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말 3:1-9 유다의 불순물을 제거하리라.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갑자기 여호와의 성전에 이르시겠다는 것이다. 유다가 바라던 언약의 선지자가 올 것인데, 그가 나타나면 연단하는 불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 레위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고 올바른 제사를 받으실 것을 말씀하신다. 다른 하나는 십일조와 예물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을 다룬다.


절별 해설

3:1 <<너희가 바라는 언약의 사자가 이를 것이다>> 지금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고 있다. 자신들이 눈물로 제단을 적시는데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제사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경건한 태도와 잘못된 제사와 삶으로 인한 것인데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도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찾으니 하니님께서 이제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을 대면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3:2 <<그러나 그가 오시는 날에는 아무도 견디지 못하며>> 유다가 그렇게 찾던 하나님이 성전에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만남은 아닌 것이다.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오시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큰 고통을 겪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3:4 <<옛날처럼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을 받으실 것이다>> 제사 제도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제사가 언약의 사자가 오심으로 그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질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 


3:6 <<나는 여호와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특별히 하나님은 야곱 자손과 맺은 언약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야곱의 자손은 조장 때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따르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돌아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3:8 <<너희가 내게서 훔친 것은 십일조와 예물이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정을 스스로 가볍게 여겼다. 그것은 점점 온전한 십일조와 예물에 대한 규정을 허물어 버렸다. 결국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하는 자리에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행동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임에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이 숨어계신 것 같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나의 예배, 나의 삶, 나의 태도 모두를 돌아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여호와께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 안에서 신실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사랑으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신다. 그러나 때로는 엄중하게 질책하시고 책망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다운 존재로 만드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사랑과 긍휼로 대하실 때도, 질책과 책망을 가하실 때도 그 의도는 변하지 않으신 것이다. 심지어 멸망시킬 것처럼 달려드실 때도 사실은 그 안에 불순물이 너무 많이 때문에 취하시는 행동이시지,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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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10-17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경고하신다.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이들이 더럽혔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들의 남자들은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여자들과 결혼하는 일을 행했으며, 또한 젊어서 언약으로 맺은 아내와 이혼하였다. 이러므로 하나님께 이들에게 재앙을 내리나 이들은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하나님께 서운해 한다.

 

절별 해설


2:10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다>> 현재의 유다 백성과 이전의 유다 백성이 모두 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하면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하나님과 한 언약 공동체임을 드러내주는 구절이다. 언약은 과거의 조상들과 맺었지만, 현재의 백성들과 맺은 것과 다름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2:11 <<유다의 남자들은 외국 우상을 섬기는 여자들과 결혼했다>> 유다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 여인과 통혼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말라기를 느헤미야의 시대와 같은 시대로 보는 것 중에 하나가 느헤미야 시대에도 같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13:23-29)

 

2:14 <<왜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까?>> 유다 백성들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향해서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다. 제물을 드려 제사를 잘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제사가 경건함이 없는 제사인지, 자신들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2:15 <<여호와께서는 남편과 아내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과 영이 되어>> 2:24을 연상시키는 말씀이다. 유다 백성들에게 결혼제도라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룩한 제도이며 그 가정으로 인해 경건한 자녀를 낳기를 바라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의도는 다르지 않으시다.

 

2:17 <<너희는 말로 여호와를 괴롭혔다>> 여기서 말로 여호와를 괴롭힌다는 것은 하나님을 왜곡되게 말하고 진리를 거스려 말하는 것을 말한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악인도 좋게 보신다고 말함으로서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다 백성들 가운데 흔하게 들려지고 있는 이런 말로 인해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셨던 것이다.

