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7.10)

 

제목: 마음이 뜨거워지다.(부활, 재림)

본문: 눅 24:13-35


 * 녹음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이어폰으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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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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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5장] 성경적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낙관의 시대에 교만을 지적하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 시대에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자는 다음 시대를 예비할 수 있는 복이 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예루살렘의 멸망: 히스기야 왕이 잡혀감
  1) 시드기야 9년 11째 달.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옴
  2) 시드기야 11년까지 포위함. 모든 병사들이 밤중에 도망함.
  3)갈대아 군대가 도망치던 왕을 쫓아가 여리고 평지에서 잡음. 모든 군대는 그를 떠나 흩어짐.
  4) 시드기야를 사로잡아 바벨론 왕에게 데려가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베론으로 끌고 갔다.

 

2. 예루살렘의 멸망: 남은 자를 데려가고, 성벽을 허물고 성전의 기물을 가져감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19년 째에 왕의 신복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름.
  2)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태움, 성벽을 험.
  3)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모두 사로잡아감. 느부사라단이 비천한 자들은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셨다.
  4) 갈대아 사람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놋으로 된 물건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두 놋 기둥과 받침, 놋 바다, 가마들과 부삽, 부집게, 숟가락, 모든 놋그릇, 불 옮기는 그릇, 주발 등 금이나 은으로 만든 모든 것을 가져감.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놋을 가져감)

 

3. 예루살렘의 멸망: 유다 백성들이 잡혀감
  1)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성중에서 여러 지도자들을 60여명을 잡아 가지고 바벨론 왕에게로 데려감
  2)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립나에서 이들을 다 쳐서 죽임당함.
  3)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4. 예루살렘의 멸망: 바벨론은 유다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움
  1) 바벨론이 남긴 사람만 유다 땅에 남아 있었다.
  2)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다.
  3) 유다의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는 것을 알고, 그달랴에게 찾아왔다.(이스마엘, 요하난, 스라야, 야아사니야...등 이들과 따르는 무리들)
  4) 그달리야가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요청함.
  5) 나중에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였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였다.
  6) 이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애굽으로 도망쳤는데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

 

5. 예루살렘의 회복(?): 여호야긴의 회복
  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나왔다.
  2)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죄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다.
  3) 그가 쓸 것을 날마다 왕에게서 받아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했다.

 

[정리2. 정리된 내용을 내 말로 다시 풀어보자]

 

유대의 멸망을 다루게 되는 장이다. 시드기야 9년에 바벨론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3년간 예루살렘 성을 애워쌓으므로 결국 예루살렘 성에 있던 왕과 신하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도망치려던 것이 발각되어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왕에게 끌려간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눈까지 뽑고 바벨론으로 데리고 간다. 그와 함께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훼파한다. 모든 귀인들의 집은 불태우고, 성벽은 헐었으며 성전에 있는 놋과 금과 은으로 된 것들은 모두 거두어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다.


포로로 잡혔던 사람 중에는 60여명의 지도층 인사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바벨론 왕에게 잡혀 왔으나, 왕은 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했다. 이것은 포로된 자의 운명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바벨론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겨 놓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워놓았으나, 유다의 군벌들이 그달리야의 친바벨론적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그 중 이스마엘에 자기 병사들과 함께 그달리야를 죽인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던 유다인들과 갈대아인까지 모두 죽인다. 그리고 갈대아 인들의 복수가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치기에 이른다.


유다는 정치적 공백의 시간을 맞게 된다.

본 장의 마지막은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야긴 왕이 잡혀간지 31년 만에 옥에서 나와 왕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회복하였음을 기록하는데, 이는 앞으로 유다의 상황도 이와 같이 회복될 것을 염두해 두고 표현한 거라 보여 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유다의 멸망이 완전한 멸망임을 보여준다.

 

시드기야 왕이 도망하다가 잡혀, 자신의 아들들의 죽음을 봐야 했고 자기 자신은 눈이 뽑히는 고통 속에서 애굽으로 끄려가는 인생이 되었다. 모든 지도층들은 거의 포로로 잡혀가거나 잡혀 죽게 된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든 성전의 물건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된다.

