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이야기 중 상당한 분량은 성전과 왕궁,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네요. 오늘도 그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외에도 굉장히 많은 공사를 이스라엘 전역에서 실시했고, 많은 역군들을 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리1. 본문 내용 정리]

1. 솔로몬이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것을 모두 마쳤을 때에
  1) 여호와께서 다시 기브온에서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
  2) 여호와께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의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고 주의 눈길과 마음을 항상 거기에 두겠다.
  3) 네 아버지 다윗처럼 주의 법과 율례를 지키면,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히 함.
  4) 만약 너희나 너희 자손들이 돌아서서 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면,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이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라. 그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 속담거리가 되게 하겠다.

2. 솔로몬이 자신을 도와준 두로 왕 히람에게 보상을 해줌
  1) 성전과 왕궁을 짓는데 22년의 건축기간이 지났다.
  2)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의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한 보상으로 20개의 성읍을 주었으나, 두로 왕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그 땅의 이름을 ‘가불’이라고 했다.)

3. 솔로몬의 나머지 업적
  1) 솔로몬이 역군을 일으켜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였다.
  2) 솔로몬은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성을 건축함.
  3) 역군으로 삼은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아모리, 헷,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 중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썼다.
  4)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삼지 않고, 군사와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되었다.
  5)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하여 궁을 건축하였고, 밀로를 건축했다.
  6)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를 드림.
  7) 솔로몬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었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_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는데 22년의 시간을 보냈다. 모든 공사를 마치고 하나님은 기브온에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이 성전을 구별하여 영원히 그 곳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너와 너희 자손이 여호와의 율례와 계명을 지키면 그 왕의 위가 영원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성전을 내 던져 버려서, 모든 민족 가운데 수치거리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큰 공사를 마무리하고 자신을 크게 도운 두로 왕 히람에게 20개의 성읍을 대가로 지불하지만 두로 왕은 그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솔로몬은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 및 여러 지역에 성을 건축하였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였다. 이에 필요한 역군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가나안 민족 중에서 남아 있던 아모리, 헷,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들이었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위한 공사 외에도 많은 공사를 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여호와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원히 거할 처소이지만, 하나님이 던져 버리기도 하시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이 성전의 모순이다. 하나님은 기브온에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님의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둔다고 약속하신다(3절). 그러나 그 영원히라는 것이 기계적인 영원히가 아니다. 왜냐하면 왕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은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하였던 성전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던져버리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니 앞에서 영원히라는 개념은 <안주할 수 있는 영원히>의 개념이 아니다. 순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지속되는 개념이다. 티켓의 개념이 아닌 시민권의 개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2. 솔로몬의 치적은 훗날 백성들의 힘겨운 노역으로 남는다.

  솔로몬이 많은 성을 세우고 나라를 강건하게 만들어 갔지만, 그 백성들은 끊임없는 노역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초기 나라가 강건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을 때에는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약해지고, 정치가 불안해 지는 후반기에 가서 백성들의 노역은 매우 큰 짐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문화재일수록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대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많은 치적으로 쌓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백성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고, 많은 사람의 장기적인 짐을 늘리는 것이라면 결국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단기간 많은 일을 통해 치적을 쌓으려기 보다, 누구를 위한 일이나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보편적인 다수를 위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 이 시대의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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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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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이야기는 성벽 재건 이후에도 상당히 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느헤미야 = 성벽 재건, 땡.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느헤미야의 이야기는 성벽 과정 처럼 다이나믹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성벽 재건 이후의 이야기를 길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과정 뿐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까지 모두 설명해야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지요.

암튼, 6장에서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도 7장, 8장, 9장, 10장까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1차 정리. 본문 내용 중심으로]

1. 언약에 인봉한 자들의 명단(1-27절)

  1) 총독 느헤미야에서부터 시작해서 제사장들, 레위인들,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인봉에 참여

2. 맹세한 사람들의 맹세의 내용들(28-39절)

  1) 언약에 인봉하지는 않았지만 그 언약에 맹세한 사람들은 남은 백성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한 사람과 가족들.

  2) 저주로 맹세하기를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과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한다.

   (1) 우리 딸을 이방인에게 주지 않으며, 이방인의 딸을 데리고 오지 않는다.

   (2) 안식일에는 물건을 사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다.(이 땅 사람들이 요구하더라도)

   (3)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해 주겠다.

   (4) 스스로 규례를 정하여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해씀

   (5) 항상 드리는 전설병, 소제, 번제를 드리고, 안식일과 초하루에 쓰는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의 속죄제를 드리고.

