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5장 묵상과 적용] 평화란 선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선을 지키는 배려와 양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용납하실 수 없는 예루살렘의 죄

  1) 만일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할 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에 불과하다. 

  3) 하나님이 그들을 치고 때리는데도 자신들이 징계를 받는 줄을 모른다. 얼굴이 바위같이 굳어 돌아오기를 싫어한다. 

  4) 하나님께서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어찌 이 일들에 대해서 벌하지 않겠느냐?

   (1)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 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인다. 

   (2)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니 재앙이 임하지 않으리라.

   (3)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하다. 무시하고 귀 기울이지 않음.

  5)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 되고 이 백성은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를 것이다. 

   (1) 네가 모르는 나라를 통해서 너와 너희 자녀들이 먹던 것을 그들이 먹게 하겠다. 

  6)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 여호와께서 왜 이렇게 되도록 하셨는가? 하고 묻는 자가 있다면

   (1)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땅인 아닌 곳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도록 하리라 하라. 

  7)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한다.

   (1) 만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지 못한다. 하나님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정함. 그래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넘지 못한다. 

   (2) 그런데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한다.

   (3) 너희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자기의 이익을 얻으려고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면,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한다. 

   (4) 내가 이 일에 대해서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5)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정리2. 내용을 풀어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이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근거를 말씀하신다. 


1. 단 한사람이라도 정의와 진리를 진정으로 구하는 사람이 없다. 

2. 하나님이 잘못하여 때리고 징계를 해도 이들은 얼굴이 굳은 바위라 깨닫지도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3. 내가 잘 먹여서 풍요롭게 하면, 그 힘과 여유로 창기를 찾아가니 어찌 재앙이 없겠는가!

4. 여호와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따라서 여호와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5. 만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지 못한다. 심지어 성난 파도조차도 그렇다. 그런데 이 백성은 반역하는 마음에 그 한계를 넘는다. 

6. 악인들이 자기의 이익을 얻겠다고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않고,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 

7. 선지자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또한 좋게 여기니... 이 나라에 변화과 개혁은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니, 어찌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시겠는가!!


[정리3. 내용에서 묵상하고 적용해 볼만한 것은....다음과 같습니다.]


1. 만물을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지 못하는데, 사람 만큼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군요.


하나님께서는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으셨습니다.(22절) 그래서 성난 파도가 거세게 불어도 그것을 이길 수는 없게 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정하신 한계 안에서 움직입니다. 성난 파도라도 결국 그 한계를 넘어 육지를 삼키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은 그 정한 한계를 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의 죄는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서고 맙니다. 하나님을 향한 죄의 허용도 있는듯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허용된 죄(용납하실 수 있는 죄)까지도 넘어서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당신은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심판을 받고 재앙을 피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이 허용된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팍팍한 한계를 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으니까요. 어찌보면 매우 넓은 한계를 주신 것이고 그 한계는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마침내 그 한계를 넘어설 때 심판과 재앙을 맞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고,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 어떤 행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오만과 부주의함이 그 선을 무시하곤 합니다. 그 때 관계는 깨지고 평화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평화란 선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선을 지키는 배려와 양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부조리한 사회: 거짓말하는 선지자,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 제사장을 선호하는 백성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31)