 

기도

하나님, 결혼과 성이 무분별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는 저와 주변에 성경적인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주시고, 경건한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오늘 본문은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주고 있다. 첫째는 이방여인과의 결혼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구약에서 뿐 아니라 신약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부정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후 6:14) 둘째는 결혼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하신다. 결혼이라는 남녀 간의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다. 따라서 쉽게 언약을 파기해서는 안 됨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한 배우자를 맞게 하심으로 경건한 자녀를 얻길 원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셋째는 이혼과 가정폭력에 대한 문제다. 하나님은 상호 언약을 파기하는 이혼을 미워하시며, 가정 안에서의 폭력에 대해서도 싫어하신다. 이와 같은 대원칙 속에서 이 시대의 결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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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9 제사장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의 잘못에 대해서 질책하시고 그로 인해 그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바른 길에서 벗어났고, 많은 사람들로 죄를 짓게 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루시는 이유는 이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기 위함임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1:2 <<너희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함으로>> 말라기서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제사장임에도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께 가지는 마음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3 <<너희가 절기때 바친 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르겠다>> 절기 때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져온 제물에게서 나오는 똥을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르겠다는 것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큰 수치를 드러내도록 하시겠다는 표현이다. 더불어 제물의 똥을 버리듯 제사장들을 버리시겠다는 심판의 말씀이다.

 

1:4 <<그것은 내가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제사장들을 부끄럽게 하고 심판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 제사장들을 심판하심으로 언약을 파기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이어가기 위해 제사장들을 돌이키시게 하기 위한 징계라는 것을 알리시는 것이다.

 

1:8 <<너희는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겼다>> 하나님이 레위와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5) 바른 가르침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죄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6)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 언약을 어기고 바른 길을 떠났으며 그릇되게 가르쳐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하였다.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긴 것이다.

 

1:9 <<재판을 할 때에 공평하지 않게 한쪽 편만 들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도 맡아서 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평하게 해야 할 재판에 오히려 한 쪽 편만 들어주어 재판의 공정성을 왜곡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현상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제사장들의 불경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들은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누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야 할 제사장이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자임을 발견합니다. 늘 깨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고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제사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마치 직업처럼 자신의 일을 행하려 할 때 도리어 얼마나 큰 죄를 짓게 되는지를 본문은 지적하고 있다.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죄 짓는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목회자 혹은 그에 준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는 이렇게 불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의 징계에 이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시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4) 하나님의 매는 부모가 자녀를 교정하기 위한 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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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14 최소가 아니라 최선을 드리는 삶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들이 흠이 있는 것들로 받으실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이와 같은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려 한다면 아예 성전 문을 닫아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이들을 저주하신다.


절별 해설

1:8 <<그런 것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총독에게도 동물을 바칠 때도, 좋은 것을 선별하여 드리고 그렇지 않은 것을 총독에게 주었다가 오히려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의도적으로 눈멀고 다리를 저는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에게 따지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10 <<너희 가운데 누가 성전 문을 닫아서>> 이 표현을 통해서 말라기서의 배경을 성전이 있던 시대, 즉 스룹바벨의 성전이 완성된 시대로 본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지만,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는 불경한 제사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라면 성전 문을 닫아서라도 받기 원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1:11 <<곳곳마다 사람들이 향과 깨끗한 제물을 내게 바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존중히 여김과 경외함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대우를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고,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에게 깨끗한 제물을 바침으로서 하나님이 모든 민족 위에 얼마나 크신 분임이 드러나게 된다.


1:13 <<이 일은 귀찮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본적인 마음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요구를 귀찮게 여겼다. 괜한 트집으로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받으실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하다.


1:14 <<흠 있는 것을 바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어 부정한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을 향해서 더 이상 묵과하시지 않으신다. 이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다. 하나님을 경홀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시고자 하신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인해 이방인 가운데 모독을 당하심을 봅니다. 우리의 불경건함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한 제사 제도를 통해 죄를 극복하고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방편을 모르고 이와 같은 제도를 불편해 했고 번거롭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사도 드리고 요구하시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것>을 드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인간 통치자에게는 좋지 않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하나님께는 아무것이나 드리는 불경건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가? 아니면 최소한의 것을 드리는가? 늘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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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 1:1-7 형식은 내용 만큼이나 중요하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질문과 답변은 감정적으로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했다고 말하나, 이들은 어떻게 사랑했냐고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은 왜 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주를 멸시했습니까? 답하기 때문이다. 감정적 균열이 있는 대화가 오고가는 내용이다. 

 

절별 해설

1:1 <<이스라엘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말라기서가 말하고자는 성격을 분명하게 해주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지난 잘못에 대한 경고요, 앞으로 고치지 않을 경우에 임할 재앙을 <경고>하시기 위한 말씀이다. 