   (6) 제사를 위해 사용되는 나무를 하나님의 전에 바쳐 제단에 사르게 하고

   (7) 해마다 토지 소산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고

   (8) 맏아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의 전에 가져가 드리고..

   (9)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고

   (10) 레위인들은 받은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넣어 두라.

   (11)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2차 정리. 본문을 저자의 의도에 맞춰 내 방식으로 재구성]

귀환한 온 국민적인 회개의 운동이 마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근거로 다시 언약을 맺기로 결심했다. 이제 느헤미야 10장에서는 그 언약 체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실현할 인봉한 사람들의 명단이 언급되고, 그 외에도 모든 사람이 그 언약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어떻게 보면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여호수아가 너희가 믿을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제안하고 그 제안에 모든 사람이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한 선조들의 모습처럼, 이들이 언약을 지키겠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결심이면서도 동시에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여운을 남기는 결정입니다.

그들이 결심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방인과 통혼하지 않을 것이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이며(안식년도 지킴) 성전을 통해서 드려야 할 제사와 절기의 예물을 온전히 드릴 것과 또한 성전에 바쳐야할 것을 바쳐서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의 필요도 채워주고, 성전 자체를 버려두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심이다.

이들의 이와 같은 결심이 잘 지켜지게 되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선조의 역사를 통해 깨달았는지 아니면 깨달았어도 행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지를 봐야 할 일이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재 언약의 체결은 매우 공식적이고 무게감있게 진행되었다.

다시 언약을 맺고 그것을 인봉한 사람들의 이름이 일일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언약의 맺은 내용들에 대해서 하나씩 구체적인 실행 지침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귀환한 공동체는 새로운 언약식을 통해서 조상들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들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언약식에 임했다. 책임있는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적어, 역사에 남김으로 책임감 있는 삶을 살것을 결심했을 것이다.

우리가 뭔가 새로워지길 원한다면, 내적으로 개인적으로만 결심하는 것으로는 약할 수 있다.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형식을 통해서 나의 결정의 무게를 더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말하고,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서 나의 결심에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요, 또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되어서 나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요청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변화는 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정치인들의 정견발표, 연예인들의 기자회견, 대통령의 담화문...자신의 의지와 견해를 오해없이 분명하게 함으로 자신의 의지와 입장을 강화하고, 오해를 불식시키고 또 자기 자신도 그 일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다. 또한 공개적으로 행한 것이기에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고 채찍질하는 제어장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제발, 이런 의지와 무게감으로 이런 장치들을 활용해 주셨으면 좋겠다. 언론 플레이가 아니라.. 어떤 꼼수로서의 말장난이 아니라... 무게감있고 책임감있게...

 

2. 백성들이 지키겠다고 했던 항목들을 잘 살펴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뭔가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돌아온 백성들이 맺은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의 공약을 잘 살피고, 그 공약대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하는 것처럼 백성들의 구체적인 의지와 결단의 내용들이 잘 진행될 것인지 우리는 살펴봐야 한다.

만약 꾸준히 그렇게 행한다면, 하나님은 언약대로 행한 이들을 향해 어떤 복을 허락하시는지 봐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왜그렇지 못했는지를 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언약을 성실하게 성취해 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을 예측하며 성경을 보는 것은 좋은 성경읽기다. 한 마디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이고, 성경의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이렇게 했었는데 과연 지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안목을 기반으로 한 예측이라면 더욱 유익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1. 통혼하지 않는 것

2.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거래행위 금지)

3. 성전과 관계된 제사, 절기, 봉사자들에 대한 생계보장 등

관전 포인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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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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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8장에 와서 지도자에서 백성으로 중심 축이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지도자 느헤미야를 통해서 진행되던 예루살렘의 회복은 마지막 백성들의 움직임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 본문입니다.

 

[정리 1. 내용 정리]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모세의 율법을 가져오기를 청했다.

  1) 일곱째 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를 불러 모세의 율법 가져오기를 청했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는 율법책을 가지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서다.

  3) 에스라는 나무로 만든 강단에 섰고, 백성 앞에서 말씀을 펴니 모든 백성이 일어났다.

  4) 에스라가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고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굽혀 경배했다.

  5)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레위인들은 그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해석해 주었다.

  6) 그 말씀을 깨달은 백성들은 모두 한결같이 울었다.

  7) 느헤미야는 오늘은 하나님의 성일이니 울지 말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고 요청한다.

  8) 레위 사람들도 백성을 정숙하게 하고는 오늘은 성일이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함.

2. 이튿날 또 다시 백성의 지도자들은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임.