진리를 말해야 할 선지자가 거짓말을 한다. 하나님의 권력을 대변해야 할 제사장이 자신의 권력으로 다스리려 한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질서를 왜곡하는 것이며 본질을 훼손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문제는 백성들이 그것을 좋게 여긴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진리를 선언하는 선지자를 백성은 싫어하며, 하나님에게만 의존된 제사장을 백성들은 싫어한다. 누가 누구에게 악영향을 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서로에게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상황 속에서 누구하나 이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내부적으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외부적인 파괴가 들어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내부적 변화를 이끌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외부적으로 이들을 흩으시며 이들을 깨뜨리시는 것이다.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가? 악의 구조, 변화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갇혀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지금은 내부적으로 변화를 열망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자정 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이번 대선도 그런 자정 능력의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이런 노력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이니 다행이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이런 모든 자정능력이 그 결과를 얻지 못하고 다시 구조적 악의 패턴에 의해 잠식당할 때, 그래서 역시 안돼라는 의식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짓누를때... 정말 그 때가 되면 우리의 마지막이 어찌될찌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외부적인 힘으로 깨뜨려지는 것 밖에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 대선 이후를 기대해 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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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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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늦었네요. 월요병인가요...^^ 아침에 푹잔것도 있고 죠이에서 오전에 직원예배가 있었던 것도 있고.. 암튼, 때를 놓쳤지만 쉽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장점입니다. 숙제하듯이 오늘도 한 장 정리해 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작업]

 

1. 요아스 왕의 성장
  1) 요아스 왕은 예후 7년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하였다.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
  3) 그러나 산당은 제거하지 못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다.

 

2. 요아스가 성전을 보수하는데 집중하다.
  1) 요아스가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가지고 성전의 어느 곳이든 파손된 곳을 수리하도록 제사장들에게 지시했다.
  2) 요아스 왕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요아스 왕 23년에 이르도록 성전을 수리하지 않았다.
  3) 요아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에게 지시하여 그들에게 은을 받지 말게 하고, 사람들이 성전에 드리는 은은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해서 드리게 하도록 지시했다.
  4)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들에게 은을 받지 않고 성전의 파손된 곳을 수리하지도 않기로 동의하였다.
  5) 그 이후로는 성전문 어귀에 한 궤에 구멍을 뚫어 제단 앞에 두게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도록 했다.
  6) 그 궤에 은이 차면, 그것을 계산하여 봉하고 성전 맡은 자의 손에 넘겨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도록 했고, 수리에 필요한 자재를 사는데 그 은을 쓰도록 했다.
  7)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을 은대접이나 불집게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했다. 오직 성전을 수리하는 것에만 사용했다.
  8) 그 일꾼들에게 은의 사용에 대해 회계할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했기 때문이다.
  9)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않고, 제사장에게 돌렸다.

 

3.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올 때 내린 요아스의 결정
  1)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가드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2) 요아스는 역대 왕들이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주니, 하사엘이 떠나갔다.
  3) 요아스는 마지막에 신복들의 반역으로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죽임을 당했다.
  4) 요아스를 죽인 신복들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다.
  5) 요아스는 다윗 성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다.

 

[정리2. 내용을 다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다시 정리함]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서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요아스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여호야다는 왕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렸고, 요아스 또한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도움을 받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그러나 요아스가 성장하여 독자적인 일들을 진행하고자 할 때, 한 문제가 발생했다. 요아스는 성전에 드려지는 은을 가지고 성전을 보수하여 더 아름답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제사장들에게 맡기었다. 그러나 그 일이 오랫동안 진척이 없었던 것 같다. 이를 답답하게 여겼던 요아스는 기존의 대제사장인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그 일에서 손을 때게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성전 보수의 일을 진행했다. 성전에서 생기는 모든 재정적인 수입은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만 전적으로 쓰도록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충성스럽게 일하는 일꾼들에 의해서 잘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요아스가 독자적인 사역을 하면서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 있어서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갈들을 겪게 되고, 둘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본문에는 직접적으로 이 일에 있어서 평가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성전 보수가 일이 잘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아 요아스의 판단이 옳았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일 이후에 아람의 예루살렘 침략을 언급하면서, 요아스가 결국은 아람의 하사엘에 왕궁과 성전의 금을 내어주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요아스의 죽음이 비참했다는 것을 언급함으로 대제사장 여호야다와의 갈등으로 그와 분리되게 됨으로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볼 때, 저자는 요아스가 여호야다와 분리되게 된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요아스 왕도 이젠 독립이 필요했다.