 

1:2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묻어있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과는 멀어진 자신의 형편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정적으로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1:3 <<에서는 미워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것의 한 증거로 사용하시려 한다. 에서의 산악지방을 폐허로 만들것이고, 그들이 다시 일으키려고 해도 헐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에돔에 대해서 진노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음에도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1:6 <<우리가 언제 주를 업신여겼습니까?>> 이 말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아버지임에도, 주인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존경받지 못했다는 하나님의 한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례한 답변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도리를 다했고, 드려야 할 것을 어기지 않고 드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한탄에 오히려 억울해 한다.

 

1:7 <<너희는 내 제단에 부정한 제물을 가져옴으로 나를 업신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존경하지 않았다는 물증은 그들이 하나님께 정결하지 않은 제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결한 제물을 원하심을 알고고 정결한 제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접했던 것이다. 

 

기도

주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힘쓰기보다 편안하고 쉬운 신앙 생활을 바라고 소망함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늘 인도하여 주소서!


맺는 이야기

내용이 없는 형식주의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내용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를 질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없이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물이 그릇에만 담길 수 있듯이, 내용은 반드시 그 내용을 담는 틀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을 균형있게 간직해야 한다. 

최근 내용만을 중심하고 형식을 너무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큰 문제가 된다.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정결한 제물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하게 흠없는 제물이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물을 드리는 자의 태도를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다. 최대한 좋은 것으로 흠없는 것으로 드리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리까지 가게 된다.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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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삶 묵상 원고 샘플]


7. 5:1-9 고통을 보는 이중적 측면

 

찬송가: 289

 

여는 이야기

지금은 이스라엘이 적군에 의해 몰매를 맞지만, 훗날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타나게 될 것을 예언한다. 그 다스릴 자가 오게 되면 여호와의 능력과 놀라운 이름으로 그 백성들을 평안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앗시리아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그 때에도 지도자를 세워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5:1 <<그러므로 굳센 성아, 너희 군인들을 모아라.>> 군인들을 모아 성을 굳세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적군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만큼 적의 숫자가 많고 공격이 치열하기 때문에 군인들을 더 불러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군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직접적으로 가해할 만큼 이스라엘을 위협할 것이다.

 

5:2 <<네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를 위해 나올 것이다.>>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오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서 메시야 예언의 말씀으로 인식되었다.(2:6) 그리고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5:3 <<진통중인 예루살렘>> 미가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지도자>를 출생시키기 위해서 진통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상당한 고통 가운데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다. 출산을 위한 진통과 같은 것이어서, 생명과 구원을 출산하기 위한 고통임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5:4 <<그러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서서 ... 그 백성을 돌볼 것이다>> 진통의 때가 끝나고 이스라엘을 통해 출생한 그 지도자는 여호와의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돌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평안하게 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고, 예수님은 여호와의 능력을 이 땅에서 행하면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의 백성들을 평안케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은혜를 베푸셨다.

 

5:5 <<앗시리아 군대>> 본 절에 언급하고 있는 <앗시리아 군대>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앗시리아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위협하는 모든 이방 국가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앗시리아 >에 대항해서 효과적으로 그들을 물리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의 의미는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모든 국가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곱 명의 지도자와 여덟 명의 군왕>> 이들을 구체적인 어떤 왕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것은 히브리 문학적 기법으로(30:15,18,21, 11:2) 여러 명의 지도자가 일어나서 앗시리아를 물리칠 것을 의미한다는 정도로 보아야 한다.

 

5:6 <<니므롯 땅을 정복할 것이다.>> 앗시리아로 대변되는 이방의 공격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명의 왕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 그들로 니므롯 땅을 정복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니므롯이란 당시의 바빌론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앗시리아 일 수도 있는데,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제국들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기도

주님,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세상의 구원자를 보내셨듯이 우리의 작고 연약함 속에서 주의 구원이 움트게 하소서. 우리의 작고 연약함이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고 결국은 멸망을 당하는 역사적인 상황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우상숭배와 불순종하는 범죄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심판이라는 측면이다. 그래서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이 장차 얻게 될 구원을 위한 진통과정이라는 것이다. 진통이 없이 생명의 탄생이 없듯이, 이스라엘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과 구원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의 고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은 우리의 잘못에 대한 징계일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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