  1) 에스라는 말씀 속에서 초막절 절기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그 말씀대로 행할 것을 요청.

  2) 백성들은 초막절 규례에 따라 무성한 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짓고 이레를 지냄

   : 지붕 위, 뜰 안, 하나님의 전 뜰, 수문 광장,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지음.(16절)

  3) 이와 같은 열심히 초막절을 지킨 것은 여호수아 때부터 그 때까지 없었던 일이다.(17절)

  4)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다.(18절)

 

[정리2. 내용을 내 방식으로 재 정리]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성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후속 작업을 모두 했다. 지도자를 세우고, 명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여 훗날의 혼돈을 막도록 조치를 취해 놨다. 여기까지는 지도자의 몫이고 느헤미야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의 완전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 느헤미야 8장은 그 완성을 향해 움직인다. 백성들이 스스로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에스라를 청하고 모세의 율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에스라는 그들의 요청에 사람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레위인들은 그것이 잘 깨달아지도록 열심히 중간에서 힘쓴다.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자신과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도 깨달은 것 같다.) 온 백성이 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일임을 강조하고 먹고 마시고 축제의 날이 되도록 요청한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꾼 것이다.

다음날 백성의 지도자들은 다시 에스라를 찾아 온다. 율법의 말씀을 더 알고 싶어서이다. 에스라는 내친김에 초막절을 가르치고, 지금이 초막절을 지켜야 할 때임을 말한다. 백성들은 그 말씀대로 마음을 다해 초막절 절기를 지킨다. 그 열심과 진지함이 얼마나 컸는지, 여호수아 이래로 이처럼 초막절을 지킨 일이 없다고 기록할 정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예루살렘 성벽 공사의 최종적인 마무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이다.

성벽이 재건되고, 그것을 유지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서 마지막으로 완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 성벽도 계보도 제사도 ....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방점은 말씀으로 찍어야 한다. 모든 회복을 마무리하는 과정 속에서 반드시 최종 점검을 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그 교회 공동체 안에 말씀으로 채워짐이 있는가다.

내용없는 껍데기에 속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껍데기에 도취되어 알맹이를 간과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 성장을 교회의 건물과 사람 수와 재정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그 교회와 그 성도의 영혼을 채워줄 말씀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성벽이 있고, 성도도 있고, 재정도 있고 좋은 프로그램과 영상 장비도 갖추었는데, 말씀은 비어있는 교회. 껍데기에 성도도 목사도 모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역사도 있고, 치유도 있고, 기적도 있고, 선교와 지역사회 봉사도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목사는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먹을 것 없는 잔치집처럼, 요란하기만 하고 성도는 모두 굶주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나는 말씀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먹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말씀을 먹고 내가 말씀을 익혀야 한다.

잊으면 안된다. 잊으면 안된다.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

 

2. 말씀을 채우는 일은 느헤미야로부터 시작된 일이 아니라,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서 시작된 일이다.

말씀을 잘 가르치고 먹이는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말씀을 달라고, 우리는 말씀에 갈증이 있다고 요청하고 구해야 하는 사람은 백성들인것처럼 우리 성도여야 한다.

참된 성도는 교회의 시설과 크기와 프로그램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배고픔이 있어야 한다. 목사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을 때에라도 우리에게 말씀을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 성도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요청이 성도인 우리들에게서 부터 나올 때, 이것은 제대로 된 회복이다.

성도들은 말씀을 달라고 삐약거리고, 목사는 그 간절한 요청에 부응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수시로 그들의 입에 넣어주는 교회. 그래서 성도도 말씀을 강건해지고 목사도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할 수 있는 교회.

전도든, 선교든, 지역 봉사든, 제자훈련이든.... 모든 것은 그 후에 생각해 볼 일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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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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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7장입니다. 성전 재건에 대한 이야기가 6장까지 나오고, 이제 그 이후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난 아닥사스다 왕 때의 이야기 이면서 동시에 성전 재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구현해줄 에스라의 출현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1차. 성경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정리]

성전건축(주전 516년)으로부터 약 58년이 지난 후의 에스라 이야기(아닥사스다 왕,주전 458년)

1. 성전 건축 후 약 58년 후,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인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5절)

1)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2)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3) 아닥사스다 왕 제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에스라도 함께 올라왔다.

4) 넉달이 걸리는 거리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다.

5)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함.

2.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초본 내용(11절)

1)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가라.

2) 목적: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다.

3)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성심으로 은금의 예물을 드리게 함.

