서 절박함으로 예수님을 의지했다는 측면에서는 큰 미음이라고 볼 수 있다.)


2.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한 이야기가 다른 병 치유 사건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1) 회당장 야이로의 딸 사건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예수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전의 치유 사건과 다른다. 

  2) 사람들은 회당장의 딸이 죽자 더 이상 예수님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 그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사람들에게 기적의 한계는 사망 전까지다. 사망 이후에는 누가 오더라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위독한 순간에는 예수님을 의지했지만, 사망한 이후에는 더 이상 의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도 죽음의 영역만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은 더욱 긴급하고 신속하게 그 소녀를 살려내셨다. 예수님은 죽음까지도 극복해 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 구체적인 첫 사건이다. 


[묵상하기]

1.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찾아가 물어보시고 낫게 해 주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무심히 지나가시는 상황(적극적으로 미리 찾아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 상황)에서 ‘믿음’을 가진자가 에수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분의 옷 자락에 손을 대면 낫겠다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찾아와도 그 고민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문제를 가진 인생이 먼저 적극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 오는 것을 통해서 구원이 임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그 믿음대로 병이 낫게 하셨고 구원을 말씀하셨다. 

2. 사망은 인류가 가지는 한계일 뿐, 하나님의 한계는 아니다. 하나님의 한계가 있을 수 없듯이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이 먼저 한계를 긋고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죽음 조차도 자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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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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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 (2015.7.19)

본문: 몬 1:8-15

제목: 명령할 수 있으나 간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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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장은 적어도 4가지 주제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듯 합니다.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할 때, 사람들이 구하는 방식으로 구하면 거기에는 다툼과 시기 더 나아가 살인까지 일어납니다. 심지어 그런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성도의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과 같은 이야기로 야고보서 4장은 시작됩니다.

 

1. 지혜: 간구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사람에게 구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려고 하다보니 다툼도 나고 싸움도 나게 된다. 사람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으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 구하라. 정말 필요한 것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에게 적극적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주실 것이다.

[정리]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방식. 구하는 것을 주시지만, 혹 주시지 않을 때 그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 어쩌면 그것은 내 욕심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라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싸우며 긴장하며 시기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2. 세상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결과가 생긴다. 마치 세상과 하나님은 천칭의 양 끝과 같아서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내려오게 된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될 때, 다른 한 편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내려갈 수 있다는 긴장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벗어나 살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다보면 어느덧 하나님은 멀어져 간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우리가 아는 바다.

[정리] 여기서 세상이란 세상 정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우리가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세상의 것(기술,문명,문화,스포츠,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애착이 커지면 커질 수록 하나님에 대한 애착이 약화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당히 좋아하자. 세상의 것들은...

 

3. 우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준행자

판단하고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지키고 행하는 자다. 판단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영역이다.

[정리] 오해하지 말자. 형사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끼어들어 왈가왈부하는 것이 우낀 것이 될 수 있듯이 누군가에 대해서 최종적인 판단자가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하자. 어느 정도 간섭하고 평가하다가 안되면 하나님께 맡기자.

 

4.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우리에게 내일은 보장된 것이 없다. 괜한 말로 내일 내일 약속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때,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하는 것이지 미루면 그것은 죄가 된다.

[정리] 신앙의 표현은 현재다. 우리가 안개같은 인생이기에 그렇다. 나중에... 라는 공수표는 남발하지 말자. 정치인들의 이 무분별한 공약이 얼마나 정치에 대한 진정성을 훼손시켰는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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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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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은 1장부터 이어져 오는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1,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천사와 비교해서 천사 우위에 있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모세와 비교해서 모세(하나님의 집의 종) 우위에 있는 예수그리스도(하나님의 집의 아들)를 소개합니다. 4장에 이르러서는 <안식>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면서 참된 안식을 이스라엘이 얻지 못했지만, 그 아들의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참된 안식에 이르게 될 것을 말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중간에 완고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한다면 광야에서 엎드러진자와 같이 안식에 이르지 못할 것을 경고하신다.)

오늘 5장은 천사와 모세에 이어 대제사장이신 예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라는 것이지요.(대제사장 보다 월등하지만, 그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그와 같은 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유대인에게 대제사장은 아론처럼 하나님의 부르신 자에 한해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시어 내 아들이라고 하셨다. 더불어 예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다.

이것보다 더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던 대제사장의 역할은 특별하지만, 그 자격됨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기때문이다.(2절) 그래서 백성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할 존재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을 세우실 때, 대속해야 할 사람과 대속의 과정을 도와야 할 사람의 격차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대속해야 할 사람을 능히 용납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대속의 과정을 돕는 본인도 연약함에 휩싸여있는 존재니까) 하나님은 일부러 다른 사람과는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같은 연약한 자를 부른 것이다. 왜? 같은 처지에 있으므로 해서 능히 용납하게 하시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우리와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도록 하셨고, 우리와 같은 연약함이 되도록 환경을 만드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리면서 살수 밖에 없도록 하셨다.(7절) 그리고 그 아들되신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 예수님도 연약함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은 무식하고 미혹된 우리 인생을 용납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이 표현은 능력의 측면이라기 보다는 정서적 동질감을 강조하는 표현일 것이다.)

[묵상]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는 아론의 혈통을 따라 온 분은 아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전혀 다른(그러나 아론보다 더 본질적 제사장인) 혈통을 따라 온 대제사장임을 지적한다. 더불어 그 예수가 우리와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입고 왔다는 것이 우리가 메시야로 받아들이기에 부족한 조건으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충분의 조건(연약함에 휩싸여야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용납할 수 있기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이 예수를 좇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를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예수가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켜줄 때(능력자와 강한 자로 나타날 때)는 그를 따르다가도 그가 무력한 자, 연약한 자로 드러나게 될 때는(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두가 그를 떠나 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무력함에 휩싸였기 때문에,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달고 살아야 하는(살면서 기도제목이 많은_평생 잘 안풀리는 성도와 같이) 삶을 살아기 때문에 그는 진실로 메시야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무력함과 연약함이 그가 진실로 모든 사람들의 대제사장이 되기에 합당함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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