 

바벨론의 왕이 남은 자들을 위해서 세워놓은 유다의 지도자인 그달리야조차 옛 유다 세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갈대아 인들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생활한다. 유다의 황폐함을 보여주며, 유대에 남아 있는 자들의 비천함과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제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던 성전도 훼파되었으며, 다윗의 언약도 파기된것처럼 이스라엘의 영원할 것 같은 왕조도 끊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뜻을 포기하신 것 같기도 하고, 성취하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유다의 멸망의 상황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일이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유다는 완전히 망했다. 이 현상을 토대로 성전의 의미와 다윗 언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다른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 이후 선지자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하게 한 것이다. 해석은 이렇듯 현장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2. 여호야긴의 회복에 대한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완전한 멸망으로 마친것 같은 유대의 역사에 열왕기하 기자는 하나의 사건을 덧붙인다. 여호야긴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포로로 잡혀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풀려 존귀한 자리를 회복하며 평생을 왕의 진미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열왕기하 기자는 여호야긴 왕의 회복 사건(작은 사건이지만)을 통해 유다에 다시 한 번 회복의 기회가 시작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고 그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 열왕기하를 기록한 것이다.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그 희망이 작았지만 그 희망 속에서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절망의 늪에 있는 자들에게 지푸라기 하나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생명의 동아줄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절망의 시대에 절망을 보며 절망을 지적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절망 속에서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소망을 비추는 것으로 마감하는 역사의식을 가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역사 의식을 가진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역사의식인가? 낙관의 시대에 절망을 볼 수 있는 역사의식이다. 절망으로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절망의 시대에 소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절망 속에서 살아날 수 있고 견딜 수 있어서 희망의 때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의식의 사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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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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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화려한 승리 다음에 찾아오는 비참한 절망. 엘리야에 대한 18장과 19장에 언급한 대조적 상황입니다. 가장 큰 승리 뒤에 찾아 올 수 있는 가장 큰 절망에 대해서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절망한 엘리야를 어떻게 다시 세우시는지 살펴봅시다.

[정리1. 본문 내용 정리]

1. 이세벨의 위협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일과 모든 선지자를 죽인 일을 이세벨에게 말함.
  2) 이세벨은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 내일 이맘때가 되지 전에 엘리야를 죽일 것을 예고함.

2. 엘리야의 낙망과 도피
  1) 엘리야가 상황을 파악하고 사환과 함께 유다까지 도망갔다가 거기서 사환은 두고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소원함. 그리고 그 아래에서 잠듬.
  2) 천사가 찾아와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줌. 엘리야는 다시 눕자 천사가 다시 왕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권함.
  3) 이에 먹고 힘을 얻어 사십 주,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름

3. 엘리야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1) 호렙산 굴에 있더니,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여기 있는가 물으심. 엘리야는 본인 하나님께 열심히 있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래서 나만 남았는데, 내 생명 마져 빼앗으려고 한다고 고백함.
  2)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 서라고 하심
   (1)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2)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했다.
   (3)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셨다.
   (4)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가 엘리야에게 임하였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대답한다. 엘리야는 본인 하나님께 열심히 있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래서 나만 남았는데, 내 생명 마져 빼앗으려고 한다고 고백함.
  3)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사명을 주심.
   (1)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
   (2)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3)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4) 하사엘의 칼을 피한 자는 예후가 죽이고, 예후의 칼을 피한 자는 엘리사가 죽이리라.
   (5)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 두었다.

4. 다시 사역을 시작한 엘리야
  1) 엘리야가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 그를 부름.
  2)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다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고 엘리야에게 나아옴
  3) 엘리사는 소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들에게 주어 먹게 했다.

[정리2. 본문 내용의 재정리]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의 싸움은 멋진 한판승으로 엘리야가 이긴다. 그런나 그 이후다. 아합을 통해 자기 선지자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엘리야는 급히 사환 한 명과 유다로 피신하고, 거기서도 사환은 남겨두고 광야로 하루 길을 더 간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런 엘리야에게 천사들은 다정한 위로와 격려로 먹을 것을 먹여 힘을 주고, 결국은 호렙 산까지 이르도록 한다.