4)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은 모든 은금과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예물을 가져다가 신속히 제물로 사서 하나님의 제단위에 드리고, 남은 것은 좋게 여기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라.

5) 그 외에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궁정 창고에서 내다가 쓰도록 해라.

6) 왕의 명으로 강 건너편 창고지기에게 명하니, 은은 백달란트, 밀은 백 고르, 포도주는 백 밧,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주라고 명함.

7) 귀환하는 유다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지 않도록 하라.

8) 너희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에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9) 네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죄를 정하여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두라.

10)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삼가 행해서 그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지 않도록 하라.

3. 여호와를 찬양하는 에스라

1) 왕의 마음으로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다.

2) 나로 하여금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다.

3)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다.

 

[2차. 1차 정리한 내용과 이전의 흐름, 더 나아가 작성자가 가지는 기초 정보를 기반으로해서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정리한다]

 

1.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다. 아닥사스다 왕 때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어떻게 왕의 은혜를 얻고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특히,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자임과 하나님의 율법으로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보여준다.

2. 이와 같은 그림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 통치하시려고 했던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기억나게 하고 에스라의 역할이 모세의 역할임을 연상케 한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이 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에스라의 귀환을 돕고,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제사 회복을 지원하는 모습은 출애굽 당시 바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론 바로는 자발적인 지원이 아니었다. 아닥사스 왕도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모 종의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다. 2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라는 왕의 고백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내쫓은 것이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아닥사스다 왕도 크게 다르지 않는 이유 속에서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명하는 것 같다.

(딴 이야기지만,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가 애굽에서의 요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

3. 에스라가 아론의 16대 후손이라는 것과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라는 것은 성전 제사와 모세 율법 통치의 회복을 위해, 약 60여년 전에 다시 세워진 성전을 근거로 그 토대를 온전케 하고 확대를 목적으로 한 귀환 공동체를 위한 2차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에스라서는 지금 아닥사스다 왕 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과거 출애굽 역사와 유사한 패턴으로 해석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과거 출애굽 역사를 기억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금과 그 때를 비교해서 보도록 하고, 그것은 지금 이시대가 그 때와 같은 하나님의 때로 전에는 실패한 공동체(제사와 말씀 중심)의 회복의 때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따라서 제사장이면서 율법 학자인 에스라의 귀환은 마치 모세의 등장, 그러면서도 모세보다도 어느 면에서 뛰어난(모세는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는 못했고, 모세는 제사장은 아니었으니...) 존재로서의 에스라를 보여준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람으로 기대된다.

3. 하나님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역사하고 있고, 아닥사스다 왕은 그 일의 종처럼 일한다. 하나님은 아닥사스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가지게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그 위협을 피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이 땅의 권세도 사용하시고, 그들의 두려움도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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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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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5:11-14에서 저자가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데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의 수준이 충분치 못해(너무 연약해서) 말하고 있지 못하다가 히브리서 7장에 가서야 조금씩 저자가 하려고 하는 내용들을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6장은 하나의 중간 삽입적 내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 7장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처음에는 멜기세덱의 독특성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을 통해서 볼 때, 아브라함보다 높은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1,7절). 이런 행위는 또한 당시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던 레위 지파까지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격이기 때문에 멜기세덱은 레위지파(제사장) 보다도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9,10절)

더불어 제사장의 혈통과 활동에 대한 규정을 주고 있는 율법을 통해서 볼 때, 멜기세덱의 제사장적 역할은 율법과 어긋나는 것 뿐 아니라, 율법의 바뀜을 말하는 것이다.(11,12절) 사실 율법은 약하고 무익하다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하나님은 율법을 폐하시고 다른 방식으로 제사장을 세우신 것이다.(15,16절)

그런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워진 제사장은 더 완전하고 온전한 제사장이다. 오히려 율법으로 세워진 제사장는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드려야 하는 존재였으나,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그럴 필요가 없을 만큼 악이 없이 거룩하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 제사드릴 필요도 없고, 단번에 자기를 드려 제사를 드리심으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으셨다.(22-28절)

예수님은 레위 지파를 따라온 제사장은 아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요 이는 오히려 레위 지파를 따른 제사장 보다 더 월등한 것이다. 물론 율법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오히려 율법은 연약하고 무익하여 폐한 것이고(18절) 하나님이 더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운 것인데, 이는 오히려 더 뛰어나고 월등하여 구원의 더 큰 소망이 된 것이다.

그러니, 예수가 제사장 지파가 아니라는 혈통적 문제와 율법과 다르다는 문제에 대해서 오히려 벗어나 더 큰 소망을 가진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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