 

요아스는 왕이 될 때부터 제사장 여호야다의 전적인 도움을 입은 왕이다. 요아스가 왕이 될 때의 나이가 7세였기에, 그 이후로도 상당한 시간동안 제사장 여호야다는 왕을 지도했고, 요아스 왕은 그의 지도를 따라 국가를 통치했다. 성경은 그 시절이 좋았다고 언급하고 있다.(2절)

 

그러나 이제 요아스의 나이 30세가 되었다.(6절) 요아스도 어른이 되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는 왕이 아닌, 왕 요아스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여호야다와는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왕이 지시한 일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 무리를 통해서 실천되고 있지 않은 것이고, 왕은 그것에 대해서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요아스 왕은 결국 여호야다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냈고 그것은 여호야다를 그 일에서 배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요아스와 여호야다는 분리되게 된 것이다.(7,8절)

 

요아스도 왕이다. 왕은 주변 신하들의 도움과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결국은 왕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왕이 된다. 이제 요아스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요아스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여호야다와의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직접적으로 요아스의 이와 같은 갈등을 비판하고 있지 않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립한 한 사람, 독립한 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선하고 옳은 사람이라고 할찌라도, 결국은 갈등과 대립의 순간을 맞는다.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의 독립이 선언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의 기도제목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바르게 잘 성장하는 것이다. 사람 구실을 잘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기도제목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아들 모습을 볼 때, 그와 같이 되지 못할까봐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훈계를 해도 듣지를 않고, 매를 들어도 잠시 뿐이다. 부모로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요아스의 독립을 통해, 내 아들의 독립을 보게 된다. 정신적인 지도자인 여호야다와의 갈등이 그의 독립 선언이었던 것처럼, 지금 나와 내 아들이 직면선 갈등은 탈선과 반항이 아닌, 내 아들이 아닌 한 사람의 독립 선언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독립하는 요아스를 향해서 여호야다가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고, 요아스의 고집스러운 제안에 동의했다.(8절) 그렇게 요아스는 독립해 갔고, 그렇게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보내준 것이다. 나와 아들... 영원히 어린 아이가 아님을 기억하며 그는 내게서 독립하여 독립된 존재가 되기 위해 잠시 나를 밀치고 나갈 것이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주어 그가 독립된 인간이 될 기회를 허락해 주어야 한다. 불안하기에 기도하면서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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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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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년 결혼식이 있어서 아침부터 서산까지 다녀왔습니다. 다녀오니 오후 5시 반이네요.. 하루가 다 갔습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 시간이 없을 땐, 정리1만 합니다. 우선적으로

1. 유다 왕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이됨
  1) 아달랴(아하시야 왕의 어머니)가 왕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함.
  2) 아하시야 왕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중 요아스를 빼내어 그의 유모와 함께 자기 침실에 숨겨 아달랴로부터 살려냄
  3) 요아스가 여호와의 성전에 육년간 숨어 있었고, 그 동안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다.

2.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다.
  1) 일곱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불러서 맹세시키고 왕자를 그들에게 보였다.
  2) 안식일에 1/3은  왕궁을 지키고, 1/3은 수르 문에 있고, 1/3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왕궁을 지키고, 안식일에 나가는 너희 중에 두 대는 여호와의 성전을 주의하여 지켜서 왕을 호위하라.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여 대열을 침범하는 모든 자는 죽이라고 지시함.
  3) 백부장들은 안식일에 여호야다의 명대로 행했고, 여호야다는 성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었다. 호위병들은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면서 그 사이를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왕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여 왕의 만세를 불렀다.
  4) 뒤늦게 알아차린 아달랴가 달려와 반역이라고 외쳤으나, 오히려 그는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3.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
  1)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함.
  2)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함.
  3)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제단과 우상들을 철저히 파괴하고 제사장 맛단을 죽임.
  4) 백부장들과 호위병들을 성전에서부터 왕궁까지 왕을 인도하여 왕이 왕의 왕좌에 앉게 함.
  5)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였다. 요아스가 왕이 될 때의 나이가 7세였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북이스라엘에서 예후에 의해 요람이 죽고 예후가 이스라엘을 장악해 가는 중에, 남유다에서는 아하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아달랴는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된다. 그러는 중에 한 왕자는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에 의해서 생명을 보존하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요아스다.


