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장] 죄악이 훨씬 큰 북이스라엘보다 유다가 더 큰 책망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언약궤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묵상에서 좀 다루어보았습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문맥 파악해서 정리해 보기]


1. 유다의 음란과 행악

  1) 그들은 말한다. 음란한 아내를 다시 받아 준다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는가!라고.

  2)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바로 음란을 행하는 여인과 같다. 행음하지 않는 곳이 없다.

  3) 그래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그쳤는데도 창녀와 같아서 수치를 알지 못한다.

  4) 너희가 갑자기 버린 나를 다시 찾으며, 청년 때의 보호자라 말하며 노여움을 풀라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너희들은 악을 행하고 너희 욕심을 이룬다. 한 마디로 가증스럽다.


2. 이스라엘의 케이스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유다

  1) 요시야 왕 때에 이스라엘은 온통 행음으로 가득했다. 돌아오라고 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2) 이스라엘의 자매 유다는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도 가서 행음하였다. 

  3) 여기서의 행음이란 우상 숭배를 지칭하는 것인데, 그 행음으로 이 땅을 더럽혔다. 

  4) 유다는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짓으로 돌아오는 척 할 뿐이다. 


3. 반전: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말씀하심

  1) 배역한 이스라엘이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으니 북으로 가서 선포하라.

  2)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니 노를 한없이 품지 않을 것이다. 

  3) 너는 오직 너희 죄를 자복하라, 돌아오라. 나는 너희의 남편임이라.

  4) 내가 너희를 택하여 시온으로 데리고 오리라. 내 마음에 합한 목자를 세워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그래서 이제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 필요없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가 되어 예루살렘에 모이는 자들이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그들이 행하지 않을 것이다. 

  5)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 조상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6)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너희를 자녀들 중에 두고, 너희는 나를 나의 아버지라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라.

  7) 그런데 너희들은 아내가 남편을 속임같이 확실히 하나님을 속였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4. 진실한 회개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데, 우리가 청년 때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 즉 수치 중에 눕겠고,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며 청년 때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다. 



[정리2. 정리한 내용으로 내 표현으로 바꾸기]


유다는 말한다. 음란한 아내를 남편이 용서하고 받아 준다면 이 땅이 윤리적으로 타락하여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영적으로 그 음란한 여인과 같기에 너희를 다시 받아 줄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창녀와 같이 수치를 모른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지만 진심함이 그 안에는 없다. 


유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이스라엘의 자매다. 그런데도 유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도 가서 음행을 행했다. 우상을 섬겼으며 그로 인해 유다 땅을 더럽혔다. 그들은 진심이 없고 언제나 돌아오는 척만 했다. 따라서 유다에 임한 진노와 심판은 돌이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하나님은 긍휼이 있는 분이고 노를 영원히 품지는 않는 분이라고 말씀하시며, 이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요청하신다. 죄를 자복하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들의 남편이시기 때문이다. 남편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은 신실하게 감당하실 것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은 이제 이들을 다시 시온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세우고, 그들을 지식과 명철로 가르쳐서 더 이상 완악함으로 행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보좌가 되어 예루살렘에 모인 자들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할 것이고, 하나니은 너희를 자녀들 중에 둘 것이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유다가 이스라엘 보다 더 나쁜 이유


유다는 이스라엘과 한 민족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 음행을 행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죄는 유다보다 급속해서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유다가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분위기에서 책망하신다. 


이유는 무엇인가? 유다는 이스라엘의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돌이키기나 새롭게 되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이 한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래서는 유다 땅 전역을 더럽혔던 것이다. 이런 유다를 하나님은 더욱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반면교사가 없었다. 그러나 유다는 바로 곁에서 반면교사로서의 이스라엘을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전혀 깨닫거나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멸의 길로 가게 된다. 


죄의 깊이와 정도에 따라서 죄의 심각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듯 하다. 하나님은 알려주는대도, 경고하는대도, 가르쳐주는대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자들을 가장 악하게 보신다. 따라서 교훈과 책망을 듣지 않고 자기 욕망의 고집대로 사는 것만큼 큰 죄가 없으며, 돌아오기 어려운 죄도 없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언약궤가 없고,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가 되리라.


하나님은 쫓겨난 자기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고, 쫓겨간 인생들은 그 분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시온으로 다시 불러 모으고, 그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세워서 이들을 지식과 명철로 양육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언약궤가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가 세워져 이들을 바르게 가르칠 것이기에 더이상 언약궤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한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인 백성들은 다시는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다. 부드럽게 행동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지혜로운 목자를 통해서 그의 백성들이 완전히 변화되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이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식과 명철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 뿐 아니라 그분의 사역에 있어서도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지식과 명철로 가르치셨고, 지금도 가르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도 지금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사역을 하고 있으시다. 이는 모두 학생의 훌륭함 때문이 아니라, 목자의 훌륭함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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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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