호렙 산에서 엘리야는 굴 속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온 엘리야에게 큰 바람이 일어나 바위와 산을 가르는 듯 했다. . 그러나 하나님을 보이지 않았다. 지진이 있었다. 불이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세미한 음성이 들린다. 너는 왜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자신의 처한 상황,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알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버리고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까지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세가지 사명을 주신다.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북이스라엘의 왕을 삼으라는 것과 엘리사를 기름부어 다음 사역을 준비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말씀하신다. 그런데 엘리야야 너 말고도 바알에게 무릅꿇지 않은 사람 칠천명이나 더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엘리야는 다시 힘을 얻었는지, 제일 먼저 엘리사를 찾아 제자로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낙심은 점진적으로 찾아 오기도 하지만, 순간적으로 찾아 오기도 한다.

엘리야는 갑자기 낙심했다. 어제의 큰 승리로 그는 매우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아합도 정신을 차렸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불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삼년간의 가뭄끝에 바알 선지자들을 심판하고 나니 비가 온 것으로 봤을 때... 아합은 그간의 잘못을 뉘우칠 줄로 기대했던 것 같다. 더불어 이제 이세벨의 영향력은 완전히 축소 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아합은 변하지 않았고, 이세벨은 더욱 기세가 등등해 졌다. 오히려 자신만 더 큰 위협에 처해질 처지가 되었다. 그 동안 숨어 살 때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지라 목숨을 유지할 방법도 없어 보였다. 낙심이 찾아왔다. 절망이 찾아왔다. 두려움을 넘어 무기력이 그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1) 내 안에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면 안된다.

엘리야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말았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충분한 승리였을 것이고 샴페인을 터뜨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완고했고, 이세벨은 독했다. 오히려 엘리야가 위협당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신중함이란... 완전한 승리 앞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조심하는 것이리라 본다.

  (2) 악은 생각보다 강하다.

악이 강하지만 한 번 무너지면 무기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악은 생각보다 강하고 질기다. 악에 대한 나이브한 생각이 오히려 반격을 당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아합과 이세벨은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세상의 악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부패의 고리는 얼마나 강한지.. 학연과 지연의 고리는 얼마나 질긴지... 그래서 개혁은 힘든 것이다. 선빵에 끝나지도 않고, 다윗의 물맷돌 한 방으로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긴장하고, 계속 주시하고, 계속 견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절대 권력, 절대 부는 반드시 부패한다.

2. 하나님의 처방이라는 것이...

낙심한 엘리야를 향해서 내린 하나님의 처방이라는 것이 그리 신통치 않아 보인다. 아합과 이세벨의 세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낙심한 엘리야를 격려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아합과 이세벨 보다 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강한 바람으로도, 지진으로도,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셨다. 이건 아니지...

그리고 하신다는 말씀이 '왜 여기 있냐?'는 것이다. 몰라서 물으시는 것은 아닐텐데..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직면한 이 어두운 상황을 설명하고, 마지막 남은 꺼져가는 촛불같은 자신도 곧 죽게 될 처지에 있음을 호소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처방은 지금 당장을 기약하시는 처방이 아니라, 나중을 위한 처방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참고 견디며 다음을 도모하자고 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너 말고도  7000명의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신다. 칠천명을 데리고 아합과 싸우든지, 이세벨을 죽이라는 약속도 아니다. 다만, 참고 견디고 미래를 도모하라고만 하신다.

현재의 악과 부패에 대한 즉각적인 답을 원한다. 우리는. 그 답이 없으면 우리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숨어 버리고 닫아 버리고 만다. 그런데 하나님은 즉각적인 해결을 주시지 않으시고는, 현재는 참고 견디라고 하시면서 다만 다음을 기약하자고 하신다. 다음을 기약하자... 하나님의 처방이란 참 받아들이기 힘들지만...그래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엘리야처럼 낙심 속에서 털고 일어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5년을 무력하게 참고 견디면서 살아왔다. 다음을 기다리면서... 이제 그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5년을 참아 온 사람들은 올 대통령 선거를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이제 그 때가 온 것이다. 누가 그 다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참아 왔던 5년을 보상해 줄, 혼란에 빠지고 눈을 가리어 버린 지난 5년을 회복시켜 줄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생각해야 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지난 5년이 다시 반복되는 일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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