요아스는 성전에 숨겨진 채로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아래 6년간 아무도 모르게 자란다. 요아스의 나이 7세가 되던 해,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위에 앉히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먼저 백부장들을 모아 성전으로 불러모으고 이들에게 맹시키신 후 아하시야의 아들로서 요아스 왕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여호야다는 백부장들의 도움을 얻는다.


안식일이 되었을 때에, 백부장들은 여호야다의 지시를 따라 왕궁을 지켜 출입을 통제했다. 그리고 일부는 성전으로 가서 요아스 왕자를 호위했다. 요아스 왕자는 여호야다의 인도 아래 왕관을 씌움받고, 율법책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아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와 함께 사람들은 요아스의 왕됨을 크게 외쳤다.
이 상황을 전혀 몰랐던 아달랴는 성전으로 와서 반역이라고 외쳐보았지만, 이미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 비참하게 죽게 된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와 언약을 맺도록 했고, 바알의 단과 우상을 파괴했다. 그리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그리고 왕이 된 요아스를 왕궁까지 인도하여 왕좌에 앉게 했다. 이로 인해 온 백성들을 즐거워하고 평온하게 되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왕을 만드는 사람, 제사장 여호야다.

얼마전 이병헌이 주연을 한 <광해>라는 영화를 봤다. 왕의 부재를 대신해서 세운 가짜 왕이 왕의 역할을 하도록 돕는 신하가 나온다. 그 신하를 통해서 가짜 왕은 왕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물론 생각 이상으로 더 왕의 일을 잘 해내어 놀라게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와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 그는 아달랴로부터 왕자 중 한 명을 살려냈고, 성전에서 키웠으며 어린 요아스를 왕의 자리에 다시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이후에도 유다가 깨어진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세우는 역할을 해냈다. 여호야다는 위기에 처한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는 결정적 공로를 세운 제사장이 되었다.

왕이 역할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왕이 부족하거나 왕이 부재한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그의 부재와 무능을 보완해 줄 신하가 필요하다. 그는 왕을 보호하기도 하고, 왕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왕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 왕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뛰어난 왕이 없다고 리더가 없다고 대통령이 없다고 세상은 난리다. 그렇다면 왕의 부재를 무능을 대치하고 보완할 수 있는 신하를 찾으라. 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왕이 되지 않고, 신하로 있으면도 왕으로 왕의 역할을 도울 수 있는 신하를 세우라. 왕은 왕이고, 신하는 신하다. 그러나 왕을 왕되게 하는 신하가 있다. 그런 신하가 있다면 왕의 무능과 부재에도 세상을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는 광해군 시대의 도승지 허균과 상선과 같은 신하, 요시야 왕 때의 여호야다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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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7장입니다. 성전 재건에 대한 이야기가 6장까지 나오고, 이제 그 이후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난 아닥사스다 왕 때의 이야기 이면서 동시에 성전 재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구현해줄 에스라의 출현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1차. 성경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정리]

성전건축(주전 516년)으로부터 약 58년이 지난 후의 에스라 이야기(아닥사스다 왕,주전 458년)

1. 성전 건축 후 약 58년 후,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인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5절)

1)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2)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3) 아닥사스다 왕 제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에스라도 함께 올라왔다.

4) 넉달이 걸리는 거리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다.

5)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함.

2.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초본 내용(11절)

1)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가라.

2) 목적: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다.

3)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성심으로 은금의 예물을 드리게 함.

4)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은 모든 은금과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예물을 가져다가 신속히 제물로 사서 하나님의 제단위에 드리고, 남은 것은 좋게 여기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라.

5) 그 외에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궁정 창고에서 내다가 쓰도록 해라.

6) 왕의 명으로 강 건너편 창고지기에게 명하니, 은은 백달란트, 밀은 백 고르, 포도주는 백 밧,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주라고 명함.

7) 귀환하는 유다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지 않도록 하라.

8) 너희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에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9) 네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죄를 정하여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두라.

10)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삼가 행해서 그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지 않도록 하라.

3. 여호와를 찬양하는 에스라

1) 왕의 마음으로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다.

2) 나로 하여금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다.

3)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다.

 

[2차. 1차 정리한 내용과 이전의 흐름, 더 나아가 작성자가 가지는 기초 정보를 기반으로해서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정리한다]

 

1.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다. 아닥사스다 왕 때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어떻게 왕의 은혜를 얻고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특히,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자임과 하나님의 율법으로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보여준다.

2. 이와 같은 그림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 통치하시려고 했던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기억나게 하고 에스라의 역할이 모세의 역할임을 연상케 한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이 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에스라의 귀환을 돕고,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제사 회복을 지원하는 모습은 출애굽 당시 바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론 바로는 자발적인 지원이 아니었다. 아닥사스 왕도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모 종의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다. 2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라는 왕의 고백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내쫓은 것이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아닥사스다 왕도 크게 다르지 않는 이유 속에서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명하는 것 같다.

(딴 이야기지만,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가 애굽에서의 요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

3. 에스라가 아론의 16대 후손이라는 것과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라는 것은 성전 제사와 모세 율법 통치의 회복을 위해, 약 60여년 전에 다시 세워진 성전을 근거로 그 토대를 온전케 하고 확대를 목적으로 한 귀환 공동체를 위한 2차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에스라서는 지금 아닥사스다 왕 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과거 출애굽 역사와 유사한 패턴으로 해석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과거 출애굽 역사를 기억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금과 그 때를 비교해서 보도록 하고, 그것은 지금 이시대가 그 때와 같은 하나님의 때로 전에는 실패한 공동체(제사와 말씀 중심)의 회복의 때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따라서 제사장이면서 율법 학자인 에스라의 귀환은 마치 모세의 등장, 그러면서도 모세보다도 어느 면에서 뛰어난(모세는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는 못했고, 모세는 제사장은 아니었으니...) 존재로서의 에스라를 보여준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람으로 기대된다.

3. 하나님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역사하고 있고, 아닥사스다 왕은 그 일의 종처럼 일한다. 하나님은 아닥사스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가지게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그 위협을 피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이 땅의 권세도 사용하시고, 그들의 두려움도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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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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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6장입니다. 다시 의욕적으로 시작한 성전 재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의 위협으로 다시 멈추게 될지 아니면 계속 공사를 할 수 있을지는 이제 다리오 왕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6장에는 다리오 왕의 결정과 그 일로 인한 성전 재건의 진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정리]

1.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올린 글을 받고 확인을 해보는 다리오 왕

1) 메대의 악매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아 고레스 왕의 기록을 찾아냄.

2) 성전의 규모도 정하고, 바벨론으로 옮겨왔던 물건도 돌려보내고, 경비는 왕실에서 제공

2. 다리오 왕의 명령

1) 유브라데 강 건너편 사람들은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을 막지 말라. 성전을 건축하게 하라.

2) 그 지역에서 거둔 세금 중에 일부를 주어 경비를 대주고 공사가 끊기지 않도록 하라.

3) 제사장들이 요구하는 제물의 물품은 요구하는 대로 어김없이 주라.

4)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5) 이 명령을 변조하고, 성전을 헐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기를 원한다.

3. 성전 재건이 순탄하게 진행됨

1) 방해하던 사람들의 방해가 없어짐

2) 선지자 학개나 스가랴의 권면을 따라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함으로 순탄하게 됨.

3) 다리오 왕 제 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4. 성전 봉헌식과 성전 제사를 섬기게 함: 모세의 책에 기록된 것을 근거로.

1) 수소 100마리, 숫양 200마리, 어린 양 400마리를 드림.

2) 숫염소 12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

3)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함

4)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5. 유월을 지키다.

1) 첫째달 14일이 되자 유월절을 지킴

2)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몸을 정결하게 함.

3) 사로 잡혔다가 온 사람들이 정결하게 하기 위해 유월절 양을 잡았고, 다 먹었다.

4) 즐거움으로 이레동안 무교절을 지켰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셨다.

 

[정리2. 본문의 내용을 다시 내가 이해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재정리]

[6장 전체 이야기]

13년간 멈췄던 성전 재건 사업이 선지자들의 독려와 리더들의 두려움없는 태도로 진행하자, 갑자기 모든 일이 순적하게 열리면서 신속하게 성전이 재건되고, 그 이후의 봉헌식과 성전 업무를 위한 인원배치와 또 성전을 중심으로만 진행할 수 있는 절기가 온전히 지켜지게 되었다.

1. 여기서 주목하여 볼 것은 다리오 왕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막혀 있던 모든 문들이 열리고 오히려 생각지 못한 길까지 열리게 되어 신속하게 성전공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주목하여 봐야 한다. 명목상의 이유는 유다인의 성전에서 왕의 자녀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다리오 왕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누군가 유다인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본다.

2. 이들은 성전 재건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성전을 재건하자, 제사를 드렸고 그 제사를 드리는 일에 합당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모세의 책에 기록된 방식을 따라 배치하였다. 또한 성전이 완성되자 이제는 절기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유월절이 되자 이방으로부터 돌아온 이들은 먼저 정결의식을 행했다. 이방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으로서 유월절 양을 먹었다. 그리고 그 이어 무교절을 지켰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마치 다리오 왕이 유다인의 성전 재건이 꼭 필요한 사람인 것처럼 신속하게 풍요롭게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하도록 조치를 다 취해 줌.

2. 다리오 왕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함.

  : 아마도 하나님은 꿈에 다리오에게 나타나 유다인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다리오 왕의 아들들을 위한 제사들 드리지 않으면 다리오 왕의 아들들에게 큰 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을지 모른다.(10절) 비슷한 시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여 다리오는 선왕 고레스의 명령이면서도 동시에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자식들이 해를 입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속에서 진행된듯 하다. 완전 추측...^^

3. 모세의 책, 모세의 율법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성전 파괴와 이방 땅으로의 흩어짐을 통해서 제사 제도는 사라졌다. 제사를 주관하던 제사장도 할 일이 없고, 레위 인도 할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전에는 오던 관습대로 사람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수되던 것이 단절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모세의 책이다. 모세가 어떻게 말씀하였는가가 이들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모세는 더욱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해석해야 하는 문제도 생겨났을 것이다. 전통과 습관의 단절은 사람들의 관심을 전통과 습관을 만들어냈던 책, 모세의 율법으로 옮겨가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포로기 이후 율법은 전보다 더욱 중요한 책으로 인식 되었을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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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2장을 보자.

족보 형식처럼 사람 숫자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본문을 대하면 자세히 읽어야 하나, 끝까지 읽을 필요가 있는가 싶어서 패스하고 싶어진다. 나도 그렇고.. 사실 정독해서 읽어도 별로 건질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혹 뭔가 건저 올릴 수 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해 보자.

[1] 먼저 본문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다.(사실에 기초하지만, 내 프레임으로 재배열 해야 한다.)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서 사로잡혀갔던 사람들 중에서 고레스의 명으로 돌아온 자들의 명단

1) 총 인원수는 42,360명(64절) 그 외에 종이 7,337명,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

   (64,65절)

2) 주로 지역별 자손으로 구별해서 인원을 말한다.

3) 특별한 인원 구성은, 제사장들(36) 레위인들(40), 노래하는 자들(41), 문지기

   의 자손들(42),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55)

4)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59절) 명확하지 않는 자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했다.(62절)

 

2. 성전 건축을 위해 자발적으로 예물을 드리는 족장들이 있었다.(68절)

 

[2] 다음은 내가 정리한 내용을 중심으로 본문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재설명한다.(내 글로 서술한다.)

 

고레스의 명으로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온 자들의 숫자를 보여준다. 그 명단은 그들이 살았던 지역 출신으로 구별하는데(?) 이는 이들이 정확히 유다인인가에 대해 파악하는 중요한 방식이었던 것같다. 살았던 지역 외에 제사장과 레위인, 또한 제사를 위해 따로 구별되었던 노래하는 자나 문지기들은 따로 구별하였다.

또한 가문과 선조가 분명치 않은 사람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는 일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제사장의 직분과 같은 일에는 소극적(확실하게 확인된 사람만을 세우는) 방식으로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귀환 자들의 인적 파악 문제가 정리가 되면서 동시에 재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족장들 중에 일부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성전을 건축하는데 헌신했음을 언급함으로 일이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지금까지 요약 정리한 것을 토대로 내 묵상과 생각들을 진전시켜 본다.

 

1. 귀환한 자들이 정통 유대인인가에 대한 공식적인 인증절차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란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구별된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훗날 역사적으로 귀환 공동체의 후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해주는 것에 매우 중요한 정보와 자료가 될 것이다.

2. 귀환자들 중에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 문지기와 같은 자들은 따로 구별하여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제사 의식, 예배 의식이 돌아온 귀환 공동체에도 여전히 중요함을 보여준다. 결국 모세의 율법에 의존하여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구별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이것을 필수적으로 수행 했다.

3. 그 중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정확히 파악이 안된 사람들에게는 제사장의 직분과 같은 중요한 직분을 맡기지 않았다. 즉 사람을 세울 때 핵심적이고 명확한 구분이 있는 직분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세운 것이다. 결격사유가 없으면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직무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검증에서 통과된 사람만을 세웠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목사를 세우거나 장로 혹은 안수집사를 세울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극적인 입장에서 직분자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인간이 하는 것이라 불완전하겠지만, 검증된 사람만 세우는 방식으로 지도자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말이다. 아마 디도서나 디모데전서에서 언급된 감독, 집사의 자격도 그런 측면에서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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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8장은 완전한 대제사장에서 새언약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이와 같은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불완전한 (대)제사장의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새언약과 대치되는 옛 언약은 어떤 것이며 어떤 차이와 공통점이 있는지 살펴봐야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진다.

그와 같은 개략적인 내용은 히브리서 8장을 읽어봐도 대략 알 수 있다. ^^

 

히브리서 8장 내용의 골자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으리라 생각한다.

전에도 언약이 있었지만, 그 언약을 이루어 낼 능력이 사람 안에는 없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이 가지는 한계였다. 율법 그 자체, 옛 언약 그 자체는 옳고 맞는 것이나, 그 언약을 지키겠다고 받은 그 백성의 연약함과 죄(성)가 그 언약에 신실하게 응답하지 못하게 함으로 언약을 깨뜨려 버리는 것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언약의 신실성을 통해 회복을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요원해지는 것 같았다.(구약의 역사)

그러나 하나님은 새 언약을 준비하셨다. 새 언약은 내용의 새로움이 아니다. 그 언약을 체결한 자와 그 언약을 성취해 가는 방식이 새로운 새 언약이다. 율법과 언약을 문서(돌판)에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 두고, 마음에 새기는 방식으로 언약 성취의 방식을 바꾸신 것이다. 전에는 내 힘과 능력에 의존해서만 언약의 성취여부가 결정되었지만, 새 언약은 그 방식이 달랐다. 언약을 내 생각 내 마음에 새기심으로 내 안에서부터 일어나는 능력(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한 도우심, 성자 하나님의 중보하심으로 성취가 보장되는)으로 언약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새 언약(성취되도록 하는)을 전해주신 분이요, 이 분이 바로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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